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8일 수밤
김동민2025-01-08조회 122추천 8
2025년 1월 8일 수밤
찬송: 139장, 144장
본문: 누가복음 21장 1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성찬의 근본 유래가 가죽옷입니다. 가죽옷이란 무엇을 의미하느냐, 살아있는 짐승을 잡았다는 뜻입니다. 짐승을 왜 잡느냐, 죄로 인해서 죽은 사람을 살려낼려고 하니까 이미 죽은 사람 살리려고 하니까 죄 없는 사람이 죄 지어서 죽은 사람을 대신 지어죽어야 죄를 사하고 살리게 되니까. 짐승이 사람을 대신할 수 없는데, 장차 오실 사람으로 오실 어린 양, 예수님을 예표해서 짐승으로 가서 가죽옷을 아담에게 입히시고, 잡아 입히신 그 실상을 출애굽 때 430년 종된 거기서 하나님 백성이라 구원을 받아야하는데 마귀와 같은 바로와 그 애굽 신민들이 안 놓아주니까 아홉 가지 재앙으로 맛을 보여주고 장자재앙을 내렸는데 그게 유월절 재앙입니다. 안 죽으려면 전멸에서 받으려면 양을 잡아라, 양을 잡아서, 양고기를 먹고 그 집 입구에다가 무엇을 바릅니까 양의 피를 발라라. 그러면 양의 피 바른 집은 전멸 재앙이 넘어간다.
양고기와 무교병과 쓴나물을 함께 먹는 유월절이다. 유월절이 과거로 가면 뭐라고요, 과거로 가면 뭡니까 가죽 옷이고 예수님의 만찬이 되고 실상이 만찬의 마지막 실상이 고난과 죽으심이 된 겁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이른 사활의 대속과 만찬과 유월절과 가죽옷과 같은 겁니다. 같은 걸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사활의 대속을 가죽옷이고 유월절이고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하신 만찬이고, 만찬의 뜻이 무엇이라고 했던가요. 학생들이 듣고 잊어버리면 안되는 겁니다. 만찬은 저녁 식사를 만찬이라고 합니다. 아침은 뭐라고 한다고요, 높은 사람들이 쓰는 말입니다. 고급 언어입니다. 아침 식사는 조찬이라고 합니다. 점심은요, 오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은 조찬, 점심은 오찬, 저녁은 만찬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성찬은 조찬입니까 오찬입니까 만찬입니까. 만찬입니다. 그래서 만찬을 높여서 성찬이라고 하고 성만찬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만찬은 예수님이 한번만 말씀하신 게 아니고 유월절마다 해마다 하는 겁니다. 여기 본문에 기록된 만찬은 마지막 만찬입니다. 그래서 이걸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유명한 화가가 최후의 만찬이라고 그렇게 몇 백억 할 겁니다. 예수님의 누가복음 12장입니다. 상식으로 다 아는 건데 그래서 일반적으로 저녁식사인데 유월절 만찬이라서 특별하신 것이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베푸신 만찬이라 그런 것이고 앞으로 계속 기억해나가라 해서 이어나가는 것이고 형식인데 고난과 죽으심이 있기 때문에 무겁게, 신중하게, 경건하게 지낼 만한 게 의식입니다. 백 목사님은 굉장히 이럴 때 조심하고 전도사님은 못합니다. 목사 안수 받아야할 수 있는 겁니다. 세례 베푸는 안수 성찬은 안수 받은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전도사님은 못하게 법으로 되어있습니다. 성경적으로는 못한다고 아니지만은 장로교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기념하는 겁니다. 기념이라는 말은 기억하라는 뜻이고 기억이란 단순히 암기하란 말이 아닙니다. 기억의 의미 담은 기억이라는 것은 개성, 개성이란 이어받아서 점점 널리 퍼뜨려나가는 걸 개성이라고 합니다. 점점 확대시쳐나가는 거, 그 성찬에 먹는 떡과 잔은 무교병입니다. 고난의 표시고, 예수님의 몸인데 예수님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유래가 중요하고 의미도 중요하고 상식으로 알 것은 가죽옷과 유월절과 성찬은 다 하나로 이어지는 거라고 합니다. 두 번째 고난이 있습니다. 이 고난은 예수님의 당하신 고난의 성격은 고난은 세 가지로 되어있습니다. 첫째는 가시적인 고난입니다. 성경으로 기록해놨고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느정도 체험해볼 수 있는 정도의 고난, 눈에 보일 수 있는 그 정도의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서에 기록된 고난은 우리 대속에 절정에 관한 고난이 아닙니다. 표시만 해 놓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적인 고난이 있으니 문서로 기록을 못합니다.
