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9일 주일 오후 - 소망을 향해 나아가자
김동민2019-09-29조회 262추천 29
2019년 9월 29일 주일 오후
찬송 : 120장, 126장
본문 : 히브리서 11장 13절 ~ 16절
제목 : 소망을 향해 나아가자
오전에 말씀드린 대로 기독교는 믿음의 도입니다. 출발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은혜는 주셔야 받는 것인데, 내가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닌게 은혜입니다. 그래서 은혜로 받은 기본구원이 전적 하나님이 그냥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믿음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사람이 볼 때,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목사가 목사를 고소를하고,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밖에 나와보면 목사가 오만 짓 다 하는 경우 많습니다.
사람이 사람인지라 별별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은혜로 받은 믿음, 그냥 주시니까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기독교 구원은 어찌보면 참 허무한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칼빈 이전에는 기본 구원을 깨닫지 못해서 악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천국가는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믿음이 자라가려면,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말씀, 하나님이 하나님 당신을 하나님에게 알려주신 것이 있으니 이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그분의 인간의 상상, 생각을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에 어떻게 연구를 해도 그분은 닿지를 않습니다. 어떤 존재를 다 발견해도 하나님은 발견하지 못합니다. 우주를 발견해도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은 모르는겁니다. 하나님은 알려주시면 알고 안 알려주시면 모르는겁니다. 그래서 공회 홈페이지보면, 11번째 글인가 보면 우리 공회에 특별한 역사 흔적들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과거, 서부교회 주일학교인데 저희들이 625 일 때 들으면 저희는 전설처럼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부교회 80년대에는 8천명이 있고, 1층 2층 3층 4층까지 다 찼습니다. 많을 때는 만3천명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모든 주일학교가 신문에 나오고 그랬는데, 어떤 방법이 있었나요?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전도하고 교회 갈래? 그러면 허락 받고 데리고오고 이게 끝입니다. 이게 교육이 다른지, 없습니다.
지극히 평범합니다. 하니까 되었고 안하니까 안 되었다 이거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면 알고, 안 알려주시면 모르는겁니다.
알려주시는 것이 기본적으로 은혜이고, 은혜로 믿음을 받은 사람이 조금 더 세밀하게, 정확하게 만나는 법이 있습니다. 전지전능도 다 들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쓰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아는 것이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고 떠나시면 없는 겁니다.
어제 광화문에서 데모하는데 어떤 사람은 150만명 모였다 15만명 모였다 이렇답니다. 장관을 지키려고, 한 쪽은 범법자라고 하고 그랬답니다. 100만명이 들어서 촛불을 가지고 와서 어떤 성격인지 아시겠습니까. 촛불의 본질이 뭔지 아십니까. 촛불이 옳다고 지나가서 보자, 광우병도 같다고 그랬죠. 사람이 미래는 몰라도, 닥치는 그때를 보고도 모르면 희망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열어두지 않으시면 모르는겁니다. 그런데,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적인 믿음이 말씀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기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옛날에 성경 속의 인물이 아닐지라도 대단한 인물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말씀을 따라서 믿음을 길러가야합니다.
이 사람들을 기록해놓은 것은 이 사람들이 믿음의 조상입니다. 사라, 아브라함, 야곱, 이삭.. 믿음을 따라갔다는 것은 과정을 다 포함한 것입니다. 믿음은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순종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순종이니까, 전제조건이 뭐가 되어야합니까? 첫 번째로 무슨 제사요? 번제를 드리려면 소제가 필요한겁니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믿음을 따라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은 지방의 족장이라고 합니다. 큰 인물도 아닙니다. 백목사님은 워낙 탁월한 인물이라서 집안이 특별할 것이고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분 자신과 집안과 다 연구해보니까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인성은 창조물입니까 피조물입니까? 예수님 인성은 피조물입니다. 그게 아니면 우리와 꼭 같을 수 없는 것이고 우리가 그분처럼 될 수 있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출발했는데, 그 약속은 족장이고, 고만고만한 사람이고 75세, 노인인데 하나님이 약속하시기를 본토를 떠나라, 내가 너에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그러면 큰 민족을 이로고 복을 주어서 복의 근원이 되게하겠다. 그래서 너를 축복하는 사람은 무조건 복받고 그 반대는 저주받을 것이다. 그래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고 했는데, 믿어지겠습니까? 모르지만은 그 당시 아브라함으로써는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는데, 믿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안믿어지는데, 그래서 믿음은 어린 아기들은 세 살짜리 아기는, 더 어린 아이는 피부가 깨끗하고 눈동자가 맑습니다. 때가 안 묻었습니다. 대신 세 살짜리는 지식이 있습니까 실력이 있습니까. 그래서 맑고 순결하고 그런데, 아무것도 몰라서 큰일 날 수 있었습니다. 약하고 어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깨끗한 눈동자, 엄마 찾는 간절한 마음, 그래서 지금은 던져버리기 예사인데, 부부가 살아가다가 남편이 도망을 치고싶은데, 도망갔다가, 울고 있을 새끼가 눈에 밟혀서 도망을 못갑니다. 그게 좋은 겁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게 그거입니다. 이건 말이 안되는데, 큰 민족을 이루게 했습니다. 거짓말도 정도껏해야지.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전지전능자다. 알지못하심이 없다. 구석구석 전부 다 안다. 내 깊은 속에 한 길 사람이 마음은 모르는데, 내 깊은 마음은 알까, 전능자라.. 거짓말이면 성경은 뭡니까? 그러면 집어던져야죠.
