Re:설명(일단 완료)
사회자2009-10-13조회 760추천 166
** 1.우리 공회 교인 이상으로 신앙생활, 봉사, 희생에 힘쓰는 일반 교단 교인들이 많은 것 같음. **
원래 교회는 하나입니다. 성경에는 한 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교파가 다르고 교회가 달라도 성경대로 바로 된 교회라면 우리는 모두 한 교회입니다.
여러 형편에 따라 교파를 달리하고 이름을 달리하지만 한 몸이라야 옳은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교단 다른 교회의 좋은 부분은 바로 우리의 좋은 것이고,
다른 교단 다른 교회의 좋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우리의 아픔으로 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공회, 우리 교회, 우리 교인들 이상으로 신앙생활에 힘쓰는 교단이나 교회는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며, 우리가 부러워하고 본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 공회가 아니라고, 우리 교회가 아니라고 하여 좋은 것까지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좋은 부분들은 부지런히 살펴서 우리가 본받고 배워야 합니다.
하나 기억할 것은
열심보다, 충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방향, 또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방편도 그럴 수 있습니다.
열심과 충성이 하나님을 찾고, 알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천국을 알고, 천국을 향하여 가는 그런 열심과 충성이라면,
그런 교단이나 교회를 보면 우리는 부러워해야 하고 열심히 본받고 배워야 합니다.
만에 하나
열심은 있는데 그 방향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거나, 천국이 아닌 이 세상을 향하고 있다면
그런 면은 조심스럽게 살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 2.교회시설-십자가가 없고 교회 건물과 시설이 너무 소박해 친구들이 이상히 여기는 경우가 많이 있음.
(우리 교회 건물을 범일침례교회 부속건물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주민들이 종종 있음) **
원래 '교회'라는 것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를 교회라고 말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 진리, 성도' 이렇게 셋이 합해진 것을 '교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 섬기는 진리를 배우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해야 되는데
여러 사람들이 모이려고 하니까 부득이 좀 넓은 장소를 마련하게 되고
그래서 생겨지게 된 것이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부르는 건물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부르는 건물은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장소라는 뜻으로 '예배당'이라 하는 것이 맞지만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냥 교회라고 같이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성전이 오늘에 교회인데
성경에 성전의 건물도 성전이라고 했으므로
예배당 건물을 교회라 하는 것도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십자가가 없는 것은
첫째는 십자가를 달 만한 공간이나 위치가 마땅치 않은 것이 그 이유이고
둘째는 아무리 공간이 없어도 꼭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달 것인데
십자가 모양의 '외형보다는' 십자가라는 '내면의 정신과 실생활에' 주력하려고 하다 보니까
외형의 모양은 소홀하게 된 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오해를 할 정도라면 작은 것이라도 십자가를 다는 것도 의논해 보겠습니다.
교회 건물과 시설이 소박한 것은
위에서 설명 드린 대로 교회 건물은
큰 불편 없이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만 되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 우리 사회는
교회가 외형에 너무 치중하여 교회 건물과 시설들이 지나치게 크고 화려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입니다.
이런 인식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 공회 교회들처럼 건물이나 시설이 소박한 것은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욱이 교회의 모든 시설은 교회 연보로 해야 되는데
하나님 앞에 바쳐진 교인들의 피와 땀과 같은 연보를 아껴서
인간 구원 운동에 꼭 필요한 부분에만 사용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 3.찬양대-일반교회(서부교회) 굉장히 화려하나 우리 교회는 너무 소박함 **
신앙생활은 하나님 섬기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배우고 알고 높이고 찬양하고 닮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 생활의 중심에 주일이 있고 주일의 중심에는 예배가 있으며,
예배의 중심은 말씀이고 그 말씀 안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예배는 말씀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기도와 찬송입니다.
따라서 예배의 중심은 말씀이라야 하고 기도나 찬송은 말씀을 전하고 듣는 일에 돕는 역할이라야 합니다.
찬송이 중요하고 찬송 그 자체도 하나님 섬기는 생활이 되지만 찬송도 말씀이 바탕이 되어 나온 찬송이라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것은 좋아하고 싫은 것은 피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쉽게 하고 어려운 일은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입니다. 말씀과 찬양도 이런 면이 있습니다.
