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0일 주후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김동민2019-02-10조회 240추천 23
2019년 2월 10일 주일 오후
찬송가 : 173장, 176장
본문 : 마태복음 7장 13절 ~ 7장 14절
제목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기독교는 논리의 도라고 합니다. 논리는 이치라는 말입니다. 이치로 논리를 따져서 뭐든지 계산해 봐야하고 생각해 봐야합니다. 말을 하던지 듣던지 말을 맞춰서 맞는 가를 따져봐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은혜고 선물인 줄 압니다. 그런데 그것을 키워 나가야합니다. 그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부름꾼이나 종이 아니라 우리의 주권자이십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들 중에 하나가 게으른 겁니다. 움직이기 싫어하고 머리 쓰기 싫어하는 것, 따져보기 싫고 구별하기 싫고, 이것이 다 게으른 죄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움직이는 만큼 그 쪽으로 발달되고 그 쪽으로 되게 되어있지요.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라도 읽으면 읽은 만큼 알게 됩니다.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계속 읽고 생각해보면 알게 되고, 몸이 안 좋아도 움직이게 되면 몸이 익어지게 됩니다. 사람의 몸은 내 마음과 몸이 움직여야 믿음이 자라가지, 그렇지 않은데 자라갈 수가 없습니다. 성화라는 것은 거룩하게 변화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서 거룩하게 되는데, 세상을 향하면 세상을 닮아갑니다. 몸이 세상에 빠지면 그 쪽으로 계속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부터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성자 성녀도 계속 세상에 빠지면 타락하게 되어있습니다. 영원한 승자는 없습니다. 한 번 승자는 영원한 승자인가요? 아닙니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큰 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익숙하니까, 잘 가겠지요. 자기 생활이 되면 거부감 없이 더 잘 가지고.. 그래서 믿음으로 가는 길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가는겁니다. 믿음이 있으면 믿음으로 가고 없는 사람은 없는 만큼 발버둥 치고 따라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앞선 사람이 앞섰다고 게으르면은 앞선 사람을 쫓아갑니다. 그래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생각도 복 있게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복이 있게 생각합니다. 사랑하고만 살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미워하지 마라. 사람은 전지전능자가 아닙니다. 흠과 점과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자기가 완전자처럼 살려고 하면 힘들고 교만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소망 목적은 완전해지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지식적으로 성화적으로 행위적으로 완전해지려고 하다가 실수하면 멈추고 돌아켜서 다시는 안 하려고 해야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게으르고 어떤 사람은 너무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같은 말씀이고 같이 내려옵니다. 절대 예정이 우리는 맞는 말이고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 중 하니입니다. 절대 예정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예정이니까, 열심히 노력하면 예정입니다. 내가 깨끗이 사는 것도 예정입니다. 그리 사는 게 복 있는 사람입니다. 안 그런 사람은 게으름부리고, 죄 짓고, 놉니다. 그런 사람은 복이 없는 겁니다. 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했습니다 하면 네 하고 싶은대로 했지 하면 할 말 없는겁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똑같이 주시는데 받는 자세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내가 초가 되면은 햇빛에 녹아지고 내가 진흙이 되면 단단하게 굳어지지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리 만들어 두신겁니다. 세상은 보고 즐기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보고 깨달으라고.. 단순히 보고 즐기기 위해서 그러면 그것은 죄가 되기 쉽습니다. 저희 어렸을 때는 개떡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거 시꺼멓고 그런거. 그런 것도 없어서 못 먹었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래서 유행이라는 것은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음식도 유행도 돌고 다 도는 겁니다. 천하 없는 것들도 계속 하다보면 질려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우리가 볼 때 믿음으로 보면 좋은 겁니다. 모든 것을 다 믿음으로 하면 복되게 됩니다. 복되게 끌고 가고 복되게 하자.. 복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복되게 생각하고 복되게 판단합니다. 너는 인물이 잘났으니까, 너는 많이 배웠으니까, 너는 가까우니까.. 잘해주고 안 그러면 잘 안해주고.. 