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3일 주후 - 하나님을 알고 대우합시다
김동민2019-01-13조회 385추천 47
2019년 1월 13일 주일 오후
찬송가 : 141장, 144장, 145장
본문 : 시편 91편 14절 ~ 91편 16절
제목 : 하나님을 알고 대우합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은 한 분이신 하나님이신데, 계약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계약의 하나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합니다. 여호와는 계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모든 하나님은 다 계약의 하나님입니다. 계약은 약속을 했다는 것이고, 그 뜻은 쌍방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혼자는 계약을 할 수 없습니다. 계약은 쌍방이어야하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이 계약은 어찌보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포이지만, 그 선포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들려질 때, 택함 받고 중생되어 질 때, 들은 사람은 성립이 된다. 그 말입니다. 대속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계약이 맺어진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계약을 맺은 그런 상태가 되고, 하나님을 계약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계약이란 말은 쌍방의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계약은 모두 조건이 있습니다. 계약 자체가 조건이라는 뜻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즉,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죄에서 건지리라, 건진다는 것은 구원한다는 뜻이지요. 어딘가에 곤란할 때 빠졌을 때 구해내는 것이 구원입니다. 사망, 지옥, 멸망에서 구해내는 것이 구원이고 이 땅에서 살 때도 힘듦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건짐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강자를 향한 약자의 사랑, 원래 사랑이라는 것은 약자를 위한 강자의 사랑인데, 은혜를 베풀수 있는 위치와 능력이 있어야하는데, 사랑을 줄 수 있는 입장이 되고 위치가 되어야 하지,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게 약자가 강자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되는 많은 역사가 있습니다. 그 역사가 하나님은 사랑인데 마치 어린 아기를 향한 사랑하는 어머니의 상대가 항상 아기를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예뻐해주고 칭찬해주고,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겨도 잘했다, 그러면 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 예뻐주고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기면 혼을 내야합니다.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갈 지라도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일성이지요. 그렇기에 인간 중심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각각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건지리라, 죄를 지어서 징계를 받아서 경제가 파산됐던지, 감옥에 가게 됐던지 하게 됩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지 잘못된 것을 깨달아 뉘우치고, 첫째, 너 뼈 빠지게 일해서 훔쳐먹은 거 갚아라. 그러면 그냥 하면 되지 뭐할라 그렇게 하냐, 우리 부모님이면 그렇게 할 텐데.. 내가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때렸지만은 이해해 주면 되지. 이게 전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갚아라, 때렸느냐 너도 맞아야지.. 이것이 바로 얼마 전에 공부했던 공의고 공평입니다. 그게 사랑이지 공의 공평 없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죄에 빠졌을 때 사람을 건지는 방법을 사람이 회개를 시키는 겁니다. 죄 지은 만큼 그 고통이 따라가야 그게 진짜 회개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말로 해도 그건 회개가 아닙니다. 한 번 하면 습성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회개를 해야 합니다.
죄를 짓고 나면 고통은 따르는 겁니다.
회개는 아픕니다. 아파야 회개입니다. 아픔이 따르지 않는 회개, 고통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말하고 기도하고 무릎을 꿇고 밤을 새도, 금식을 해도 실제로 고치는 회개가 되지 않으면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하시기 때문에 책망을 내가 받아야합니다. 사랑하심으로 받는 채찍을 받아야합니다. 그래야 건짐을 받습니다. 평소에 그러기 때문에 죄를 안 지으면 그런 일이 없겠지요. 이름을 안다, 역사를 안다 그랬습니다. 안다는 말은 물리로 말하면 안다는 말이 있고, 봤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그 분의 역사의 동기, 목적, 내면을 내가 아는 것인데, 아는 것은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는 겁니다. 그 분의 역사, 그 분의 이름, 그 역사의 주체자를 아는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활동은 감동과 역사라 그랬는데, 섭리 역사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무형의 하나님, 무형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형체가 없지만, 그 분의 활동과 작용, 역사, 이것이 세상에 일어나고 나한테 나는 것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무형의 하나님의 그 분의 이름을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피아노가 없는데 피아노 소리가 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냄새를 피우는 그 근본, 원인, 그 물체가 없는데 악취나 향기가 날 수는 없습니다. 그 주변에 그것이 있는겁니다. 아카시아 향기가 나면 아카시아가 있습니다. 새 소리가 나면 새가 있거나 새 소리 내는 무언가가 있지 없을 수 없습니다. 아이 울음 소리가 나면은 아이가 있던지 고양이가 울던지 그런 것이지요.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바람이 부는 구나, 알겠지요.