대개 보면 사람의 기쁨과 슬픔과 고난의 정도와 이런 것을 표시하는 그런 품사를 뭐라고 그럽니까. 일반적으로 아프다, 슬프다, 기쁘다, 아름답다, 이런 걸 형용사라고 하지요. 형용이라는 말은 모양을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아름답다, 슬프다, 기쁘다 괴롭다는 다 형용사입니다. 그런데 이 형용사는 그렇기 때문에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입니다. 표현을 하기는 하는데 이걸 아무리 형용사로 표현해도 표현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엄청 사람이 고통스러울 때 이순신 장군이 지은 시가 뭐지요. 애가 끊어진다. 창자가 끊어진다는 표현, 어느정도일까. 어느정도로 아픈지는 사람이 기록하기가 어렵지요. 뼈마디가 쑤신다 엄청 아픈 겁니다, 뼈를 깎는 아픔을 겪어보셨습니까. 저는 겪어봤습니다. 뼈에 구멍을 뚫는 아픔을 겪어봤습니다. 마취제를 놨는데 그게 감당이 안될만큼 아픕니다. 뼈에다 구멍을 뚫어서. 그래도 기절할 만큼 아픕니다.
말로 글로 표현을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 고난 우주적인 고난을 볼 때 그건 어느정도일까. 택자 전부의 짊어진 고난인데 성령의 감동으로 그 고난을 우주적인 고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짐작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아프고 아프고 고난스러워도 그걸 감당할 수는 없는거고. 하나님께 직접 받는 고난이기 때문에 그런 게 있습니다. 주님 당하신 고난은 이런 고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이 주님은 죄가 없는 분입니다. 죄가 없는데 우리 때문에 당하신 고난입니다. 그 속에 누가 들어있습니까. 우리 속에 뭐가 들어있지요. 우리라는 고난 속에 내가 들어있습니다. 내가 들었으면 내가 됩니까 안 됩니까. 내가 들어갈 때 우리가 됩니다. 말하자면 일인칭 복수가 되는 거지요.
나의 죄, 나를 포함한 우리 죄를 지은 것이 주님이고 그런 고난입니다. 고난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크게 말하면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난 받습니다. 제일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안 믿는 사람은 말할 거 없고 믿는 사람이 당하는 고난은 거의 다 내가 몰라서 죄를 지었던 실수로 죄를 지었던 고의로 죄를 지었던 내가 죄를 지어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두 번째는 아주 드물게 하나님께서 죄가 없는데 나를 조금 더 연단시키려고 하는 고난입니다. 욥의 고난은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연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속에 깊이 들어가보니까 죄가 있었습니다. 아주 잘 없습니다.
세 번째는 내가 죄가 없고 연단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때문에 내가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이번 주일은 풀린다고 하는데 엄청나게 추운 추위에 저기 79번지 바닷가 심방갈려면 살을 에는 추위인데 그건 전적 대속의 고난입니다. 그 시간에 나가서 심방가서 전도하겠다고 데려오겠다고 고난 받으니까 대속의 고난이지요. 무릎이 아픈데 자기 맡은 식구를 위해서 주일을 어깁니다. 해결해주시라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는 마음의 고난. 목사도 구역장도 반사도 다 그렇겠지요. 그게 고난이지요.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내게 속한 식구가 믿음 당하니까 내게 오는 겁니다. 이런 것도 대속의 고난입니다. 주님 고난과 같은 고난이라서 굉장히 가치가 있는 고난입니다. 맡은 식구를 위해 기도하고 근심걱정을 해주고 자녀 위해서 애를 태울 때 그 자녀의 혈육으로 내 자신이 안 되었으니까 믿음이 없었으니까 또 다른 차원입니다. 그러면 회개도 하고, 내가 잘못살아서 다윗의 평생 고난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자기 죄를 위해서 그런 줄 아니까 그랬던 겁니다. 평생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다윗이었는데 그 한 번 지은 죄 때문에 자식이 엉망이 되고 다윗의 집안은 다 절단이 났습니다.