말씀은 어렵고 딱딱하고, 찬양은 비교적 쉽고 흥겹습니다.
자칫하면 어렵고 딱딱한 말씀보다 찬양 중심으로 예배가 이루어지기 쉬운데 이것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배의 중심을 말씀으로 기울이려고 하다 보니
찬양대는 예배에 꼭 필요한 정도로, 그러나 최대한 은혜되도록 노력한 것이 현재 우리교회 찬양대 모습입니다.
백 목사님 계실 당시 서부교회는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였고, 주일학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였습니다.
그 당시 서부교회의 찬양대는 숫자가 많은 것 외에는 현재 우리 교회 찬양대의 모습과 꼭 같습니다.
만약 지금 서부교회 찬양대가 화려하다면 그것은 원래의 모습에서 달라진 것입니다.
원래 서부교회 찬양대는 여학생들로 구성된 주일학교 찬양대와 중간반 찬양대가 있었고,
그 모습은 찬양대 가운부터 찬송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현재 우리 교회 찬양대 모습과 꼭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pkist 홈에서 인용한 찬양대에 대한 설명입니다. 원문 그대로 첨부했습니다.)
1. 주일과 예배
날 중에 가장 귀한 날은 주일이고, 시간 중에 가장 귀한 시간은 예배 시간입니다.
과거에는 모든 교파가 다 그렇게 알고 그렇게 살았으나 지금은 말로만 그렇지 실제로는 거의 그런 교단이 없습니다.
공회 교회를 구별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날 중에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고
그리고 시간 중에는 예배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공회 신앙을 구별하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2. 예배와 찬송
총공회 신앙은 모든 시간 중에서 예배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데
예배 시간 중에서는 말씀을 제일 중요하게 앞 세우고 그 다음 기도와 찬송을 예배의 필수 요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찬송은 어떤 찬송이 은혜스러운지 그 내용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찬송의 반주나 찬송 인도자나 찬양대는 찬송을 더 은혜 되도록 하는 보충 수단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 예배 때는 찬송 반주나 찬송 인도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밤 예배 때는 찬양대를 거의 운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3. 찬양대의 구성
찬양대를 설명하면서 '주일'과 '예배'와 '찬송'으로 이어 지는 관계와 위치를 설명한 이유는
공회는 찬양대를 구성할 때 주일 학생들이나 중간반 학생들이 중심인데,
그 이유는 장년반들은 대개 예배를 참석하도록 다른 사람을 맡아 수고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고,
어린 학생들은 대개 예배 시간에 따로 맡을 일이 없기 때문에
찬양대처럼 예배 중에서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불편이 없는 순서를 맡겨 그런 적은 일을 통해 신앙을 자라게 하기 때문입니다.
일반 교단들은 교회에 가장 핵심 인물들이 찬양에 취미가 있거나 소질이 있다면 만사 제쳐 놓고 찬양대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가장 신앙 있고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찬양대라 할 정도인데
이는 예배와 찬송과 찬송 중에서 찬양의 위치와 비중이 불균형이 된 경우입니다.
말하자면 귀는 귀 정도라야 하는데 귀가 손 바닥 만큼 된다면 전체 균형이 맞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요약하면, 공회의 찬양대는 어린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합니다.
현재 많은 공회 교회들이 장년반 중심으로 찬양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교회의 찬송 실력을 기르기 위해 또는 다른 목적으로 임시 그렇게 한다면 그 것은 교회 별로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나
만일 찬양대를 중심으로 교회의 장년반들이 구조적으로 계속 활동하게 된다면
그 것은 일시 볼 때는 교회의 큰 힘이 되는 것 같으나 넓은 눈으로 보면 일반 교회화로 나가는 증상 중의 하나입니다.
4. 찬양대의 운영
예배 시간에 찬송 시간을 북 돋우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찬양대가 자칫 음악성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게 되면 찬양의 은혜 면을 잃어 버리기 쉽습니다.
