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4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4-07-14조회 145추천 24
2024년 7월 14일 주일 오전
찬송: 89장, 136장
본문: 시편 1편 1절
오류 복시 시 첨부파일 참조 바립니다.
2절과 4절에 오직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다른 길이었고 다른 방법이 없는 겁니다. 피할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난 주에는 시편 119편으로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말의 높임말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언어는 마음의 뜻과 생각을 나타내는 게 말입니다. 이 말을 높은 사람이 할 때 말씀입니다. 말씀이란 말의 높임말이 말씀입니다. 성경은 말씀입니다. 말이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 하나님의 언어라 그리 표현해볼까요. 생각 뜻을 주고 받는 게 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을 알리시는 겁니다. 글로 기억했기 때문에 글이 되는 겁니다. 글자 한 자 한 자가 있고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문장에는 뜻이 있는 겁니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글자 한 자 한 자가 뜻이 됩니다. 그런걸 말이라 그러고 언어라 그럽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사람이 글로 적은 겁니다. 적을 때는 성경 기록한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적었습니다. 자기가 보고 자기가 느끼고 자기 감정을 표현한 게 성경입니다. 100% 사람의 감정입니다. 사람이 느끼고 사람의 판단을 적은 것인데 100%판단을 적은 게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유기적 영감이라고 합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거라고 합니다.
신앙세계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고차원의 세계고 하나님의 말씀도 그런 게 있습니다. 성경 속에 뭐가 들었습니까. 글자가 적혀있습니다. 글자가 모이면 뭐가 된다고요 단어가 됩니다. 단어가 모이면 문장이 됩니다. 문장 속에 뜻이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글자 아버지라는 단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걸 말이라 글이라 그럽니다. 사람의 말이 있고 언어가지고 자기 마음을 전하는 게 대화입니다. 대화는 중요합니다. 대화가 단절이 되면 사람 관계가 끊어지는 겁니다. 사람 사이에 대화가 끊어지면 관계가 끊어져버립니다. 가장 무서운 것에 말을 안하면 겁을 냅니다. 뭔가 화가 나셨는데 말씀을 안하시니까 모르는 거지요. 부부 사이도 대화가 없으면 심각한 대화를 하는겁니다.
요즘은 애완동물을 많이 기르는데 강아지 기르고 그것들을 기를려고 하니까 수준에 맞춰서 말을 해야하지요. 어른과 아이 사이에 대화가 필요합니다. 아이와 어른이 대화하려면 아이에게 맞춰서 이야기해야하고 어른이 서서 아이에게 이야기하면 대화가 안됩니다. 언어 자체도 쓸만한 말 자체도 아이에게 맞게 대화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 말씀인데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언어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낮추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눈높이로 낮춰서 대화하려고 주신 게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사람이 읽으면 알 수 있는 겁니다. 사람에게 맞춰놨기 때문에.
