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4일 주일 오후 - 우리는 현실의 주인
김동민2019-04-14조회 255추천 30
2019년 4월 14일 주일 오후
찬송가 : 136장, 159장, 195장
본문 : 창세기 3장 1절 ~ 3장 6절
제목 : 우리는 현실의 주인
인류 시조의 타락의 과정인데, 타락의 순서도 있고 그 원인도 있습니다. 인류 시조라고 하면, 가장 처음 시작하는 사람, 누군가에 의해서 처음 그 자리에 앉게 된 사람, 그 임명을 받은 사람, 그 중요성은 매우 큽니다. 아주 막중한 위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장남, 장녀는 맏이는 그 자리가 중요합니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대신 할 자리고, 장녀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맏이가 잘 되면 밑에 잘 되기 쉽고 맏이가 잘 안되면 그 밑에도 잘 안됩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 날도 자녀를 많이 안 낳아도 이것은 다른 없습니다. 시대는 이상한 시대가 되어서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이라는 사람이지요. 한국의 첫 번째 대통령 자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거기에 앉았다면 북한처럼 되었던 것입니다. 북한은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앉았으니까 그 사상대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라든지 가정이든지 시조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만큼 위치가 막중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류의 시조가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이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 사람들은 선악과를 따먹어서 타락하고 자손대대로 타락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인류 시조의 타락의 과정은 오늘 우리의 타락 과정이고 우리 순서고, 인류 타락의 원인은 우리의 타락의 원인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계를 어떻게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계도 이 때 지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영계라는 것이 알기 어렵습니다. 지난 양성원 때 하나님의 세계를 잠시 이야기 하셨는데, 굉장히 깊히 들어가셨습니다. 그 분의 세계는 참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영계도 지었고 물질계도 지으셨는데, 하늘, 바다, 땅과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우주라는 것은 광대하고 광활합니다. 인간의 그런 면에서는 무한이라고 할 만큼 넓습니다. 인간이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우주입니다. 그 가운데 사람이 살게 한 곳이 지구니까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중에서 동방의 에덴에, 어디 있는 지는 모릅니다. 이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말씀하신 이치를 찾지 않고 껍데기를 찾는 것은 나이 먹는 사람이 유치원에 가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 곳에 사람이 지낼 곳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까지 지어놓으시고 동방에 에덴 동산을 창설하신 것입니다. 뭘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좋은 것으로 에덴 동산을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생각하면, 첫 번째 하나님은 전지자입니다. 그러면 가장 좋은 최고의, 최귀의 그런 곳으로 만든 곳이 에덴 동산입니다. 전지 의지로 만드신 겁니다. 사람이 사는 기준의 가장 최고의 최적의 환경으로 만든 것이 에덴 동산입니다. 오늘 날 각자의 자기 처소입니다. 나의 오늘의 에덴 동산. 다시 말하면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알맞은 최적의 그런 환경으로 만든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렇게 괴롭고 걱정스럽고, 고통스러운 곳이 지상 낙원 에덴 동산이라니.. 누구 생각입니까? 내 생각, 자기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게 만들어 주신 겁니다. 오형제 중에서 장녀로 태어난 아이가 있고, 막내로 태어난 아이가 있습니다. 장녀로, 장남으로, 막내로 나고 싶어서 났나요? 어머니까 이 아이를 장남 장녀 막내로 낳으려고 했습니까?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전해 주신 겁니다. 당신의 뜻을 따라서 말하자면은 각자의 에덴 동산, 전지하신 하나님이 전능한 능력으로 최적의 환경, 하나님과 자기 신앙의 근본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유치원 때는 어떤 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에 어디 보내고, 중학교는 어디 보내고, 고등학교는 어디로 보내고, 대학교는 어디로 보내서 똑똑하고 머리 좋은 그 학생의 목표, 나는 어디로 가겠다고 정한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목표를 정해놓고 갑니다. 놀고 싶어도 참고 나가고 싶어도 참고 자고 싶어도 참고 열심히 공부해서 해 나간 그 노력들, 공부의 노력, 학생들의 노력들, 졸업하고 취업하고 안되니까 사업도 해 보고 그러면 천하 모든 사람들의 절대 다수의 노력들은 뭐 하는 노력입니까? 현실을 바꾸는 노력입니다. 자기 에덴 동산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좋게 하겠다는 노력입니다. 좋은 겁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가장 좋은 그 현실이 내 마음에 안 맞다고 그런 곳을 만들기 위해서 죽도록 노력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을 부정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는 것이지요.