이런 걸 봤을 때 성경역사 신앙역사에 위대하게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고난 없이 성공한 사람도 없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사람이 기본적으로 안됩니다. 절대 진리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게 만들었습니다. 그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한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고난이라는 것은 무조건 나쁜 게 아닙니다. 일부러 죄짓고 하는 고난은 아니지만은 몰라서 죄짓고 약해서 죄짓고 그러고 나서 고난이 오는 겁니다. 그런데 고난 올 때 잘 감당하면 단단하게 되는거지요. 금을 연단하려면 넣으려고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순금이 되는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안되는 거지요. 고난을 통하지 않고 엄마 뱃속에 아이가 열 달 있어야합니다. 아이를 가진 사람이 한 번 가져보니까 얼마나 힘들었던지, 이런 걸 다섯 번 여섯 번 겪었다고. 저절로 존경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낳을 때 죽을 고생을 하고 그 다음에 태어나는 게 이영윤 선생님, 김영우도 그렇고. 그래서 효도 안한 자식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고생 안합니까.
열심히 하지 않고 하는 것이 복권이니 도박이니 다 망합니다. 안되는거지요. 그래서 고난의 종류는 이런 게 있습니다. 고난으로 주신 소망, 이번 주 공과의 제목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이런 고난을 받을 때 세 가지를 기억해야합니다. 어떤 종류의 고난이든 모든 고난의 종류는 죗값이다. 별별 고난이 다 있습니다. 몸의 고난 마음의 고난. 어쨌든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 전부 고난인데 그런 고난 받을 때 죗값이다. 이걸 기억해야합니다. 피해서 도망을 쳐야하겠습니까 달게 받아야합니까. 가인이 자기 재산은 하나님이 받으시고 시기하다가 협박하다가 아벨을 때려서 죽었습니다. 찾으니까 스스로 가니까 죄 벌이 중해서 견딜수 없나이다. 자기가 스스로 큰 벌 주시면 못 견딥니다. 그래서 가인은 그때 받지 않고 미뤄놨기 때문에 이자가 엄청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불택자가 가인의 자손이라고도 합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죄 값은 받아야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교통사고 났던지 그건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세상 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입니다. 잘 살펴서 최대한 비록 형사처벌을 받게 되었을지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으면 배치해야합니다. 형벌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혜롭게 대처하나 하나님 앞에서는 죄를 지어서는 안되니까 세상 법에는 대처하지만은 죄를 지었으니까 천벌 받아 마땅합니다. 고난을 받을 때 믿는 사람들은 달게 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여름철 백목사님 계실 때 엄청 덥습니다. 여름에 엄청 더운 곳입니다. 그런데 밤에 자서 추워서 그랬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견뎠는지 모릅니다. 더위를 피해서 도망을 치면 따라온다고 합니다. 싸울려고 하면 도망친다고 합니다. 고난을 피하면 따라갑니다. 그리고 수월해집니다. 고난 받을 때 달게 받을 것, 미련하게 우직하게 받을 게 아니고 자기 생활을 돌아보면서 내게 고난을 왔으니 죄를 지었나. 면밀하게 양심으로 돌아보는 거지요. 고난 받는 그 면을 살펴서 죄라는 것은 별별 종류 죄가 다 있습니다. 아는 죄도 모르는 죄도 있는데 모르는 죄는 물어보고 알아봐야합니다.
달게 받으면서 원인을 해결해야합니다. 몸이 아픕니다. 병이 왔어요, 병에 원인을 찾아봐야하지요. 감기네 독감이네요 약을 먹어야하죠 주사 맞아야하죠 약 먹고 주사 맞는 게 회개입니다. 약 먹으면 꿀처럼 사탕처럼 맛있지요. 달콤해도 맛이 있는데도 감기약은 쓴 맛이 있으니까 안 먹을려고 합니다. 그게 회개입니다. 그 회개가 원인을 찍어내는 겁니다. 해결하고.
