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8일 주일 오후
김동민2019-12-08조회 243추천 26
2019년 12월 8일 주일 오후
찬송 : 132장, 145장
본문 : 잠언 20장 21절 ~25절
내가 속한 곳, 내가 다니는 학교, 비록 내가 다니는 학교가 삼류 대학이라도, 나에게는 일류 대학보다 더한 소속감을 다녀야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아닌 것에서 벗어나야하지, 아닌 것은 외식입니다.
백목사님의 마지막, 1988년, 옛날 얘기로 들리겠지요. 80년대 설교에 625이야기를 설교로 자주하셨는데, 하나의 전설처럼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들의 현장감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60~70년대 살았으니까, 더 생생했겠지요. 그때 그러했던 것처럼, 당시 이야기를 하면 옛날 이야기처럼 듣는데, 우리에게는 생생한 현장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80년대 5월 집회에 총공회가 좋다고 생각된다면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충성이 나올 수가 없는겁니다. 근본적으로 기독교가 안 좋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없겠지만은, 기본적으로 사람은 불교를 믿는 사람은 불교가 좋으니까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다 그런겁니다. 장사꾼들이 자기 물건 좋아하듯이, 자기 종교가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불교 믿는 사람들이 우리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뭐라하면 안됩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니까.
우리는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이교도라고 합니다. 모두 주관적인 종교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가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두는 것이고, 일종의 자기의 체면같이 그런 것입니다.
논리로 진실로 모든 종교는 실체가 없는 줄을 압니다. 공산주의사상은 젊을 때는 전체넓게 못 보니까 많이 따라가다가 나이가 드니까 그건 허상이고 안 되는 것인줄 알고 돌아옵니다. 우리나라 보수파에서 옛날에 좌익에 속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정말 기독교와 기독교 대표들이 토론을 한다고 하면 이건 말이 안되겠지요. 산 자와 죽은 자가 대화를 못 하듯이. 기독교가 하나님이 보이는데, 예수믿는 사람 중에서는 대부분이 신앙을 가지되, 주관적인 마음으로 믿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문제는 주관적인 것같은데, 이조욕의 모든 것은 주관은 주관인데, 주관 뿐이고 객관이 없습니다. 돌이고, 나무고, 무생물이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몄으니까 객관 역사가 없는 것이고, 기독교는 주관적으로 믿어나가면 객관 역사는 없습니다. 중생은 되었는데, 그 영이 하나님을 찾는데, 그걸 바로 알지 못하고 마음에 주관적으로 객관 역사는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믿는 사람이 객관 역사를 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들어가야합니다.
말씀은 내 속에 내 주관이 되어서 내 주격이 되고, 나는 거기에 피동이 되어질 때, 그게 하나님의 객관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요즘에는 휴대폰으로 뭐든지 다 하고 비판하고 글도 올리고 그런 쓸데없는 그런 것하는 것이 그런겁니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쁜 사람들은 그걸 할 필요가 없을 것인데.
바쁘다는 말은 할 일이 많다는 말이고, 그건 쓸모가 많다는 말입니다. 쓸모가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는데, 쓸모가 적어도 쓸모가 있다는 겁니다. 다만 적게 쓰일 뿐이지.
그러니까 쓸모 많은 사람이 좋겠지요.
다이아몬드는 쓸모가 많고, 금도 쓸모가 많죠. 그런데 그 자체로는 안됩니다. 다이아몬드를 사람이 먹을 수 있습니까? 못 먹지요.
사람들은 자기를 쓸 자리에 가야지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거기서 올라가야지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자기 자리를 떠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못나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면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남반이든 여반이든 자기 위치가 있습니다. 자동차 부속품도 자기가 자리가 있습니다.
못이 주차장에 돌아다니면 큰일 나겠지요.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순종치않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받은 복은 부럽고 쉽게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자기에게 닥치면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 하나를 투자해 놓으면 이걸 가지고 어떻게 잘 하면 지금 10000원짜리가 10만원 되고, 10년 지나면 1억원 되고, 현재 1만원을 투자해서 10년 후에 1억원을 만들겠지만, 그걸 모르면 지금 만원을 써버리겠지요.