불신자들은 그렇습니다. 우리도 별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귀신 들어가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에덴 동산 그 낙원을 만족하게 할려고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전지자가 가장 좋게 만들어 주신 것이 자신의 현실이고 자신의 처소입니다. 잊어버리지 맙시다. 지상 낙원입니다. 병석에 누웠으면 그 자리에서 그 원인을 찾아서 잘못된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치를 감사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부도가 났으면 그 원인을 찾아서 회개하고, 그리고 감사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합리화를 시켜버리는 것이 아니고 실제 그런 것입니다.
이것을 거부해서 자기 주관을 집어넣으면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집은 몇 평이 되어야겠다, 내 집은 있어야겠다, 내 아파트는 있어야겠다, 내 실력을 마련해야겠다, 내 학벌을 마련해야겠다. 나무로 만족 못 하면 돌멩이, 철, 동, 은, 금가지고.. 금을 가지고 만족을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현실만족주의로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아내가 가장 예뻐야하고 자기 남편이 가장 좋아야합니다. 뭐 같은 아내라도 가장 귀한 보배인 것입니다. 내가 변하면 상대가 다 변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이것을 기억하십시다.
나의 처소, 나의 활동 무대, 나의 현실에서는 그 누구의 말도 들을 필요가 원래는 없는 겁니다.
현실의 우리는 주인입니다. 각자 자기 현실, 자기 처소, 그 처소에는 사람도 있고 사물도 있고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의사 결정이 있습니다. 그 결정을 누가 해야합니까? 내가 해야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듣고 참고만 하는 겁니다. 결정은 누가 해야합니까? 내가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주인은 주인인데 왕은 왕인데 위임받은 왕입니다. 너는 에덴 동산의 주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다. 그게 선악과입니다. 그래서 주신 것이 선악과입니다. 오늘 날 물질로는 십일조이고, 날로 치면은 주일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는 궁극은 하나님이지만은 주인은 나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에도 어떤 환경에도 내가 주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던져 버리는 것은 온 세상이 좋아서 환장하는 것입니다. 다 가져가도 금 덩어리는 줘도 그 속에 주님은 안 주는 것입니다. 보면은 보는 데서 내가 가질 것이 있습니다.
내가 빨아먹을 영양분이 있습니다. 뭘 보든지, 사람을 보든지.. 산불이 나니까 몇 시간 넘게 중계를 했다고 하나요? 일본에는 귀가 닳도록 피하십시오하는데, 한국에서는 중계만 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리의 것도 느끼는 거지요. 어떻게 보든지, 그 보는 것. 학교에서 교수의 말을 들어도 직업에서 뭘 들어도 신문에서 방송에서 뭘 들어도, 그리 가니까 나도 따라가면, 점염병처럼 퍼져나가는 겁니다. 다수를 따라서 죄를 짓지 말아라. 마찬가지지요. 가져야 할 것인지 어찌해야 할 것인지, 취해야 할 것인지. 이것이 뭐 하는 노릇입니까? 이게 통치자, 주인의 노릇입니다. 이게 성도의, 하나님의 형상을 닳은 8가지 속성 중에서 주권입니다. 내 주권을 왜 내가 포기합니까? 왜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가고 시대 따라가고 왜 나의 주권을 포기합니까? 그렇게 따라가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주인이니까, 내가 결정하는 것이니까, 내가 비판 평가하는 것이고 내가 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속의 기준 잣대는 하나님이 되어야하는 겁니다. 우리 믿는 사람 속에 양심이 있지요. 성경이 없어도 양심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밝은 사람은 성경 없어도 이미 다 압니다. 사람이 생각해보면, 그 분의 뜻이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다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 지상 낙원 그 곳이 최적의 최고의 곳이다. 두 번째는 그 곳에서의 주인은 나다. 그 곳은 내가 끌고가야하지, 피동이 되는, 끌려다니는 그런 우리가 되면 안되겠습니다.
