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3 주전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김동민2019-01-13조회 249추천 24
2019년 1월 13일 주일 오전
찬송가 : 18장, 19장
본문 : 시편 91편 14절 ~ 91편 16절
제목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건지리라. 저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을 상대할 때 1:1로 상대하기 때문에 단수로 표시했습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계명을 지킬 때는 개인으로 상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하나님의 백성 중에 하나님을 사랑한 그 사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다..
사랑이란 것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사랑하는 겁니다. 높은 자가 낮을 자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사랑하는 겁니다. 반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우리가 그 사랑을 받는 것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그 사랑을 받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린 젖먹이 아기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은 엄마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받는 것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이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사람을 사랑하여 그 은혜를 베푸실 때, 그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받으면 그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건진다는 것은 다른 말로 구원입니다. 구원이라는 뜻은 기본적으로 건진다는 뜻입니다. 궁지에서 환란에서 어려움에서 건져주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에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 중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말씀하시길 저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 즉 하나님의 사랑을 다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내가 저를 건지리라. 환란 때, 힘들 때 건지십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 즉,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 하나님의 역사를 안다는 뜻인데, 하나님을 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활동, 하나님의 역사.. 역사라는 것은 말 그대로 활동입니다. 활동이라는 것은 그 활동의 주체를 알아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인데,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 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그러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면 건집니다. 믿는 사람이 환란에서 궁지에서 건짐 받는 방법, 어려울 때 외로울 때 환란일 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경제, 인간관계, 건강, 자기 앞 날의 여러 가지면... 궁지에 몰렸을 때 건짐 받는 방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람이 환란일 때, 건짐 받는 방법은 사람을 찾는 거 아니고, 연구하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돈을 쓰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궁지에서 건짐 받는 방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기억합시다. 그 방법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베풀어서 주는 것인데, 상대방을 좋게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보다 강한신데, 할 수 없는데 그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를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 두 번째 저가 내 이름을 안 즉 하나님을 아시는 일을 하는 겁니다. 뒤로 넘어졌는데, 뒷꼭지가 안 깨지고 코가 깨졌습니다. 이해가 안 되지요. 반대로 되었습니다. 상행선 차가 도로타고 올라가는데, 하행성 차가 타이어가 빠져서, 트럭에 짐이 풀려서 내 차를 때려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런 확률은 별로 없습니다. 자동차 타고 가는데 차가 미끄려졌습니다. 이 차가 몇 바퀴 굴러서 180도로 굴러버렸습니다. 사람은 하나도 안 다쳤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 당하신겁니다. 이런 걸 하나님의 역사라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에게는 머리털 숫자까지 세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알고있습니다. 우리는 아는가요?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의 머리가 나고 빠지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머리가 희어집니다. 얼마만큼 희어지고 까맣고 언제 그런 건지 하나님의 이름이고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역사다. 그 분이 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모릅니다. 근본은 압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보다 나은 참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 하는 역사다. 이걸 믿고 받아들이는 게 아는겁니다. 그 사람을 어떻게 하신다고요? 높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환란에서 궁지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어려울 때 곤란할 때 믿는 사람은 다른 거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그 분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세 네 살 짜리 아기들이 사탕을 먹고있는데 어머니가 사탕을 뺏어버리면 웁니다. 양치도 하기 싫다고 웁니다. 끝까지 어머니 사랑을 거부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가 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합니다. 젖먹이 아기가 왜 그렇게 하시는 지 주시는 지 그 아이는 모릅니다. 어머니는 그 아이를 사랑으로 하는 겁니다. 그 아이가 착해서 받아들이면 복이지 손해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보다 넓고 깊고 멀리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이런지 알지 못하나, 근본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건짐을 받는겁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의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인하는 겁니다. 자기가 살아있으면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기를 없애버리라는 뜻이 아니고 세상을 버리라는 뜻도 아닙니다. 하니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안 즉 높임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치라는 것은 한문 글자로 뭐라고 하는가요? 진리, 진리는 절대성을 가진 겁니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자연의 역사도 하나님께서 내신 자연의 역사는 현재까지 나타나는 범위 안에서는 거의 절대성을 가집니다. 필연성을 가집니다. 겨울이 되면 날이 춥게 되어있습니다. 추우면 사람의 몸은 움추려들게 되어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얇은 옷을 입고 나가면 감기에 걸리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을 과학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세상 물질 과학도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필연적으로 높아지게 되어있습니다. 높여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그렇게 되어 지게 되어있습니다. 건짐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아무에게나 응답하지 않습니다.
