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2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4-09-22조회 94추천 13
2024년 9월 22일 주일 오전
찬송: 102장, 65장
본문: 창세기 45장 4절 ~ 8절
지난 주간은 추석 명절 주간이었습니다. 지난 주일은 추석 명절을 지나면서 명절이란 세상을 두고 믿는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해야할까 이런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 살 수는 없으나 세상이라는 공간과 여러 가지 얽혀서 관계를 맺고 살 수 밖에 없지만 이 세상을 사랑하지는 말아라, 세상을 좋아하지 말라는 말이고 세상에게 붙들려 메이지 말아라. 이 세상은 우리가 사는 전부다가 세상이라서 어떤 것이든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세상 사랑하는 것이 되고 좋아하는 것이 되고 종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삼손을 생각해봤고 만왕의 왕 다윗을 생각해봤고 솔로몬도 생각해봤습니다. 삼손도 세상을 사랑함으로 빠지니 참혹한 결과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맞이할 때 세상을 두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사냐에 따라서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라.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 정체가 뭐냐 육신의 정욕이다. 마음과 몸을 즐겁게 하는 거다. 영이 죽어서 하나님과 떨어진 사람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평생 사는 목적이 마음과 몸을 즐겁게하는 겁니다. 두 글자로 정욕 생활입니다. 좋은 집에 사는 것도 잔치하는 것도 모두 고깃덩어리 마음 좋게 몸 좋게 그게 전부 다고 눈을 즐겁게 안목의 정욕, 자기 눈으로 보고 만족하는 거, 좋게 보이는 거, 자랑하는 거, 이 세 가지가 이 세상의 전부고 이 세상에 사는 세상 사람들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영과 상관없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고 내세와 상관이 없고 천국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이 전부고 사후 세계가 없다면 그들이 지혜롭고 사후 세계를 바라보며 믿는 불쌍한 자가 됩니다. 죽음 너머 세계를 바라보며 한 번 뿐인 이 세상을 바쳐 사는데, 죽음 너머 세계가 없다면 목사가 사기꾼이 되는 거고 성경이 나쁜 책이 되는 것이고 기독교는 가짜 종교가 되는 거지요. 그런데 사후 세계가 있다면 죽음 너머 세계가 펼쳐진다면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잘 먹고 잘 마시고 등 따시게 잘 살찌라도 그게 끝나고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행해 가는 건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틀린 말입니까.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틀린 말입니까. 거짓말인가요.
잘 가든지 못 가든지 행복하게 가든지 불행하게 가든지 힘들게 가든지 알든지 모르든지 믿는지 안 믿는지 죽음을 향해 가지 않는 인생은 없었습니다. 그 죽음 너머에는 영원한 세계가 펼쳐지는 겁니다. 그걸 가르켜서 영계라고 합니다. 신령한 세계고 영이 주체가 되어 사는 사람이 영이 주인공으로 사는 영은 끊어놓고 없어질 불탈 세상 지난 목요일 새벽에 말씀하셨지요. 불탈 세상입니다. 떠날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끝난대로 하는 세상입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런 세상, 이런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육신의 정욕을 살지 말고 안목의 정욕으로 살지 말고 자랑으로 살지 말아라. 사람이 뭔가에 도달하기 전에는 가져보기 전에는 누려보기 전에는 그게 그렇게 크고 좋아보이는데 막상 가져보고 해보면 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음식을 한 번 예를 들어보지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질려버려서 더 맛있는 걸 찾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을 주셨으니 그 음식 이름이 뭡니까. 사람이 평생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 뭡니까. 밥이라고 합니다. 맛이 있는가요. 서양 사람들은 빵을 먹겠지요. 이것든 저것이든 주식으로 주신 것은 평생으로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그게 결혼한 부부의 부부입니다. 자기 현실의 생활입니다.
음식으로 원하면 밥이고 자기 현실 생활이고 부부고 가족이고 이걸 벗어나서 한 눈을 팔고 다른 걸 보기 시작하면 밥을 두고 맛잇는 걸 찾기 시작하면 평생 맛집만 찾아다녀도 끝이 없습니다. 자기 주변이 가장 좋지 부산 사람들은 부산이 지겹습니다. 그래서 서울 가고 해외가는데 외국 사람들은 해운대 옵니다. 서울 사람들, 숨이 차서 가지만 좋다고 여행다니는 겁니다. 돈을 주니까 좋아하지요. 지긋지긋한 겁니다. 탐경이라는 게 그런겁니다. 이색적인 것, 새로운 것, 끝없는 무저갱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 눈에 아내 눈에 가장 예쁘고 아내 눈에 남편이 미남이고 그러면 무조건 행복합니다. 남편 눈에 남의 여자가 보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무저갱이 됩니다. 아내 눈에 다른 남자 보이면 무저갱이 됩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일지라도 자기 눈에 아내 남편이 가장 좋은 그 사람이 인격있는 사람입니다. 그게 바로 밥같은 겁니다. 그렇게 살지 이 세상을 정욕, 고깃덩어리 이렇게 정에 맞게 그렇게 살지 말아라. 이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가는데 하나만 남는다. 이 세상에 지나갑니다. 넓고 광대한데 수 없이 많은데 6000년 역사 속에 많은데 이 세상 잘난 사람들에게 물어보지요. 수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왔다갔습니다. 성경 밖이라도 알렉산더 대왕, 진시황 수 많은 인간의 변화 세상의 변화 과학의 발전 심리의 변화들 많은 게 있어왔고 존재했고 사라져왔고 주님 오시면 다 불타 없어지는데 이 세상도 지나가버리는데 하나만 남습니다. 뭐만 남는다고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남음이라.
