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일 주일 오후 - 이스라엘 생활법 : 생명법
김동민2019-06-02조회 341추천 34
2019년 6월 2일 주일 오후
찬송가 : 74장, 121장
본문 : 출애굽기 21장 12절 ~ 21장 19절
제목 : 이스라엘 생활법 - 생명법
이스라엘 생활법에서 첫 번째가 신분법입니다. 2절부터 11절까지가 신분법입니다. 두 번째로 생명법은 12절부터 17절까지가 생명법입니다. 그리고 18절부터는 상해법으로 이어집니다. 생명법. 생명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상식으로 알 수 있습니다. 팔, 다리가 부서졌거나 장기가 잘못되었거나 하는 것은 전부는 아닌데 생명이 끊어지면 그것이 전부,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생명이 끊기면 그 순간으로 나이가 좀 많아서 예가 될지 모르겠으나 80 90되어서 세상을 뜨면 덜할 수도 모르겠으나, 80년을 잘못살아도 다 회개하지는 못해도 몇 일이라도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어버리면 그대로 끝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수명을 정하신 것이라서 뭐라고는 못 하나, 살아있는 상태에서는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그것은 소망이 끊어진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 판단, 감정, 활동, 성취 전부를 다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것이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은 가장 큰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의의 공평의 법이라면서 1학년의 법이라.. 이것은 육체의 것을 빼앗아 버리니까 어리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법이라는 것은 어기는 사람, 어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타락 전에도 법을 주셨습니다.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선악과를 먹지 마라는 것은 먹을 가능성이 있어서입니다. 타락 이후의 인간은 더할 것입니다. 법 중에서 가장 무서운게 생명법. 그 사람의 인생이 모두 달린 생명법입니다.
게임을 너무 지나치게 해서 게임 중독이 되었습니다. 게임 중독은 질병입니다. 치료받아야 하는 병인데, 이러니까 또 난리가 난 거지요. 게임으로 돈 버는 게 얼마나 많은데. 엄청나게 돈을 벌어먹었는데, 그 게임이 질병을 만들다고 하니까 그렇지요. 그런 것은 잘하는 짓입니다.
사람을 죽인 죄는 용서없다. 오늘로 말하면 하나님의 연결을 끊은 그런 용서받지 못한다. 이것이 아말렉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법을 말하면서 12절부터 17절까지가 생명법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으니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라. 그런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이것은 생명과 연결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부모를 치거나 저주하는 자를 죽여라. 공평이 아니지 않은가. 도덕적인 것을 두고 볼 때 효를 하지 않으면 죽여라 그런 것은 없을 것 같은데, 성경은 그거보다 더 독합니다. 부모를 친자는 죽여라. 그러면 부모를 친자는 생명을 빼앗기는 죄입니다. 사람을 때리는 자는 죽여라.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죽여라. 이것은 생명을 빼앗는 것과 같다. 이것을 감성적으로 도덕적인 면을 떠나서 기독교는 이치의 도입니다. 논리라는 것입니다. 끊어짐 없이 뒤집어짐 없이, 차근찬근 순서대로. 그래서 모든 논리들은 당연성이 있지요. 사람을 죽인자, 부모를 친자, 부모를 저주하는 자를 쳐라. 이것은 필연성이니까 반드시 그렇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가스레인지 위에다가 냄비를 얹어놓고 물을 넣었습니다. 그러면 물이 뜨거워지다가 물이 끊게 되지요. 이런 것을 이치라고 합니다. 여기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안 데일 수가 있습니까? 안 그럴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사람을 쳐죽인 자를 죽여라, 다른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 사람 목숨도 빼앗아야 값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그런 짓을 안 하지. 옛날에 사람을 죽이면 자기도 죽는 그런 법이 있을 때에는 살인죄가 없었습니다. 요즘에는 살인죄가 참 많습니다. 이런 시대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시죠? 민주화는 좋은 것이고 인권이 좋은 것인데 잘못 적용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죽이면 자기도 죽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끝내면 너의 인생도 끝나는 것이다. 그에 성취할 거 누가 다 빼앗아 갔습니까? 어린 아이들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발에는 발 이런 것을 가르쳐야합니다. 요즘 애기 엄마들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서 보기 좋은데, 현재 아이하나 꿀밤을 때리는 게 마음이 아프면 나중에는 뺨을 때려야합니다. 지금의 싸구려 사랑이 그 아이를 망치는 그런 일이 됩니다. 어떤 경우도 감정 풀이하면 안됩니다.
