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밤
김동민2024-05-15조회 143추천 23
2024년 5월 15일 수밤
찬송: 16장, 18장
본문: 에스겔 40장 2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간 세월이 25년이었고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지 14년입니다. 그 전에 잡혀갔다 그런 뜻이 되는 거지요. 25년에 14년을 빼면 11년이 됩니까. 히스기야 때 망하기 전에 11년 전부터 포로로 잡혀가기 시작했는데 이때 에스겔을 잡아갔습니다.
에스겔이 사로잡힌 세월이 25년 성이 함락됐을 때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잡혀갔는데 여기 사로잡힌 세월이 25년이고 함락된지 14년이라고 했습니다. 25년은 인간의 수를 계산했고 노력해서 다시 돌아오고자 할 수 있는 건데 까마득히 잊어버린 세월이 지나도록 그들은 사로잡힌 그 속에 살면서 그 사람이 점점 사로잡힌 생활화가 점점 되어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바벨론화가 되어있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함락되니까 돌아갈 세월이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도무지 희망없는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절망 속에 빠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에스겔을 감동시켜서 이런 소망을 보여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신 것이고 우리에게 주심으로 세상에 사로잡힌 오래돼서 희망이 없는 사람에서도 회복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계십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잡혀갔고 무엇에 사로잡혔는가 세상입니다. 세상 속에 죄가 들었고 마귀가 들었고 온갖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죄라는 것은 어떤 나를 사로잡고 있는가. 어떤 종류의 마귀가 나를 사로잡고 있는가 어떤 것에게 사로잡혀있는가. 사로잡힌 사람은 사로잡혔기 때문에 강제로 붙들렸으니까 벗어나지 못합니다.
옛날부터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손대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하지 못하는 게 특권입니다. 발락이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고 그게 꾀를 가르쳐준 게 그런 겁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서 어떤 세력과 무기도 못 이깁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치게 만들게 하면 된다 해서 죄 짓는 방법을 알려준 게 그게 아주 나쁜 인간입니다. 하나님 백성을 죄짓게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술사라고 붙여놨고 칼로 죽여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세상 세력도 이기지 못하는데 스스로 넘어지면 하나님도 방법이 없는겁니다. 어떤 대적도하지 못하는데 멀어지고 말씀을 져버리고 죄를 지으면 방법이 없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것도 바벨론이 강해서가 아니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말하면 스스로 그리하니까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게 된 겁니다.
믿는 사람이 사람이 범죄함으로, 마귀는 왕권을 가졌습니다. 주님 대속을 입은 사람은 자기만 힘쓰면 강제하지 못합니다. 사로잡혔다는 것도 표면적으로 사로잡힌건데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죄한 범죄는 전부 그리 되는 겁니다. 어떤 깊은 죄악 속에 빠져도 에스겔같은 선지자에게는 보여주셨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간 몇몇 사람들은 바벨론에 잡혀갔으나 사로잡힌 노예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자유했고 누릴 거 다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잡혀간 상황이라서 잘 먹고 잘 마시고 그렇게 바벨론화 되지는 않았지만 굶지 않았고 박해받지 않았고 떵떵거리면서 주인하면서 한 사람입니다. 모르드개 느헤미야 이런 사람들입니다.
마음껏 신앙으로 자유하고 육적으로 자유했습니다. 오늘도 아무리 세상이 강해도 말씀이 그렇습니다. 사로잡힌 25년 함락된지 14년 이 세력이 뭔가 같은 원리로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외부세력도 나를 사로잡지 못합니다. 대속이 있기 때문에 대적은 어디있느냐 나를 사로잡는 대적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난데 나 아닌 나 그놈이 들어서 나를 세상과 짝되어 나를 팔아먹는 그놈이 되는 겁니다. 사로잡힌 것은 사업에 사로잡히고 그러는데 그 사로잡히는 내면에 들어가면 돈을 좋아하는 내 속의 욕심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취미 욕심, 향락 욕심.
그것만 뽑아버리면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누가 그랬습니까.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고려 말에 유명한 최영 장군이 한 말이지요. 돈을 가지고 못하는 게 없어도 예수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도 그렇게 하는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욕심내지 않고 40평이 되어야하는가. 서른평 넘으면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이겠습니까. 부부살고 아이를 하나 낳았는데 청소하는데 힘만들지 골병듭니다. 웬만큼 편리하게 만들어 놓으면 편리하니까, 집회 때 화장실에 비데 설치되어있었죠.