강아지가 사람 말을 알아듣긴 알아듣겠지요. 조금 일상적인 언어를 알아듣습니까. 못알아듣죠. 강아지와 사람 차이는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는 사람과 강아지 차이보다 무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사람이 읽으면 알고 들으면 아는 게 말씀입니다. 사람이 읽으면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성경 속에는 사람의 눈높이로 맞춰 주는 건데 하나님의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이게 성경입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도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의 생각 어머니의 생각이 들었듯이 장난입니까 소원이 그런가지요. 성경은 사람의 언어로 기록했어도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있는 겁니다. 예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믿는 사람에게 말씀이 답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 구약에 하나님 백성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셨습니다. 출애굽이라고 합니다. 왜 구출하셨느냐 가나안에 들이실려고.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그들 구출하시고 들어가서 살되 애굽 사람과 다르고 블레셋 사람과 다르고 모압 압몬 족속과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그 표로 주신 게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라, 한국 사람은 일본나라 법을 어겨도 괜찮습니다. 지킬 필요가 있습니까. 북한의 법을 한국 사람이 지키면 반역자가 됩니다. 다른 나라의 법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겁니다. 대한민국에 살려면 대한민국의 법을 지켜라 그러면 대한민국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십계명이고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율법에서 길을 찾는 게 이스라엘이고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공부하든지 시험을 치든지 몸이 아프든지 경제 곤란 생기던지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을 만나든 우리는 만사 모든 길을 말씀에서 찾는 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어려움 생겼을 때 훌륭한 선생님, 박사, 유명한 사람 찾아가고 가장 어려워서 문제가 생겼는데 심리 상담소 찾아가고 그러면 안됩니다. 말씀으로 하는 게 예수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걸 알고 믿는 생활하고 상대하는 그 사람을 신앙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가 누구야 믿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지난 주에 찾는 겁니다. 시편 일편 이건 유명한 말씀이고 외우는 거기도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이게 제목입니다. 복이 무엇인가. 복, 복이 무엇입니까. 돈 많으면 복입니까. 건강하면 복입니까. 일반적으로 복이라고 하면 돈에 경제에 쪼달리지 않을 정도로 하는 것 돈에 대해서는 복이 좀 있다. 몸에 이상이 없고 일상 생활 없고 그러면 복이 있다. 가족들끼리 화목하게 살면 복이 있다. 직장에 탄탄하게 잘 다니고 그러면 복이 있다. 그게 일상 생활인데 사람이 일상생활이 큰 마찰 없이 그냥 무난하게 따뜻하게 잘 살아가면 일반적으로 복이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또 니는 사람은 새벽기도 나와야겠지요. 마치고 또 준비해서 출근하고 학교가고 근무하고 저녁에 씻고 할 일 좀 하고 기도하고 잠들고 이런 일상생활이 계속되는 게 소확행이라고 합니다. 소소한 행복이라고 그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위해 큰 돈벌이 직장 싫답니다. 소소한 행복이 제일이다. 그리 나가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좋은데 그래서 안되는 사람까지 그러면 큰 문제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눈은 봐야합니다. 귀는 들어야하고 다리라는 것은 아무리 무거워도 다리입니다. 돌아가면 써야하는 게 머리입니다. 이게 힘들다고 중단해 버리면 사람도 다 그런 것이고 복이란 소소하게 잘 살아가면 복이라고 하고 깨지면 그게 환란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말을 하지요. 말씀하시기를 복있는 사람은 성경을 말하는 복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언제나 어디서나 다시 말해서 영원토록 하늘까지 가서 그때까지가서 잘 되는 걸 복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되는 걸 복이라 하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과 구원에 유익한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좀 어렵습니까. 성경에 보면 그런겁니다. 성경의 기준에서 보면 사람들이 복은 크게 말하면 세상 복이 있고 하늘 복이 있는데 복처럼 보이는 복이 있고 복으로 나타내는 그런 것이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재앙인데 복일 수도 있습니다. 복처럼 보이는 복도 있고 복처럼 보이는데 껍질을 벗겨보니까 화도 있습니다.
이 세상은 세상이 전부고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믿는 사람은 껍데기입니다. 수박을 사왔습니다. 잘 생겼습니다. 사왔는데 먹으려고 수박을 잘라보니까 안이 썩어버렸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썩었습니다. 이런 게 세상에 많습니다. 잘라봐야 알 듯이 모르는 거지요. 이 세상 복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돈이 많아야 복이다. 건강이 복이다. 건강이란 껍데기이니까. 가족도 껍데기입니다. 소소한 껍데기입니다. 성경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복처럼 보이는 복도 있고 복처럼 보이는데 화도 있고 속을 열어보니까 복도 있고. 석류아는 사람 있습니까. 모두 사가지고 보여줘야하는데. 석류는 생긴 게 못생겼습니다. 그런데 딱 잘라보면 석류 알이 발그스름하게 보기만해도 침이 돕니다. 그래서 성도의 모습은 석류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은 이 세상만 보고 살지 않습니다. 이 세상만 보고 살 거 같으면 예수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 넘어를 바라봅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도 고등학교 1학년 들어가면 특목고 가면 머리가 좋아서 수학문제 푸는 거 보면 다 풀어냅니다. 기가 막힙니다. 그런 학생들 들어가면 서울대 의대입니다. 중학교 1학년은 벌써 의대를 두고 합니다. 어린이집 보낼 때 7 8년 후를 땡겨서 시킵니다. 안 가봐도 분위기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공기가 틀립니다. 십 몇 년을 바라보고 예사입니다. 오만 게 다 들어있습니다.
