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7일 주일 오후 - 의인
김동민2019-03-17조회 306추천 28
2019년 3월 17일 주일 오후
찬송가 : 86장, 121장, 192장
본문 : 시편 37편 25절 ~ 37편 31절
제목 : 의인
시편은 시입니다. 말 그대로 시. 시들을 모아놓은 것이 시인데,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현실에서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자기들이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고 경험한 바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기도하고 노래한 것이 시가 되었습니다. 시는 많은 내용을 단어 하나하나에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있는 것이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 모르는데, 글 쓰는 것 중에서 시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고 상당히 머리 좋은 사람들, 생각이 깊고 그런 사람들이 주로 시인이라고 합니다. 동시에 시를 쓰는 사람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다 장단점이 있고 그래서 감수성이 풍부하고 감성이 풍부하고 그러면 참 장점이 많아서 모든 것을 보면 쉽게 넘어가지 않고 생각을 해서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면 이성이 약해서 그럴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 신앙 생활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 생활, 신앙 생활은 뭐하는 겁니까?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구원을 이루어간다는 것이 뭐지요? 쉽게 말하면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만들어가는 것. 그런 것이 구원이고, 그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참사람을 다른 말로 하면 의인입니다.
자기를 만들어가려면.. 집을 지으려면 무엇을 알아야합니까?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 위치를 알아야 짓습니다. 농사 짓는 사람은 흙의 성질을 알아야합니다. 애완견을 기르려면, 알고 길러야지 모르면은 오래 못 가서 죽고 말고 갖다버리겠죠. 요즘에는 갖다버리면 걸린답니다. 땅에 묻어도 걸린답니다. 그래서 애완동물 장례식을 치른답니다.
어쨌든 그래서 우리의 구원 신앙 생활은 사람을 만들어가고 자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관찰력이 좋고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논리력이 부족합니다. 이성면이 부족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닌데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반면에 논리가 밝은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을 금이라고 합니다. 잘 쓰면 사람을 수술해서 살리는데 잘못하면 죽입니다. 우리는 치우치지 않도록 애를 써야합니다.
다윗은 참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어떤 사람은 하늘이 파랗다고 하는데 빨간 안경은 끼고 보면 하늘이 빨갛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늘이 노랗다고 합니다. 다윗을 깨닫기를 내가 살아보니까 인생에서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했다. 이러면 버림 당하는 사람 있던데? 걸식한 사람 있던데? 이 사람은 깨달음이 불행한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의인은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사람들에게도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버려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빌라도의 아내가 그랬죠.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일도 행치 마소서 그 말 듣고 빌라도는 손을 씻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그 말 때문에 유대인들이 역사에 없는 비참한 말을 당했다고 하죠. 그래서 설교록에 자식을 많이 둔 부모는, 관에 들어가서도 입을 못 불린다고 합니다. 다윗은 보고 같은 인생을 살아도 어떤 사람은 못 느끼는데, 하나님의 의인은 절대 버림 받지 않는구나. 이걸 깨닫고 시로 썼습니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원래 종교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남다르게 봅니다. 전도사, 목사, 신부, 중 이러면 남다르게 봅니다. 요즘에는 제가 언제 들은 이야기인데, 서울 강남에 있는 술집에 VIP들은 중들이라는 말들이 있더군요. 그만큼 모든 종교들이 다 타락한 시대인데, 그래서 종일토록 은혜 베풀고 그 자손이 은혜 받는도다. 가진 것을 있는 대로 베풀어주니까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악은 피조물 중심이 악이고 선은 하나님 중심이 선입니다. 악과 선은 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공의는 공평입니다. 그 뒤에 보면은 30절입니까. 30절..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정에 이끌리다던지 이런 것이 없이 그대로 모든 것을 행한 것이 공의입니다. 법을 법대로 규칙은 규칙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이 있으니까 그대로 처분하시지 그걸 어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공의롭지 못한 의인은 의인이 아닙니다. 의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공의라는 것이 특별히 들어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의인을 사랑하십니다.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도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지혜입니다. 간사한 사람들, 뱀같은 지혜 꽤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향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의인이라는 것은 사람입니다. 의인. 의인은 옳은 사람입니다. 의인이 버림을 당하지 않고 의인의 자손이 걸식하지 않는다.
