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2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01-12조회 97추천 12
2025년 1월 12일 주일 오후
찬송: 94장, 155장
본문: 고린도전서 4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본문에서 교회를 맡아서 함께 운영할 직분 맡은 사람들에 대해서 가질 자세 조심할 걸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은 천국 건설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거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건설하는 게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지상단체가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곳은 이 세상에 있으나 섞이면 안되는 것이고 교회 안에 세상에 들어가서도 안되는 겁니다. 세상은 정치사상 문화사상 유행같은 거 이런 게 교회 분위기에 들어오면 안되는 겁니다. 교회와 세상의 관계는 배와 바다와 같다. 바다 위를 다니는 배와 같다고 합니다. 바다는 세상입니다. 배는 교회입니다. 배는 쓸모도 없고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무용지물이지요. 그런데 그 바다가 들어와버리면 침몰이 되어버립니다. 뗄 수 없는 관계 그러나 구분되어야하는 게 교회와 세상의 관계입니다.
이걸 그래서 다른 것으로 비유하기를 겨자씨로 비유합니다. 식물의 일종입니다. 겨자씨는 반드시 흙이 있어야합니다. 흙이 없는 겨자씨는 쓸모가 없습니다. 땅에 심어야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겨자씨 믿음을 몇 군데 해놨습니다. 그래서 교회 신앙이라는 것은 이 세상 안에서 있어야하고 세상을 통해서 구원을 통해 하지만 교회는 교회고 세상은 세상이고 그리 나가는 겁니다. 정교 분리라는 말이 이걸 원칙으로 하는 말인데 변질이 된 겁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교회를 간섭할 수도 없고 교회는 당연히 상관없이 그러는 겁니다. 단순히 따로 가자가 아닙니다.
세상을 떠나서 살 수는 없는데 불교처럼 따로나가고 등지고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절정이랄까 성경대로 인본주의 사상, 성경을 인본주의 사상으로 해석하는 게 가득찼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관점과 반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종교를 막론하고 온 인류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인본주의입니다. 이거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공산주의 불교 정치 어느 종교 철학 사상도 다 좋아합니다. 온 세계가 마지막에 하나가 되는데 교회가 인본주의가 되면 안됩니다. 신본주의지. 그래서 성경 해석도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면 전부 엉터리로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대 말씀인데 인본적으로 풀어나가니까 못믿겠다는 거지요. 세상 속에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를 두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상들 유행들 사람들의 가치관들 사고 방식들, 이런 세상적이고 그런 것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속화되는 겁니다.
변질되지 않은 성경을 지키려고 굉장히 노력을 해야합니다. 지금 세상은 따로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지요. 개와 고양이를 사람으로 대하는 세상입니다. 그게 옳은 것인가요.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남자를 아내로 맞아 살고싶다. 정상입니까. 괴물들이지요 이런 이야기 하면 차별금지법으로 처벌한다는 게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다 그렇습니다. 이런 걸 반대한다고 교회가 난리인데 남녀 이성간의 사랑을 잘못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남녀 연애를 부추겼습니다. 그래서 연애당이 되었고 타락되었습니다. 저희 어릴 때만해도 연애하면 비웃음거리가 됐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학생회 하면 학생회장은 장로아들 목사 아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합창대 청년부 이래서 남녀 섞어서 하니까 아이들 호기심이 얼마나 모이겠습니까. 그러니 엉망이 되어버렸지요. 연애하는 게 자연스럽게 된 겁니다. 그렇게 해 놓고 이제야 동선 반대한다고 난리입니다. 세상도 그렇게 타락하지 않는데 롯이 소돔에 간 다음에 소돔 성을 멸하려 할 때 아브라함이 기도할 때 50명 45명 30명 20명 마지막에 10명까지 기도합니다. 아브라함 위해서 목숨 바친 사람이 300명이 넘었습니다. 설명 10명은 되겠지. 10명이 없어서 유황불비에 멸하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면 타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초창기에 경찰서 10개 세운 것보다 교회하나 세우는 게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권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타락해서 엉망이 되고 만 거지요.