음악은 있는데 찬송이 없는 찬양대, 노래는 있는데 찬양이 없는 찬양대, 실력은 있는데 은혜는 없는 찬양대,
찬양대는 신이 나는데 듣는 교인들은 무엇을 찬양하는지 가사도 몰라서 그냥 유능한 합창단을 관람하는 데 그치는 찬양대가 되기 쉽습니다.
찬양대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 할수록 성경은 더 멀어 지고 전도나 깊은 기도와는 멀어 지기 쉽습니다.
말하자면 학교 다니는 학생이 음악 성적이나 체육 점수가 올라갈수록 학생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좋을 것이나
정작 학교를 다니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학습 능력은 반대로 내려 갈 수 있습니다.
세상 비유이므로 정확하지는 않으나 원리를 새겨 주시라는 뜻으로 예를 들었습니다.
교회나 개인의 신앙 깊이가 찬송에 조예가 깊을수록 기도나 말씀의 깊이는 얕아 지는 통계가 있는데
그렇게 되는 신앙적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5. 외부 찬양대 운영의 채택
조선 시대 한국 사회가 미국을 닮으면 닮을수록 경제나 기술의 발달은 클 것이지만, 도덕과 예절은 바닥을 칠 것입니다.
다른 진영을 닮게 되면 교회의 건물이 아름다워지고 교인의 숫자 확보에는 유리하고 교인들이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재미 있다는 말은 듣게 될 것이나,
그 대신 하나님과 교인의 내면 거리는 멀어 질 것이고 교회는 점점 세상을 닮을 것이며 신앙 중심의 교회가 왠지 세상이 되었다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6. 말하자면
공회의 200 곡 찬송가 정도라면 찬양대의 찬송으로는 충분할 것이며,
어린 신앙을 위해서나 교회의 찬송가 훈련을 위해 가끔 새찬송가 정도 또는 그런 분위기의 찬송가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찬송가는 신앙에 상관 없이 음악이라는 특성 때문에 누구라도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수단입니다.
이 느낌은 은혜와 인간의 음악적 감흥 사이에서 구별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우리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찬송이므로 찬송이 나쁜 것이 아니라 찬송만 강조하고
찬송에만 붙들리다가 균형 잃은 식사처럼 될까 하여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일반 교단들의 찬양대 운영은 그 찬양대 운영의 모습만 봐도 신앙의 본질과 순서조차 무엇인지를 모르는 정도입니다.
공회의 찬양대는 그 원래 모습이 찬양대가 찬양대 위치를 바로 잡고
찬송이 찬송의 은혜로 우리 신앙에 필수가 되도록 잘 조절 된 상태임을 기억하여 공회의 원래 찬양대 운영 원칙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 4.집 가까운 교회 놔두고 왜 멀리 부산까지 교회 다니느냐는 질문을 하는 친구들이 있음 **
멀리까지 가는 것이 옳은 것도 좋은 것도 아닙니다.
멀리까지 가는 것이 무조건 틀린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왜 멀리까지 가야 하는지,
멀리까지 가려면 시간도, 경제도, 노력도 많이 들어 그만큼 힘드는데
왜 멀리까지 가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은 신앙생활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말로 교회생활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이 집을 마련할 때는 반드시 교회 근처에 마련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집을 마련한 후에 믿게 되었다면
할 수 있으면 집 근처 가까운 교회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교회가 없거나
교회가 있어도 신앙생활하기에 마땅한 교회가 없다면
맞는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라도 교회 근처로 이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집 가까운 곳에 교회도 없고
교회 근처로 이사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부득이 멀리까지라도 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성경은 한 권뿐인데 교파는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요소가 들어서 그리 된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교파가 다른 것은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고 속에 신앙의 사상이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교파가 다르면 거기서는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부득이 자신이 속한 교파를 찾아야 하고 그런 교파가 멀리 있다면 멀리라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교파에 속한 교회라면 집 가까운 교회로 가는 것이 가장 좋겠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교파라도 가까운 곳을 두고 멀리까지 가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겉모습은 이목구비 수족 오장육부로 비슷하지만
그 속은 사람마다 각각 다 다른 것이 사람입니다.
생각도 취향도 소원도 사상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지 않고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인 것입니다.
