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1일 금밤
김동민2024-09-20조회 104추천 11
2024년 9월 20일 금밤
찬송: 135장, 92장
본문: 베드로전서 4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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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하는 뜻이다. 예수님의 그 신성이 그리스도인데 이 그리스도라는 말의 뜻이 무슨 뜻일까라는 것으로 찾아보니까 하나님의 제사장을 기름붓고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붓고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부으심으로 그리스도라는 세 직책을 담당한 것을 말한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내면에 들어가보니까 제사장직 선지장직 왕직 이 세가지 삼대직분을 행하신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 세 가지 직분은 자신을 제물로 바친 것으로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죄를 담당하심으로 제사장입니다. 주님은 사람되어오신 이름이 예수인데 대속의 공로를 완성하신 직분이 제사장 직입니다. 우리 죄를 담당하시려고 당신의 죄를 바쳐 드렸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을 행하고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시대에 교회에 전해주시는 직책이 선지자입니다. 가장 어려운 직책이고 가장 순교를 많이 당한 직책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전부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를 합니다. 이게 선지직입니다. 백목사님도 그 태평시대에 천 명이 보는 앞에서 대형교회 강당에서 칼에 맞았습니다. 말씀을 싫어하는 배후의 세력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때도 그 시대를 보고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은 염려를 많이 했습니다. 서부교회 어떨 때에는 뭐가 날아오기도 했고 일이 참 많았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고 순종케 만드는게 왕직입니다. 이 세 가지 직분, 이 세 가지 직분을 담은 본문입니다. 이 세가지를 하신 분이 당신을 바쳐 죽으신 분이 그리스도께서 이미, 부사같은데 이미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말하면 현재를 말합니까 미래를 말합니까 과거를 말합니까. 이미는 과거지요. 지나간 때를 말합니다.
나는 다 이루었다 주님 대속의 공로가 완성되고 완료되었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나 교리 하나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말합니다. 몸과 마음이란 영이 있는데 영과 몸과 마음이 같이 움직이면 새 사람, 참사람, 속사람이라 그렇게 말하는데 몸만 움직이는게 육신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무슨 소난을 받으셨다고요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절정은 죽으십니다. 고난받고 죽으셨다는 게 안에 들어있습니다. 주님의 고난은 무슨 고난이냐 육체의 고난이다. 그 말은 해석하면 마음과 몸의 고난이라 그 말이지요. 영의 고난은 예수님이 죽으실 때 예수님 영은 사람의 영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우리와 꼭 같습니다. 예수님 영은 우리 사람의 영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영은 인성의 영은 사람의 영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습니다. 꼭 같은 사람의 영입니다. 그래야 사람이 참사람이 되는 겁니다. 영은 하나님이고 그러면 이단이 됩니다.
참사람이라고 그럴 때 몸과 마음과 영까지 다 되어야 참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고 죽으실 때 성경에 죽음은 몸과 마음이 나누어지는 걸 죽음이라고 합니다. 몸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마음은 죽어서 어떻게됩니까. 마음은 물질인데 신비한 물질입니다. 시공을 초월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몸을 떠나서 낙원으로 가는 겁니다. 범죄한 기능은 음부로 가는 것이고. 몸과 혼이 나눠지는 게 사람의 죽음입니다. 주님의 죽음도 그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영은 인성의 영은 죽으셨는가 안 죽으셨는가 저도 많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사람의 영은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까. 범죄함으로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까. 죽었습니다. 어려운 게 아니지요. 사람 영이 죽었는데 죄를 지었습니까 죄를 안 지었습니까. 교리적으로 중요한 상식입니다. 사람 영이 죄를 안지었는데 왜 죽었습니까. 심신의 지은 범죄의 주격 책임을 입고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형태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죽을 수 없는 겁니다. 그 책임을 지고 그런 거빈다. 하나님과 끊어져버렸습니다. 주님의 인성의 영도 죽어야되겠지 않겠는가. 그래야 우리 영의 죽음을 대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심신의 범죄 죗값을 치르는 겁니다. 주님은 영도 당연하고 마음도 몸도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담당하신 겁니다. 죽지 않았습니다. 죽었는데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으며 범죄자를 보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죽음의 형벌만 받았다는 겁니다.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겁니다. 죽지 않았다 이게 맞지 않을까. 사람의 영은 중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영도 중생을 해야하는데요, 교리적으로 안 맞지 않을까.
