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8일 수밤
김동민2024-09-18조회 124추천 9
2024년 9월 18일 수밤
찬송: 176장, 137장
본문: 요한1서 2장 15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말씀이 되겠고 공과는 공과 참고하시고 전체 참조합니다. 먼저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말하는데 이 세상은 물질계의 우주전부를 말합니다. 물질계라는 말은 영계가 아니라는 것이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는 겁니다. 시간의 제한을 받고 시간의 흐름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 앞으로가 살 영계 물질계로 될 나라는 시간을 초월한 공간을 초월한 신령한 세계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이 없고 공간의 제한이 없습니다. 천 년이 가도 그대로 만년이 가도 그대로 늙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는 몸으로 살아난다는 거지요.
참 좋은 많은데 이게 밑져야 본전인데 영생하는 몸으로 부활하는데 예수 믿는데 다 바치고 그러는데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만 안 믿기 때문에 양다리 걸쳐서 세상의 반 신앙의 반 신앙이 좋은 분도 신앙 90 세상 10이렇게 되는거지 정말 100이 되면 초월하고 믿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게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간다는 말입니다. 세월의 흐름 세상은 세월의 흐름에 같이 가는 게 세상이지요. 물이 흘러 내려가면 그냥 가는 게 아니고 흘려내려가는 물은 이끼가 끼기도 하면서 흘러가는 속에 작용이 있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세상 전체를 따라서 그 나라도 사회도 모든 세상의 물질들도 사람들도 흘러가는 세월 속에 변화가 되어집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려가면 마치 물이 흘러가면 옛날에 그런 동요가 있었습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가니 그런 동요가 있습니다. 그런 동요는 참 좋은데 요즘은 그런 거 안 가르치지요. 흘러 내려온 강물 강에서 보면 지나온 곳입니다. 바다로 흘러간 강물은 바다에서 보면 지나온 강입니다. 강으로 흘러간 물은 강으로 가고 바다로 흘러가면 바다로 흔적을 뿌리며 가는 것이고 흐름이라는 것은 세상의 흐름은 그런 것이 있고 세상의 흐름이란 시간의 흐름이라는 말도 됩니다. 세월의 흐름 시간의 흐름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세월의 흐름은 이런 말하자면 흘러간 흔적과 흘러간 과정과 흘러간 방향과 목적지가 있는 게 이 세상 흐름이고 그런 말이지요.
흘러 내려온 흔적과 흘려내려온 과정과 흘러내려온 방향과 목적이 있다는 거지요. 그러면 우리가 시간적으로 흘려내려온 흔적은 과거라고 하지요, 개인 인생도 한 단체도 사회도 나라도 세상 전부도 이런 흔적과 나아갈 것이 있는 것이고 이게 인생이고 세상이고 흐름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불신자간에 모두 이런 흐름으로 살아가는데 지나간 과거는 되돌아갈 수 없는 겁니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 미래로 나아갈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 믿는 사람의 생활의 시점으로 중요한 건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현재가 전부인데 현실생활이 전부인데 현재 현실에서 가장 힘쓸 것이 무엇일까. 앞에 흐름을 말씀드린 것은 믿는 사람의 현재 생활에 가장 힘쓸 것은 뭐냐, 지난 과거를 회개하는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회개하는 현재생활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사는데 왜 과거에 메여사느냐, 과거에 메여사는 것이 아니고 살아온 지난 날을 잘못된 지난 날의 생활을 돌이키면 회개 생활이 죄를 벗어난 생활이 되고 그리되면 그 생활은 앞날에 회개할 것을 줄이는 생활이 되어집니다.
현재는 죄를 안 짓게 되고 미래에 대해 회개할 거리가 없게 되는 거지요. 빚이 1억이 있습니다. 갚아나가는 생활을 계속하면 빚을지지 않으면 점점 줄어듭니다. 죄들을 짓지 않으면 점점 죄는 더 줄어듭니다. 사도 바울은 현재를 살아가며 지난 날 과거를 회개하는 건데 가면 갈수록 죄가 많아졌습니다. 죄를 지어서 많아진 것이 아니고 깨끗해지니까 눈이 밝아지니까 몰랐던 죄가 더 발견이 되어지고 회개가 더 깊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한 번 범죄함으로 회개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그러다 보니까 자기 잉태된 그때까지 파고 들어갔습니다. 사도 바울도 괴수 죄인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몇 만배 죄인이지요.