바람이 불면 바람이 가는 걸 아는 것처럼 중생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그 분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무형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분의 무형을 강조하면 그 분을 부인하기 쉽니다. 잘못하면 엉뚱한 존재를 가지고 하나님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분이 이름, 역사를 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히 살펴야 합니다. 감동의 역사는 내 주관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감동과 섭리 역사로 살펴봐야겠는데, 이건 우연의 이치다 그럴 수 있다. 이게 불신자, 믿지 않는 자들의 태도입니다. 기독교는 단 하나도 머리털 하나 움직이는 것도 우연은 없습니다. 돌발적인 것은 어떤 것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필연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우연은 없습니다. 반드시 필연의 역사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안 믿어져도 받아들이고..
나타난 사랑의 동기 구원의 목적을 알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거기에 순응해서 사는 겁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이름을 알면은 사람이 겸손할 수 밖에 없지요. 겸손한 사람은 올라갑니까 내려갑니까? 내려갈려고 그러지요. 사울도 겸손하니까 제가 어떻게 감히 왕이 됩니까. 다윗도.. 겸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아니까. 자기를 모를 때 철 없을 때, 참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알고 나면은 사람은 저절로 겸손해집니다. 벼만 익어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도 그렇습니다.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서 쓰십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그 분의 사랑을 받으면 건짐을 받습니다. 필연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연과 자연돌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라는 말이지요.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오전에 말씀드렸듯이 간구하다고 아무나 대답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그 분에게 빚을 많이 지워나야합니다. 그 분의 하나님의 목소리가 익어져야합니다. 좀 우스은 말이지만 천만 명이 기도를 하는데 어떻게 알 겁니까. 평소의 내 목소리, 내 마음, 내 심정, 나와 하나님의 교류가 있어야 하나님께서 딱 알아보시는 것이지요. 초면일수록 못 들으시겠지요. 그 분이 전능자인데 못 들으시는가, 못 들으시는 게 아니고 안 들으시는 거겠지요.
친구, 친구라는 그 말이 하나님과 우리는 구면, 그래서 요한복음에 나오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응답하지 않을 리가 없잖습니까.
손양원 목사님을 교계에 아는 사람은 일제 시대 신사참배 전에는 그 분의 이름을 아는 분이 별로 없다고 하셨죠. 주기철 목사님 다 아시지요. 그런데 신사참배 그 시기 지나고 나니까 모르는 사람 없지요.
환란이 어떤 사람에게는 죽을 맛이겠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분의 함께하심과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오전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변화는 피조물 세계, 물질 세상에서만 변합니다. 변하는 사람. 변하는 세상. 가슴에 손을 얹고 안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안 병하는 존재가 있습니까? 바위도 변합니다. 식물도 언어도 있다고 하죠. 동족이 옆에서 자라고 있으면 같은 종 혈육이 자라고 있으면 해바라기가 있는데, 해를 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자기 세력을 키우는데, 그 옆에 동족이 있으면 도와준다고 합니다. 학자들이 다 밝혀낸 겁니다. 백 목사님께서 80년대 초에 말씀하신 거지요. 성경을 알고 나면 과학을 초월하고 시대를 앞서갑니다. 더해서, 무생물도 언어가 있습니다. 그게 성경입니다. 싹이 소리 지른다, 만물 심판이 그런 겁니다. 식물이 언어가 있다는 것도 그보다 더한 거 동물들도 생각이 있다는 것을 교계는 인정을 안했습니다. 강아지가 도랑 건너는 걸 봐라, 찾아가서 뛰어 건너갑니다. 그리고 하나가 건너면 다 건너갑니다. 지금은 상식이지요. 애완동물을 넘어서 반려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몇 마리를 안락사를 시킨다고요? 400마리? 그러니까 어떤 청년이 울면서 이런 생명을.. 속으로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시는데 어떤 생각이 들까 그럽니다. 인간이 타락하면 이거하고 연결시키는 건 아니지만, 인간이 타락하면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되는겁니다. 사람이 존귀한데 천하나 깨닫지 못하면 짐승과 다를 것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다 변합니다. 참 믿고 의지했는데 세상에 그렇게 큰 건물, 빌딩이 비행기가 충돌했다고 건물이 부서져서 수 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 큰 배에서 침몰해서 사람들이 수 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렇게 믿었는데 어느 날 변해서.. 사람이 변하면 환경도 변합니다. 