옛날에 백목사님 산집회 다니던 분들은 험악한 팬션에 살아도 호텔입니다. 그만하면 호텔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험하게 자라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강해지게 되는 겁니다. 웬만큼 넓으면 안되고 꾸며선 안되고 수명이 좀 늘어났다지만은 따져봐야겠습니다. 좋은 환경 살아왔을까 그렇지만은 아파트 평수 좋은 거 다 따져 들어가면 AI라고 인공지능 사람 수준에까지 도달했답니다. 사람하고 반응속도가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고 감정으로 표현한답니다. 인공지능 기계가. 인간의 말을 다 할 겁니다. 느낀 희로애락을 다 가질 겁니다. 물질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맡겨놨기 때문에. 그래서 중요한겁니다.
그런 것에 사로잡혀서 끝도없이 들어가는데 내 속의 나 자신 내 속의 내 몸 그러면 그런데 사로잡힐 게 없는 것인데 사로잡힌 세월이 25년입니다. 온갖 종류의 욕심과 습성과 붙들렸습니다. 세월이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백목사님만 봐도 교훈이 있고 그걸 깨닫고 이어가는 게 있어서 아직은 희망이 있다. 소망이 있습니다. 다 꺼졌다 할 지라도 에스겔처럼 자기 소망을 이어나가는 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이상 중에 이상이라는 말의 반대는 정상입니다. 이상은 정상이 아니라는 거지요. 뭔가 특별하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게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릅니다. 사람이 볼 때는 이상합니다. 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각도에서는 정상입니다.
어느 마을에 눈이 하나만 가지고 태어난 마을이 있습니다. 그 마을에는 눈이 다 하나입니다. 그들은 아는대로 사람의 눈은 하나입니다. 그들은 정상입니다. 그런데 눈 두 개 달린 사람이 마을에 가니 괴물들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괴물들이 눈 두 개 달린 사람보고 뭐라고 합니까. 정상인이라고 합니까 괴물이라고 합니까. 눈이 두 개나 달렸다. 눈 두 개 달린 게 정상인데 하나가 정상이 되는 겁니다. 이런 것을 가르쳐서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상이라는 것이 없는 곳입니다. 불변이 없고 정의가 없고 진리라는 곳이 없는 곳이 세상입니다. 100년 전에 사는 세상이 오늘의 세상을 보면 미쳤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 전부 다 미쳤다. 다 정신나간 사람이다. 오늘 사람들은 그때 사람들을 미개하다고 하지요. 오늘이 편리하다고 합니다. 참 인간다운 모습을 보면 성경 모습으로 성경까지 가기 전에 공자 즈음 모습으로 비교하면 누가 더 정상일까. 그때는 정상이고 지금은 다 미쳤습니다. 지금 세상을 지금 사람들의 모습을 정상을 보면은 자기 눈을 돌아봐야합니다. 인식 사고방식을 봐야합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도 다 미쳤다고 합니다. 이런 세상이 빠져서 좋아서 살면 미친사람입니다.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살기는 사나 빠져 살면 미친 사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상 중에 사람 볼 때 정상이 아닌 겁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성경을 믿는다고 이게 정상입니까 미친거지요. 성경을 정말로 믿는 사람이 있는 신학 교수들이 성경 가르치면서도 돌아가면서도 다 믿을 수는 없지 그렇지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다 믿으십니까 아니면 안 믿으십니까. 성경 다 믿으면 세상사람 볼 때 미친겁니다. 우리는요. 성경 안 믿으면 이상한 거지요. 이게 이상 중의라는 각도입니다. 하나님 보실 때 에스겔 데려간 것은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없어서 이상 중에가 되는 겁니다.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셨습니다. 높은 곳인데 어느 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히말라야 산이 될란가 굉장히 높은 산에 이 세상에서 사람 사는 높이 떨어지는 곳입니다. 사람도 없고 문화도 없고 타락한 세상 인간 세상과 멀리멀리 떨어지고 하늘과는 가까운 이런 곳이 극히 높은 산이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에스겔은 하나님이 이상 중에 데리고 놓으셨습니다. 사람이 올라가기 어려운 산이다. 히말라야 산도 사람이 올라가려면 못올라갑니다. 목숨걸고 등반해서 올라가야겠는데 이상 중에 데려갔으니까 날아서 가셨겠죠. 우리에게는 무엇일까. 에스겔을 높은 산에 놓으셨는데 우리에게 높은 산은 무엇일까.