그래서 지금 앞에 서론적으로 말씀드린 것은 이 말씀을 전한 공과 제목이 세상을 사랑치 말라는 겁니다. 이 말씀을 전하려 하다보니까 내가 이 세상을 사랑치 아니했던건가. 돌아갈 수 없으니까 현재 회개하는 말씀으로 하는 것이고 현재를 살아가되 과거를 회개하는 것으로 살면 안되는 겁니다. 이 세상에나 사랑치 말아야하느니라. 지난 주일에 메이지 말아라, 붙들리지 말아라 종 되지 말아라를 중점적으로 말씀드렸는데 메이지 않아야하는데 사랑하게 되면 메이는데 어떻게 메이느냐, 강제로 메이는 게 아니고 강압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좋아서 가는 겁니다. 자기가 좋아서 메이는 게 여기 사랑하지 말라는 겁니다. 1차는 세상을 좋아하지 말아라는 뜻입니다. 좋아하게 되면 나중에 점점 끌려서 메이게 되고 붙들려 종이되다 보니까 세상을 좋아함으로 세상의 종 되는 종 되지 말아라.
삼손이 들릴라에게 처음부터 빠졌습니까. 사랑했기 때문에, 좋아하니까 미모가 좋고 애교가 좋고 좋아하다보니까 빠져들어서 메여버렸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 좋아하는 게 아닙니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라. 삼손이 세상을 사랑함으로 들릴라에게 빠져서 참혹하게 된 것처럼 참혹한 결과를 만든 것처럼 그렇게 하지 말아라. 세상을 사랑치말라 그 말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그 환경 입장 그런 것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장소, 거기에 소속하지 말아라는 뜻입니다. 속하지 말아라. 뿌리 내리지 말아라. 이 세상은 우리의 영주처가 아니고 떠나갈 것이니까.
원래 깊이 뿌리 박혀있는 걸 캐가지고 다시 심어야하니까 나무 분을 만들어가지고 천하고 흙으로 분을 떠서 심어놓는데 거기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심습니다. 그래서 대개 보면 팔 나무들은 심었다가 그 땅 속에 단단하게 뿌리 내릴 수 없는 흙으로 심어놓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곳은 우리의 영주처가 아니므로 이 세상에 뿌리내리지 말아라 소속하지 말아라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그 세상은 추석 명절이라서 고향도 가고 다 갔을텐데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그게 전부입니다. 결혼하면 부부끼리 행복하고 그러다가 죽는 게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의 전부고 그러기 때문에 뿌리는 가정에 뿌리를 내리는 겁니다. 가정에 뿌리 내려서 우리 가족 행복하게 가족을 건드리면 지키는 거지요. 일반적으로는 바람직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그게 좀 덜하고 약화많이 됐는데 미국만 해도 정치적으로 훌륭한 사람들도 가족에게 문제 생기면 정치 안해버립니다. 장관 총리직 던져버립니다. 대통령 한 번 더 할 수 있는데도 안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리 잡으려고, 청문회는 변질이 되어서 인간의 도덕성을 파헤쳐서 적처럼 만들고 그렇게 되는데 가정 보는 사람은 잘난 사람들은 던져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는데 그게 다 드러날 수도 있는데 좋은 게 뭐가 있겠습니까. 대다수는 가정에 뿌리둡니다. 세상에 뿌리두는 거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괜찮은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라 소속하지 말아라 붙들리지 말아라 뿌리내리지 말아라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공회만큼 가정의 중요성 말하는 교회도 많지 않습니다. 가정교회, 아무리 가정이 중요해도 뿌리내리지 말아라, 붙들리지 말아라. 그게 세상에 메이는 겁니다. 아무리 공부가 중요해도 학업에 메이지 말아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아라.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 전부다가 세상에 있는 것들입니다.