손톱에 가시가 박혔습니다. 대개 아프지요. 이렇게 만지면 아픈데 안 보입니다. 안보여서 그런데 아주 밝게하고 쏙 빼내고 나면 시원합니다. 그 가시가 이렇게 아픈데. 이게 원인입니다. 고통의 원인, 죄입니다. 이게 손톱에 박힌 가시입니다. 빼내면 시원합니다. 그게 바로 회개입니다. 고치는 거. 회개하면 고난은 없어집니다. 두 번째는 죄를 회개합니다. 고난을 달게 받으며 인식이 소망을 가질 겁니다. 주님의 고난이 바로 이런 고난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고난 받을 때 지옥을 가지 않습니다. 회개 너머의 소망을 주시려고 이 죄를 회개하고 나면 회개했으니까 더 깨끗한 자기가 되고 봅을 주시는 겁니다. 소망을 주시는 거지요. 사망을 가질 겁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들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 소망은 죄 없는 분인데 우리 때문에 당하신 대속의 고난입니다. 그래서 그 대속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 구원은 바로 영원한 소망을 주신 구원입니다. 그래서 고난으로 소망을 주신 고난입니다. 그 소망을 주신 그게 뭐냐 천국의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하시기까지 그 고난이 끝이다. 이 고난을 통해서 하늘나라 유월절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구원을 주신 소망. 죽으심으로 대속입니다. 성찬, 고난으로 주신 소망, 소망을 담아주신 고난 이걸 기억을 하면서 주님의 고난이 전부 이런겁니다. 고난과 죽으심 속에 소망을 담아주셨고 이런 성격의 고난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래서 죄를 지으면 고난받게 되고 그러면 회개하게 되고 깨끗해지게 되고 복을 받게 되고, 예수님의 상징인 만왕의 왕 다윗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만드신거지요. 그래서 아이를 아플 때 일주일동안 다윗이 무릎꿇고 밥도 안 먹고 울기만 울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밥 안 먹고 잠 안 자고 울어보십시오. 세상 떠날 때 3일 울고 나면 안나옵니다. 마지막에는 슬프지만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7일을 울었습니다. 그게 회개입니다. 이 아이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모든 게 내 죄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회개 때문에 솔로몬을 주신 것이지요.
그러면서 소망을 가지는 겁니다. 앞날에는 밝은 것이기 때문에 소망없는 생활은 지옥입니다. 소망의 도입니다. 없는 게 아니기 때문에 끝을 봐버리면 그게 뭐가 됩니까. 낙망 속에서 끝을 맺어버리면 가롯 유다가 되어버린겁니다. 가롯 유다는 팔아먹은 죄보다 소망을 져버린 죄가 더 큽니다.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달게 받고 회개하고 소망을 붙들겁니다. 실제 있는 것이고 주님 대속이기 때문에 이렇게 세상을 잘 살아나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돌아가겠습니다.
찬송: 139장, 144장
본문: 누가복음 21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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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근본 유래가 가죽옷입니다. 가죽옷이란 무엇을 의미하느냐, 살아있는 짐승을 잡았다는 뜻입니다. 짐승을 왜 잡느냐, 죄로 인해서 죽은 사람을 살려낼려고 하니까 이미 죽은 사람 살리려고 하니까 죄 없는 사람이 죄 지어서 죽은 사람을 대신 지어죽어야 죄를 사하고 살리게 되니까. 짐승이 사람을 대신할 수 없는데, 장차 오실 사람으로 오실 어린 양, 예수님을 예표해서 짐승으로 가서 가죽옷을 아담에게 입히시고, 잡아 입히신 그 실상을 출애굽 때 430년 종된 거기서 하나님 백성이라 구원을 받아야하는데 마귀와 같은 바로와 그 애굽 신민들이 안 놓아주니까 아홉 가지 재앙으로 맛을 보여주고 장자재앙을 내렸는데 그게 유월절 재앙입니다. 안 죽으려면 전멸에서 받으려면 양을 잡아라, 양을 잡아서, 양고기를 먹고 그 집 입구에다가 무엇을 바릅니까 양의 피를 발라라. 그러면 양의 피 바른 집은 전멸 재앙이 넘어간다.
