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2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9-22조회 93추천 14
2024년 9월 22일 주일 오후
찬송: 4장, 12장
본문: 창세기 4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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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을 들어도 상황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려지는 게 사람의 말입니다. 요셉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깨달음으로 사실대로 말한겁니다. 요셉은 위로의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없는 말을 꾸며낸 그런 말이 아닙니다. 실제 그런 것을 밝히고 있는데 형들은 모르고 있는 겁니다.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세계에 도달해야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요셉도 처음에 이런 사실을 몰랐을 것이고 형들을 원망하거나 서운하게 생각지는 않았겠지만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직접 인도하신 것을 몰랐을 겁니다. 그런데 가 보니까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하나님의 인도가 이거 때문이었구나 이렇게 알게 된겁니다.
믿는 사람들은 지나면 이렇게 쓰시려고 과정을 다 거치게 하셨구나 그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참고로 기억할 거 신앙생활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추상적인 건 생각이고 구름 잡는 소리를 추상이라고 합니다. 실상, 실제와 상관없는 생각, 그런 일 그런 추상화라는 게 있잖습니까. 그런 류의 그림들입니다. 일종의 소설 같은 거, 말이 안되는데 내어놓는건데 마치 잡을 수 없는 동화같은 걸 추상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할 때 주일을 지킬 때 기도할 때 성경을 읽을 때 연보할 때 말씀으로 살아갈 때 그 모든 생활이 현실과 동 떨어진 생활은 신앙생활이 잘못된 겁니다. 예배당에 와서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예배시간이니까 기도하고 목사님 설교하고 듣고 이게 계속 되풀이되면 교회 안 가면 허전하고 예배시간이니까 찬송 안하면 이상하고 그래서 주일날 예배오고 그런데 집에 오면 가정생활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공부도 하고 외식도 하고 나들이도 가고 예배드렸으니까. 직장 생활하고 가정 생활하고 어 내일 주일이네 교회가야지, 수요일인데 교회가야지. 그렇게 형식적은 의식적인, 오늘날 교회들이 그런 모양으로 따라가는 신앙이 되어있습니다. 그게 전부 추상적인 신앙입니다.
불교는 추상적인 신앙이고 천주교도 그렇게 되어져버렸습니다. 그 속에 들어가보면 착각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위로하는 착각.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자기만 있고 보이는 사람만 있고 세상 사물만 있고 객관이 있기는 한데 피조물 안에 있는 객관, 믿고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건데 이런 추상적인 신앙은 있긴 있는데 하나님이 없습니다. 자기 상상 속의 하나님. 자기 주관의 하나님. 이런 하나님으로 믿는 게 많은 사람들의 신앙 생활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탈선하는 겁니다. 어떤 하나님을 섬긴다고요, 자기가 만든 하나님, 자기 주관의 하나님, 잘 듣고 따라오는 거 같아서 물어보는 겁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내가 만들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내 생각 주관과 다르게 움직이는 분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내 길은 너의 길과 다르다. 주님은 하나님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데 우리 전부를 하나님과 하나로 맞추어나가는 게 우리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맞추는 겁니다. 이걸 바꿔서 내 소원은 이런데 하나님의 소원은 뭐냐, 거기에 나를 꺾어서 맞추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이걸 에스겔 성전에 다듬은 돌이라고 말한겁니다. 신앙생활이란 그래서 신앙생활은 내가 섬기는 대상, 하나님이 계시고 내가 만든 내 주관의 하나님은 주관하시는 역사가 있는 겁니다. 내게 실제로 느껴지고 그게 신앙 생활입니다. 이런 작용이 없는 신앙은 그런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작용이 되어지는 것으로 현실과 떨어진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말씀이 설교가 현실과 무관한 말씀은 복음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어찌보면 추상적인 거 같은데 크게 넓게 전체를 설명하는 거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이고 직접 연결시킨 것이 요셉의 생애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요셉을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전부 인도하시는데 쓰임이 달라서 그런 것입니다. 드러나게 인도하셨고 그렇게까지 알지는 않으나 인도를 하신 겁니다. 일차 목적은 무엇을 하시려고 요셉을 인도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요셉을 인도하신 일차목적지는 애굽입니다. 애굽나라 총리, 그리도 이끌어가시는 요셉입니다. 내가 너를 복 중에 지키기기 전에 너를 알았고 태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알았다. 예레미아가 태어나서 믿음 신앙 좋고 똑똑하고 사람 좋아서 선지자로 세운 게 아닙니다. 태어나기 전에 잉태되기 전부터 선지자로 선택했고 선지자가 된 겁니다. 전부다 그렇습니다.
