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9일 주일 오후 - 여호와께 감사하라
김동민2020-01-19조회 299추천 29
2020년 1월 19일 주일 오후
찬송 : 131장, 132장
본문 : 시편 136편 1절
제목 : 여호와께 감사하라
26절을 읽어보시겠습니까.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절부터 26번까지 감사라는 단어가 26번 쓰여 있습니다.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여러 이름 중에서 우리를 상대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름이 여호와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가 몇 번 나왔는지 찾아보랬더니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몇 번 나왔습니까? 하나님은 3583, 여호와는 5900번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 그리스도 등등 여러 이름이 있는데 그 하나님이 우리를 상대하는 대표적인 하나님이 여호와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약에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고.. 주로 나옵니다. 예수님의 인성, 하나님의 사람 되신 분, 신성, 그리고 전부 우리에게 여호와입니다. 예수님은 양성을 가지셨죠. 예수님은 양성의 무슨 성 무슨 성입니까? 신성과 인성입니다. 양성을 가지셨습니다. 저 뒤에 문 좀 닫으시고.. 예수님은 양성인데, 하나도 섞임 없어서 참 하나님, 참 사람이 된 겁니다. 여호와가 사람 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여호와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물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우리와 직접 연관된 이름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이 언제부터 되셨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이를 영원 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자존하셨다고 합니다. 영원 전에 계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혼자 계셨는지는 모르고, 알 필요도 없겠습니다. 우리와 관계를 맺은 그때부터 우리와 상관이 있는겁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그 여호와가 다른 이름으로 말씀이라 그럽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합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이고 여호와고 하나님이고, 말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과 관계된 이름입니다. 여호와라고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은, 여호와는 우리를 상대하신 하나님의 여러 이름 중 대표적인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절의 여호와는 어떤 여호와입니까. 선하시며, 2절은 모든 신에 뛰어나시고, 3절은 모든 주의 뛰어나신 주입니다. 표현은 그 자체로 여호와를 가르킵니다.
여호와는 계약의 하나님, 계약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가 있을 때 계약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계약의 단어를 혼자 있을 때는 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상대된 여호와는 계약을 맺었는데,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은 여호와의 계약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데로 이 말씀을 일방적으로 받았지, 십계명에 기록될 때 돌판에 새겨주셨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포였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조건부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겠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하겠다. 조건적으로 안 되어 있어도, 명령과 상관없는 그런 뱀의 말, 시편 같은 거 들어가 보면 계약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계약은 혼자합니까 둘이합니까? 둘 이상이 합니다. 혼자는 계약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우리가 대상이기 때문에 계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선포하셔서 우리가 왕이다 법이다 이러면 백성들이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신 그 말씀을 계약이 성립되어야합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여러 이름 중에서 우리를 상대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름입니다. 그 중에는 계약을 가지고 상대한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해 놓고,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은 근거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는 어떤 여호와인가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왜 하나님이 착하고 선입니까? 왜 하나님은 좋고 선하고 착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는 다 나쁜겁니까? 첫째 하나님 만이 자존이니까. 스스로 계신 것이니까, 둘째, 하나님만이 완전이니까, 하나님만이 영원 불변하니까, 하나님 만이 단일성의 하나님이니까
기독교의 하나님에게는 가정하면 안되는데, 하나님이 둘이 되고 둘이 싸워야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만이 자존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선하시니까, 어떤 것으로도 영향이나 비방받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마지막에 하나님에게서 나와가지고 하나님으로 가는 것이 기독교라서 무엇이 신앙이냐,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 만큼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만큼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완전이고 자존이고 단일입니다. 그리고 선입니다. 선하십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건 선하시며 인자, 요한복음의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인자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인자인데 한문으로 들어가면 다릅니다. 그래서 머리 아파도 들어가면 좋습니다. 사람입니다. 인자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아끼시고, 사랑하니까 아낍니다. 세 번째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 이것이 영원하다, 아끼심이 영원하고 은혜 베푸심이 영원하다. 하나님과 우리가 그 전제는 다른 각도인데, 은혜를 받으려면 연결이 되어있어야합니다. 끊어지면 못받죠.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것은 은혜의 대가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뭔가 혜택을 입은겁니다.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혜택을 입었을 때를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은 감사입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대화를 하고 믿음을 심어줘야하겠는데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어린 아이들에게 감사를 가르칠까, 이것은 뭐 어떻게 방법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서, 감사를 가르치려면 내 속에 먼저 감사가 넘쳐나와야합니다. 감사라는 것은 그 자체는 느끼는 것이고 보답하는 것입니다. 그 전에 먼저 논리가 들어가야합니다.
여기에서 어떤 집사님이 식사 기도하면 두 번 한답니다. 일부러 두 번 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 했는데 모르고 한 번 더 하는 겁니다. 늘 감사가 입에서 안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뭐가 그리 감사한가, 수원지가 얕으면 가정에 오는 물이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수원지 물이 풍부하면 가정에 물이 수도관만 떨어지지 않으면 물이 끊어질 일이 없을겁니다.
감사의 뿌리, 감사의 근본은 하나님이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4가지 자존의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이 있으니 그 목적이 바로 나다. 완전한 사람으로 하는 것이 유일하신 목적입니다.
모든 것에 다 지어지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백성을 구원해내신 것을 말씀하고, 모든 것을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유일의 목적이 우리의 구원이고 나를 위해서 나를 만드시기 위해서 모든 것까지 다 예정하셨고, 예정하신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내가 만나지는 모든 존재, 내게 부딪히는 모든 존재,
모든 창조물의 뒤에는 하나님의 예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기독교고, 그래야지 감사가 나옵니다. 믿음에서 감사가 나오는 겁니다. 진실 또한 감사가 나옵니다. 예정에서 목적이 나오고 그 목적이 나입니다.