중이 급하면 누구 찾습니까? 부처 안 찾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 말이 나온 것이 예사로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나타난 모든 말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만드신 말입니다. 중도 급하면 하나님 찾는다. 안 믿는 사람도 아는 말입니다. 불교에 그 깊은 세계 극락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들도 안다는 말입니다. 부처는 어디있다고요? 내 안에 있다. 네가 바로 부처다. 중들이 하는 말입니다. 불교계 어른들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부처 신이라는 것이 없다는 소리고 아니라는 것이지요. 양심있는 말입니다. 그들 말로는 맞는 말이고 아닌 것이지 진짜로 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참 신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그런데 찾는다고 아무나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어제까지 제 멋대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죽을 병에 생겨서 하나님 살려주옵소서 하면 너 같으면 그 기도 들어주겠냐. 내 말 들었냐, 안면이 있냐. 들어주겠습니까? 안 들어주죠. 바로 응답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순종하는 그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께 급하면 환란 당하면 구합니다. 응답하십니다. 평소에 익은 관계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평소에는 아는 척도 안 하고, 거부하고 그러다가 급할 때 찾아가면은 인격자 같은 경우에는 도와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속으로 급할 때 자기 이익을 위해 찾는구나. 그런데 상대를 생각하고 이해하고 그런 사람이 곤란할 때 부탁하면은 제 몸을 바쳐서 도와주지요. 누구나 사람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더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다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원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람이 하는 것처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도 가지십니다. 사람의 섭섭함을, 분함을 하나님도 가지십니다. 그 분은 사람이 만든 허상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실존의 하나님이십니다. 저희 환란 때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나를 만족케하며,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지요. 영원한 분이기에 사람에게 언제토록 정해진 수명까지 보살펴 줄 수 있습니다. 이 말씀가지고 생각해보려고 하는데,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중도 급하면 하나님을 찾는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모릅니다. 사람이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습니다. 치료비가 중병이 들어서 많이 듭니다. 뭐 찾습니까? 보험회사 찾지요. 자동차 보험을 어떤 사람은 100만원씩 듭니다. 10년 가면 1000만원입니다. 30년 가면 3000만원입니다. 30년 째 사고 한 번 안났습니다. 1원도 안 돌려줍니다. 그런데 왜 꼬박꼬박 넣습니까? 만일 사고가 나면 3억도 더 들어가니까 만일을 위해서 보험을 넣는 겁니다. 이게 사회 세상의 법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도 안 할수 없습니다만은 어떨 때는 모든 사람이 다 보험을 넣어놔도 안 넣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은 맡길 수 있는데, 운전기사가 안 되면 믿음 약한 운전기사 때문에 보험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보험이 필요 없는 분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법으로 하니까 부득이하게 넣고 있지만 다른 보험은 안 넣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는데 치료비가 많이 듭니다. 보험이 없으면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보험이 어려울 때 그들에게 하나님입니다. 믿는 사람은 도와 줄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몸이 아프면 기도하고 앉았지 병원에 왜 갑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아프면 첫째 뭐부터 합니까? 회개부터 합니다. 그 다음에 기도해서 나을 수 있으면 그러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그렇게 안 되어서 하나님께서 의사를 통해서 치료하라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부득이 하게 병원을 가는 겁니다. 세 번째는 병원에 가도 못 고치는 병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도 안 되는 거, 자기 범위를 넘어서는, 이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겨놓고 기도하다가 가는 겁니다. 장 목사님이라고 간암으로 60대 초반에 돌아가셨지요. 하나님께 맡겨놓고 기도하다가 가셨습니다. 장기간 충성했고 안타깝게 노선 이탈했지만은 마지막은 성도의 바른 자세이고 목사의 바른 자세였습니다. 이게 어렵습니다. 믿는 사람의 하나님은 말 그대로 믿는 사람의 하나님입니다. 믿는 사람의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여기 말씀하신대로 환란 때 함께하리니 건지겠다.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겠다. 