세상을 내려다보는 곳 하늘과 가까운 것 그게 뭡니까. 성경 해석이 우리에게 정해지고 응용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산으로 올라가서 백 목사님은 몇 발자국 이기니까 다 내려왔답니다. 남북한의 상황을 보여주신답니다. 이상인데 그런 경우를 보는 건 쉽지 않은데 산에 있습니다. 이 세상과 높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말씀의 깨달음, 그 깨달음에 대한 자기의 실감하는 느낌 역사 이런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믿는 사람이 말씀을 깨닫고 믿음이 생기고 느껴지면 이 세상을 내려다봅니다. 논리적으로 이치적으로 실감적으로 계속되지 않아서 문제지, 여기도 그런 분 더러 있을겁니다. 이 세상의 돈도 이 세상의 명예도 향락도 취미도 어떤 것도 만족하지 않는 하찮게 보여지는 하늘이 좋고 하나님 좋고 참 사람이 좋고 가치관이 말하자면 이 세상을 초월해서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높은 산이다. 어떤 것보다 높은 가치를 깨닫는 거지요.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구원에 의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실제 실감, 뒤에가서 변질될찌라도 이 세상을 초월해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봤습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과 더불어 대속으로 의논할 때 베드로가 좋아서 주님에게 여기살면 좋겠습니다. 그 모습을 그들이 봤습니다. 이상 중에 본 거지요. 바울이 그랬습니다. 내가 몸을 떠나서 주와 함께 살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하지만 사명이 있어서 임의로 할 수 있지만 죽어서 주님과 함께 살고 싶다. 극히높은 산입니다. 임의로 하면 자살죄가 되는 거지요. 그럴 수는 없는 것이고 어떤 것에 대해서도 욕심이 안 가는 거지요. 그리 살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 중에 그리 살다가 막상 육을 가진 인생이라 밖에 나가서 세상을 보니까 사람보고 일보고 빠지면서 잊어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놓은 산에서 내려오고 이게 이제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나무로 향하여 남쪽을 보는 겁니다.
지옥이 없으면 천국 가치를 모르는 겁니다. 옛날 어른들 말이 있습니다. 옷을 살 때 헌 옷을 쉽게 버리지 말아라 헌 옷이 있어야 새 옷이 있는 거다. 그런데 요즘은 전부 다 새 것만 있으니까 새 것 귀한 줄 모릅니다. 이런 21세기 세계적인 경제 대국에 이렇게 살기 좋은 사라에 살면서 이 나라로 이름하여 지옥 같은 나라 헬조선이라고 북한으로 보내봐야합니다.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북한에 가면 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북한처럼 되기 쉽고 그리 만들고 그런 거지. 북한을 거기서 살아본 사람들은 이남에 오면 얼마나 좋은지.
가나안에 살아본 사람들은. 포원. 성경에 포원이라는 말 나오지요. 포원은 어릴 때 모친에게 자주 들었습니다. 그게 사무쳐 사무쳐 배를 곯고 가난에 찌들어 본 사람 돈의 포원이 됐다 그래서 좁은 땅덩어리 집만 지으면 경계 때문에, 요즘 사람들 잘 모르겠지만. 얼마나 가난에 포원에 졌던지 가난해 보니까 무식해보니까 가보면 공부해보면 별 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누려봤으니까.
성읍이 에스겔이 지금부터 측량을 하면서 마지막 48장에 보니까 예루살렘 성이 이게 바로 천국의 모습입니다. 구원에 완성된 모습. 그 과정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40장부터 수 없이 많은 문지기 방들이 있고 전부 천국에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성읍 현상같은 것이 있더라. 천국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이뤄갈 모습.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형상인데 에스겔에게 보여주셨고 40장부터 48장까지 기록이 됐는데 세밀하게 모아서 기록하신 것이고 응
찬송: 16장, 18장
본문: 에스겔 40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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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간 세월이 25년이었고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지 14년입니다. 그 전에 잡혀갔다 그런 뜻이 되는 거지요. 25년에 14년을 빼면 11년이 됩니까. 히스기야 때 망하기 전에 11년 전부터 포로로 잡혀가기 시작했는데 이때 에스겔을 잡아갔습니다.
