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7.주후 - 말씀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김동민2019-01-27조회 293추천 29
2019년 1월 27일 주일 오후
찬송가 : 43장, 121장, 74장
본문 : 요한복음 6장 66절 ~ 6장 69절
제목 : 말씀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이 계셨을 때도 은혜받지 못 한 사람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왜 말씀을 깨닫지 못했는가, 하면 백 목사님의 말씀으로는 성인이 되어야 성인의 뜻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되어봐야 그 심정을 압니다. 늙어보면 늙은 사람은 압니다. 그래서 너희가 늙어 봤냐, 나는 젊어봤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우리 심정을 모르는 것 같아도 시대를 다 알지는 못라도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다 압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지 다른 건 없습니다. 젊을 때 어땠는지는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늙어보지 못해서 그 심정을 모릅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말씀을 깨닫지 못한 이유는 세상만 보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만 보고 따라다녀서 임금을 시키려고 합니다. 중국의 주석 정도 되면은 할까, 조금한 나라의 왕 노릇은 안 합니다. 유대 나라 왕이 되어봐야 로마 식민지 앞잡이인데, 주님은 하늘나라 천국을 보여주려고 오셨지 그러려고 오신게 아닌데, 제자들의 눈에는 세상에 있는 것만 관심이 있고 생각을 하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육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영은 생각안 하고, 내가 좋게 기쁘게.. 그렇게 보고만 사니까 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서 던져버리고 갑니다. 영생을 얻기위해서 온 청년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청년이 다 했는데,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고 하니까 돈이 많은 부자 청년이라서 그것을 못했습니다. 어떤 장로님이 정말 좋은 훌륭한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다 좋은데 자존심 건들이면 못 넘깁니다. 그 부자 청년의 재물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라 다녀도 주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니까, 하늘에 속해서 하늘의 말씀이 들리고 영을 알아야 영의 말씀이 들리는겁니다. 다윗의 신앙 사상을 말할 때 다윗의 신앙 사상을 동경해야 들립니다. 그런데 롯의 신앙 사상을 가진 사람에게 아브라함의 것을 이야기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60절 보실까요,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첫째, 참고로 기억을 하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이 된 만큼 들려집니다.
주님이 너희도 가려느냐 하니까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 따라합시다. 영생의 말씀.
우리가 생명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연결입니다. 연결의 반대는 단절이고 사망입니다. 모든 것은 다 연결이 되어있어야 삽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겁니다. 하나님께서 공짜로 은혜로 주신 것이 생명입니다. 영생은 무엇인가, 생명의 활동, 기능의 작용이라고 하였습니다. 중생은 뭡니까. 중생은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겁니다. 그리고 영생이라는 것은 생명이 생명의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있어도 그 기능을 하지 못하면 죽은겁니다. 살아있는 것이 살아있는 작용을 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기본적으로 은혜입니다. 믿음은 은혜고 구원도 은혜고, 기본 구원도 은혜고 건설 구원그 그 위의 은혜라.