주님의 심신으로 우리들의 심신의 범죄값을 담당하시는게 주님의 죽으심, 본문에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 마음과 몸의 고난, 마음과 몸의 고난을 받으셨다. 그래서 사람의 영이 죽은 것은 영이 범죄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대속도 심신으로 되는 것이 공위의 법에도 맞다는 것이지요. 심신을 담당하심으로 심신 범죄 죗값을 지고 주님이 대신 살려주신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 고난을 받으셨으니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부활도 있습니다. 너희도 너희라는 것은 너희도 라고 했으니까 이어지는 거지요. 아버지가 이랬으니까 아들 너도 어머니가 믿음이 좋으니 딸 너도. 형이 그랬으니 동생 너도, 이어지는 걸 도라고 합니다. 너희도,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 권한 받으심으로 살아난 우리를 말합니다. 살아난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같은 마음은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입니다.
이 마음을 품어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주와 같은 마음으로 고난 받아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여기는 마음이 안 나와있지만 육체 고난 받으셨습니다.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주님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어떤 마음일까. 마음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와 같은 마음으로, 어떤 마음이었을까. 제사장직 우리 죄를 하나님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고난 받으신 주님의 마음, 그게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대신 고난을 지고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까. 이 마음을 가지고 죽으셨습니다. 사랑, 원로적인 답은 맞는데 조금 엇나갔습니다. 설명 안드려서 잘 모르겠지요. 그리스도께서 왜 하나님 백성의 죄를 담당해야겠다고 가졌겠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이니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시는 뜻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마음에 품고 그리하신 겁니다.
그 같은 마음,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그 마음,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갑옷은 줄임말이고 전신 갑주라고 합니다. 성경에 누가 이렇게 갑옷을 입었던가요. 골리앗이 그랬었죠. 머리는 투구쓰고 몸에 갑옷입고, 전신 갑주를 입으라. 갑옷을 삼으라, 그게 네 것이 되고 그런 것이지요. 무엇이 갑옷이라는 겁니까. 무엇으로 갑옷을 삼으라고요 어렵지 않은데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해석하니까 무슨 마음이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는 그 마음.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갑옷입니다. 갑옷은 원수의 창, 칼, 화살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뚫고 오지 못하게 하는 게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을 이뤄드려야겠다. 하나님 아버지 뜻이 뭐냐, 아버지여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길 원하나이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길 원하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뜻만 찾았고 그게 믿는 사람. 육체의 고난으로 받쳐 대속 공로로 살아난 그 갑옷이 그 갑옷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근거가 뭐냐,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죄를 거쳤읍니라. 주님이 육체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죄를 끝내버렸습니다. 죄에서 해방시켜버렸습니다. 죄에서 자유를 주신 겁니다. 종된 우리를 주님이 죄값을 담당하심으로 주셨습니다. 죄를 지어서 징역 5년 감옥살고나오면 죄는 없어지는 겁니다. 세상에서 그래도 전과자인데 정치가들은 죄를 지어서 감옥가면 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상범들 정치범은 투쟁하다가 감옥갔다온 걸 영광으로 압니다. 감옥 안 갔다온사람 없습니다. 민주화투사라고 오히려 한 자리 합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중생시켜버렸습니다.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 후로는 죄 사함을 받은 후로는 주님의 육체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그 죄를 다 도말하신 대속 공로를 입은 후로는 대속 공로 있고 중생이 되어서 신앙줄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다시, 다시라는 말도 뭐가 전제되어있습니까. 앞에 한 번 있었다는 거지요. 다시 과거에 그랬는데 사람의 정욕을 쫓지 않고 사람의 정욕을 쫓지 않고 사람의 정욕이다. 지난 이번 주 공과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사람의 정욕이다. 사람의 정욕이니까 사람으로 인한 육신의 안목의 정욕이고 아버지께로 쫓아오신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 쫓아오는 것이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 끊어진 것이다. 정이란 것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욕심도 마음의 작용입니다.