모든 것에 감사를 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 : 131장, 132장
본문 : 시편 136편 1절
제목 : 여호와께 감사하라
26절을 읽어보시겠습니까.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절부터 26번까지 감사라는 단어가 26번 쓰여 있습니다.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여러 이름 중에서 우리를 상대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름이 여호와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가 몇 번 나왔는지 찾아보랬더니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몇 번 나왔습니까? 하나님은 3583, 여호와는 5900번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 그리스도 등등 여러 이름이 있는데 그 하나님이 우리를 상대하는 대표적인 하나님이 여호와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약에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고.. 주로 나옵니다. 예수님의 인성, 하나님의 사람 되신 분, 신성, 그리고 전부 우리에게 여호와입니다. 예수님은 양성을 가지셨죠. 예수님은 양성의 무슨 성 무슨 성입니까? 신성과 인성입니다. 양성을 가지셨습니다. 저 뒤에 문 좀 닫으시고.. 예수님은 양성인데, 하나도 섞임 없어서 참 하나님, 참 사람이 된 겁니다. 여호와가 사람 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여호와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물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우리와 직접 연관된 이름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이 언제부터 되셨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이를 영원 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자존하셨다고 합니다. 영원 전에 계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혼자 계셨는지는 모르고, 알 필요도 없겠습니다. 우리와 관계를 맺은 그때부터 우리와 상관이 있는겁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그 여호와가 다른 이름으로 말씀이라 그럽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합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이고 여호와고 하나님이고, 말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과 관계된 이름입니다. 여호와라고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은, 여호와는 우리를 상대하신 하나님의 여러 이름 중 대표적인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절의 여호와는 어떤 여호와입니까. 선하시며, 2절은 모든 신에 뛰어나시고, 3절은 모든 주의 뛰어나신 주입니다. 표현은 그 자체로 여호와를 가르킵니다.
여호와는 계약의 하나님, 계약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가 있을 때 계약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계약의 단어를 혼자 있을 때는 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상대된 여호와는 계약을 맺었는데,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은 여호와의 계약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데로 이 말씀을 일방적으로 받았지, 십계명에 기록될 때 돌판에 새겨주셨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포였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조건부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겠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하겠다. 조건적으로 안 되어 있어도, 명령과 상관없는 그런 뱀의 말, 시편 같은 거 들어가 보면 계약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계약은 혼자합니까 둘이합니까? 둘 이상이 합니다. 혼자는 계약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우리가 대상이기 때문에 계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선포하셔서 우리가 왕이다 법이다 이러면 백성들이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신 그 말씀을 계약이 성립되어야합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여러 이름 중에서 우리를 상대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름입니다. 그 중에는 계약을 가지고 상대한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해 놓고,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은 근거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는 어떤 여호와인가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왜 하나님이 착하고 선입니까? 왜 하나님은 좋고 선하고 착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는 다 나쁜겁니까? 첫째 하나님 만이 자존이니까. 스스로 계신 것이니까, 둘째, 하나님만이 완전이니까, 하나님만이 영원 불변하니까, 하나님 만이 단일성의 하나님이니까
기독교의 하나님에게는 가정하면 안되는데, 하나님이 둘이 되고 둘이 싸워야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만이 자존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선하시니까, 어떤 것으로도 영향이나 비방받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마지막에 하나님에게서 나와가지고 하나님으로 가는 것이 기독교라서 무엇이 신앙이냐,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 만큼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만큼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완전이고 자존이고 단일입니다. 그리고 선입니다. 선하십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건 선하시며 인자, 요한복음의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인자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인자인데 한문으로 들어가면 다릅니다. 그래서 머리 아파도 들어가면 좋습니다. 사람입니다. 인자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아끼시고, 사랑하니까 아낍니다. 세 번째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 이것이 영원하다, 아끼심이 영원하고 은혜 베푸심이 영원하다. 하나님과 우리가 그 전제는 다른 각도인데, 은혜를 받으려면 연결이 되어있어야합니다. 끊어지면 못받죠.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것은 은혜의 대가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뭔가 혜택을 입은겁니다.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혜택을 입었을 때를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은 감사입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대화를 하고 믿음을 심어줘야하겠는데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어린 아이들에게 감사를 가르칠까, 이것은 뭐 어떻게 방법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서, 감사를 가르치려면 내 속에 먼저 감사가 넘쳐나와야합니다. 감사라는 것은 그 자체는 느끼는 것이고 보답하는 것입니다. 그 전에 먼저 논리가 들어가야합니다.
여기에서 어떤 집사님이 식사 기도하면 두 번 한답니다. 일부러 두 번 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 했는데 모르고 한 번 더 하는 겁니다. 늘 감사가 입에서 안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뭐가 그리 감사한가, 수원지가 얕으면 가정에 오는 물이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수원지 물이 풍부하면 가정에 물이 수도관만 떨어지지 않으면 물이 끊어질 일이 없을겁니다.
감사의 뿌리, 감사의 근본은 하나님이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4가지 자존의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이 있으니 그 목적이 바로 나다. 완전한 사람으로 하는 것이 유일하신 목적입니다.
모든 것에 다 지어지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백성을 구원해내신 것을 말씀하고, 모든 것을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유일의 목적이 우리의 구원이고 나를 위해서 나를 만드시기 위해서 모든 것까지 다 예정하셨고, 예정하신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내가 만나지는 모든 존재, 내게 부딪히는 모든 존재,
모든 창조물의 뒤에는 하나님의 예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기독교고, 그래야지 감사가 나옵니다. 믿음에서 감사가 나오는 겁니다. 진실 또한 감사가 나옵니다. 예정에서 목적이 나오고 그 목적이 나입니다.
모든 것에 감사를 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