양고기와 무교병과 쓴나물을 함께 먹는 유월절이다. 유월절이 과거로 가면 뭐라고요, 과거로 가면 뭡니까 가죽 옷이고 예수님의 만찬이 되고 실상이 만찬의 마지막 실상이 고난과 죽으심이 된 겁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이른 사활의 대속과 만찬과 유월절과 가죽옷과 같은 겁니다. 같은 걸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사활의 대속을 가죽옷이고 유월절이고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하신 만찬이고, 만찬의 뜻이 무엇이라고 했던가요. 학생들이 듣고 잊어버리면 안되는 겁니다. 만찬은 저녁 식사를 만찬이라고 합니다. 아침은 뭐라고 한다고요, 높은 사람들이 쓰는 말입니다. 고급 언어입니다. 아침 식사는 조찬이라고 합니다. 점심은요, 오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은 조찬, 점심은 오찬, 저녁은 만찬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성찬은 조찬입니까 오찬입니까 만찬입니까. 만찬입니다. 그래서 만찬을 높여서 성찬이라고 하고 성만찬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만찬은 예수님이 한번만 말씀하신 게 아니고 유월절마다 해마다 하는 겁니다. 여기 본문에 기록된 만찬은 마지막 만찬입니다. 그래서 이걸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유명한 화가가 최후의 만찬이라고 그렇게 몇 백억 할 겁니다. 예수님의 누가복음 12장입니다. 상식으로 다 아는 건데 그래서 일반적으로 저녁식사인데 유월절 만찬이라서 특별하신 것이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베푸신 만찬이라 그런 것이고 앞으로 계속 기억해나가라 해서 이어나가는 것이고 형식인데 고난과 죽으심이 있기 때문에 무겁게, 신중하게, 경건하게 지낼 만한 게 의식입니다. 백 목사님은 굉장히 이럴 때 조심하고 전도사님은 못합니다. 목사 안수 받아야할 수 있는 겁니다. 세례 베푸는 안수 성찬은 안수 받은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전도사님은 못하게 법으로 되어있습니다. 성경적으로는 못한다고 아니지만은 장로교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기념하는 겁니다. 기념이라는 말은 기억하라는 뜻이고 기억이란 단순히 암기하란 말이 아닙니다. 기억의 의미 담은 기억이라는 것은 개성, 개성이란 이어받아서 점점 널리 퍼뜨려나가는 걸 개성이라고 합니다. 점점 확대시쳐나가는 거, 그 성찬에 먹는 떡과 잔은 무교병입니다. 고난의 표시고, 예수님의 몸인데 예수님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유래가 중요하고 의미도 중요하고 상식으로 알 것은 가죽옷과 유월절과 성찬은 다 하나로 이어지는 거라고 합니다. 두 번째 고난이 있습니다. 이 고난은 예수님의 당하신 고난의 성격은 고난은 세 가지로 되어있습니다. 첫째는 가시적인 고난입니다. 성경으로 기록해놨고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느정도 체험해볼 수 있는 정도의 고난, 눈에 보일 수 있는 그 정도의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서에 기록된 고난은 우리 대속에 절정에 관한 고난이 아닙니다. 표시만 해 놓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적인 고난이 있으니 문서로 기록을 못합니다.
대개 보면 사람의 기쁨과 슬픔과 고난의 정도와 이런 것을 표시하는 그런 품사를 뭐라고 그럽니까. 일반적으로 아프다, 슬프다, 기쁘다, 아름답다, 이런 걸 형용사라고 하지요. 형용이라는 말은 모양을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아름답다, 슬프다, 기쁘다 괴롭다는 다 형용사입니다. 그런데 이 형용사는 그렇기 때문에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입니다. 표현을 하기는 하는데 이걸 아무리 형용사로 표현해도 표현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엄청 사람이 고통스러울 때 이순신 장군이 지은 시가 뭐지요. 애가 끊어진다. 창자가 끊어진다는 표현, 어느정도일까. 어느정도로 아픈지는 사람이 기록하기가 어렵지요. 뼈마디가 쑤신다 엄청 아픈 겁니다, 뼈를 깎는 아픔을 겪어보셨습니까. 저는 겪어봤습니다. 뼈에 구멍을 뚫는 아픔을 겪어봤습니다. 마취제를 놨는데 그게 감당이 안될만큼 아픕니다. 뼈에다 구멍을 뚫어서. 그래도 기절할 만큼 아픕니다.
말로 글로 표현을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 고난 우주적인 고난을 볼 때 그건 어느정도일까. 택자 전부의 짊어진 고난인데 성령의 감동으로 그 고난을 우주적인 고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짐작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아프고 아프고 고난스러워도 그걸 감당할 수는 없는거고. 하나님께 직접 받는 고난이기 때문에 그런 게 있습니다. 주님 당하신 고난은 이런 고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이 주님은 죄가 없는 분입니다. 죄가 없는데 우리 때문에 당하신 고난입니다. 그 속에 누가 들어있습니까. 우리 속에 뭐가 들어있지요. 우리라는 고난 속에 내가 들어있습니다. 내가 들었으면 내가 됩니까 안 됩니까. 내가 들어갈 때 우리가 됩니다. 말하자면 일인칭 복수가 되는 거지요.
