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31일 주일 오후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동민2019-03-31조회 298추천 28
2019년 3월 31일 주일 오후
찬송가 : 176장, 177장, 187장
본문 : 베드로전서 1장 13절 ~ 1장 25절
제목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종류의 여러 형태의 사람들의 모습들, 같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명상하면서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종교성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을 많고 생각이 많아야합니다. 굳이 종교성을 따지지 않는다더라도 짐승과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 다운 생각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지,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사는 것은 각자 세상에 살아갈 이유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냥 대충대충 살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라는 것이 궁극으로 따지고 들어가보면 자기 사욕 때문입니다. 이전 알지못할 때 쫓던 너의 사욕을..
사람들이 사욕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뭐라고 논리를 가지고 뭐라 해도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욕심 없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 의욕이 없게 되어지는 겁니다. 살아갈 힘이 없는 것이 느껴지면 극단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 형태로 살아가는데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볼 대상이 없을 때 살고싶은 마음이 참 없습니다. 믿던 것이 무너진다는지 그 때 살기 힘들어집니다. 소망이 없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게 됩니다. 사는 이유는 다 사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믿고 의지할 그런 것들이 없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게 됩니다.
노력할 때 필요한 것은 돈이 필요하겠다, 지식이 필요하겠다, 관계가 필요하겠다. 필요한 여러 가지를 만들어 가면서 그것을 믿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런 자기가 믿는 것을 만들어 가지게 됩니다. 제도, 법,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믿고 기본적인 양심도 믿고 믿는 거지요. 우리가 보통 그 사고를 보면은 고속 도로를 달릴 때 모두 자기 차선 도로를 잘 달립니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건널 때 파란 불이 되면 사람들이 건너갑니다. 파란 불이 되고 자동차는 빨간 불이 되니까 자동차는 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건너가는 겁니다. 자동차는 빨간 불에 서야하지요. 이런 법으로 만든 것이 세월 속에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조건 믿으면 큰일 납니다. 그래서 좌우를 살펴서 차가 오는 것을 보고 차가 서는지 안 서는지 보고 무조건 뛰어드는 종류는 두 명입니다. 정신나간 사람과 어린 아이. 세상에는 정신 나간 인간이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들이 다 그렇습니다. 법이든 제도든 세상에 있는 것은 100% 믿을 대상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다 그렇다는 것을 참고만 하는 것이고,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결국 소망이 실제되는 것은 없는겁니다. 우리는 믿을 이 있고 의지할 이 있습니다.
마음의 허리가 없지요. 마음의 허리라는 말은 마음을 불끈 졸라대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마음을 단속하고 긴장하는 겁니다. 마음을 챙겨서 붙들고 근심이 되는 겁니다. 살피고 또 살피고...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실 때 주님 오실 그 날에 가져 오실 은혜가 무엇일까...
바라는 것은 가져오실겁니다. 뭔가 귀중한 것을 가져오셔서 다시 만날 때 우리에게 주실 것인데, 은혜를 받기를 구원하면 근심하고 받아라는 것이지요. 건설 구원의 결과물, 자기가 이룬 건설 구원의 결과물이다. 내가 이룬 건설 구원의 결과물. 내 노력의 대가로 받는 것을 은혜라고 하진 않습니다. 정당한 보수지.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거듭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런 은혜입니다. 내가 이룬 것의 실상인데, 그 실상의 몇 억만배 넘는 것을 실제로 가져오신 겁니다. 10만원 씩 한 달에 넣어서 1년이 되어 360만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640만원을 그냥 주는데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건설 구원, 하늘의 건설 구원, 열심히 구원을..
지난 주에 말씀을 드렸었나요. 친구가 힘들 때 1년치 연봉. 우리나라 돈으로 16만원인가? 그걸 몇 년 후 만 배로 갚아준다는 것을.. 그 친구는 바라고 하지 않았을겁니다. 그냥 안되어서 줬는데, 성공하고 보니까 그렇게 갚아주는 보답의..