영생은 기본적으로 은혜입니다. 그러나 영생은 실질적으로 우리가 이루어 가는 것이 은혜입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말씀은 다시 말하면 영생을 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고, 영생을 이루어가게 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생은 이루어 가는 것이고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우리의 건설구원은, 영생을 하는 것이 건설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생 말씀이라는 것은 영생을 이루어 나가게 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하게 하는 말씀, 영생을 이루게 하는 말씀. 작용을 하게하는 그 말씀. 그래서 말씀을 공부하는 겁니다. 말씀은 곧 지식인데, 지식은 크게 말하면 지식을 두 개 말하면 하나는 인지, 껍데기로 아는 겁니다. 또 하나는 수용적인 지식, 자기가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런데 인지적인 지식은 내가 주격이 되는 겁니다. 내가 주인 된 상태에서 그 지식을 내 마음대로 활용하는겁니다. 이것이 인지적인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우리가 받을 때 인지로 받아야 합니까 수용으로 받아야합니까?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인지로 받으면 됩니다. 내가 그것의 종 될 필요가 없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고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지식을 내 종으로 쓸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점점 배워나가다가, 체질에 따라 다르지만은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재미는 참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세 네 살 되면, 뭔지 물어보는 것이 계속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스펀지가 있어서 잘 받아들인다고 하죠. 세 살 때 배운 것은 잘 안 잊어버린다고 하죠. 많아지는데, 이상하게 신앙이 점점 퇴보합니다. 어릴 때는 그냥 받아들이다가 갈수록 그것을 인지적인 지식이 아닌 수용적인 지식으로 받아들여 버립니다. 그 사실과 지식을 바꿔버립니다. 지식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버리니까 그 때부터 신앙은 가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세상 지식이 참 무서운 겁니다. 이 세상의 지식은 인지로만 알면 됩니다. 그리 말 하더라 그렇다더라 하고 받아들이면 되지, 학자가 교수가 말하니까 아 그렇구나 하면 안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구나, 저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구나...
우리나라는 머리가 좋은 사람들의 생각하는 기준이 전부 다 같던가요? 그러면서 사람의 깊이를 알아야합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자신의 성향과 정치 사상 등에 따라서 바뀝니다. 같은 사람들이 하는데 정권이 바뀌니까 적폐가 되어버립니다. 이 세상 지식은 그러니까 모두 다 인지로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냥 그렇구나. 그렇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시험지는 쓸 때 그러면 됩니다만은 받아들이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수용적인 인식으로 받아들여야합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지행합일입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알아야하는데.. 자기를 부인해야죠. 자기을 갖다 버리라는 뜻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복속시켜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수용적으로 받습니다. 세상 모든 지식은 무슨 지식이라도 인지적으로만 받으면 됩니다. 수용적으로 받으면 자기를 믿는 사람으로써는 팔아먹는 것이고 버리는 것이 되는 겁니다. 돈만 사람을 종 삼는 것이 아닙니다. 돈의 종... 사랑의 종.. 지식의 종이 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세상 지식은 어떤 종류든지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짐승보다 참고만 하는 겁니다. 오늘 오전에 공부한 일곱 가지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 지식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체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인간 지식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고, 그 뿌리는 마귀입니다. 마귀 지식입니다. 서울대, 무슨 대학교, 무슨 대학교 들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백 목사님과 신앙 사상이 다른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지식은 인간 지식이고 거짓 지식이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으니 얼마나 듣기 싫었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입니다. 그래서 껍데기로 지식으로 알고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자기를 부인하고 수용적으로 받으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다시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복습을 합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은 지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는 지식입니다. 무엇을 알게 하시는가... 말씀으라는 것은 무언가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꿀 먹은 벙어리. 무슨 뜻인가요? 꿀을 먹었습니다. 달고 맛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못 하니까 표현을 못 하지요. 말을 해라, 먹어보니까 어떻더냐? 말을 하면 아는데 말을 안 하니까..
내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고 상대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고...