오늘 말씀이 그 말씀으로 또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말씀으로 순종하는 이게 믿는 사람의 전부다. 참고로 기독교는 믿음의 도라고 합니다. 믿음의 도. 기독교는 무슨 도라고요, 믿음의 도. 믿음의 도입니다. 믿음이 뭐냐 이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이 있습니다. 선물로 주시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을 때 주시는 겁니다. 믿음은 믿음인데 사람이 믿을 수 없는 믿음이 있습니다. 믿을 수가 없는데 믿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어야합니까 안 믿어야합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안 믿어지면 안 믿으면 됩니다. 함부로 믿으면 안됩니다. 세상은. 사람이든 말이든 함부로 믿으면 안되기 때문에 돌다리도 두드려 가면서도 가야합니다. 이번에 비가 엄청 쏟아졌다고 하지요. 트럭 두 대가 지나가는데 갑자기 어찌됐다고요, 대로에 큰 길가에 갑자기 땅이 푹 꺼져버렸습니다. 내려앉아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한 번 두 번입니까. 요즘 허다하게 나옵니다. 땅을 어떻게 딛고 삽니까. 이 세상은 믿으면 안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안 믿어지는데 사람의 이치로 사람의 논리로 과학의 근거로 역사의 통계로 상식으로 말이 안되고 안 믿어지는데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데,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안믿어지는데 천하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없는 그 사실이 믿어지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걸 가르켜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
그 선물이 뭐라고요. 그게 믿음입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과학이라는 것은 눈으로 봐야 믿음입니다. 그래서 과학과 종교는 반대쪽입니다. 상반되는 겁니다. 과학자들이 예수 믿으면 정말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데 마음 속에 믿어지는 거지요. 일류 과학자인데 하나님이 믿어지는 겁니다. 뭘로 설명하지.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땅을 창조하시니라. 하늘과 땅을 물질계 우주입니다. 우주를 공부해보셨습니까. 자세하게는 공부를 해도 영감적으로 되어야합니다. 넓은지 광대하고 그런지 얼마나 많은지 큰 것은 얼마나 크며 작은 것은 얼마나 많은지, 물질 중에서 얼마나 작으냐 사람 몸의 세포가 뭐라고 합니까. 50조개에서 100조개라고합니다. 체격 작은 사람들은 50조개, 큰 사람은 100조개라고 합니다. 보이겠습니까. 현미경으로 겨우 보입니다. 그게 100조개가 사람을 이루고 있는데 그 하나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겠습니까. 한 세포 속에 100조개의 물질이 들어있답니다. 믿어지십니까.
그러면 사람 몸은 물질은 몇 개로 되어있다는 건가요. 100조개로 사람의 몸 세포, 100조 분의 1일되는 그 세포 속에 쿼크라는 물질이 들어있답니다. 저도 들었습니다. 그게 세포 하나 속에 100조개가 들어있습니다. 어디까지 작아지느냐, 과학이 밝히는 그것을 할 때 기능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기능이 그렇게 해서 어떻게 분리하냐 그러는데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다. 택자 전부에게 영계 물질을 나눠주고 나눠줘도 남겠다. 그 세포 안에 여러 물질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작고 작고 작고 작은 것을 만든 것이 하나님입니다. 우주는 지금도 끝없이 커진답니다. 이런 우주를 말씀으로 다 만들었다. 믿어지십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그 자연에 물질 세계를 들어다보면 너무너무 과학적이고 체계적이고 그런 것입니다. 대충 대충 되어있는 물질이 없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나뭇잎 하나까지도 그래서 과학자들이 탄식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만들지 않으면 이렇게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은혜로 믿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기 어려운 것을 믿게 하시는 것, 그 다음에 그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살아갈 때 마다 눈으로 보기 어려운 하나님의 섭리 역사 믿기 어려운 것은 현실의 믿음 순종으로 믿음 생활이다. 전체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창세기 45장 4절, 요셉이 형들을 만났습니다. 만난 것은 최고로 아버지 회개 시키고 그리고 자기를 밝힌겁니다. 당신들이 여기를 팔아먹었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앞서 보내셨나이다. 누가 보냈습니까. 요셉을 애굽에 누가 팔아먹었습니까. 형 열이 팔아먹었습니다. 야곱의 형들은 네 명의 어머니입니다. 옛날이니까. 이복형제라, 배가 다른 형제라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장화홍련전인가요. 계모라고 합니다. 그런 말 안합니다. 이복 어머니, 그 수도 없이 이복 형제 간에 싸움에 말도 못합니다. 이때도 그랬습니다. 배 다른 요셉의 형제가 팔아먹었습니다. 형 열이서 팔아먹었습니다. 팔아먹었는데 보니까 요셉을 누가 팔아먹은게 됩니까. 뒤에가서 보니까 하나님이 요셉을 파셨습니다. 형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큰 구원으로 당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냈나니. 나를 애굽에 보낸 자들은 당신들이 아니요, 요셉이 성공했고 자기들은 그대로니까 잘못 사는 형들 위로하는 그런 말로 받아들였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누구 아들입니까. 야곱의 아들이죠. 몇 번째 아들이지요. 열 두 번째 아들은 누구지요. 막내가 베냐민이지요. 베냐민과 요셉은 동태형제 지간입니다.