세상이라는 환경 처지, 그것을 이루고 있는 가족도 세상에 있는 겁니다. 아내도 남편도 자녀들도 부모들도 직장도 경제도 실력도 전부 이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바치고 있는 세상을 세상 되게 하는 그것을 사랑하지 말아라, 종 되지 말아라 말씀드린대로 사람은 이 세상을 태어나서 세상을 먹고 세상을 마시고 세상을 보고 세상을 듣고 세상 속에 사는 게 사람입니다. 우리 학생들 산에 가면 나무뿌리 얽힌 거 봐야합니다. 나무 뿌리가 얼마나 얽혀있는지, 이 세상의 인관 관계가 얽히고 사돈 팔촌 얽히고 혈연으로 얽히고 사람과 얽히고 물질과 얽히고 이 세상 수도 없이 많은 것들과 얽혀 사는 것이 사람인데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어떤 거라고요. 죽어야 떠날 수 있고 떠날 수 없는 게 세상인데 그 세상을 사랑하지는 말아라. 좋아하지 말아라.
왜 세상을 사랑하면 안되느냐.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서로 반대되는 것이고 상극입니다. 대적이 되는 것이지요. 세상과 대속의 사람은 되는 겁니다. 16절하고 이어지는건데 왜 이 세상에 있는 것과 세상사람은 반대가 되냐. 이 세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입니다. 타락한 세상은 마귀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할 지라도 믿는 사람의 세상은 주인이 뭐라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주인은 악령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은 저주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세상이던지 그런 세상을 우리에게 만들어 놓으시고 주님이시고 그런 세상을 우리는 그 세상 속에서 먹고 마시고 그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는 겁니다.
연보하는 돈은 한국 은행에서 금방 찍어낸 돈입니까. 만원짜리 현금은 방금 한국은행에서 찍어낸 그런 돈입니까. 아니면 현금 가진 현금이 시중에 돌아다닐 때 어떤 불교 믿는 사람의 절의 시주한 돈이 어쩌다가 가서 사과를 사먹고 그 사과 장수가 중한테 사과를 팔고 다른 데에 쓰고 믿는 사람이 그걸로 연보를 했습니다. 연보하는 그 만원짜리가 절한테 깡패한테 도둑한테 갔다가 왔습니다. 그러면 그거 연보하면 됩니까 안됩니까. 연보는 현금으로 하시지요. 중한테 도둑한테 사기꾼 장사꾼 돌아와서 나한테 왔습니다. 그 돈을 연보했는데 압니까 모릅니까. 돌아온거지요. 이런 세상입니다. 너희들이 시장 가서 갈 때 묻지 말고 사오라, 묻지 말고 먹어라고 했습니다. 명절입니다. 이웃집에서 송편을 가져왔습니다. 묻지 말고 먹어라고 했습니다. 제사 지냈을 것이다 확정을 받으면 안 먹으면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이 제사지냈는데 모르면 그냥 먹는 겁니다. 이런 것이 세상입니다. 이런 것이 도둑놈 거짓말하는 자 이런 걸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밖에 나가서 세상 사람들을 사귀라는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귀지 말라는 말은 교회 안에 그런 자 있으면 사귀지 말라는 겁니다. 바깥에 다 도둑놈들인데 사기꾼들인데, 다 피해서 세상 살 수 있습니까. 우리 사는 세상이 그런 세상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을 드리냐 왜 아버지 사랑이 그 속에 가지 않느냐. 이 세상 자체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이고 안목의 정욕이고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일찌라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겁니다. 그래서 명절을 여기서 표현할 때 뭐라고 합니까. 이 세상 명절을 쓰는 용어가 있습니다. 어떻게 쓰라고 하나요. 하나님의 신앙에 유익되게 쓰라는 겁니다.
세상 자체가 죄악세상입니다. 그런 세상 속에 예배당을 지어라 여기는 천국입니까. 이곳 예배당 지은 집 주인이 침례교회 집사님이라서 예배당처럼 지어서 쓰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또 뭐가 있었는지 모르지요. 문제는 그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성도가 쓸 때가 중요한 겁니다. 그 과정이 뭐냐 세상의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이고 안목의 정욕이고 자랑이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겁니다.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처럼 육신의 정욕으로 쓰면 안목의 정욕으로 쓰면 그러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되고 그러면 그 속에 없는 겁니다. 아무리 잘 써도 깨끗하게 써도 가장은 모르겠고 무신론자 보다는 유신론자가 많고 중이 깨끗하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를 잘못믿는 그런 사람보다 중들이 훨씬 더 깨끗한 종들이 많을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천사입니까. 다 깨끗합니까. 성경에도 그런 사람들 얼마나 많은데 진짜 깨끗한 중들은 그 중 속에 아버지 사랑이 있는 겁니다. 아버지 사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는거지요. 아버지 사랑은 믿는 사람에게만 있는 겁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으로 쓰는데 너희들은 그러지 말아라. 정욕이라 그럴 때 정욕은 정과 욕심인데 몸입니까 마음입니까. 마음이지요. 이 세상 어떤 것이든 마음 하나님과 끊어지는 그 마음, 안목의 정욕 자기 눈에 만족시키고 그래서 세 가지 말씀이었는데 세상 사람들의 모든 인생이 다 들었고 다 들어갑니다. 모든 인생의 생활은 육신의 생활입니다. 안목의 정욕입니다. 이 세상의 자랑입니다. 대통령을 하든지 장관을 하든지 명예를 가지던 다 여기 들었습니다. 이게 인생 생애입니다. 너희들은 그렇게 하지 말아라. 아버지가 아니고 이 세상이다. 결과적으로 17절 지나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거하느니라.