교회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겁니까. 뭐가 교회입니까. 사람이 교회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바로되면 타락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이 들어간 회사에 들어가면 회사가 바꿔지는 게 맞습니다. 사실 이 동네가 바꿔져야합니다. 신풍은 동네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시골이지만은 전부 신풍교회 다 되어버렸고 함부로 무시 못할걸요. 그게 권력을 썼습니까 뭘 했습니까. 우리가 바로 살면 우리 교회 주변은 교회를 욕얻어먹는 일은 없어야합니다. 다른 교회들 교계가 어떻게 나갈찌라도 많아야 생명이 유지되는 게 아닙니다. 생명은 하나만 있으면 유지가 되는 겁니다. 하나가 있으면 아브라함 한 사람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둘 낳았으나 가버렸고 야곱이 열둘 낳았습니다. 한 교회만 바로 되고 어떤 역사가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것은 세상에 있는 겁니다.
꼭 기억하시는 것은 믿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겁니다. 친구 따라서 그들이 보니까 따라가고 춤추니까 따라춤추고 따라 노래부르고 이런 취미하니까 따라 하고 우리 교회 학생들은 안 그럴 겁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데 교만하면 나는 다르다. 사람은 별 사람이 없어서 나는 약하다, 더 약하다. 나는 당신의 절반도 아닙니다. 솔로몬이 그래서 지혜를 구한 겁니다. 우리 아버지는 위대했는데 반도 못되어 지혜를 구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라는 것은 결코 하나만 자라간 게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로 자라간다. 약함으로 자라간다. 그러면서 다하니까 얼마든지 쓰시고 채워두시는 겁니다. 엄마엄마 불러재끼는데 놀러가버리면 엄마가 아닌 겁니다. 엄마는 아무리 급해도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살든지 죽든지하지 자식 빼놓고 어디 간다 엄마 아닙니다.
원치않게 신앙적으로 그럴 수 있으나 잘 가진 않죠. 베스메스로 가는 황소가 울면서 가는 게 그거지요. 어쩔 수 없이 두고 떠나는 것이 그겁니다. 짐승도 그러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지으셨고 한시적인 세상입니다. 과거에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는데 택시 가운데서 한시 택시라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한시적인 세상입니다. 일정 기간 주신 게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끝이 있습니다. 천국 건설할 천국의 모형 하늘에서 내려온 것 그게 교회입니다. 세상에 있으나 하늘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교회란 곳은 그런 곳입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이런 말씀을 그럴 때 면밀하게 살피고 성경에 맞으면 믿는 게 신앙입니다. 성경보고 믿는 게 신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에 있는 천국의 모형이고 5절에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집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하게 된 것이고 운영하시는데 그 교회를 책임지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게 말씀을 잡으면 반역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를 맡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뭘 만들었다고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교인들의 연보로 다 빼놓고 성김 중심 다 처먹고. 지금도 그런 교회 얼마든지 있습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그거. 다윗 시대에 얼마나 존경하고 높인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전부가 다윗 같은 겁니다. 모세 전부와 200만명은 같은겁니다. 그래서 아는 분들은 벌벌떨면서 조심히 대합니다. 결코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권세를 함부러 쓰지 않습니다. 교회를 공회를 인도하는 목사님은 성경에 형제라는 말이 나옵니다. 형제라는 뜻이 뭐지요. 한 아버지 밑에서 난 사람을 형제라고 합니다. 위로 올라가면 아버지 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위 아래가 있는 거지요.
