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일 주일 오후 - 독처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김동민2019-09-01조회 257추천 31
2019년 9월 1일 주일 오후
찬송 : 34장, 77장
본문 : 창세기 2장 18절 ~ 25절
제목 : 독처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예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많이 생겼습니다. 말씀을 예사로 듣고 예사로 어기고, 죄를 예사로 짓는 것이 오늘 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죄가 없다고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는 분들이 가끔가다가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따지려면 많이 생각해 봐야겠지만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죄가 뭐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말씀을 어기는 죄를 짓고 사는 게 우리들이고, 그렇다고 죄를 짓는게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너무 쉽게 어겨버립니다.
하나님은 실 없는 말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눈이 세 개가 원래 모습이라도 눈이 두 개가 정상입니다. 두 발로 걸어다닌다고 아프다고 네 발로 걸어다닌다고 해도, 두 발로 걸어다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수를 따라가라, 다수가 옳은 게 아닙니다. 대중은 어리석고, 다수는 흐려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 만들어놓고 처음 하신 말씀이 현실에 피동되지 말고, 환경에 피동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피동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과 떨어진 사람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결혼식 때 그렇게 말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자유다. 작년 5월 집회 때 신앙의 생명은 자유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위성이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아무도 참견은 못합니다. 귀막고 있는다고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할 말을 하는 겁니다. 듣고 옳다고 생각하면 좋겠고, 아니면 버리죠. 하나님 말씀은 우리 믿는 사람이 옳다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노력하면 복에 가깝고 던져버리면 그 만큼은 거리가 멀아지죠.
그래서 한 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겁니다.
어쨌든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독처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어떤 면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따져 봐야하는데, 좋지 못하구나. 빨리 벗어나려고 노력을 해야합니다.
할려 했는데 안됐습니다. 너무 눈이 높은 거 아닌가, 까다로운 게 아니냐. 스스로 자문자답해서 찾아보면 다 답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기억합니다.
왜 좋지 못할까. 하나님께서 본문에 보면 독처하는 게 좋지 못하기 때문에 새와 짐승을 아담이 이름을 다 지었습니다. 하나님께 아담을 맡길 때 혼자 있는 상태로 맡겼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동행한, 그게 하나님과 동거 동행인데, 짝이 없을 때입니다. 혼자 있을 때 아담은 잘 살았습니다. 혼자 사는 게 좋지 못하기 때문에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건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로 하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면 혼자서 잘 하는 아담에게 잘 다스리고 있고, 잘 하는 아담에게 혼자는 좋지 못하니까 돕는 베필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 하와가 사고를 쳤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기준 생각해보면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왜 먹었느냐 하니까 하나님이 만들어주셔서 함께하는 그 여자가 먹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 먹게 만들라고 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해서 돕는 베필로 주셨는데, 제가 따먹어 놓고 피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게 핑계를 댔습니다. 결혼을 안 하면 죄다. 하는 게 무조건 좋다. 이것도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타락 후에 인간에게 주신 수고가 남자에게 준 수고는 결혼해서 자식을 뼈빠지게 먹여살려라, 이거고, 법을 만들어 놨습니다. 타락 후에 여자에게는 아이를 기르고 낳고 해서 죄값이 뭔지 생각하게 해야합니다.
하나님께 아담을 만들 때는 여자가 있었습니까? 하와는 어디에서 나왔지요? 아담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모자라서 갈비뼈로 만들었겠습니까? 뜻이 있겠지요. 아담을 위해서 도우라고 만드셨는데, 악용을 한겁니다. 이런 죄를 지어서, 남자는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고 뼈빠지게 땀을 흘려서 먹여 살리는 게 하나님께 죄값을 치르는 것이고, 여인은 아이를 가지고 낳아서 길러가면서 고생하면서 길러가는 것이 죄값을 치르는 것인데, 안 믿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결혼도 안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에게 좋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유익하기 때문에 하라는 겁니다. 오늘 날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혼자 살겠다고 하면, 사울 바울같은 성자가 아닌 이상 구원을 이루기가 참 어렵습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말씀은 일단 받아들여 놓는 겁니다.
하나면 쉽게 패하기 쉬운데 둘이면 괜찮습니다. 혼자 있다가 넘어지면 일으켜줄 사람이 없습니다. 있으면 일으켜 줄 수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 춥고 외로운데 둘이 있으면 따뜻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혼자 있으면 뭐라뭐라 그래도 외롭고 고독해지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아이들에게 심어줘야합니다. 그래서 세상 때가 묻기 전에 20대 안팎되어서 결혼을 시키려고 노력을 해야합니다. 아담이 타락으 조상인데, 동시에 전 인류의 조상입니다. 아담은 누구의 조상입니까? 아담이 없으면 하와가 없었으면 에녹이 없었을 겁니다. 하와가 없었으면 노아도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선악과 먹도록 타락시킨 그 하와가 있어서,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다 나온겁니다. 하나님의 역사인데, 과거 유대인들은, 아니 지금도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소망이 얼마나 귀한 건지 모릅니다. 그래서 구약의 유대인은 결혼하고 아들 낳는게 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별 거 아닌데, 별 사람 아닌데, 다윗이 이세 아들이 아니고 이세가 다윗 아버지입니다. 어머니가 누군지 안 나왔지만은 그 아이 속에 어떤 사람이 나오는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할지 모르지요.