하나님을 알고, 지금 복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고 그걸 아는 부자들은 그 돈을 가지고 있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쓰지만은, 그래서 미국 사람들 중에 청교도 신앙들의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그냥 대학교나 사회에 기부해버립니다. 믿는 사람이 더합니다. 몇 백억 백억이 되면 바로 깨닫지 못하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요즘 어느 복음 단체에 기부하면 누가 떼먹을지 모르겠고 하면서 머리가 아플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아는 사람입니다. 없는 부자같은 사람은 가치도 둘 사람이 아닙니다. 5계명을 지키면 복을 받습니다. 네 생활이, 믿음 생활이 바로 되었으니 표시로 주는겁니다. 세상의 모든 복은 표시판입니다.
우리는 지금만 보지말고 나중까지 다 계산을 합시다.
자기가 주인이 되고, 자기 위주로 사는겁니다. 자기가 중심이고 주격이니까 모든 걸 자기한테 다 맞추는 겁니다. 가정의 가장이 자기 중심이 되게 되면 당신도 나에게 맞춰라, 며느리도 맞춰라 그러면 지옥입니다.
사람이 누구든지 어린아이라도 모든 것을 자기에게 맞춰버리면 그 과정은 참 고통스러워지는데, 착하면 이 세상에서는 고분고분하다, 잘 순종한다 그런데, 성경의 착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알지못하는 어린아이들은, 자기를 희생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은 그거 변치 않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수월합니다.
상대방이 저를 위해서 나를 보려고, 해를 끼치려고 네가 나한테 그랬으니까, 악을 악으로 갖는 것이지요. 앞에 잠깐 빠진 것이 있는데,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 19절, 이것은 사람이 누구와의 관계입니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지요.
21절은 다를 수 있고, 22절도 사람 관계이고, 23절도 사람 관계입니다.
성경에는 대부분 사람 아니면 사물관계, 사물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고,, 대부분이 사람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예물 드리는 것을 중단하고, 사람하고 화목하고 예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네가 나서서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라. 그런 말이 있잖습니까.
참고 기다리면 하늘의 상금이 있다고 합니다. 저런 악인을 처벌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못합니다. 주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상대할 때 그랬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상대를 할 때 그랬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스트레스를 안 받아서 좋고, 마음이 평안해서 좋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다가 자유로 돌아가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 : 132장, 145장
본문 : 잠언 20장 21절 ~25절
내가 속한 곳, 내가 다니는 학교, 비록 내가 다니는 학교가 삼류 대학이라도, 나에게는 일류 대학보다 더한 소속감을 다녀야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아닌 것에서 벗어나야하지, 아닌 것은 외식입니다.
백목사님의 마지막, 1988년, 옛날 얘기로 들리겠지요. 80년대 설교에 625이야기를 설교로 자주하셨는데, 하나의 전설처럼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들의 현장감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60~70년대 살았으니까, 더 생생했겠지요. 그때 그러했던 것처럼, 당시 이야기를 하면 옛날 이야기처럼 듣는데, 우리에게는 생생한 현장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80년대 5월 집회에 총공회가 좋다고 생각된다면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충성이 나올 수가 없는겁니다. 근본적으로 기독교가 안 좋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없겠지만은, 기본적으로 사람은 불교를 믿는 사람은 불교가 좋으니까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다 그런겁니다. 장사꾼들이 자기 물건 좋아하듯이, 자기 종교가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불교 믿는 사람들이 우리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뭐라하면 안됩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니까.
우리는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이교도라고 합니다. 모두 주관적인 종교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가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두는 것이고, 일종의 자기의 체면같이 그런 것입니다.
논리로 진실로 모든 종교는 실체가 없는 줄을 압니다. 공산주의사상은 젊을 때는 전체넓게 못 보니까 많이 따라가다가 나이가 드니까 그건 허상이고 안 되는 것인줄 알고 돌아옵니다. 우리나라 보수파에서 옛날에 좌익에 속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정말 기독교와 기독교 대표들이 토론을 한다고 하면 이건 말이 안되겠지요. 산 자와 죽은 자가 대화를 못 하듯이. 기독교가 하나님이 보이는데, 예수믿는 사람 중에서는 대부분이 신앙을 가지되, 주관적인 마음으로 믿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문제는 주관적인 것같은데, 이조욕의 모든 것은 주관은 주관인데, 주관 뿐이고 객관이 없습니다. 돌이고, 나무고, 무생물이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몄으니까 객관 역사가 없는 것이고, 기독교는 주관적으로 믿어나가면 객관 역사는 없습니다. 중생은 되었는데, 그 영이 하나님을 찾는데, 그걸 바로 알지 못하고 마음에 주관적으로 객관 역사는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믿는 사람이 객관 역사를 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들어가야합니다.
