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0일 주일 오후 - 근심하지 말라
김동민2019-03-10조회 233추천 30
2019년 3월 10일 주일 오후
찬송가 : 135장, 145장, 166장
본문 : 요한복음 14장 1절 ~ 14장 3절
제목 : 근심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을 오전에 생각해 봤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근심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근심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원치 않게 하는 것이 근심입니다. 근심을 원하고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주님이 가신다는데, 그리고 어디 가는지도 모른다는데 그러면 근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잔뜩 마음에 근심이 찼는데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 하신 분이 주님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니까 이건 참 믿을만하고 생각해볼만 한 것입니다. 사업을 하다가 빚이 잔뜩 왔는데, 빈털터리 친구가 와서 도와주겠네 하면 힘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재적이 있고 친분이 있는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하면 의지하고 믿을만한 말이 되는 거지요. 주님 말씀은 헛된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특히 우리 저 공회의 말하는데 의례적인 그런 말 그런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하지요.
이 세상에는 거할 곳이 많긴 많은데 여기도 그런 분들 더러 계시겠지요.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부산 집이 엄청 많을 겁니다. 자기 집 한 채 없는 분들 여기 계시지요. 세상이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하늘 나라 그 곳은 무한입니다. 물리적인 것으로 예를 들면 그런 것입니다. 세상 것은 끝이 있는데 하늘 나라 것은 모든 것이 무한하고 한 없는 나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세상 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셨는데 제자들은 인간적인 육적인 것으로 우울하고 울적하고 세상 정으로 근심했습니다. 그런데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이들은 입에 맞는 맛있는 것을 달라고 하나, 부모는 영양제를 주고 싶어합니다. 제자들은 그러하나 주님은 더 좋은 것을 주셨고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간다 이 말입니다. 내가 안 가는 것이 더 나으면 안 갈 것이다. 그런데 가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 내가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하리라. 말씀하신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이 마음의 근심. 근심은 죄입니까 죄 아닙니까? 죄라긴 참 곤란하겠지요. 그렇다고 잘 하는 것은 또 아닌것인데, 죄라고 하기는 곤란하겠고 그렇다고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럴 때는 제자들이 아직 신앙이 어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르치신 겁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은 근심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근심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젖먹이도 근심이 있는데. 다 근심은 각각 있는 겁니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마음의 근심함으로 얼굴이 좋게 되니라. 마음이 근심하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사람의 모든 근심은 어디서 생깁니까? 욕심에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따지고 놀리고 들어가보면 사람들의 근심 걱정의 대다수는 욕심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근심을 해야 할 것은 해야하는데, 제자들이 가진 것은 욕심..이라기 보다는 세밀하게 따져보면 욕심은 있습니다. 제자들이 아직 어려서. 첫 번째 근심 없는 사람은 어린 사람입니다. 어리다는 건 모르고 책임감도 없는 사람입니다. 아는 사람은 근심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욕심이 없는 사람은 근심이 없는데 이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책임감 없고 무책임한 사람은 근심할 수가 없습니다. 낙천적이라서 좋을 수 있는데 근심이 안되면 몸쓸 사람이 됩니다. 근심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고 자기에게 닥쳐지면은 근심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써 가지라신 근심, 마음에 근심함으로 욕심으로 인한 근심이 아닐겁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났다. 죄를 안 지어야하는데 죄를 짓고 내가 약하구나. 자기 약함이 죄에 대해서 근심이 생겨지는 겁니다. 의를 행해야 하는데 안 되니까 넘어지고 죄가 생기는데 근심이 생깁니다. 이런 근심은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이런 근심은 좋은 근심입니다.