과거 서부교회 보면 여반사 중에 1등 반사로 이름 날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100명 200명 데려오고 그런 처녀들이 있었는데, 그 처녀들이 결혼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무명의 열댓명 데려오는 분들이 결혼하고 보니까 사모님 되어있었습니다. 사람의 앞날은 모르는 겁니다. 오늘만 보지 말고 멀리 보고 계산해야합니다. 결혼을 안하게 되면 손해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는다. 악한 사람은 더 악해져서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지금 우리 힘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을 믿는 사람이 생명 없는 사람입니다. 환경이 피동되는 겁니다. 학교에 가서 피동, 분위기에 피동되고, 생명은 죽음입니다. 내가 가진 나이의 인생관, 나의 믿는 신앙의 믿음.. 왜 세상에 피동 되어서 따라갈지.. 열심히 믿던 처녀가 대학가서 안 보이니까 속았던가? 내가 그때 왜 믿었지? 생각을 해봐야지요. 왜 남의 인생에 피동이 됩니까. 여기 있는 젊은 분들, 어머니보고 믿는 사람은 신앙이 아닙니다. 자기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내 믿음은 내가 가지지. 왜 내 인생을 내가 살지. 살아달라 그런가요? 안 믿어집니다. 그러면 믿지 마십시오. 믿는 척 하면은 외식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 안 믿어지는데, 아버지 눈치보고 어머니 눈치봐서 외식하지 마십시오.
우리 아이들은 엄하게 잡고, 자유성을 생각하도록 길러야합니다. 신앙도 너 신앙이 되어야하지. 10대 후반 20대 후반, 이미 다 알겁니다. 부모 생각해서 예배당 있는데, 좋은 아들입니다. 좋은 딸이고, 좋은 학생입니다. 그런데 좋은 믿음은 아닙니다. 안 믿어지면 안 믿어지는대로 생각해 봐야합니다. 남의 할 말 듣고 눈치 드는 거.. 오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은 좋지못하다는 것을 생각해봅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초타 : 김동민
찬송 : 34장, 77장
본문 : 창세기 2장 18절 ~ 25절
제목 : 독처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예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많이 생겼습니다. 말씀을 예사로 듣고 예사로 어기고, 죄를 예사로 짓는 것이 오늘 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죄가 없다고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는 분들이 가끔가다가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따지려면 많이 생각해 봐야겠지만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죄가 뭐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말씀을 어기는 죄를 짓고 사는 게 우리들이고, 그렇다고 죄를 짓는게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너무 쉽게 어겨버립니다.
하나님은 실 없는 말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눈이 세 개가 원래 모습이라도 눈이 두 개가 정상입니다. 두 발로 걸어다닌다고 아프다고 네 발로 걸어다닌다고 해도, 두 발로 걸어다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수를 따라가라, 다수가 옳은 게 아닙니다. 대중은 어리석고, 다수는 흐려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 만들어놓고 처음 하신 말씀이 현실에 피동되지 말고, 환경에 피동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피동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과 떨어진 사람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결혼식 때 그렇게 말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자유다. 작년 5월 집회 때 신앙의 생명은 자유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위성이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아무도 참견은 못합니다. 귀막고 있는다고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할 말을 하는 겁니다. 듣고 옳다고 생각하면 좋겠고, 아니면 버리죠. 하나님 말씀은 우리 믿는 사람이 옳다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노력하면 복에 가깝고 던져버리면 그 만큼은 거리가 멀아지죠.
그래서 한 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겁니다.
어쨌든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독처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어떤 면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따져 봐야하는데, 좋지 못하구나. 빨리 벗어나려고 노력을 해야합니다.
할려 했는데 안됐습니다. 너무 눈이 높은 거 아닌가, 까다로운 게 아니냐. 스스로 자문자답해서 찾아보면 다 답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기억합니다.