교회란 곳은 이런 위계 질서가 있는 곳입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앞선 사람있고 뒤에 있는 사람이 있는데 전부 엄연히 있는 겁니다. 다 형제인데, 이걸 질서라고 합니다. 먼저 깨닫고 먼저 알고 그런 분이 말을 하면 같은 목사인데 왜 내가 하는 말은 지도로 받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함께하지 못합니다. 말을 하면은 형제로 보면 되는데 나도 목사인데 같은 목사인데 아니지요. 안수 받은 목사님이고 안수 한 목사님인데 안수 한 목사님은 선배지요. 선배가 말하면 후배가 말하는 게 뭐가 자존심상한다고 합니까. 처음에는 잘 따라가다가 어느정도 가다보니 변질이 되지 못한겁니다. 그 인식을 고치기 전에는 아마 돌아오기 어려울 겁니다. 교회가 뭔지 모릅니다. 공회가 뭔지도 모르고 신앙이 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 건설 교회를 위해서 지상 교회를 세우시고 지상 교회에 직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직분을 세우시고 그런 일꾼 맡은 그분들이 말씀을 합니다. 사람이 무슨 뜻이라 그랬습니까. 다 사람인데 사람이 왜 사람이라고 그럽니까. 하나님이 세웠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그럽니다. 사실이 그런데 그 사실은 악용이라고 하니까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은 사실입니다. 그 교회가 바로 운영이 되면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의 일꾼들을 마땅히 여겨야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그리스도란 자기가 먼저 하나님이 되고 먼저 된 우리가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로 붙이고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말씀 뜻을 먼저 깨달아서 실행을 하고 전해주고 그 다음은요. 하나님께 내가 순종하고 다른 사람 순종시키고 이 세 가지가 뭐라고 하지요. 제사장. 선지자 왕. 이게 그리스도직이고 이 일을 하는 사람을 가르켜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한 겁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지요 하나님의 비밀은 맡은자로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 비밀은 알아야하는 사람은 알 때 비밀입니다. 아무나 알지 못합니다. 여기 성경 다 아십니까. 읽기는 다 읽었고 내용은 알겠지요. 그런데 뜻을 모릅니다. 그래서 비밀입니다. 알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대속을 입어서 그리스도화 되글ㄹ 소망하고 당부하면서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화를 시키려고 하는 그런 것이 우리고 일꾼입니다. 그들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신 겁니다. 알아지게 되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성경 배우지 않았습니다 백 목사님은. 그 목사님이 뭐라고 하던가요 아주 적극적으로 소개한 목사님이 같이 공부를 했는데 백 목사님께서 신학교 신학자 공부하시면서 백 목사님 말씀하고 가르치는 내용하고 똑같았답니다. 그 말씀이 신학자들의 정통에서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그 분이 지켜봤기 때문에 최고다 그렇게 말씀하고 다녔습니다.
그런 분들은 인생을 다 바쳐서 그러다보니까 충성하신만큼 열어주시는 거지요. 저는 성경 알겠습니까 무식한 사람인데. 아 이런 뜻이구나 그래서 설교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면 아는 것이고. 그 비밀이라는 것은 비밀번호와 비밀은 간수를 어떻게합니까. 함부로 안 알려주지요. 그러나 그 비밀이 알아야할 때는 똑같이 하는 겁니다. 백 목사님의 깨달음을 하고 설교 타이핑에 없는 옛날 설교 노트를 쥐고 나만 아는 깨달음이다 하고 그런 사람들 시무투표에 반대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은 눈초리를 모르면 어려운 거지요. 비밀이라는 것은 삼손이 여인을 취하려 내려가다가 어린 사자를 만납니다. 찢어놓고 그 사자의 몸에서 꿀을 취했습니다. 먹고 부모님에게 주고 알리지 않습니다. 그런 걸 비밀이라고 합니다. 자기 역사들 함부러 말하는 게 아닙니다. 간직하는 겁니다.