그 다음은 에덴 동산에 뱀이 기어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가장 좋은 것은 하와가 차버리면 됩니다. 어디 감히! 뱀 같은 것이.. 하면서 쫓아내야합니다. 그런데 하와가 여기서 이 뱀을 상대를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와는 스스로 등급을 낮추어서 내려갔고 뱀은 올라갔습니다. 선악과 따먹기 전에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현실에서 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현실에는 많습니다. 어딜 가든지. 내가 상대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친구를 안 사귀면 됩니다. 저 사람은.. 저 사람하고 안 엮이면 됩니다. 저 일을 하면 내가 손해 본다. 그러면 안 하면 됩니다.
안 할 수 있는데, 내가 하면 하와가 뱀을 상대해 준 것과 같습니다. 자기 처소를 떠난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로 안 넘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검은 물질을 만지려면 검은 옷을 입어라. 아무리 조심해도 안 튈 수가 없습니다. 옷 갈아입기 귀찮아서 조심조심 하는데, 언제 묻었는지 모르게 옷에 다 묻어있습니다. 그런 환경을 스스로 가면은 피게 되어있습니다. 대개 보면 욕심입니다. 만나지 말아야 대상, 그런 대상은 접촉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물리치지 않고 받아들여서 대화를 했습니다.
세 번째 기억합시다. 우리 현실의 수 많은 수 많은 종류의 사람과 물질들이 많습니다. 접촉하지 말아야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만에 하나, 안 해야하는데 했다던지 나는 하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다든지. 그럴 때 다시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들어서 알 수 있는, 천국에 나와 있는 구원의 말씀이 없으면 접촉을 안 해야 합니다. 내가 뭔가를 할 때 마음 속에 생겨지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생깁니다. 그럴 때 보는 것으로 인해서 내 마음 속에 생겨지는데 이것이 선악과를 쳐다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생겨진 것 목표가 왜 생겼느냐.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 뭐를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그게 속에서 나온 겁니까? 밖에서 들어온 겁니까? 속에서 나온 것이지요. 하와가 선악과를 쳐다 봤습니다. 왜 쳐다 봤습니까? 뱀의 말을 듣고 보니까 선악과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원래는 그런 마음이, 그런 욕심이, 그런 목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다녀보니까 몰랐던 것,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고 자기 속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뜻이 생겼습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런데 고등학교 때 몰랐는데 대학교 가 보니까 교수들, 교사들 엉터리 많습니다. 사람 죽이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대학교 가니까 이런 곳이 있구나! 이거 몰랐는데! 그리고 느낌도 있고 감정도 있고, 새로운 세계의 동정심도 있고, 목표도 있고 생겨집니다.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쳐다봤습니다. 하와처럼 따라갈 것이 아니고 마음이 생겨지면 그 마음을 살펴봐야합니다. 이것이 맞는 말이냐 틀린 말이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마음이냐, 노하실 마음이냐. 따져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권자의 노릇입니다. 내 마음이니까, 내 욕심이니까.. 네가 정해? 그러면 그건 귀신이 정한 겁니다. 내 속에 이런 목표가 생겼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면 귀신이 정한 것입니다.
네 번째 이거 기억하십시다. 오늘 날 우리는 원치 않는 접촉을 합니다. 그것을 구별 못 하고 따라가면 선악과 따먹고 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선악과는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오늘 오전 오후에 4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에덴 동산. 전지자 전능자가 만드신 현실이 최고의 최적의 환경이다. 탐하면 그 때부터 탐심이 되고 스스로 힘들어집니다.
두 번째 그 곳의 주인은 내가 주인입니다. 그런 것들에 따라가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면 안됩니다.