세상 성공을 위해서 고생하는 고생을 다하면 달콤함이 온다. 네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고진감래라 그럽니다. 고생 지나면 달콤한 것이 온다. 그러면서 지금 고난을 버티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는 겁니다. 영생을 바라보는 게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고난인데 그 속을 열어보니까 영생을 바라보고 하는 겁니다. 남자가 남자 노릇하면 뭐라고 하시는지 합니까. 꼴에 남자라고 그럽니다. 남자는 남자라고 하는 겁니다. 남녀평등같은 말 치워버리고, 평등 좋지요. 그런데 평등하지 말아야할 게 그러는 겁니다. 할 수 있습니다. 안하는 게 좋겠습니다.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고 강아지는 강아지고.
남자가 남자 노릇하듯이 믿는 사람은 못 믿어도 나는 믿는 사람이다. 비록 가다가 죄를 지을찌라도 나는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이라 할찌라도 죄 짓는 걸 알기 때문에 회개의 길을 주신 겁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으로 살아라. 믿는 사람으로 사는 것과,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말의 행동에 생활 활동 관계에 속에 들어가보면 믿는 게 모르겠고 천국 안봐서 모르겠고 성도는 아닙니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게 믿는 사람의 정체성입니다. 복이란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복이 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다섯가지를 말씀하는데 두가지입니다. 복 있는 사람 다섯가지,
첫째,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합니다. 어떤 사람이 악입니까. 자기 중심의 사람, 자기가 자기의 주인되는 사람, 자기 모든 활동 자기 모든 생활의 주인이 자기가 주인이 되고 왕이 되고 하나님이 되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모든 생활의 원동이 되는 사람, 나 때문에 내가 하고 싶어서 화가 났습니다. 왜 그리 화가 나셨습니까. 내 자존심을 건드리자니 내 최면을 무시하자니 그게 악인입니다. 자기 체면 좀 건드렸다고 화가 나면 그게 악인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된 겁니다.
악인의 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는 것은 내 밖에 있는 것도 밖에 있지만 자기 중심의 사람 옆에는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 들어가보면 악의 요소가 있습니다. 내 하고 싶은 내 속에 그 욕심 그 취미 그 위신 그 자존심 복 있는 사람은 자기 안에 악의 요소를 따라 살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이게 복 있는 사람입니다. 나를 건드리고 나를 깎아내려고 하면 악인이구나. 그렇게 판단을 하는 겁니다. 그 악의 자기를 길러나가면 어떤 사람이 되는 겁니까.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을 좇지 않습니다. 말씀을 어기는 걸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말씀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죄입니다. 미워하지 말지니라 살인하지 말찌니라 살인하지 말찌니라. 죄인이 살아가는 그 방법 복이 있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내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라도 하고 싶은, 양심은 안 속이는데 도덕적인 양심은 잘 지키는데 윤리적인 양심은 잘 지키는데 남의 물건 훔치는 건 죽어도 안합니다.
어제 저녁에 교인 한 분, 연세 많은 분인데 주차장 앉아계십니다. 그래서 보니까 우리 교인입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어르신 오늘 주무시고 오셔야합니다. 가야겠네 해서 모셔다 드렸는데 보니까 거기 내려드렸는데 길을 건너가십니다. 그런 것도 말하자면 이렇게 힘들게 교회를 오시니까 찔리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래도 또 지나면 풀어지겠지만은 괜찮은 가책이지요. 죄라는 것은 말씀을 어기면 죄가 됩니다. 기독교는 도덕이 없지 않으나 도덕 주의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큰 거는 계명마다 다른겁니다.