오늘이 영원하리라 생각하는 것이 심히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오늘의 밝음이, 기쁨과 좋음이, 평안함이.. 계속 되어라 말이 참 좋지요. 그래서 내일 모래가 추석입니다. 대풍년이 들어서 우리 집에 떡 먹으러 오라 그 다음에 태풍이 와서 다 쓸어갔답니다. 그런 곳이 이 세상입니다. 나도 변하고 남도 변하고 내 건강도 변합니다. 병원에 들어갈 때는 걸어 들아가는데, 나올 때는 지팡이 짚고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의 모든 것이 언제까지 계속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리 생각하고 그 때는 대비하라, 세상만 해당되는 것이입니다. 기독교는 준비의 도입니다. 준비 안 하면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 이런 인간, 누구를 의지하고 아끼고 따라갈까 아무도 따라가지 말아라, 내가 떠나면 이 교회도 변한다. 사도 바울이 이랬습니다. 숨어있던 사람이 나온다고 하지요. 고요하게 사도 바울이 평안하게 주님만 믿고 있는데, 가니까 교회가 변하는 겁니다. 변할 것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삼가라, 그래서 바울은 세상에 있는 것에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을 공부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우는 겁니다. 어떤 분인가. 변치 않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따라가야합니다. 그 분은 자존자입니다. 그 분이 원인이고 뿌리고 출발입니다. 자존자라는 말 속에 많은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전부 그 분에게서 출발되는 겁니다. 창세기에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 다음부터 빛도 있고 어둠도 있고 땅도 있고.. 두 번째는 그 분은 완전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적으로, 활동적으로, 존재적으로 전부 다 완전합니다. 믿을 만 합니다. 세 번째 그 분은 변하지 않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은 하나님. 그런데 그 분은 무형입니다. 형체가 없는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이게 우리가 알아야 하는 하나님입니다. 이 분을 믿어야하고 의지해야하고 바라봐야하고 순종해야하고 찾아야합니다. 그 분의 능력은 전지고 전능입니다. 알지 못하심이 없다. 물질 세계도 우리가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공간 개념을 많이 생각하는데, 우주의 끝과 끝, 영계의 끝과 끝은 어디일까. 완전 초월한 것이지요. 마음의 작용은 신비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공간의 세계 그 범위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우주는 넓다 별도 많다. 그런데 그 우주가 어떠하고 별이 어떠하고 별 하나의, 달의 뒤도 알고.. 화성에 가 봤지만 화성에 물이 있다 없다, 사람이 살 수 있다 없다.. 그 뿐이지 지구에는 바다도 있고 종류도 많고 그런데 다 알겠습니까. 흙, 벌레, 뱀, 식물 그게 다 몇 가지인지 아십니다. 전지자. 그래서 그 분 자체가 지혜고 지식이고 그 분의 모든 역사가 전지고 전능입니다. 백 목사님은 5학년까지 졸업하셨는데, 20세기에 발견한 거 다 그 때 알았습니다. 과학을 초월하고 인간을 초월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전지전능자입니다. 그 분의 성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덩어리, 무형의 하나님인데 전지전능하고 사랑으로 다 가득 찬.. 노아 때 다 쓸어버렸는데 사랑이고, 지옥을 만들어서 불택자들을 태우는데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모르면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성인 세계는 모르면 함부로 말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고 다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지하니까 그걸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봐야 그게 사랑이었구나 그렇게 압니다. 그래서 몇 가지 했습니까? 하나님은 세 가지, 영원하신분, 자존하신 분 완전하신분. 둘째 전지전능하십니다. 세 번째는 사랑이 성품이십니다. 이런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 역사입니다. 그 분의 역사는 모두 구원입니다. 그 섭리 안에 대속 역사가 들어있고, 이런 하나님입니다. 크게 네 가지.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이런 하나님이 우리의 원형이고 뿌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닮은 우리고.. 그 분은 우리를 낳으신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버지입니다. 그 분은.. 세 번째 그 분은 우리의 구주입니다. 우리 모두 다 책임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피난처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받아들이고 그 분을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우리 원형이니까 그리 알고 닮아야겠다.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니까 믿어야겠다. 구주니까 믿어야겠다. 의지하고 순응해야겠다. 이렇습니다. 이 배경 좋은 분을 우리가 잊어버리고 사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변하는 세상, 변하는 인간..
