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9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12-29조회 100추천 11
2024년 12월 29일 주일 오후
찬송: 47장, 60장
본문: 이사야 53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사람이 고생을 많이하면 욕심을 꺾고 자기 몸을 쳐서 고생하니까 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사람들 시각적으로, 주관적으로 그렇게 보입니다. 고난을 받고 고생을 했는데 구원을 받지 않겠나. 이게 고행주의에 깔려 있는 사상입니다. 그럴 듯 합니다. 지금은 시대적으로 그런 시대도 아니고 이 세상을 천국 세상도 아니니까 이 세상을 오래살되 모두 흔한 말 같으면 9988234 혹시 아시나요. 젊은 분은 아예 모릅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동안 고생하고 죽으면 좋은 거다. 천국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그렇게 사는 게 시대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고행주의 말도 잘 없고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잘 없는 시대이지만 우리는 이런 걸 알고 있어야하고 고난 고생이라는 것이 바른 것인지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고생만하면 된다. 헛된 소리입니다. 연보 잘못하면 돈만 버립니다. 고행주의 잘못하고 단 한 순간도 예수님은 헛된 고난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전에 또 뭐를 해야겠습니까. 감성주의를 조심해야겠습니다. 감정이 일어나서 감성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는 겁니다. 섭섭한 감정 노여운 감정 별별 마음의 요소 중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 중에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받았는데 정으로 사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정을 가지되 말씀에 따르지 않는 이상 십자가에 못박아 다 죽여야합니다. 아픈 것을 생각하니까 느끼는 감정이니까 고난을 받았다.
말씀에 작은 말 귀 속에 대고 한 말이 전파된다. 모든 말은 퍼지게 되고 아무리 해도 없어지고 마는 겁니다. 예수님의 고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면류관 쓰시고 옆구리에 창이 찔리시고 그런 걸 감성이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이니까 잘 포장을 해야하니까 예수님 고난을 고통스럽게 포장을 갑니다. 그게 예수님에게 실재가 되며 알아가고 생각하는데에 도움이 되느냐. 마치 그림을 그릴 때 소위 말하는 성화, 그래 놓으면 거기 막혀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연구하과 말씀에 기록할 수 없는 성령의 세계에 들어가야하지 말씀에 막혀버리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포장을 한다, 인간의 한계가 있는 겁니다. 세 살 짜리 아이가 엄마를 화장을 시키면 잘할 수 있을까요. 화장이 얼마나 아름답게 되겠습니까. 얼굴 엉망으로 만들겠지요. 세 살 짜리 아들이 꾸미면 우스꽝스럽게 되겠지요. 그보다 더한 꼴이 되는 겁니다. 교계들이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고난을 깨닫지 못하니 사랑은 어떻습니까. 사랑 빼놓고 말할 수 없는거지요. 사랑 사랑 노래를 불러서 놀음을 다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남녀를 붙여놓고 연애를 시켜놓고 봉사하고 그러는데 그게 말하자면 한 두 살 짜리가 아버지 어머니를 꾸미는 것 보다 더한 것이지요.
어디 가 보니까 불장난입니다. 불장난 재난 되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는 것도 하나님 은혜고 있는 것도 은혜고 고행 주의를 조심해야하고 감성주의, 이건 신앙 전반에 걸쳐 다 알아야합니다. 참 조심을 해야합니다. 답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 고난 본문을 봅니다. 누가 믿었느뇨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입니다. 구원 역사에 기록해 놓은 게 성경입니다. 그때도 말하고 역사에 대해서 관련된 많은 것을 미리 말씀하는 게 성경이고 선지자들의 말은 사람들이 안 믿습니다. 아합이 어디가서 죽습니까. 아합이라는 이스라엘 왕이 어디가서 죽습니까. 성경을 알아야 답이 나오지요. 전쟁터에 가서 죽습니다. 가기 전에 선지자를 400명을 불러 모아서 그때 좋은 여호사밧 왕과 같이 가는데 신앙 있으니까 밀고 갈려니까 물어봅시다. 우리가 올라갈까 말까, 가짜 400명이 승리하십니다. 귀에 간지러운 귀를 긁어주는 그런 거짓말을 갖다댑니다.