요셉의 생애 전체는 일차적으로 애굽나라 총리를 세우려고 인도했는데 그런 과정이 라헬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고 야곱이 사랑하게 된 것이고 라헬이 세상을 일찍 떠나게 된 것이고 요셉에게 꽂혀버렸고 형들이 시기를 일어나게 된 것이고 전부 순리라기 보다는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그 상황에 따라서 유기적으로 되는 겁니다. 형을 속여서 축복 빼앗으니까 도망을 쳤고 라헬이 보였고 첫눈에 반했고 결혼했고 요셉이 났고 형들이 10명이나 났는데 전부 레아의 아들들인데 르우벤 시몬은 좀 그렇지만 전부 결정적인 아들들인데 레아는 안 보이고, 그래서 사랑인지라 시기하는 것이고 안 하면 좋은데 하게 된 거죠. 형들이 요셉 자기 때문에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으니까 떳떳하게 된 것이겠습니까. 형들이 자기를 시기해서 팔아먹었습니다. 깨닫고 보니까 아버지가 그토록 자기만 챙기니 시기 안하겠습니까.
그런 과정 과정 전부다가 흐름의 역사인데 요셉이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고역직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나씩 만들어가는 겁니다. 그렇게 요셉이 깨달았을 때 이런 과정들을 만들어 나가고 사정할 때 아버지가 세상 떠나고 형들이 찾아와서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우리는 예사로 보지만은 그때 요셉의 위신은 애굽의 실세입니다. 애굽의 왕부터 그랬습니다. 실권을 다 잡았습니다. 요셉 말 한마디면 형들 한 순간에 다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시기 전에 유언했습니다. 꼬시다 나 팔아먹을 때 좋았지 그랬겠습니까. 그때 요셉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간곡한 말로 위로했더라. 이게 이해가 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엄청 미안한겁니다. 알고보니 그 형들은 자기 위해 희생이 된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겁니다. 당신으로 팔았지만 선으로 바꿨습니다. 요셉의 진정한 깨달음입니다. 눈꼽만큼도 안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신앙생애를 우리가 들여다 봐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인생을 인도하셨구나. 믿는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간다고 해도 뭐가 자꾸 새어나가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그러면 천국생활을 하는 겁니다. 그 시대에 권력가들은 재산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입니다. 그 지역에 논이고 밭이고 다 그 사람 겁니다. 다 다르겠지만은 보디발은 재산이 많았을 것이고 사람도 굉장히 많았을 겁니다.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맡았습니다. 감옥 갔을 때도 뭔가 뜻이 있다. 뜻을 생각한 거지요. 한 마디도 핑계되지 않고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다른 문제는 아니고 해명을 하지만은 보디발의 아내가 그러는데 해명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겁니다.
뒤에 보디발이 요셉이 모르겠습니까. 안 집어넣을 수 없는 거겠지요. 그런 위치가 올라가지 않아도 알긴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고 차원의 높은 위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많은 게 다릅니다. 감옥갔을 때도 뜻이 있구나, 왕의 죄수들 거기서 요셉은 정치를 다 배웠고 인맥을 다 쌓았다고 합니다. 술 맡은 관장이 다 잊어버렸지만 소개할 때는 있었던 것이고 그 과정을 거쳐서 요셉이 총리됐을 때 하나님께 인도됐구나 알게 되는 거지요.
요셉의 생애는 하나님의 인도였습니다. 중간 단계로 한 인도였고 예정 해놓은 겁니다. 그 총리가는 길로 능력으로 그렇게 과정 과정을 인도해 가시는 겁니다. 여겨서 서울 갈려면 북쪽으로 가야합니다. 북쪽으로 가는 겁니다. 북쪽으로 잡으면 북쪽으로 가겠구나. 어릴 때 꿈으로 보여주시고 뭔가 뜻은 있는데 앞날은 모르는 거지요. 백 목사님께서 처음 믿을 때 총공회를 세울 인물이 될 것이라고 알았겠습니까. 믿고 나서 보니까 골려 먹은 것도 뜻이 있었고 믿고나서 술장사 한 것도 뜻이 있었고 일본간 것도 뜻이 있었고 전부 하나님께서 시대를 감당하는 복음을 주시려고 하는 것이 과정입니다. 문제는 그런 과정을 걸어갈 때 당사자, 당사자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문제지요.
