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6일 주일 오후 - 사랑의 최종과 과정
김동민2019-05-26조회 221추천 43
2019년 5월 26일 주일 오후
찬송가 : 86장, 87장
본문 : 출애굽기 21장 12절 ~ 21장 27절, 민수기 35장 16절 ~ 21절
제목 : 사랑의 최종과 과정
구약 성경도 성경인데 우리도 그랬고 일반적으로, 구약 중에서도 이런 말씀으로 그대로 읽고 적용시켜서 설교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는데 이번 집회 때 우리가 참 귀한 것을 잘 배웠습니다. 구약도 성경이고 오늘 우리 생활에 필요한 말씀입니다. 3천5백년 전 그 때만 지키고 필요없는 말씀이면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을텐데, 모세를 통해서 성령으로 기록해서 오늘 우리에게까지 남겨주신 것은 이것은 시대를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나 지켜야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일겁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세월이지나가면 많아지고, 밝아지는데, 마지막의 지식은 사람 중심의 지식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인권이 강조될 것이고, 그러니까 사람의 가치는 점점 올라가고, 하나님을 모르고 사람의 가치를 올리면 파멸케하는 결과를 만드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가지 않았을지라도 말세가 되어서 그 모든 지식이 인간을 향하다보니까 인권이 중시되는 시대입니다. 인권을 성경이 말씀하시는 참사람이 아니고, 타락한 그런 사망에 속한 인권을 참사람으로 인간으로 알고 중시하다 보니까 거꾸로 되어서 세상이 이상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고 동양 쪽에는 인권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우리나라에서는 심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지니까 참 보통문제가 아닌데, 법이란 것이 있고 권력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어쩔 수도 없고..
서울의 어떤 동네에 술먹고 행패부리는 사람이 한 번 먹고 마트에 가면 마음에 안 들면 부서버린답니다. 이 사람을 병원에 집어 넣으면 되는데 인권 때문에 안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집어넣어서 3개월 동안 입원을 시켰는데 사람들이 지금 걱정하고 있죠.
모든 것에는 다 장단점이 있는데,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근다고 하는데 아이 매 못 때리는 것을 법으로 정해놓은 것이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대가 그런 시대가 됩니다. 그러면 그런 시대가 되면 그런 시대에서 죄 되지 않는 것은 맞추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매를 세상 법에 접촉 되지 않을 만큼 안 때리는 게 좋겠는데.. 아주 부모님들이 속을 썩어야하고 참아야하는데.. 부모님이 또 사람이 될지 모르겠는데 스트레스 받아서 수명이 짧아질지도 모르지요. 사람을 쳐 죽인자는 반드시 죽이는데, 사람을 죽인 자, 아비 어미를 치는 자,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민수기에는 철연장, 돌, 나무 연장으로, 손으로 때려 죽이거나 계획적으로 죽일 마음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사람을 죽인 것, 미워서 복수심으로 죽인 것은 반드시 죽인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 먹고, 죽이기 전에 미워하지 않았는데, 미워하지 않고 모르고 밀었는데 죽으면 그 사람은 한 섬을 예비해서 그 쪽으로 피하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을 쳐서 눈이 상하고 이가 빠지고 다쳤습니다. 아무 감정이 없고 관계가 없는데 상대를 때릴 일이 있습니까. 그 정도로 사람을 쳤으면 이 사람이 정신나간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왜 때렸겠습니까? 때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사정이 있어서 때렸을겁니다. 그렇지만은 상대방의 눈은 빠질만큼 상할만큼 때릴 수는 없는거다. 그래서 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 걸 말하자면 여기에 가르치는 것은 사람을 쳐 죽였으면 그 사람도 죽여라. 계획적으로 죽인 사람은 단전에서 끌어내려서라도 죽여라. 남의 생명을 해치면 너의 생명도 죽는 것이다. 이것이 보복을 가르치는 것은 아닌데 공평의 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필벌의 법입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왜 가르쳐야하는 것을 생각해봐야합니다. 남의 아이를 왜 얼굴을 긁었느냐 하니까 이런 걸로 왜 그러느냐 했더니 그래서 네 딸 얼굴도 긁어보자하면 화가 나죠. 생명은 생명으로, 데움은 데움으로, 상함은 상함으로 그대로 되는 것이 필벌의 법칙을 가르치는 것이 왜 필요하냐. 이것은 구약시대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구약시대는 어린 시대입니다. 어린 시절입니다. 구약시대는 아이들에게 가르친 내용입니까? 장성한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이지요. 하나님의 도도 나오지 않았고 어린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수학이나 국어를 하면 못 알아듣지요. 