오만한자, 교만의 사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오만입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윗사람도 모르고 이런 생각 가지고 이런 인식 가지고 처신을 그렇게 하는 그게 오만한 자입니다. 이 세가지는 하지 않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않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네 번째는 오직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만사 모든 것에서 말씀 아닌 길입니다. 이 말씀 속에 나타나신 전부고 말씀이 자기 전부가 되는 겁니다. 좋아서 하는 겁니다. 꿀을 만나면 다 좋아하지요. 여름에 아이스크림먹으면 더 먹고 싶지요. 수박을 보면 계속 먹고싶은 이게 즐거움이지요. 몸이 아파 쓴 약을 먹습니다. 즐거워하여 하나님 말씀이 즐겁습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셔야합니다. 진짜 믿는 사람은 찬송을 하고 대속을 생각하고 안 믿는 사람은 먹고 전도가 되고 그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술 못 마시는데 기뻐. 세계가 다른 것이지요. 꽃이 피어있는 꿀이 있습니다. 그걸 찍어먹어보면 단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은 꽃에 묻은 꿀을 먹지 않습니다. 나비 벌은 목숨 걸고 꿀을 먹습니다. 그걸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복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군에 가서 보초를 서는데 신풍목사님 군대가셔서 보초 서는데 무슨 생각하냐 하니까 말씀 생각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애인 생각합니다. 극과 극인 겁니다. 내가 어떤 사람 되냐에 따라서 생각하는 게 다른 겁니다. 돈만 생각하는 사람 재미만 생각하는 사람 복 있는 사람은 말씀만 생각합니다. 그게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오후에 계속 이어갑니다. 복 있는 사람 다섯가지, 기억하시고 복이 없는 사람인가 이 말씀으로 우리 자신 돌아가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89장, 136장
본문: 시편 1편 1절
오류 복시 시 첨부파일 참조 바립니다.
2절과 4절에 오직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다른 길이었고 다른 방법이 없는 겁니다. 피할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난 주에는 시편 119편으로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말의 높임말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언어는 마음의 뜻과 생각을 나타내는 게 말입니다. 이 말을 높은 사람이 할 때 말씀입니다. 말씀이란 말의 높임말이 말씀입니다. 성경은 말씀입니다. 말이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 하나님의 언어라 그리 표현해볼까요. 생각 뜻을 주고 받는 게 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을 알리시는 겁니다. 글로 기억했기 때문에 글이 되는 겁니다. 글자 한 자 한 자가 있고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문장에는 뜻이 있는 겁니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글자 한 자 한 자가 뜻이 됩니다. 그런걸 말이라 그러고 언어라 그럽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사람이 글로 적은 겁니다. 적을 때는 성경 기록한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적었습니다. 자기가 보고 자기가 느끼고 자기 감정을 표현한 게 성경입니다. 100% 사람의 감정입니다. 사람이 느끼고 사람의 판단을 적은 것인데 100%판단을 적은 게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유기적 영감이라고 합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거라고 합니다.
신앙세계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고차원의 세계고 하나님의 말씀도 그런 게 있습니다. 성경 속에 뭐가 들었습니까. 글자가 적혀있습니다. 글자가 모이면 뭐가 된다고요 단어가 됩니다. 단어가 모이면 문장이 됩니다. 문장 속에 뜻이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글자 아버지라는 단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걸 말이라 글이라 그럽니다. 사람의 말이 있고 언어가지고 자기 마음을 전하는 게 대화입니다. 대화는 중요합니다. 대화가 단절이 되면 사람 관계가 끊어지는 겁니다. 사람 사이에 대화가 끊어지면 관계가 끊어져버립니다. 가장 무서운 것에 말을 안하면 겁을 냅니다. 뭔가 화가 나셨는데 말씀을 안하시니까 모르는 거지요. 부부 사이도 대화가 없으면 심각한 대화를 하는겁니다.