에스겔이 사로잡힌 세월이 25년 성이 함락됐을 때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잡혀갔는데 여기 사로잡힌 세월이 25년이고 함락된지 14년이라고 했습니다. 25년은 인간의 수를 계산했고 노력해서 다시 돌아오고자 할 수 있는 건데 까마득히 잊어버린 세월이 지나도록 그들은 사로잡힌 그 속에 살면서 그 사람이 점점 사로잡힌 생활화가 점점 되어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바벨론화가 되어있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함락되니까 돌아갈 세월이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도무지 희망없는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절망 속에 빠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에스겔을 감동시켜서 이런 소망을 보여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신 것이고 우리에게 주심으로 세상에 사로잡힌 오래돼서 희망이 없는 사람에서도 회복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계십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잡혀갔고 무엇에 사로잡혔는가 세상입니다. 세상 속에 죄가 들었고 마귀가 들었고 온갖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죄라는 것은 어떤 나를 사로잡고 있는가. 어떤 종류의 마귀가 나를 사로잡고 있는가 어떤 것에게 사로잡혀있는가. 사로잡힌 사람은 사로잡혔기 때문에 강제로 붙들렸으니까 벗어나지 못합니다.
옛날부터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손대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하지 못하는 게 특권입니다. 발락이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고 그게 꾀를 가르쳐준 게 그런 겁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서 어떤 세력과 무기도 못 이깁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치게 만들게 하면 된다 해서 죄 짓는 방법을 알려준 게 그게 아주 나쁜 인간입니다. 하나님 백성을 죄짓게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술사라고 붙여놨고 칼로 죽여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세상 세력도 이기지 못하는데 스스로 넘어지면 하나님도 방법이 없는겁니다. 어떤 대적도하지 못하는데 멀어지고 말씀을 져버리고 죄를 지으면 방법이 없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것도 바벨론이 강해서가 아니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말하면 스스로 그리하니까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게 된 겁니다.
믿는 사람이 사람이 범죄함으로, 마귀는 왕권을 가졌습니다. 주님 대속을 입은 사람은 자기만 힘쓰면 강제하지 못합니다. 사로잡혔다는 것도 표면적으로 사로잡힌건데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죄한 범죄는 전부 그리 되는 겁니다. 어떤 깊은 죄악 속에 빠져도 에스겔같은 선지자에게는 보여주셨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간 몇몇 사람들은 바벨론에 잡혀갔으나 사로잡힌 노예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자유했고 누릴 거 다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잡혀간 상황이라서 잘 먹고 잘 마시고 그렇게 바벨론화 되지는 않았지만 굶지 않았고 박해받지 않았고 떵떵거리면서 주인하면서 한 사람입니다. 모르드개 느헤미야 이런 사람들입니다.
마음껏 신앙으로 자유하고 육적으로 자유했습니다. 오늘도 아무리 세상이 강해도 말씀이 그렇습니다. 사로잡힌 25년 함락된지 14년 이 세력이 뭔가 같은 원리로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외부세력도 나를 사로잡지 못합니다. 대속이 있기 때문에 대적은 어디있느냐 나를 사로잡는 대적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난데 나 아닌 나 그놈이 들어서 나를 세상과 짝되어 나를 팔아먹는 그놈이 되는 겁니다. 사로잡힌 것은 사업에 사로잡히고 그러는데 그 사로잡히는 내면에 들어가면 돈을 좋아하는 내 속의 욕심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취미 욕심, 향락 욕심.
그것만 뽑아버리면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누가 그랬습니까.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고려 말에 유명한 최영 장군이 한 말이지요. 돈을 가지고 못하는 게 없어도 예수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도 그렇게 하는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욕심내지 않고 40평이 되어야하는가. 서른평 넘으면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이겠습니까. 부부살고 아이를 하나 낳았는데 청소하는데 힘만들지 골병듭니다. 웬만큼 편리하게 만들어 놓으면 편리하니까, 집회 때 화장실에 비데 설치되어있었죠.