3천5백년 전에는 어렸으니까 어린 것으로 가르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 말씀하신 법이라고 하셨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이거는 그리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의 규칙이지요. 이건 하지 말아라. 그런데 애초부터 그럴 가능성이 없으면 그런 법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타락한 사람이 그럴 수가 있으니까 법을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모세시대 때 이 법을 만들어 놓고, 너는 범죄했지만 봐주겠다. 이러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 이를 뺐으면 잡아다가 이를 빼버렸습니다. 인간이 마음 약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구약시대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법이라는 것은 지키고. 얼마 저에 8시까지 모입시다 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8시까지 약속 지킨 사람이 3명 되던가요? 약속이라는 것은 시간을 정했으면 지키라고 있는 것입니다. 예사로 안 지킬 약속은 뭐하라는 겁니까? 시간을 정했으면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그래서 구약 시대에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죽여라. 철두철미하게 지켰습니다. 이렇게 행하니까 오늘 사람들에게는 잔인하다, 사랑이 없다. 이러지만은 모르는 말이지요. 과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막 어머니 뱃속에서 사람들이 자라는데 10달 되지 않고 8달 만에 나오든지 9달 만에 나오면 요즘에는 의술이 좋아서 살리기는 하지만 아직도 인큐베이터인가 하는 곳에서 그만큼 어머니 뱃속 같은 환경을 만들어서 10달 채워서 내놓죠. 자연적으로 8달 9달에 나와도 위험한 것입니다. 20일을 다 채워가지고 스스로 나올 만큼 되어야 살지, 열흘만에 나오면 죽어버리는 것처럼. 필수적으로 있게되는 겁니다. 위에 구원의 목표. 성경은 한 말로 말하면 뭡니까?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말로 사랑입니다. 사람이 우리들이 이루어가는 구원.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까?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사랑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 성경에 사랑을 고린도전선 13장에 우리가 어릴 때에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같이 모든 것이 다 부실했다. 하지만 장성하고 나니까 확실하게 보였다.
젖먹이 어린 아이는 사랑을 못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사랑은 합니다. 대학교 1학년은 그 수준의 사랑은 합니다. 부모의 사랑도 부모 지식의 범위 안에서 사랑하지 그 이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 이상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도입니다. 우리 목표는 사랑이고, 그리 되어야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전부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바치는 것이 사랑의 완성입니다. 주님처럼. 그렇게 되어야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은 최종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하나님만 사랑을 하실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이지 그 외에는 가질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내 범위 만큼 사랑하는 것이지..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그 사람 사랑을 살 수 있고, 그 자라는 과정에 가장 기초 단계. 가장 첫 번째 단계가 공평의 법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나를 내 줄 수 있는 그러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 공평의 법입니다. 이걸 느끼지 못하고 못 느끼고 자기가 실제 이렇게 못 느끼고 당해보지 않아도 그만한 지식을 가지고, 그만한 기도 속에 실감을 가지고 난 다음에 사랑하는 그 사람이 되어야하지, 그렇지 않으면 참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평의 법을 가르치는 것인데, 사랑이라는 것은 최종적으로 사랑의 사람으로 가야하는 그런 과정, 그런 공평의, 공의의 그런 법이라고 하는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에게 3살 짜리 어린 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면서 가지고 놀라든지 사람에게 살려봐라고 하면 위험한 것입니다. 인체에 대한 지식도 없는데 그런 아이에게 수술 도구를 주면서 배를 갈라서 수술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말입니다. 사람은 최종의 이런 것을 가장 기초적인 일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말이고 위험천만한 것입니다. 우리도 안 배웠으면 모를 것인데, 많은 교회들이 사랑을 말하고, 봉사를 말하면서 자기 가정, 자기 부부에게는 아무 책임감 없이 해 놓고, 자기 집안에서는 사람 대접도 못 받고, 그런 사람이 남의 나라에서 선교한다고 하면 나중에 자기 모습 나오는데 어찌합니까.