그래서 공과를 연결시켜 놓으면 이 말씀은 아이들아, 아비들아 청년들아 어려서 출발하고 자녀로 출발해서 아비처럼 신앙이 되고 세상이 살아가는 신앙은 이 세상 살아갈 때는 힘있게 세상을 상대하라. 청년의 생활입니다. 10대 후반부터 요즘 좀 젊은 60세까지를 청장년이라고 하면 60세부터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30분 즈음 되면 슬슬 하기 시작합니다. 땡 하면 그냥 가는 거지요. 60이 넘어가면 황혼입니다. 인생 시계가 있잖습니까. 해가 7시에 넘어간다치고 넉넉하게 간다면 60이 되지 않았을까. 갈 준비를 하는 거지요. 갈 준비하는 때가 된 거지요. 10대 후반부터 60까지 이 세상을 왕성하게 사는 겁니다. 많은 세상을 오랜 세월동안 하는 거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라. 좋아하지 말아라. 누구처럼 됩니까. 삼손처럼 된다. 다윗처럼 된다. 솔로몬처럼 된다. 왜 그리 된다고요. 이 세상을 사랑하면 거기 빠지면 현재를 세상 사랑한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미래는 희망이 없고 빠져살면 줄어들게 되는 겁니다.
본문을 기억하시면서 신앙을 돌아보십시다.
기도하시면서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76장, 137장
본문: 요한1서 2장 15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말씀이 되겠고 공과는 공과 참고하시고 전체 참조합니다. 먼저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말하는데 이 세상은 물질계의 우주전부를 말합니다. 물질계라는 말은 영계가 아니라는 것이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는 겁니다. 시간의 제한을 받고 시간의 흐름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 앞으로가 살 영계 물질계로 될 나라는 시간을 초월한 공간을 초월한 신령한 세계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이 없고 공간의 제한이 없습니다. 천 년이 가도 그대로 만년이 가도 그대로 늙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는 몸으로 살아난다는 거지요.
참 좋은 많은데 이게 밑져야 본전인데 영생하는 몸으로 부활하는데 예수 믿는데 다 바치고 그러는데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만 안 믿기 때문에 양다리 걸쳐서 세상의 반 신앙의 반 신앙이 좋은 분도 신앙 90 세상 10이렇게 되는거지 정말 100이 되면 초월하고 믿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게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간다는 말입니다. 세월의 흐름 세상은 세월의 흐름에 같이 가는 게 세상이지요. 물이 흘러 내려가면 그냥 가는 게 아니고 흘려내려가는 물은 이끼가 끼기도 하면서 흘러가는 속에 작용이 있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세상 전체를 따라서 그 나라도 사회도 모든 세상의 물질들도 사람들도 흘러가는 세월 속에 변화가 되어집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려가면 마치 물이 흘러가면 옛날에 그런 동요가 있었습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가니 그런 동요가 있습니다. 그런 동요는 참 좋은데 요즘은 그런 거 안 가르치지요. 흘러 내려온 강물 강에서 보면 지나온 곳입니다. 바다로 흘러간 강물은 바다에서 보면 지나온 강입니다. 강으로 흘러간 물은 강으로 가고 바다로 흘러가면 바다로 흔적을 뿌리며 가는 것이고 흐름이라는 것은 세상의 흐름은 그런 것이 있고 세상의 흐름이란 시간의 흐름이라는 말도 됩니다. 세월의 흐름 시간의 흐름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세월의 흐름은 이런 말하자면 흘러간 흔적과 흘러간 과정과 흘러간 방향과 목적지가 있는 게 이 세상 흐름이고 그런 말이지요.