나의 죄, 나를 포함한 우리 죄를 지은 것이 주님이고 그런 고난입니다. 고난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크게 말하면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난 받습니다. 제일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안 믿는 사람은 말할 거 없고 믿는 사람이 당하는 고난은 거의 다 내가 몰라서 죄를 지었던 실수로 죄를 지었던 고의로 죄를 지었던 내가 죄를 지어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두 번째는 아주 드물게 하나님께서 죄가 없는데 나를 조금 더 연단시키려고 하는 고난입니다. 욥의 고난은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연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속에 깊이 들어가보니까 죄가 있었습니다. 아주 잘 없습니다.
세 번째는 내가 죄가 없고 연단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때문에 내가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이번 주일은 풀린다고 하는데 엄청나게 추운 추위에 저기 79번지 바닷가 심방갈려면 살을 에는 추위인데 그건 전적 대속의 고난입니다. 그 시간에 나가서 심방가서 전도하겠다고 데려오겠다고 고난 받으니까 대속의 고난이지요. 무릎이 아픈데 자기 맡은 식구를 위해서 주일을 어깁니다. 해결해주시라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는 마음의 고난. 목사도 구역장도 반사도 다 그렇겠지요. 그게 고난이지요.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내게 속한 식구가 믿음 당하니까 내게 오는 겁니다. 이런 것도 대속의 고난입니다. 주님 고난과 같은 고난이라서 굉장히 가치가 있는 고난입니다. 맡은 식구를 위해 기도하고 근심걱정을 해주고 자녀 위해서 애를 태울 때 그 자녀의 혈육으로 내 자신이 안 되었으니까 믿음이 없었으니까 또 다른 차원입니다. 그러면 회개도 하고, 내가 잘못살아서 다윗의 평생 고난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자기 죄를 위해서 그런 줄 아니까 그랬던 겁니다. 평생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다윗이었는데 그 한 번 지은 죄 때문에 자식이 엉망이 되고 다윗의 집안은 다 절단이 났습니다.
이런 걸 봤을 때 성경역사 신앙역사에 위대하게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고난 없이 성공한 사람도 없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사람이 기본적으로 안됩니다. 절대 진리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게 만들었습니다. 그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한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고난이라는 것은 무조건 나쁜 게 아닙니다. 일부러 죄짓고 하는 고난은 아니지만은 몰라서 죄짓고 약해서 죄짓고 그러고 나서 고난이 오는 겁니다. 그런데 고난 올 때 잘 감당하면 단단하게 되는거지요. 금을 연단하려면 넣으려고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순금이 되는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안되는 거지요. 고난을 통하지 않고 엄마 뱃속에 아이가 열 달 있어야합니다. 아이를 가진 사람이 한 번 가져보니까 얼마나 힘들었던지, 이런 걸 다섯 번 여섯 번 겪었다고. 저절로 존경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낳을 때 죽을 고생을 하고 그 다음에 태어나는 게 이영윤 선생님, 김영우도 그렇고. 그래서 효도 안한 자식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고생 안합니까.
열심히 하지 않고 하는 것이 복권이니 도박이니 다 망합니다. 안되는거지요. 그래서 고난의 종류는 이런 게 있습니다. 고난으로 주신 소망, 이번 주 공과의 제목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이런 고난을 받을 때 세 가지를 기억해야합니다. 어떤 종류의 고난이든 모든 고난의 종류는 죗값이다. 별별 고난이 다 있습니다. 몸의 고난 마음의 고난. 어쨌든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 전부 고난인데 그런 고난 받을 때 죗값이다. 이걸 기억해야합니다. 피해서 도망을 쳐야하겠습니까 달게 받아야합니까. 가인이 자기 재산은 하나님이 받으시고 시기하다가 협박하다가 아벨을 때려서 죽었습니다. 찾으니까 스스로 가니까 죄 벌이 중해서 견딜수 없나이다. 자기가 스스로 큰 벌 주시면 못 견딥니다. 그래서 가인은 그때 받지 않고 미뤄놨기 때문에 이자가 엄청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불택자가 가인의 자손이라고도 합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죄 값은 받아야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교통사고 났던지 그건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세상 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입니다. 잘 살펴서 최대한 비록 형사처벌을 받게 되었을지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으면 배치해야합니다. 형벌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혜롭게 대처하나 하나님 앞에서는 죄를 지어서는 안되니까 세상 법에는 대처하지만은 죄를 지었으니까 천벌 받아 마땅합니다. 고난을 받을 때 믿는 사람들은 달게 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여름철 백목사님 계실 때 엄청 덥습니다. 여름에 엄청 더운 곳입니다. 그런데 밤에 자서 추워서 그랬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견뎠는지 모릅니다. 더위를 피해서 도망을 치면 따라온다고 합니다. 싸울려고 하면 도망친다고 합니다. 고난을 피하면 따라갑니다. 그리고 수월해집니다. 고난 받을 때 달게 받을 것, 미련하게 우직하게 받을 게 아니고 자기 생활을 돌아보면서 내게 고난을 왔으니 죄를 지었나. 면밀하게 양심으로 돌아보는 거지요. 고난 받는 그 면을 살펴서 죄라는 것은 별별 종류 죄가 다 있습니다. 아는 죄도 모르는 죄도 있는데 모르는 죄는 물어보고 알아봐야합니다.