자기가 한 말, 살인이라는 것은 대표적인 죄인데, 살인은 죽이는 것을 말하고 갚는 것을 말하는데, 자기 말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것이다. 책임이 따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했으면 약속을 하고, 자기 한 행동에는 책임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쳐 죽여라. 상대방을 때려서 이를 쳤으면 이를 갚고 눈을 쳤으면 눈으로 갚고. 1대1의 공평의 법칙으로 되갚는 것이 사람이 사랑으로 자라가기 위해서 거쳐야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고 자라갈 수는 없잖습니까?
지식이 없으면 사람 노릇 제대로 못하는 겁니다. 자라가는 그 과정이 그런 것이 되는 거처럼 없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간단하게 정리하십시다. 보복의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한 말, 행동, 생활의 된 책임을 어린 시절, 구약 시대에 어린 시절에 가르치는 법이지, 시대 자체가 장성한 시대고 장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 그 때 법을 알지 못하고 없이 무시한 상태로 장성한 사람이 되면은 그 사람 속이 텅 비어있는 사람이고, 의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수술하는 것처럼 되는겁니다. 그 믿음에 방향이 모두 다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신약시대의 주님의 대속의 사랑의 법만 가지고 있으니까 자기는 모르고 있으면서 사랑만 외치는 겁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이것이 사랑을 만들어가기 위한 출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무죄의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유죄가 되었습니다. 정죄해서 죄값을 치뤘습니다. 영원한 사랑입니다. 사람이 죽게 된 것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어긋나니까 죄가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살인은 대표고, 살인까지는 안 가도 때리는 것, 아무리 화가 나도 때리면 너도 이를 빠져봐야알지.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남을 때렸느냐 반드시 때리고 사람을 죽였느냐 누가 죽입니까? 죽인 사람 당한 사람, 피해자, 가해자가 죽인 것입니다. 고통당한 사람이 그대로 갚아 줘야 안다는 것이지요. 너도 나 때렸지. 너도 느껴봐라. 남에게 물질이든지 인체든지 그런 것을 예사로 입혀놓고 아무렇지도 않으면 너도 그래봐라. 그래야지 고통을 안 느낀 상태에서 입으로만 하는 것은 성경 법이 아닌 것이지요. 자기 한 사람, 자기 생활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잠 자고 자기 주변 환경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자기 한 몸도 제대로 검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랑을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지요. 그래서 좀 다른 경우지만 우리 공회는 시대가 엄하니까 검정고시를 많이합니다. 검정고시는 다 줄여버리고 필요없는 거 빼버리고 해버리죠. 그러나 정상적이라면 정규과정을 밟아서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그래서 초월이다. 자라가는 것이지. 밑에 돌 빼고 위에 돌 생기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구약이 있고 난 다음에 신약시대가 있는 것이지 안 그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과정을 거쳐서 왔지..
의사가 수술을 하려면 자기가 든 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조심스럽게 칼을 들고 해야하지, 안 그런 사람이 하면 다치는 것처럼, 구약의 법을 모르는 사람이 사랑을 외치면 안되는 것이죠.