왜 좋지 못할까. 하나님께서 본문에 보면 독처하는 게 좋지 못하기 때문에 새와 짐승을 아담이 이름을 다 지었습니다. 하나님께 아담을 맡길 때 혼자 있는 상태로 맡겼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동행한, 그게 하나님과 동거 동행인데, 짝이 없을 때입니다. 혼자 있을 때 아담은 잘 살았습니다. 혼자 사는 게 좋지 못하기 때문에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건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로 하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면 혼자서 잘 하는 아담에게 잘 다스리고 있고, 잘 하는 아담에게 혼자는 좋지 못하니까 돕는 베필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 하와가 사고를 쳤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기준 생각해보면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왜 먹었느냐 하니까 하나님이 만들어주셔서 함께하는 그 여자가 먹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 먹게 만들라고 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해서 돕는 베필로 주셨는데, 제가 따먹어 놓고 피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게 핑계를 댔습니다. 결혼을 안 하면 죄다. 하는 게 무조건 좋다. 이것도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타락 후에 인간에게 주신 수고가 남자에게 준 수고는 결혼해서 자식을 뼈빠지게 먹여살려라, 이거고, 법을 만들어 놨습니다. 타락 후에 여자에게는 아이를 기르고 낳고 해서 죄값이 뭔지 생각하게 해야합니다.
하나님께 아담을 만들 때는 여자가 있었습니까? 하와는 어디에서 나왔지요? 아담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모자라서 갈비뼈로 만들었겠습니까? 뜻이 있겠지요. 아담을 위해서 도우라고 만드셨는데, 악용을 한겁니다. 이런 죄를 지어서, 남자는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고 뼈빠지게 땀을 흘려서 먹여 살리는 게 하나님께 죄값을 치르는 것이고, 여인은 아이를 가지고 낳아서 길러가면서 고생하면서 길러가는 것이 죄값을 치르는 것인데, 안 믿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결혼도 안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에게 좋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유익하기 때문에 하라는 겁니다. 오늘 날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혼자 살겠다고 하면, 사울 바울같은 성자가 아닌 이상 구원을 이루기가 참 어렵습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말씀은 일단 받아들여 놓는 겁니다.
하나면 쉽게 패하기 쉬운데 둘이면 괜찮습니다. 혼자 있다가 넘어지면 일으켜줄 사람이 없습니다. 있으면 일으켜 줄 수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 춥고 외로운데 둘이 있으면 따뜻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혼자 있으면 뭐라뭐라 그래도 외롭고 고독해지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아이들에게 심어줘야합니다. 그래서 세상 때가 묻기 전에 20대 안팎되어서 결혼을 시키려고 노력을 해야합니다. 아담이 타락으 조상인데, 동시에 전 인류의 조상입니다. 아담은 누구의 조상입니까? 아담이 없으면 하와가 없었으면 에녹이 없었을 겁니다. 하와가 없었으면 노아도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선악과 먹도록 타락시킨 그 하와가 있어서,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다 나온겁니다. 하나님의 역사인데, 과거 유대인들은, 아니 지금도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소망이 얼마나 귀한 건지 모릅니다. 그래서 구약의 유대인은 결혼하고 아들 낳는게 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별 거 아닌데, 별 사람 아닌데, 다윗이 이세 아들이 아니고 이세가 다윗 아버지입니다. 어머니가 누군지 안 나왔지만은 그 아이 속에 어떤 사람이 나오는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할지 모르지요.
과거 서부교회 보면 여반사 중에 1등 반사로 이름 날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100명 200명 데려오고 그런 처녀들이 있었는데, 그 처녀들이 결혼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무명의 열댓명 데려오는 분들이 결혼하고 보니까 사모님 되어있었습니다. 사람의 앞날은 모르는 겁니다. 오늘만 보지 말고 멀리 보고 계산해야합니다. 결혼을 안하게 되면 손해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는다. 악한 사람은 더 악해져서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지금 우리 힘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을 믿는 사람이 생명 없는 사람입니다. 환경이 피동되는 겁니다. 학교에 가서 피동, 분위기에 피동되고, 생명은 죽음입니다. 내가 가진 나이의 인생관, 나의 믿는 신앙의 믿음.. 왜 세상에 피동 되어서 따라갈지.. 열심히 믿던 처녀가 대학가서 안 보이니까 속았던가? 내가 그때 왜 믿었지? 생각을 해봐야지요. 왜 남의 인생에 피동이 됩니까. 여기 있는 젊은 분들, 어머니보고 믿는 사람은 신앙이 아닙니다. 자기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내 믿음은 내가 가지지. 왜 내 인생을 내가 살지. 살아달라 그런가요? 안 믿어집니다. 그러면 믿지 마십시오. 믿는 척 하면은 외식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 안 믿어지는데, 아버지 눈치보고 어머니 눈치봐서 외식하지 마십시오.
우리 아이들은 엄하게 잡고, 자유성을 생각하도록 길러야합니다. 신앙도 너 신앙이 되어야하지. 10대 후반 20대 후반, 이미 다 알겁니다. 부모 생각해서 예배당 있는데, 좋은 아들입니다. 좋은 딸이고, 좋은 학생입니다. 그런데 좋은 믿음은 아닙니다. 안 믿어지면 안 믿어지는대로 생각해 봐야합니다. 남의 할 말 듣고 눈치 드는 거.. 오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은 좋지못하다는 것을 생각해봅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