신앙생활, 교회생활도 그러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섬기는 사람들이지만 역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따라서 같은 교파에 속한 교회라 할지라도 자기에게는 맞지 않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인간 생각이나 감정 같은 것이면 자기가 고쳐 맞춰야 되지만
신앙생활과 연결되는 것이면 부득이 자기와 맞는 교회를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비유가 같을 수는 없지만 예를 들자면
주변에 좋은 학교들이 있어도 본인에게 맞는, 본인이 원하는 학과가 없다면,
그런데 그런 학교가 멀리 있다면 부득이 멀리까지라도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늘
교회 근처에서 신앙생활 하기를 원하는 소망과 노력이 간절하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 5.주일 오후에 학생회 단위로 놀러 다니지 않고(영화관람, 축구대회, 맥도날드 등) 왜 하루종일 교회에서 지내냐는 친구들이 있음 **
우리 것이 아니라고 다 틀린 것도 아니고,
남의 것이라고 다 옳은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주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며,
한 사람이 주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주장해도 틀린 것은 틀린 것이며,
한 사람만 주장을 해도 옳은 것이라면 옳은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이라 하지 않고 사람을 말이나 소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천 명, 만 명, 억만 명이 주장해도 틀린 말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복되고 거룩한 날입니다.
따라서 주일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중심이고
예배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거룩하게 변화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모든 것은 이것을 위해서 해야 하고 이것 외의 것은 어떤 것이든지 하면 안 됩니다.
학생회든지 청년회든지 어떤 경우라도
주일날 영화 구경, 축구 경기, 맥도날드 등을 다닌다면
그것은 명백히 주일을 어기는 죄가 됩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많은 교회가 그렇게 해도 그것은 따라 하면 안 됩니다.
학교 수업시간에 친구가 영화구경을 간다면? 친구니까 따라가도 되는가?
아무리 친구라도 틀린 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런 것은 따라 할 수 없습니다.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노래방 가고, 축구 경기 구경 가고 잔치집에 다닌다면?
아마 그 선생님은 학교에서 크게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주일은 이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중요한 날입니다.
해야 되는 일이 있고, 해도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주일날 영화구경, 축구경기, 맥도날드 등을 다니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주일은 거룩하게 지키라고 성경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교회는 하나입니다. 성경에는 한 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교파가 다르고 교회가 달라도 성경대로 바로 된 교회라면 우리는 모두 한 교회입니다.
여러 형편에 따라 교파를 달리하고 이름을 달리하지만 한 몸이라야 옳은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교단 다른 교회의 좋은 부분은 바로 우리의 좋은 것이고,
다른 교단 다른 교회의 좋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우리의 아픔으로 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공회, 우리 교회, 우리 교인들 이상으로 신앙생활에 힘쓰는 교단이나 교회는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며, 우리가 부러워하고 본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 공회가 아니라고, 우리 교회가 아니라고 하여 좋은 것까지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좋은 부분들은 부지런히 살펴서 우리가 본받고 배워야 합니다.
하나 기억할 것은
열심보다, 충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방향, 또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방편도 그럴 수 있습니다.
열심과 충성이 하나님을 찾고, 알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천국을 알고, 천국을 향하여 가는 그런 열심과 충성이라면,
그런 교단이나 교회를 보면 우리는 부러워해야 하고 열심히 본받고 배워야 합니다.
만에 하나
열심은 있는데 그 방향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거나, 천국이 아닌 이 세상을 향하고 있다면
그런 면은 조심스럽게 살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 2.교회시설-십자가가 없고 교회 건물과 시설이 너무 소박해 친구들이 이상히 여기는 경우가 많이 있음.