요즘은 애완동물을 많이 기르는데 강아지 기르고 그것들을 기를려고 하니까 수준에 맞춰서 말을 해야하지요. 어른과 아이 사이에 대화가 필요합니다. 아이와 어른이 대화하려면 아이에게 맞춰서 이야기해야하고 어른이 서서 아이에게 이야기하면 대화가 안됩니다. 언어 자체도 쓸만한 말 자체도 아이에게 맞게 대화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 말씀인데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언어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낮추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눈높이로 낮춰서 대화하려고 주신 게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사람이 읽으면 알 수 있는 겁니다. 사람에게 맞춰놨기 때문에.
강아지가 사람 말을 알아듣긴 알아듣겠지요. 조금 일상적인 언어를 알아듣습니까. 못알아듣죠. 강아지와 사람 차이는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는 사람과 강아지 차이보다 무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사람이 읽으면 알고 들으면 아는 게 말씀입니다. 사람이 읽으면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성경 속에는 사람의 눈높이로 맞춰 주는 건데 하나님의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이게 성경입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도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의 생각 어머니의 생각이 들었듯이 장난입니까 소원이 그런가지요. 성경은 사람의 언어로 기록했어도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있는 겁니다. 예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믿는 사람에게 말씀이 답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 구약에 하나님 백성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셨습니다. 출애굽이라고 합니다. 왜 구출하셨느냐 가나안에 들이실려고.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그들 구출하시고 들어가서 살되 애굽 사람과 다르고 블레셋 사람과 다르고 모압 압몬 족속과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그 표로 주신 게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라, 한국 사람은 일본나라 법을 어겨도 괜찮습니다. 지킬 필요가 있습니까. 북한의 법을 한국 사람이 지키면 반역자가 됩니다. 다른 나라의 법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겁니다. 대한민국에 살려면 대한민국의 법을 지켜라 그러면 대한민국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십계명이고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율법에서 길을 찾는 게 이스라엘이고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공부하든지 시험을 치든지 몸이 아프든지 경제 곤란 생기던지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을 만나든 우리는 만사 모든 길을 말씀에서 찾는 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어려움 생겼을 때 훌륭한 선생님, 박사, 유명한 사람 찾아가고 가장 어려워서 문제가 생겼는데 심리 상담소 찾아가고 그러면 안됩니다. 말씀으로 하는 게 예수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걸 알고 믿는 생활하고 상대하는 그 사람을 신앙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가 누구야 믿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지난 주에 찾는 겁니다. 시편 일편 이건 유명한 말씀이고 외우는 거기도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이게 제목입니다. 복이 무엇인가. 복, 복이 무엇입니까. 돈 많으면 복입니까. 건강하면 복입니까. 일반적으로 복이라고 하면 돈에 경제에 쪼달리지 않을 정도로 하는 것 돈에 대해서는 복이 좀 있다. 몸에 이상이 없고 일상 생활 없고 그러면 복이 있다. 가족들끼리 화목하게 살면 복이 있다. 직장에 탄탄하게 잘 다니고 그러면 복이 있다. 그게 일상 생활인데 사람이 일상생활이 큰 마찰 없이 그냥 무난하게 따뜻하게 잘 살아가면 일반적으로 복이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또 니는 사람은 새벽기도 나와야겠지요. 마치고 또 준비해서 출근하고 학교가고 근무하고 저녁에 씻고 할 일 좀 하고 기도하고 잠들고 이런 일상생활이 계속되는 게 소확행이라고 합니다. 소소한 행복이라고 그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위해 큰 돈벌이 직장 싫답니다. 소소한 행복이 제일이다. 그리 나가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좋은데 그래서 안되는 사람까지 그러면 큰 문제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눈은 봐야합니다. 귀는 들어야하고 다리라는 것은 아무리 무거워도 다리입니다. 돌아가면 써야하는 게 머리입니다. 이게 힘들다고 중단해 버리면 사람도 다 그런 것이고 복이란 소소하게 잘 살아가면 복이라고 하고 깨지면 그게 환란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말을 하지요. 말씀하시기를 복있는 사람은 성경을 말하는 복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언제나 어디서나 다시 말해서 영원토록 하늘까지 가서 그때까지가서 잘 되는 걸 복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되는 걸 복이라 하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과 구원에 유익한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좀 어렵습니까. 성경에 보면 그런겁니다. 성경의 기준에서 보면 사람들이 복은 크게 말하면 세상 복이 있고 하늘 복이 있는데 복처럼 보이는 복이 있고 복으로 나타내는 그런 것이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재앙인데 복일 수도 있습니다. 복처럼 보이는 복도 있고 복처럼 보이는데 껍질을 벗겨보니까 화도 있습니다.