하나님께서 대표적으로 하나님이 당신에게 사람에게 볼 수 없는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나타나셨으니 그것이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낸 것이 그 이름이 하필이면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도도 있겠지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알게 하는 것이 지식입니다. 얼마나 많이 알게 하느냐 수도 없이 많이... 그 분 자존하시고 완전하시고 절대자시고 그런데 하나님을 알리시고 그 능력을 알리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시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알리시고 구원의 길을 알려주시고. 길은 노선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시고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신다. 이게 말씀입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은 지식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참 된 이치입니다. 섞은 것이 없다는 뜻이고 진짜베기이고 오리지날입니다. 그리고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 됩니다. 참 된 이치라... 참 된 이치라는 것은 이것은 절대성을 가졌고 불변성을 가졌고 필연성을 가진겁니다. 주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말씀은 길입니다. 노선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 롯의 신앙 노선, 좁은 문, 좁은 길,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말씀은 길입니다. 길은 노선입니다. 걸어다닙니다. 이 속에 우리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가는 길, 구원으로 가는 길, 참 사람이 되는 길.. 이것들이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해서 아는 만큼 구원의 길을 아는 사람이고 진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말씀은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길을 걸어가는데 말씀으로 걸어가는데 빛이 없으면 어두워서 바로 가지 못합니다. 환하게 비추어 주는 빛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의 원형은 하나님이지요. 빛의 원형은 하나님입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은 말씀으로 빛이 되는 겁니다. 말씀이 있어야 밝은 사람이 됩니다. 말씀으로 걸어가는 말씀. 또 다섯 번째, 말씀은 법칙이고 잣대입니다. 말씀이 길인데,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가는 길을 걸어가는데 어두우면 못 걸어갑니다. 말씀을 알아야 다른 말씀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이라는 말은 죄를 가리는 기준이 법이지요. 죄냐 아니냐 옳으냐 글었냐.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은 죄와 의의 기준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말씀이 없으면. 바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 모르게됩니다. 자가 있어야, 자는 길이를 재는 것도 자지만은 저울 추 같은 역할도 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우리의 생활, 개인의 언행심사, 마음가짐, 행동, 모든 관계 관계 모든 생활, 여러 활동 등을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말씀을 생각해보면 압니다. 오늘 하루 나의 마음가짐이 옳았느냐 틀렸느냐...
말씀은 잣대고 저울 추같은 말하자면 옳고 그름을 규정짓는 것입니다. 판사가 심판을 하는데 법칙을 가지고 심판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법은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아서 기준보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그래서 인간 생활에서도 법 조문이 엄청 많은데, 거기에도 없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판사들의 기준은 법대로 하고, 없는 것은 법과 양심에 따라하는데 그런데 그 양심이 지식에 지배당하는 양심이 되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법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이 나라의 대법원장들이 감옥가고 그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혼란의 시대고 혼돈의 시대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잣대입니다. 규정짓는 겁니다. 말씀이 없는 사람은 법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전쟁 나가면 제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말씀은 법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섯 번째 말씀은 지혜와 능력입니다. 잘 모를 때 말씀으로 생각에 빠져서 손익 계산 이런 것을 다 부인을 하고... 그래서 양심을 쓸 때는 다 버려야합니다. 그래서 다 버리고 양심을 써야하지 다른 것이 들어가면 사람이 어두워지게 되는 겁니다. 지식이 있으면 사람이 밝은데 그 지식도 자기 주관으로 쓰면 어두워지게 되는데, 자기를 부인하고 수용적인 지식을 받아들여서 지혜롭게 만드는 겁니다. 말씀은 또 우리에게 주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은 우리를 지혜와 능력있게 만들어주는 양식입니다. 신령한 양식... 여기 요한복음 6장에 나오지만은 내 살과 피는 참된 양식 참된 음료로다. 하신데, 그 방법이랄까 과정이랄까요. 그 과정에 뺄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 53절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가 이르노니, 나의 살을 먹지 않고 나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영생을 할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주님의 살을 먹고 마시는 방법, 이것이 참된 양식 참된 음료라는 것을 아는 방법... 