연단이 있어야 세상을 감당합니다. 앞날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서 오늘의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대우해드리고 섬기는 그런 말씀을 섬겨야겠다. 오늘 말씀의 목적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가 : 141장, 144장, 145장
본문 : 시편 91편 14절 ~ 91편 16절
제목 : 하나님을 알고 대우합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은 한 분이신 하나님이신데, 계약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계약의 하나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합니다. 여호와는 계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모든 하나님은 다 계약의 하나님입니다. 계약은 약속을 했다는 것이고, 그 뜻은 쌍방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혼자는 계약을 할 수 없습니다. 계약은 쌍방이어야하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이 계약은 어찌보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포이지만, 그 선포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들려질 때, 택함 받고 중생되어 질 때, 들은 사람은 성립이 된다. 그 말입니다. 대속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계약이 맺어진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계약을 맺은 그런 상태가 되고, 하나님을 계약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계약이란 말은 쌍방의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계약은 모두 조건이 있습니다. 계약 자체가 조건이라는 뜻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즉,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죄에서 건지리라, 건진다는 것은 구원한다는 뜻이지요. 어딘가에 곤란할 때 빠졌을 때 구해내는 것이 구원입니다. 사망, 지옥, 멸망에서 구해내는 것이 구원이고 이 땅에서 살 때도 힘듦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건짐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강자를 향한 약자의 사랑, 원래 사랑이라는 것은 약자를 위한 강자의 사랑인데, 은혜를 베풀수 있는 위치와 능력이 있어야하는데, 사랑을 줄 수 있는 입장이 되고 위치가 되어야 하지,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게 약자가 강자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되는 많은 역사가 있습니다. 그 역사가 하나님은 사랑인데 마치 어린 아기를 향한 사랑하는 어머니의 상대가 항상 아기를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예뻐해주고 칭찬해주고,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겨도 잘했다, 그러면 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 예뻐주고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기면 혼을 내야합니다.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갈 지라도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일성이지요. 그렇기에 인간 중심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각각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건지리라, 죄를 지어서 징계를 받아서 경제가 파산됐던지, 감옥에 가게 됐던지 하게 됩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지 잘못된 것을 깨달아 뉘우치고, 첫째, 너 뼈 빠지게 일해서 훔쳐먹은 거 갚아라. 그러면 그냥 하면 되지 뭐할라 그렇게 하냐, 우리 부모님이면 그렇게 할 텐데.. 내가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때렸지만은 이해해 주면 되지. 이게 전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갚아라, 때렸느냐 너도 맞아야지.. 이것이 바로 얼마 전에 공부했던 공의고 공평입니다. 그게 사랑이지 공의 공평 없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죄에 빠졌을 때 사람을 건지는 방법을 사람이 회개를 시키는 겁니다. 죄 지은 만큼 그 고통이 따라가야 그게 진짜 회개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말로 해도 그건 회개가 아닙니다. 한 번 하면 습성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회개를 해야 합니다.
죄를 짓고 나면 고통은 따르는 겁니다.
회개는 아픕니다. 아파야 회개입니다. 아픔이 따르지 않는 회개, 고통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말하고 기도하고 무릎을 꿇고 밤을 새도, 금식을 해도 실제로 고치는 회개가 되지 않으면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하시기 때문에 책망을 내가 받아야합니다. 사랑하심으로 받는 채찍을 받아야합니다. 그래야 건짐을 받습니다. 평소에 그러기 때문에 죄를 안 지으면 그런 일이 없겠지요. 이름을 안다, 역사를 안다 그랬습니다. 안다는 말은 물리로 말하면 안다는 말이 있고, 봤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그 분의 역사의 동기, 목적, 내면을 내가 아는 것인데, 아는 것은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는 겁니다. 그 분의 역사, 그 분의 이름, 그 역사의 주체자를 아는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활동은 감동과 역사라 그랬는데, 섭리 역사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무형의 하나님, 무형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형체가 없지만, 그 분의 활동과 작용, 역사, 이것이 세상에 일어나고 나한테 나는 것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무형의 하나님의 그 분의 이름을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피아노가 없는데 피아노 소리가 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냄새를 피우는 그 근본, 원인, 그 물체가 없는데 악취나 향기가 날 수는 없습니다. 그 주변에 그것이 있는겁니다. 아카시아 향기가 나면 아카시아가 있습니다. 새 소리가 나면 새가 있거나 새 소리 내는 무언가가 있지 없을 수 없습니다. 아이 울음 소리가 나면은 아이가 있던지 고양이가 울던지 그런 것이지요.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바람이 부는 구나, 알겠지요.