이 세상은 세상이 전부고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믿는 사람은 껍데기입니다. 수박을 사왔습니다. 잘 생겼습니다. 사왔는데 먹으려고 수박을 잘라보니까 안이 썩어버렸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썩었습니다. 이런 게 세상에 많습니다. 잘라봐야 알 듯이 모르는 거지요. 이 세상 복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돈이 많아야 복이다. 건강이 복이다. 건강이란 껍데기이니까. 가족도 껍데기입니다. 소소한 껍데기입니다. 성경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복처럼 보이는 복도 있고 복처럼 보이는데 화도 있고 속을 열어보니까 복도 있고. 석류아는 사람 있습니까. 모두 사가지고 보여줘야하는데. 석류는 생긴 게 못생겼습니다. 그런데 딱 잘라보면 석류 알이 발그스름하게 보기만해도 침이 돕니다. 그래서 성도의 모습은 석류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은 이 세상만 보고 살지 않습니다. 이 세상만 보고 살 거 같으면 예수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 넘어를 바라봅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도 고등학교 1학년 들어가면 특목고 가면 머리가 좋아서 수학문제 푸는 거 보면 다 풀어냅니다. 기가 막힙니다. 그런 학생들 들어가면 서울대 의대입니다. 중학교 1학년은 벌써 의대를 두고 합니다. 어린이집 보낼 때 7 8년 후를 땡겨서 시킵니다. 안 가봐도 분위기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공기가 틀립니다. 십 몇 년을 바라보고 예사입니다. 오만 게 다 들어있습니다.
세상 성공을 위해서 고생하는 고생을 다하면 달콤함이 온다. 네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고진감래라 그럽니다. 고생 지나면 달콤한 것이 온다. 그러면서 지금 고난을 버티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는 겁니다. 영생을 바라보는 게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고난인데 그 속을 열어보니까 영생을 바라보고 하는 겁니다. 남자가 남자 노릇하면 뭐라고 하시는지 합니까. 꼴에 남자라고 그럽니다. 남자는 남자라고 하는 겁니다. 남녀평등같은 말 치워버리고, 평등 좋지요. 그런데 평등하지 말아야할 게 그러는 겁니다. 할 수 있습니다. 안하는 게 좋겠습니다.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고 강아지는 강아지고.
남자가 남자 노릇하듯이 믿는 사람은 못 믿어도 나는 믿는 사람이다. 비록 가다가 죄를 지을찌라도 나는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이라 할찌라도 죄 짓는 걸 알기 때문에 회개의 길을 주신 겁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으로 살아라. 믿는 사람으로 사는 것과,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말의 행동에 생활 활동 관계에 속에 들어가보면 믿는 게 모르겠고 천국 안봐서 모르겠고 성도는 아닙니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게 믿는 사람의 정체성입니다. 복이란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복이 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다섯가지를 말씀하는데 두가지입니다. 복 있는 사람 다섯가지,
첫째,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합니다. 어떤 사람이 악입니까. 자기 중심의 사람, 자기가 자기의 주인되는 사람, 자기 모든 활동 자기 모든 생활의 주인이 자기가 주인이 되고 왕이 되고 하나님이 되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모든 생활의 원동이 되는 사람, 나 때문에 내가 하고 싶어서 화가 났습니다. 왜 그리 화가 나셨습니까. 내 자존심을 건드리자니 내 최면을 무시하자니 그게 악인입니다. 자기 체면 좀 건드렸다고 화가 나면 그게 악인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된 겁니다.