(우리 교회 건물을 범일침례교회 부속건물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주민들이 종종 있음) **
원래 '교회'라는 것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를 교회라고 말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 진리, 성도' 이렇게 셋이 합해진 것을 '교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 섬기는 진리를 배우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해야 되는데
여러 사람들이 모이려고 하니까 부득이 좀 넓은 장소를 마련하게 되고
그래서 생겨지게 된 것이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부르는 건물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부르는 건물은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장소라는 뜻으로 '예배당'이라 하는 것이 맞지만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냥 교회라고 같이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성전이 오늘에 교회인데
성경에 성전의 건물도 성전이라고 했으므로
예배당 건물을 교회라 하는 것도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십자가가 없는 것은
첫째는 십자가를 달 만한 공간이나 위치가 마땅치 않은 것이 그 이유이고
둘째는 아무리 공간이 없어도 꼭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달 것인데
십자가 모양의 '외형보다는' 십자가라는 '내면의 정신과 실생활에' 주력하려고 하다 보니까
외형의 모양은 소홀하게 된 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오해를 할 정도라면 작은 것이라도 십자가를 다는 것도 의논해 보겠습니다.
교회 건물과 시설이 소박한 것은
위에서 설명 드린 대로 교회 건물은
큰 불편 없이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만 되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 우리 사회는
교회가 외형에 너무 치중하여 교회 건물과 시설들이 지나치게 크고 화려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입니다.
이런 인식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 공회 교회들처럼 건물이나 시설이 소박한 것은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욱이 교회의 모든 시설은 교회 연보로 해야 되는데
하나님 앞에 바쳐진 교인들의 피와 땀과 같은 연보를 아껴서
인간 구원 운동에 꼭 필요한 부분에만 사용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 3.찬양대-일반교회(서부교회) 굉장히 화려하나 우리 교회는 너무 소박함 **
신앙생활은 하나님 섬기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배우고 알고 높이고 찬양하고 닮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 생활의 중심에 주일이 있고 주일의 중심에는 예배가 있으며,
예배의 중심은 말씀이고 그 말씀 안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예배는 말씀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기도와 찬송입니다.
따라서 예배의 중심은 말씀이라야 하고 기도나 찬송은 말씀을 전하고 듣는 일에 돕는 역할이라야 합니다.
찬송이 중요하고 찬송 그 자체도 하나님 섬기는 생활이 되지만 찬송도 말씀이 바탕이 되어 나온 찬송이라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것은 좋아하고 싫은 것은 피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쉽게 하고 어려운 일은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입니다. 말씀과 찬양도 이런 면이 있습니다.
말씀은 어렵고 딱딱하고, 찬양은 비교적 쉽고 흥겹습니다.
자칫하면 어렵고 딱딱한 말씀보다 찬양 중심으로 예배가 이루어지기 쉬운데 이것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배의 중심을 말씀으로 기울이려고 하다 보니
찬양대는 예배에 꼭 필요한 정도로, 그러나 최대한 은혜되도록 노력한 것이 현재 우리교회 찬양대 모습입니다.
백 목사님 계실 당시 서부교회는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였고, 주일학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였습니다.
그 당시 서부교회의 찬양대는 숫자가 많은 것 외에는 현재 우리 교회 찬양대의 모습과 꼭 같습니다.
만약 지금 서부교회 찬양대가 화려하다면 그것은 원래의 모습에서 달라진 것입니다.
원래 서부교회 찬양대는 여학생들로 구성된 주일학교 찬양대와 중간반 찬양대가 있었고,
그 모습은 찬양대 가운부터 찬송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현재 우리 교회 찬양대 모습과 꼭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pkist 홈에서 인용한 찬양대에 대한 설명입니다. 원문 그대로 첨부했습니다.)
1. 주일과 예배
날 중에 가장 귀한 날은 주일이고, 시간 중에 가장 귀한 시간은 예배 시간입니다.
과거에는 모든 교파가 다 그렇게 알고 그렇게 살았으나 지금은 말로만 그렇지 실제로는 거의 그런 교단이 없습니다.
공회 교회를 구별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날 중에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고
그리고 시간 중에는 예배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공회 신앙을 구별하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2. 예배와 찬송
총공회 신앙은 모든 시간 중에서 예배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데
예배 시간 중에서는 말씀을 제일 중요하게 앞 세우고 그 다음 기도와 찬송을 예배의 필수 요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찬송은 어떤 찬송이 은혜스러운지 그 내용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찬송의 반주나 찬송 인도자나 찬양대는 찬송을 더 은혜 되도록 하는 보충 수단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 예배 때는 찬송 반주나 찬송 인도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밤 예배 때는 찬양대를 거의 운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3. 찬양대의 구성
찬양대를 설명하면서 '주일'과 '예배'와 '찬송'으로 이어 지는 관계와 위치를 설명한 이유는
공회는 찬양대를 구성할 때 주일 학생들이나 중간반 학생들이 중심인데,
그 이유는 장년반들은 대개 예배를 참석하도록 다른 사람을 맡아 수고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고,
어린 학생들은 대개 예배 시간에 따로 맡을 일이 없기 때문에
찬양대처럼 예배 중에서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불편이 없는 순서를 맡겨 그런 적은 일을 통해 신앙을 자라게 하기 때문입니다.