이 분이 약속하신대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찾는다고 하인처럼 달려오는 분이 아닙니다. 평소에는 모른 척 하다가 제가 급하다고 기도하면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회개하고 고난 받고 그 동안에 하나님을 무시한 만큼 제가 당하고 난 다음 그 때 한 번 돌아볼까 그래야 하나님을 애타게 찾고 고생을 해야 하나님께서 비로소 돌아보시는 분입니다. 평소에 그 분 찾고 그러면 즉시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을 내가 받아서 나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나와 상관 없는 남남인데 그 사람이 해롭게 하는 사람인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곤란할 때 도와주는 사람은 없는겁니다. 그 사람은 나와 안면이 있고 가까우면 그 사람 어려울 때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 당연한 도립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백 목사님 환란 때 어떤 분이 고난을 같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좀 변하니까 환경이 바뀌고 소속이 바뀌니까 반대쪽에서 백 목사님을 핍박했습니다. 세월이 지났는데, 그 사람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 망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 분은 거둬가서 평생에 부족함 없도록 챙겨주신 분이 백 목사님입니다. 옛날에 함께 지낸 동지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믿는 사람은 어려울 때 혼돈의 때 그럴 때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다른 걸 찾아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것도 다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다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하다는 것은 모자란 게 많고 결정적으로 변한다는 거지요. 든든한 지팡이인 줄 알고 의지했는데 그게 썩은 지팡이고, 줄을 잡았는데 썩은 줄이었습니다. 넘어지고 떨어져서 죽는 거지요. 이 세상에는 믿고 의지할 대상이 없는 겁니다. 자비하신 예수여, 제가 사람 가운데 의자 할이 없으니 슬픈 자가 됩니다. 그 찬송 지은 사람은 안 봐도 믿음의 사람입니다. 정말 사람이 인생을 살아봐도 의지할 사람이 없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많은 사람들이 의지했습니다. 오늘 날도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의지하고, 부모들은 젊은 자식들을 의지하고, 아내는 남편을 의지하고, 남편은 아내를 의지하지만, 사람은 변할 수 있고, 떠날 수 있고, 믿음이 변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 누구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질투하십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 변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그 누구도, 사람은 변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면은 안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같은 분도 의지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부탁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주님에게 부탁한다. 사도 바울이 가르친 것은 자신을 믿지말고 말씀을 믿으라는 겁니다. 말씀을 믿어야지 사람을 믿으면 마지막에는 허무하게 되는 겁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첫째, 그 분은 자존자입니다. 우리가 믿고 순종하고 맡기고 하는 그 분은 자존하신 분입니다. 뜻은 글자 그대로 하면 스스로 계신 분인데, 이 세상에 자존한 존재는 없습니다. 진화론은 결국은 자존을 주장합니다. 그건 말이 안되는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자존자입니다.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그 분은 완전자입니다. 완전이라는 것은 흠과 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활동 역사로 그 분은 완전자입니다. 도덕적으로 지능적으로, 인격적으로 모든 것이 완전입니다. 흠과 점이 없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와 같은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유일하신 분입니다. 존재 자체가 흠과 점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의 활동 역사가 흠과 점이 없습니다. 그 분은 영원 불변하신 분들입니다. 그 분은 영원 불변입니다. 같은 위치로 알파와 오메가, 처음이자 끝입니다. 그 분은 어저께나 오늘이나 변하는 것이 없는 분이 이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입니다. 그 분 자체가 근본입니다. 그 분 자체가 모든 것의 원인이십니다. 두 번째 그 분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세 번째 그 분은 영원불변입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가 : 18장, 19장
본문 : 시편 91편 14절 ~ 91편 16절
제목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건지리라. 저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을 상대할 때 1:1로 상대하기 때문에 단수로 표시했습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계명을 지킬 때는 개인으로 상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하나님의 백성 중에 하나님을 사랑한 그 사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다..