여호사밧이 보니까 가짜라서 누구를 부릅니까. 믿을 만한 선지자 있습니까. 하나 있는데 듣기 싫은 소리만 합니다. 사람 살리는 말이 듣기 싫은 겁니다. 듣기 싫은 말만 하니까 미워합니다. 선지자가 왔습니다. 하는 말이 올라가면 됩니다. 올라가십시오 하니까 올라가면 죽습니다. 가지 마십시오. 왕은 죽습니다. 듣기 싫으니까 가둬놓고 그렇게 박대를 하고 그런데 그 선지자의 말대로 안 올라가면 안 죽었겠지요. 적군이 화살을 쏘았는데 우연히 맞아서 죽었습니다. 암만 변장해봐야 모르시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안 믿습니다. 저도 저를 돌아봅니다. 내가 전하는 말씀을 바로 믿고 살았다면 우리 교회가 200명은 되지 않았을까. 여호와의 팔이 권능이 능력이 뉘게 나타났느뇨. 믿을 만해서 믿으면 특별한 믿음이 아닙니다. 믿을 수 없는데 믿어야 진짜 믿음이지.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구주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유대인으로 나신 왕이 어디있느뇨. 경배하러왔노나라. 동방박사들이 헤롯 왕궁에 찾아가서 했습니다. 왕으로 났으니까 왕궁에 있겠지. 그걸 선입적 관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습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상상도 못하는 거지요.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지 않으면 신앙세계는 아예 발을들여도 근처도 못갑니다.
아주 가냘프고 힘없고 보잘픈 것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길거리에도 그런 게 있습니다. 다 넉넉하고 거기서 자란 가정에서 자녀들은 잘 나타납니다. 자식들 앞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합니다. 자녀들 중에서 무책임한 부모들이 많습니다. 자식들 앞에 무책임합니다. 경제도 그렇고 환경이 그러면 굉장히 애를 많이 쓰지요. 식물도 그렇습니다. 세금 같은 것들도 세균이 번식할 환경이 되니까 그리하는 겁니다. 지금 누구 모습 말하고 있습니까. 구주 메시아. 이게 성경인데 이런 걸 교회들이 왜 성경을 안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보기에 흠모할만한 보기 좋다 아름답다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이 각도를 보는 각도가 다르게 되는 겁니다. 주님이 가시면서 남기고 가신 주님의 모습을 보면 압니다.
이 세상은 수준 안에서도 끼리도 그렇습니다. 옳고 바른 것과 다수가 있으면 이 세상은 다수를 따라가지 옳은 걸 따라가지 않습니다. 30년 50년 이후에 손해보고 유입된 것과 손해보는 걸 절대 다수는 지금 좋고 그래야지 유입되는 건 안따라갑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옳은 것과 다수가 있으면 다수를 따라갑니다. 그래서 순좌, 사심 없고 깨끗한 그런 사람들이 좌파고 되고 공산주의자가 되는데 악랄한 공산주의들의 먹이가 됩니다. 그리고 권력잡고 다 숙청해버립니다. 순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는 평등한 동물들이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 세워놓고 끌어놓은 다음에 쳐버립니다. 무지한 순수는 영악한 간악한 불순에게 삼켜서 밥이 되고 말기 때문에 뱀같이 지헤롭고 그렇기 때문에 신학교 필요없고 노가다해라.