요셉의 형제 이름은 무엇인가요. 라헬의 언니 이름은 무엇인가요. 라헬은 예뻤습니다. 레아는 별로 안 예뻤나보죠. 야곱은 남자입니다. 남자 놈들은 예쁜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야곱도 예쁜 라헬이 좋았습니다. 라헬과 결혼하고 싶었는데 라반이 쓸만한 놈이라서 그때는 결혼 같이 시키니까 라헬 대신에 언니를 보내버립니다. 14년 라헬 때문에 봉사하고 라헬을 얻었습니다. 끔찍이 사랑했는데 야곱이 라헬을 너무 사랑하니까 하나님께서 라헬을 일찍 데려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라헬이 죽고 나니까 라헬이 낳은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이었는데 요셉이 인성이 좋고 그러니까 실력은 열 둘 중에서 유다가 가장 나을 겁니다. 그런데 요셉이 못지 않게 잘 나가니까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라헬 가고 나니까 요셉에게 갔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편애하고 사랑하니까 형들이 시기를 해서 팔아먹어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애굽에 형들이 팔아먹어버렸습니다.
야곱이 사랑한 라헬, 남들이 죽으니까 요셉을 편애 사랑하니까 시기가 생겨지고 형들이 요셉을 팔아먹어서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팔려간 집이 누구였던가요. 요셉이 종으로 팔려간 집이 누구인가요. 보디발, 뭐던가요. 시위대장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 경호실장 즈음 되는 사람입니다. 그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런데 워낙 성실하게 잘하고 용모가 아담하고 준수하였더라. 괜찮았다는 뜻이지요. 남자 놈들은 이쁜 여자 좋아하는 여자들은 잘난 남자 좋아하거든요. 보디발 아내가 여자니까 빠져버린거지요. 미혹을 안 받으니까 누명을 덮어씌워서 감옥에 갔습니다.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입니다. 정치범들 사상범들, 똑똑한 인물들이 오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요셉이 갖혔습니다. 두 관원장, 음식을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식품 쪽의 장관 즈음, 보건 쪽의 장관이 될련지. 요셉이 섬기는데 꿈을 꿔서 그 꿈을 요셉이 해석해주고 그들이 그대로 되었습니다. 꿈대로 이루어질 때 꿈이 좋게 해몽되는 사람에게 청탁을 하지요. 당신이 복직을 하면 나를 여기서 풀어주게 하십시오. 그랬는데 그 사람이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바로 왕이 꿈을 꾸지요. 바로 왕이 꿈을 꾸고 신하들이 꿈 이야기하고 해몽을 부탁하는데 아무도 못한 겁니다. 누가 나서겠습니까. 그 사람이 그때 생각이 난 거지요. 내가 감옥에 있었을 때 이런 청년이 있었습니다. 불러보지요. 바로 불려갔고 해몽했고 바로 총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머리 속에 자기 인생의 행로가 거쳐간겁니다. 내가 우리 아버지가 나를 특별히 사랑했고 이건 편애다. 요셉은 거기다. 형들의 잘못을 두고보지 못해서 알린 것도 있지만 특별히 편애했고 나를 팔아먹었다. 그리고 보디발 집에 종으로 팔려갔다. 그리고 누명쓰고 감옥에 갔다. 그 술 맡은 관원장이 있었다. 청탁을 했는데 잊어버렸다. 그리고 2년 지나서 왕이 꿈을 꿨다. 해몽을 해줬다. 총리로 등극했다. 이게 뭐지. 말을 하지 않아도 요셉은 총명한 사람입니다. 그런 행로를 물론 요셉은 그때 그때 순간 순간 믿음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기를 받아도 영향 받지 않았고 교만하지 않았고 신앙으로만 살았습니다. 총리가 되고 나니까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께서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구나. 내가 그쪽으로 가게 되는구나.
꿈이 생각이 나고 그 꿈이 이렇게 이어졌구나. 나의 모든 인생의 행로는 나를 애굽의 총리로 만드시기 위한 과정이었구나 이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편애한 것도 시기하고 팔아먹은 것도, 형들이 그렇게 독한 건 있지만 막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보디발의 집에 간 것도 청탁 잊어버린 것도 전부 보니까 과정 과정이 총리로 만드시려고 하신 큰 그림이었고 과정이었구나. 깨닫게 되어진겁니다. 요셉의 깨달음대로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에 보내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 보내시는 사전 작업입니다. 숫자를 늘리기 위한 번성 시키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 보내서 번성시키고 출애굽 과정을 하시려고 그 출발점에 요셉을 두신 겁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 총리로 미리 정해놓고 보내시기 위해서 요셉의 인생 경로를 인도하신 거지요.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거창 집회장소를 찍으면 이렇게 가십시오, 뭐가 나옵니다. 우회전 하십시오, 휴게소가 있습니다. 인도해갑니다. 그런데 목적지에는 집회 장소가 찝혀있습니다. 그쪽으로 안내를 하는 겁니다. 이번에 네비게이션 믿다가 추석에 고생한 소식 들었습니까. 10시간 허비했다. 그걸 가르켜서 기계라고 합니다. 기계적으로 하니 상황 판단을 못하는거지요. 인공지능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처럼 총리를 정해놓고 형들에게 시기를 받게하고 팔아먹게 만들고 보디발의 집에 가게 만들고 감옥 보내시고 과정 거쳐서 총리를 만들기 위해서 하신 겁니다.