사람을 쳐 죽인 사람을 반드시 죽여라는 것은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닌 것이고, 종이고, 여자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공평의 법이 뭔지 의미를 알고, 최종은 사랑으로 자라가는 완성이 이것인데, 과정에 이것을 빼먹고는 자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가 : 86장, 87장
본문 : 출애굽기 21장 12절 ~ 21장 27절, 민수기 35장 16절 ~ 21절
제목 : 사랑의 최종과 과정
구약 성경도 성경인데 우리도 그랬고 일반적으로, 구약 중에서도 이런 말씀으로 그대로 읽고 적용시켜서 설교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는데 이번 집회 때 우리가 참 귀한 것을 잘 배웠습니다. 구약도 성경이고 오늘 우리 생활에 필요한 말씀입니다. 3천5백년 전 그 때만 지키고 필요없는 말씀이면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을텐데, 모세를 통해서 성령으로 기록해서 오늘 우리에게까지 남겨주신 것은 이것은 시대를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나 지켜야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일겁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세월이지나가면 많아지고, 밝아지는데, 마지막의 지식은 사람 중심의 지식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인권이 강조될 것이고, 그러니까 사람의 가치는 점점 올라가고, 하나님을 모르고 사람의 가치를 올리면 파멸케하는 결과를 만드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가지 않았을지라도 말세가 되어서 그 모든 지식이 인간을 향하다보니까 인권이 중시되는 시대입니다. 인권을 성경이 말씀하시는 참사람이 아니고, 타락한 그런 사망에 속한 인권을 참사람으로 인간으로 알고 중시하다 보니까 거꾸로 되어서 세상이 이상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고 동양 쪽에는 인권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우리나라에서는 심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지니까 참 보통문제가 아닌데, 법이란 것이 있고 권력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어쩔 수도 없고..
서울의 어떤 동네에 술먹고 행패부리는 사람이 한 번 먹고 마트에 가면 마음에 안 들면 부서버린답니다. 이 사람을 병원에 집어 넣으면 되는데 인권 때문에 안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집어넣어서 3개월 동안 입원을 시켰는데 사람들이 지금 걱정하고 있죠.
모든 것에는 다 장단점이 있는데,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근다고 하는데 아이 매 못 때리는 것을 법으로 정해놓은 것이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대가 그런 시대가 됩니다. 그러면 그런 시대가 되면 그런 시대에서 죄 되지 않는 것은 맞추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매를 세상 법에 접촉 되지 않을 만큼 안 때리는 게 좋겠는데.. 아주 부모님들이 속을 썩어야하고 참아야하는데.. 부모님이 또 사람이 될지 모르겠는데 스트레스 받아서 수명이 짧아질지도 모르지요. 사람을 쳐 죽인자는 반드시 죽이는데, 사람을 죽인 자, 아비 어미를 치는 자,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민수기에는 철연장, 돌, 나무 연장으로, 손으로 때려 죽이거나 계획적으로 죽일 마음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사람을 죽인 것, 미워서 복수심으로 죽인 것은 반드시 죽인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 먹고, 죽이기 전에 미워하지 않았는데, 미워하지 않고 모르고 밀었는데 죽으면 그 사람은 한 섬을 예비해서 그 쪽으로 피하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을 쳐서 눈이 상하고 이가 빠지고 다쳤습니다. 아무 감정이 없고 관계가 없는데 상대를 때릴 일이 있습니까. 그 정도로 사람을 쳤으면 이 사람이 정신나간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왜 때렸겠습니까? 때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사정이 있어서 때렸을겁니다. 그렇지만은 상대방의 눈은 빠질만큼 상할만큼 때릴 수는 없는거다. 그래서 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 걸 말하자면 여기에 가르치는 것은 사람을 쳐 죽였으면 그 사람도 죽여라. 계획적으로 죽인 사람은 단전에서 끌어내려서라도 죽여라. 남의 생명을 해치면 너의 생명도 죽는 것이다. 이것이 보복을 가르치는 것은 아닌데 공평의 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필벌의 법입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왜 가르쳐야하는 것을 생각해봐야합니다. 남의 아이를 왜 얼굴을 긁었느냐 하니까 이런 걸로 왜 그러느냐 했더니 그래서 네 딸 얼굴도 긁어보자하면 화가 나죠. 생명은 생명으로, 데움은 데움으로, 상함은 상함으로 그대로 되는 것이 필벌의 법칙을 가르치는 것이 왜 필요하냐. 이것은 구약시대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구약시대는 어린 시대입니다. 어린 시절입니다. 구약시대는 아이들에게 가르친 내용입니까? 장성한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이지요. 하나님의 도도 나오지 않았고 어린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수학이나 국어를 하면 못 알아듣지요. 