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11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1-07-11조회 247추천 56
2021년 7월 11일 주일 오후
찬송가: 18장, 117장
본문: 마태복음 7장 7절 ~ 12절
오전에 말씀을 알기 쉽게 정리를 하면 일곱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성경의 보편성을 가지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 기록이 보편성, 성경에 기록된 단어라든지가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보편성, 일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믿는 사람이 또 기독교를 조롱하는 사람들이 말씀을 악용하고 비웃고 여러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보편성이라는 말은 일반적이라는 말이고, 일반적이라는 말은 상식적이라는 말입니다. 순리적인 것입니다. 순리라는 것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렇겠다, 그럴 수 밖에 없겠다입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의 설교를 안 믿는 사람들이 들어보고, 안 믿지만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된대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이용하고 악용도하고 그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또 세상에는 요즘 점령군, 해방군 이런 말 있습니다.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군이 해방군이라고 하고 그랬습니다. 소련군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북한을 점령했습니다. 소련은 공산주의로써 어떤 문구를 써야 하기 알기 때문에, 미군은 실질적이니까 각각 점령군, 해방군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실제로 점령군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독립시켜주려고 가려고 했고, 소련은 점령을 시키려고 했습니다. 공산주의의 나라를 만들어버렸잖습니까. 이남은 자본주의를 만들고 독립시키고 가려고 했고, 사람의 내면을 보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알만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점령군이라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 나라에 절반 정도 된다는 것이지요.
눈이 세 개 달린 사람들, 눈이 한 개만 달린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눈이 두 개 박힌 사람이 가니까 눈이 두 개라서 장애인이라고합니다.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이 안 되는 말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입니다.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무지하다고 해야 할지, 이 나라는 굉장히 위험천만하고 알면서도 그 말을 하면 나쁜 짓입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많은 다수가 그 말을 듣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이렇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믿을 곳이 못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임시처소지, 영구적인 처소가 아닙니다. 이런 대상에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투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데 우리들이 그렇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 결혼해서 간 청년도 안 믿는 가정도 중간반에서 전도되어 왔습니다. 전도 되었는데, 여기서 신앙생활하면서 점점 발전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항상 앞자리에서 앉아서 조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보았습니다. 그대로 말씀을 다 듣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결혼할 시점에서 참 많이 자랐습니다. 특별한 거 없습니다. 자기가 말씀 듣고, 자기대로 깨달아서 그렇습니다.
올라가다가 교만하면 그 순간 떨어지고, 떨어지고 나서 다시 올라가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여기 본문에 깔고 가르치는 것이 두 가지를 서론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믿는 신앙생활은 일상생활에 구원받는 것이지, 불교는 영세주의이기 때문에 산에 들어가야 정상입니다. 그게 불교입니다. 불교가 도심에 절을 만들어놓고, 휴대폰을 하고 그런 것은 타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든 기독교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 종교는 세속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을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을 봤느냐하니까 진실로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느니라 그랬습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세상을 다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 분이 바로 태초에 말씀이 되시나, 기독교라는 것은 태초부터 세상의 비전부터 세상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부인한 것입니다.
보편성, 주권 두 가지를 기억하시고, 첫 번째로 구하는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랬습니다. 구하는 사람, 찾는 사람 두드리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하는 사람.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에게는 구하는 것이 필요가 없습니다. 무언가 하는 사람이 되고, 구원을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 자타의 구원인데, 나는 믿었고 다른 사람을 내가 전도해서 하나님 앞으로 교회로 끌고오기 위해서 전도를 하려고 하면 어떤 사람을 두고, 전도해야겠다. 그러면서 두고있으면 그런 사람은 마음이 가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인도해야겠는데, 방법을 찾게 되겠지요. 전도를 해보면, 전도를 해서 구하게되고 찾게 되고 문을 두드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의지가 약하고 자기 속에 있는 나쁜 악성을 찾고 고치려고 해보면 낙심이 됩니다. 계속 넘어지고 안되니까 그래서 나중에는 자기 자신같은 사람이 있을까, 도대체 이 세상에 나 같은 죄인은 없을거다. 그게 참 인간이라면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열 번을 넘어지고 백 번을 넘어져도 일어서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그러시지, 절에 있으면 버려버립니다. 그래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했습니다.
자기 구원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이걸 위해서 기도를 좀 해야겠는데 기도가 안되고, 성경이 잘 안 펴지고 그럴 때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안 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안 하는 사람이고, 죽은 사람, 자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세마포,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지요. 기독교는 실제로 말을 해야하고 조심을 해야하고 고쳐야하고 그래서 사람이 변화가 되어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하는 사람은 세마포, 행실로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다보니 치열하게 전투가 세워지고 기도의 필요성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필연적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가 구하라 찾으라 두드려라 하니까 욕심쟁이가 무조건 찾고 두드리라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악용하는 것인데, 구원을 위해서 구하는 것입니다. 나를 고치게 해서,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씀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쁜 것을 고치기 위해서 그게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어야합니다.
