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2일 금밤
김동민2024-07-12조회 130추천 16
2024년 7월 12일 금밤
찬송: 122장, 159장
본문: 시편 119편 10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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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제목은 말씀에서 찾아서 말하자면 공과를 만든 분이 붙인겁니다. 그러나 제목은 사람이 붙였으나 성경 말씀에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제목이 성경말씀이고 제목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반드시 그대로 되어지는 걸 절대성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그리 되어집니다. 사람의 말은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말해도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미국나라 대통령이 말해도 안되는 것 많습니다. 사람의 말은 그 말대로 될 수도 있고 안 될수도 있는 겁니다. 누구의 말이라도 우리가 듣고 들을 때 참고만 하는 겁니다. 사람의 말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으면 사람의 말이 아니고 사람의 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도 당나귀를 통해서도 지팡이를 붙들고 역사하시는 분이고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누가 말하든지 그 사람의 말이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에 맞으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길이오, 말씀이 답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답이요 그게 길이다. 그게 길이고 답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또 다시 반복이 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셨습니다. 세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세 글자로 출애굽이라고 그럽니다. 왜 애굽에서 구출해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을 잘 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공연히 해서 난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보내서 애굽 바로 왕을 들쑤셔서 말 안들으니까 재앙들 보내서 애굽나라를 박살내가지고 나오도록 만들었습니다. 왜 가만히 애굽의 이스라엘을 들쑤셔서 나오게 하셨습니까. 목적이 뭐지요, 가나안에 들이시려고.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기득권이 있고 주저 앉아 있으면 복지 부동이라고 합니다. 땅바닥에 배를 까고 들어앉아서 일어나지 않는 걸 복지 부동이라고 합니다. 살아가다가 적응되고 적응되면 움직이기를 실어합니다.
그곳은 너희들이 살 곳이 있다. 약속한 곳이 있다.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을 하시고 가나안 땅을 인도해내셨습니다. 가나안에 가기 전에 50일만에 오순절 시내산에 모세를 불러서 십계명과 법을 주셨습니다. 그 법은 애굽, 앗수르, 바벨론에 주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신 게 하나님의 율법이고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순절의 십계명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정체성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하지 않아도 백성인데 계명을 주심으로 내 백성이므로 이대로를 살아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계명 속에 다 들어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모든 게 다 들어있는데 말씀이 길이고 말씀이 답이다. 말씀이 무엇입니까. 말씀이 뭔가요. 성경말씀입니다. 성경 속에 말씀이 들었고 말씀 속에 진리가 들었고 영감이 들었고 변하지 않는 교리기 때문에 외워두면 됩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영감을 모시고 있는 말씀, 말씀이 뭐냐,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버지 말씀 어머니 말씀 선생님 말씀 이걸 일반으로 하면 말입니다. 말을 한문글자로 하면요 말을 한문글자로 하면 언어라고 그럽니다. 언어라는 것은 어디에 쓰는겁니까. 말이라는 언어라는 것은 뭐하는거지요. 의사 소통에 수단이다라고 합니다. 의사가 뭡니까. 어감에 따라 뜻이 달라집니다. 병고치는 사람이 의사라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라고 하던가요. 뜻과 생각을 주고받는 그 말입니다. 서로의 뜻과 서로의 생각과 뜻 자기의 생각을 서로 주고 받는 그래서 대화하는 이게 언어입니다. 의사 소통의 수단.