사무엘상 18장 10절, 이게 보니까 지금 이때는 사울이 제 정신이 아닐 때입니다. 승승장구하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춤추면서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라 그랬습니다. 중국 황제를 부를 때는 만세라고 하고 조선은 천세라고 했습니다. 황제 나라에 속한 나라가 조선입니다. 친일파라고 욕을 했는데 중국은 조선 500년 동안 괴롭혔고 그것처럼 여기 보니까 사울은 왕이고 다윗은 밑에 장군인데 거꾸로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나는 천천만 하니까 다윗에게 돌아가겠구나 그러다가 뒷날 악령이 악심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순간적으로 사람이 정신이 나간 것처럼 그렇게 된 겁니다. 다윗이 사울 옆에 있을 때 사울의 손이 있는지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하고 창을 던졌는데 두 번 피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섭리가 있는데 다윗은 교독할 때 보니까 이새의 아들인데 여덟 번째 막내 아들입니다. 목동입니다. 양 먹이는 사람입니다.
위에 장성한 형들은 출세할려고 나갔고 다윗은 막내라서 양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망나니고 개구쟁이고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뒤에 보니까 얼마나 양을 철저하게 잘 지켰던지, 무엇을 잘 한 것입니까. 양을 잘 먹인 것은 뭘 한 겁니까. 다윗이, 아버지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한 겁니다. 다윗이 사자를 찢은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한 것이고 엄청나게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자기를 바쳐드릴 때 능력주시는 겁니다. 자기 전부를 아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 내면에 실력을 쌓은 상태에서 그 전에 이미 사울이 교만해가지고 버림받았지요. 아말렉을 다 전멸하라고 그랬는데 좋은 건 남겨두고, 제사를 지내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렸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기름부은 상태가 되어있었지요. 그 다음에, 다윗이 골리앗을 잡은 것은 사울의 교만으로 버림받고 이새 아들에게 기름부으라고 한 다음입니다. 그런 과정 거쳐서 다윗이 골리앗에게 심부름 갔고 골리앗이 갔고 들었고 그 골리앗보고 도망치는데 분이 일어났고 이방인 짐승 같은 것이고 못 견뎠고 교만하다 하는 것 보니까 평소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다윗은 고집쟁이고 어찌보면 개구쟁이 망나니 같은 뼈대가 강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골리앗을 쳐서 죽여버렸씁니다. 그리고 보니까 18장에 보니까 이런 일이 나오는 것이고 사울이 시기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이런 일이 되어진 것이고 얼마 지나서 공개적으로 선포를 했고 사울을 피해서 도피생활을 하게 되고 블레셋에 망명까지 가게 되었는데 이후 사울이 죽었고 왕이 되었고 전쟁해서 가는 곳마다 이겼는데 지붕에 올라가서 보니까 여인이 보였고 범죄를 저질렀고 그 다음부터 다윗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그 전후로 철저하게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목동으로 박혀있으니까 사무엘이 기름 부으러 갔을 때 내지도 않았는데 찾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장자를 보고 기름 부으려했는데 일곱째까지 다 재껴놓고 그렇게 부른 겁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그 사람은 어느 구석에 있어도 빼내서 그러지 숨겨놓지를 않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숨어있으면 안되는건데 하나님은 어떻게 되든 찾아서 뽑아놓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생애는 하나님께서 애굽나라 총리로 세우실려고 인도하신 생애다. 주권 섭리의 성취가 요셉의 생애다. 다윗의 생애도 주권 능력의 성취다. 두 사람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가 그런 겁니다. 전체 큰 틀은 알지 못하나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요셉도 과정 과정마다 원망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고 그걸 통해서 하셨으니까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잡아놓으니까 시골 구석에 있던 양치기가 아무도 못 이겼던 그런 사람이 잡으니까 스타가 되어버린거지요. 손양원이라는 사람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신사참배 7년 갔다오니까 한국의 성자가 되어버렸지요. 순교하고 나니까 그렇게 되었지요. 다니엘이 그때 느부갓네살이지요. 꿈을 꾸었는데 심라학자들 다 불러놓고 내가 꿈을 꿨는데 해석을 못하겠다. 