셋째, 내 신앙에 손해가 되는 것은 되도록 이면 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네 번째, 잘못된 뜻이다, 잘못된 의지다. 싶으면 하면 안됩니다. 나사로가 왕궁에 지나가서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다윗이 왕궁에 들어갔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겁니다. 그래서 괴로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가 : 136장, 159장, 195장
본문 : 창세기 3장 1절 ~ 3장 6절
제목 : 우리는 현실의 주인
인류 시조의 타락의 과정인데, 타락의 순서도 있고 그 원인도 있습니다. 인류 시조라고 하면, 가장 처음 시작하는 사람, 누군가에 의해서 처음 그 자리에 앉게 된 사람, 그 임명을 받은 사람, 그 중요성은 매우 큽니다. 아주 막중한 위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장남, 장녀는 맏이는 그 자리가 중요합니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대신 할 자리고, 장녀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맏이가 잘 되면 밑에 잘 되기 쉽고 맏이가 잘 안되면 그 밑에도 잘 안됩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 날도 자녀를 많이 안 낳아도 이것은 다른 없습니다. 시대는 이상한 시대가 되어서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이라는 사람이지요. 한국의 첫 번째 대통령 자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거기에 앉았다면 북한처럼 되었던 것입니다. 북한은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앉았으니까 그 사상대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라든지 가정이든지 시조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만큼 위치가 막중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류의 시조가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이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 사람들은 선악과를 따먹어서 타락하고 자손대대로 타락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인류 시조의 타락의 과정은 오늘 우리의 타락 과정이고 우리 순서고, 인류 타락의 원인은 우리의 타락의 원인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계를 어떻게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계도 이 때 지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영계라는 것이 알기 어렵습니다. 지난 양성원 때 하나님의 세계를 잠시 이야기 하셨는데, 굉장히 깊히 들어가셨습니다. 그 분의 세계는 참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영계도 지었고 물질계도 지으셨는데, 하늘, 바다, 땅과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우주라는 것은 광대하고 광활합니다. 인간의 그런 면에서는 무한이라고 할 만큼 넓습니다. 인간이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우주입니다. 그 가운데 사람이 살게 한 곳이 지구니까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중에서 동방의 에덴에, 어디 있는 지는 모릅니다. 이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말씀하신 이치를 찾지 않고 껍데기를 찾는 것은 나이 먹는 사람이 유치원에 가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 곳에 사람이 지낼 곳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까지 지어놓으시고 동방에 에덴 동산을 창설하신 것입니다. 뭘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좋은 것으로 에덴 동산을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생각하면, 첫 번째 하나님은 전지자입니다. 그러면 가장 좋은 최고의, 최귀의 그런 곳으로 만든 곳이 에덴 동산입니다. 전지 의지로 만드신 겁니다. 사람이 사는 기준의 가장 최고의 최적의 환경으로 만든 것이 에덴 동산입니다. 오늘 날 각자의 자기 처소입니다. 나의 오늘의 에덴 동산. 다시 말하면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알맞은 최적의 그런 환경으로 만든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렇게 괴롭고 걱정스럽고, 고통스러운 곳이 지상 낙원 에덴 동산이라니.. 누구 생각입니까? 내 생각, 자기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게 만들어 주신 겁니다. 오형제 중에서 장녀로 태어난 아이가 있고, 막내로 태어난 아이가 있습니다. 장녀로, 장남으로, 막내로 나고 싶어서 났나요? 어머니까 이 아이를 장남 장녀 막내로 낳으려고 했습니까?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전해 주신 겁니다. 당신의 뜻을 따라서 말하자면은 각자의 에덴 동산, 전지하신 하나님이 전능한 능력으로 최적의 환경, 하나님과 자기 신앙의 근본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유치원 때는 어떤 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에 어디 보내고, 중학교는 어디 보내고, 고등학교는 어디로 보내고, 대학교는 어디로 보내서 똑똑하고 머리 좋은 그 학생의 목표, 나는 어디로 가겠다고 정한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목표를 정해놓고 갑니다. 놀고 싶어도 참고 나가고 싶어도 참고 자고 싶어도 참고 열심히 공부해서 해 나간 그 노력들, 공부의 노력, 학생들의 노력들, 졸업하고 취업하고 안되니까 사업도 해 보고 그러면 천하 모든 사람들의 절대 다수의 노력들은 뭐 하는 노력입니까? 현실을 바꾸는 노력입니다. 자기 에덴 동산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좋게 하겠다는 노력입니다. 좋은 겁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가장 좋은 그 현실이 내 마음에 안 맞다고 그런 곳을 만들기 위해서 죽도록 노력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을 부정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는 것이지요.