달게 받으면서 원인을 해결해야합니다. 몸이 아픕니다. 병이 왔어요, 병에 원인을 찾아봐야하지요. 감기네 독감이네요 약을 먹어야하죠 주사 맞아야하죠 약 먹고 주사 맞는 게 회개입니다. 약 먹으면 꿀처럼 사탕처럼 맛있지요. 달콤해도 맛이 있는데도 감기약은 쓴 맛이 있으니까 안 먹을려고 합니다. 그게 회개입니다. 그 회개가 원인을 찍어내는 겁니다. 해결하고.
손톱에 가시가 박혔습니다. 대개 아프지요. 이렇게 만지면 아픈데 안 보입니다. 안보여서 그런데 아주 밝게하고 쏙 빼내고 나면 시원합니다. 그 가시가 이렇게 아픈데. 이게 원인입니다. 고통의 원인, 죄입니다. 이게 손톱에 박힌 가시입니다. 빼내면 시원합니다. 그게 바로 회개입니다. 고치는 거. 회개하면 고난은 없어집니다. 두 번째는 죄를 회개합니다. 고난을 달게 받으며 인식이 소망을 가질 겁니다. 주님의 고난이 바로 이런 고난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고난 받을 때 지옥을 가지 않습니다. 회개 너머의 소망을 주시려고 이 죄를 회개하고 나면 회개했으니까 더 깨끗한 자기가 되고 봅을 주시는 겁니다. 소망을 주시는 거지요. 사망을 가질 겁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들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 소망은 죄 없는 분인데 우리 때문에 당하신 대속의 고난입니다. 그래서 그 대속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 구원은 바로 영원한 소망을 주신 구원입니다. 그래서 고난으로 소망을 주신 고난입니다. 그 소망을 주신 그게 뭐냐 천국의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하시기까지 그 고난이 끝이다. 이 고난을 통해서 하늘나라 유월절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구원을 주신 소망. 죽으심으로 대속입니다. 성찬, 고난으로 주신 소망, 소망을 담아주신 고난 이걸 기억을 하면서 주님의 고난이 전부 이런겁니다. 고난과 죽으심 속에 소망을 담아주셨고 이런 성격의 고난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래서 죄를 지으면 고난받게 되고 그러면 회개하게 되고 깨끗해지게 되고 복을 받게 되고, 예수님의 상징인 만왕의 왕 다윗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만드신거지요. 그래서 아이를 아플 때 일주일동안 다윗이 무릎꿇고 밥도 안 먹고 울기만 울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밥 안 먹고 잠 안 자고 울어보십시오. 세상 떠날 때 3일 울고 나면 안나옵니다. 마지막에는 슬프지만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7일을 울었습니다. 그게 회개입니다. 이 아이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모든 게 내 죄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회개 때문에 솔로몬을 주신 것이지요.
그러면서 소망을 가지는 겁니다. 앞날에는 밝은 것이기 때문에 소망없는 생활은 지옥입니다. 소망의 도입니다. 없는 게 아니기 때문에 끝을 봐버리면 그게 뭐가 됩니까. 낙망 속에서 끝을 맺어버리면 가롯 유다가 되어버린겁니다. 가롯 유다는 팔아먹은 죄보다 소망을 져버린 죄가 더 큽니다.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달게 받고 회개하고 소망을 붙들겁니다. 실제 있는 것이고 주님 대속이기 때문에 이렇게 세상을 잘 살아나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돌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