사랑이란 것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사랑하는 겁니다. 높은 자가 낮을 자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사랑하는 겁니다. 반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우리가 그 사랑을 받는 것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그 사랑을 받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린 젖먹이 아기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은 엄마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받는 것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이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사람을 사랑하여 그 은혜를 베푸실 때, 그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받으면 그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건진다는 것은 다른 말로 구원입니다. 구원이라는 뜻은 기본적으로 건진다는 뜻입니다. 궁지에서 환란에서 어려움에서 건져주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에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 중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말씀하시길 저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 즉 하나님의 사랑을 다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내가 저를 건지리라. 환란 때, 힘들 때 건지십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 즉,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 하나님의 역사를 안다는 뜻인데, 하나님을 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활동, 하나님의 역사.. 역사라는 것은 말 그대로 활동입니다. 활동이라는 것은 그 활동의 주체를 알아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인데,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 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그러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면 건집니다. 믿는 사람이 환란에서 궁지에서 건짐 받는 방법, 어려울 때 외로울 때 환란일 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경제, 인간관계, 건강, 자기 앞 날의 여러 가지면... 궁지에 몰렸을 때 건짐 받는 방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람이 환란일 때, 건짐 받는 방법은 사람을 찾는 거 아니고, 연구하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돈을 쓰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궁지에서 건짐 받는 방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기억합시다. 그 방법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베풀어서 주는 것인데, 상대방을 좋게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보다 강한신데, 할 수 없는데 그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를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 두 번째 저가 내 이름을 안 즉 하나님을 아시는 일을 하는 겁니다. 뒤로 넘어졌는데, 뒷꼭지가 안 깨지고 코가 깨졌습니다. 이해가 안 되지요. 반대로 되었습니다. 상행선 차가 도로타고 올라가는데, 하행성 차가 타이어가 빠져서, 트럭에 짐이 풀려서 내 차를 때려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런 확률은 별로 없습니다. 자동차 타고 가는데 차가 미끄려졌습니다. 이 차가 몇 바퀴 굴러서 180도로 굴러버렸습니다. 사람은 하나도 안 다쳤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 당하신겁니다. 이런 걸 하나님의 역사라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에게는 머리털 숫자까지 세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알고있습니다. 우리는 아는가요?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의 머리가 나고 빠지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머리가 희어집니다. 얼마만큼 희어지고 까맣고 언제 그런 건지 하나님의 이름이고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역사다. 그 분이 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모릅니다. 근본은 압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보다 나은 참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 하는 역사다. 이걸 믿고 받아들이는 게 아는겁니다. 그 사람을 어떻게 하신다고요? 높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환란에서 궁지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어려울 때 곤란할 때 믿는 사람은 다른 거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그 분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세 네 살 짜리 아기들이 사탕을 먹고있는데 어머니가 사탕을 뺏어버리면 웁니다. 양치도 하기 싫다고 웁니다. 끝까지 어머니 사랑을 거부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가 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합니다. 젖먹이 아기가 왜 그렇게 하시는 지 주시는 지 그 아이는 모릅니다. 어머니는 그 아이를 사랑으로 하는 겁니다. 그 아이가 착해서 받아들이면 복이지 손해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보다 넓고 깊고 멀리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이런지 알지 못하나, 근본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건짐을 받는겁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의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인하는 겁니다. 자기가 살아있으면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기를 없애버리라는 뜻이 아니고 세상을 버리라는 뜻도 아닙니다. 하니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안 즉 높임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치라는 것은 한문 글자로 뭐라고 하는가요? 진리, 진리는 절대성을 가진 겁니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자연의 역사도 하나님께서 내신 자연의 역사는 현재까지 나타나는 범위 안에서는 거의 절대성을 가집니다. 필연성을 가집니다. 겨울이 되면 날이 춥게 되어있습니다. 추우면 사람의 몸은 움추려들게 되어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얇은 옷을 입고 나가면 감기에 걸리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을 과학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세상 물질 과학도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필연적으로 높아지게 되어있습니다. 높여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그렇게 되어 지게 되어있습니다. 건짐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아무에게나 응답하지 않습니다.