이 말 못하는 언어장아재들은 말을 못합니다. 수화로 이야기합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 말합니다. 미국 사람은 미국 말합니다. 중국 사람은 중국말로 합니다. 송아지는 소리냅니다. 음메하는 그 속에 송아지의 수준의 의사가 들어있습니다. 또 무슨 소리 냅니다. 강아지의 의사가 들어있습니다. 새는 짹짹합니다. 거기 새의 의사가 있습니다. 존재마다 식물도 식물들끼리 통하는 언어가 있을겁니다. 개미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고 만들 때 사람을 기계라든지 이런 걸로 만들지 않고 생물로 만드시고 인격자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의사소통을 해야하는데 하나님의 생각을 전달해야겠고 받으셔야 하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의 높으신 하나님께서 대화하시려고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주신 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더불어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과, 저는 영어를 몰라서 미국사람과 대화를 못하고 일본말을 못해서 대화 못하고 중국말 못해서 전도를 못했습니다. 언어를 모르니까 대화가 안되는 겁니다. 요즘은 세대차이가 나서 아이들 언어를 못 알아듣는답니다. 말씀이 모르면 대화를 못합니다. 이걸 그냥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걸 뭐라고 합니까. 기도를 하나님과 대화라고 합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사람들을 드러내려고 하지 말아라, 했던 말 또 하고 붙이고 붙이고 그러지 마라. 기도는 반드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데까지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가 아닙니다. 자기 주관대로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여기 그런 분들 더러 계십니다. 사람들 만나보면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대화하는데 다른 사람 말은 안 듣습니다. 내가 말하면 상대방 말도 듣고 듣는다 그 말은 듣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게 쌍방이 대화가 되는 건데 자기 말만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오해를 만들고 대화할 때는 사람 사는 사이에도 모든 사람 간에 대화가 통하면 해결 안되는 게 없습니다. 대화가 참 어려워집니다. 대화라는 건 주고 받는 게 대화입니다. 한쪽 말만 쏟아내는 건 대화가 아닙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자기 말만 쏟아내면 대화가 안되는 겁니다. 내가 말하면 하나님께서 뭐라시는가 그걸 듣고 대화하고 그런 겁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습니까. 하나님께서도 너는 너 말해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대화라는 것은 네가 말하면 말하는 것. 그래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대화가 되어야하는데 자기 말만 쏟아내면 기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하는데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말씀 모르고 찬송만 많이 하는 사람도 감정주의로 빠지기 쉽습니다. 기도든 찬송이든 요즘 교회들 찬송가가 탈선이 되고 우리 주변에도 자주 그래서 드럼을 두드리면서 괴성을 지르니까 올라옵니다. 무슨 놈의 찬송가를 괴성을 질러댑니까. 하나님은 의지로운 하나님입니다. 그게 전부 신명풀이입니다. 왜 그런데 안 그런 교회가 있습니까. 교회바다 대개 다 그런데 왜 그렇습니까. 왜 교회들이 찬송가 그렇게 세상을 따라하고 가사도 세상 따라가고 반주하는 악기도 따라가고 교회가 왜 세상을 따라갑니까. 왜 찬송가 대신 괴성같은 노래 왜 질러댑니까. 찬송가는 제 2의 성경이라 그런 겁니다. 찬송가 속에 말씀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은 빼버리고 곡만 가지고 말씀은 인간의 감성적인 그런 것만 해서 껍데기 감성적인 것만 했으니까 지금같은 꼴이 되고 마는 거지요. 말씀 없는 기도는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놀음 괴성 질러대는 곳입니다. 기도든 찬송이든 말씀이 들어가야합니다.
말씀은 뭐가 될 수 있습니까. 의사소통의 수단이 말씀입니다. 사람과 대화하시려고 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담아서 생각을 담아서 내 뜻은 이렇다 내 소원은 이렇다 내 생각은 이렇다. 서로 주고받는 게 대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뜻을 알고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원하시는 바를 압니다. 말씀을 미리 우리에게 주셔놨습니다. 미리 주신 그 말씀으로 오늘을 살아갈 때 현재를 살아갈 때 현실을 살아갈 때 말씀을 찾아서 현실에 적용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전지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평생의 모든 생애 난제를 만나도 말씀 속에 전부 길을 달아놓고 찾아놨기 때문에 말씀을 찾아보면 말씀 속에 길이 있고 말씀 속에 답이 있고 성경에 써져 있지 않은 것은 양심을 통해 알려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이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하나님이 원하는대로 살지 못하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살지라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대로 살려면 말씀을 알아야하고 그런 겁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 통해서 십계명을 주셨고 대속의 공로를 인하여 영감의 은혜를 주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화를 통해서 길러가시는 그런 방법입니다. 이런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살펴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십니다. 등불과 빛이 되는 말씀, 길이 되는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어디를 살아가든 장소를 막론하고 형평을 막론하고 모든 상황에서 그런 길이 있고 답이 있다고 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그 현실 속에 말씀이 들어있고 답이 있다. 말씀과 길이 되는 말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슬플 때도 괴로울 때도 말씀은 빛이 되고 길이 되는 말씀입니ᅟᅡᆮ.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말씀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게 말씀입니다. 나를 고치고 나를 참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말씀입니다. 조금 더 말하면 잘못된 것이 고쳐지고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말씀으로만 되지 말씀 떠나서 고쳐지는 수 없고 사람이 변화되는 수가 없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깨끗케하리이까. 말씀만이 사람을 고치고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말씀은 구원이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고난에서 심신이 피곤합니다. 가라앉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거기서 벗어나서 새 힘을 얻어서 소성케되는 것은 말씀으로만 되는 겁니다. 그게 진짜베기입니다. 몸이 피곤할 때 임시로 먹는 그런 걸 안 좋은 약을 먹으면 잠이 깨고 생기가 도는데 중독이 되면 사람을 잡아버립니다. 약을 쓸 때는 조심을 해야하는 겁니다.