그분이 자존자, 전지자, 전능자, 완전자, 창조주라서.. 하늘과 우주가 얼마나 넓은데, 엿새 동안에 다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실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성경은 하나의 소설이고 괴변입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믿어지면 은혜받은 사람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안 아팠을까요? 고통이 없었겠습니까? 미국사는 사람은 병이 안 걸립니까? 서울사는 사람도 똥싸고, 배탈나도, 병도 들도, 사고도 들고 미국사는 사람도 같은 겁니다. 사람은 별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니는 것도 한 번은 필요하지만, 믿는 사람은 자제해야합니다.
하나님의 계약은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더불어 맺은 계약. 우리도 모르게 맺은 계약이 있습니다. 계약은 소망이고 말씀 속에 소망이 있습니다. 점점 자라고 변화되어서 아브라함처럼 되고 주님처럼 됩니다. 지능적으로 인격적으로 실질적으로. 이런 큰 소망이 세상 생활입니다.
오늘 사는 우리 생활은 소망을 위한 과정들입니다. 공부를 해야 성적이나오고, 밥을 먹어야 배가 부릅니다. 그래서 그 현실을 주시는데, 그 현실을 살아가는데, 이루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현실이 고난스러우면 특별한 것이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위인전, 앞에 대부분에 들어가는 말이 뭡니까? 고난과 극복. 그런 사람이 위인이 되는 겁니다. 소망이 워낙 크니까, 주시는 과정도 어려움이 많은겁니다.
오늘 오전 오후에는 믿음으로 우리의 소망을 굳게 잡고 나가야겠다. 그것은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려운 과정을 나를 부인하고 말씀 순종을 따라 잘 통과하면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 : 120장, 126장
본문 : 히브리서 11장 13절 ~ 16절
제목 : 소망을 향해 나아가자
오전에 말씀드린 대로 기독교는 믿음의 도입니다. 출발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은혜는 주셔야 받는 것인데, 내가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닌게 은혜입니다. 그래서 은혜로 받은 기본구원이 전적 하나님이 그냥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믿음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사람이 볼 때,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목사가 목사를 고소를하고,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밖에 나와보면 목사가 오만 짓 다 하는 경우 많습니다.
사람이 사람인지라 별별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은혜로 받은 믿음, 그냥 주시니까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기독교 구원은 어찌보면 참 허무한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칼빈 이전에는 기본 구원을 깨닫지 못해서 악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천국가는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믿음이 자라가려면,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말씀, 하나님이 하나님 당신을 하나님에게 알려주신 것이 있으니 이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그분의 인간의 상상, 생각을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에 어떻게 연구를 해도 그분은 닿지를 않습니다. 어떤 존재를 다 발견해도 하나님은 발견하지 못합니다. 우주를 발견해도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은 모르는겁니다. 하나님은 알려주시면 알고 안 알려주시면 모르는겁니다. 그래서 공회 홈페이지보면, 11번째 글인가 보면 우리 공회에 특별한 역사 흔적들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과거, 서부교회 주일학교인데 저희들이 625 일 때 들으면 저희는 전설처럼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부교회 80년대에는 8천명이 있고, 1층 2층 3층 4층까지 다 찼습니다. 많을 때는 만3천명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모든 주일학교가 신문에 나오고 그랬는데, 어떤 방법이 있었나요?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전도하고 교회 갈래? 그러면 허락 받고 데리고오고 이게 끝입니다. 이게 교육이 다른지, 없습니다.
지극히 평범합니다. 하니까 되었고 안하니까 안 되었다 이거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면 알고, 안 알려주시면 모르는겁니다.
알려주시는 것이 기본적으로 은혜이고, 은혜로 믿음을 받은 사람이 조금 더 세밀하게, 정확하게 만나는 법이 있습니다. 전지전능도 다 들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쓰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아는 것이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고 떠나시면 없는 겁니다.