우리들이 세상에서 손양원 목사님처럼 그런 우리가 의인입니까? 백 목사님 같은 의인이 되겠습니까?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까? 죄 많고 여러 가지 그런 것들이 많은 우리임에도 우리에게 주신 분량대로 건설 구원 주시면 말씀으로 살면 주님 오시는 그 날에 한 없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전에 알지 못할 때 우리가 깨닫지 못할 때 지금 있지 않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사욕을 참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 때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과 역사들은 그 때 너희도 이 세상 풍속을 좇았다고 했습니다. 지금 모든 세상 사람들 우리와 다른 종류의 사람들, 종자가 다른 것인데 요즘 같은 차별을 철피하는 시대에 종지가 다르다고 하면 큰일 나겠지만 불택자와 우리는 맞지 않는 겁니다. 민주주의가 성경적으로 맞다. 성경은 민주주의입니까 독재주의입니까? 성경은 독재주의입니다. 거기서 또 따져 보아야합니다. 기독교가 독재주의다. 독재주의의 반대는 민주주의이지요.
다수를 통해 민주주의적인 독재가 가장 무서운 겁니다. 독재주의라는 것은 그 반대가 뭘 없애버리는 겁니까? 독재주의를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그러면 독재라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말살시키는 것이 독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합니까? 아니지요. 자유유의니까 기독교는 그렇게 보면 독재주의지요. 그러나 그 개인의 자유를 포기하고 바칠 때 참 자유가 되는 것이지요. 알지못할 때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알지 못할 때 줬던 것을.. 마지막에는 사욕을 범삼는 생활입니다. 그것이 출발이고 원인이고 동기고 원동이고 동력이라는 말입니다. 전부 욕심으로 인해 산다.
거룩이라는 말은 다르다고 했지요. 구별인데, 거룩이라는 말의 출발 자체가 다름에서 출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계실 때 거룩이라는 말은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이 있으시고 우리가 있을 때 우리도 근본적으로 거룩해야,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관느 달라야 하기 때문에 따지는 자가 되어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 각 사람의 껍데기로 판단하시지는 않습니다.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 세상입니다. 망령된 행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전,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태초에 하나님과 한께 계셨고, 그 분이 이 세상에 왔는데 알아보는 자가 없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아들 밖에 없고...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시고 영광 주신 그 분이 영광과 소망을 있게하셨습니다.
믿음의 대상, 의지의 대상, 그 어떤 사람도 물질도 믿고 의지하고 바라 볼 것이 없는 세상.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시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말세지만 이 세상 사람이 열심히 있는 거 하다가 답답할 때 뭔가 자기를 붙들어 주고 기대를 하고 이런 믿음의 대상으로 세상을 잘 살 수 있을 것이고, 믿음과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살 의욕이 없는 것입니다. 너희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이 있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신앙을 그냥 단순히 도덕적, 윤리적, 주관적인 그런 자기 흠을 돋우고 주관적으로 만족시키는 자기 만족의 신앙에서 벗어나서 우리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는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안 계셨다면 그 말씀을 드릴 때 크게 못 느끼는데, 만약에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재미가 있을까 무슨 낙으로 살까..
마지막 인생을 살아서 마지막에 정점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났다.. 태어나서 모두 다 가는 종점은 무덤입니다. 넓고 병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아등바등 권력잡은 진나라 진시황도 간 곳은 무덤이고 재벌도 가는 곳은 무덤입니다.
그래서 교리를 잘 모르고 잘 몰라서 잘 믿지는 못해도, 하나님 존재를 그래서 찾고 믿는 겁니다. 우리 나라에도 많은 잘난 사람들이 믿음을 가진 것은 어린 신앙이지만은 아니기 때문에 살아 가는 것입니다. 자기 젊음의 이렇지 않고 우리 믿음과 소망을 있게 해주셨습니다. 깨끗하다는 말에도 섞인다는 것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순수하게 깨끗하게 말하면은 온갖 종류의 죄를 다 씻으려고 영혼을 깨끗하게 해서.. 이런 근본과 소망을 가진 우리들이 실제적인 방향..