내가 총리가 될 거다. 하나님의 뜻이 있을지 알아겠지만 가는데 하나님은 크신 그림을 그리고 요셉을 총리로 세울려고 한 겁니다. 요셉은 총리로 가는 과정입니다. 주권 인도였습니다. 가는 방향이었습니다. 그럴 때 요셉은 인도하고 하시는데 따라가는 걸음 걸음에 거기서 다른 거 하지 않고 같은 세월을 살고 같은 시대를 살아도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고 그 안에는 예정이 다르니까. 쓰인게 다르기 때문에. 요셉은 총리가 될 줄은 몰랐으나 큰 변곡점, 갈랫길 크게 변한 현실 시기받아 종으로 팔려가는 전환점, 총리가 되어 잘 사는데 누명 써 감옥가는 변곡점. 불려가서 총리되는 것, 이런 거 할 때 마다 작은 그때 그때 평소 생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 현실의 피동되지 아니하고 그때 요셉의 생각 속에는 이렇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나님의 뜻만 찾은 겁니다.
마음 속에 이복 동생이라고 팔어먹는구나. 못된 놈들 두고보자. 인간적인 감정입니다. 서운하다 감정, 복수심 감정 기어코 내가 갚고 말지. 이게 인간인데 요셉은 그게 하나도 없습니다. 섭섭한 거 대신에 왜 하나님께서 형들을 통해서 나를 시기하고 팔아먹게 하셨을까. 왜 보디발의 집에 이렇게 오게 하셨을까. 거기 머물었을 때 여자가 꾸며서 덮어씌울 때 보디발은 아내 편 들어서 감옥 보낼 때 왜 하나님께서 나를 감옥에 보내실까 뜻만 찾은 겁니다. 하나님의 뜻. 무엇하시려고, 무엇에 쓰시려고, 어떻게 인도하시려고 하나님의 뜻이 뭘까 그것만 찾은겁니다. 거기에 정과 욕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순종해서 갔는데 총리 자리였고 올라가서도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날 인도하셨는데 앞날을 내다봅니다. 후손들을 이 세상에 두시려고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이 세상에 번성시키려고 나를 보내셨나이다. 나를 보내신 분은 당신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내셨나이다.
다윗을 좀 생각해볼건데 다윗은 오후에 생각해보고, 오전에 여기서 하나 가르치는 도리 말씀드립니다. 요셉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듯이 하나님의 역사는 이 세상 전부입니다. 6000년 이 세상 전부다가 요셉을 출발해서 총리까지 인도하셨듯이 이 세상 전부를 하나님께서 예정대로 주관 섭리 하신 겁니다. 다 정해놓고 하나님께서 목표 지점을 찍어놓고 목표를 향해서 예정대로 진행을 하고 계신 겁니다. 그 예정의 모든 진행 과정에서 주권 섭리 역사로 성취하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그 예정과 주권은 하나님의 뜻 목적을 위해서 진행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예정과 주권의 성취의 과정 과정은 우리 개인으로 오면 현실이라는 이름의 장소로 오게 되는 겁니다. 별별 현실을 통해서 인도하는 겁니다. 사람의 모든 것을 하면 크신 뜻을 향해서 가고 있고 예정은 순서대로 되고 있고 과정은 절대 주권의 능력으로 성취되고 있는 겁니다. 요셉이 그랬듯이 우리들에 대한 인생도 그렇게 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진행되어왔고 앞으로도 진행을 될 것입니다. 그렇게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고 있었고 다 현실을 통해 지나왔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 지나갈겁니다. 거기서 할 일이 뭐냐,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해놓고 말하는 사람의 하나님의 몸의 목적을 좌표라 찍어놓고 인도하고 계시는데 예정의 순서대로 하고 계시는데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에서 하나님의 뜻만 찾는 겁니다. 자기 탓은 다 버리고 여기를 인도하셨고 이런 현실 주셨는데 이런 뜻이 뭐냐, 여기서 원하시는 이 사건에 원하시는 뜻이 뭐냐. 그 뜻을 찾아서 순종하는 것만이 우리 할 일의 전부다.