중이 급하면 누구 찾습니까? 부처 안 찾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 말이 나온 것이 예사로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나타난 모든 말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만드신 말입니다. 중도 급하면 하나님 찾는다. 안 믿는 사람도 아는 말입니다. 불교에 그 깊은 세계 극락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들도 안다는 말입니다. 부처는 어디있다고요? 내 안에 있다. 네가 바로 부처다. 중들이 하는 말입니다. 불교계 어른들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부처 신이라는 것이 없다는 소리고 아니라는 것이지요. 양심있는 말입니다. 그들 말로는 맞는 말이고 아닌 것이지 진짜로 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참 신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그런데 찾는다고 아무나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어제까지 제 멋대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죽을 병에 생겨서 하나님 살려주옵소서 하면 너 같으면 그 기도 들어주겠냐. 내 말 들었냐, 안면이 있냐. 들어주겠습니까? 안 들어주죠. 바로 응답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순종하는 그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께 급하면 환란 당하면 구합니다. 응답하십니다. 평소에 익은 관계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평소에는 아는 척도 안 하고, 거부하고 그러다가 급할 때 찾아가면은 인격자 같은 경우에는 도와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속으로 급할 때 자기 이익을 위해 찾는구나. 그런데 상대를 생각하고 이해하고 그런 사람이 곤란할 때 부탁하면은 제 몸을 바쳐서 도와주지요. 누구나 사람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더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다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원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람이 하는 것처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도 가지십니다. 사람의 섭섭함을, 분함을 하나님도 가지십니다. 그 분은 사람이 만든 허상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실존의 하나님이십니다. 저희 환란 때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나를 만족케하며,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지요. 영원한 분이기에 사람에게 언제토록 정해진 수명까지 보살펴 줄 수 있습니다. 이 말씀가지고 생각해보려고 하는데,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중도 급하면 하나님을 찾는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모릅니다. 사람이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습니다. 치료비가 중병이 들어서 많이 듭니다. 뭐 찾습니까? 보험회사 찾지요. 자동차 보험을 어떤 사람은 100만원씩 듭니다. 10년 가면 1000만원입니다. 30년 가면 3000만원입니다. 30년 째 사고 한 번 안났습니다. 1원도 안 돌려줍니다. 그런데 왜 꼬박꼬박 넣습니까? 만일 사고가 나면 3억도 더 들어가니까 만일을 위해서 보험을 넣는 겁니다. 이게 사회 세상의 법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도 안 할수 없습니다만은 어떨 때는 모든 사람이 다 보험을 넣어놔도 안 넣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은 맡길 수 있는데, 운전기사가 안 되면 믿음 약한 운전기사 때문에 보험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보험이 필요 없는 분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법으로 하니까 부득이하게 넣고 있지만 다른 보험은 안 넣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는데 치료비가 많이 듭니다. 보험이 없으면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보험이 어려울 때 그들에게 하나님입니다. 믿는 사람은 도와 줄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몸이 아프면 기도하고 앉았지 병원에 왜 갑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아프면 첫째 뭐부터 합니까? 회개부터 합니다. 그 다음에 기도해서 나을 수 있으면 그러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그렇게 안 되어서 하나님께서 의사를 통해서 치료하라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부득이 하게 병원을 가는 겁니다. 세 번째는 병원에 가도 못 고치는 병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도 안 되는 거, 자기 범위를 넘어서는, 이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겨놓고 기도하다가 가는 겁니다. 장 목사님이라고 간암으로 60대 초반에 돌아가셨지요. 하나님께 맡겨놓고 기도하다가 가셨습니다. 장기간 충성했고 안타깝게 노선 이탈했지만은 마지막은 성도의 바른 자세이고 목사의 바른 자세였습니다. 이게 어렵습니다. 믿는 사람의 하나님은 말 그대로 믿는 사람의 하나님입니다. 