1980년도에 4성 장군이 전대통령 1212 반란 때문에 조사받고 이등병으로 강등이 되어버렸습니다. 17단계 내려왔답니다. 참모총장이었다고 합니다. 서열 2위입니다. 그 사람이 말단 졸병으로 강등되어버렸습니다. 못 견디는 거지요. 그런데 회복이 되었다고 합니다만은 부자로 살다가 가난하게 살면 힘듭니다. 저는 어릴 때 가난했습니다. 어릴 때 험한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런데 어릴 때부터 부자로 살면 고난이 심합니다. 먹고 살만해도 일부러라도 고생을 시키는게 아이들 장래를 위해서 좋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조심을 하지만은 어디가서 굴러도 삽니다. 부유한 분이 가난하게 될 때 부유하신 분인데 가난하게 되셔서 살았습니다. 영광스러운 분인데 내가 이 고난 받을 때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이런 고난들이 말하자면 실제고 피상적입니다. 사람들에게 그런 것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희생과 고난 원인이 뭐냐, 누구 때문인가요. 주님 희생과 고난 우리 때문에, 좁히면요. 나의 죄 때문에. 원죄라는 것이지요. 모태죄 같은 죄가 원죄입니다. 우리가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거, 나쁜겁니까. 좋은 겁니다. 달세방 살던 사람이 내 집을 마련하겠다. 좋은 겁니다. 벤츠타고 다니고 타락 그랬었습니다. 벤츠도 타고 비행기도 마음껏 타봐라고 했습니다. 그게 나쁜게 아닙니다. 문제는 올라가면은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거 신분이 올라가고 그건 좋은데 하나님 말씀을 어겨가면서까지 하는 것입니다. 먹으면 죽는다고 그랬는데 그렇게 하면서까지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도 올라가보겠다. 계명을 어겨서라도. 하나님 섭섭해하시더라도 올라가보겠다. 그거 때문에 주님이 내려오신겁니다. 우리의 죄 우리의 도리 그런 것 때문에 되신 건데 비상적이다 가시적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우주적인 고난이 된 것은 보이는 면으로 받은 것은 로마시대 때 채찍은 바울도 채찍에 많이 맞았습니다. 그런 채찍으로 맞는 그게 예사입니다. 예수님도 채찍에 맞았습니까. 예수님 좌우편에 강도들도 똑같이 못박혔습니다. 그리고 로마 시대 때는 맹수의 밥이 되었습니다. 사자 밥이 되게 되었습니다. 누가 사자 밥이 될 뻔했지요. 다니엘이 잡아먹힐 뻔했지요. 화형을 당합니다. 태워죽입니다. 고문할 때는 소금을 뿌린다고 합니다. 손톱 밑에 바늘로 찔러서 끔찍합니다. 보이는 피상적인 것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보다 역사에 꽉 찼습니다.
우리가 배운 대로 말하면 택자 전부의 모든 죄를 짊어졌는데 그 죄값을 어떻게 받았길래. 감독관이 10가지만 아는 사람이 조사받는 사람의 준비나 자세가 10배가 더 힘들겠지요. 10가지로 심사조사를 하면 10가지만 하면 됩니다. 100가지를 하고 조사하면 100가지를 해야하는데, 1000가지는 1000가지를 방어를 해야합니다. 10000가지를 조사할려면 10000가지를 방어해야합니다.
예수님 고난은 하나님 앞에 받는 고난입니다. 이건 무한한 고난입니다. 먼지만한 거 하나라돠 틈이 생기면 허사가 다 되어버립니다. 대속이 다 실패가 되어버립니다. 지공 지성의 법을 가지고 전능의 능력으로 살펴서 심사를 하십니다. 나실 때부터 운명하실 때까지 전지전능의 눈초리로 합니다. 촘촘할수록 어려운 것처럼 세밀할수록 어렵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탄식 한 번 하고 한 숨 쉬면 끝나버리는 겁니다. 그런 짐을 지고 고난 받으신 주님의 고난입니다. 성령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말하는 거처럼 알게해주옵소서, 겉으로는 우주적인 고난이 있는데 그 속에 들어가보니까 이런 모든 고난을 느껴야하는데 인성이니까 느껴야하는데 고난을 당하는 아득히 초월해서 그런 모든 고난 위해서 원하고 원함으로 사셨다는 거지요. 감사와 기쁨으로만. 고차원의 세계입니다. 그 결과로 구원이 되어졌고 영원토록 감사와 찬송을 하는 겁니다. 엄마 노릇은 힘듭니다. 아주 목숨 걸어서 해산하고 많이 길러서 둡니다. 그 아기는 엄마가 그에게 전부입니다.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돈도 필요없고 엄마만 있으면 돼. 이게 영광입니다.