바람이 불면 바람이 가는 걸 아는 것처럼 중생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그 분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무형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분의 무형을 강조하면 그 분을 부인하기 쉽니다. 잘못하면 엉뚱한 존재를 가지고 하나님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분이 이름, 역사를 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히 살펴야 합니다. 감동의 역사는 내 주관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감동과 섭리 역사로 살펴봐야겠는데, 이건 우연의 이치다 그럴 수 있다. 이게 불신자, 믿지 않는 자들의 태도입니다. 기독교는 단 하나도 머리털 하나 움직이는 것도 우연은 없습니다. 돌발적인 것은 어떤 것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필연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우연은 없습니다. 반드시 필연의 역사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안 믿어져도 받아들이고..
나타난 사랑의 동기 구원의 목적을 알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거기에 순응해서 사는 겁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이름을 알면은 사람이 겸손할 수 밖에 없지요. 겸손한 사람은 올라갑니까 내려갑니까? 내려갈려고 그러지요. 사울도 겸손하니까 제가 어떻게 감히 왕이 됩니까. 다윗도.. 겸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아니까. 자기를 모를 때 철 없을 때, 참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알고 나면은 사람은 저절로 겸손해집니다. 벼만 익어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도 그렇습니다.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서 쓰십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그 분의 사랑을 받으면 건짐을 받습니다. 필연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연과 자연돌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라는 말이지요.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오전에 말씀드렸듯이 간구하다고 아무나 대답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그 분에게 빚을 많이 지워나야합니다. 그 분의 하나님의 목소리가 익어져야합니다. 좀 우스은 말이지만 천만 명이 기도를 하는데 어떻게 알 겁니까. 평소의 내 목소리, 내 마음, 내 심정, 나와 하나님의 교류가 있어야 하나님께서 딱 알아보시는 것이지요. 초면일수록 못 들으시겠지요. 그 분이 전능자인데 못 들으시는가, 못 들으시는 게 아니고 안 들으시는 거겠지요.
친구, 친구라는 그 말이 하나님과 우리는 구면, 그래서 요한복음에 나오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응답하지 않을 리가 없잖습니까.
손양원 목사님을 교계에 아는 사람은 일제 시대 신사참배 전에는 그 분의 이름을 아는 분이 별로 없다고 하셨죠. 주기철 목사님 다 아시지요. 그런데 신사참배 그 시기 지나고 나니까 모르는 사람 없지요.
환란이 어떤 사람에게는 죽을 맛이겠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분의 함께하심과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오전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변화는 피조물 세계, 물질 세상에서만 변합니다. 변하는 사람. 변하는 세상. 가슴에 손을 얹고 안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안 병하는 존재가 있습니까? 바위도 변합니다. 식물도 언어도 있다고 하죠. 동족이 옆에서 자라고 있으면 같은 종 혈육이 자라고 있으면 해바라기가 있는데, 해를 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자기 세력을 키우는데, 그 옆에 동족이 있으면 도와준다고 합니다. 학자들이 다 밝혀낸 겁니다. 백 목사님께서 80년대 초에 말씀하신 거지요. 성경을 알고 나면 과학을 초월하고 시대를 앞서갑니다. 더해서, 무생물도 언어가 있습니다. 그게 성경입니다. 싹이 소리 지른다, 만물 심판이 그런 겁니다. 식물이 언어가 있다는 것도 그보다 더한 거 동물들도 생각이 있다는 것을 교계는 인정을 안했습니다. 강아지가 도랑 건너는 걸 봐라, 찾아가서 뛰어 건너갑니다. 그리고 하나가 건너면 다 건너갑니다. 지금은 상식이지요. 애완동물을 넘어서 반려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몇 마리를 안락사를 시킨다고요? 400마리? 그러니까 어떤 청년이 울면서 이런 생명을.. 속으로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시는데 어떤 생각이 들까 그럽니다. 인간이 타락하면 이거하고 연결시키는 건 아니지만, 인간이 타락하면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되는겁니다. 사람이 존귀한데 천하나 깨닫지 못하면 짐승과 다를 것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다 변합니다. 참 믿고 의지했는데 세상에 그렇게 큰 건물, 빌딩이 비행기가 충돌했다고 건물이 부서져서 수 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 큰 배에서 침몰해서 사람들이 수 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렇게 믿었는데 어느 날 변해서.. 사람이 변하면 환경도 변합니다. 오늘이 영원하리라 생각하는 것이 심히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오늘의 밝음이, 기쁨과 좋음이, 평안함이.. 