내가 무슨 꿈을 꿨는지 알아봐라. 알아맞춰라. 그러니까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펄펄 뛰었습니다. 다니엘이 맞추니까 너희 신이 진짜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왕의 그 나라의 아무리 졸업해도 잊어버리는데 다니엘이 그 나라에 총리가 되어버리지요. 그런 모든 과정 과정이 전부다 특별하게 쓰여질 인물이라 그랬지만은 이 세상이라는 것은 운영 전부는 하나님의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것 말씀드리는 것이고 주권 성취가 있다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리 하고 있고 하나님의 예정의 진행과 주권 속에 누가 들어있습니까. 거기에 제가 들었고 여러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진행이 된다는 겁니다.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간단하게 정리를 하면 세상은 6000년 역사입니다. 예정대로 되고 주권대로 성취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걸 믿는 거, 예정 속에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연결시켜놓으면 개인적으로 현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현실이라는 곳은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의 현실이지요. 대충 지은 거 같으나 철저하게 되어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들의 할 일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이 전부 그렇습니다. 현실은 어떤 것이라고요 첫째 예정의 현장 그런 곳입니다. 평소 때마다 성취가 이뤄지는 곳은데 하나님의 무엇을 찾습니까. 뜻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무슨 뜻일까 무엇을 원하실까. 왜 사고가 생겼을까. 요셉과 다윗과 종들은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믿음의 종들의 성공의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 챙겨주시는 겁니다. 다 맡겨두고 찾아서 내 주고 뜻대로 행하여 주시옵소서, 집도 주시고 사람도 주시고 다 주시는 데 사람들이 좁은 토끼꼬리만한 자기 지식에 갇혀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우리 할 일은 하나님의 뜻이 뭐냐 무엇을 원하시느냐 자기를 돌아봐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4장, 12장
본문: 창세기 45장 4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상황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려지는 게 사람의 말입니다. 요셉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깨달음으로 사실대로 말한겁니다. 요셉은 위로의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없는 말을 꾸며낸 그런 말이 아닙니다. 실제 그런 것을 밝히고 있는데 형들은 모르고 있는 겁니다.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세계에 도달해야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요셉도 처음에 이런 사실을 몰랐을 것이고 형들을 원망하거나 서운하게 생각지는 않았겠지만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직접 인도하신 것을 몰랐을 겁니다. 그런데 가 보니까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하나님의 인도가 이거 때문이었구나 이렇게 알게 된겁니다.
믿는 사람들은 지나면 이렇게 쓰시려고 과정을 다 거치게 하셨구나 그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참고로 기억할 거 신앙생활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추상적인 건 생각이고 구름 잡는 소리를 추상이라고 합니다. 실상, 실제와 상관없는 생각, 그런 일 그런 추상화라는 게 있잖습니까. 그런 류의 그림들입니다. 일종의 소설 같은 거, 말이 안되는데 내어놓는건데 마치 잡을 수 없는 동화같은 걸 추상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할 때 주일을 지킬 때 기도할 때 성경을 읽을 때 연보할 때 말씀으로 살아갈 때 그 모든 생활이 현실과 동 떨어진 생활은 신앙생활이 잘못된 겁니다. 예배당에 와서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예배시간이니까 기도하고 목사님 설교하고 듣고 이게 계속 되풀이되면 교회 안 가면 허전하고 예배시간이니까 찬송 안하면 이상하고 그래서 주일날 예배오고 그런데 집에 오면 가정생활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공부도 하고 외식도 하고 나들이도 가고 예배드렸으니까. 직장 생활하고 가정 생활하고 어 내일 주일이네 교회가야지, 수요일인데 교회가야지. 그렇게 형식적은 의식적인, 오늘날 교회들이 그런 모양으로 따라가는 신앙이 되어있습니다. 그게 전부 추상적인 신앙입니다.