동생이 나쁜 짓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잡아서 고함을 지르고 매를 들려고 합니다. 동생이 잘못했지만 그렇게 심하게 하시면 큰일이 났습니다 하고 말리면 아버지가 비켜 그러겠습니까 아니면 형 답다 그러겠습니까. 매일 때려도 속 마음은 고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기도는 좋은 것이 아닌가요? 복 받을 만도 합니다.
우리도 지금 예배당 기도하지만 우리는 간절이 없죠. 불편할 뿐이지.
주일 날에 차를 타고 가야하는데, 차를 주옵소서 그럴 수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할 수 없지만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연결되는데 구하되, 하나님은 심부름꾼이 아니고 최선을 다하면서 구해야합니다. 구하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공부를 못하니까 복음에 덕이 안됩니다 이렇게 기도를 했으면 있는 힘을 다해서 공부를 다 해야합니다. 진정 복음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성적이 올라가게 되어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다 되어있습니다.
기도하고 죽도록 노력하는데에도 성적이 안 올라가면 살펴보아야합니다. 왜 성적이 안 올라가지? 하고 살펴보고 고장난 부분을 고쳐야합니다. 막지 않고 빠져나가려고 하면 허물이지요. 그게 상식 아닌가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서 구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최선을 다하면서도 아버지께 맡겨두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면서 몇 년을 해 보고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내 기도는 귀를 막고 계시는지 효력도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낙심을 해버립니다. 그럴 때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생각해봅니다. 이삭을 주신다고 했는데 100세가 되어서 주셨고 아브라함에게 뭘 주신다고 했습니까.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날 때 받았습니까? 이삭, 야곱이 받았습니까? 가나안 땅에 살기는 살았는데, 붙어살았습니다.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요셉될 때 요셉의 믿음으로 가나안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이 아니라 천국을 주시려나보다 이렇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하면 앞에 말씀대로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면 구하고 찾고 두드릴 것이 틀림없이 생겨지게 됩니다. 구원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면 필연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두지 말고, 구할 곳이 참 많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는데 신앙 결혼을 해야겠습니다. 네 번째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맡겨두는 것입니다.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오직 순수하게 순결하게 간절히 구합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면 나는 할 일을 전부 한 것입니다. 때와 기한은 너희 알 거 아니다.
다섯 번째는 이렇게 했으면 한 만큼, 믿은 만큼, 노력한 만큼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아버지께 맡긴 사람이 되게 되어집니다. 실제 생활에서 이렇게 살아서 우리들이 이런 생활을 하고 바꾸어지지 않으면 헛일이지요. 복음이라는 것은 실제 살고 이루어져야 복음이 됩니다. 뭐든지 상식이다. 당연한 것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전부 다다. 구원이란 이런 것이고 구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가: 18장, 117장
본문: 마태복음 7장 7절 ~ 12절
오전에 말씀을 알기 쉽게 정리를 하면 일곱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성경의 보편성을 가지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 기록이 보편성, 성경에 기록된 단어라든지가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보편성, 일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믿는 사람이 또 기독교를 조롱하는 사람들이 말씀을 악용하고 비웃고 여러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보편성이라는 말은 일반적이라는 말이고, 일반적이라는 말은 상식적이라는 말입니다. 순리적인 것입니다. 순리라는 것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렇겠다, 그럴 수 밖에 없겠다입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의 설교를 안 믿는 사람들이 들어보고, 안 믿지만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된대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이용하고 악용도하고 그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또 세상에는 요즘 점령군, 해방군 이런 말 있습니다.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군이 해방군이라고 하고 그랬습니다. 소련군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북한을 점령했습니다. 소련은 공산주의로써 어떤 문구를 써야 하기 알기 때문에, 미군은 실질적이니까 각각 점령군, 해방군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실제로 점령군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독립시켜주려고 가려고 했고, 소련은 점령을 시키려고 했습니다. 공산주의의 나라를 만들어버렸잖습니까. 이남은 자본주의를 만들고 독립시키고 가려고 했고, 사람의 내면을 보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알만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점령군이라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 나라에 절반 정도 된다는 것이지요.
눈이 세 개 달린 사람들, 눈이 한 개만 달린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눈이 두 개 박힌 사람이 가니까 눈이 두 개라서 장애인이라고합니다.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이 안 되는 말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입니다.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무지하다고 해야 할지, 이 나라는 굉장히 위험천만하고 알면서도 그 말을 하면 나쁜 짓입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많은 다수가 그 말을 듣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이렇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믿을 곳이 못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임시처소지, 영구적인 처소가 아닙니다. 이런 대상에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투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데 우리들이 그렇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 결혼해서 간 청년도 안 믿는 가정도 중간반에서 전도되어 왔습니다. 전도 되었는데, 여기서 신앙생활하면서 점점 발전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항상 앞자리에서 앉아서 조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보았습니다. 그대로 말씀을 다 듣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결혼할 시점에서 참 많이 자랐습니다. 특별한 거 없습니다. 자기가 말씀 듣고, 자기대로 깨달아서 그렇습니다.