계속 되어라 말이 참 좋지요. 그래서 내일 모래가 추석입니다. 대풍년이 들어서 우리 집에 떡 먹으러 오라 그 다음에 태풍이 와서 다 쓸어갔답니다. 그런 곳이 이 세상입니다. 나도 변하고 남도 변하고 내 건강도 변합니다. 병원에 들어갈 때는 걸어 들아가는데, 나올 때는 지팡이 짚고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의 모든 것이 언제까지 계속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리 생각하고 그 때는 대비하라, 세상만 해당되는 것이입니다. 기독교는 준비의 도입니다. 준비 안 하면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 이런 인간, 누구를 의지하고 아끼고 따라갈까 아무도 따라가지 말아라, 내가 떠나면 이 교회도 변한다. 사도 바울이 이랬습니다. 숨어있던 사람이 나온다고 하지요. 고요하게 사도 바울이 평안하게 주님만 믿고 있는데, 가니까 교회가 변하는 겁니다. 변할 것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삼가라, 그래서 바울은 세상에 있는 것에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을 공부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우는 겁니다. 어떤 분인가. 변치 않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따라가야합니다. 그 분은 자존자입니다. 그 분이 원인이고 뿌리고 출발입니다. 자존자라는 말 속에 많은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전부 그 분에게서 출발되는 겁니다. 창세기에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 다음부터 빛도 있고 어둠도 있고 땅도 있고.. 두 번째는 그 분은 완전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적으로, 활동적으로, 존재적으로 전부 다 완전합니다. 믿을 만 합니다. 세 번째 그 분은 변하지 않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은 하나님. 그런데 그 분은 무형입니다. 형체가 없는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이게 우리가 알아야 하는 하나님입니다. 이 분을 믿어야하고 의지해야하고 바라봐야하고 순종해야하고 찾아야합니다. 그 분의 능력은 전지고 전능입니다. 알지 못하심이 없다. 물질 세계도 우리가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공간 개념을 많이 생각하는데, 우주의 끝과 끝, 영계의 끝과 끝은 어디일까. 완전 초월한 것이지요. 마음의 작용은 신비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공간의 세계 그 범위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우주는 넓다 별도 많다. 그런데 그 우주가 어떠하고 별이 어떠하고 별 하나의, 달의 뒤도 알고.. 화성에 가 봤지만 화성에 물이 있다 없다, 사람이 살 수 있다 없다.. 그 뿐이지 지구에는 바다도 있고 종류도 많고 그런데 다 알겠습니까. 흙, 벌레, 뱀, 식물 그게 다 몇 가지인지 아십니다. 전지자. 그래서 그 분 자체가 지혜고 지식이고 그 분의 모든 역사가 전지고 전능입니다. 백 목사님은 5학년까지 졸업하셨는데, 20세기에 발견한 거 다 그 때 알았습니다. 과학을 초월하고 인간을 초월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전지전능자입니다. 그 분의 성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덩어리, 무형의 하나님인데 전지전능하고 사랑으로 다 가득 찬.. 노아 때 다 쓸어버렸는데 사랑이고, 지옥을 만들어서 불택자들을 태우는데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모르면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성인 세계는 모르면 함부로 말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고 다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지하니까 그걸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봐야 그게 사랑이었구나 그렇게 압니다. 그래서 몇 가지 했습니까? 하나님은 세 가지, 영원하신분, 자존하신 분 완전하신분. 둘째 전지전능하십니다. 세 번째는 사랑이 성품이십니다. 이런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 역사입니다. 그 분의 역사는 모두 구원입니다. 그 섭리 안에 대속 역사가 들어있고, 이런 하나님입니다. 크게 네 가지.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이런 하나님이 우리의 원형이고 뿌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닮은 우리고.. 그 분은 우리를 낳으신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버지입니다. 그 분은.. 세 번째 그 분은 우리의 구주입니다. 우리 모두 다 책임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피난처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받아들이고 그 분을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우리 원형이니까 그리 알고 닮아야겠다.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니까 믿어야겠다. 구주니까 믿어야겠다. 의지하고 순응해야겠다. 이렇습니다. 이 배경 좋은 분을 우리가 잊어버리고 사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변하는 세상, 변하는 인간..
연단이 있어야 세상을 감당합니다. 앞날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서 오늘의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대우해드리고 섬기는 그런 말씀을 섬겨야겠다. 오늘 말씀의 목적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