그렇게만 하면 성공이 되어지는 것이고 인간의 정과 욕심이 들어가면 별 볼일 없는 형들처럼 실패한 사울처럼 그렇게 되고 마는 겁니다. 모든 결과는 과정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고 다윗처럼 살면 되는 것이고 사울처럼 살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우리 현실에 다 펼쳐지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만 찾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02장, 65장
본문: 창세기 45장 4절 ~ 8절
지난 주간은 추석 명절 주간이었습니다. 지난 주일은 추석 명절을 지나면서 명절이란 세상을 두고 믿는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해야할까 이런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 살 수는 없으나 세상이라는 공간과 여러 가지 얽혀서 관계를 맺고 살 수 밖에 없지만 이 세상을 사랑하지는 말아라, 세상을 좋아하지 말라는 말이고 세상에게 붙들려 메이지 말아라. 이 세상은 우리가 사는 전부다가 세상이라서 어떤 것이든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세상 사랑하는 것이 되고 좋아하는 것이 되고 종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삼손을 생각해봤고 만왕의 왕 다윗을 생각해봤고 솔로몬도 생각해봤습니다. 삼손도 세상을 사랑함으로 빠지니 참혹한 결과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맞이할 때 세상을 두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사냐에 따라서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라.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 정체가 뭐냐 육신의 정욕이다. 마음과 몸을 즐겁게 하는 거다. 영이 죽어서 하나님과 떨어진 사람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평생 사는 목적이 마음과 몸을 즐겁게하는 겁니다. 두 글자로 정욕 생활입니다. 좋은 집에 사는 것도 잔치하는 것도 모두 고깃덩어리 마음 좋게 몸 좋게 그게 전부 다고 눈을 즐겁게 안목의 정욕, 자기 눈으로 보고 만족하는 거, 좋게 보이는 거, 자랑하는 거, 이 세 가지가 이 세상의 전부고 이 세상에 사는 세상 사람들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영과 상관없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고 내세와 상관이 없고 천국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이 전부고 사후 세계가 없다면 그들이 지혜롭고 사후 세계를 바라보며 믿는 불쌍한 자가 됩니다. 죽음 너머 세계를 바라보며 한 번 뿐인 이 세상을 바쳐 사는데, 죽음 너머 세계가 없다면 목사가 사기꾼이 되는 거고 성경이 나쁜 책이 되는 것이고 기독교는 가짜 종교가 되는 거지요. 그런데 사후 세계가 있다면 죽음 너머 세계가 펼쳐진다면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잘 먹고 잘 마시고 등 따시게 잘 살찌라도 그게 끝나고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행해 가는 건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틀린 말입니까.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틀린 말입니까. 거짓말인가요.
잘 가든지 못 가든지 행복하게 가든지 불행하게 가든지 힘들게 가든지 알든지 모르든지 믿는지 안 믿는지 죽음을 향해 가지 않는 인생은 없었습니다. 그 죽음 너머에는 영원한 세계가 펼쳐지는 겁니다. 그걸 가르켜서 영계라고 합니다. 신령한 세계고 영이 주체가 되어 사는 사람이 영이 주인공으로 사는 영은 끊어놓고 없어질 불탈 세상 지난 목요일 새벽에 말씀하셨지요. 불탈 세상입니다. 떠날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끝난대로 하는 세상입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런 세상, 이런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육신의 정욕을 살지 말고 안목의 정욕으로 살지 말고 자랑으로 살지 말아라. 사람이 뭔가에 도달하기 전에는 가져보기 전에는 누려보기 전에는 그게 그렇게 크고 좋아보이는데 막상 가져보고 해보면 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음식을 한 번 예를 들어보지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질려버려서 더 맛있는 걸 찾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을 주셨으니 그 음식 이름이 뭡니까. 사람이 평생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 뭡니까. 밥이라고 합니다. 맛이 있는가요. 서양 사람들은 빵을 먹겠지요. 이것든 저것이든 주식으로 주신 것은 평생으로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그게 결혼한 부부의 부부입니다. 자기 현실의 생활입니다.
음식으로 원하면 밥이고 자기 현실 생활이고 부부고 가족이고 이걸 벗어나서 한 눈을 팔고 다른 걸 보기 시작하면 밥을 두고 맛잇는 걸 찾기 시작하면 평생 맛집만 찾아다녀도 끝이 없습니다. 자기 주변이 가장 좋지 부산 사람들은 부산이 지겹습니다. 그래서 서울 가고 해외가는데 외국 사람들은 해운대 옵니다. 서울 사람들, 숨이 차서 가지만 좋다고 여행다니는 겁니다. 돈을 주니까 좋아하지요. 지긋지긋한 겁니다. 탐경이라는 게 그런겁니다. 이색적인 것, 새로운 것, 끝없는 무저갱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 눈에 아내 눈에 가장 예쁘고 아내 눈에 남편이 미남이고 그러면 무조건 행복합니다. 남편 눈에 남의 여자가 보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무저갱이 됩니다. 아내 눈에 다른 남자 보이면 무저갱이 됩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일지라도 자기 눈에 아내 남편이 가장 좋은 그 사람이 인격있는 사람입니다. 그게 바로 밥같은 겁니다. 그렇게 살지 이 세상을 정욕, 고깃덩어리 이렇게 정에 맞게 그렇게 살지 말아라. 이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가는데 하나만 남는다. 이 세상에 지나갑니다. 넓고 광대한데 수 없이 많은데 6000년 역사 속에 많은데 이 세상 잘난 사람들에게 물어보지요. 수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왔다갔습니다. 성경 밖이라도 알렉산더 대왕, 진시황 수 많은 인간의 변화 세상의 변화 과학의 발전 심리의 변화들 많은 게 있어왔고 존재했고 사라져왔고 주님 오시면 다 불타 없어지는데 이 세상도 지나가버리는데 하나만 남습니다. 뭐만 남는다고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남음이라.
