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0-토새(하나님의 자녀, 내 형제를 비판하지 말고 먼저 나를 고쳐가자)
찬송가 5장.
본문 말씀: 마태복음 7장 1절~2절.
성경에 기록된 많은 말씀 중에 가장 기본, 원론적인 말씀은 행한대로 갚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건설 구원의 기본입니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간 대로 보응이 있고 상벌이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입니다. 상받을 행동, 충성스럽게 살아가면 상 받을 수 있고, 그만큼 못했으면 상 없고, 벌받을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심지 않은데서 거두는 요행. 투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력은 적게 하고 수입은 많이 얻으려고 하는. 몸과 마음을 쓰고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요행을 바라는 투기. 신앙생활은 투자가 될 수는 있어도 투기가 되면 안됩니다. 땀 흘리고 흘린 만큼 얻는 것이고, 땀 흘린 것보다 수입이 적을 수는 있습니다. 타락 후 인간에게 정하신 법칙입니다. 모든 면이 다 그렇고 심는대로 거둡니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네가 남을 비판했느냐? 너도 비판을 받아 마땅하지. 당연한 것이지. 건설적이고 살리는 것이 아니라 훼방하는 것. 논인장단도 비판에 속한 것입니다. 혼자 마음에 생각해도, 군소리를 한 것도. 그 사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로 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잘못 보며 비판하고 정죄에 그치면 속. 양심에서 하나님께서 “너는 잘못이 없느냐?” 하십니다.
형제는 일반적으로 내 주변, 가까이에 있는 사람입니다. 동일선상에 있는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는 동일선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형제는 앞서고 뒷서는 것 있으나 같은 것입니다. 나와 가깝고, 친하고 잘 챙겨주는 사람. 내 새끼, 혈육은 무슨 짓을 해도 이쁘고. 혈육주의는 사람을 망칩니다. 그런 것이 있으면 정관, 정평, 정가가 안 됩니다.
반대로 왠지 밉살스러운 사람, 평소에 깔려 있거나 과거에, 오래전부터 사이가 안 좋은 사람, 성향이 나와 반대인 사람. 얼굴, 말, 웃어도 울어도.. 그 사람, 그 집안은 싫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그 사람이 하면 싫고, 깎아내리고 싶은.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 한 것이지만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 사람도 내 백성, 성도, 내 아들인데.
내가 아끼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을 내가 좋아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주님 피로 구속받은 백성. 그래서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람도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공지성의 하나님. 완전자이신 그분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대상이 죄를 지으셨지만 친히 오셨습니다. 너가 많은 사람 중 그 사람 만 싫어하는데 그만큼은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 긍휼 없는 심판을 행하면 긍휼 없는 심판이 있다.
아전인수. 자기 논에 물을 먼저 끌어다 쓴다는 뜻입니다. 무엇인가 맡은 것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쓰고, 적어도 공평하게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말씀을 먼저 나에게 (과거, 현재)에 적용하는 것. 무조건적으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판이 목적인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상이, 특정인에게 만 비판적인 것도 좋지 않은 것이고 예외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넘어지는 경우, 복이 빠져나가는 경우. 예를 들면 예배당이 큰데 큰 건물에 어느 한 부분에만 비가 똑똑 세고 있으면, 작은 한두군데 세면, 비가 세는 건물이 되어버립니다. 한 두가지 잘못으로 흠 있는 사람, 잘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에게만, 그 사람에게만 그러는 것도 잘못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말씀을 먼저 나에게 적용.
나는 누구에게 그런 면이 있는가? 누가 밉상스러운가?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다 빠져나가 버립니다. 사람이 넘어짐, 하나님의 축복이 빠져 나가는 것은 작은 죄, 사소한 것, 한 두가지. 인간관계, 한 두 특정인데 그런 마음이 있으면 그쪽으로 다 빠져 나가버리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어쨌든 고쳐야 할 것은 다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마태복음 7장 1절~2절.
성경에 기록된 많은 말씀 중에 가장 기본, 원론적인 말씀은 행한대로 갚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건설 구원의 기본입니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간 대로 보응이 있고 상벌이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입니다. 상받을 행동, 충성스럽게 살아가면 상 받을 수 있고, 그만큼 못했으면 상 없고, 벌받을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심지 않은데서 거두는 요행. 투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력은 적게 하고 수입은 많이 얻으려고 하는. 몸과 마음을 쓰고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요행을 바라는 투기. 신앙생활은 투자가 될 수는 있어도 투기가 되면 안됩니다. 땀 흘리고 흘린 만큼 얻는 것이고, 땀 흘린 것보다 수입이 적을 수는 있습니다. 타락 후 인간에게 정하신 법칙입니다. 모든 면이 다 그렇고 심는대로 거둡니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네가 남을 비판했느냐? 너도 비판을 받아 마땅하지. 당연한 것이지. 건설적이고 살리는 것이 아니라 훼방하는 것. 논인장단도 비판에 속한 것입니다. 혼자 마음에 생각해도, 군소리를 한 것도. 그 사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로 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잘못 보며 비판하고 정죄에 그치면 속. 양심에서 하나님께서 “너는 잘못이 없느냐?” 하십니다.
형제는 일반적으로 내 주변, 가까이에 있는 사람입니다. 동일선상에 있는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는 동일선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형제는 앞서고 뒷서는 것 있으나 같은 것입니다. 나와 가깝고, 친하고 잘 챙겨주는 사람. 내 새끼, 혈육은 무슨 짓을 해도 이쁘고. 혈육주의는 사람을 망칩니다. 그런 것이 있으면 정관, 정평, 정가가 안 됩니다.
반대로 왠지 밉살스러운 사람, 평소에 깔려 있거나 과거에, 오래전부터 사이가 안 좋은 사람, 성향이 나와 반대인 사람. 얼굴, 말, 웃어도 울어도.. 그 사람, 그 집안은 싫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그 사람이 하면 싫고, 깎아내리고 싶은.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 한 것이지만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 사람도 내 백성, 성도, 내 아들인데.
내가 아끼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을 내가 좋아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주님 피로 구속받은 백성. 그래서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람도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공지성의 하나님. 완전자이신 그분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대상이 죄를 지으셨지만 친히 오셨습니다. 너가 많은 사람 중 그 사람 만 싫어하는데 그만큼은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 긍휼 없는 심판을 행하면 긍휼 없는 심판이 있다.
아전인수. 자기 논에 물을 먼저 끌어다 쓴다는 뜻입니다. 무엇인가 맡은 것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쓰고, 적어도 공평하게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말씀을 먼저 나에게 (과거, 현재)에 적용하는 것. 무조건적으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판이 목적인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상이, 특정인에게 만 비판적인 것도 좋지 않은 것이고 예외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넘어지는 경우, 복이 빠져나가는 경우. 예를 들면 예배당이 큰데 큰 건물에 어느 한 부분에만 비가 똑똑 세고 있으면, 작은 한두군데 세면, 비가 세는 건물이 되어버립니다. 한 두가지 잘못으로 흠 있는 사람, 잘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에게만, 그 사람에게만 그러는 것도 잘못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말씀을 먼저 나에게 적용.
나는 누구에게 그런 면이 있는가? 누가 밉상스러운가?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다 빠져나가 버립니다. 사람이 넘어짐, 하나님의 축복이 빠져 나가는 것은 작은 죄, 사소한 것, 한 두가지. 인간관계, 한 두 특정인데 그런 마음이 있으면 그쪽으로 다 빠져 나가버리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어쨌든 고쳐야 할 것은 다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