비밀을 맡았으니까 기록을 해야합니다. 두 번째는 비밀을 맡은 자를 기록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성을 구해야합니다. 구하기 전에 먼저 노래를 해야합니다. 소원하고 충성하고 노력하고 그게 할 일입니다. 사람이 소원하는 거 하고 노력하는 거 하고 다 되지 않기 때문에 고하는 게 필요합니다. 간구. 충성인이라. 일 맡은 육군들 다 되는 겁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거 어디서든지 그렇습니다.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뭘 맡아서 일을 하려면 그런 겁니다. 시상 기준을 혼자 정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누구 1등 누구 2등 누구 3등 그랬습니다.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저에게 말을 합니다. 저는 듣고 그런가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게 받아들이라고 하는 거지요. 이런 저런 말들이 들리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자기 중심이 있고 각도가 있고 다 다른겁니다. 특히나 어떤 직분을 맡았던지 사람 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이런 것들이 바늘 가지고 확 찔러보지요. 아픈가요. 얼마나 아픕니까.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지를 건데 발가락 그거 끝에 조그만한데, 자기 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부위에 죽은 살이 있었습니다. 감각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붙어있지만 신경이 다 죽었습니다. 정상적인 몸에 붙어있으면 아픈겁니다. 하찮은 게 교회 일은 없습니다. 그런 일을 하가다 보면 사람들의 이런 말들이 생깁니다. 이럴 때 그 말을 듣고 영향을 받고 피동을 받으면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내가 아는 일에 사람들이 이런 저러 하는 거 지극히 매우 작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지 않습니다. 참고만 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구나 그 사람은 그렇게 하는구나. 다양성의 시대 아닌가요. 옛날에는 물건을 팔 때 적게 만들어서 비싸게 파는 게 있고 많이 팔아서 조금씩 많이 파는 것도 있고 여러 방법이 있는 겁니다. 그 분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예배당에 커튼을 달아야합니까 말아야합니까. 백 목사님 분교 전에 30개인데 원래 1층 예배당 뒤에 휘장은 무슨 색인지 혹시 아십니까. 감자주라고 합니다. 노래불렀습니다. 우리 교회도 감자주색이었습니다. 너무 좀 케케먹었습니다. 노란색이 좋겠습니다. 아이보리가 좋겠습니다. 뭐가 좋은겁니까. 커튼은요 에어컨은요. 이건 기준이 없는겁니다. 그래서 한번씩 다 하면 아 그렇습니까. 사람사람마다 그렇게 말할 때 그렇게 하고 일반적으로 어린 신앙 맞춰서 하는 겁니다.
그런 거 다 들으면 배가 산으로 갈 것이고 당나귀를 나중에 끌고 가다가 타고 가다가 메고 가다가 빠져서 죽게 만드는 것이지요. 교회 일을 맡다보면 별별 말이 다 나옵니다. 감정 자존심 다 하게 되면 문제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성경 깨달음으로 단연코 말합니다. 성경 깨달아 실행하려면 사역에 일한 거 충성 기록이 그랬습니다. 로마서부터 히브리서까지 다 했지요. 다 탁월했습니다. 자책할 그럴 걸 못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사도바울은 마지막까지 양심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의 언행심사를 해 볼 때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이야 갖다대면 죄송해서 얼굴도 못 드는데 믿기 전에 몰라서 살 수 없고 믿고 난 다음부터 세상 떠나는 날까지 참 존경할만 하지요. 그런데 그런 사도 바울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의롭다고 단정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인간 기준 세상기준 말씀으로 살피는데 그러면 의롭다고 단정 못하겠다. 바울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자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자기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고난 받은 사람. 이름이 뭡니까. 뭐라고요, 욥이지요. 욥은 자기 속에 있는 것 때문에 그렇게 극난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바울도 나도 사람입니다. 나도 모르는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5절 때가 이르기 전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라. 주님 오시면 어둠에 감추인 것들 다 드러납니다. 눈 덮힌 산 들어보셨지요. 근래들어서 눈이 잘 안오지만은 전에 눈이 한번씩 왔는데 호남서는 눈이 자주 많이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 오시면 눈이 다 녹아버립니다. 쓰레기장에 눈이 나버리면 전부 다 덮힙니다. 눈덮힌 쓰레기장은 깨끗하죠 하얗고. 그런데 치우면 오만 쓰레기가 다 나옵니다. 사람의 모습이 다 그렇고 주님이 돌아오시면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가 오시면 어둠에 감추인 것들 드러났습니다. 각 사람에게 칭찬이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 우리는 일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할 것은 소원하고 충성하고 구할 것이 있습니다.