일반 교단들은 교회에 가장 핵심 인물들이 찬양에 취미가 있거나 소질이 있다면 만사 제쳐 놓고 찬양대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가장 신앙 있고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찬양대라 할 정도인데
이는 예배와 찬송과 찬송 중에서 찬양의 위치와 비중이 불균형이 된 경우입니다.
말하자면 귀는 귀 정도라야 하는데 귀가 손 바닥 만큼 된다면 전체 균형이 맞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요약하면, 공회의 찬양대는 어린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합니다.
현재 많은 공회 교회들이 장년반 중심으로 찬양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교회의 찬송 실력을 기르기 위해 또는 다른 목적으로 임시 그렇게 한다면 그 것은 교회 별로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나
만일 찬양대를 중심으로 교회의 장년반들이 구조적으로 계속 활동하게 된다면
그 것은 일시 볼 때는 교회의 큰 힘이 되는 것 같으나 넓은 눈으로 보면 일반 교회화로 나가는 증상 중의 하나입니다.
4. 찬양대의 운영
예배 시간에 찬송 시간을 북 돋우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찬양대가 자칫 음악성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게 되면 찬양의 은혜 면을 잃어 버리기 쉽습니다.
음악은 있는데 찬송이 없는 찬양대, 노래는 있는데 찬양이 없는 찬양대, 실력은 있는데 은혜는 없는 찬양대,
찬양대는 신이 나는데 듣는 교인들은 무엇을 찬양하는지 가사도 몰라서 그냥 유능한 합창단을 관람하는 데 그치는 찬양대가 되기 쉽습니다.
찬양대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 할수록 성경은 더 멀어 지고 전도나 깊은 기도와는 멀어 지기 쉽습니다.
말하자면 학교 다니는 학생이 음악 성적이나 체육 점수가 올라갈수록 학생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좋을 것이나
정작 학교를 다니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학습 능력은 반대로 내려 갈 수 있습니다.
세상 비유이므로 정확하지는 않으나 원리를 새겨 주시라는 뜻으로 예를 들었습니다.
교회나 개인의 신앙 깊이가 찬송에 조예가 깊을수록 기도나 말씀의 깊이는 얕아 지는 통계가 있는데
그렇게 되는 신앙적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5. 외부 찬양대 운영의 채택
조선 시대 한국 사회가 미국을 닮으면 닮을수록 경제나 기술의 발달은 클 것이지만, 도덕과 예절은 바닥을 칠 것입니다.
다른 진영을 닮게 되면 교회의 건물이 아름다워지고 교인의 숫자 확보에는 유리하고 교인들이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재미 있다는 말은 듣게 될 것이나,
그 대신 하나님과 교인의 내면 거리는 멀어 질 것이고 교회는 점점 세상을 닮을 것이며 신앙 중심의 교회가 왠지 세상이 되었다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6. 말하자면
공회의 200 곡 찬송가 정도라면 찬양대의 찬송으로는 충분할 것이며,
어린 신앙을 위해서나 교회의 찬송가 훈련을 위해 가끔 새찬송가 정도 또는 그런 분위기의 찬송가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찬송가는 신앙에 상관 없이 음악이라는 특성 때문에 누구라도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수단입니다.
이 느낌은 은혜와 인간의 음악적 감흥 사이에서 구별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우리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찬송이므로 찬송이 나쁜 것이 아니라 찬송만 강조하고
찬송에만 붙들리다가 균형 잃은 식사처럼 될까 하여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일반 교단들의 찬양대 운영은 그 찬양대 운영의 모습만 봐도 신앙의 본질과 순서조차 무엇인지를 모르는 정도입니다.
