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8일 주일 오후 - 레위기 5대 제사
김동민2019-08-18조회 301추천 77
2019년 8월 18일 주일 오후
찬송 : 113장, 132장
본문 : 레위기 1장 1절 ~ 2절
제목 : 레위기 5대 제사
설교 시간에 말씀을 전하는 것도 듣는 것도 이치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찬송이 주가 되고 사람들의 마음의 흥을 돋우고 충족시키고, 평안하게 하는 그런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예배가 그렇게 됐는데, 타락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치는 지식입니다. 지식은 곧 아는 것이고, 힘이고, 길입니다. 길을 모르면 발 빠른 사람도 벤츠보다 더 좋은 차를 가져도 비행기를 가져도 모르는 것입니다. 미국으로 가야하는데 러시아나 중국으로 갈 것이고 길을 모르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으로 구원의 도리를 들었으니까 받는 것은 내 것이 되어야겠다. 그러면 내 것이 되는 것을 빼앗기지 않는 방법, 들었는데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 지식도 들었는데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러는 경우도 있는데 많습니다. 안 잊어버리는 방법은 인정하고, 실행하고 그러면 자기 마음에 새겨진 지식이 되어서 평생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와 상관없는 말씀으로 쳐버리면 남아있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식은 남아있는데 그렇지 않은 지식은 쉽게 나가버립니다. 아무리 받아들여도, 믿지 않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겠지 하면 없어져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물론 사람 속에 낙수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합니다. 집회 장소에 가면 귀한 바위가 많습니다. 그 바위가 그렇게 된 것은 수 천년 세월에 물에 깎여서 그렇게 된 겁니다.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보니까, 모태신앙들은 보고 보고 또 보니까 믿음은 없는데도 안 잊어지는데 이게 복입니다. 사람이 적어도 양심이 있고 멀리 못 가게 되어있습니다. 자녀들을 아버지보다 어머니들의 기도가, 참 눈물의 기도..
세월 속의 어머니들이 눈물 속에 알게 모르게 기도합니다. 자녀들은 잘 모릅니다.
들었으면 알았으면 일단 자기 것이 되는 겁니다. 내 속에 된 것을 귀한 이치를 듣고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것입니다. 복습으로 기억해서 자기 것을 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들어도 가치를 두지 않으니까 복이 적은 겁니다.
5대 제사 중에서 서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번제를 배울 것입니다.
그래서 크게 오늘 다섯 가지를 말씀드리는데, 오전에 4가지를 말씀드렸는데, 처음에는 제사 제도입니다. 제사의 출발, 유래, 원인, 시작..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에덴 동산에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는 제사가 필요가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기독교의 가장 중심입니다. 그 분의 수고, 이걸 높임말로 공로라고 합니다. 대속의 공로. 이게 중심이고 전부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하와가 살고 있을 때 예수님의 대속은 없습니다. 만약 가정으로 아담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제사가 필요가 없게 되죠. 그러면 뭐가 없는 겁니까?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없는 것이고, 그러면 기독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라는 것이 생기려면 죄를 지어야합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 먹도록 예정을 해 놓으셨습니다. 아담 하와는 핑계를 대지 못합니다.
제사의 의미는 뭐냐? 오실 메시아를 짐승으로 표시하고 한 것이 의미입니다. 6천년 되었습니다. 종교마다 역사가 있겠지만 기독교만큼 성경대로 되는 그런 종교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갈수록 점점 세상 모든 종교는 그게 헛되다는 것이 밝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요? 양쪽으로 나갑니다. 진실하게 그대로 믿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점점 성경이 사실이고 실제라는 것을 밝혀지게 되있고, 믿음 없는 사람들은 세상을 따라서 기독교도 하나의 헛된 것이다. 라고 합니다.
제사의 목적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는 목적은 죄를 해결하고 축복받는 길이고, 형식은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제사와 예배를 연결시켰습니다. 제사의 근본, 제사의 근본은 타락입니다. 그 제사가 오늘 날은 예배로 넘어왔다고 하면 돼고, 신약의 장성한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에, 구약의 시대는 짐승을 우리는 산 제물로, 몸과 마음을 드려라. 내 심신을 살아있지만 하나님께 제물로 바칩니다.
제사를 안 드려도 기본 구원은 상관없으나 건설구원은 없는 겁니다. 구약 성도들의 건설 구원은 주님의 대속을 미래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구약 성도들의 건설은 미래로 바라보고,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 전도, 이런 것을 가지고 예배를 하나의 형식으로 드리는 사람, 제사로 드려셔 바치는 사람, 오전만 들이는 사람, 오후만 들이는 사람, 등등.. 이런 차이를 전부 말하면은 건설 구원 차이고 구약 시대에도 그랬을 것입니다.
예배와 제사를, 첫째는 뭡니까? 제사 유래, 그 유래가 예배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제사의 의미, 구약의 의미는 오실 메시아를 표시하고 소망하는 것, 신약은 오신 메시아를 영접하는 것, 목적은 죄를 해결하고 축복받는 것, 신약은 건설구원으로 가는 겁니다. 예배의 형식은 구약은 짐승 잡아서 드리는 것이고 신약은 나를 잡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개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그런데 소와 양과 염소라고 합니다. 주인에 대한 충성입니다. 주인을 위해서 열심히 충성하는 것입니다. 좋은건데 왜 잡아? 염소는 잡아 죽여야하고, 양은 순종 잘 하는 것인데.. 그런데 충성 자체가 잡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방향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물이고 절차, 가져와서, 회막에 가져와서 세 번째는 잡아서 죽이고 네 번째는 피를 쏟고 각을 뜨고, 불에 태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릴 거, 제사장께 드릴 거 나눕니다.