그 누가 무슨 말해도 그런 겁니다.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싸울려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상대를 안하면 됩니다. 무시하지 마시고 네 번째 최종 판단은 하나님만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주님 오실 그 날이 다 드러나고 생각하면서 충성으로 감당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94장, 155장
본문: 고린도전서 4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본문에서 교회를 맡아서 함께 운영할 직분 맡은 사람들에 대해서 가질 자세 조심할 걸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은 천국 건설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거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건설하는 게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지상단체가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곳은 이 세상에 있으나 섞이면 안되는 것이고 교회 안에 세상에 들어가서도 안되는 겁니다. 세상은 정치사상 문화사상 유행같은 거 이런 게 교회 분위기에 들어오면 안되는 겁니다. 교회와 세상의 관계는 배와 바다와 같다. 바다 위를 다니는 배와 같다고 합니다. 바다는 세상입니다. 배는 교회입니다. 배는 쓸모도 없고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무용지물이지요. 그런데 그 바다가 들어와버리면 침몰이 되어버립니다. 뗄 수 없는 관계 그러나 구분되어야하는 게 교회와 세상의 관계입니다.
이걸 그래서 다른 것으로 비유하기를 겨자씨로 비유합니다. 식물의 일종입니다. 겨자씨는 반드시 흙이 있어야합니다. 흙이 없는 겨자씨는 쓸모가 없습니다. 땅에 심어야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겨자씨 믿음을 몇 군데 해놨습니다. 그래서 교회 신앙이라는 것은 이 세상 안에서 있어야하고 세상을 통해서 구원을 통해 하지만 교회는 교회고 세상은 세상이고 그리 나가는 겁니다. 정교 분리라는 말이 이걸 원칙으로 하는 말인데 변질이 된 겁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교회를 간섭할 수도 없고 교회는 당연히 상관없이 그러는 겁니다. 단순히 따로 가자가 아닙니다.
세상을 떠나서 살 수는 없는데 불교처럼 따로나가고 등지고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절정이랄까 성경대로 인본주의 사상, 성경을 인본주의 사상으로 해석하는 게 가득찼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관점과 반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종교를 막론하고 온 인류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인본주의입니다. 이거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공산주의 불교 정치 어느 종교 철학 사상도 다 좋아합니다. 온 세계가 마지막에 하나가 되는데 교회가 인본주의가 되면 안됩니다. 신본주의지. 그래서 성경 해석도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면 전부 엉터리로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대 말씀인데 인본적으로 풀어나가니까 못믿겠다는 거지요. 세상 속에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를 두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상들 유행들 사람들의 가치관들 사고 방식들, 이런 세상적이고 그런 것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속화되는 겁니다.
변질되지 않은 성경을 지키려고 굉장히 노력을 해야합니다. 지금 세상은 따로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지요. 개와 고양이를 사람으로 대하는 세상입니다. 그게 옳은 것인가요.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남자를 아내로 맞아 살고싶다. 정상입니까. 괴물들이지요 이런 이야기 하면 차별금지법으로 처벌한다는 게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다 그렇습니다. 이런 걸 반대한다고 교회가 난리인데 남녀 이성간의 사랑을 잘못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남녀 연애를 부추겼습니다. 그래서 연애당이 되었고 타락되었습니다. 저희 어릴 때만해도 연애하면 비웃음거리가 됐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학생회 하면 학생회장은 장로아들 목사 아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합창대 청년부 이래서 남녀 섞어서 하니까 아이들 호기심이 얼마나 모이겠습니까. 그러니 엉망이 되어버렸지요. 연애하는 게 자연스럽게 된 겁니다. 그렇게 해 놓고 이제야 동선 반대한다고 난리입니다. 세상도 그렇게 타락하지 않는데 롯이 소돔에 간 다음에 소돔 성을 멸하려 할 때 아브라함이 기도할 때 50명 45명 30명 20명 마지막에 10명까지 기도합니다. 아브라함 위해서 목숨 바친 사람이 300명이 넘었습니다. 설명 10명은 되겠지. 10명이 없어서 유황불비에 멸하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면 타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초창기에 경찰서 10개 세운 것보다 교회하나 세우는 게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권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타락해서 엉망이 되고 만 거지요.