천재라는 것은 보통이 아닌 것이지요. 특별한 경우입니다. 성경은 특별입니까? 일반입니까? 일반입니다. 함이 아버지에게 한 그 행동. 이 말씀을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면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 먹고 벌거벗은 거 잘한 거 아니지요. 그걸 보고 한 번 웃은 겁니다. 형들에게 아버지를 말하자면 좀 놀린 것이지요. 그거 하나. 그게 특별하게 잘못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데, 노아가 일어나서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서 종들의 종이 되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노아가 함을 저주한 것도 잘한 건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자식이 아무리 잘못해도, 아무리 개망나니 짓을 해도, 저주를 퍼부으면 안됩니다. 아버지가 이노무자슥 잘 되는지 보자. 이 말을 달고 삽니다. 그 자식이 잘 될 수가 있겠습니까. 함은 노아의 저주를 받았는데 안 그랬으면 좋았겠지요.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뜻인지 그래서 종들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하게 된 아버지를 비웃고 조롱하는 그런 사람이 한 번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부모와 자식 관계가 끊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일학교에서도 가르치던데 부모의 또 다른 모습이 자식입니다. 그러니까 자식은 또 다른 나입니다. 나는 살다가 없어지는데, 그 다음에 나 내가 이어지는 것이 자식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릴 때는, 부모가 자식에게 준 세 가지. 첫 번째, 생명입니다. ,두 번째는 건설, 세 번째는 교육. 이 세 가지를 다 주는 사람은 부모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부모님의 생명, 양육을 받고 자라서 교육을 받는데, 양육 받으면서 자라갈 때는 그냥 자라는 줄 알고 철 없이 자라갑니다. 부모를 칠 만큼 힘이 세면 부모를 알기를 예사로 알고 스스로 큰 줄을 압니다.
아무리 뿌리가 잘못되어도 가지가 뿌리에게 잘못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의 다른 모습이 자식이고, 그것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 부모를 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남의 부모를 치는 것은 잘못된 것은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네가 네 부모를 찍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연결이 끊어버리는 것이지요.
우리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고 느끼는 자녀가 얼마나 될 것인지... 신앙의 부모 자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과 상관없이 자기가 자란 줄 아는 사람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나중에는 다 잊어버리고..
부모는 우리에게 온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을 대하는 것을 하나님처럼 대해야합니다. 그것이 부모다. 그런데 그 부모를 갖다가 치고 저주하고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은 사람 중에서 내 부모는 하나님께서 그 분이 주셨으니까 나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부모입니다.
부모를 저주하고 치는 사람이 그 밑에 있는 자식은 안 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생명법을 한번 더 복습했습니다. 부모 생명과 네 생명은 연결이 되어있는데, 그 부모를 치거나 저주하면 안되는 겁니다. 그러면 자신도 연결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보고 그렇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남에게 별로 이용을 당하지 않습니다. 대개 보면 둔한 사람, 못난 사람. 그래서 토끼처럼 여우같고 뱀같고, 남을 살살 꼬아낸 것입니다. 목회자들 중에서 정치 목사가 있습니다. 정치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목사들 중에서 정치질만 보고 그것만 배운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전부 다 실패합니다.
