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0일 주전 - 찾기 힘든 좁은 문
김동민2019-02-10조회 444추천 51
2019년 2월 10일 주일 오전
찬송가 : 3장, 44장
본문 : 마태복음 7장 13절 ~ 7장 14절
제목 : 찾기 힘든 좁은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좁은 문은 들어가기도 힘들고 찾기도 힘들어서 찾는 사람도 작고, 찾는 사람도 많이 없습니다. 넓은 문은 가기도 쉽고 찾기도 쉬워서 많은 사람들이 간다. 당연한 것입니다.
넓은 문을 찾아 들어가는 게 좋은 거지요. 평안하고 순탄하고.
좁은 길은 계속 넓혀 가지요. 편리한 생활을 추구할수록 문을 크고 높게 만듭니다. 우리가 어릴 때 문은 매우 좁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편리하게 넓고 높아졌습니다.
사람들은 다 넓고 높은 것은 좋아하는 겁니다. 하지만 성경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물질적인 문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비유를 하셔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도 은혜 받은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가롯 유다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유다는 똑똑하고 머리가 좋고 정치성이 좋아서 경제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먹는 그런 짓을 했지요.
그러니까 같은 말을 듣더라도 사람마다 다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말씀이 이 사람에게 다르고 저 사람에게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말씀을 전할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마음 속에 듣는 정도와 깨닫는 정도가 다릅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지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직접하신 말씀입니다. 마태가 주님이 하신 말씀을 직접 기록하신 겁니다. 사람의 말이 아닌겁니다. 물론 해석을 하니까 인간의 주관의 말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듣는 분들이 잘 판단을 하시고 구별을 하셔야합니다.
지금 말하는 것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씀을 하는데 듣는 차이, 깨닫는 차이, 실상의 말씀의 권위성의 차이, 정도의 느끼는 차이는 다 다르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 같은 말씀을 듣는데, 왜 사람마다 차이가 날까. 세상 지식이라는 것은 세상 지식이니까 그 두뇌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게 세성 모든 것의 지식인데 성경의 말씀은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은 세상에 머리가 좋고 글을 많이 읽고 머리가 좋고 그런 사람들에게 오히려 하나님 말씀이 안 들립니다. 오히려 어린 아이들, 이 세상 공부를 못 한 그런 분들이 말씀을 잘 깨닫습니다. 왜 그럴까 우리는 의문을 가져봐야 합니다.
얼마 전 우리는 하나님을 공부했고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 들어도 그런가 보다 그리 생각하거나 어떤 사람은 두려워 떠는 사람 차이가 많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걸 아는 사람은 잘 깨닫고 두려워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말씀도 감각 없이 그리 들리게 되는 것인데 믿음의 차이는 어디서 왜 생기는 것인가, 그 신앙의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 것인가. 해는 하나 밖에 없지요. 그런데 태양이 내리쬐는 열이라던지 그런 것은 동일합니다. 이 땅에 있는 지구 상에 있는 모든 물질에게 동일하게 내려쬡니다. 위치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우리 나라로 말하면 동서는 달라도 부산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전부 다 같게 받는 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다 좋은데 빛이 싫은 사람도 있고 해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가 오면은 어떤 존재에는 해로울 수 있는데 안 그럴 수도 있습니다. 태양이 잘 비추어 주는데 그것이 다르게 비추어지고 받아들이는 것은 존재 문제인 겁니다. 양초는 볕을 쬐면은 녹아버리고 진흙은 볕을 쬐면 단단하게 굳어버립니다. 성분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 것처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자존자다, 영원 불변자다. 하면 지공과 지성의 하나님입니다. 그 중에서 지공이라는 말은 그 이상이 없는, 가장 끝, 궁극이라는 말입니다. 평평하다는 말입니다. 법원의 상징, 저울처럼.. 공위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잘 해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못 해 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사랑을 베푸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같은 은혜, 대속을 주시는데 보이는 은혜와 보이지 않는 은혜도 동등하게 주시는데 왜 차이나게 받아들이느냐, 이것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람마다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완전자다, 전지전능자다, 사랑이다 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인정을 하고 그 말씀대로 수용을 하고 살아가려고 상대하고 순종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리 할려면은 우리 사람 속에는 막 태어난 갓난 아이가 아닌 이상 잘 안됩니다.