흘러 내려온 흔적과 흘려내려온 과정과 흘러내려온 방향과 목적이 있다는 거지요. 그러면 우리가 시간적으로 흘려내려온 흔적은 과거라고 하지요, 개인 인생도 한 단체도 사회도 나라도 세상 전부도 이런 흔적과 나아갈 것이 있는 것이고 이게 인생이고 세상이고 흐름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불신자간에 모두 이런 흐름으로 살아가는데 지나간 과거는 되돌아갈 수 없는 겁니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 미래로 나아갈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 믿는 사람의 생활의 시점으로 중요한 건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현재가 전부인데 현실생활이 전부인데 현재 현실에서 가장 힘쓸 것이 무엇일까. 앞에 흐름을 말씀드린 것은 믿는 사람의 현재 생활에 가장 힘쓸 것은 뭐냐, 지난 과거를 회개하는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회개하는 현재생활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사는데 왜 과거에 메여사느냐, 과거에 메여사는 것이 아니고 살아온 지난 날을 잘못된 지난 날의 생활을 돌이키면 회개 생활이 죄를 벗어난 생활이 되고 그리되면 그 생활은 앞날에 회개할 것을 줄이는 생활이 되어집니다.
현재는 죄를 안 짓게 되고 미래에 대해 회개할 거리가 없게 되는 거지요. 빚이 1억이 있습니다. 갚아나가는 생활을 계속하면 빚을지지 않으면 점점 줄어듭니다. 죄들을 짓지 않으면 점점 죄는 더 줄어듭니다. 사도 바울은 현재를 살아가며 지난 날 과거를 회개하는 건데 가면 갈수록 죄가 많아졌습니다. 죄를 지어서 많아진 것이 아니고 깨끗해지니까 눈이 밝아지니까 몰랐던 죄가 더 발견이 되어지고 회개가 더 깊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한 번 범죄함으로 회개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그러다 보니까 자기 잉태된 그때까지 파고 들어갔습니다. 사도 바울도 괴수 죄인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몇 만배 죄인이지요.
그래서 지금 앞에 서론적으로 말씀드린 것은 이 말씀을 전한 공과 제목이 세상을 사랑치 말라는 겁니다. 이 말씀을 전하려 하다보니까 내가 이 세상을 사랑치 아니했던건가. 돌아갈 수 없으니까 현재 회개하는 말씀으로 하는 것이고 현재를 살아가되 과거를 회개하는 것으로 살면 안되는 겁니다. 이 세상에나 사랑치 말아야하느니라. 지난 주일에 메이지 말아라, 붙들리지 말아라 종 되지 말아라를 중점적으로 말씀드렸는데 메이지 않아야하는데 사랑하게 되면 메이는데 어떻게 메이느냐, 강제로 메이는 게 아니고 강압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좋아서 가는 겁니다. 자기가 좋아서 메이는 게 여기 사랑하지 말라는 겁니다. 1차는 세상을 좋아하지 말아라는 뜻입니다. 좋아하게 되면 나중에 점점 끌려서 메이게 되고 붙들려 종이되다 보니까 세상을 좋아함으로 세상의 종 되는 종 되지 말아라.
삼손이 들릴라에게 처음부터 빠졌습니까. 사랑했기 때문에, 좋아하니까 미모가 좋고 애교가 좋고 좋아하다보니까 빠져들어서 메여버렸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 좋아하는 게 아닙니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라. 삼손이 세상을 사랑함으로 들릴라에게 빠져서 참혹하게 된 것처럼 참혹한 결과를 만든 것처럼 그렇게 하지 말아라. 세상을 사랑치말라 그 말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그 환경 입장 그런 것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장소, 거기에 소속하지 말아라는 뜻입니다. 속하지 말아라. 뿌리 내리지 말아라. 이 세상은 우리의 영주처가 아니고 떠나갈 것이니까.