내가 근심을 하고 있는데, 물질 문제, 돈 문제, 학교 성적, 인간관계, 선택, 진로 뭣 때문에 근심 걱정 하는데 그럴 때 원치 아니하게 근심이 물 밀들이 밀고 들어올 때 근심이라는 것은 원하는 게 아닙니다. 떨쳐 버리려고 해도 잘 안되는 것이 근심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뭘 해야 합니까? 온갖 종류의 근심이 우리 마음에 밀고 들어올 때 우리는 따져 봐야합니다. 이치를, 논리를, 이 맘 속에 이런 상황이 이런 것들이 왜 생겼는지 논리적으로 따져 봐야합니다. 따지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겁니다. 여기서 세상 말이 나와야하는데, 감정주의, 좌파에 속한 사람들이 감상주의자입니다. 보수파는 깊이 들어가면 물론 같이 들어가면 유물주의입니다. 보수파는 실제주의입니다. 좌파들은 유물주의인데 감정적인 것이 많는 것입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이성이 약합니다. 논리로 따지는 것이 약해서 막혀버리면 대화가 잘 안됩니다. 말이 안 통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해 마다 3500명이 죽는답니다. 원전 터져서 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일본에 후쿠시마에 원전이 터졌습니다. 지진 때문입니다. 그걸로 죽은 사람이 몇 명이랍니까? 제가 듣기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지진하고 그거 때문에 죽었지 방사선 때문에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답니다. 그게 무서워서 탈원전을 합니다. 1년에 3500명이 죽습니다. 교통사고로요. 그래서 어쩝니까. 자동차를 모두 없애버려야지. 그러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은 없지요. 사대강 보를 만들어 놨습니다. 그런데 수질이 좋아졌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부가 안 좋아졌다고 하고. 그래서 깨 버린답니다. 상식이 있으면 열어보겠지요. 그런데 깨 버리겠답니다. 미국은 우리 나라를 살린 나라입니다. 미국 때문에 해방 되었고 적화를 막았습니다. 은혜를 크게 입은 나라입니다. 단점도 많지만. 그래서 미국에는 맞춰줘야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나라 짓밟은 나라입니다. 그 중국 앞에 서면 찍소리도 못 하지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는 못 그럽니다. 사람들의 인식이나 사고 방식이 정상적이면 이럴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가르켜서 말이 안 통한다고 합니다. 논리적인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20대 남성들의 현 정부의 찬성하는 것이 20%된답니다. 그런데 여성들은 60%가 넘는답니다. 여성들은 감성적입니다. 비슷하지요. 그래서 실용적인 것은 안 따지는 것입니다. 당해봐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 민족이 5천년 내내 침략만 당하고 있었던 겁니다. 말이 안 통하는데 믿음도 같습니다.
근심을 하지 말아라. 근심 걱정이 되는데 어떻게 안 합니까? 그러면 논리로 따져 보는 겁니다. 근심이 되고 걱정이 돼서 해결이 되느냐? 안할 근심은 하면 할수록 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런 것을 못 하게 막아버립니다. 그래서 마귀는 계속 감성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따지고 들어가면 마지막에 답이 나오겠지요. 그런데 마귀는 그걸 못 하게 합니다. 마귀가 가장 질색하는 것은 믿는 사람이 구별하는 것.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그러나 해 봐야 유익 없는 그런 것이라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마귀가 넣어주는 근심입니다. 논리로 따지고 들어가 봅시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믿음의 길로 생각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그 목적 다음에 예정이 있고 그 다음에 창조가 있고.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예정대로 다 되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모든 예정에 모든 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들어가면 복잡해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예정이고 창조되어 있고 그대로 된 것이다. 믿는 사람이 마음에 근심 걱정을 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 그러니까 마음에 근심 걱정, 여기서 정리를 하십시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조금 전에 뭘 말씀했죠? 조금 전에 한 게 세상 이야기를 많이 했죠.
어쨌든 마무리를 해야하는데.. 오전의 중심 내용이 뭐냐 그 말이지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이 정도 마치고.. 좀 앞에 말씀 드린 거 하고 오전에 말씀 드린 것을 정리하든지.. 모든 근심 걱정 주님께 맡겨 놓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중간에 예배가 끊겼습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예배에 집중했었더라면 많은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여 말씀을 듣지 않은 죄 이번 주 회개하도록 합시다.