아이가 사탕을 먹으려고 합니다. 엄마가 이가 상하는 걸 아니까 먹지 말지 하면 아이가 먹고 싶은 그 마음은 주관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안 좋은 거야 하면 아이가 그러면 아 그렇구나하고 순종하면 그 아이는 엄마 말씀을 믿는 겁니다. 대신에 자기 주관을 꺾었습니다. 자기 마음을 부인하고 순종한겁니다. 그런데 안 그러면 안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여러 가지 면으로 많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다니고, 많이 겪어보고, 많은 것을 두뇌 속에 받아둔 사람들은 믿기 어렵습니다. 논리적으로 그런 겁니다. 대통령의 말도 안 보이면 모르는데,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인하면은 힘듭니다. 믿음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저절로 생겨지는 것이 뭡니까? 진화론 주장자들의 핵심, 이 모든 것은 저절로 생긴 것이다. 저절로 생긴 것이 저절로 생긴 것을 보면은 그 속에 논리라던지, 체계라던지 그런 것들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아야합니다. 그런데 모기 한 마리 벌레 하나, 식물의 작은 이끼 하나까지도 들여다 보면 절대 저절로 생길 수 없는 이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참 잘난 사람들, 믿는 사람들 많습니다. 얼마 전 다른 것 때문에 기독교 방송을 봤는데, 어떤 지식이 많으신 분이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을 설명을 잘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목회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어중간하게 배운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는 것이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밖에 나가면 쥐 죽은 듯이 그런 것들이 예배당 오면 큰 소리 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실제 살아봐야 합니다. 그래야지 아는 겁니다. 먹어봐야 하는 겁니다. 먹어 봤는데 제 주관대로 먹으면 안되는 겁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넓은 문도 있습니다. 문이 뭔가 생각을 해 봅시다. 문이 어떨 때 쓰는 겁니까? 사람이 사는 것은 시공간에 제한을 받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물질 세계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재를 받습니다. 이런 곳에서 문이 있는데 문이라는 것은 공간이라는 것은 칸막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칸막이가 있는데 막혀있는 칸은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는 겁니다. 막혀 있는 칸막이를 나올려면 문이 있어야하지요. 그래서 공간 세계에 시공 세계에 육을 가진 사람들에게 문이라는 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 없는 곳은 빈 들판이라는 곳입니다. 빈 들판은 굉장히 위험한 곳인데, 거기에 집을 지어서 칸막이를 만들었는데, 보호를 받으려고 칸막이를 만드는데, 절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문입니다. 없으면 감옥이 되지요. 문이라는 것은 인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은 사람이 만든 거지요. 사람이 만들지 않은 문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좁은 문, 시공 세계의 문이라는 것은 칸막이에 문이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칸막이에 달아놓은 것은 문이 붙어있어도 문 밖에 문 안에 뭐가 있는 지는 모르지요. 문을 열어봐야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문 밖에 뭐가 있는 지 알 수 있는 것이 문입니다. 이것을 제가 설명을 좀 드리는 것인데, 사람이 사는 세계에 칸막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문이라는 것은 닫혀있으면 벽과 마찬가지입니다. 열려 있어야지 들어가고 나갈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문의 의미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살아나가는 미래를 향한 과정과정을 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언제나 같이 있는 겁니다. 같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시공 세계에 사는 우리가 오늘 사는 우리가 내일은 열어 봐야 아는 것이지요. 그래서 문은 열어봐야 아는데 이것은 세상 물질 문이고 여기에 나오는 문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저절로 생긴 문은 없습니다. 문이라는 것은 사람이 다 만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다음을 열고 들어가는 문은 전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겁니다. 그래서 문을 열기 전에는 모르는 거지요. 그래서 다음 순간이 와 봐야 아는 겁니다. 그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사람에게 모든 미래는 문으로 막혀져 있고 그 문을 열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현실 세계를 살아갈 수 있도록, 현실이라는 것을 만들어 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현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다음 생애 인생은 모르는 겁니다. 내일만 모릅니까 1분 앞날만 알아도 많은 생명이 구출 받을 수 있고 교통사고 하나도 안 날 수 있습니다. 1분 앞날만 알아도 모든 지진을 알 수 있고 사람을 엄청 많이 구출할 수 있습니다. 1분 전에만 깨달아도 어지간한 건물 속의 사람들 다 대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왜냐하면 문이 닫혀져 있으니까...