말씀은 내 속에 내 주관이 되어서 내 주격이 되고, 나는 거기에 피동이 되어질 때, 그게 하나님의 객관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요즘에는 휴대폰으로 뭐든지 다 하고 비판하고 글도 올리고 그런 쓸데없는 그런 것하는 것이 그런겁니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쁜 사람들은 그걸 할 필요가 없을 것인데.
바쁘다는 말은 할 일이 많다는 말이고, 그건 쓸모가 많다는 말입니다. 쓸모가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는데, 쓸모가 적어도 쓸모가 있다는 겁니다. 다만 적게 쓰일 뿐이지.
그러니까 쓸모 많은 사람이 좋겠지요.
다이아몬드는 쓸모가 많고, 금도 쓸모가 많죠. 그런데 그 자체로는 안됩니다. 다이아몬드를 사람이 먹을 수 있습니까? 못 먹지요.
사람들은 자기를 쓸 자리에 가야지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거기서 올라가야지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자기 자리를 떠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못나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면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남반이든 여반이든 자기 위치가 있습니다. 자동차 부속품도 자기가 자리가 있습니다.
못이 주차장에 돌아다니면 큰일 나겠지요.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순종치않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받은 복은 부럽고 쉽게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자기에게 닥치면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 하나를 투자해 놓으면 이걸 가지고 어떻게 잘 하면 지금 10000원짜리가 10만원 되고, 10년 지나면 1억원 되고, 현재 1만원을 투자해서 10년 후에 1억원을 만들겠지만, 그걸 모르면 지금 만원을 써버리겠지요.
하나님을 알고, 지금 복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고 그걸 아는 부자들은 그 돈을 가지고 있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쓰지만은, 그래서 미국 사람들 중에 청교도 신앙들의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그냥 대학교나 사회에 기부해버립니다. 믿는 사람이 더합니다. 몇 백억 백억이 되면 바로 깨닫지 못하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요즘 어느 복음 단체에 기부하면 누가 떼먹을지 모르겠고 하면서 머리가 아플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아는 사람입니다. 없는 부자같은 사람은 가치도 둘 사람이 아닙니다. 5계명을 지키면 복을 받습니다. 네 생활이, 믿음 생활이 바로 되었으니 표시로 주는겁니다. 세상의 모든 복은 표시판입니다.
우리는 지금만 보지말고 나중까지 다 계산을 합시다.
자기가 주인이 되고, 자기 위주로 사는겁니다. 자기가 중심이고 주격이니까 모든 걸 자기한테 다 맞추는 겁니다. 가정의 가장이 자기 중심이 되게 되면 당신도 나에게 맞춰라, 며느리도 맞춰라 그러면 지옥입니다.
사람이 누구든지 어린아이라도 모든 것을 자기에게 맞춰버리면 그 과정은 참 고통스러워지는데, 착하면 이 세상에서는 고분고분하다, 잘 순종한다 그런데, 성경의 착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알지못하는 어린아이들은, 자기를 희생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은 그거 변치 않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수월합니다.
상대방이 저를 위해서 나를 보려고, 해를 끼치려고 네가 나한테 그랬으니까, 악을 악으로 갖는 것이지요. 앞에 잠깐 빠진 것이 있는데,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 19절, 이것은 사람이 누구와의 관계입니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지요.
21절은 다를 수 있고, 22절도 사람 관계이고, 23절도 사람 관계입니다.
성경에는 대부분 사람 아니면 사물관계, 사물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고,, 대부분이 사람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예물 드리는 것을 중단하고, 사람하고 화목하고 예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네가 나서서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라. 그런 말이 있잖습니까.
참고 기다리면 하늘의 상금이 있다고 합니다. 저런 악인을 처벌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못합니다. 주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상대할 때 그랬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상대를 할 때 그랬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스트레스를 안 받아서 좋고, 마음이 평안해서 좋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다가 자유로 돌아가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