사람은 옳은 행동 한 번 했다고 의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의인이라고 그럴 때는 사람 자체가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가 배운대로 말하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지식입니다. 진실한 지식, 어떤 지식을 가졌냐에 따라서 사람이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지식을 잘못가지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의인의 지식을 가져야 의인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의는 도덕입니다. 세상의 인간관계 의는 공자가 만든 도덕입니다. 민족은 안중근 의사라고 하죠. 그 사람은 그 사람은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테러범의 두목이라고 합니다. 의인이라는 것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인데, 성경이 말하는 의인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가진대로 지식대로 행동이 따라가야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아야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우리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합니다. 동시에 사람이 또 객관이 부족한 사람 이런 사람이 있지요. 객관성이 부족한 사람. 내가 자기 주관이 뚜렷한데 이런 사람은 잘 피동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릴 때 서울에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은 20년 지나도 안 변합니다. 그러면 인물입니다. 신앙으로 잘만 하면. 변하지 않아야하는데.. 그래서 주관이 뚜렷한 사람은 객관성이 약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모른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이 알아듣는지를.. 사회성이라는 말은 객관성입니다. 내가 여기에 살면은 나도 일원이니까 다른 사람도 생각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객관성이 풍부한 사람은 그런 걸 너무 생각하니까 주관이 약하고 흔들리기 쉽습니다. 의인이 되는 첫 번째 단계가 뭡니까? 지식, 그 다음은 행위 그러면 사람은 저절로 되게 되어있는 겁니다. 오전 말씀을 다시 복습하면 의인은 단어적인 의미로 정의적인 의미로 의인은 첫째, 대속을 입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걸 다른 말로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왜 대속을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까? 의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 뜻대로 되어졌다는 뜻입니다. 100%하나님의 뜻으로만 되었다는 것이 의입니다. 그 뜻을 위해서 만들어진게 의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의인은 그런 사람. 우리 모두 그런 의미로 알아야합니다. 다음은 행위적으로 의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의라는 것은 자기 주관을 버리고 하나님을 주격 삼아서 행하는 것을 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하는 모든 행동, 말이든지 행동이든지 관계든지 하나님께 붙들려 사는 것이 의의 행동입니다. 조금 더 가까워졌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질적으로 의의 생활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경외는 높이고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높인다는 말은 그 분을 유일로 더 이상 높일 사람이 없는 그런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의인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워합니다. 강아지는 일반적으로 강아지가 아니고 개, 개는 호랑이 냄새만 나도 느낌만 있어도 마루 밑에 들어가서 오줌을 싼다고 하지요. 그게 두려우니까.. 하나님을 무서워하면 두려움은 저절로 생겨집니다. 본능적인 두려움. 저절로 그 분이 계심을 알고 저절로 두려워합니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를 맞아도 사자굴에 들어가도, 종으로 팔려가도 감옥에 가도, 의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피곤해도 그 분이 하라고 하시면 합니다. 계명을 어기는 의인은 없습니다. 어떤 경우도 계명을 어기지 못하고 지키는 사람. 그것이 본능이 되어있을 때 의인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의인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도 물질적으로 도덕적으로나 관계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덕을 세워야지요. 우리가 어떤지 돌아봐야합니다. 네 번째는 은혜를 베풉니다. 이런 사람이 의인입니다. 기억합시다. 의인은 단어 정의적으로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 의인은 의를 행하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의의 행동을 하는 사람. 세 번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고 덕을 세우고 남에게 은혜 베푸고 돕는 그런 사람이 의인입니다. 의인은 최종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모되는 우리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을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할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의인들이 사람들에게 고난 당할 때는 있습니다. 고난 당하는 것과 버림 당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의인이 핍박당하는 경우는 많죠. 그런데 의인은 아는 사람들은 참 존경하고 영접합니다. 그런데, 버림을 당한다는 말은 쓸모없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의인들은 죄를 짓지 못합니다. 계명을 못 어깁니다. 계명을 어기면 의인의 길을 떠난겁니다. 우리가 어떤지 돌아봐야합니다. 사람이 가치가 다 다르고, 그런데 오늘의 내가 사는 모습은 어떤 모습으로 살까? 어떤 사람을 만들어 갈까? 자기 편하게 하는 세상이니까 나 자신을 의인이라고 해서 이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귀한 사람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는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의인들은 옷차림이 누추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실례되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의인의 자손이 복을 받는데, 그 자손이 잘못했을 때, 다윗의 자손 솔로몬이 많은 복을 받았는데, 그 자손이 마지막에 잘못했을 때, 너희 아버지 때문에 용서해주겠다고 합니다. 의인의 자손들이 믿음이 부모처럼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부모를 닮는 신앙의 사람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특이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의인의 자손이 경제에 어려움 당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아주 작정을 하고 망하기를 작정하고 하면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의인의 자손이 밥을 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조심스럽게 살아서 의인 되기를 바라고 노력하고 의인이 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가 : 86장, 121장, 192장
본문 : 시편 37편 25절 ~ 37편 31절
제목 : 의인
시편은 시입니다. 말 그대로 시. 시들을 모아놓은 것이 시인데,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현실에서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자기들이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고 경험한 바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기도하고 노래한 것이 시가 되었습니다. 시는 많은 내용을 단어 하나하나에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있는 것이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 모르는데, 글 쓰는 것 중에서 시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고 상당히 머리 좋은 사람들, 생각이 깊고 그런 사람들이 주로 시인이라고 합니다. 동시에 시를 쓰는 사람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다 장단점이 있고 그래서 감수성이 풍부하고 감성이 풍부하고 그러면 참 장점이 많아서 모든 것을 보면 쉽게 넘어가지 않고 생각을 해서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면 이성이 약해서 그럴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 신앙 생활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 생활, 신앙 생활은 뭐하는 겁니까?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구원을 이루어간다는 것이 뭐지요? 쉽게 말하면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만들어가는 것. 그런 것이 구원이고, 그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참사람을 다른 말로 하면 의인입니다.