이런 주님 고난에게서 2000년 오신 주님이 오늘의 주님은 말씀으로 계명으로 그 시대시대마다 옳은 신앙은 걸음이 전부다 마른 줄기 같아 다 떠나는 겁니다. 대체적으로 보면 그런 길에는 고난의 길이 된 것이고. 이런 주님 고난을 보고 가신 주님의 고난을 받으시고 남겨놓으신 게 있습니다. 남은 너희는 십자가였다.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어떤 고난 받아도 달게 받는 그게 우리의 걸음 우리의 길입니다. 성탄을 보내고 준비하면서 구원을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봤고 무한한 감사 기쁨을 생각해봤습니다. 우리의 길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47장, 60장
본문: 이사야 53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사람이 고생을 많이하면 욕심을 꺾고 자기 몸을 쳐서 고생하니까 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사람들 시각적으로, 주관적으로 그렇게 보입니다. 고난을 받고 고생을 했는데 구원을 받지 않겠나. 이게 고행주의에 깔려 있는 사상입니다. 그럴 듯 합니다. 지금은 시대적으로 그런 시대도 아니고 이 세상을 천국 세상도 아니니까 이 세상을 오래살되 모두 흔한 말 같으면 9988234 혹시 아시나요. 젊은 분은 아예 모릅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동안 고생하고 죽으면 좋은 거다. 천국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그렇게 사는 게 시대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고행주의 말도 잘 없고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잘 없는 시대이지만 우리는 이런 걸 알고 있어야하고 고난 고생이라는 것이 바른 것인지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고생만하면 된다. 헛된 소리입니다. 연보 잘못하면 돈만 버립니다. 고행주의 잘못하고 단 한 순간도 예수님은 헛된 고난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전에 또 뭐를 해야겠습니까. 감성주의를 조심해야겠습니다. 감정이 일어나서 감성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는 겁니다. 섭섭한 감정 노여운 감정 별별 마음의 요소 중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 중에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받았는데 정으로 사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정을 가지되 말씀에 따르지 않는 이상 십자가에 못박아 다 죽여야합니다. 아픈 것을 생각하니까 느끼는 감정이니까 고난을 받았다.
말씀에 작은 말 귀 속에 대고 한 말이 전파된다. 모든 말은 퍼지게 되고 아무리 해도 없어지고 마는 겁니다. 예수님의 고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면류관 쓰시고 옆구리에 창이 찔리시고 그런 걸 감성이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이니까 잘 포장을 해야하니까 예수님 고난을 고통스럽게 포장을 갑니다. 그게 예수님에게 실재가 되며 알아가고 생각하는데에 도움이 되느냐. 마치 그림을 그릴 때 소위 말하는 성화, 그래 놓으면 거기 막혀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연구하과 말씀에 기록할 수 없는 성령의 세계에 들어가야하지 말씀에 막혀버리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포장을 한다, 인간의 한계가 있는 겁니다. 세 살 짜리 아이가 엄마를 화장을 시키면 잘할 수 있을까요. 화장이 얼마나 아름답게 되겠습니까. 얼굴 엉망으로 만들겠지요. 세 살 짜리 아들이 꾸미면 우스꽝스럽게 되겠지요. 그보다 더한 꼴이 되는 겁니다. 교계들이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고난을 깨닫지 못하니 사랑은 어떻습니까. 사랑 빼놓고 말할 수 없는거지요. 사랑 사랑 노래를 불러서 놀음을 다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남녀를 붙여놓고 연애를 시켜놓고 봉사하고 그러는데 그게 말하자면 한 두 살 짜리가 아버지 어머니를 꾸미는 것 보다 더한 것이지요.
어디 가 보니까 불장난입니다. 불장난 재난 되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는 것도 하나님 은혜고 있는 것도 은혜고 고행 주의를 조심해야하고 감성주의, 이건 신앙 전반에 걸쳐 다 알아야합니다. 참 조심을 해야합니다. 답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 고난 본문을 봅니다. 누가 믿었느뇨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입니다. 구원 역사에 기록해 놓은 게 성경입니다. 그때도 말하고 역사에 대해서 관련된 많은 것을 미리 말씀하는 게 성경이고 선지자들의 말은 사람들이 안 믿습니다. 아합이 어디가서 죽습니까. 아합이라는 이스라엘 왕이 어디가서 죽습니까. 성경을 알아야 답이 나오지요. 전쟁터에 가서 죽습니다. 가기 전에 선지자를 400명을 불러 모아서 그때 좋은 여호사밧 왕과 같이 가는데 신앙 있으니까 밀고 갈려니까 물어봅시다. 우리가 올라갈까 말까, 가짜 400명이 승리하십니다. 귀에 간지러운 귀를 긁어주는 그런 거짓말을 갖다댑니다.