원래 깊이 뿌리 박혀있는 걸 캐가지고 다시 심어야하니까 나무 분을 만들어가지고 천하고 흙으로 분을 떠서 심어놓는데 거기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심습니다. 그래서 대개 보면 팔 나무들은 심었다가 그 땅 속에 단단하게 뿌리 내릴 수 없는 흙으로 심어놓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곳은 우리의 영주처가 아니므로 이 세상에 뿌리내리지 말아라 소속하지 말아라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그 세상은 추석 명절이라서 고향도 가고 다 갔을텐데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그게 전부입니다. 결혼하면 부부끼리 행복하고 그러다가 죽는 게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의 전부고 그러기 때문에 뿌리는 가정에 뿌리를 내리는 겁니다. 가정에 뿌리 내려서 우리 가족 행복하게 가족을 건드리면 지키는 거지요. 일반적으로는 바람직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그게 좀 덜하고 약화많이 됐는데 미국만 해도 정치적으로 훌륭한 사람들도 가족에게 문제 생기면 정치 안해버립니다. 장관 총리직 던져버립니다. 대통령 한 번 더 할 수 있는데도 안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리 잡으려고, 청문회는 변질이 되어서 인간의 도덕성을 파헤쳐서 적처럼 만들고 그렇게 되는데 가정 보는 사람은 잘난 사람들은 던져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는데 그게 다 드러날 수도 있는데 좋은 게 뭐가 있겠습니까. 대다수는 가정에 뿌리둡니다. 세상에 뿌리두는 거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괜찮은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라 소속하지 말아라 붙들리지 말아라 뿌리내리지 말아라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공회만큼 가정의 중요성 말하는 교회도 많지 않습니다. 가정교회, 아무리 가정이 중요해도 뿌리내리지 말아라, 붙들리지 말아라. 그게 세상에 메이는 겁니다. 아무리 공부가 중요해도 학업에 메이지 말아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아라.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 전부다가 세상에 있는 것들입니다.
세상이라는 환경 처지, 그것을 이루고 있는 가족도 세상에 있는 겁니다. 아내도 남편도 자녀들도 부모들도 직장도 경제도 실력도 전부 이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바치고 있는 세상을 세상 되게 하는 그것을 사랑하지 말아라, 종 되지 말아라 말씀드린대로 사람은 이 세상을 태어나서 세상을 먹고 세상을 마시고 세상을 보고 세상을 듣고 세상 속에 사는 게 사람입니다. 우리 학생들 산에 가면 나무뿌리 얽힌 거 봐야합니다. 나무 뿌리가 얼마나 얽혀있는지, 이 세상의 인관 관계가 얽히고 사돈 팔촌 얽히고 혈연으로 얽히고 사람과 얽히고 물질과 얽히고 이 세상 수도 없이 많은 것들과 얽혀 사는 것이 사람인데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어떤 거라고요. 죽어야 떠날 수 있고 떠날 수 없는 게 세상인데 그 세상을 사랑하지는 말아라. 좋아하지 말아라.
왜 세상을 사랑하면 안되느냐.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서로 반대되는 것이고 상극입니다. 대적이 되는 것이지요. 세상과 대속의 사람은 되는 겁니다. 16절하고 이어지는건데 왜 이 세상에 있는 것과 세상사람은 반대가 되냐. 이 세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입니다. 타락한 세상은 마귀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할 지라도 믿는 사람의 세상은 주인이 뭐라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주인은 악령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은 저주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세상이던지 그런 세상을 우리에게 만들어 놓으시고 주님이시고 그런 세상을 우리는 그 세상 속에서 먹고 마시고 그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는 겁니다.