교회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겁니까. 뭐가 교회입니까. 사람이 교회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바로되면 타락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이 들어간 회사에 들어가면 회사가 바꿔지는 게 맞습니다. 사실 이 동네가 바꿔져야합니다. 신풍은 동네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시골이지만은 전부 신풍교회 다 되어버렸고 함부로 무시 못할걸요. 그게 권력을 썼습니까 뭘 했습니까. 우리가 바로 살면 우리 교회 주변은 교회를 욕얻어먹는 일은 없어야합니다. 다른 교회들 교계가 어떻게 나갈찌라도 많아야 생명이 유지되는 게 아닙니다. 생명은 하나만 있으면 유지가 되는 겁니다. 하나가 있으면 아브라함 한 사람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둘 낳았으나 가버렸고 야곱이 열둘 낳았습니다. 한 교회만 바로 되고 어떤 역사가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것은 세상에 있는 겁니다.
꼭 기억하시는 것은 믿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겁니다. 친구 따라서 그들이 보니까 따라가고 춤추니까 따라춤추고 따라 노래부르고 이런 취미하니까 따라 하고 우리 교회 학생들은 안 그럴 겁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데 교만하면 나는 다르다. 사람은 별 사람이 없어서 나는 약하다, 더 약하다. 나는 당신의 절반도 아닙니다. 솔로몬이 그래서 지혜를 구한 겁니다. 우리 아버지는 위대했는데 반도 못되어 지혜를 구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라는 것은 결코 하나만 자라간 게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로 자라간다. 약함으로 자라간다. 그러면서 다하니까 얼마든지 쓰시고 채워두시는 겁니다. 엄마엄마 불러재끼는데 놀러가버리면 엄마가 아닌 겁니다. 엄마는 아무리 급해도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살든지 죽든지하지 자식 빼놓고 어디 간다 엄마 아닙니다.
원치않게 신앙적으로 그럴 수 있으나 잘 가진 않죠. 베스메스로 가는 황소가 울면서 가는 게 그거지요. 어쩔 수 없이 두고 떠나는 것이 그겁니다. 짐승도 그러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지으셨고 한시적인 세상입니다. 과거에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는데 택시 가운데서 한시 택시라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한시적인 세상입니다. 일정 기간 주신 게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끝이 있습니다. 천국 건설할 천국의 모형 하늘에서 내려온 것 그게 교회입니다. 세상에 있으나 하늘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교회란 곳은 그런 곳입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이런 말씀을 그럴 때 면밀하게 살피고 성경에 맞으면 믿는 게 신앙입니다. 성경보고 믿는 게 신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에 있는 천국의 모형이고 5절에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집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하게 된 것이고 운영하시는데 그 교회를 책임지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게 말씀을 잡으면 반역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를 맡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뭘 만들었다고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교인들의 연보로 다 빼놓고 성김 중심 다 처먹고. 지금도 그런 교회 얼마든지 있습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그거. 다윗 시대에 얼마나 존경하고 높인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전부가 다윗 같은 겁니다. 모세 전부와 200만명은 같은겁니다. 그래서 아는 분들은 벌벌떨면서 조심히 대합니다. 결코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권세를 함부러 쓰지 않습니다. 교회를 공회를 인도하는 목사님은 성경에 형제라는 말이 나옵니다. 형제라는 뜻이 뭐지요. 한 아버지 밑에서 난 사람을 형제라고 합니다. 위로 올라가면 아버지 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위 아래가 있는 거지요.