그런데 문이 두 가지가 있는데, 인생 살이에 닥치는 문이,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의 선택의 길이 둘이 있다 그 말입니다. 인생은 선택이라고 말하지요. 선택은 가려서 택한다는 말이지요. 선거라는 것도 같은 문맥이겠지요. 선택, 취할 것이냐 버릴 것이냐... 우리 앞에는 문이 있어서 열고 들어가는데 그 문은 항상 둘이 있습니다. 항상 두 문..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데 두 방법이 있습니다. 두 가지가 있으니까 선택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둘 다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한 길만 가도록 정해놨습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그 두 문이 있는데 하나는 좁은 문이 있고 하나는 넓은 길이 있씁니다.
좁은 문은 찾기도 어렵고 가기도 어렵습니다. 넓은 문은 찾기도 쉽고 가기도 쉽습니다.
좁은 문은 힘드니까 아무도 안 가려고 합니다. 넓은 문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겁니다
좁은 문 넓은 문이 있는데 넓은 문으로 많이 갑니다. 왜냐하면 가기 쉽거든요. 좁은 문은ㅇ? 찾기도 힘듭니다. 좁다는 말은 이번 주일 학교 때 흉패를 만들면서 장광이 얼마? 크기가? 정확하게.. 장이 한 뼘 광이 한 뼘.. 장은 정확이고 광은 공평입니다. 좁은 길은 정확이라는 말입니다. 정확한 겁니다. 딱 맞는 것. 사람들은 대충 대충을 다 좋아하지요.
우리는 눈을 뜨고 봐야합니다. 그것도 따져 보는 겁니다. 그래서 좁은 문은 정확한 겁니다. 옳은 거, 바른 것 따져보는 겁니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곶감이 달다고 먹어 재끼면 되는 거지요. 탈이 나거나 말거나.. 그런데 나중에 탈이 나는 거지요. 자기 주변 정리 정돈은 해야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맞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믿는 사람은 깨끗합니다. 냄새나게, 더럽게 살지는 않습니다. 자신 생활 주변 환경 다 따져서 하는 겁니다. 그렇게 대충 대충 해서 하는 게 뭡니까? 그게 넓은 문을 사는 겁니다. 넓은 문이 뭐냐? 좁은 문이라는 것은 하나님에 속한 것입니다. 좁은 문은 하나님에 속했고 넓은 문은 인간에게 속했습니다. 좁은 문은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넓은 문은 인간에게 속했습니다. 또 좁은 문은 하늘에 속한 겁니다. 넓은 문은 땅에, 이 세상에 속한 겁니다. 사람들은 넓은 문을 가지 좁은 문을 가진 않습니다. 좁은 문은 생명에 속한 것인데 넓은 문은 죽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시신이 되면 죽었다고 하는데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끊어져서 하나님과 상관없고 인간에게 가깝고 그런 것이 죽은 것이고 넓은 문입니다. 사람들이 죽을 줄 아는 사람을 미련하다고 합니다. 잠언 전도서에 미련한 것을 많이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 지혜롭고 인간에 대해서는 미련해서.. 그래서 넓은 길로 가면 마지막이 멸망인데 그것이 문 앞에 있고 가까이 있으면 아는데 모르니까.. 그 먼 곳에 있으니까 모르는 겁니다. 순종하면은 아는데 겁이 나는데..
사탕을 많이 먹으면 사람을 다 삼켜버리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왜 먹습니까? 안 좋은 것은 나중이고 지금 맛있으니까 먹는 겁니다. 커피도.. 참 그런데 일반적인 원두 커피는 몸에 해롭지 않답니다. 그런데 설탕이 많이 들어가면 해롭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먹는데 그것이 넓은 길로 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좁은 문은 생명이 멀리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서 안 가는 겁니다. 모르니까...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좁은 길로 들어가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야 가는 겁니다. 안 열어주면 못 가는 게 인생입니다. 오늘이라도 하나님께서 문을 닫아버리면 현실은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문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좁은 문이 있고 넓은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좁은 길로 가야하는데 사람들이 편하니까 넓은 길로 갑니다.