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혈육의 정, 형제 간의, 부모 간의, 부부 간의, 친구 간의. 뭔가 슬픈 거나 기쁜 것은 감정이라고 합니다. 별별 정이 있습니다. 그게 정입니다. 또 욕심이 있습니다. 별별 욕심이 많습니다.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다시 그랬으니까 뒤에까지가 다시 사람의 정욕 좇지 않고 사람의 그리스도를 죽지 않은 것은 왜 죽었느냐 사람의 정욕을 죽은 자는 살리려고 육체 고난 받으려고 했습니다. 아담 하와가 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 하와는 정 보다도 정 때문에, 아담도 정 때문에 그 때문에 인류 전부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항상 두 길인데 걸어갈 길은 한 길입니다. 구별은 돌로 하는데 선택은 하나입니다. 오직 한 길입니다. 오직을 한문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유자를 씁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람의 뜻을 좇았던 그를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다시 살아났으니까 대속을 받은 후로는 옛날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뜻, 개인에게 대한 뜻도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뜻도 있습니다. 상황마다 현실마다 뜻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연스럽게 되는 거니까 예상치 못했던 돌발적인 뜻하지 않았던 그런 평소와 다른 일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날 때도 있고 그런 일이 벌어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있습니다. 사람의 정욕이란 사람의 뜻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다시 사람의 정욕 사람의 뜻을 쫓아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찾아서 이런 일을 만나게 하셨는데 왜 이런 일을 만나게 하셨나이까. 교리로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이 절대예정과 절대주권입니다. 연결시키지 않고는 왜 찾아야하는지 모릅니다. 절대 예정인 뭔가요. 모든 것은 다 예정입니다. 개미수염이 움직이는 것까지 예정입니다. 내 머리털이 나고 빠지는 것도 예정입니다. 내 마음도 상대 마음도 예정입니다. 전부 예정입니다.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데 왜 변하지, 오락가락하지, 그게 뭡니까. 그게 바로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아침에는 웃었는데 저녁에는 슬픈 마음으로 옵니다. 아침에 다녀오겠습니다 했는데 저녁에 푹 늘어져옵니다. 씩씩하게 나간 남편이 풀이 푹 죽습니다. 그게 예정입니다. 밝게 나간 것도 예정 풀이 죽은 것도 예정.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 남편에게 어려움을 주셨구나 뜻이 뭘까. 그럴 때 주의 뜻을 참는 겁니다.
모든 일에서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건에서 다른 건 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손해보지 않고 어떻게 해야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 가정이 좋을까 그 뜻이 뭘까 주님이 다시 살려주신 목적입니다. 왜 사람이 정욕을 쫓아 죽은 인간을 대신 죽으심으로 다시 살려주심으로 그러셨느나 하나님의 뜻을 좇아, 찾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좇아서 육체에 남아있는 때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로 하여금 저희 자신을 위해하지 않고 그분을 살게 하렴이라. 그게 부활하신 목적입니다. 왜 살려주셨느냐 또 다시 선악과 먹고 죽으라고 살려주신 게 아닙니다. 인간의 정욕으로 그 인간을 선악과 따먹으라 살려주신 게 아닙니다.
죄를 저질러서 감옥간 것을 빼내놓으니까 그짓하면 자식놈이라 그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살려내는 것은 다시는 그짓하지말라고. 싸움하다가 퇴학을 당했는데 다시 복학시켜놓으면 아버지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다시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봐야합니다. 육체에 남을 때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왜 죽으셨나를 생각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 갑옷을 삼으로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은 그게 뭐냐 그 마음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뜻을 주는 그 마음 가져라, 그리고 다시는 사람의 정욕 좇지 않고 그때를 살아라. 대속의 목적이다 그 말입니다.