자기를 만들어가려면.. 집을 지으려면 무엇을 알아야합니까?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 위치를 알아야 짓습니다. 농사 짓는 사람은 흙의 성질을 알아야합니다. 애완견을 기르려면, 알고 길러야지 모르면은 오래 못 가서 죽고 말고 갖다버리겠죠. 요즘에는 갖다버리면 걸린답니다. 땅에 묻어도 걸린답니다. 그래서 애완동물 장례식을 치른답니다.
어쨌든 그래서 우리의 구원 신앙 생활은 사람을 만들어가고 자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관찰력이 좋고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논리력이 부족합니다. 이성면이 부족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닌데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반면에 논리가 밝은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을 금이라고 합니다. 잘 쓰면 사람을 수술해서 살리는데 잘못하면 죽입니다. 우리는 치우치지 않도록 애를 써야합니다.
다윗은 참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어떤 사람은 하늘이 파랗다고 하는데 빨간 안경은 끼고 보면 하늘이 빨갛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늘이 노랗다고 합니다. 다윗을 깨닫기를 내가 살아보니까 인생에서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했다. 이러면 버림 당하는 사람 있던데? 걸식한 사람 있던데? 이 사람은 깨달음이 불행한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의인은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사람들에게도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버려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빌라도의 아내가 그랬죠.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일도 행치 마소서 그 말 듣고 빌라도는 손을 씻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그 말 때문에 유대인들이 역사에 없는 비참한 말을 당했다고 하죠. 그래서 설교록에 자식을 많이 둔 부모는, 관에 들어가서도 입을 못 불린다고 합니다. 다윗은 보고 같은 인생을 살아도 어떤 사람은 못 느끼는데, 하나님의 의인은 절대 버림 받지 않는구나. 이걸 깨닫고 시로 썼습니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원래 종교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남다르게 봅니다. 전도사, 목사, 신부, 중 이러면 남다르게 봅니다. 요즘에는 제가 언제 들은 이야기인데, 서울 강남에 있는 술집에 VIP들은 중들이라는 말들이 있더군요. 그만큼 모든 종교들이 다 타락한 시대인데, 그래서 종일토록 은혜 베풀고 그 자손이 은혜 받는도다. 가진 것을 있는 대로 베풀어주니까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악은 피조물 중심이 악이고 선은 하나님 중심이 선입니다. 악과 선은 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공의는 공평입니다. 그 뒤에 보면은 30절입니까. 30절..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정에 이끌리다던지 이런 것이 없이 그대로 모든 것을 행한 것이 공의입니다. 법을 법대로 규칙은 규칙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이 있으니까 그대로 처분하시지 그걸 어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공의롭지 못한 의인은 의인이 아닙니다. 의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공의라는 것이 특별히 들어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의인을 사랑하십니다.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도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지혜입니다. 간사한 사람들, 뱀같은 지혜 꽤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향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의인이라는 것은 사람입니다. 의인. 의인은 옳은 사람입니다. 의인이 버림을 당하지 않고 의인의 자손이 걸식하지 않는다.