믿음과 소망을 있게 하셨으니까 금이나 은같이 없어 질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 되었으니까..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말씀을 순종하는.. 말씀을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진리를 순종하면 깨끗하게 되니까 말씀을 다른 말로 하면 뭐라고 합니까? 물입니다. 진리의 말씀.
남을 위해 사는 그 생활이 알지 못하는 연고로 남을 위하기는 위했는데 그것이 안타깝게 일시적인 것이고 상대적으로 결과적으로 그런 것이 많습니다. 거짓없는 옛사람. 거짓없는 형제 사랑. 같은 말입니다. 본의 아니게 속여도 속인 것은 속인 것입니다. 내가 해치려고 한 것이 아닌데 결과적으로 해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세상에서 재판을 받지만 하나님은 충분히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깨끗한 사람, 두 번째는 다른 사람도 그런 사람을 만드는 사람. 거짓 없는 형제 사랑.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 후회할 것이 없다는 말이지요. 자기를 깨끗하고 만들고 대속의 사랑으로 있는 거 다 바칩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자기를 다 바쳐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이게 바로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씨로.. 그래서 모든 육체는 다 풀과 같고 꽃과 같다 다 그런겁니다. 지금 한참 벚꽃이 치고 진달래가 피고 장미피고 그러겠지요. 필 때는 아름답지만 지고 나면 흉합니다. 그게 인생의 생애고 인생입니다.
이 세상 살 때 어떤 인생 살이가 가면 갈수록 귀한 인생살이가 될까.. 우리는 근본이 다 이렇게 되어있으니 깨끗하게 할 수 있고 거짓 없는 형제사랑을 할 수 있는데, 부족하지만은 기회있는 대로 시간과 물질을 바쳐서 충성하는데, 안타깝게 우리 교회는 보면 옳고 바른 부모의 충성을 보고도 모르는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받은 복이라는 것은 이어져야하는데... 아브라함의 복이 이삭에게 이어졌고 이삭이 그것이 야곱에게 이어졌고, 그 아들들이 다 좋아졌고.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가 : 176장, 177장, 187장
본문 : 베드로전서 1장 13절 ~ 1장 25절
제목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종류의 여러 형태의 사람들의 모습들, 같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명상하면서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종교성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을 많고 생각이 많아야합니다. 굳이 종교성을 따지지 않는다더라도 짐승과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 다운 생각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지,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사는 것은 각자 세상에 살아갈 이유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냥 대충대충 살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라는 것이 궁극으로 따지고 들어가보면 자기 사욕 때문입니다. 이전 알지못할 때 쫓던 너의 사욕을..
사람들이 사욕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뭐라고 논리를 가지고 뭐라 해도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욕심 없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 의욕이 없게 되어지는 겁니다. 살아갈 힘이 없는 것이 느껴지면 극단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 형태로 살아가는데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볼 대상이 없을 때 살고싶은 마음이 참 없습니다. 믿던 것이 무너진다는지 그 때 살기 힘들어집니다. 소망이 없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게 됩니다. 사는 이유는 다 사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믿고 의지할 그런 것들이 없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게 됩니다.
노력할 때 필요한 것은 돈이 필요하겠다, 지식이 필요하겠다, 관계가 필요하겠다. 필요한 여러 가지를 만들어 가면서 그것을 믿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런 자기가 믿는 것을 만들어 가지게 됩니다. 제도, 법,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믿고 기본적인 양심도 믿고 믿는 거지요. 우리가 보통 그 사고를 보면은 고속 도로를 달릴 때 모두 자기 차선 도로를 잘 달립니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건널 때 파란 불이 되면 사람들이 건너갑니다. 파란 불이 되고 자동차는 빨간 불이 되니까 자동차는 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건너가는 겁니다. 자동차는 빨간 불에 서야하지요. 이런 법으로 만든 것이 세월 속에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조건 믿으면 큰일 납니다. 그래서 좌우를 살펴서 차가 오는 것을 보고 차가 서는지 안 서는지 보고 무조건 뛰어드는 종류는 두 명입니다. 정신나간 사람과 어린 아이. 세상에는 정신 나간 인간이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들이 다 그렇습니다. 법이든 제도든 세상에 있는 것은 100% 믿을 대상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다 그렇다는 것을 참고만 하는 것이고,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결국 소망이 실제되는 것은 없는겁니다. 우리는 믿을 이 있고 의지할 이 있습니다.