뜻이라는 것은 서론이고 본론이 들어가야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사람은 제일 바깥에 몸이 있습니다. 그 다음 마음이 있고 그 안에 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생활을 보면 몸이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만물을 접하고 그 몸이라는 것은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몸의 거의 대부분은 마음의 작용에 따라 움직입니다. 마음의 어떤가에 따라서 몸이 움직입니다. 마음 안에는 영이 있는데 그 영은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정과 욕심은 마음 요소지요. 그 마음이 영과 끊어져서 사람의 정이 되고 욕심이 될 때 사람의 정욕이 되는 겁니다. 거기 따라서 몸이 움직여버리면 안되는거지요. 마음이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을 뚫고 나오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몸이 중요한 것이고, 몸이 아무리 중요해도 마음따라 움직이는 겁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 되어야하느냐, 정욕에 붙들리지 않고 그 마음이 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그 뜻이 뭐냐 그것이 되어야하고 그게 될 때 갑옷이 된다. 이렇게 살라고 살려주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많은 문제가 다 생겨나는 겁니다. 정으로 가고 욕심으로 가니까, 하나님의 뜻은 찾지 않고 사람의 정, 사람의 욕심으로 되는 거기 때문에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주의 뜻이 뭐냐, 내 뜻 내 마음 내 감정 내 욕심 다 버리고 그분이 다 이렇게 하고 계시니까 예정이고 섭리니까 왜 이렇게 하셨느냐 이런 일을 하신 이유가 괴롭히는 이유가 몸이 아픈 이유가 치료가 안되는 이유가, 만사 모든 것에 그분의 예정이고 그렇게 되는 거니까 그 뜻을 찾아 준행하는 이런 사람으로 살게 할려고 그랬습니다. 깊이 좀 생각해보시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35장, 92장
본문: 베드로전서 4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하는 뜻이다. 예수님의 그 신성이 그리스도인데 이 그리스도라는 말의 뜻이 무슨 뜻일까라는 것으로 찾아보니까 하나님의 제사장을 기름붓고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붓고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부으심으로 그리스도라는 세 직책을 담당한 것을 말한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내면에 들어가보니까 제사장직 선지장직 왕직 이 세가지 삼대직분을 행하신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 세 가지 직분은 자신을 제물로 바친 것으로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죄를 담당하심으로 제사장입니다. 주님은 사람되어오신 이름이 예수인데 대속의 공로를 완성하신 직분이 제사장 직입니다. 우리 죄를 담당하시려고 당신의 죄를 바쳐 드렸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을 행하고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시대에 교회에 전해주시는 직책이 선지자입니다. 가장 어려운 직책이고 가장 순교를 많이 당한 직책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전부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를 합니다. 이게 선지직입니다. 백목사님도 그 태평시대에 천 명이 보는 앞에서 대형교회 강당에서 칼에 맞았습니다. 말씀을 싫어하는 배후의 세력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때도 그 시대를 보고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은 염려를 많이 했습니다. 서부교회 어떨 때에는 뭐가 날아오기도 했고 일이 참 많았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고 순종케 만드는게 왕직입니다. 이 세 가지 직분, 이 세 가지 직분을 담은 본문입니다. 이 세가지를 하신 분이 당신을 바쳐 죽으신 분이 그리스도께서 이미, 부사같은데 이미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말하면 현재를 말합니까 미래를 말합니까 과거를 말합니까. 이미는 과거지요. 지나간 때를 말합니다.