오늘 말씀이 그 말씀으로 또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말씀으로 순종하는 이게 믿는 사람의 전부다. 참고로 기독교는 믿음의 도라고 합니다. 믿음의 도. 기독교는 무슨 도라고요, 믿음의 도. 믿음의 도입니다. 믿음이 뭐냐 이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이 있습니다. 선물로 주시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을 때 주시는 겁니다. 믿음은 믿음인데 사람이 믿을 수 없는 믿음이 있습니다. 믿을 수가 없는데 믿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어야합니까 안 믿어야합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안 믿어지면 안 믿으면 됩니다. 함부로 믿으면 안됩니다. 세상은. 사람이든 말이든 함부로 믿으면 안되기 때문에 돌다리도 두드려 가면서도 가야합니다. 이번에 비가 엄청 쏟아졌다고 하지요. 트럭 두 대가 지나가는데 갑자기 어찌됐다고요, 대로에 큰 길가에 갑자기 땅이 푹 꺼져버렸습니다. 내려앉아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한 번 두 번입니까. 요즘 허다하게 나옵니다. 땅을 어떻게 딛고 삽니까. 이 세상은 믿으면 안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안 믿어지는데 사람의 이치로 사람의 논리로 과학의 근거로 역사의 통계로 상식으로 말이 안되고 안 믿어지는데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데,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안믿어지는데 천하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없는 그 사실이 믿어지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걸 가르켜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
그 선물이 뭐라고요. 그게 믿음입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과학이라는 것은 눈으로 봐야 믿음입니다. 그래서 과학과 종교는 반대쪽입니다. 상반되는 겁니다. 과학자들이 예수 믿으면 정말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데 마음 속에 믿어지는 거지요. 일류 과학자인데 하나님이 믿어지는 겁니다. 뭘로 설명하지.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땅을 창조하시니라. 하늘과 땅을 물질계 우주입니다. 우주를 공부해보셨습니까. 자세하게는 공부를 해도 영감적으로 되어야합니다. 넓은지 광대하고 그런지 얼마나 많은지 큰 것은 얼마나 크며 작은 것은 얼마나 많은지, 물질 중에서 얼마나 작으냐 사람 몸의 세포가 뭐라고 합니까. 50조개에서 100조개라고합니다. 체격 작은 사람들은 50조개, 큰 사람은 100조개라고 합니다. 보이겠습니까. 현미경으로 겨우 보입니다. 그게 100조개가 사람을 이루고 있는데 그 하나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겠습니까. 한 세포 속에 100조개의 물질이 들어있답니다. 믿어지십니까.
그러면 사람 몸은 물질은 몇 개로 되어있다는 건가요. 100조개로 사람의 몸 세포, 100조 분의 1일되는 그 세포 속에 쿼크라는 물질이 들어있답니다. 저도 들었습니다. 그게 세포 하나 속에 100조개가 들어있습니다. 어디까지 작아지느냐, 과학이 밝히는 그것을 할 때 기능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기능이 그렇게 해서 어떻게 분리하냐 그러는데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다. 택자 전부에게 영계 물질을 나눠주고 나눠줘도 남겠다. 그 세포 안에 여러 물질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작고 작고 작고 작은 것을 만든 것이 하나님입니다. 우주는 지금도 끝없이 커진답니다. 이런 우주를 말씀으로 다 만들었다. 믿어지십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그 자연에 물질 세계를 들어다보면 너무너무 과학적이고 체계적이고 그런 것입니다. 대충 대충 되어있는 물질이 없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나뭇잎 하나까지도 그래서 과학자들이 탄식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만들지 않으면 이렇게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은혜로 믿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기 어려운 것을 믿게 하시는 것, 그 다음에 그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살아갈 때 마다 눈으로 보기 어려운 하나님의 섭리 역사 믿기 어려운 것은 현실의 믿음 순종으로 믿음 생활이다. 전체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창세기 45장 4절, 요셉이 형들을 만났습니다. 만난 것은 최고로 아버지 회개 시키고 그리고 자기를 밝힌겁니다. 당신들이 여기를 팔아먹었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앞서 보내셨나이다. 누가 보냈습니까. 요셉을 애굽에 누가 팔아먹었습니까. 형 열이 팔아먹었습니다. 야곱의 형들은 네 명의 어머니입니다. 옛날이니까. 이복형제라, 배가 다른 형제라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장화홍련전인가요. 계모라고 합니다. 그런 말 안합니다. 이복 어머니, 그 수도 없이 이복 형제 간에 싸움에 말도 못합니다. 이때도 그랬습니다. 배 다른 요셉의 형제가 팔아먹었습니다. 형 열이서 팔아먹었습니다. 팔아먹었는데 보니까 요셉을 누가 팔아먹은게 됩니까. 뒤에가서 보니까 하나님이 요셉을 파셨습니다. 형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큰 구원으로 당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냈나니. 나를 애굽에 보낸 자들은 당신들이 아니요, 요셉이 성공했고 자기들은 그대로니까 잘못 사는 형들 위로하는 그런 말로 받아들였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누구 아들입니까. 야곱의 아들이죠. 몇 번째 아들이지요. 열 두 번째 아들은 누구지요. 막내가 베냐민이지요. 베냐민과 요셉은 동태형제 지간입니다.