옛날에 백목사님 산집회 다니던 분들은 험악한 팬션에 살아도 호텔입니다. 그만하면 호텔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험하게 자라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강해지게 되는 겁니다. 웬만큼 넓으면 안되고 꾸며선 안되고 수명이 좀 늘어났다지만은 따져봐야겠습니다. 좋은 환경 살아왔을까 그렇지만은 아파트 평수 좋은 거 다 따져 들어가면 AI라고 인공지능 사람 수준에까지 도달했답니다. 사람하고 반응속도가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고 감정으로 표현한답니다. 인공지능 기계가. 인간의 말을 다 할 겁니다. 느낀 희로애락을 다 가질 겁니다. 물질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맡겨놨기 때문에. 그래서 중요한겁니다.
그런 것에 사로잡혀서 끝도없이 들어가는데 내 속의 나 자신 내 속의 내 몸 그러면 그런데 사로잡힐 게 없는 것인데 사로잡힌 세월이 25년입니다. 온갖 종류의 욕심과 습성과 붙들렸습니다. 세월이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백목사님만 봐도 교훈이 있고 그걸 깨닫고 이어가는 게 있어서 아직은 희망이 있다. 소망이 있습니다. 다 꺼졌다 할 지라도 에스겔처럼 자기 소망을 이어나가는 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이상 중에 이상이라는 말의 반대는 정상입니다. 이상은 정상이 아니라는 거지요. 뭔가 특별하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게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릅니다. 사람이 볼 때는 이상합니다. 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각도에서는 정상입니다.
어느 마을에 눈이 하나만 가지고 태어난 마을이 있습니다. 그 마을에는 눈이 다 하나입니다. 그들은 아는대로 사람의 눈은 하나입니다. 그들은 정상입니다. 그런데 눈 두 개 달린 사람이 마을에 가니 괴물들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괴물들이 눈 두 개 달린 사람보고 뭐라고 합니까. 정상인이라고 합니까 괴물이라고 합니까. 눈이 두 개나 달렸다. 눈 두 개 달린 게 정상인데 하나가 정상이 되는 겁니다. 이런 것을 가르쳐서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상이라는 것이 없는 곳입니다. 불변이 없고 정의가 없고 진리라는 곳이 없는 곳이 세상입니다. 100년 전에 사는 세상이 오늘의 세상을 보면 미쳤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 전부 다 미쳤다. 다 정신나간 사람이다. 오늘 사람들은 그때 사람들을 미개하다고 하지요. 오늘이 편리하다고 합니다. 참 인간다운 모습을 보면 성경 모습으로 성경까지 가기 전에 공자 즈음 모습으로 비교하면 누가 더 정상일까. 그때는 정상이고 지금은 다 미쳤습니다. 지금 세상을 지금 사람들의 모습을 정상을 보면은 자기 눈을 돌아봐야합니다. 인식 사고방식을 봐야합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도 다 미쳤다고 합니다. 이런 세상이 빠져서 좋아서 살면 미친사람입니다.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살기는 사나 빠져 살면 미친 사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상 중에 사람 볼 때 정상이 아닌 겁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성경을 믿는다고 이게 정상입니까 미친거지요. 성경을 정말로 믿는 사람이 있는 신학 교수들이 성경 가르치면서도 돌아가면서도 다 믿을 수는 없지 그렇지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다 믿으십니까 아니면 안 믿으십니까. 성경 다 믿으면 세상사람 볼 때 미친겁니다. 우리는요. 성경 안 믿으면 이상한 거지요. 이게 이상 중의라는 각도입니다. 하나님 보실 때 에스겔 데려간 것은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없어서 이상 중에가 되는 겁니다.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셨습니다. 높은 곳인데 어느 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히말라야 산이 될란가 굉장히 높은 산에 이 세상에서 사람 사는 높이 떨어지는 곳입니다. 사람도 없고 문화도 없고 타락한 세상 인간 세상과 멀리멀리 떨어지고 하늘과는 가까운 이런 곳이 극히 높은 산이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에스겔은 하나님이 이상 중에 데리고 놓으셨습니다. 사람이 올라가기 어려운 산이다. 히말라야 산도 사람이 올라가려면 못올라갑니다. 목숨걸고 등반해서 올라가야겠는데 이상 중에 데려갔으니까 날아서 가셨겠죠. 우리에게는 무엇일까. 에스겔을 높은 산에 놓으셨는데 우리에게 높은 산은 무엇일까.