조선시대 500년 역사가 복수에 복수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은혜를 공평되게 내려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잘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심판 때에 가서 안 되게 됩니다. 시공 세계에 제한을 받는 인생들, 공간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지요. 공간 세계에 사는데 공간이 막힘이 없으면 공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간은 넓어야합니다. 빈 들판처럼. 그런데 보호를 받아야해서 칸막이를 만들었는데, 그 칸막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문입니다. 문 없는 칸막이는 감옥입니다. 감옥이 왜 감옥인가요? 들어가지도 못 하고 나오지도 못 하니까 감옥입니다. 문이라는 것은 공간 세계의 막힌 곳을 출입할 수 하게 해 주는 게 문입니다. 열어봐야 알 수 있게 해 주는 게 문이다. 공간 출입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건 비유입니다. 실제로 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좁은 문이 뭐냐. 사람의 일평생은 문으로 계속 되어져있고 그 문을 열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시고 우리가 가는 것이 그것이 인생이다 라는 것입니다. 문이 없다는 것은 나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우리는 미래를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하지만은 정확하게 따지면 내 앞길을 안다고 생각하고 내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잖습니까. 올 수도 있지만 안 올 수도 있는 겁니다. 예상을 하지만은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계획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은 그 미래는 하나님께 달렸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으니까 너희 중에 말하기를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1년을 가서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도다. 그렇다고 인생에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계획을 세우되, 하나님이 현실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아무것도 안 변합니까? 먼지도 변하고, 사람 마음도 변하고, 공기도 변합니다. 먹는 것을 먹을 까 말까..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는 겁니다. 항상 두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먹을 까 먹지말까 어떻게 먹을까 따져보는 겁니다. 항상 두 길로.. 우리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따져 보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입는 것도, 머리 모양도, 길을 가는 것도, 자기가 직업 선택하는 것도, 학교 진로 선택도, 사람 선택도 전부 다 있는 겁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선택이다. 인생이 선택하지 않으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한편으로..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결정하기 힘든데 아는 것은 쉽게 가는 겁니다. 그런데 모르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길이 있는데 길이 갈라졌습니다. 요즘은 네비게이션 틀면 되는데, 없으면 고민하게 됩니다. 선택을 해야하는 겁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문을 열고 가는 것인데 문이 두 종류가 있는데 항상 두 길입니다. 열 개가 있어도 크게 둘로 나눠놓습니다. 그래야지 길을 찾지 항상 두 길로.. 둘 중에서 하나는 좁은 길이 하나는 넓은 길입니다. 하나는 좁은 문 좁은 길은 생명길이고 하나 넓은 문 넓은 길은 사망길이니까 문제지요. 좁은 길은 무엇이냐, 첫째 넓은 문하고 하면 좁은 문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넓은 문은 반대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뭔가 구별을 해야하고 선택을 해야하고 결정을 해야 할 때 그 때는 크게 생각해보는겁니다. 모르겠으면 하나님 편이냐 사람 편이냐 따져보면 됩니다. 하나님 속에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나 좋게 안 하고 남편 좋게 했는데, 남편 좋게 한다고 하나님 싫어하시게 하면 자기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두 길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 하나는 인간 길이니까, 따져보면 다 나옵니다. 세상이 좋으면 넓은 길입니다. 결과적으로 좁은 문은 생명 길로 가는 것이고 넓은 문은 사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는 모든 것이 둘로 나누어져있고 가려서 가야한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이냐 사람이냐 할 때 하나님을 선택해야하는 것이지요. 오늘은 좀 짧게.. 문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하나님께서 만든 것이고 문을 열어주시는데 이것은 항상 현실이다.. 그래서 모든 현실은 미래가 닥친 것이고 모든 현실은 항상 새롭습니다. 1초 전의 현실은 아니잖습니까? 5초 전의 현실도 아닙니다. 공간이 활동하면 우리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다 달라집니다. 사람이 쏟은 말을 현대 과학으로 다 찾을 수 있습니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를 다 담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를 전부다 돌릴 수 있는 기술이 나올겁니다. 