요셉의 형제 이름은 무엇인가요. 라헬의 언니 이름은 무엇인가요. 라헬은 예뻤습니다. 레아는 별로 안 예뻤나보죠. 야곱은 남자입니다. 남자 놈들은 예쁜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야곱도 예쁜 라헬이 좋았습니다. 라헬과 결혼하고 싶었는데 라반이 쓸만한 놈이라서 그때는 결혼 같이 시키니까 라헬 대신에 언니를 보내버립니다. 14년 라헬 때문에 봉사하고 라헬을 얻었습니다. 끔찍이 사랑했는데 야곱이 라헬을 너무 사랑하니까 하나님께서 라헬을 일찍 데려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라헬이 죽고 나니까 라헬이 낳은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이었는데 요셉이 인성이 좋고 그러니까 실력은 열 둘 중에서 유다가 가장 나을 겁니다. 그런데 요셉이 못지 않게 잘 나가니까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라헬 가고 나니까 요셉에게 갔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편애하고 사랑하니까 형들이 시기를 해서 팔아먹어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애굽에 형들이 팔아먹어버렸습니다.
야곱이 사랑한 라헬, 남들이 죽으니까 요셉을 편애 사랑하니까 시기가 생겨지고 형들이 요셉을 팔아먹어서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팔려간 집이 누구였던가요. 요셉이 종으로 팔려간 집이 누구인가요. 보디발, 뭐던가요. 시위대장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 경호실장 즈음 되는 사람입니다. 그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런데 워낙 성실하게 잘하고 용모가 아담하고 준수하였더라. 괜찮았다는 뜻이지요. 남자 놈들은 이쁜 여자 좋아하는 여자들은 잘난 남자 좋아하거든요. 보디발 아내가 여자니까 빠져버린거지요. 미혹을 안 받으니까 누명을 덮어씌워서 감옥에 갔습니다.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입니다. 정치범들 사상범들, 똑똑한 인물들이 오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요셉이 갖혔습니다. 두 관원장, 음식을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식품 쪽의 장관 즈음, 보건 쪽의 장관이 될련지. 요셉이 섬기는데 꿈을 꿔서 그 꿈을 요셉이 해석해주고 그들이 그대로 되었습니다. 꿈대로 이루어질 때 꿈이 좋게 해몽되는 사람에게 청탁을 하지요. 당신이 복직을 하면 나를 여기서 풀어주게 하십시오. 그랬는데 그 사람이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바로 왕이 꿈을 꾸지요. 바로 왕이 꿈을 꾸고 신하들이 꿈 이야기하고 해몽을 부탁하는데 아무도 못한 겁니다. 누가 나서겠습니까. 그 사람이 그때 생각이 난 거지요. 내가 감옥에 있었을 때 이런 청년이 있었습니다. 불러보지요. 바로 불려갔고 해몽했고 바로 총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머리 속에 자기 인생의 행로가 거쳐간겁니다. 내가 우리 아버지가 나를 특별히 사랑했고 이건 편애다. 요셉은 거기다. 형들의 잘못을 두고보지 못해서 알린 것도 있지만 특별히 편애했고 나를 팔아먹었다. 그리고 보디발 집에 종으로 팔려갔다. 그리고 누명쓰고 감옥에 갔다. 그 술 맡은 관원장이 있었다. 청탁을 했는데 잊어버렸다. 그리고 2년 지나서 왕이 꿈을 꿨다. 해몽을 해줬다. 총리로 등극했다. 이게 뭐지. 말을 하지 않아도 요셉은 총명한 사람입니다. 그런 행로를 물론 요셉은 그때 그때 순간 순간 믿음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기를 받아도 영향 받지 않았고 교만하지 않았고 신앙으로만 살았습니다. 총리가 되고 나니까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께서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구나. 내가 그쪽으로 가게 되는구나.
꿈이 생각이 나고 그 꿈이 이렇게 이어졌구나. 나의 모든 인생의 행로는 나를 애굽의 총리로 만드시기 위한 과정이었구나 이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편애한 것도 시기하고 팔아먹은 것도, 형들이 그렇게 독한 건 있지만 막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보디발의 집에 간 것도 청탁 잊어버린 것도 전부 보니까 과정 과정이 총리로 만드시려고 하신 큰 그림이었고 과정이었구나. 깨닫게 되어진겁니다. 요셉의 깨달음대로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에 보내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 보내시는 사전 작업입니다. 숫자를 늘리기 위한 번성 시키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 보내서 번성시키고 출애굽 과정을 하시려고 그 출발점에 요셉을 두신 겁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 총리로 미리 정해놓고 보내시기 위해서 요셉의 인생 경로를 인도하신 거지요.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거창 집회장소를 찍으면 이렇게 가십시오, 뭐가 나옵니다. 우회전 하십시오, 휴게소가 있습니다. 인도해갑니다. 그런데 목적지에는 집회 장소가 찝혀있습니다. 그쪽으로 안내를 하는 겁니다. 이번에 네비게이션 믿다가 추석에 고생한 소식 들었습니까. 10시간 허비했다. 그걸 가르켜서 기계라고 합니다. 기계적으로 하니 상황 판단을 못하는거지요. 인공지능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처럼 총리를 정해놓고 형들에게 시기를 받게하고 팔아먹게 만들고 보디발의 집에 가게 만들고 감옥 보내시고 과정 거쳐서 총리를 만들기 위해서 하신 겁니다.