교회란 곳은 이런 위계 질서가 있는 곳입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앞선 사람있고 뒤에 있는 사람이 있는데 전부 엄연히 있는 겁니다. 다 형제인데, 이걸 질서라고 합니다. 먼저 깨닫고 먼저 알고 그런 분이 말을 하면 같은 목사인데 왜 내가 하는 말은 지도로 받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함께하지 못합니다. 말을 하면은 형제로 보면 되는데 나도 목사인데 같은 목사인데 아니지요. 안수 받은 목사님이고 안수 한 목사님인데 안수 한 목사님은 선배지요. 선배가 말하면 후배가 말하는 게 뭐가 자존심상한다고 합니까. 처음에는 잘 따라가다가 어느정도 가다보니 변질이 되지 못한겁니다. 그 인식을 고치기 전에는 아마 돌아오기 어려울 겁니다. 교회가 뭔지 모릅니다. 공회가 뭔지도 모르고 신앙이 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 건설 교회를 위해서 지상 교회를 세우시고 지상 교회에 직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직분을 세우시고 그런 일꾼 맡은 그분들이 말씀을 합니다. 사람이 무슨 뜻이라 그랬습니까. 다 사람인데 사람이 왜 사람이라고 그럽니까. 하나님이 세웠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그럽니다. 사실이 그런데 그 사실은 악용이라고 하니까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은 사실입니다. 그 교회가 바로 운영이 되면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의 일꾼들을 마땅히 여겨야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그리스도란 자기가 먼저 하나님이 되고 먼저 된 우리가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로 붙이고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말씀 뜻을 먼저 깨달아서 실행을 하고 전해주고 그 다음은요. 하나님께 내가 순종하고 다른 사람 순종시키고 이 세 가지가 뭐라고 하지요. 제사장. 선지자 왕. 이게 그리스도직이고 이 일을 하는 사람을 가르켜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한 겁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지요 하나님의 비밀은 맡은자로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 비밀은 알아야하는 사람은 알 때 비밀입니다. 아무나 알지 못합니다. 여기 성경 다 아십니까. 읽기는 다 읽었고 내용은 알겠지요. 그런데 뜻을 모릅니다. 그래서 비밀입니다. 알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대속을 입어서 그리스도화 되글ㄹ 소망하고 당부하면서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화를 시키려고 하는 그런 것이 우리고 일꾼입니다. 그들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신 겁니다. 알아지게 되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성경 배우지 않았습니다 백 목사님은. 그 목사님이 뭐라고 하던가요 아주 적극적으로 소개한 목사님이 같이 공부를 했는데 백 목사님께서 신학교 신학자 공부하시면서 백 목사님 말씀하고 가르치는 내용하고 똑같았답니다. 그 말씀이 신학자들의 정통에서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그 분이 지켜봤기 때문에 최고다 그렇게 말씀하고 다녔습니다.
그런 분들은 인생을 다 바쳐서 그러다보니까 충성하신만큼 열어주시는 거지요. 저는 성경 알겠습니까 무식한 사람인데. 아 이런 뜻이구나 그래서 설교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면 아는 것이고. 그 비밀이라는 것은 비밀번호와 비밀은 간수를 어떻게합니까. 함부로 안 알려주지요. 그러나 그 비밀이 알아야할 때는 똑같이 하는 겁니다. 백 목사님의 깨달음을 하고 설교 타이핑에 없는 옛날 설교 노트를 쥐고 나만 아는 깨달음이다 하고 그런 사람들 시무투표에 반대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은 눈초리를 모르면 어려운 거지요. 비밀이라는 것은 삼손이 여인을 취하려 내려가다가 어린 사자를 만납니다. 찢어놓고 그 사자의 몸에서 꿀을 취했습니다. 먹고 부모님에게 주고 알리지 않습니다. 그런 걸 비밀이라고 합니다. 자기 역사들 함부러 말하는 게 아닙니다. 간직하는 겁니다.