악인의 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는 것은 내 밖에 있는 것도 밖에 있지만 자기 중심의 사람 옆에는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 들어가보면 악의 요소가 있습니다. 내 하고 싶은 내 속에 그 욕심 그 취미 그 위신 그 자존심 복 있는 사람은 자기 안에 악의 요소를 따라 살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이게 복 있는 사람입니다. 나를 건드리고 나를 깎아내려고 하면 악인이구나. 그렇게 판단을 하는 겁니다. 그 악의 자기를 길러나가면 어떤 사람이 되는 겁니까.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을 좇지 않습니다. 말씀을 어기는 걸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말씀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죄입니다. 미워하지 말지니라 살인하지 말찌니라 살인하지 말찌니라. 죄인이 살아가는 그 방법 복이 있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내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라도 하고 싶은, 양심은 안 속이는데 도덕적인 양심은 잘 지키는데 윤리적인 양심은 잘 지키는데 남의 물건 훔치는 건 죽어도 안합니다.
어제 저녁에 교인 한 분, 연세 많은 분인데 주차장 앉아계십니다. 그래서 보니까 우리 교인입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어르신 오늘 주무시고 오셔야합니다. 가야겠네 해서 모셔다 드렸는데 보니까 거기 내려드렸는데 길을 건너가십니다. 그런 것도 말하자면 이렇게 힘들게 교회를 오시니까 찔리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래도 또 지나면 풀어지겠지만은 괜찮은 가책이지요. 죄라는 것은 말씀을 어기면 죄가 됩니다. 기독교는 도덕이 없지 않으나 도덕 주의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큰 거는 계명마다 다른겁니다.
오만한자, 교만의 사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오만입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윗사람도 모르고 이런 생각 가지고 이런 인식 가지고 처신을 그렇게 하는 그게 오만한 자입니다. 이 세가지는 하지 않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않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네 번째는 오직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만사 모든 것에서 말씀 아닌 길입니다. 이 말씀 속에 나타나신 전부고 말씀이 자기 전부가 되는 겁니다. 좋아서 하는 겁니다. 꿀을 만나면 다 좋아하지요. 여름에 아이스크림먹으면 더 먹고 싶지요. 수박을 보면 계속 먹고싶은 이게 즐거움이지요. 몸이 아파 쓴 약을 먹습니다. 즐거워하여 하나님 말씀이 즐겁습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셔야합니다. 진짜 믿는 사람은 찬송을 하고 대속을 생각하고 안 믿는 사람은 먹고 전도가 되고 그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술 못 마시는데 기뻐. 세계가 다른 것이지요. 꽃이 피어있는 꿀이 있습니다. 그걸 찍어먹어보면 단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은 꽃에 묻은 꿀을 먹지 않습니다. 나비 벌은 목숨 걸고 꿀을 먹습니다. 그걸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복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군에 가서 보초를 서는데 신풍목사님 군대가셔서 보초 서는데 무슨 생각하냐 하니까 말씀 생각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애인 생각합니다. 극과 극인 겁니다. 내가 어떤 사람 되냐에 따라서 생각하는 게 다른 겁니다. 돈만 생각하는 사람 재미만 생각하는 사람 복 있는 사람은 말씀만 생각합니다. 그게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오후에 계속 이어갑니다. 복 있는 사람 다섯가지, 기억하시고 복이 없는 사람인가 이 말씀으로 우리 자신 돌아가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