우리 앞에는 항상 두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기 가야 하나 저기 가야 하나.. 언제나 둘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좁은 길이고 다른 하나는 넓은 길입니다. 우리는 힘들고 괴로워도 꺾여가야지 생명 길이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으로 가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를 생각해봐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가 : 3장, 44장
본문 : 마태복음 7장 13절 ~ 7장 14절
제목 : 찾기 힘든 좁은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좁은 문은 들어가기도 힘들고 찾기도 힘들어서 찾는 사람도 작고, 찾는 사람도 많이 없습니다. 넓은 문은 가기도 쉽고 찾기도 쉬워서 많은 사람들이 간다. 당연한 것입니다.
넓은 문을 찾아 들어가는 게 좋은 거지요. 평안하고 순탄하고.
좁은 길은 계속 넓혀 가지요. 편리한 생활을 추구할수록 문을 크고 높게 만듭니다. 우리가 어릴 때 문은 매우 좁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편리하게 넓고 높아졌습니다.
사람들은 다 넓고 높은 것은 좋아하는 겁니다. 하지만 성경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물질적인 문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비유를 하셔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도 은혜 받은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가롯 유다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유다는 똑똑하고 머리가 좋고 정치성이 좋아서 경제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먹는 그런 짓을 했지요.
그러니까 같은 말을 듣더라도 사람마다 다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말씀이 이 사람에게 다르고 저 사람에게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말씀을 전할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마음 속에 듣는 정도와 깨닫는 정도가 다릅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지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직접하신 말씀입니다. 마태가 주님이 하신 말씀을 직접 기록하신 겁니다. 사람의 말이 아닌겁니다. 물론 해석을 하니까 인간의 주관의 말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듣는 분들이 잘 판단을 하시고 구별을 하셔야합니다.
지금 말하는 것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씀을 하는데 듣는 차이, 깨닫는 차이, 실상의 말씀의 권위성의 차이, 정도의 느끼는 차이는 다 다르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 같은 말씀을 듣는데, 왜 사람마다 차이가 날까. 세상 지식이라는 것은 세상 지식이니까 그 두뇌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게 세성 모든 것의 지식인데 성경의 말씀은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은 세상에 머리가 좋고 글을 많이 읽고 머리가 좋고 그런 사람들에게 오히려 하나님 말씀이 안 들립니다. 오히려 어린 아이들, 이 세상 공부를 못 한 그런 분들이 말씀을 잘 깨닫습니다. 왜 그럴까 우리는 의문을 가져봐야 합니다.
얼마 전 우리는 하나님을 공부했고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 들어도 그런가 보다 그리 생각하거나 어떤 사람은 두려워 떠는 사람 차이가 많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걸 아는 사람은 잘 깨닫고 두려워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말씀도 감각 없이 그리 들리게 되는 것인데 믿음의 차이는 어디서 왜 생기는 것인가, 그 신앙의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 것인가. 해는 하나 밖에 없지요. 그런데 태양이 내리쬐는 열이라던지 그런 것은 동일합니다. 이 땅에 있는 지구 상에 있는 모든 물질에게 동일하게 내려쬡니다. 위치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우리 나라로 말하면 동서는 달라도 부산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전부 다 같게 받는 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다 좋은데 빛이 싫은 사람도 있고 해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가 오면은 어떤 존재에는 해로울 수 있는데 안 그럴 수도 있습니다. 태양이 잘 비추어 주는데 그것이 다르게 비추어지고 받아들이는 것은 존재 문제인 겁니다. 양초는 볕을 쬐면은 녹아버리고 진흙은 볕을 쬐면 단단하게 굳어버립니다. 성분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 것처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자존자다, 영원 불변자다. 하면 지공과 지성의 하나님입니다. 그 중에서 지공이라는 말은 그 이상이 없는, 가장 끝, 궁극이라는 말입니다. 평평하다는 말입니다. 법원의 상징, 저울처럼.. 공위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잘 해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못 해 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사랑을 베푸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같은 은혜, 대속을 주시는데 보이는 은혜와 보이지 않는 은혜도 동등하게 주시는데 왜 차이나게 받아들이느냐, 이것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람마다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완전자다, 전지전능자다, 사랑이다 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인정을 하고 그 말씀대로 수용을 하고 살아가려고 상대하고 순종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리 할려면은 우리 사람 속에는 막 태어난 갓난 아이가 아닌 이상 잘 안됩니다.