공회의 찬양대는 그 원래 모습이 찬양대가 찬양대 위치를 바로 잡고
찬송이 찬송의 은혜로 우리 신앙에 필수가 되도록 잘 조절 된 상태임을 기억하여 공회의 원래 찬양대 운영 원칙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 4.집 가까운 교회 놔두고 왜 멀리 부산까지 교회 다니느냐는 질문을 하는 친구들이 있음 **
멀리까지 가는 것이 옳은 것도 좋은 것도 아닙니다.
멀리까지 가는 것이 무조건 틀린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왜 멀리까지 가야 하는지,
멀리까지 가려면 시간도, 경제도, 노력도 많이 들어 그만큼 힘드는데
왜 멀리까지 가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은 신앙생활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말로 교회생활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이 집을 마련할 때는 반드시 교회 근처에 마련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집을 마련한 후에 믿게 되었다면
할 수 있으면 집 근처 가까운 교회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교회가 없거나
교회가 있어도 신앙생활하기에 마땅한 교회가 없다면
맞는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라도 교회 근처로 이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집 가까운 곳에 교회도 없고
교회 근처로 이사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부득이 멀리까지라도 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성경은 한 권뿐인데 교파는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요소가 들어서 그리 된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교파가 다른 것은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고 속에 신앙의 사상이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교파가 다르면 거기서는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부득이 자신이 속한 교파를 찾아야 하고 그런 교파가 멀리 있다면 멀리라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교파에 속한 교회라면 집 가까운 교회로 가는 것이 가장 좋겠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교파라도 가까운 곳을 두고 멀리까지 가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겉모습은 이목구비 수족 오장육부로 비슷하지만
그 속은 사람마다 각각 다 다른 것이 사람입니다.
생각도 취향도 소원도 사상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지 않고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인 것입니다.
신앙생활, 교회생활도 그러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섬기는 사람들이지만 역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따라서 같은 교파에 속한 교회라 할지라도 자기에게는 맞지 않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인간 생각이나 감정 같은 것이면 자기가 고쳐 맞춰야 되지만
신앙생활과 연결되는 것이면 부득이 자기와 맞는 교회를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비유가 같을 수는 없지만 예를 들자면
주변에 좋은 학교들이 있어도 본인에게 맞는, 본인이 원하는 학과가 없다면,
그런데 그런 학교가 멀리 있다면 부득이 멀리까지라도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늘
교회 근처에서 신앙생활 하기를 원하는 소망과 노력이 간절하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 5.주일 오후에 학생회 단위로 놀러 다니지 않고(영화관람, 축구대회, 맥도날드 등) 왜 하루종일 교회에서 지내냐는 친구들이 있음 **
우리 것이 아니라고 다 틀린 것도 아니고,
남의 것이라고 다 옳은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주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며,
한 사람이 주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주장해도 틀린 것은 틀린 것이며,
한 사람만 주장을 해도 옳은 것이라면 옳은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이라 하지 않고 사람을 말이나 소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천 명, 만 명, 억만 명이 주장해도 틀린 말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복되고 거룩한 날입니다.
따라서 주일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중심이고
예배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거룩하게 변화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모든 것은 이것을 위해서 해야 하고 이것 외의 것은 어떤 것이든지 하면 안 됩니다.
학생회든지 청년회든지 어떤 경우라도
주일날 영화 구경, 축구 경기, 맥도날드 등을 다닌다면
그것은 명백히 주일을 어기는 죄가 됩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많은 교회가 그렇게 해도 그것은 따라 하면 안 됩니다.
학교 수업시간에 친구가 영화구경을 간다면? 친구니까 따라가도 되는가?
아무리 친구라도 틀린 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런 것은 따라 할 수 없습니다.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노래방 가고, 축구 경기 구경 가고 잔치집에 다닌다면?
아마 그 선생님은 학교에서 크게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주일은 이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중요한 날입니다.
해야 되는 일이 있고, 해도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주일날 영화구경, 축구경기, 맥도날드 등을 다니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주일은 거룩하게 지키라고 성경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