여호사밧이 보니까 가짜라서 누구를 부릅니까. 믿을 만한 선지자 있습니까. 하나 있는데 듣기 싫은 소리만 합니다. 사람 살리는 말이 듣기 싫은 겁니다. 듣기 싫은 말만 하니까 미워합니다. 선지자가 왔습니다. 하는 말이 올라가면 됩니다. 올라가십시오 하니까 올라가면 죽습니다. 가지 마십시오. 왕은 죽습니다. 듣기 싫으니까 가둬놓고 그렇게 박대를 하고 그런데 그 선지자의 말대로 안 올라가면 안 죽었겠지요. 적군이 화살을 쏘았는데 우연히 맞아서 죽었습니다. 암만 변장해봐야 모르시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안 믿습니다. 저도 저를 돌아봅니다. 내가 전하는 말씀을 바로 믿고 살았다면 우리 교회가 200명은 되지 않았을까. 여호와의 팔이 권능이 능력이 뉘게 나타났느뇨. 믿을 만해서 믿으면 특별한 믿음이 아닙니다. 믿을 수 없는데 믿어야 진짜 믿음이지.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구주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유대인으로 나신 왕이 어디있느뇨. 경배하러왔노나라. 동방박사들이 헤롯 왕궁에 찾아가서 했습니다. 왕으로 났으니까 왕궁에 있겠지. 그걸 선입적 관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습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상상도 못하는 거지요.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지 않으면 신앙세계는 아예 발을들여도 근처도 못갑니다.
아주 가냘프고 힘없고 보잘픈 것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길거리에도 그런 게 있습니다. 다 넉넉하고 거기서 자란 가정에서 자녀들은 잘 나타납니다. 자식들 앞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합니다. 자녀들 중에서 무책임한 부모들이 많습니다. 자식들 앞에 무책임합니다. 경제도 그렇고 환경이 그러면 굉장히 애를 많이 쓰지요. 식물도 그렇습니다. 세금 같은 것들도 세균이 번식할 환경이 되니까 그리하는 겁니다. 지금 누구 모습 말하고 있습니까. 구주 메시아. 이게 성경인데 이런 걸 교회들이 왜 성경을 안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보기에 흠모할만한 보기 좋다 아름답다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이 각도를 보는 각도가 다르게 되는 겁니다. 주님이 가시면서 남기고 가신 주님의 모습을 보면 압니다.
이 세상은 수준 안에서도 끼리도 그렇습니다. 옳고 바른 것과 다수가 있으면 이 세상은 다수를 따라가지 옳은 걸 따라가지 않습니다. 30년 50년 이후에 손해보고 유입된 것과 손해보는 걸 절대 다수는 지금 좋고 그래야지 유입되는 건 안따라갑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옳은 것과 다수가 있으면 다수를 따라갑니다. 그래서 순좌, 사심 없고 깨끗한 그런 사람들이 좌파고 되고 공산주의자가 되는데 악랄한 공산주의들의 먹이가 됩니다. 그리고 권력잡고 다 숙청해버립니다. 순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는 평등한 동물들이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 세워놓고 끌어놓은 다음에 쳐버립니다. 무지한 순수는 영악한 간악한 불순에게 삼켜서 밥이 되고 말기 때문에 뱀같이 지헤롭고 그렇기 때문에 신학교 필요없고 노가다해라.