아이가 사탕을 먹으려고 합니다. 엄마가 이가 상하는 걸 아니까 먹지 말지 하면 아이가 먹고 싶은 그 마음은 주관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안 좋은 거야 하면 아이가 그러면 아 그렇구나하고 순종하면 그 아이는 엄마 말씀을 믿는 겁니다. 대신에 자기 주관을 꺾었습니다. 자기 마음을 부인하고 순종한겁니다. 그런데 안 그러면 안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여러 가지 면으로 많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다니고, 많이 겪어보고, 많은 것을 두뇌 속에 받아둔 사람들은 믿기 어렵습니다. 논리적으로 그런 겁니다. 대통령의 말도 안 보이면 모르는데,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인하면은 힘듭니다. 믿음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저절로 생겨지는 것이 뭡니까? 진화론 주장자들의 핵심, 이 모든 것은 저절로 생긴 것이다. 저절로 생긴 것이 저절로 생긴 것을 보면은 그 속에 논리라던지, 체계라던지 그런 것들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아야합니다. 그런데 모기 한 마리 벌레 하나, 식물의 작은 이끼 하나까지도 들여다 보면 절대 저절로 생길 수 없는 이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참 잘난 사람들, 믿는 사람들 많습니다. 얼마 전 다른 것 때문에 기독교 방송을 봤는데, 어떤 지식이 많으신 분이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을 설명을 잘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목회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어중간하게 배운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는 것이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밖에 나가면 쥐 죽은 듯이 그런 것들이 예배당 오면 큰 소리 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실제 살아봐야 합니다. 그래야지 아는 겁니다. 먹어봐야 하는 겁니다. 먹어 봤는데 제 주관대로 먹으면 안되는 겁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넓은 문도 있습니다. 문이 뭔가 생각을 해 봅시다. 문이 어떨 때 쓰는 겁니까? 사람이 사는 것은 시공간에 제한을 받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물질 세계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재를 받습니다. 이런 곳에서 문이 있는데 문이라는 것은 공간이라는 것은 칸막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칸막이가 있는데 막혀있는 칸은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는 겁니다. 막혀 있는 칸막이를 나올려면 문이 있어야하지요. 그래서 공간 세계에 시공 세계에 육을 가진 사람들에게 문이라는 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 없는 곳은 빈 들판이라는 곳입니다. 빈 들판은 굉장히 위험한 곳인데, 거기에 집을 지어서 칸막이를 만들었는데, 보호를 받으려고 칸막이를 만드는데, 절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문입니다. 없으면 감옥이 되지요. 문이라는 것은 인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은 사람이 만든 거지요. 사람이 만들지 않은 문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좁은 문, 시공 세계의 문이라는 것은 칸막이에 문이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칸막이에 달아놓은 것은 문이 붙어있어도 문 밖에 문 안에 뭐가 있는 지는 모르지요. 문을 열어봐야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문 밖에 뭐가 있는 지 알 수 있는 것이 문입니다. 이것을 제가 설명을 좀 드리는 것인데, 사람이 사는 세계에 칸막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문이라는 것은 닫혀있으면 벽과 마찬가지입니다. 열려 있어야지 들어가고 나갈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문의 의미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살아나가는 미래를 향한 과정과정을 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언제나 같이 있는 겁니다. 같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시공 세계에 사는 우리가 오늘 사는 우리가 내일은 열어 봐야 아는 것이지요. 그래서 문은 열어봐야 아는데 이것은 세상 물질 문이고 여기에 나오는 문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저절로 생긴 문은 없습니다. 문이라는 것은 사람이 다 만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다음을 열고 들어가는 문은 전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겁니다. 그래서 문을 열기 전에는 모르는 거지요. 그래서 다음 순간이 와 봐야 아는 겁니다. 그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사람에게 모든 미래는 문으로 막혀져 있고 그 문을 열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현실 세계를 살아갈 수 있도록, 현실이라는 것을 만들어 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현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다음 생애 인생은 모르는 겁니다. 내일만 모릅니까 1분 앞날만 알아도 많은 생명이 구출 받을 수 있고 교통사고 하나도 안 날 수 있습니다. 1분 앞날만 알아도 모든 지진을 알 수 있고 사람을 엄청 많이 구출할 수 있습니다. 1분 전에만 깨달아도 어지간한 건물 속의 사람들 다 대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왜냐하면 문이 닫혀져 있으니까...