불교는 추상적인 신앙이고 천주교도 그렇게 되어져버렸습니다. 그 속에 들어가보면 착각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위로하는 착각.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자기만 있고 보이는 사람만 있고 세상 사물만 있고 객관이 있기는 한데 피조물 안에 있는 객관, 믿고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건데 이런 추상적인 신앙은 있긴 있는데 하나님이 없습니다. 자기 상상 속의 하나님. 자기 주관의 하나님. 이런 하나님으로 믿는 게 많은 사람들의 신앙 생활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탈선하는 겁니다. 어떤 하나님을 섬긴다고요, 자기가 만든 하나님, 자기 주관의 하나님, 잘 듣고 따라오는 거 같아서 물어보는 겁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내가 만들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내 생각 주관과 다르게 움직이는 분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내 길은 너의 길과 다르다. 주님은 하나님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데 우리 전부를 하나님과 하나로 맞추어나가는 게 우리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맞추는 겁니다. 이걸 바꿔서 내 소원은 이런데 하나님의 소원은 뭐냐, 거기에 나를 꺾어서 맞추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이걸 에스겔 성전에 다듬은 돌이라고 말한겁니다. 신앙생활이란 그래서 신앙생활은 내가 섬기는 대상, 하나님이 계시고 내가 만든 내 주관의 하나님은 주관하시는 역사가 있는 겁니다. 내게 실제로 느껴지고 그게 신앙 생활입니다. 이런 작용이 없는 신앙은 그런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작용이 되어지는 것으로 현실과 떨어진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말씀이 설교가 현실과 무관한 말씀은 복음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어찌보면 추상적인 거 같은데 크게 넓게 전체를 설명하는 거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이고 직접 연결시킨 것이 요셉의 생애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요셉을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전부 인도하시는데 쓰임이 달라서 그런 것입니다. 드러나게 인도하셨고 그렇게까지 알지는 않으나 인도를 하신 겁니다. 일차 목적은 무엇을 하시려고 요셉을 인도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요셉을 인도하신 일차목적지는 애굽입니다. 애굽나라 총리, 그리도 이끌어가시는 요셉입니다. 내가 너를 복 중에 지키기기 전에 너를 알았고 태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알았다. 예레미아가 태어나서 믿음 신앙 좋고 똑똑하고 사람 좋아서 선지자로 세운 게 아닙니다. 태어나기 전에 잉태되기 전부터 선지자로 선택했고 선지자가 된 겁니다. 전부다 그렇습니다.
요셉의 생애 전체는 일차적으로 애굽나라 총리를 세우려고 인도했는데 그런 과정이 라헬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고 야곱이 사랑하게 된 것이고 라헬이 세상을 일찍 떠나게 된 것이고 요셉에게 꽂혀버렸고 형들이 시기를 일어나게 된 것이고 전부 순리라기 보다는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그 상황에 따라서 유기적으로 되는 겁니다. 형을 속여서 축복 빼앗으니까 도망을 쳤고 라헬이 보였고 첫눈에 반했고 결혼했고 요셉이 났고 형들이 10명이나 났는데 전부 레아의 아들들인데 르우벤 시몬은 좀 그렇지만 전부 결정적인 아들들인데 레아는 안 보이고, 그래서 사랑인지라 시기하는 것이고 안 하면 좋은데 하게 된 거죠. 형들이 요셉 자기 때문에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으니까 떳떳하게 된 것이겠습니까. 형들이 자기를 시기해서 팔아먹었습니다. 깨닫고 보니까 아버지가 그토록 자기만 챙기니 시기 안하겠습니까.