3천5백년 전에는 어렸으니까 어린 것으로 가르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 말씀하신 법이라고 하셨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이거는 그리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의 규칙이지요. 이건 하지 말아라. 그런데 애초부터 그럴 가능성이 없으면 그런 법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타락한 사람이 그럴 수가 있으니까 법을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모세시대 때 이 법을 만들어 놓고, 너는 범죄했지만 봐주겠다. 이러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 이를 뺐으면 잡아다가 이를 빼버렸습니다. 인간이 마음 약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구약시대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법이라는 것은 지키고. 얼마 저에 8시까지 모입시다 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8시까지 약속 지킨 사람이 3명 되던가요? 약속이라는 것은 시간을 정했으면 지키라고 있는 것입니다. 예사로 안 지킬 약속은 뭐하라는 겁니까? 시간을 정했으면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그래서 구약 시대에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죽여라. 철두철미하게 지켰습니다. 이렇게 행하니까 오늘 사람들에게는 잔인하다, 사랑이 없다. 이러지만은 모르는 말이지요. 과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막 어머니 뱃속에서 사람들이 자라는데 10달 되지 않고 8달 만에 나오든지 9달 만에 나오면 요즘에는 의술이 좋아서 살리기는 하지만 아직도 인큐베이터인가 하는 곳에서 그만큼 어머니 뱃속 같은 환경을 만들어서 10달 채워서 내놓죠. 자연적으로 8달 9달에 나와도 위험한 것입니다. 20일을 다 채워가지고 스스로 나올 만큼 되어야 살지, 열흘만에 나오면 죽어버리는 것처럼. 필수적으로 있게되는 겁니다. 위에 구원의 목표. 성경은 한 말로 말하면 뭡니까?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말로 사랑입니다. 사람이 우리들이 이루어가는 구원.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까?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사랑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 성경에 사랑을 고린도전선 13장에 우리가 어릴 때에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같이 모든 것이 다 부실했다. 하지만 장성하고 나니까 확실하게 보였다.
젖먹이 어린 아이는 사랑을 못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사랑은 합니다. 대학교 1학년은 그 수준의 사랑은 합니다. 부모의 사랑도 부모 지식의 범위 안에서 사랑하지 그 이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 이상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도입니다. 우리 목표는 사랑이고, 그리 되어야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전부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바치는 것이 사랑의 완성입니다. 주님처럼. 그렇게 되어야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은 최종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하나님만 사랑을 하실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이지 그 외에는 가질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내 범위 만큼 사랑하는 것이지..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그 사람 사랑을 살 수 있고, 그 자라는 과정에 가장 기초 단계. 가장 첫 번째 단계가 공평의 법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나를 내 줄 수 있는 그러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 공평의 법입니다. 이걸 느끼지 못하고 못 느끼고 자기가 실제 이렇게 못 느끼고 당해보지 않아도 그만한 지식을 가지고, 그만한 기도 속에 실감을 가지고 난 다음에 사랑하는 그 사람이 되어야하지, 그렇지 않으면 참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평의 법을 가르치는 것인데, 사랑이라는 것은 최종적으로 사랑의 사람으로 가야하는 그런 과정, 그런 공평의, 공의의 그런 법이라고 하는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에게 3살 짜리 어린 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면서 가지고 놀라든지 사람에게 살려봐라고 하면 위험한 것입니다. 인체에 대한 지식도 없는데 그런 아이에게 수술 도구를 주면서 배를 갈라서 수술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말입니다. 사람은 최종의 이런 것을 가장 기초적인 일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말이고 위험천만한 것입니다. 우리도 안 배웠으면 모를 것인데, 많은 교회들이 사랑을 말하고, 봉사를 말하면서 자기 가정, 자기 부부에게는 아무 책임감 없이 해 놓고, 자기 집안에서는 사람 대접도 못 받고, 그런 사람이 남의 나라에서 선교한다고 하면 나중에 자기 모습 나오는데 어찌합니까.