올라가다가 교만하면 그 순간 떨어지고, 떨어지고 나서 다시 올라가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여기 본문에 깔고 가르치는 것이 두 가지를 서론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믿는 신앙생활은 일상생활에 구원받는 것이지, 불교는 영세주의이기 때문에 산에 들어가야 정상입니다. 그게 불교입니다. 불교가 도심에 절을 만들어놓고, 휴대폰을 하고 그런 것은 타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든 기독교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 종교는 세속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을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을 봤느냐하니까 진실로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느니라 그랬습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세상을 다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 분이 바로 태초에 말씀이 되시나, 기독교라는 것은 태초부터 세상의 비전부터 세상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부인한 것입니다.
보편성, 주권 두 가지를 기억하시고, 첫 번째로 구하는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랬습니다. 구하는 사람, 찾는 사람 두드리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하는 사람.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에게는 구하는 것이 필요가 없습니다. 무언가 하는 사람이 되고, 구원을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 자타의 구원인데, 나는 믿었고 다른 사람을 내가 전도해서 하나님 앞으로 교회로 끌고오기 위해서 전도를 하려고 하면 어떤 사람을 두고, 전도해야겠다. 그러면서 두고있으면 그런 사람은 마음이 가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인도해야겠는데, 방법을 찾게 되겠지요. 전도를 해보면, 전도를 해서 구하게되고 찾게 되고 문을 두드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의지가 약하고 자기 속에 있는 나쁜 악성을 찾고 고치려고 해보면 낙심이 됩니다. 계속 넘어지고 안되니까 그래서 나중에는 자기 자신같은 사람이 있을까, 도대체 이 세상에 나 같은 죄인은 없을거다. 그게 참 인간이라면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열 번을 넘어지고 백 번을 넘어져도 일어서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그러시지, 절에 있으면 버려버립니다. 그래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했습니다.
자기 구원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이걸 위해서 기도를 좀 해야겠는데 기도가 안되고, 성경이 잘 안 펴지고 그럴 때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안 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안 하는 사람이고, 죽은 사람, 자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세마포,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지요. 기독교는 실제로 말을 해야하고 조심을 해야하고 고쳐야하고 그래서 사람이 변화가 되어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하는 사람은 세마포, 행실로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다보니 치열하게 전투가 세워지고 기도의 필요성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필연적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가 구하라 찾으라 두드려라 하니까 욕심쟁이가 무조건 찾고 두드리라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악용하는 것인데, 구원을 위해서 구하는 것입니다. 나를 고치게 해서,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씀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쁜 것을 고치기 위해서 그게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어야합니다.
동생이 나쁜 짓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잡아서 고함을 지르고 매를 들려고 합니다. 동생이 잘못했지만 그렇게 심하게 하시면 큰일이 났습니다 하고 말리면 아버지가 비켜 그러겠습니까 아니면 형 답다 그러겠습니까. 매일 때려도 속 마음은 고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기도는 좋은 것이 아닌가요? 복 받을 만도 합니다.
우리도 지금 예배당 기도하지만 우리는 간절이 없죠. 불편할 뿐이지.
주일 날에 차를 타고 가야하는데, 차를 주옵소서 그럴 수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할 수 없지만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연결되는데 구하되, 하나님은 심부름꾼이 아니고 최선을 다하면서 구해야합니다. 구하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공부를 못하니까 복음에 덕이 안됩니다 이렇게 기도를 했으면 있는 힘을 다해서 공부를 다 해야합니다. 진정 복음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성적이 올라가게 되어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다 되어있습니다.
기도하고 죽도록 노력하는데에도 성적이 안 올라가면 살펴보아야합니다. 왜 성적이 안 올라가지? 하고 살펴보고 고장난 부분을 고쳐야합니다. 막지 않고 빠져나가려고 하면 허물이지요. 그게 상식 아닌가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서 구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최선을 다하면서도 아버지께 맡겨두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면서 몇 년을 해 보고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내 기도는 귀를 막고 계시는지 효력도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낙심을 해버립니다. 그럴 때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생각해봅니다. 이삭을 주신다고 했는데 100세가 되어서 주셨고 아브라함에게 뭘 주신다고 했습니까.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날 때 받았습니까? 이삭, 야곱이 받았습니까? 가나안 땅에 살기는 살았는데, 붙어살았습니다.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요셉될 때 요셉의 믿음으로 가나안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이 아니라 천국을 주시려나보다 이렇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하면 앞에 말씀대로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면 구하고 찾고 두드릴 것이 틀림없이 생겨지게 됩니다. 구원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면 필연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두지 말고, 구할 곳이 참 많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는데 신앙 결혼을 해야겠습니다. 네 번째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맡겨두는 것입니다.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오직 순수하게 순결하게 간절히 구합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면 나는 할 일을 전부 한 것입니다. 때와 기한은 너희 알 거 아니다.
다섯 번째는 이렇게 했으면 한 만큼, 믿은 만큼, 노력한 만큼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아버지께 맡긴 사람이 되게 되어집니다. 실제 생활에서 이렇게 살아서 우리들이 이런 생활을 하고 바꾸어지지 않으면 헛일이지요. 복음이라는 것은 실제 살고 이루어져야 복음이 됩니다. 뭐든지 상식이다. 당연한 것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전부 다다. 구원이란 이런 것이고 구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