몸에 병이 들면 우선적으로 고통을 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더 깊이 들어가면 계속되면 나중에 병은 더 심해집니다. 방에 잠이 안올 때 고통스러울 때 필요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까지 평생 살아오면서 임의로 수면제 먹어본적은 한 두 번 있을 거 같습니다. 수면제 저는 일부러 안 먹습니다. 그거 계속 중독이 됩니다. 내성이 생깁니다. 하나 먹으면 잠 오다가 나중에 두 개 먹어야하고. 내성 생기는 그런 약은 함부로 먹는 거 아닙니다. 내성, 항생제도 계속 쓰면 안 씁니다. 암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항암제 처음에는 듣습니다. 나중에는 암이 그 약을 이겨내버립니다. 그래서 암투병은 체력싸움입니다. 그래서 잠이 안 오시면 차라리 이런 것이 되어서 성경 읽고 앉았으면 저절로 됩니다. 성경의 다른 이름이 뭔가요. 모르시나요. 수면제입니다. 잠 오는 겁니다. 그 좋은 방법 두고 뭘 약을 쓰십니까.
근본 치료는 고난 당할 때도 말씀을 가지고 해야 해결이 됩니다. 말씀을 가지고 알든지 모르든지 믿든지 안 믿든지 그래서 원칙이라는 게 중요한 겁니다. 그게 기본입니다. 말씀으로 모든 걸 해결한 것이 기본입니다. 말씀을 찾아서 들어가야합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은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말씀을 소승케하옵소서.
네 번째 말씀은 낙헌제를 받으신 것입니다. 말씀 속에 범사의 감사가 들어있습니다. 말씀으로 들어가보면 찬송이 나옵니다. 백 목사님은 마지막 말씀은 유언입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합소서. 그 감사 기쁨이라는 것은 좋을 때 기쁠 때 평안할 때 말하는 거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감사하라. 말씀을 가지고 찾아가보면 원리가 있고 근거가 있습니다. 범사의 감사는 근거를 주는 게 말씀입니다. 나의 생명이 항상 있사오나 믿는 사람들의 생명은 육의 생명도 있고 신앙의 생명도 있습니다. 사람은 약하고 말세지말 험한 세상이라서 육의 생명도 위험하니까 조심해야하고 신앙의 생활은 늘 위기에 있습니다. 아차하면 하나님과 끊어져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위험한 지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진짜 악인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중심의 내가 차면 나를 넘어뜨리는 겁니다. 올무를 놨사오나 떠나지 아니하셨나이다. 말씀을 모시고 살면 어떤 유혹에서도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미혹에서 벗어나야하는 말씀입니다.