그거 다 심판입니다. 물리적인 것이기 떄문에.. 우리가 하는 모든 말.. 같은 현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평생을 살아가는데 평생은 문입니다. 그 두 분은 두 결정이고 두 판단이고 두 걸음입니다. 어느 쪽으로 가느냐 선택에 따라서 되어있고 그 책임은 자기가 지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부인해도 되게 되어지는 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 하나는 좁은 문이고 하나는 넓은 문입니다. 좁은 문은 생명 문이고 넓은 문은 사망 길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면 좁은 문이고 사람에게 속하면 넓은 문입니다. 병원에 가니까 인본주의, 인본주의라는 말을 싫어하는 곳은 없습니다. 모든 인류의 목표가 인본주의입니다. 그 인본주의 앞에 어떤 것도 설 수 없는데, 그 인본주의가 하나님 앞에 대적이 되는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갈려면 이 세상과 대립이 되고 마찰이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인본 주의는 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성경은 너희들은 악을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인본주의, 악으로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구별을 해야합니다. 나는 손해보겠다. 그런데 너 말고 너 사랑하는 아브라함처럼 아브라함은 바치라면 떨어지겠죠. 그런데 이삭을 내놔라하면 바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좋아서 바쳤죠. 너 믿음 지키면 너 부모 감옥간다. 너 부모 죽는다. 왜 나를 붙들고 쉬운 일인데.. 그게 어려운 겁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손에나 이마에 666의 표를 받지 않은 자는 짐승에게 해를 받게 되는데 마지막 가보면 그게 문제입니다. 마지막 끝에는 사람이 될 것인데, 거기 가기 까지 경제 문제가 되게됩니다. 하나님과 제물을.. 그래서 비유적으로 돈을 갖다 놨습니다. 그렇게 돈의 위력은 크다는 말이죠. 하나님이냐 인간이냐. 사람 좋게 이 세상 좋게 넓은 길 가면은 자기가 책임을 지고 면할 수 없는 겁니다. 두려움도 둘입니다. 세상을 두려워 하느냐, 사람을 두려워하느냐.. 일시적인 두려움 때문에 영원한 두려움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넓은 문입니다. 그러니까 조삼모사.. 아침에 4개 먹는 것이 넓은 문입니다. 사람이 가다보면 실수합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도 교역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행위는 실수 할 수 있다. 신앙 사상이 문제이다. 행위를 믿음은 행위인데 지금 그런 게 아니라 인식, 사상. 두 문이 있고 두 길이 있습니다. 넓은 길 좁은 길... 그 중에 뭘 갈 것인가.. 멀리 보는 겁니다. 넓은 문은 인간에게 세상에게 사망에 속한 것... 그런 것들을 보면서 좁은 길로 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가 : 173장, 176장
본문 : 마태복음 7장 13절 ~ 7장 14절
제목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기독교는 논리의 도라고 합니다. 논리는 이치라는 말입니다. 이치로 논리를 따져서 뭐든지 계산해 봐야하고 생각해 봐야합니다. 말을 하던지 듣던지 말을 맞춰서 맞는 가를 따져봐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은혜고 선물인 줄 압니다. 그런데 그것을 키워 나가야합니다. 그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부름꾼이나 종이 아니라 우리의 주권자이십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들 중에 하나가 게으른 겁니다. 움직이기 싫어하고 머리 쓰기 싫어하는 것, 따져보기 싫고 구별하기 싫고, 이것이 다 게으른 죄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움직이는 만큼 그 쪽으로 발달되고 그 쪽으로 되게 되어있지요.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라도 읽으면 읽은 만큼 알게 됩니다.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계속 읽고 생각해보면 알게 되고, 몸이 안 좋아도 움직이게 되면 몸이 익어지게 됩니다. 사람의 몸은 내 마음과 몸이 움직여야 믿음이 자라가지, 그렇지 않은데 자라갈 수가 없습니다. 성화라는 것은 거룩하게 변화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서 거룩하게 되는데, 세상을 향하면 세상을 닮아갑니다. 몸이 세상에 빠지면 그 쪽으로 계속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부터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성자 성녀도 계속 세상에 빠지면 타락하게 되어있습니다. 영원한 승자는 없습니다. 한 번 승자는 영원한 승자인가요? 아닙니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큰 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익숙하니까, 잘 가겠지요. 자기 생활이 되면 거부감 없이 더 잘 가지고.. 그래서 믿음으로 가는 길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가는겁니다. 믿음이 있으면 믿음으로 가고 없는 사람은 없는 만큼 발버둥 치고 따라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앞선 사람이 앞섰다고 게으르면은 앞선 사람을 쫓아갑니다. 그래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생각도 복 있게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복이 있게 생각합니다. 사랑하고만 살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미워하지 마라. 사람은 전지전능자가 아닙니다. 