말씀을 통해서 알죠.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알지요. 내 살은 참 된 양식이다. 말씀하셨으니까. 내 피는 참 된 음료이다. 말씀하셨으니까. 그러면 주님의 살과 피를, 살 찍고 피 흘리신 도성인신, 사생활 공생활의 과정, 그 근본 출발의 말씀으로 생각하신 겁니다. 주님의 살과 피는 말씀 속에 들었습니다. 말씀 없는 살과 피는 겁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을 안 사람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오셨다고 되어있는 건 말씀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주님이 오셨다는 사실을 모르지요. 믿을 수도 없고. 그래서 말씀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귀가 구원을 절단내려 온 역사가 구주 메시아를 없애려고 참 된 성자를 다 죽였고, 예수님이 오시고 태어나니까 두 살 이하로 다 죽이라고 하고, 메시아 자체를 없애려고 없고. 그 분 돌아가시니까 제자들을 죽이려고, 말씀이 펼쳐나가니까 성경을 없애려고 노력을 한 겁니다. 그래서 말씀은 능력이고 양식입니다. 세상에서도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책을 읽어야 학교를 다니든 안 다니든 과거 김대중이라는 사람은 대학을 안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책을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학교를 안 다녀도 책을 많이 읽으면 이 세상을 많이 아는 겁니다. 성경을 읽는 만큼 듣는 만큼 말씀을 알게 되고, 그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구원, 구원의 길... 말씀을 모르면 구원을 모르게 됩니다. 열 처녀가 등불에 기름, 기름이 진리와 영감이고 그 진리가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영감이고... 믿는 사람이 혼돈 그러울 때, 말씀을 찾으면 됩니다. 우리 일상에서 내 생활이 제대로인지 뱌르게 되고 있는지, 그것을 판단하는 잣대가 법칙이 바로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 없는 사람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혜와 능력이 있으면 가치를 가지게 되어있습니다. 말씀 속에 예수님의 피도 있고 살도 있고 다 있습니다. 말씀은 먹어야. 그래서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이름으로 나온 말씀을 알아야...
그래서 자존자, 완전자, 영원 불변자.. 절대자.. 사랑의 하나님, 구원의 과정.. 그것들을 생각하고 말씀을 의지 하는 겁니다. 말씀은 독자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하시는데, 저는 아직까지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말씀 자체가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것이 진리니까 그러니까 그러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으나 말씀입니다.
그래서 첫째 말씀은 지식이고 두 번째 지식이고 세 번째 길이고 네 번째 빛이고 등불이고 다섯 번째 법이고 여섯 번째 지혜와 능력이고 양식입니다. 이 말씀으로 헤쳐나가는 우리가 되어야되겠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가 : 43장, 121장, 74장
본문 : 요한복음 6장 66절 ~ 6장 69절
제목 : 말씀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이 계셨을 때도 은혜받지 못 한 사람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왜 말씀을 깨닫지 못했는가, 하면 백 목사님의 말씀으로는 성인이 되어야 성인의 뜻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되어봐야 그 심정을 압니다. 늙어보면 늙은 사람은 압니다. 그래서 너희가 늙어 봤냐, 나는 젊어봤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우리 심정을 모르는 것 같아도 시대를 다 알지는 못라도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다 압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지 다른 건 없습니다. 젊을 때 어땠는지는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늙어보지 못해서 그 심정을 모릅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말씀을 깨닫지 못한 이유는 세상만 보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만 보고 따라다녀서 임금을 시키려고 합니다. 중국의 주석 정도 되면은 할까, 조금한 나라의 왕 노릇은 안 합니다. 유대 나라 왕이 되어봐야 로마 식민지 앞잡이인데, 주님은 하늘나라 천국을 보여주려고 오셨지 그러려고 오신게 아닌데, 제자들의 눈에는 세상에 있는 것만 관심이 있고 생각을 하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육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영은 생각안 하고, 내가 좋게 기쁘게.. 그렇게 보고만 사니까 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서 던져버리고 갑니다. 영생을 얻기위해서 온 청년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청년이 다 했는데,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고 하니까 돈이 많은 부자 청년이라서 그것을 못했습니다. 어떤 장로님이 정말 좋은 훌륭한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다 좋은데 자존심 건들이면 못 넘깁니다. 그 부자 청년의 재물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라 다녀도 주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니까, 하늘에 속해서 하늘의 말씀이 들리고 영을 알아야 영의 말씀이 들리는겁니다. 다윗의 신앙 사상을 말할 때 다윗의 신앙 사상을 동경해야 들립니다. 그런데 롯의 신앙 사상을 가진 사람에게 아브라함의 것을 이야기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60절 보실까요,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첫째, 참고로 기억을 하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이 된 만큼 들려집니다.