그런 과정 과정 전부다가 흐름의 역사인데 요셉이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고역직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나씩 만들어가는 겁니다. 그렇게 요셉이 깨달았을 때 이런 과정들을 만들어 나가고 사정할 때 아버지가 세상 떠나고 형들이 찾아와서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우리는 예사로 보지만은 그때 요셉의 위신은 애굽의 실세입니다. 애굽의 왕부터 그랬습니다. 실권을 다 잡았습니다. 요셉 말 한마디면 형들 한 순간에 다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시기 전에 유언했습니다. 꼬시다 나 팔아먹을 때 좋았지 그랬겠습니까. 그때 요셉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간곡한 말로 위로했더라. 이게 이해가 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엄청 미안한겁니다. 알고보니 그 형들은 자기 위해 희생이 된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겁니다. 당신으로 팔았지만 선으로 바꿨습니다. 요셉의 진정한 깨달음입니다. 눈꼽만큼도 안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신앙생애를 우리가 들여다 봐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인생을 인도하셨구나. 믿는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간다고 해도 뭐가 자꾸 새어나가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그러면 천국생활을 하는 겁니다. 그 시대에 권력가들은 재산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입니다. 그 지역에 논이고 밭이고 다 그 사람 겁니다. 다 다르겠지만은 보디발은 재산이 많았을 것이고 사람도 굉장히 많았을 겁니다.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맡았습니다. 감옥 갔을 때도 뭔가 뜻이 있다. 뜻을 생각한 거지요. 한 마디도 핑계되지 않고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다른 문제는 아니고 해명을 하지만은 보디발의 아내가 그러는데 해명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겁니다.
뒤에 보디발이 요셉이 모르겠습니까. 안 집어넣을 수 없는 거겠지요. 그런 위치가 올라가지 않아도 알긴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고 차원의 높은 위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많은 게 다릅니다. 감옥갔을 때도 뜻이 있구나, 왕의 죄수들 거기서 요셉은 정치를 다 배웠고 인맥을 다 쌓았다고 합니다. 술 맡은 관장이 다 잊어버렸지만 소개할 때는 있었던 것이고 그 과정을 거쳐서 요셉이 총리됐을 때 하나님께 인도됐구나 알게 되는 거지요.
요셉의 생애는 하나님의 인도였습니다. 중간 단계로 한 인도였고 예정 해놓은 겁니다. 그 총리가는 길로 능력으로 그렇게 과정 과정을 인도해 가시는 겁니다. 여겨서 서울 갈려면 북쪽으로 가야합니다. 북쪽으로 가는 겁니다. 북쪽으로 잡으면 북쪽으로 가겠구나. 어릴 때 꿈으로 보여주시고 뭔가 뜻은 있는데 앞날은 모르는 거지요. 백 목사님께서 처음 믿을 때 총공회를 세울 인물이 될 것이라고 알았겠습니까. 믿고 나서 보니까 골려 먹은 것도 뜻이 있었고 믿고나서 술장사 한 것도 뜻이 있었고 일본간 것도 뜻이 있었고 전부 하나님께서 시대를 감당하는 복음을 주시려고 하는 것이 과정입니다. 문제는 그런 과정을 걸어갈 때 당사자, 당사자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문제지요.
사무엘상 18장 10절, 이게 보니까 지금 이때는 사울이 제 정신이 아닐 때입니다. 승승장구하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춤추면서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라 그랬습니다. 중국 황제를 부를 때는 만세라고 하고 조선은 천세라고 했습니다. 황제 나라에 속한 나라가 조선입니다. 친일파라고 욕을 했는데 중국은 조선 500년 동안 괴롭혔고 그것처럼 여기 보니까 사울은 왕이고 다윗은 밑에 장군인데 거꾸로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나는 천천만 하니까 다윗에게 돌아가겠구나 그러다가 뒷날 악령이 악심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순간적으로 사람이 정신이 나간 것처럼 그렇게 된 겁니다. 다윗이 사울 옆에 있을 때 사울의 손이 있는지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하고 창을 던졌는데 두 번 피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섭리가 있는데 다윗은 교독할 때 보니까 이새의 아들인데 여덟 번째 막내 아들입니다. 목동입니다. 양 먹이는 사람입니다.