내가 총리가 될 거다. 하나님의 뜻이 있을지 알아겠지만 가는데 하나님은 크신 그림을 그리고 요셉을 총리로 세울려고 한 겁니다. 요셉은 총리로 가는 과정입니다. 주권 인도였습니다. 가는 방향이었습니다. 그럴 때 요셉은 인도하고 하시는데 따라가는 걸음 걸음에 거기서 다른 거 하지 않고 같은 세월을 살고 같은 시대를 살아도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고 그 안에는 예정이 다르니까. 쓰인게 다르기 때문에. 요셉은 총리가 될 줄은 몰랐으나 큰 변곡점, 갈랫길 크게 변한 현실 시기받아 종으로 팔려가는 전환점, 총리가 되어 잘 사는데 누명 써 감옥가는 변곡점. 불려가서 총리되는 것, 이런 거 할 때 마다 작은 그때 그때 평소 생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 현실의 피동되지 아니하고 그때 요셉의 생각 속에는 이렇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나님의 뜻만 찾은 겁니다.
마음 속에 이복 동생이라고 팔어먹는구나. 못된 놈들 두고보자. 인간적인 감정입니다. 서운하다 감정, 복수심 감정 기어코 내가 갚고 말지. 이게 인간인데 요셉은 그게 하나도 없습니다. 섭섭한 거 대신에 왜 하나님께서 형들을 통해서 나를 시기하고 팔아먹게 하셨을까. 왜 보디발의 집에 이렇게 오게 하셨을까. 거기 머물었을 때 여자가 꾸며서 덮어씌울 때 보디발은 아내 편 들어서 감옥 보낼 때 왜 하나님께서 나를 감옥에 보내실까 뜻만 찾은 겁니다. 하나님의 뜻. 무엇하시려고, 무엇에 쓰시려고, 어떻게 인도하시려고 하나님의 뜻이 뭘까 그것만 찾은겁니다. 거기에 정과 욕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순종해서 갔는데 총리 자리였고 올라가서도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날 인도하셨는데 앞날을 내다봅니다. 후손들을 이 세상에 두시려고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이 세상에 번성시키려고 나를 보내셨나이다. 나를 보내신 분은 당신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내셨나이다.
다윗을 좀 생각해볼건데 다윗은 오후에 생각해보고, 오전에 여기서 하나 가르치는 도리 말씀드립니다. 요셉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듯이 하나님의 역사는 이 세상 전부입니다. 6000년 이 세상 전부다가 요셉을 출발해서 총리까지 인도하셨듯이 이 세상 전부를 하나님께서 예정대로 주관 섭리 하신 겁니다. 다 정해놓고 하나님께서 목표 지점을 찍어놓고 목표를 향해서 예정대로 진행을 하고 계신 겁니다. 그 예정의 모든 진행 과정에서 주권 섭리 역사로 성취하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그 예정과 주권은 하나님의 뜻 목적을 위해서 진행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예정과 주권의 성취의 과정 과정은 우리 개인으로 오면 현실이라는 이름의 장소로 오게 되는 겁니다. 별별 현실을 통해서 인도하는 겁니다. 사람의 모든 것을 하면 크신 뜻을 향해서 가고 있고 예정은 순서대로 되고 있고 과정은 절대 주권의 능력으로 성취되고 있는 겁니다. 요셉이 그랬듯이 우리들에 대한 인생도 그렇게 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진행되어왔고 앞으로도 진행을 될 것입니다. 그렇게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고 있었고 다 현실을 통해 지나왔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 지나갈겁니다. 거기서 할 일이 뭐냐,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해놓고 말하는 사람의 하나님의 몸의 목적을 좌표라 찍어놓고 인도하고 계시는데 예정의 순서대로 하고 계시는데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에서 하나님의 뜻만 찾는 겁니다. 자기 탓은 다 버리고 여기를 인도하셨고 이런 현실 주셨는데 이런 뜻이 뭐냐, 여기서 원하시는 이 사건에 원하시는 뜻이 뭐냐. 그 뜻을 찾아서 순종하는 것만이 우리 할 일의 전부다.
그렇게만 하면 성공이 되어지는 것이고 인간의 정과 욕심이 들어가면 별 볼일 없는 형들처럼 실패한 사울처럼 그렇게 되고 마는 겁니다. 모든 결과는 과정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고 다윗처럼 살면 되는 것이고 사울처럼 살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우리 현실에 다 펼쳐지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만 찾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