세상을 내려다보는 곳 하늘과 가까운 것 그게 뭡니까. 성경 해석이 우리에게 정해지고 응용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산으로 올라가서 백 목사님은 몇 발자국 이기니까 다 내려왔답니다. 남북한의 상황을 보여주신답니다. 이상인데 그런 경우를 보는 건 쉽지 않은데 산에 있습니다. 이 세상과 높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말씀의 깨달음, 그 깨달음에 대한 자기의 실감하는 느낌 역사 이런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믿는 사람이 말씀을 깨닫고 믿음이 생기고 느껴지면 이 세상을 내려다봅니다. 논리적으로 이치적으로 실감적으로 계속되지 않아서 문제지, 여기도 그런 분 더러 있을겁니다. 이 세상의 돈도 이 세상의 명예도 향락도 취미도 어떤 것도 만족하지 않는 하찮게 보여지는 하늘이 좋고 하나님 좋고 참 사람이 좋고 가치관이 말하자면 이 세상을 초월해서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높은 산이다. 어떤 것보다 높은 가치를 깨닫는 거지요.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구원에 의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실제 실감, 뒤에가서 변질될찌라도 이 세상을 초월해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봤습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과 더불어 대속으로 의논할 때 베드로가 좋아서 주님에게 여기살면 좋겠습니다. 그 모습을 그들이 봤습니다. 이상 중에 본 거지요. 바울이 그랬습니다. 내가 몸을 떠나서 주와 함께 살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하지만 사명이 있어서 임의로 할 수 있지만 죽어서 주님과 함께 살고 싶다. 극히높은 산입니다. 임의로 하면 자살죄가 되는 거지요. 그럴 수는 없는 것이고 어떤 것에 대해서도 욕심이 안 가는 거지요. 그리 살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 중에 그리 살다가 막상 육을 가진 인생이라 밖에 나가서 세상을 보니까 사람보고 일보고 빠지면서 잊어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놓은 산에서 내려오고 이게 이제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나무로 향하여 남쪽을 보는 겁니다.
지옥이 없으면 천국 가치를 모르는 겁니다. 옛날 어른들 말이 있습니다. 옷을 살 때 헌 옷을 쉽게 버리지 말아라 헌 옷이 있어야 새 옷이 있는 거다. 그런데 요즘은 전부 다 새 것만 있으니까 새 것 귀한 줄 모릅니다. 이런 21세기 세계적인 경제 대국에 이렇게 살기 좋은 사라에 살면서 이 나라로 이름하여 지옥 같은 나라 헬조선이라고 북한으로 보내봐야합니다.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북한에 가면 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북한처럼 되기 쉽고 그리 만들고 그런 거지. 북한을 거기서 살아본 사람들은 이남에 오면 얼마나 좋은지.
가나안에 살아본 사람들은. 포원. 성경에 포원이라는 말 나오지요. 포원은 어릴 때 모친에게 자주 들었습니다. 그게 사무쳐 사무쳐 배를 곯고 가난에 찌들어 본 사람 돈의 포원이 됐다 그래서 좁은 땅덩어리 집만 지으면 경계 때문에, 요즘 사람들 잘 모르겠지만. 얼마나 가난에 포원에 졌던지 가난해 보니까 무식해보니까 가보면 공부해보면 별 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누려봤으니까.
성읍이 에스겔이 지금부터 측량을 하면서 마지막 48장에 보니까 예루살렘 성이 이게 바로 천국의 모습입니다. 구원에 완성된 모습. 그 과정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40장부터 수 없이 많은 문지기 방들이 있고 전부 천국에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성읍 현상같은 것이 있더라. 천국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이뤄갈 모습.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형상인데 에스겔에게 보여주셨고 40장부터 48장까지 기록이 됐는데 세밀하게 모아서 기록하신 것이고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