마음의 허리가 없지요. 마음의 허리라는 말은 마음을 불끈 졸라대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마음을 단속하고 긴장하는 겁니다. 마음을 챙겨서 붙들고 근심이 되는 겁니다. 살피고 또 살피고...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실 때 주님 오실 그 날에 가져 오실 은혜가 무엇일까...
바라는 것은 가져오실겁니다. 뭔가 귀중한 것을 가져오셔서 다시 만날 때 우리에게 주실 것인데, 은혜를 받기를 구원하면 근심하고 받아라는 것이지요. 건설 구원의 결과물, 자기가 이룬 건설 구원의 결과물이다. 내가 이룬 건설 구원의 결과물. 내 노력의 대가로 받는 것을 은혜라고 하진 않습니다. 정당한 보수지.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거듭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런 은혜입니다. 내가 이룬 것의 실상인데, 그 실상의 몇 억만배 넘는 것을 실제로 가져오신 겁니다. 10만원 씩 한 달에 넣어서 1년이 되어 360만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640만원을 그냥 주는데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건설 구원, 하늘의 건설 구원, 열심히 구원을..
지난 주에 말씀을 드렸었나요. 친구가 힘들 때 1년치 연봉. 우리나라 돈으로 16만원인가? 그걸 몇 년 후 만 배로 갚아준다는 것을.. 그 친구는 바라고 하지 않았을겁니다. 그냥 안되어서 줬는데, 성공하고 보니까 그렇게 갚아주는 보답의..
우리들이 세상에서 손양원 목사님처럼 그런 우리가 의인입니까? 백 목사님 같은 의인이 되겠습니까?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까? 죄 많고 여러 가지 그런 것들이 많은 우리임에도 우리에게 주신 분량대로 건설 구원 주시면 말씀으로 살면 주님 오시는 그 날에 한 없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전에 알지 못할 때 우리가 깨닫지 못할 때 지금 있지 않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사욕을 참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 때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과 역사들은 그 때 너희도 이 세상 풍속을 좇았다고 했습니다. 지금 모든 세상 사람들 우리와 다른 종류의 사람들, 종자가 다른 것인데 요즘 같은 차별을 철피하는 시대에 종지가 다르다고 하면 큰일 나겠지만 불택자와 우리는 맞지 않는 겁니다. 민주주의가 성경적으로 맞다. 성경은 민주주의입니까 독재주의입니까? 성경은 독재주의입니다. 거기서 또 따져 보아야합니다. 기독교가 독재주의다. 독재주의의 반대는 민주주의이지요.
다수를 통해 민주주의적인 독재가 가장 무서운 겁니다. 독재주의라는 것은 그 반대가 뭘 없애버리는 겁니까? 독재주의를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그러면 독재라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말살시키는 것이 독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합니까? 아니지요. 자유유의니까 기독교는 그렇게 보면 독재주의지요. 그러나 그 개인의 자유를 포기하고 바칠 때 참 자유가 되는 것이지요. 알지못할 때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알지 못할 때 줬던 것을.. 마지막에는 사욕을 범삼는 생활입니다. 그것이 출발이고 원인이고 동기고 원동이고 동력이라는 말입니다. 전부 욕심으로 인해 산다.
거룩이라는 말은 다르다고 했지요. 구별인데, 거룩이라는 말의 출발 자체가 다름에서 출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계실 때 거룩이라는 말은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이 있으시고 우리가 있을 때 우리도 근본적으로 거룩해야,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관느 달라야 하기 때문에 따지는 자가 되어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 각 사람의 껍데기로 판단하시지는 않습니다.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 세상입니다. 망령된 행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전,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태초에 하나님과 한께 계셨고, 그 분이 이 세상에 왔는데 알아보는 자가 없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아들 밖에 없고...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시고 영광 주신 그 분이 영광과 소망을 있게하셨습니다.