주님이 너희도 가려느냐 하니까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 따라합시다. 영생의 말씀.
우리가 생명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연결입니다. 연결의 반대는 단절이고 사망입니다. 모든 것은 다 연결이 되어있어야 삽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겁니다. 하나님께서 공짜로 은혜로 주신 것이 생명입니다. 영생은 무엇인가, 생명의 활동, 기능의 작용이라고 하였습니다. 중생은 뭡니까. 중생은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겁니다. 그리고 영생이라는 것은 생명이 생명의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있어도 그 기능을 하지 못하면 죽은겁니다. 살아있는 것이 살아있는 작용을 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기본적으로 은혜입니다. 믿음은 은혜고 구원도 은혜고, 기본 구원도 은혜고 건설 구원그 그 위의 은혜라.
영생은 기본적으로 은혜입니다. 그러나 영생은 실질적으로 우리가 이루어 가는 것이 은혜입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말씀은 다시 말하면 영생을 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고, 영생을 이루어가게 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생은 이루어 가는 것이고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우리의 건설구원은, 영생을 하는 것이 건설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생 말씀이라는 것은 영생을 이루어 나가게 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하게 하는 말씀, 영생을 이루게 하는 말씀. 작용을 하게하는 그 말씀. 그래서 말씀을 공부하는 겁니다. 말씀은 곧 지식인데, 지식은 크게 말하면 지식을 두 개 말하면 하나는 인지, 껍데기로 아는 겁니다. 또 하나는 수용적인 지식, 자기가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런데 인지적인 지식은 내가 주격이 되는 겁니다. 내가 주인 된 상태에서 그 지식을 내 마음대로 활용하는겁니다. 이것이 인지적인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우리가 받을 때 인지로 받아야 합니까 수용으로 받아야합니까?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인지로 받으면 됩니다. 내가 그것의 종 될 필요가 없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고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지식을 내 종으로 쓸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점점 배워나가다가, 체질에 따라 다르지만은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재미는 참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세 네 살 되면, 뭔지 물어보는 것이 계속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스펀지가 있어서 잘 받아들인다고 하죠. 세 살 때 배운 것은 잘 안 잊어버린다고 하죠. 많아지는데, 이상하게 신앙이 점점 퇴보합니다. 어릴 때는 그냥 받아들이다가 갈수록 그것을 인지적인 지식이 아닌 수용적인 지식으로 받아들여 버립니다. 그 사실과 지식을 바꿔버립니다. 지식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버리니까 그 때부터 신앙은 가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세상 지식이 참 무서운 겁니다. 이 세상의 지식은 인지로만 알면 됩니다. 그리 말 하더라 그렇다더라 하고 받아들이면 되지, 학자가 교수가 말하니까 아 그렇구나 하면 안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구나, 저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구나...