위에 장성한 형들은 출세할려고 나갔고 다윗은 막내라서 양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망나니고 개구쟁이고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뒤에 보니까 얼마나 양을 철저하게 잘 지켰던지, 무엇을 잘 한 것입니까. 양을 잘 먹인 것은 뭘 한 겁니까. 다윗이, 아버지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한 겁니다. 다윗이 사자를 찢은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한 것이고 엄청나게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자기를 바쳐드릴 때 능력주시는 겁니다. 자기 전부를 아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 내면에 실력을 쌓은 상태에서 그 전에 이미 사울이 교만해가지고 버림받았지요. 아말렉을 다 전멸하라고 그랬는데 좋은 건 남겨두고, 제사를 지내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렸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기름부은 상태가 되어있었지요. 그 다음에, 다윗이 골리앗을 잡은 것은 사울의 교만으로 버림받고 이새 아들에게 기름부으라고 한 다음입니다. 그런 과정 거쳐서 다윗이 골리앗에게 심부름 갔고 골리앗이 갔고 들었고 그 골리앗보고 도망치는데 분이 일어났고 이방인 짐승 같은 것이고 못 견뎠고 교만하다 하는 것 보니까 평소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다윗은 고집쟁이고 어찌보면 개구쟁이 망나니 같은 뼈대가 강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골리앗을 쳐서 죽여버렸씁니다. 그리고 보니까 18장에 보니까 이런 일이 나오는 것이고 사울이 시기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이런 일이 되어진 것이고 얼마 지나서 공개적으로 선포를 했고 사울을 피해서 도피생활을 하게 되고 블레셋에 망명까지 가게 되었는데 이후 사울이 죽었고 왕이 되었고 전쟁해서 가는 곳마다 이겼는데 지붕에 올라가서 보니까 여인이 보였고 범죄를 저질렀고 그 다음부터 다윗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그 전후로 철저하게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목동으로 박혀있으니까 사무엘이 기름 부으러 갔을 때 내지도 않았는데 찾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장자를 보고 기름 부으려했는데 일곱째까지 다 재껴놓고 그렇게 부른 겁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그 사람은 어느 구석에 있어도 빼내서 그러지 숨겨놓지를 않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숨어있으면 안되는건데 하나님은 어떻게 되든 찾아서 뽑아놓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생애는 하나님께서 애굽나라 총리로 세우실려고 인도하신 생애다. 주권 섭리의 성취가 요셉의 생애다. 다윗의 생애도 주권 능력의 성취다. 두 사람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가 그런 겁니다. 전체 큰 틀은 알지 못하나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요셉도 과정 과정마다 원망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고 그걸 통해서 하셨으니까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잡아놓으니까 시골 구석에 있던 양치기가 아무도 못 이겼던 그런 사람이 잡으니까 스타가 되어버린거지요. 손양원이라는 사람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신사참배 7년 갔다오니까 한국의 성자가 되어버렸지요. 순교하고 나니까 그렇게 되었지요. 다니엘이 그때 느부갓네살이지요. 꿈을 꾸었는데 심라학자들 다 불러놓고 내가 꿈을 꿨는데 해석을 못하겠다. 내가 무슨 꿈을 꿨는지 알아봐라. 알아맞춰라. 그러니까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펄펄 뛰었습니다. 다니엘이 맞추니까 너희 신이 진짜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왕의 그 나라의 아무리 졸업해도 잊어버리는데 다니엘이 그 나라에 총리가 되어버리지요. 그런 모든 과정 과정이 전부다 특별하게 쓰여질 인물이라 그랬지만은 이 세상이라는 것은 운영 전부는 하나님의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것 말씀드리는 것이고 주권 성취가 있다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리 하고 있고 하나님의 예정의 진행과 주권 속에 누가 들어있습니까. 거기에 제가 들었고 여러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진행이 된다는 겁니다.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간단하게 정리를 하면 세상은 6000년 역사입니다. 예정대로 되고 주권대로 성취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걸 믿는 거, 예정 속에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연결시켜놓으면 개인적으로 현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현실이라는 곳은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의 현실이지요. 대충 지은 거 같으나 철저하게 되어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들의 할 일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이 전부 그렇습니다. 현실은 어떤 것이라고요 첫째 예정의 현장 그런 곳입니다. 평소 때마다 성취가 이뤄지는 곳은데 하나님의 무엇을 찾습니까. 뜻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무슨 뜻일까 무엇을 원하실까. 왜 사고가 생겼을까. 요셉과 다윗과 종들은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믿음의 종들의 성공의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 챙겨주시는 겁니다. 다 맡겨두고 찾아서 내 주고 뜻대로 행하여 주시옵소서, 집도 주시고 사람도 주시고 다 주시는 데 사람들이 좁은 토끼꼬리만한 자기 지식에 갇혀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우리 할 일은 하나님의 뜻이 뭐냐 무엇을 원하시느냐 자기를 돌아봐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