믿음의 대상, 의지의 대상, 그 어떤 사람도 물질도 믿고 의지하고 바라 볼 것이 없는 세상.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시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말세지만 이 세상 사람이 열심히 있는 거 하다가 답답할 때 뭔가 자기를 붙들어 주고 기대를 하고 이런 믿음의 대상으로 세상을 잘 살 수 있을 것이고, 믿음과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살 의욕이 없는 것입니다. 너희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이 있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신앙을 그냥 단순히 도덕적, 윤리적, 주관적인 그런 자기 흠을 돋우고 주관적으로 만족시키는 자기 만족의 신앙에서 벗어나서 우리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는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안 계셨다면 그 말씀을 드릴 때 크게 못 느끼는데, 만약에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재미가 있을까 무슨 낙으로 살까..
마지막 인생을 살아서 마지막에 정점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났다.. 태어나서 모두 다 가는 종점은 무덤입니다. 넓고 병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아등바등 권력잡은 진나라 진시황도 간 곳은 무덤이고 재벌도 가는 곳은 무덤입니다.
그래서 교리를 잘 모르고 잘 몰라서 잘 믿지는 못해도, 하나님 존재를 그래서 찾고 믿는 겁니다. 우리 나라에도 많은 잘난 사람들이 믿음을 가진 것은 어린 신앙이지만은 아니기 때문에 살아 가는 것입니다. 자기 젊음의 이렇지 않고 우리 믿음과 소망을 있게 해주셨습니다. 깨끗하다는 말에도 섞인다는 것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순수하게 깨끗하게 말하면은 온갖 종류의 죄를 다 씻으려고 영혼을 깨끗하게 해서.. 이런 근본과 소망을 가진 우리들이 실제적인 방향..
믿음과 소망을 있게 하셨으니까 금이나 은같이 없어 질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 되었으니까..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말씀을 순종하는.. 말씀을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진리를 순종하면 깨끗하게 되니까 말씀을 다른 말로 하면 뭐라고 합니까? 물입니다. 진리의 말씀.
남을 위해 사는 그 생활이 알지 못하는 연고로 남을 위하기는 위했는데 그것이 안타깝게 일시적인 것이고 상대적으로 결과적으로 그런 것이 많습니다. 거짓없는 옛사람. 거짓없는 형제 사랑. 같은 말입니다. 본의 아니게 속여도 속인 것은 속인 것입니다. 내가 해치려고 한 것이 아닌데 결과적으로 해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세상에서 재판을 받지만 하나님은 충분히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깨끗한 사람, 두 번째는 다른 사람도 그런 사람을 만드는 사람. 거짓 없는 형제 사랑.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 후회할 것이 없다는 말이지요. 자기를 깨끗하고 만들고 대속의 사랑으로 있는 거 다 바칩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자기를 다 바쳐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이게 바로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씨로.. 그래서 모든 육체는 다 풀과 같고 꽃과 같다 다 그런겁니다. 지금 한참 벚꽃이 치고 진달래가 피고 장미피고 그러겠지요. 필 때는 아름답지만 지고 나면 흉합니다. 그게 인생의 생애고 인생입니다.
이 세상 살 때 어떤 인생 살이가 가면 갈수록 귀한 인생살이가 될까.. 우리는 근본이 다 이렇게 되어있으니 깨끗하게 할 수 있고 거짓 없는 형제사랑을 할 수 있는데, 부족하지만은 기회있는 대로 시간과 물질을 바쳐서 충성하는데, 안타깝게 우리 교회는 보면 옳고 바른 부모의 충성을 보고도 모르는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받은 복이라는 것은 이어져야하는데... 아브라함의 복이 이삭에게 이어졌고 이삭이 그것이 야곱에게 이어졌고, 그 아들들이 다 좋아졌고.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