연보하는 돈은 한국 은행에서 금방 찍어낸 돈입니까. 만원짜리 현금은 방금 한국은행에서 찍어낸 그런 돈입니까. 아니면 현금 가진 현금이 시중에 돌아다닐 때 어떤 불교 믿는 사람의 절의 시주한 돈이 어쩌다가 가서 사과를 사먹고 그 사과 장수가 중한테 사과를 팔고 다른 데에 쓰고 믿는 사람이 그걸로 연보를 했습니다. 연보하는 그 만원짜리가 절한테 깡패한테 도둑한테 갔다가 왔습니다. 그러면 그거 연보하면 됩니까 안됩니까. 연보는 현금으로 하시지요. 중한테 도둑한테 사기꾼 장사꾼 돌아와서 나한테 왔습니다. 그 돈을 연보했는데 압니까 모릅니까. 돌아온거지요. 이런 세상입니다. 너희들이 시장 가서 갈 때 묻지 말고 사오라, 묻지 말고 먹어라고 했습니다. 명절입니다. 이웃집에서 송편을 가져왔습니다. 묻지 말고 먹어라고 했습니다. 제사 지냈을 것이다 확정을 받으면 안 먹으면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이 제사지냈는데 모르면 그냥 먹는 겁니다. 이런 것이 세상입니다. 이런 것이 도둑놈 거짓말하는 자 이런 걸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밖에 나가서 세상 사람들을 사귀라는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귀지 말라는 말은 교회 안에 그런 자 있으면 사귀지 말라는 겁니다. 바깥에 다 도둑놈들인데 사기꾼들인데, 다 피해서 세상 살 수 있습니까. 우리 사는 세상이 그런 세상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을 드리냐 왜 아버지 사랑이 그 속에 가지 않느냐. 이 세상 자체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이고 안목의 정욕이고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일찌라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겁니다. 그래서 명절을 여기서 표현할 때 뭐라고 합니까. 이 세상 명절을 쓰는 용어가 있습니다. 어떻게 쓰라고 하나요. 하나님의 신앙에 유익되게 쓰라는 겁니다.
세상 자체가 죄악세상입니다. 그런 세상 속에 예배당을 지어라 여기는 천국입니까. 이곳 예배당 지은 집 주인이 침례교회 집사님이라서 예배당처럼 지어서 쓰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또 뭐가 있었는지 모르지요. 문제는 그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성도가 쓸 때가 중요한 겁니다. 그 과정이 뭐냐 세상의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이고 안목의 정욕이고 자랑이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겁니다.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처럼 육신의 정욕으로 쓰면 안목의 정욕으로 쓰면 그러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되고 그러면 그 속에 없는 겁니다. 아무리 잘 써도 깨끗하게 써도 가장은 모르겠고 무신론자 보다는 유신론자가 많고 중이 깨끗하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를 잘못믿는 그런 사람보다 중들이 훨씬 더 깨끗한 종들이 많을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천사입니까. 다 깨끗합니까. 성경에도 그런 사람들 얼마나 많은데 진짜 깨끗한 중들은 그 중 속에 아버지 사랑이 있는 겁니다. 아버지 사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는거지요. 아버지 사랑은 믿는 사람에게만 있는 겁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으로 쓰는데 너희들은 그러지 말아라. 정욕이라 그럴 때 정욕은 정과 욕심인데 몸입니까 마음입니까. 마음이지요. 이 세상 어떤 것이든 마음 하나님과 끊어지는 그 마음, 안목의 정욕 자기 눈에 만족시키고 그래서 세 가지 말씀이었는데 세상 사람들의 모든 인생이 다 들었고 다 들어갑니다. 모든 인생의 생활은 육신의 생활입니다. 안목의 정욕입니다. 이 세상의 자랑입니다. 대통령을 하든지 장관을 하든지 명예를 가지던 다 여기 들었습니다. 이게 인생 생애입니다. 너희들은 그렇게 하지 말아라. 아버지가 아니고 이 세상이다. 결과적으로 17절 지나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거하느니라.
그래서 공과를 연결시켜 놓으면 이 말씀은 아이들아, 아비들아 청년들아 어려서 출발하고 자녀로 출발해서 아비처럼 신앙이 되고 세상이 살아가는 신앙은 이 세상 살아갈 때는 힘있게 세상을 상대하라. 청년의 생활입니다. 10대 후반부터 요즘 좀 젊은 60세까지를 청장년이라고 하면 60세부터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30분 즈음 되면 슬슬 하기 시작합니다. 땡 하면 그냥 가는 거지요. 60이 넘어가면 황혼입니다. 인생 시계가 있잖습니까. 해가 7시에 넘어간다치고 넉넉하게 간다면 60이 되지 않았을까. 갈 준비를 하는 거지요. 갈 준비하는 때가 된 거지요. 10대 후반부터 60까지 이 세상을 왕성하게 사는 겁니다. 많은 세상을 오랜 세월동안 하는 거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라. 좋아하지 말아라. 누구처럼 됩니까. 삼손처럼 된다. 다윗처럼 된다. 솔로몬처럼 된다. 왜 그리 된다고요. 이 세상을 사랑하면 거기 빠지면 현재를 세상 사랑한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미래는 희망이 없고 빠져살면 줄어들게 되는 겁니다.
본문을 기억하시면서 신앙을 돌아보십시다.
기도하시면서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