어제 광화문에서 데모하는데 어떤 사람은 150만명 모였다 15만명 모였다 이렇답니다. 장관을 지키려고, 한 쪽은 범법자라고 하고 그랬답니다. 100만명이 들어서 촛불을 가지고 와서 어떤 성격인지 아시겠습니까. 촛불의 본질이 뭔지 아십니까. 촛불이 옳다고 지나가서 보자, 광우병도 같다고 그랬죠. 사람이 미래는 몰라도, 닥치는 그때를 보고도 모르면 희망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열어두지 않으시면 모르는겁니다. 그런데,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적인 믿음이 말씀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기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옛날에 성경 속의 인물이 아닐지라도 대단한 인물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말씀을 따라서 믿음을 길러가야합니다.
이 사람들을 기록해놓은 것은 이 사람들이 믿음의 조상입니다. 사라, 아브라함, 야곱, 이삭.. 믿음을 따라갔다는 것은 과정을 다 포함한 것입니다. 믿음은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순종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순종이니까, 전제조건이 뭐가 되어야합니까? 첫 번째로 무슨 제사요? 번제를 드리려면 소제가 필요한겁니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믿음을 따라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은 지방의 족장이라고 합니다. 큰 인물도 아닙니다. 백목사님은 워낙 탁월한 인물이라서 집안이 특별할 것이고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분 자신과 집안과 다 연구해보니까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인성은 창조물입니까 피조물입니까? 예수님 인성은 피조물입니다. 그게 아니면 우리와 꼭 같을 수 없는 것이고 우리가 그분처럼 될 수 있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출발했는데, 그 약속은 족장이고, 고만고만한 사람이고 75세, 노인인데 하나님이 약속하시기를 본토를 떠나라, 내가 너에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그러면 큰 민족을 이로고 복을 주어서 복의 근원이 되게하겠다. 그래서 너를 축복하는 사람은 무조건 복받고 그 반대는 저주받을 것이다. 그래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고 했는데, 믿어지겠습니까? 모르지만은 그 당시 아브라함으로써는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는데, 믿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안믿어지는데, 그래서 믿음은 어린 아기들은 세 살짜리 아기는, 더 어린 아이는 피부가 깨끗하고 눈동자가 맑습니다. 때가 안 묻었습니다. 대신 세 살짜리는 지식이 있습니까 실력이 있습니까. 그래서 맑고 순결하고 그런데, 아무것도 몰라서 큰일 날 수 있었습니다. 약하고 어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깨끗한 눈동자, 엄마 찾는 간절한 마음, 그래서 지금은 던져버리기 예사인데, 부부가 살아가다가 남편이 도망을 치고싶은데, 도망갔다가, 울고 있을 새끼가 눈에 밟혀서 도망을 못갑니다. 그게 좋은 겁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게 그거입니다. 이건 말이 안되는데, 큰 민족을 이루게 했습니다. 거짓말도 정도껏해야지.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전지전능자다. 알지못하심이 없다. 구석구석 전부 다 안다. 내 깊은 속에 한 길 사람이 마음은 모르는데, 내 깊은 마음은 알까, 전능자라.. 거짓말이면 성경은 뭡니까? 그러면 집어던져야죠.
그분이 자존자, 전지자, 전능자, 완전자, 창조주라서.. 하늘과 우주가 얼마나 넓은데, 엿새 동안에 다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실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성경은 하나의 소설이고 괴변입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믿어지면 은혜받은 사람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안 아팠을까요? 고통이 없었겠습니까? 미국사는 사람은 병이 안 걸립니까? 서울사는 사람도 똥싸고, 배탈나도, 병도 들도, 사고도 들고 미국사는 사람도 같은 겁니다. 사람은 별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니는 것도 한 번은 필요하지만, 믿는 사람은 자제해야합니다.
하나님의 계약은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더불어 맺은 계약. 우리도 모르게 맺은 계약이 있습니다. 계약은 소망이고 말씀 속에 소망이 있습니다. 점점 자라고 변화되어서 아브라함처럼 되고 주님처럼 됩니다. 지능적으로 인격적으로 실질적으로. 이런 큰 소망이 세상 생활입니다.
오늘 사는 우리 생활은 소망을 위한 과정들입니다. 공부를 해야 성적이나오고, 밥을 먹어야 배가 부릅니다. 그래서 그 현실을 주시는데, 그 현실을 살아가는데, 이루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현실이 고난스러우면 특별한 것이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위인전, 앞에 대부분에 들어가는 말이 뭡니까? 고난과 극복. 그런 사람이 위인이 되는 겁니다. 소망이 워낙 크니까, 주시는 과정도 어려움이 많은겁니다.
오늘 오전 오후에는 믿음으로 우리의 소망을 굳게 잡고 나가야겠다. 그것은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려운 과정을 나를 부인하고 말씀 순종을 따라 잘 통과하면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