믿는 사람의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여기 말씀하신대로 환란 때 함께하리니 건지겠다.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겠다. 이 분이 약속하신대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찾는다고 하인처럼 달려오는 분이 아닙니다. 평소에는 모른 척 하다가 제가 급하다고 기도하면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회개하고 고난 받고 그 동안에 하나님을 무시한 만큼 제가 당하고 난 다음 그 때 한 번 돌아볼까 그래야 하나님을 애타게 찾고 고생을 해야 하나님께서 비로소 돌아보시는 분입니다. 평소에 그 분 찾고 그러면 즉시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을 내가 받아서 나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나와 상관 없는 남남인데 그 사람이 해롭게 하는 사람인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곤란할 때 도와주는 사람은 없는겁니다. 그 사람은 나와 안면이 있고 가까우면 그 사람 어려울 때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 당연한 도립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백 목사님 환란 때 어떤 분이 고난을 같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좀 변하니까 환경이 바뀌고 소속이 바뀌니까 반대쪽에서 백 목사님을 핍박했습니다. 세월이 지났는데, 그 사람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 망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 분은 거둬가서 평생에 부족함 없도록 챙겨주신 분이 백 목사님입니다. 옛날에 함께 지낸 동지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믿는 사람은 어려울 때 혼돈의 때 그럴 때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다른 걸 찾아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것도 다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다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하다는 것은 모자란 게 많고 결정적으로 변한다는 거지요. 든든한 지팡이인 줄 알고 의지했는데 그게 썩은 지팡이고, 줄을 잡았는데 썩은 줄이었습니다. 넘어지고 떨어져서 죽는 거지요. 이 세상에는 믿고 의지할 대상이 없는 겁니다. 자비하신 예수여, 제가 사람 가운데 의자 할이 없으니 슬픈 자가 됩니다. 그 찬송 지은 사람은 안 봐도 믿음의 사람입니다. 정말 사람이 인생을 살아봐도 의지할 사람이 없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많은 사람들이 의지했습니다. 오늘 날도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의지하고, 부모들은 젊은 자식들을 의지하고, 아내는 남편을 의지하고, 남편은 아내를 의지하지만, 사람은 변할 수 있고, 떠날 수 있고, 믿음이 변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 누구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질투하십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 변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그 누구도, 사람은 변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면은 안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같은 분도 의지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부탁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주님에게 부탁한다. 사도 바울이 가르친 것은 자신을 믿지말고 말씀을 믿으라는 겁니다. 말씀을 믿어야지 사람을 믿으면 마지막에는 허무하게 되는 겁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첫째, 그 분은 자존자입니다. 우리가 믿고 순종하고 맡기고 하는 그 분은 자존하신 분입니다. 뜻은 글자 그대로 하면 스스로 계신 분인데, 이 세상에 자존한 존재는 없습니다. 진화론은 결국은 자존을 주장합니다. 그건 말이 안되는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자존자입니다.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그 분은 완전자입니다. 완전이라는 것은 흠과 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활동 역사로 그 분은 완전자입니다. 도덕적으로 지능적으로, 인격적으로 모든 것이 완전입니다. 흠과 점이 없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와 같은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유일하신 분입니다. 존재 자체가 흠과 점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의 활동 역사가 흠과 점이 없습니다. 그 분은 영원 불변하신 분들입니다. 그 분은 영원 불변입니다. 같은 위치로 알파와 오메가, 처음이자 끝입니다. 그 분은 어저께나 오늘이나 변하는 것이 없는 분이 이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입니다. 그 분 자체가 근본입니다. 그 분 자체가 모든 것의 원인이십니다. 두 번째 그 분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세 번째 그 분은 영원불변입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