나는 다 이루었다 주님 대속의 공로가 완성되고 완료되었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나 교리 하나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말합니다. 몸과 마음이란 영이 있는데 영과 몸과 마음이 같이 움직이면 새 사람, 참사람, 속사람이라 그렇게 말하는데 몸만 움직이는게 육신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무슨 소난을 받으셨다고요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절정은 죽으십니다. 고난받고 죽으셨다는 게 안에 들어있습니다. 주님의 고난은 무슨 고난이냐 육체의 고난이다. 그 말은 해석하면 마음과 몸의 고난이라 그 말이지요. 영의 고난은 예수님이 죽으실 때 예수님 영은 사람의 영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우리와 꼭 같습니다. 예수님 영은 우리 사람의 영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영은 인성의 영은 사람의 영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습니다. 꼭 같은 사람의 영입니다. 그래야 사람이 참사람이 되는 겁니다. 영은 하나님이고 그러면 이단이 됩니다.
참사람이라고 그럴 때 몸과 마음과 영까지 다 되어야 참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고 죽으실 때 성경에 죽음은 몸과 마음이 나누어지는 걸 죽음이라고 합니다. 몸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마음은 죽어서 어떻게됩니까. 마음은 물질인데 신비한 물질입니다. 시공을 초월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몸을 떠나서 낙원으로 가는 겁니다. 범죄한 기능은 음부로 가는 것이고. 몸과 혼이 나눠지는 게 사람의 죽음입니다. 주님의 죽음도 그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영은 인성의 영은 죽으셨는가 안 죽으셨는가 저도 많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사람의 영은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까. 범죄함으로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까. 죽었습니다. 어려운 게 아니지요. 사람 영이 죽었는데 죄를 지었습니까 죄를 안 지었습니까. 교리적으로 중요한 상식입니다. 사람 영이 죄를 안지었는데 왜 죽었습니까. 심신의 지은 범죄의 주격 책임을 입고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형태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죽을 수 없는 겁니다. 그 책임을 지고 그런 거빈다. 하나님과 끊어져버렸습니다. 주님의 인성의 영도 죽어야되겠지 않겠는가. 그래야 우리 영의 죽음을 대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심신의 범죄 죗값을 치르는 겁니다. 주님은 영도 당연하고 마음도 몸도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담당하신 겁니다. 죽지 않았습니다. 죽었는데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으며 범죄자를 보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죽음의 형벌만 받았다는 겁니다.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겁니다. 죽지 않았다 이게 맞지 않을까. 사람의 영은 중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영도 중생을 해야하는데요, 교리적으로 안 맞지 않을까.
주님의 심신으로 우리들의 심신의 범죄값을 담당하시는게 주님의 죽으심, 본문에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 마음과 몸의 고난, 마음과 몸의 고난을 받으셨다. 그래서 사람의 영이 죽은 것은 영이 범죄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대속도 심신으로 되는 것이 공위의 법에도 맞다는 것이지요. 심신을 담당하심으로 심신 범죄 죗값을 지고 주님이 대신 살려주신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 고난을 받으셨으니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부활도 있습니다. 너희도 너희라는 것은 너희도 라고 했으니까 이어지는 거지요. 아버지가 이랬으니까 아들 너도 어머니가 믿음이 좋으니 딸 너도. 형이 그랬으니 동생 너도, 이어지는 걸 도라고 합니다. 너희도,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 권한 받으심으로 살아난 우리를 말합니다. 살아난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같은 마음은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입니다.
이 마음을 품어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주와 같은 마음으로 고난 받아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여기는 마음이 안 나와있지만 육체 고난 받으셨습니다.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주님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어떤 마음일까. 마음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와 같은 마음으로, 어떤 마음이었을까. 제사장직 우리 죄를 하나님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고난 받으신 주님의 마음, 그게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대신 고난을 지고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까. 이 마음을 가지고 죽으셨습니다. 사랑, 원로적인 답은 맞는데 조금 엇나갔습니다. 설명 안드려서 잘 모르겠지요. 그리스도께서 왜 하나님 백성의 죄를 담당해야겠다고 가졌겠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이니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시는 뜻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마음에 품고 그리하신 겁니다.