불신자들은 그렇습니다. 우리도 별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귀신 들어가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에덴 동산 그 낙원을 만족하게 할려고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전지자가 가장 좋게 만들어 주신 것이 자신의 현실이고 자신의 처소입니다. 잊어버리지 맙시다. 지상 낙원입니다. 병석에 누웠으면 그 자리에서 그 원인을 찾아서 잘못된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치를 감사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부도가 났으면 그 원인을 찾아서 회개하고, 그리고 감사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합리화를 시켜버리는 것이 아니고 실제 그런 것입니다.
이것을 거부해서 자기 주관을 집어넣으면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집은 몇 평이 되어야겠다, 내 집은 있어야겠다, 내 아파트는 있어야겠다, 내 실력을 마련해야겠다, 내 학벌을 마련해야겠다. 나무로 만족 못 하면 돌멩이, 철, 동, 은, 금가지고.. 금을 가지고 만족을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현실만족주의로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아내가 가장 예뻐야하고 자기 남편이 가장 좋아야합니다. 뭐 같은 아내라도 가장 귀한 보배인 것입니다. 내가 변하면 상대가 다 변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이것을 기억하십시다.
나의 처소, 나의 활동 무대, 나의 현실에서는 그 누구의 말도 들을 필요가 원래는 없는 겁니다.
현실의 우리는 주인입니다. 각자 자기 현실, 자기 처소, 그 처소에는 사람도 있고 사물도 있고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의사 결정이 있습니다. 그 결정을 누가 해야합니까? 내가 해야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듣고 참고만 하는 겁니다. 결정은 누가 해야합니까? 내가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주인은 주인인데 왕은 왕인데 위임받은 왕입니다. 너는 에덴 동산의 주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다. 그게 선악과입니다. 그래서 주신 것이 선악과입니다. 오늘 날 물질로는 십일조이고, 날로 치면은 주일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는 궁극은 하나님이지만은 주인은 나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에도 어떤 환경에도 내가 주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던져 버리는 것은 온 세상이 좋아서 환장하는 것입니다. 다 가져가도 금 덩어리는 줘도 그 속에 주님은 안 주는 것입니다. 보면은 보는 데서 내가 가질 것이 있습니다.
내가 빨아먹을 영양분이 있습니다. 뭘 보든지, 사람을 보든지.. 산불이 나니까 몇 시간 넘게 중계를 했다고 하나요? 일본에는 귀가 닳도록 피하십시오하는데, 한국에서는 중계만 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리의 것도 느끼는 거지요. 어떻게 보든지, 그 보는 것. 학교에서 교수의 말을 들어도 직업에서 뭘 들어도 신문에서 방송에서 뭘 들어도, 그리 가니까 나도 따라가면, 점염병처럼 퍼져나가는 겁니다. 다수를 따라서 죄를 짓지 말아라. 마찬가지지요. 가져야 할 것인지 어찌해야 할 것인지, 취해야 할 것인지. 이것이 뭐 하는 노릇입니까? 이게 통치자, 주인의 노릇입니다. 이게 성도의, 하나님의 형상을 닳은 8가지 속성 중에서 주권입니다. 내 주권을 왜 내가 포기합니까? 왜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가고 시대 따라가고 왜 나의 주권을 포기합니까? 그렇게 따라가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주인이니까, 내가 결정하는 것이니까, 내가 비판 평가하는 것이고 내가 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속의 기준 잣대는 하나님이 되어야하는 겁니다. 우리 믿는 사람 속에 양심이 있지요. 성경이 없어도 양심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밝은 사람은 성경 없어도 이미 다 압니다. 사람이 생각해보면, 그 분의 뜻이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다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 지상 낙원 그 곳이 최적의 최고의 곳이다. 두 번째는 그 곳에서의 주인은 나다. 그 곳은 내가 끌고가야하지, 피동이 되는, 끌려다니는 그런 우리가 되면 안되겠습니다.