비밀을 맡았으니까 기록을 해야합니다. 두 번째는 비밀을 맡은 자를 기록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성을 구해야합니다. 구하기 전에 먼저 노래를 해야합니다. 소원하고 충성하고 노력하고 그게 할 일입니다. 사람이 소원하는 거 하고 노력하는 거 하고 다 되지 않기 때문에 고하는 게 필요합니다. 간구. 충성인이라. 일 맡은 육군들 다 되는 겁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거 어디서든지 그렇습니다.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뭘 맡아서 일을 하려면 그런 겁니다. 시상 기준을 혼자 정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누구 1등 누구 2등 누구 3등 그랬습니다.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저에게 말을 합니다. 저는 듣고 그런가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게 받아들이라고 하는 거지요. 이런 저런 말들이 들리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자기 중심이 있고 각도가 있고 다 다른겁니다. 특히나 어떤 직분을 맡았던지 사람 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이런 것들이 바늘 가지고 확 찔러보지요. 아픈가요. 얼마나 아픕니까.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지를 건데 발가락 그거 끝에 조그만한데, 자기 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부위에 죽은 살이 있었습니다. 감각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붙어있지만 신경이 다 죽었습니다. 정상적인 몸에 붙어있으면 아픈겁니다. 하찮은 게 교회 일은 없습니다. 그런 일을 하가다 보면 사람들의 이런 말들이 생깁니다. 이럴 때 그 말을 듣고 영향을 받고 피동을 받으면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내가 아는 일에 사람들이 이런 저러 하는 거 지극히 매우 작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지 않습니다. 참고만 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구나 그 사람은 그렇게 하는구나. 다양성의 시대 아닌가요. 옛날에는 물건을 팔 때 적게 만들어서 비싸게 파는 게 있고 많이 팔아서 조금씩 많이 파는 것도 있고 여러 방법이 있는 겁니다. 그 분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예배당에 커튼을 달아야합니까 말아야합니까. 백 목사님 분교 전에 30개인데 원래 1층 예배당 뒤에 휘장은 무슨 색인지 혹시 아십니까. 감자주라고 합니다. 노래불렀습니다. 우리 교회도 감자주색이었습니다. 너무 좀 케케먹었습니다. 노란색이 좋겠습니다. 아이보리가 좋겠습니다. 뭐가 좋은겁니까. 커튼은요 에어컨은요. 이건 기준이 없는겁니다. 그래서 한번씩 다 하면 아 그렇습니까. 사람사람마다 그렇게 말할 때 그렇게 하고 일반적으로 어린 신앙 맞춰서 하는 겁니다.
그런 거 다 들으면 배가 산으로 갈 것이고 당나귀를 나중에 끌고 가다가 타고 가다가 메고 가다가 빠져서 죽게 만드는 것이지요. 교회 일을 맡다보면 별별 말이 다 나옵니다. 감정 자존심 다 하게 되면 문제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성경 깨달음으로 단연코 말합니다. 성경 깨달아 실행하려면 사역에 일한 거 충성 기록이 그랬습니다. 로마서부터 히브리서까지 다 했지요. 다 탁월했습니다. 자책할 그럴 걸 못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사도바울은 마지막까지 양심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의 언행심사를 해 볼 때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이야 갖다대면 죄송해서 얼굴도 못 드는데 믿기 전에 몰라서 살 수 없고 믿고 난 다음부터 세상 떠나는 날까지 참 존경할만 하지요. 그런데 그런 사도 바울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의롭다고 단정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인간 기준 세상기준 말씀으로 살피는데 그러면 의롭다고 단정 못하겠다. 바울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자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자기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고난 받은 사람. 이름이 뭡니까. 뭐라고요, 욥이지요. 욥은 자기 속에 있는 것 때문에 그렇게 극난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바울도 나도 사람입니다. 나도 모르는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5절 때가 이르기 전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라. 주님 오시면 어둠에 감추인 것들 다 드러납니다. 눈 덮힌 산 들어보셨지요. 근래들어서 눈이 잘 안오지만은 전에 눈이 한번씩 왔는데 호남서는 눈이 자주 많이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 오시면 눈이 다 녹아버립니다. 쓰레기장에 눈이 나버리면 전부 다 덮힙니다. 눈덮힌 쓰레기장은 깨끗하죠 하얗고. 그런데 치우면 오만 쓰레기가 다 나옵니다. 사람의 모습이 다 그렇고 주님이 돌아오시면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가 오시면 어둠에 감추인 것들 드러났습니다. 각 사람에게 칭찬이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 우리는 일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할 것은 소원하고 충성하고 구할 것이 있습니다.
그 누가 무슨 말해도 그런 겁니다.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싸울려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상대를 안하면 됩니다. 무시하지 마시고 네 번째 최종 판단은 하나님만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주님 오실 그 날이 다 드러나고 생각하면서 충성으로 감당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