그 같은 마음,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그 마음,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갑옷은 줄임말이고 전신 갑주라고 합니다. 성경에 누가 이렇게 갑옷을 입었던가요. 골리앗이 그랬었죠. 머리는 투구쓰고 몸에 갑옷입고, 전신 갑주를 입으라. 갑옷을 삼으라, 그게 네 것이 되고 그런 것이지요. 무엇이 갑옷이라는 겁니까. 무엇으로 갑옷을 삼으라고요 어렵지 않은데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해석하니까 무슨 마음이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는 그 마음.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갑옷입니다. 갑옷은 원수의 창, 칼, 화살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뚫고 오지 못하게 하는 게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을 이뤄드려야겠다. 하나님 아버지 뜻이 뭐냐, 아버지여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길 원하나이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길 원하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뜻만 찾았고 그게 믿는 사람. 육체의 고난으로 받쳐 대속 공로로 살아난 그 갑옷이 그 갑옷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근거가 뭐냐,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죄를 거쳤읍니라. 주님이 육체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죄를 끝내버렸습니다. 죄에서 해방시켜버렸습니다. 죄에서 자유를 주신 겁니다. 종된 우리를 주님이 죄값을 담당하심으로 주셨습니다. 죄를 지어서 징역 5년 감옥살고나오면 죄는 없어지는 겁니다. 세상에서 그래도 전과자인데 정치가들은 죄를 지어서 감옥가면 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상범들 정치범은 투쟁하다가 감옥갔다온 걸 영광으로 압니다. 감옥 안 갔다온사람 없습니다. 민주화투사라고 오히려 한 자리 합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중생시켜버렸습니다.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 후로는 죄 사함을 받은 후로는 주님의 육체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그 죄를 다 도말하신 대속 공로를 입은 후로는 대속 공로 있고 중생이 되어서 신앙줄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다시, 다시라는 말도 뭐가 전제되어있습니까. 앞에 한 번 있었다는 거지요. 다시 과거에 그랬는데 사람의 정욕을 쫓지 않고 사람의 정욕을 쫓지 않고 사람의 정욕이다. 지난 이번 주 공과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사람의 정욕이다. 사람의 정욕이니까 사람으로 인한 육신의 안목의 정욕이고 아버지께로 쫓아오신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 쫓아오는 것이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 끊어진 것이다. 정이란 것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욕심도 마음의 작용입니다.
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혈육의 정, 형제 간의, 부모 간의, 부부 간의, 친구 간의. 뭔가 슬픈 거나 기쁜 것은 감정이라고 합니다. 별별 정이 있습니다. 그게 정입니다. 또 욕심이 있습니다. 별별 욕심이 많습니다.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다시 그랬으니까 뒤에까지가 다시 사람의 정욕 좇지 않고 사람의 그리스도를 죽지 않은 것은 왜 죽었느냐 사람의 정욕을 죽은 자는 살리려고 육체 고난 받으려고 했습니다. 아담 하와가 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 하와는 정 보다도 정 때문에, 아담도 정 때문에 그 때문에 인류 전부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항상 두 길인데 걸어갈 길은 한 길입니다. 구별은 돌로 하는데 선택은 하나입니다. 오직 한 길입니다. 오직을 한문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유자를 씁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람의 뜻을 좇았던 그를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다시 살아났으니까 대속을 받은 후로는 옛날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뜻, 개인에게 대한 뜻도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뜻도 있습니다. 상황마다 현실마다 뜻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연스럽게 되는 거니까 예상치 못했던 돌발적인 뜻하지 않았던 그런 평소와 다른 일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날 때도 있고 그런 일이 벌어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있습니다. 사람의 정욕이란 사람의 뜻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다시 사람의 정욕 사람의 뜻을 쫓아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찾아서 이런 일을 만나게 하셨는데 왜 이런 일을 만나게 하셨나이까. 교리로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이 절대예정과 절대주권입니다. 연결시키지 않고는 왜 찾아야하는지 모릅니다. 절대 예정인 뭔가요. 모든 것은 다 예정입니다. 개미수염이 움직이는 것까지 예정입니다. 내 머리털이 나고 빠지는 것도 예정입니다. 내 마음도 상대 마음도 예정입니다. 전부 예정입니다.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데 왜 변하지, 오락가락하지, 그게 뭡니까. 그게 바로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아침에는 웃었는데 저녁에는 슬픈 마음으로 옵니다. 아침에 다녀오겠습니다 했는데 저녁에 푹 늘어져옵니다. 씩씩하게 나간 남편이 풀이 푹 죽습니다. 그게 예정입니다. 밝게 나간 것도 예정 풀이 죽은 것도 예정.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 남편에게 어려움을 주셨구나 뜻이 뭘까. 그럴 때 주의 뜻을 참는 겁니다.