일곱 번째 말씀이란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살았사오니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기업이 되는 게 말씀이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복 영원한 기쁨 그게 말씀이다. 말씀이 이 말씀이다. 본문에 말씀이 길이고 말씀이 답이다. 이걸 실제로 기억을 하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어고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먹어야 배가 부른겁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아무 효력이 없는 겁니다. 말씀이 길이고 답이니까 말씀 속에 답을 찾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22장, 159장
본문: 시편 119편 10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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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제목은 말씀에서 찾아서 말하자면 공과를 만든 분이 붙인겁니다. 그러나 제목은 사람이 붙였으나 성경 말씀에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제목이 성경말씀이고 제목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반드시 그대로 되어지는 걸 절대성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그리 되어집니다. 사람의 말은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말해도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미국나라 대통령이 말해도 안되는 것 많습니다. 사람의 말은 그 말대로 될 수도 있고 안 될수도 있는 겁니다. 누구의 말이라도 우리가 듣고 들을 때 참고만 하는 겁니다. 사람의 말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으면 사람의 말이 아니고 사람의 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도 당나귀를 통해서도 지팡이를 붙들고 역사하시는 분이고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누가 말하든지 그 사람의 말이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에 맞으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길이오, 말씀이 답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답이요 그게 길이다. 그게 길이고 답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또 다시 반복이 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셨습니다. 세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세 글자로 출애굽이라고 그럽니다. 왜 애굽에서 구출해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을 잘 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공연히 해서 난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보내서 애굽 바로 왕을 들쑤셔서 말 안들으니까 재앙들 보내서 애굽나라를 박살내가지고 나오도록 만들었습니다. 왜 가만히 애굽의 이스라엘을 들쑤셔서 나오게 하셨습니까. 목적이 뭐지요, 가나안에 들이시려고.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기득권이 있고 주저 앉아 있으면 복지 부동이라고 합니다. 땅바닥에 배를 까고 들어앉아서 일어나지 않는 걸 복지 부동이라고 합니다. 살아가다가 적응되고 적응되면 움직이기를 실어합니다.
그곳은 너희들이 살 곳이 있다. 약속한 곳이 있다.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을 하시고 가나안 땅을 인도해내셨습니다. 가나안에 가기 전에 50일만에 오순절 시내산에 모세를 불러서 십계명과 법을 주셨습니다. 그 법은 애굽, 앗수르, 바벨론에 주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신 게 하나님의 율법이고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순절의 십계명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정체성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하지 않아도 백성인데 계명을 주심으로 내 백성이므로 이대로를 살아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계명 속에 다 들어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모든 게 다 들어있는데 말씀이 길이고 말씀이 답이다. 말씀이 무엇입니까. 말씀이 뭔가요. 성경말씀입니다. 성경 속에 말씀이 들었고 말씀 속에 진리가 들었고 영감이 들었고 변하지 않는 교리기 때문에 외워두면 됩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영감을 모시고 있는 말씀, 말씀이 뭐냐,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버지 말씀 어머니 말씀 선생님 말씀 이걸 일반으로 하면 말입니다. 말을 한문글자로 하면요 말을 한문글자로 하면 언어라고 그럽니다. 언어라는 것은 어디에 쓰는겁니까. 말이라는 언어라는 것은 뭐하는거지요. 의사 소통에 수단이다라고 합니다. 의사가 뭡니까. 어감에 따라 뜻이 달라집니다. 병고치는 사람이 의사라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라고 하던가요. 뜻과 생각을 주고받는 그 말입니다. 서로의 뜻과 서로의 생각과 뜻 자기의 생각을 서로 주고 받는 그래서 대화하는 이게 언어입니다. 의사 소통의 수단.