상해법은 다음에 하겠는데, 돈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라 그런 것입니다. 예를 든 것이 보석금 제도, 이런 것입니다. 오늘 오후에 생명법, 부모를 치는 자는 죽여라.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의 자식은 꼭 같이 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가 : 74장, 121장
본문 : 출애굽기 21장 12절 ~ 21장 19절
제목 : 이스라엘 생활법 - 생명법
이스라엘 생활법에서 첫 번째가 신분법입니다. 2절부터 11절까지가 신분법입니다. 두 번째로 생명법은 12절부터 17절까지가 생명법입니다. 그리고 18절부터는 상해법으로 이어집니다. 생명법. 생명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상식으로 알 수 있습니다. 팔, 다리가 부서졌거나 장기가 잘못되었거나 하는 것은 전부는 아닌데 생명이 끊어지면 그것이 전부,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생명이 끊기면 그 순간으로 나이가 좀 많아서 예가 될지 모르겠으나 80 90되어서 세상을 뜨면 덜할 수도 모르겠으나, 80년을 잘못살아도 다 회개하지는 못해도 몇 일이라도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어버리면 그대로 끝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수명을 정하신 것이라서 뭐라고는 못 하나, 살아있는 상태에서는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그것은 소망이 끊어진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 판단, 감정, 활동, 성취 전부를 다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것이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은 가장 큰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의의 공평의 법이라면서 1학년의 법이라.. 이것은 육체의 것을 빼앗아 버리니까 어리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법이라는 것은 어기는 사람, 어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타락 전에도 법을 주셨습니다.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선악과를 먹지 마라는 것은 먹을 가능성이 있어서입니다. 타락 이후의 인간은 더할 것입니다. 법 중에서 가장 무서운게 생명법. 그 사람의 인생이 모두 달린 생명법입니다.
게임을 너무 지나치게 해서 게임 중독이 되었습니다. 게임 중독은 질병입니다. 치료받아야 하는 병인데, 이러니까 또 난리가 난 거지요. 게임으로 돈 버는 게 얼마나 많은데. 엄청나게 돈을 벌어먹었는데, 그 게임이 질병을 만들다고 하니까 그렇지요. 그런 것은 잘하는 짓입니다.
사람을 죽인 죄는 용서없다. 오늘로 말하면 하나님의 연결을 끊은 그런 용서받지 못한다. 이것이 아말렉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법을 말하면서 12절부터 17절까지가 생명법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으니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라. 그런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이것은 생명과 연결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부모를 치거나 저주하는 자를 죽여라. 공평이 아니지 않은가. 도덕적인 것을 두고 볼 때 효를 하지 않으면 죽여라 그런 것은 없을 것 같은데, 성경은 그거보다 더 독합니다. 부모를 친자는 죽여라. 그러면 부모를 친자는 생명을 빼앗기는 죄입니다. 사람을 때리는 자는 죽여라.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죽여라. 이것은 생명을 빼앗는 것과 같다. 이것을 감성적으로 도덕적인 면을 떠나서 기독교는 이치의 도입니다. 논리라는 것입니다. 끊어짐 없이 뒤집어짐 없이, 차근찬근 순서대로. 그래서 모든 논리들은 당연성이 있지요. 사람을 죽인자, 부모를 친자, 부모를 저주하는 자를 쳐라. 이것은 필연성이니까 반드시 그렇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가스레인지 위에다가 냄비를 얹어놓고 물을 넣었습니다. 그러면 물이 뜨거워지다가 물이 끊게 되지요. 이런 것을 이치라고 합니다. 여기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안 데일 수가 있습니까? 안 그럴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사람을 쳐죽인 자를 죽여라, 다른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 사람 목숨도 빼앗아야 값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그런 짓을 안 하지. 옛날에 사람을 죽이면 자기도 죽는 그런 법이 있을 때에는 살인죄가 없었습니다. 요즘에는 살인죄가 참 많습니다. 이런 시대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시죠? 민주화는 좋은 것이고 인권이 좋은 것인데 잘못 적용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죽이면 자기도 죽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끝내면 너의 인생도 끝나는 것이다. 그에 성취할 거 누가 다 빼앗아 갔습니까? 어린 아이들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발에는 발 이런 것을 가르쳐야합니다. 요즘 애기 엄마들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서 보기 좋은데, 현재 아이하나 꿀밤을 때리는 게 마음이 아프면 나중에는 뺨을 때려야합니다. 지금의 싸구려 사랑이 그 아이를 망치는 그런 일이 됩니다. 어떤 경우도 감정 풀이하면 안됩니다.