찬송가 : 135장, 145장, 166장
본문 : 요한복음 14장 1절 ~ 14장 3절
제목 : 근심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을 오전에 생각해 봤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근심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근심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원치 않게 하는 것이 근심입니다. 근심을 원하고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주님이 가신다는데, 그리고 어디 가는지도 모른다는데 그러면 근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잔뜩 마음에 근심이 찼는데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 하신 분이 주님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니까 이건 참 믿을만하고 생각해볼만 한 것입니다. 사업을 하다가 빚이 잔뜩 왔는데, 빈털터리 친구가 와서 도와주겠네 하면 힘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재적이 있고 친분이 있는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하면 의지하고 믿을만한 말이 되는 거지요. 주님 말씀은 헛된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특히 우리 저 공회의 말하는데 의례적인 그런 말 그런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하지요.
이 세상에는 거할 곳이 많긴 많은데 여기도 그런 분들 더러 계시겠지요.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부산 집이 엄청 많을 겁니다. 자기 집 한 채 없는 분들 여기 계시지요. 세상이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하늘 나라 그 곳은 무한입니다. 물리적인 것으로 예를 들면 그런 것입니다. 세상 것은 끝이 있는데 하늘 나라 것은 모든 것이 무한하고 한 없는 나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세상 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셨는데 제자들은 인간적인 육적인 것으로 우울하고 울적하고 세상 정으로 근심했습니다. 그런데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이들은 입에 맞는 맛있는 것을 달라고 하나, 부모는 영양제를 주고 싶어합니다. 제자들은 그러하나 주님은 더 좋은 것을 주셨고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간다 이 말입니다. 내가 안 가는 것이 더 나으면 안 갈 것이다. 그런데 가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 내가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하리라. 말씀하신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이 마음의 근심. 근심은 죄입니까 죄 아닙니까? 죄라긴 참 곤란하겠지요. 그렇다고 잘 하는 것은 또 아닌것인데, 죄라고 하기는 곤란하겠고 그렇다고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럴 때는 제자들이 아직 신앙이 어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르치신 겁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은 근심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근심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젖먹이도 근심이 있는데. 다 근심은 각각 있는 겁니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마음의 근심함으로 얼굴이 좋게 되니라. 마음이 근심하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사람의 모든 근심은 어디서 생깁니까? 욕심에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따지고 놀리고 들어가보면 사람들의 근심 걱정의 대다수는 욕심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근심을 해야 할 것은 해야하는데, 제자들이 가진 것은 욕심..이라기 보다는 세밀하게 따져보면 욕심은 있습니다. 제자들이 아직 어려서. 첫 번째 근심 없는 사람은 어린 사람입니다. 어리다는 건 모르고 책임감도 없는 사람입니다. 아는 사람은 근심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욕심이 없는 사람은 근심이 없는데 이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책임감 없고 무책임한 사람은 근심할 수가 없습니다. 낙천적이라서 좋을 수 있는데 근심이 안되면 몸쓸 사람이 됩니다. 근심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고 자기에게 닥쳐지면은 근심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써 가지라신 근심, 마음에 근심함으로 욕심으로 인한 근심이 아닐겁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났다. 죄를 안 지어야하는데 죄를 짓고 내가 약하구나. 자기 약함이 죄에 대해서 근심이 생겨지는 겁니다. 의를 행해야 하는데 안 되니까 넘어지고 죄가 생기는데 근심이 생깁니다. 이런 근심은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이런 근심은 좋은 근심입니다.