우리나라는 머리가 좋은 사람들의 생각하는 기준이 전부 다 같던가요? 그러면서 사람의 깊이를 알아야합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자신의 성향과 정치 사상 등에 따라서 바뀝니다. 같은 사람들이 하는데 정권이 바뀌니까 적폐가 되어버립니다. 이 세상 지식은 그러니까 모두 다 인지로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냥 그렇구나. 그렇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시험지는 쓸 때 그러면 됩니다만은 받아들이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수용적인 인식으로 받아들여야합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지행합일입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알아야하는데.. 자기를 부인해야죠. 자기을 갖다 버리라는 뜻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복속시켜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수용적으로 받습니다. 세상 모든 지식은 무슨 지식이라도 인지적으로만 받으면 됩니다. 수용적으로 받으면 자기를 믿는 사람으로써는 팔아먹는 것이고 버리는 것이 되는 겁니다. 돈만 사람을 종 삼는 것이 아닙니다. 돈의 종... 사랑의 종.. 지식의 종이 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세상 지식은 어떤 종류든지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짐승보다 참고만 하는 겁니다. 오늘 오전에 공부한 일곱 가지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 지식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체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인간 지식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고, 그 뿌리는 마귀입니다. 마귀 지식입니다. 서울대, 무슨 대학교, 무슨 대학교 들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백 목사님과 신앙 사상이 다른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지식은 인간 지식이고 거짓 지식이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으니 얼마나 듣기 싫었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입니다. 그래서 껍데기로 지식으로 알고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자기를 부인하고 수용적으로 받으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다시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복습을 합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은 지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는 지식입니다. 무엇을 알게 하시는가... 말씀으라는 것은 무언가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꿀 먹은 벙어리. 무슨 뜻인가요? 꿀을 먹었습니다. 달고 맛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못 하니까 표현을 못 하지요. 말을 해라, 먹어보니까 어떻더냐? 말을 하면 아는데 말을 안 하니까..
내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고 상대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고...
하나님께서 대표적으로 하나님이 당신에게 사람에게 볼 수 없는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나타나셨으니 그것이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낸 것이 그 이름이 하필이면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도도 있겠지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알게 하는 것이 지식입니다. 얼마나 많이 알게 하느냐 수도 없이 많이... 그 분 자존하시고 완전하시고 절대자시고 그런데 하나님을 알리시고 그 능력을 알리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시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알리시고 구원의 길을 알려주시고. 길은 노선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시고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신다. 이게 말씀입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은 지식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참 된 이치입니다. 섞은 것이 없다는 뜻이고 진짜베기이고 오리지날입니다. 그리고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 됩니다. 참 된 이치라... 참 된 이치라는 것은 이것은 절대성을 가졌고 불변성을 가졌고 필연성을 가진겁니다. 주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말씀은 길입니다. 노선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 롯의 신앙 노선, 좁은 문, 좁은 길,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말씀은 길입니다. 길은 노선입니다. 걸어다닙니다. 이 속에 우리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가는 길, 구원으로 가는 길, 참 사람이 되는 길.. 이것들이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해서 아는 만큼 구원의 길을 아는 사람이고 진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말씀은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길을 걸어가는데 말씀으로 걸어가는데 빛이 없으면 어두워서 바로 가지 못합니다. 환하게 비추어 주는 빛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의 원형은 하나님이지요. 빛의 원형은 하나님입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은 말씀으로 빛이 되는 겁니다. 말씀이 있어야 밝은 사람이 됩니다. 말씀으로 걸어가는 말씀. 또 다섯 번째, 말씀은 법칙이고 잣대입니다. 말씀이 길인데,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가는 길을 걸어가는데 어두우면 못 걸어갑니다. 말씀을 알아야 다른 말씀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이라는 말은 죄를 가리는 기준이 법이지요. 죄냐 아니냐 옳으냐 글었냐.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은 죄와 의의 기준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말씀이 없으면. 바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 모르게됩니다. 자가 있어야, 자는 길이를 재는 것도 자지만은 저울 추 같은 역할도 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우리의 생활, 개인의 언행심사, 마음가짐, 행동, 모든 관계 관계 모든 생활, 여러 활동 등을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말씀을 생각해보면 압니다. 오늘 하루 나의 마음가짐이 옳았느냐 틀렸느냐...