모든 일에서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건에서 다른 건 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손해보지 않고 어떻게 해야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 가정이 좋을까 그 뜻이 뭘까 주님이 다시 살려주신 목적입니다. 왜 사람이 정욕을 쫓아 죽은 인간을 대신 죽으심으로 다시 살려주심으로 그러셨느나 하나님의 뜻을 좇아, 찾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좇아서 육체에 남아있는 때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로 하여금 저희 자신을 위해하지 않고 그분을 살게 하렴이라. 그게 부활하신 목적입니다. 왜 살려주셨느냐 또 다시 선악과 먹고 죽으라고 살려주신 게 아닙니다. 인간의 정욕으로 그 인간을 선악과 따먹으라 살려주신 게 아닙니다.
죄를 저질러서 감옥간 것을 빼내놓으니까 그짓하면 자식놈이라 그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살려내는 것은 다시는 그짓하지말라고. 싸움하다가 퇴학을 당했는데 다시 복학시켜놓으면 아버지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다시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봐야합니다. 육체에 남을 때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왜 죽으셨나를 생각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 갑옷을 삼으로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은 그게 뭐냐 그 마음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뜻을 주는 그 마음 가져라, 그리고 다시는 사람의 정욕 좇지 않고 그때를 살아라. 대속의 목적이다 그 말입니다.
뜻이라는 것은 서론이고 본론이 들어가야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사람은 제일 바깥에 몸이 있습니다. 그 다음 마음이 있고 그 안에 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생활을 보면 몸이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만물을 접하고 그 몸이라는 것은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몸의 거의 대부분은 마음의 작용에 따라 움직입니다. 마음의 어떤가에 따라서 몸이 움직입니다. 마음 안에는 영이 있는데 그 영은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정과 욕심은 마음 요소지요. 그 마음이 영과 끊어져서 사람의 정이 되고 욕심이 될 때 사람의 정욕이 되는 겁니다. 거기 따라서 몸이 움직여버리면 안되는거지요. 마음이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을 뚫고 나오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몸이 중요한 것이고, 몸이 아무리 중요해도 마음따라 움직이는 겁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 되어야하느냐, 정욕에 붙들리지 않고 그 마음이 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그 뜻이 뭐냐 그것이 되어야하고 그게 될 때 갑옷이 된다. 이렇게 살라고 살려주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많은 문제가 다 생겨나는 겁니다. 정으로 가고 욕심으로 가니까, 하나님의 뜻은 찾지 않고 사람의 정, 사람의 욕심으로 되는 거기 때문에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주의 뜻이 뭐냐, 내 뜻 내 마음 내 감정 내 욕심 다 버리고 그분이 다 이렇게 하고 계시니까 예정이고 섭리니까 왜 이렇게 하셨느냐 이런 일을 하신 이유가 괴롭히는 이유가 몸이 아픈 이유가 치료가 안되는 이유가, 만사 모든 것에 그분의 예정이고 그렇게 되는 거니까 그 뜻을 찾아 준행하는 이런 사람으로 살게 할려고 그랬습니다. 깊이 좀 생각해보시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