흠과 점과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자기가 완전자처럼 살려고 하면 힘들고 교만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소망 목적은 완전해지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지식적으로 성화적으로 행위적으로 완전해지려고 하다가 실수하면 멈추고 돌아켜서 다시는 안 하려고 해야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게으르고 어떤 사람은 너무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같은 말씀이고 같이 내려옵니다. 절대 예정이 우리는 맞는 말이고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 중 하니입니다. 절대 예정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예정이니까, 열심히 노력하면 예정입니다. 내가 깨끗이 사는 것도 예정입니다. 그리 사는 게 복 있는 사람입니다. 안 그런 사람은 게으름부리고, 죄 짓고, 놉니다. 그런 사람은 복이 없는 겁니다. 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했습니다 하면 네 하고 싶은대로 했지 하면 할 말 없는겁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똑같이 주시는데 받는 자세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내가 초가 되면은 햇빛에 녹아지고 내가 진흙이 되면 단단하게 굳어지지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리 만들어 두신겁니다. 세상은 보고 즐기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보고 깨달으라고.. 단순히 보고 즐기기 위해서 그러면 그것은 죄가 되기 쉽습니다. 저희 어렸을 때는 개떡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거 시꺼멓고 그런거. 그런 것도 없어서 못 먹었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래서 유행이라는 것은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음식도 유행도 돌고 다 도는 겁니다. 천하 없는 것들도 계속 하다보면 질려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우리가 볼 때 믿음으로 보면 좋은 겁니다. 모든 것을 다 믿음으로 하면 복되게 됩니다. 복되게 끌고 가고 복되게 하자.. 복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복되게 생각하고 복되게 판단합니다. 너는 인물이 잘났으니까, 너는 많이 배웠으니까, 너는 가까우니까.. 잘해주고 안 그러면 잘 안해주고.. 조선시대 500년 역사가 복수에 복수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은혜를 공평되게 내려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잘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심판 때에 가서 안 되게 됩니다. 시공 세계에 제한을 받는 인생들, 공간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지요. 공간 세계에 사는데 공간이 막힘이 없으면 공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간은 넓어야합니다. 빈 들판처럼. 그런데 보호를 받아야해서 칸막이를 만들었는데, 그 칸막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문입니다. 문 없는 칸막이는 감옥입니다. 감옥이 왜 감옥인가요? 들어가지도 못 하고 나오지도 못 하니까 감옥입니다. 문이라는 것은 공간 세계의 막힌 곳을 출입할 수 하게 해 주는 게 문입니다. 열어봐야 알 수 있게 해 주는 게 문이다. 공간 출입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건 비유입니다. 실제로 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좁은 문이 뭐냐. 사람의 일평생은 문으로 계속 되어져있고 그 문을 열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시고 우리가 가는 것이 그것이 인생이다 라는 것입니다. 문이 없다는 것은 나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우리는 미래를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하지만은 정확하게 따지면 내 앞길을 안다고 생각하고 내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잖습니까. 올 수도 있지만 안 올 수도 있는 겁니다. 예상을 하지만은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계획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은 그 미래는 하나님께 달렸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으니까 너희 중에 말하기를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1년을 가서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도다. 그렇다고 인생에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계획을 세우되, 하나님이 현실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아무것도 안 변합니까? 먼지도 변하고, 사람 마음도 변하고, 공기도 변합니다. 먹는 것을 먹을 까 말까..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는 겁니다. 항상 두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먹을 까 먹지말까 어떻게 먹을까 따져보는 겁니다. 항상 두 길로.. 우리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따져 보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입는 것도, 머리 모양도, 길을 가는 것도, 자기가 직업 선택하는 것도, 학교 진로 선택도, 사람 선택도 전부 다 있는 겁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선택이다. 