말씀은 잣대고 저울 추같은 말하자면 옳고 그름을 규정짓는 것입니다. 판사가 심판을 하는데 법칙을 가지고 심판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법은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아서 기준보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그래서 인간 생활에서도 법 조문이 엄청 많은데, 거기에도 없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판사들의 기준은 법대로 하고, 없는 것은 법과 양심에 따라하는데 그런데 그 양심이 지식에 지배당하는 양심이 되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법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이 나라의 대법원장들이 감옥가고 그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혼란의 시대고 혼돈의 시대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잣대입니다. 규정짓는 겁니다. 말씀이 없는 사람은 법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전쟁 나가면 제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말씀은 법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섯 번째 말씀은 지혜와 능력입니다. 잘 모를 때 말씀으로 생각에 빠져서 손익 계산 이런 것을 다 부인을 하고... 그래서 양심을 쓸 때는 다 버려야합니다. 그래서 다 버리고 양심을 써야하지 다른 것이 들어가면 사람이 어두워지게 되는 겁니다. 지식이 있으면 사람이 밝은데 그 지식도 자기 주관으로 쓰면 어두워지게 되는데, 자기를 부인하고 수용적인 지식을 받아들여서 지혜롭게 만드는 겁니다. 말씀은 또 우리에게 주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은 우리를 지혜와 능력있게 만들어주는 양식입니다. 신령한 양식... 여기 요한복음 6장에 나오지만은 내 살과 피는 참된 양식 참된 음료로다. 하신데, 그 방법이랄까 과정이랄까요. 그 과정에 뺄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 53절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가 이르노니, 나의 살을 먹지 않고 나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영생을 할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주님의 살을 먹고 마시는 방법, 이것이 참된 양식 참된 음료라는 것을 아는 방법... 말씀을 통해서 알죠.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알지요. 내 살은 참 된 양식이다. 말씀하셨으니까. 내 피는 참 된 음료이다. 말씀하셨으니까. 그러면 주님의 살과 피를, 살 찍고 피 흘리신 도성인신, 사생활 공생활의 과정, 그 근본 출발의 말씀으로 생각하신 겁니다. 주님의 살과 피는 말씀 속에 들었습니다. 말씀 없는 살과 피는 겁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을 안 사람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오셨다고 되어있는 건 말씀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주님이 오셨다는 사실을 모르지요. 믿을 수도 없고. 그래서 말씀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귀가 구원을 절단내려 온 역사가 구주 메시아를 없애려고 참 된 성자를 다 죽였고, 예수님이 오시고 태어나니까 두 살 이하로 다 죽이라고 하고, 메시아 자체를 없애려고 없고. 그 분 돌아가시니까 제자들을 죽이려고, 말씀이 펼쳐나가니까 성경을 없애려고 노력을 한 겁니다. 그래서 말씀은 능력이고 양식입니다. 세상에서도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책을 읽어야 학교를 다니든 안 다니든 과거 김대중이라는 사람은 대학을 안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책을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학교를 안 다녀도 책을 많이 읽으면 이 세상을 많이 아는 겁니다. 성경을 읽는 만큼 듣는 만큼 말씀을 알게 되고, 그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구원, 구원의 길... 말씀을 모르면 구원을 모르게 됩니다. 열 처녀가 등불에 기름, 기름이 진리와 영감이고 그 진리가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영감이고... 믿는 사람이 혼돈 그러울 때, 말씀을 찾으면 됩니다. 우리 일상에서 내 생활이 제대로인지 뱌르게 되고 있는지, 그것을 판단하는 잣대가 법칙이 바로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 없는 사람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혜와 능력이 있으면 가치를 가지게 되어있습니다. 말씀 속에 예수님의 피도 있고 살도 있고 다 있습니다. 말씀은 먹어야. 그래서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이름으로 나온 말씀을 알아야...
그래서 자존자, 완전자, 영원 불변자.. 절대자.. 사랑의 하나님, 구원의 과정.. 그것들을 생각하고 말씀을 의지 하는 겁니다. 말씀은 독자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하시는데, 저는 아직까지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말씀 자체가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것이 진리니까 그러니까 그러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으나 말씀입니다.
그래서 첫째 말씀은 지식이고 두 번째 지식이고 세 번째 길이고 네 번째 빛이고 등불이고 다섯 번째 법이고 여섯 번째 지혜와 능력이고 양식입니다. 이 말씀으로 헤쳐나가는 우리가 되어야되겠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