이 말 못하는 언어장아재들은 말을 못합니다. 수화로 이야기합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 말합니다. 미국 사람은 미국 말합니다. 중국 사람은 중국말로 합니다. 송아지는 소리냅니다. 음메하는 그 속에 송아지의 수준의 의사가 들어있습니다. 또 무슨 소리 냅니다. 강아지의 의사가 들어있습니다. 새는 짹짹합니다. 거기 새의 의사가 있습니다. 존재마다 식물도 식물들끼리 통하는 언어가 있을겁니다. 개미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고 만들 때 사람을 기계라든지 이런 걸로 만들지 않고 생물로 만드시고 인격자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의사소통을 해야하는데 하나님의 생각을 전달해야겠고 받으셔야 하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의 높으신 하나님께서 대화하시려고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주신 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더불어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과, 저는 영어를 몰라서 미국사람과 대화를 못하고 일본말을 못해서 대화 못하고 중국말 못해서 전도를 못했습니다. 언어를 모르니까 대화가 안되는 겁니다. 요즘은 세대차이가 나서 아이들 언어를 못 알아듣는답니다. 말씀이 모르면 대화를 못합니다. 이걸 그냥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걸 뭐라고 합니까. 기도를 하나님과 대화라고 합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사람들을 드러내려고 하지 말아라, 했던 말 또 하고 붙이고 붙이고 그러지 마라. 기도는 반드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데까지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가 아닙니다. 자기 주관대로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여기 그런 분들 더러 계십니다. 사람들 만나보면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대화하는데 다른 사람 말은 안 듣습니다. 내가 말하면 상대방 말도 듣고 듣는다 그 말은 듣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게 쌍방이 대화가 되는 건데 자기 말만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오해를 만들고 대화할 때는 사람 사는 사이에도 모든 사람 간에 대화가 통하면 해결 안되는 게 없습니다. 대화가 참 어려워집니다. 대화라는 건 주고 받는 게 대화입니다. 한쪽 말만 쏟아내는 건 대화가 아닙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자기 말만 쏟아내면 대화가 안되는 겁니다. 내가 말하면 하나님께서 뭐라시는가 그걸 듣고 대화하고 그런 겁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습니까. 하나님께서도 너는 너 말해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대화라는 것은 네가 말하면 말하는 것. 그래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대화가 되어야하는데 자기 말만 쏟아내면 기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하는데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말씀 모르고 찬송만 많이 하는 사람도 감정주의로 빠지기 쉽습니다. 기도든 찬송이든 요즘 교회들 찬송가가 탈선이 되고 우리 주변에도 자주 그래서 드럼을 두드리면서 괴성을 지르니까 올라옵니다. 무슨 놈의 찬송가를 괴성을 질러댑니까. 하나님은 의지로운 하나님입니다. 그게 전부 신명풀이입니다. 왜 그런데 안 그런 교회가 있습니까. 교회바다 대개 다 그런데 왜 그렇습니까. 왜 교회들이 찬송가 그렇게 세상을 따라하고 가사도 세상 따라가고 반주하는 악기도 따라가고 교회가 왜 세상을 따라갑니까. 왜 찬송가 대신 괴성같은 노래 왜 질러댑니까. 찬송가는 제 2의 성경이라 그런 겁니다. 찬송가 속에 말씀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은 빼버리고 곡만 가지고 말씀은 인간의 감성적인 그런 것만 해서 껍데기 감성적인 것만 했으니까 지금같은 꼴이 되고 마는 거지요. 말씀 없는 기도는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놀음 괴성 질러대는 곳입니다. 기도든 찬송이든 말씀이 들어가야합니다.
말씀은 뭐가 될 수 있습니까. 의사소통의 수단이 말씀입니다. 사람과 대화하시려고 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담아서 생각을 담아서 내 뜻은 이렇다 내 소원은 이렇다 내 생각은 이렇다. 서로 주고받는 게 대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뜻을 알고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원하시는 바를 압니다. 말씀을 미리 우리에게 주셔놨습니다. 미리 주신 그 말씀으로 오늘을 살아갈 때 현재를 살아갈 때 현실을 살아갈 때 말씀을 찾아서 현실에 적용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전지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평생의 모든 생애 난제를 만나도 말씀 속에 전부 길을 달아놓고 찾아놨기 때문에 말씀을 찾아보면 말씀 속에 길이 있고 말씀 속에 답이 있고 성경에 써져 있지 않은 것은 양심을 통해 알려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이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하나님이 원하는대로 살지 못하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살지라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대로 살려면 말씀을 알아야하고 그런 겁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 통해서 십계명을 주셨고 대속의 공로를 인하여 영감의 은혜를 주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화를 통해서 길러가시는 그런 방법입니다. 이런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살펴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십니다. 등불과 빛이 되는 말씀, 길이 되는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어디를 살아가든 장소를 막론하고 형평을 막론하고 모든 상황에서 그런 길이 있고 답이 있다고 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그 현실 속에 말씀이 들어있고 답이 있다. 말씀과 길이 되는 말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슬플 때도 괴로울 때도 말씀은 빛이 되고 길이 되는 말씀입니ᅟᅡᆮ.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말씀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게 말씀입니다. 나를 고치고 나를 참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말씀입니다. 조금 더 말하면 잘못된 것이 고쳐지고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말씀으로만 되지 말씀 떠나서 고쳐지는 수 없고 사람이 변화되는 수가 없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깨끗케하리이까. 말씀만이 사람을 고치고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말씀은 구원이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고난에서 심신이 피곤합니다. 가라앉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거기서 벗어나서 새 힘을 얻어서 소성케되는 것은 말씀으로만 되는 겁니다. 그게 진짜베기입니다. 몸이 피곤할 때 임시로 먹는 그런 걸 안 좋은 약을 먹으면 잠이 깨고 생기가 도는데 중독이 되면 사람을 잡아버립니다. 약을 쓸 때는 조심을 해야하는 겁니다.