내가 근심을 하고 있는데, 물질 문제, 돈 문제, 학교 성적, 인간관계, 선택, 진로 뭣 때문에 근심 걱정 하는데 그럴 때 원치 아니하게 근심이 물 밀들이 밀고 들어올 때 근심이라는 것은 원하는 게 아닙니다. 떨쳐 버리려고 해도 잘 안되는 것이 근심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뭘 해야 합니까? 온갖 종류의 근심이 우리 마음에 밀고 들어올 때 우리는 따져 봐야합니다. 이치를, 논리를, 이 맘 속에 이런 상황이 이런 것들이 왜 생겼는지 논리적으로 따져 봐야합니다. 따지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겁니다. 여기서 세상 말이 나와야하는데, 감정주의, 좌파에 속한 사람들이 감상주의자입니다. 보수파는 깊이 들어가면 물론 같이 들어가면 유물주의입니다. 보수파는 실제주의입니다. 좌파들은 유물주의인데 감정적인 것이 많는 것입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이성이 약합니다. 논리로 따지는 것이 약해서 막혀버리면 대화가 잘 안됩니다. 말이 안 통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해 마다 3500명이 죽는답니다. 원전 터져서 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일본에 후쿠시마에 원전이 터졌습니다. 지진 때문입니다. 그걸로 죽은 사람이 몇 명이랍니까? 제가 듣기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지진하고 그거 때문에 죽었지 방사선 때문에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답니다. 그게 무서워서 탈원전을 합니다. 1년에 3500명이 죽습니다. 교통사고로요. 그래서 어쩝니까. 자동차를 모두 없애버려야지. 그러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은 없지요. 사대강 보를 만들어 놨습니다. 그런데 수질이 좋아졌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부가 안 좋아졌다고 하고. 그래서 깨 버린답니다. 상식이 있으면 열어보겠지요. 그런데 깨 버리겠답니다. 미국은 우리 나라를 살린 나라입니다. 미국 때문에 해방 되었고 적화를 막았습니다. 은혜를 크게 입은 나라입니다. 단점도 많지만. 그래서 미국에는 맞춰줘야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나라 짓밟은 나라입니다. 그 중국 앞에 서면 찍소리도 못 하지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는 못 그럽니다. 사람들의 인식이나 사고 방식이 정상적이면 이럴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가르켜서 말이 안 통한다고 합니다. 논리적인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20대 남성들의 현 정부의 찬성하는 것이 20%된답니다. 그런데 여성들은 60%가 넘는답니다. 여성들은 감성적입니다. 비슷하지요. 그래서 실용적인 것은 안 따지는 것입니다. 당해봐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 민족이 5천년 내내 침략만 당하고 있었던 겁니다. 말이 안 통하는데 믿음도 같습니다.
근심을 하지 말아라. 근심 걱정이 되는데 어떻게 안 합니까? 그러면 논리로 따져 보는 겁니다. 근심이 되고 걱정이 돼서 해결이 되느냐? 안할 근심은 하면 할수록 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런 것을 못 하게 막아버립니다. 그래서 마귀는 계속 감성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따지고 들어가면 마지막에 답이 나오겠지요. 그런데 마귀는 그걸 못 하게 합니다. 마귀가 가장 질색하는 것은 믿는 사람이 구별하는 것.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그러나 해 봐야 유익 없는 그런 것이라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마귀가 넣어주는 근심입니다. 논리로 따지고 들어가 봅시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믿음의 길로 생각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그 목적 다음에 예정이 있고 그 다음에 창조가 있고.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예정대로 다 되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모든 예정에 모든 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들어가면 복잡해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예정이고 창조되어 있고 그대로 된 것이다. 믿는 사람이 마음에 근심 걱정을 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 그러니까 마음에 근심 걱정, 여기서 정리를 하십시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조금 전에 뭘 말씀했죠? 조금 전에 한 게 세상 이야기를 많이 했죠.
어쨌든 마무리를 해야하는데.. 오전의 중심 내용이 뭐냐 그 말이지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이 정도 마치고.. 좀 앞에 말씀 드린 거 하고 오전에 말씀 드린 것을 정리하든지.. 모든 근심 걱정 주님께 맡겨 놓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중간에 예배가 끊겼습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예배에 집중했었더라면 많은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여 말씀을 듣지 않은 죄 이번 주 회개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