그런데 문이 두 가지가 있는데, 인생 살이에 닥치는 문이,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의 선택의 길이 둘이 있다 그 말입니다. 인생은 선택이라고 말하지요. 선택은 가려서 택한다는 말이지요. 선거라는 것도 같은 문맥이겠지요. 선택, 취할 것이냐 버릴 것이냐... 우리 앞에는 문이 있어서 열고 들어가는데 그 문은 항상 둘이 있습니다. 항상 두 문..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데 두 방법이 있습니다. 두 가지가 있으니까 선택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둘 다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한 길만 가도록 정해놨습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그 두 문이 있는데 하나는 좁은 문이 있고 하나는 넓은 길이 있씁니다.
좁은 문은 찾기도 어렵고 가기도 어렵습니다. 넓은 문은 찾기도 쉽고 가기도 쉽습니다.
좁은 문은 힘드니까 아무도 안 가려고 합니다. 넓은 문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겁니다
좁은 문 넓은 문이 있는데 넓은 문으로 많이 갑니다. 왜냐하면 가기 쉽거든요. 좁은 문은ㅇ? 찾기도 힘듭니다. 좁다는 말은 이번 주일 학교 때 흉패를 만들면서 장광이 얼마? 크기가? 정확하게.. 장이 한 뼘 광이 한 뼘.. 장은 정확이고 광은 공평입니다. 좁은 길은 정확이라는 말입니다. 정확한 겁니다. 딱 맞는 것. 사람들은 대충 대충을 다 좋아하지요.
우리는 눈을 뜨고 봐야합니다. 그것도 따져 보는 겁니다. 그래서 좁은 문은 정확한 겁니다. 옳은 거, 바른 것 따져보는 겁니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곶감이 달다고 먹어 재끼면 되는 거지요. 탈이 나거나 말거나.. 그런데 나중에 탈이 나는 거지요. 자기 주변 정리 정돈은 해야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맞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믿는 사람은 깨끗합니다. 냄새나게, 더럽게 살지는 않습니다. 자신 생활 주변 환경 다 따져서 하는 겁니다. 그렇게 대충 대충 해서 하는 게 뭡니까? 그게 넓은 문을 사는 겁니다. 넓은 문이 뭐냐? 좁은 문이라는 것은 하나님에 속한 것입니다. 좁은 문은 하나님에 속했고 넓은 문은 인간에게 속했습니다. 좁은 문은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넓은 문은 인간에게 속했습니다. 또 좁은 문은 하늘에 속한 겁니다. 넓은 문은 땅에, 이 세상에 속한 겁니다. 사람들은 넓은 문을 가지 좁은 문을 가진 않습니다. 좁은 문은 생명에 속한 것인데 넓은 문은 죽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시신이 되면 죽었다고 하는데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끊어져서 하나님과 상관없고 인간에게 가깝고 그런 것이 죽은 것이고 넓은 문입니다. 사람들이 죽을 줄 아는 사람을 미련하다고 합니다. 잠언 전도서에 미련한 것을 많이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 지혜롭고 인간에 대해서는 미련해서.. 그래서 넓은 길로 가면 마지막이 멸망인데 그것이 문 앞에 있고 가까이 있으면 아는데 모르니까.. 그 먼 곳에 있으니까 모르는 겁니다. 순종하면은 아는데 겁이 나는데..
사탕을 많이 먹으면 사람을 다 삼켜버리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왜 먹습니까? 안 좋은 것은 나중이고 지금 맛있으니까 먹는 겁니다. 커피도.. 참 그런데 일반적인 원두 커피는 몸에 해롭지 않답니다. 그런데 설탕이 많이 들어가면 해롭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먹는데 그것이 넓은 길로 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좁은 문은 생명이 멀리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서 안 가는 겁니다. 모르니까...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좁은 길로 들어가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야 가는 겁니다. 안 열어주면 못 가는 게 인생입니다. 오늘이라도 하나님께서 문을 닫아버리면 현실은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문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좁은 문이 있고 넓은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좁은 길로 가야하는데 사람들이 편하니까 넓은 길로 갑니다.
우리 앞에는 항상 두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기 가야 하나 저기 가야 하나.. 언제나 둘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좁은 길이고 다른 하나는 넓은 길입니다. 우리는 힘들고 괴로워도 꺾여가야지 생명 길이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으로 가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를 생각해봐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