그 다음은 에덴 동산에 뱀이 기어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가장 좋은 것은 하와가 차버리면 됩니다. 어디 감히! 뱀 같은 것이.. 하면서 쫓아내야합니다. 그런데 하와가 여기서 이 뱀을 상대를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와는 스스로 등급을 낮추어서 내려갔고 뱀은 올라갔습니다. 선악과 따먹기 전에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현실에서 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현실에는 많습니다. 어딜 가든지. 내가 상대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친구를 안 사귀면 됩니다. 저 사람은.. 저 사람하고 안 엮이면 됩니다. 저 일을 하면 내가 손해 본다. 그러면 안 하면 됩니다.
안 할 수 있는데, 내가 하면 하와가 뱀을 상대해 준 것과 같습니다. 자기 처소를 떠난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로 안 넘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검은 물질을 만지려면 검은 옷을 입어라. 아무리 조심해도 안 튈 수가 없습니다. 옷 갈아입기 귀찮아서 조심조심 하는데, 언제 묻었는지 모르게 옷에 다 묻어있습니다. 그런 환경을 스스로 가면은 피게 되어있습니다. 대개 보면 욕심입니다. 만나지 말아야 대상, 그런 대상은 접촉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물리치지 않고 받아들여서 대화를 했습니다.
세 번째 기억합시다. 우리 현실의 수 많은 수 많은 종류의 사람과 물질들이 많습니다. 접촉하지 말아야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만에 하나, 안 해야하는데 했다던지 나는 하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다든지. 그럴 때 다시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들어서 알 수 있는, 천국에 나와 있는 구원의 말씀이 없으면 접촉을 안 해야 합니다. 내가 뭔가를 할 때 마음 속에 생겨지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생깁니다. 그럴 때 보는 것으로 인해서 내 마음 속에 생겨지는데 이것이 선악과를 쳐다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생겨진 것 목표가 왜 생겼느냐.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 뭐를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그게 속에서 나온 겁니까? 밖에서 들어온 겁니까? 속에서 나온 것이지요. 하와가 선악과를 쳐다 봤습니다. 왜 쳐다 봤습니까? 뱀의 말을 듣고 보니까 선악과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원래는 그런 마음이, 그런 욕심이, 그런 목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다녀보니까 몰랐던 것,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고 자기 속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뜻이 생겼습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런데 고등학교 때 몰랐는데 대학교 가 보니까 교수들, 교사들 엉터리 많습니다. 사람 죽이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대학교 가니까 이런 곳이 있구나! 이거 몰랐는데! 그리고 느낌도 있고 감정도 있고, 새로운 세계의 동정심도 있고, 목표도 있고 생겨집니다.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쳐다봤습니다. 하와처럼 따라갈 것이 아니고 마음이 생겨지면 그 마음을 살펴봐야합니다. 이것이 맞는 말이냐 틀린 말이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마음이냐, 노하실 마음이냐. 따져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권자의 노릇입니다. 내 마음이니까, 내 욕심이니까.. 네가 정해? 그러면 그건 귀신이 정한 겁니다. 내 속에 이런 목표가 생겼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면 귀신이 정한 것입니다.
네 번째 이거 기억하십시다. 오늘 날 우리는 원치 않는 접촉을 합니다. 그것을 구별 못 하고 따라가면 선악과 따먹고 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선악과는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오늘 오전 오후에 4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에덴 동산. 전지자 전능자가 만드신 현실이 최고의 최적의 환경이다. 탐하면 그 때부터 탐심이 되고 스스로 힘들어집니다.
두 번째 그 곳의 주인은 내가 주인입니다. 그런 것들에 따라가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면 안됩니다.
셋째, 내 신앙에 손해가 되는 것은 되도록 이면 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네 번째, 잘못된 뜻이다, 잘못된 의지다. 싶으면 하면 안됩니다. 나사로가 왕궁에 지나가서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다윗이 왕궁에 들어갔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겁니다. 그래서 괴로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