인생이 선택하지 않으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한편으로..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결정하기 힘든데 아는 것은 쉽게 가는 겁니다. 그런데 모르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길이 있는데 길이 갈라졌습니다. 요즘은 네비게이션 틀면 되는데, 없으면 고민하게 됩니다. 선택을 해야하는 겁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문을 열고 가는 것인데 문이 두 종류가 있는데 항상 두 길입니다. 열 개가 있어도 크게 둘로 나눠놓습니다. 그래야지 길을 찾지 항상 두 길로.. 둘 중에서 하나는 좁은 길이 하나는 넓은 길입니다. 하나는 좁은 문 좁은 길은 생명길이고 하나 넓은 문 넓은 길은 사망길이니까 문제지요. 좁은 길은 무엇이냐, 첫째 넓은 문하고 하면 좁은 문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넓은 문은 반대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뭔가 구별을 해야하고 선택을 해야하고 결정을 해야 할 때 그 때는 크게 생각해보는겁니다. 모르겠으면 하나님 편이냐 사람 편이냐 따져보면 됩니다. 하나님 속에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나 좋게 안 하고 남편 좋게 했는데, 남편 좋게 한다고 하나님 싫어하시게 하면 자기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두 길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 하나는 인간 길이니까, 따져보면 다 나옵니다. 세상이 좋으면 넓은 길입니다. 결과적으로 좁은 문은 생명 길로 가는 것이고 넓은 문은 사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는 모든 것이 둘로 나누어져있고 가려서 가야한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이냐 사람이냐 할 때 하나님을 선택해야하는 것이지요. 오늘은 좀 짧게.. 문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하나님께서 만든 것이고 문을 열어주시는데 이것은 항상 현실이다.. 그래서 모든 현실은 미래가 닥친 것이고 모든 현실은 항상 새롭습니다. 1초 전의 현실은 아니잖습니까? 5초 전의 현실도 아닙니다. 공간이 활동하면 우리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다 달라집니다. 사람이 쏟은 말을 현대 과학으로 다 찾을 수 있습니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를 다 담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를 전부다 돌릴 수 있는 기술이 나올겁니다. 그거 다 심판입니다. 물리적인 것이기 떄문에.. 우리가 하는 모든 말.. 같은 현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평생을 살아가는데 평생은 문입니다. 그 두 분은 두 결정이고 두 판단이고 두 걸음입니다. 어느 쪽으로 가느냐 선택에 따라서 되어있고 그 책임은 자기가 지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부인해도 되게 되어지는 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 하나는 좁은 문이고 하나는 넓은 문입니다. 좁은 문은 생명 문이고 넓은 문은 사망 길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면 좁은 문이고 사람에게 속하면 넓은 문입니다. 병원에 가니까 인본주의, 인본주의라는 말을 싫어하는 곳은 없습니다. 모든 인류의 목표가 인본주의입니다. 그 인본주의 앞에 어떤 것도 설 수 없는데, 그 인본주의가 하나님 앞에 대적이 되는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갈려면 이 세상과 대립이 되고 마찰이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인본 주의는 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성경은 너희들은 악을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인본주의, 악으로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구별을 해야합니다. 나는 손해보겠다. 그런데 너 말고 너 사랑하는 아브라함처럼 아브라함은 바치라면 떨어지겠죠. 그런데 이삭을 내놔라하면 바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좋아서 바쳤죠. 너 믿음 지키면 너 부모 감옥간다. 너 부모 죽는다. 왜 나를 붙들고 쉬운 일인데.. 그게 어려운 겁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손에나 이마에 666의 표를 받지 않은 자는 짐승에게 해를 받게 되는데 마지막 가보면 그게 문제입니다. 마지막 끝에는 사람이 될 것인데, 거기 가기 까지 경제 문제가 되게됩니다. 하나님과 제물을.. 그래서 비유적으로 돈을 갖다 놨습니다. 그렇게 돈의 위력은 크다는 말이죠. 하나님이냐 인간이냐. 사람 좋게 이 세상 좋게 넓은 길 가면은 자기가 책임을 지고 면할 수 없는 겁니다. 두려움도 둘입니다. 세상을 두려워 하느냐, 사람을 두려워하느냐.. 일시적인 두려움 때문에 영원한 두려움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넓은 문입니다. 그러니까 조삼모사.. 아침에 4개 먹는 것이 넓은 문입니다. 사람이 가다보면 실수합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도 교역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행위는 실수 할 수 있다. 신앙 사상이 문제이다. 행위를 믿음은 행위인데 지금 그런 게 아니라 인식, 사상. 두 문이 있고 두 길이 있습니다. 넓은 길 좁은 길... 그 중에 뭘 갈 것인가.. 멀리 보는 겁니다. 넓은 문은 인간에게 세상에게 사망에 속한 것... 그런 것들을 보면서 좁은 길로 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