제사, 제사 종류 그 정도 했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 : 113장, 132장
본문 : 레위기 1장 1절 ~ 2절
제목 : 레위기 5대 제사
설교 시간에 말씀을 전하는 것도 듣는 것도 이치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찬송이 주가 되고 사람들의 마음의 흥을 돋우고 충족시키고, 평안하게 하는 그런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예배가 그렇게 됐는데, 타락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치는 지식입니다. 지식은 곧 아는 것이고, 힘이고, 길입니다. 길을 모르면 발 빠른 사람도 벤츠보다 더 좋은 차를 가져도 비행기를 가져도 모르는 것입니다. 미국으로 가야하는데 러시아나 중국으로 갈 것이고 길을 모르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으로 구원의 도리를 들었으니까 받는 것은 내 것이 되어야겠다. 그러면 내 것이 되는 것을 빼앗기지 않는 방법, 들었는데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 지식도 들었는데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러는 경우도 있는데 많습니다. 안 잊어버리는 방법은 인정하고, 실행하고 그러면 자기 마음에 새겨진 지식이 되어서 평생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와 상관없는 말씀으로 쳐버리면 남아있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식은 남아있는데 그렇지 않은 지식은 쉽게 나가버립니다. 아무리 받아들여도, 믿지 않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겠지 하면 없어져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물론 사람 속에 낙수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합니다. 집회 장소에 가면 귀한 바위가 많습니다. 그 바위가 그렇게 된 것은 수 천년 세월에 물에 깎여서 그렇게 된 겁니다.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보니까, 모태신앙들은 보고 보고 또 보니까 믿음은 없는데도 안 잊어지는데 이게 복입니다. 사람이 적어도 양심이 있고 멀리 못 가게 되어있습니다. 자녀들을 아버지보다 어머니들의 기도가, 참 눈물의 기도..
세월 속의 어머니들이 눈물 속에 알게 모르게 기도합니다. 자녀들은 잘 모릅니다.
들었으면 알았으면 일단 자기 것이 되는 겁니다. 내 속에 된 것을 귀한 이치를 듣고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것입니다. 복습으로 기억해서 자기 것을 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들어도 가치를 두지 않으니까 복이 적은 겁니다.
5대 제사 중에서 서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번제를 배울 것입니다.
그래서 크게 오늘 다섯 가지를 말씀드리는데, 오전에 4가지를 말씀드렸는데, 처음에는 제사 제도입니다. 제사의 출발, 유래, 원인, 시작..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에덴 동산에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는 제사가 필요가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기독교의 가장 중심입니다. 그 분의 수고, 이걸 높임말로 공로라고 합니다. 대속의 공로. 이게 중심이고 전부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하와가 살고 있을 때 예수님의 대속은 없습니다. 만약 가정으로 아담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제사가 필요가 없게 되죠. 그러면 뭐가 없는 겁니까?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없는 것이고, 그러면 기독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라는 것이 생기려면 죄를 지어야합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 먹도록 예정을 해 놓으셨습니다. 아담 하와는 핑계를 대지 못합니다.
제사의 의미는 뭐냐? 오실 메시아를 짐승으로 표시하고 한 것이 의미입니다. 6천년 되었습니다. 종교마다 역사가 있겠지만 기독교만큼 성경대로 되는 그런 종교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갈수록 점점 세상 모든 종교는 그게 헛되다는 것이 밝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요? 양쪽으로 나갑니다. 진실하게 그대로 믿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점점 성경이 사실이고 실제라는 것을 밝혀지게 되있고, 믿음 없는 사람들은 세상을 따라서 기독교도 하나의 헛된 것이다. 라고 합니다.
제사의 목적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는 목적은 죄를 해결하고 축복받는 길이고, 형식은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제사와 예배를 연결시켰습니다. 제사의 근본, 제사의 근본은 타락입니다. 그 제사가 오늘 날은 예배로 넘어왔다고 하면 돼고, 신약의 장성한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에, 구약의 시대는 짐승을 우리는 산 제물로, 몸과 마음을 드려라. 내 심신을 살아있지만 하나님께 제물로 바칩니다.
제사를 안 드려도 기본 구원은 상관없으나 건설구원은 없는 겁니다. 구약 성도들의 건설 구원은 주님의 대속을 미래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구약 성도들의 건설은 미래로 바라보고,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 전도, 이런 것을 가지고 예배를 하나의 형식으로 드리는 사람, 제사로 드려셔 바치는 사람, 오전만 들이는 사람, 오후만 들이는 사람, 등등.. 이런 차이를 전부 말하면은 건설 구원 차이고 구약 시대에도 그랬을 것입니다.
예배와 제사를, 첫째는 뭡니까? 제사 유래, 그 유래가 예배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제사의 의미, 구약의 의미는 오실 메시아를 표시하고 소망하는 것, 신약은 오신 메시아를 영접하는 것, 목적은 죄를 해결하고 축복받는 것, 신약은 건설구원으로 가는 겁니다. 예배의 형식은 구약은 짐승 잡아서 드리는 것이고 신약은 나를 잡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개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그런데 소와 양과 염소라고 합니다. 주인에 대한 충성입니다. 주인을 위해서 열심히 충성하는 것입니다. 좋은건데 왜 잡아? 염소는 잡아 죽여야하고, 양은 순종 잘 하는 것인데.. 그런데 충성 자체가 잡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방향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물이고 절차, 가져와서, 회막에 가져와서 세 번째는 잡아서 죽이고 네 번째는 피를 쏟고 각을 뜨고, 불에 태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릴 거, 제사장께 드릴 거 나눕니다.
제사, 제사 종류 그 정도 했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