천재라는 것은 보통이 아닌 것이지요. 특별한 경우입니다. 성경은 특별입니까? 일반입니까? 일반입니다. 함이 아버지에게 한 그 행동. 이 말씀을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면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 먹고 벌거벗은 거 잘한 거 아니지요. 그걸 보고 한 번 웃은 겁니다. 형들에게 아버지를 말하자면 좀 놀린 것이지요. 그거 하나. 그게 특별하게 잘못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데, 노아가 일어나서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서 종들의 종이 되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노아가 함을 저주한 것도 잘한 건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자식이 아무리 잘못해도, 아무리 개망나니 짓을 해도, 저주를 퍼부으면 안됩니다. 아버지가 이노무자슥 잘 되는지 보자. 이 말을 달고 삽니다. 그 자식이 잘 될 수가 있겠습니까. 함은 노아의 저주를 받았는데 안 그랬으면 좋았겠지요.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뜻인지 그래서 종들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하게 된 아버지를 비웃고 조롱하는 그런 사람이 한 번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부모와 자식 관계가 끊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일학교에서도 가르치던데 부모의 또 다른 모습이 자식입니다. 그러니까 자식은 또 다른 나입니다. 나는 살다가 없어지는데, 그 다음에 나 내가 이어지는 것이 자식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릴 때는, 부모가 자식에게 준 세 가지. 첫 번째, 생명입니다. ,두 번째는 건설, 세 번째는 교육. 이 세 가지를 다 주는 사람은 부모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부모님의 생명, 양육을 받고 자라서 교육을 받는데, 양육 받으면서 자라갈 때는 그냥 자라는 줄 알고 철 없이 자라갑니다. 부모를 칠 만큼 힘이 세면 부모를 알기를 예사로 알고 스스로 큰 줄을 압니다.
아무리 뿌리가 잘못되어도 가지가 뿌리에게 잘못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의 다른 모습이 자식이고, 그것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 부모를 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남의 부모를 치는 것은 잘못된 것은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네가 네 부모를 찍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연결이 끊어버리는 것이지요.
우리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고 느끼는 자녀가 얼마나 될 것인지... 신앙의 부모 자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과 상관없이 자기가 자란 줄 아는 사람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나중에는 다 잊어버리고..
부모는 우리에게 온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을 대하는 것을 하나님처럼 대해야합니다. 그것이 부모다. 그런데 그 부모를 갖다가 치고 저주하고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은 사람 중에서 내 부모는 하나님께서 그 분이 주셨으니까 나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부모입니다.
부모를 저주하고 치는 사람이 그 밑에 있는 자식은 안 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생명법을 한번 더 복습했습니다. 부모 생명과 네 생명은 연결이 되어있는데, 그 부모를 치거나 저주하면 안되는 겁니다. 그러면 자신도 연결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보고 그렇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남에게 별로 이용을 당하지 않습니다. 대개 보면 둔한 사람, 못난 사람. 그래서 토끼처럼 여우같고 뱀같고, 남을 살살 꼬아낸 것입니다. 목회자들 중에서 정치 목사가 있습니다. 정치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목사들 중에서 정치질만 보고 그것만 배운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전부 다 실패합니다.
상해법은 다음에 하겠는데, 돈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라 그런 것입니다. 예를 든 것이 보석금 제도, 이런 것입니다. 오늘 오후에 생명법, 부모를 치는 자는 죽여라.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의 자식은 꼭 같이 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