몸에 병이 들면 우선적으로 고통을 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더 깊이 들어가면 계속되면 나중에 병은 더 심해집니다. 방에 잠이 안올 때 고통스러울 때 필요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까지 평생 살아오면서 임의로 수면제 먹어본적은 한 두 번 있을 거 같습니다. 수면제 저는 일부러 안 먹습니다. 그거 계속 중독이 됩니다. 내성이 생깁니다. 하나 먹으면 잠 오다가 나중에 두 개 먹어야하고. 내성 생기는 그런 약은 함부로 먹는 거 아닙니다. 내성, 항생제도 계속 쓰면 안 씁니다. 암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항암제 처음에는 듣습니다. 나중에는 암이 그 약을 이겨내버립니다. 그래서 암투병은 체력싸움입니다. 그래서 잠이 안 오시면 차라리 이런 것이 되어서 성경 읽고 앉았으면 저절로 됩니다. 성경의 다른 이름이 뭔가요. 모르시나요. 수면제입니다. 잠 오는 겁니다. 그 좋은 방법 두고 뭘 약을 쓰십니까.
근본 치료는 고난 당할 때도 말씀을 가지고 해야 해결이 됩니다. 말씀을 가지고 알든지 모르든지 믿든지 안 믿든지 그래서 원칙이라는 게 중요한 겁니다. 그게 기본입니다. 말씀으로 모든 걸 해결한 것이 기본입니다. 말씀을 찾아서 들어가야합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은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말씀을 소승케하옵소서.
네 번째 말씀은 낙헌제를 받으신 것입니다. 말씀 속에 범사의 감사가 들어있습니다. 말씀으로 들어가보면 찬송이 나옵니다. 백 목사님은 마지막 말씀은 유언입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합소서. 그 감사 기쁨이라는 것은 좋을 때 기쁠 때 평안할 때 말하는 거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감사하라. 말씀을 가지고 찾아가보면 원리가 있고 근거가 있습니다. 범사의 감사는 근거를 주는 게 말씀입니다. 나의 생명이 항상 있사오나 믿는 사람들의 생명은 육의 생명도 있고 신앙의 생명도 있습니다. 사람은 약하고 말세지말 험한 세상이라서 육의 생명도 위험하니까 조심해야하고 신앙의 생활은 늘 위기에 있습니다. 아차하면 하나님과 끊어져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위험한 지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진짜 악인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중심의 내가 차면 나를 넘어뜨리는 겁니다. 올무를 놨사오나 떠나지 아니하셨나이다. 말씀을 모시고 살면 어떤 유혹에서도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미혹에서 벗어나야하는 말씀입니다.
일곱 번째 말씀이란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살았사오니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기업이 되는 게 말씀이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복 영원한 기쁨 그게 말씀이다. 말씀이 이 말씀이다. 본문에 말씀이 길이고 말씀이 답이다. 이걸 실제로 기억을 하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어고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먹어야 배가 부른겁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아무 효력이 없는 겁니다. 말씀이 길이고 답이니까 말씀 속에 답을 찾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