사람은 옳은 행동 한 번 했다고 의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의인이라고 그럴 때는 사람 자체가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가 배운대로 말하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지식입니다. 진실한 지식, 어떤 지식을 가졌냐에 따라서 사람이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지식을 잘못가지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의인의 지식을 가져야 의인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의는 도덕입니다. 세상의 인간관계 의는 공자가 만든 도덕입니다. 민족은 안중근 의사라고 하죠. 그 사람은 그 사람은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테러범의 두목이라고 합니다. 의인이라는 것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인데, 성경이 말하는 의인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가진대로 지식대로 행동이 따라가야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아야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우리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합니다. 동시에 사람이 또 객관이 부족한 사람 이런 사람이 있지요. 객관성이 부족한 사람. 내가 자기 주관이 뚜렷한데 이런 사람은 잘 피동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릴 때 서울에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은 20년 지나도 안 변합니다. 그러면 인물입니다. 신앙으로 잘만 하면. 변하지 않아야하는데.. 그래서 주관이 뚜렷한 사람은 객관성이 약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모른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이 알아듣는지를.. 사회성이라는 말은 객관성입니다. 내가 여기에 살면은 나도 일원이니까 다른 사람도 생각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객관성이 풍부한 사람은 그런 걸 너무 생각하니까 주관이 약하고 흔들리기 쉽습니다. 의인이 되는 첫 번째 단계가 뭡니까? 지식, 그 다음은 행위 그러면 사람은 저절로 되게 되어있는 겁니다. 오전 말씀을 다시 복습하면 의인은 단어적인 의미로 정의적인 의미로 의인은 첫째, 대속을 입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걸 다른 말로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왜 대속을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까? 의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 뜻대로 되어졌다는 뜻입니다. 100%하나님의 뜻으로만 되었다는 것이 의입니다. 그 뜻을 위해서 만들어진게 의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의인은 그런 사람. 우리 모두 그런 의미로 알아야합니다. 다음은 행위적으로 의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의라는 것은 자기 주관을 버리고 하나님을 주격 삼아서 행하는 것을 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하는 모든 행동, 말이든지 행동이든지 관계든지 하나님께 붙들려 사는 것이 의의 행동입니다. 조금 더 가까워졌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질적으로 의의 생활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경외는 높이고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높인다는 말은 그 분을 유일로 더 이상 높일 사람이 없는 그런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의인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워합니다. 강아지는 일반적으로 강아지가 아니고 개, 개는 호랑이 냄새만 나도 느낌만 있어도 마루 밑에 들어가서 오줌을 싼다고 하지요. 그게 두려우니까.. 하나님을 무서워하면 두려움은 저절로 생겨집니다. 본능적인 두려움. 저절로 그 분이 계심을 알고 저절로 두려워합니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를 맞아도 사자굴에 들어가도, 종으로 팔려가도 감옥에 가도, 의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피곤해도 그 분이 하라고 하시면 합니다. 계명을 어기는 의인은 없습니다. 어떤 경우도 계명을 어기지 못하고 지키는 사람. 그것이 본능이 되어있을 때 의인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의인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도 물질적으로 도덕적으로나 관계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덕을 세워야지요. 우리가 어떤지 돌아봐야합니다. 네 번째는 은혜를 베풉니다. 이런 사람이 의인입니다. 기억합시다. 의인은 단어 정의적으로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 의인은 의를 행하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의의 행동을 하는 사람. 세 번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고 덕을 세우고 남에게 은혜 베푸고 돕는 그런 사람이 의인입니다. 의인은 최종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모되는 우리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을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할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의인들이 사람들에게 고난 당할 때는 있습니다. 고난 당하는 것과 버림 당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의인이 핍박당하는 경우는 많죠. 그런데 의인은 아는 사람들은 참 존경하고 영접합니다. 그런데, 버림을 당한다는 말은 쓸모없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의인들은 죄를 짓지 못합니다. 계명을 못 어깁니다. 계명을 어기면 의인의 길을 떠난겁니다. 우리가 어떤지 돌아봐야합니다. 사람이 가치가 다 다르고, 그런데 오늘의 내가 사는 모습은 어떤 모습으로 살까? 어떤 사람을 만들어 갈까? 자기 편하게 하는 세상이니까 나 자신을 의인이라고 해서 이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귀한 사람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는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의인들은 옷차림이 누추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실례되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의인의 자손이 복을 받는데, 그 자손이 잘못했을 때, 다윗의 자손 솔로몬이 많은 복을 받았는데, 그 자손이 마지막에 잘못했을 때, 너희 아버지 때문에 용서해주겠다고 합니다. 의인의 자손들이 믿음이 부모처럼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부모를 닮는 신앙의 사람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특이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의인의 자손이 경제에 어려움 당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아주 작정을 하고 망하기를 작정하고 하면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의인의 자손이 밥을 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조심스럽게 살아서 의인 되기를 바라고 노력하고 의인이 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