자기가 한 말, 살인이라는 것은 대표적인 죄인데, 살인은 죽이는 것을 말하고 갚는 것을 말하는데, 자기 말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것이다. 책임이 따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했으면 약속을 하고, 자기 한 행동에는 책임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쳐 죽여라. 상대방을 때려서 이를 쳤으면 이를 갚고 눈을 쳤으면 눈으로 갚고. 1대1의 공평의 법칙으로 되갚는 것이 사람이 사랑으로 자라가기 위해서 거쳐야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고 자라갈 수는 없잖습니까?
지식이 없으면 사람 노릇 제대로 못하는 겁니다. 자라가는 그 과정이 그런 것이 되는 거처럼 없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간단하게 정리하십시다. 보복의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한 말, 행동, 생활의 된 책임을 어린 시절, 구약 시대에 어린 시절에 가르치는 법이지, 시대 자체가 장성한 시대고 장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 그 때 법을 알지 못하고 없이 무시한 상태로 장성한 사람이 되면은 그 사람 속이 텅 비어있는 사람이고, 의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수술하는 것처럼 되는겁니다. 그 믿음에 방향이 모두 다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신약시대의 주님의 대속의 사랑의 법만 가지고 있으니까 자기는 모르고 있으면서 사랑만 외치는 겁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이것이 사랑을 만들어가기 위한 출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무죄의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유죄가 되었습니다. 정죄해서 죄값을 치뤘습니다. 영원한 사랑입니다. 사람이 죽게 된 것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어긋나니까 죄가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살인은 대표고, 살인까지는 안 가도 때리는 것, 아무리 화가 나도 때리면 너도 이를 빠져봐야알지.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남을 때렸느냐 반드시 때리고 사람을 죽였느냐 누가 죽입니까? 죽인 사람 당한 사람, 피해자, 가해자가 죽인 것입니다. 고통당한 사람이 그대로 갚아 줘야 안다는 것이지요. 너도 나 때렸지. 너도 느껴봐라. 남에게 물질이든지 인체든지 그런 것을 예사로 입혀놓고 아무렇지도 않으면 너도 그래봐라. 그래야지 고통을 안 느낀 상태에서 입으로만 하는 것은 성경 법이 아닌 것이지요. 자기 한 사람, 자기 생활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잠 자고 자기 주변 환경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자기 한 몸도 제대로 검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랑을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지요. 그래서 좀 다른 경우지만 우리 공회는 시대가 엄하니까 검정고시를 많이합니다. 검정고시는 다 줄여버리고 필요없는 거 빼버리고 해버리죠. 그러나 정상적이라면 정규과정을 밟아서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그래서 초월이다. 자라가는 것이지. 밑에 돌 빼고 위에 돌 생기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구약이 있고 난 다음에 신약시대가 있는 것이지 안 그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과정을 거쳐서 왔지..
의사가 수술을 하려면 자기가 든 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조심스럽게 칼을 들고 해야하지, 안 그런 사람이 하면 다치는 것처럼, 구약의 법을 모르는 사람이 사랑을 외치면 안되는 것이죠.
사람을 쳐 죽인 사람을 반드시 죽여라는 것은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닌 것이고, 종이고, 여자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공평의 법이 뭔지 의미를 알고, 최종은 사랑으로 자라가는 완성이 이것인데, 과정에 이것을 빼먹고는 자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