1980년도에 4성 장군이 전대통령 1212 반란 때문에 조사받고 이등병으로 강등이 되어버렸습니다. 17단계 내려왔답니다. 참모총장이었다고 합니다. 서열 2위입니다. 그 사람이 말단 졸병으로 강등되어버렸습니다. 못 견디는 거지요. 그런데 회복이 되었다고 합니다만은 부자로 살다가 가난하게 살면 힘듭니다. 저는 어릴 때 가난했습니다. 어릴 때 험한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런데 어릴 때부터 부자로 살면 고난이 심합니다. 먹고 살만해도 일부러라도 고생을 시키는게 아이들 장래를 위해서 좋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조심을 하지만은 어디가서 굴러도 삽니다. 부유한 분이 가난하게 될 때 부유하신 분인데 가난하게 되셔서 살았습니다. 영광스러운 분인데 내가 이 고난 받을 때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이런 고난들이 말하자면 실제고 피상적입니다. 사람들에게 그런 것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희생과 고난 원인이 뭐냐, 누구 때문인가요. 주님 희생과 고난 우리 때문에, 좁히면요. 나의 죄 때문에. 원죄라는 것이지요. 모태죄 같은 죄가 원죄입니다. 우리가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거, 나쁜겁니까. 좋은 겁니다. 달세방 살던 사람이 내 집을 마련하겠다. 좋은 겁니다. 벤츠타고 다니고 타락 그랬었습니다. 벤츠도 타고 비행기도 마음껏 타봐라고 했습니다. 그게 나쁜게 아닙니다. 문제는 올라가면은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거 신분이 올라가고 그건 좋은데 하나님 말씀을 어겨가면서까지 하는 것입니다. 먹으면 죽는다고 그랬는데 그렇게 하면서까지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도 올라가보겠다. 계명을 어겨서라도. 하나님 섭섭해하시더라도 올라가보겠다. 그거 때문에 주님이 내려오신겁니다. 우리의 죄 우리의 도리 그런 것 때문에 되신 건데 비상적이다 가시적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우주적인 고난이 된 것은 보이는 면으로 받은 것은 로마시대 때 채찍은 바울도 채찍에 많이 맞았습니다. 그런 채찍으로 맞는 그게 예사입니다. 예수님도 채찍에 맞았습니까. 예수님 좌우편에 강도들도 똑같이 못박혔습니다. 그리고 로마 시대 때는 맹수의 밥이 되었습니다. 사자 밥이 되게 되었습니다. 누가 사자 밥이 될 뻔했지요. 다니엘이 잡아먹힐 뻔했지요. 화형을 당합니다. 태워죽입니다. 고문할 때는 소금을 뿌린다고 합니다. 손톱 밑에 바늘로 찔러서 끔찍합니다. 보이는 피상적인 것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보다 역사에 꽉 찼습니다.
우리가 배운 대로 말하면 택자 전부의 모든 죄를 짊어졌는데 그 죄값을 어떻게 받았길래. 감독관이 10가지만 아는 사람이 조사받는 사람의 준비나 자세가 10배가 더 힘들겠지요. 10가지로 심사조사를 하면 10가지만 하면 됩니다. 100가지를 하고 조사하면 100가지를 해야하는데, 1000가지는 1000가지를 방어를 해야합니다. 10000가지를 조사할려면 10000가지를 방어해야합니다.
예수님 고난은 하나님 앞에 받는 고난입니다. 이건 무한한 고난입니다. 먼지만한 거 하나라돠 틈이 생기면 허사가 다 되어버립니다. 대속이 다 실패가 되어버립니다. 지공 지성의 법을 가지고 전능의 능력으로 살펴서 심사를 하십니다. 나실 때부터 운명하실 때까지 전지전능의 눈초리로 합니다. 촘촘할수록 어려운 것처럼 세밀할수록 어렵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탄식 한 번 하고 한 숨 쉬면 끝나버리는 겁니다. 그런 짐을 지고 고난 받으신 주님의 고난입니다. 성령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말하는 거처럼 알게해주옵소서, 겉으로는 우주적인 고난이 있는데 그 속에 들어가보니까 이런 모든 고난을 느껴야하는데 인성이니까 느껴야하는데 고난을 당하는 아득히 초월해서 그런 모든 고난 위해서 원하고 원함으로 사셨다는 거지요. 감사와 기쁨으로만. 고차원의 세계입니다. 그 결과로 구원이 되어졌고 영원토록 감사와 찬송을 하는 겁니다. 엄마 노릇은 힘듭니다. 아주 목숨 걸어서 해산하고 많이 길러서 둡니다. 그 아기는 엄마가 그에게 전부입니다.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돈도 필요없고 엄마만 있으면 돼. 이게 영광입니다.
이런 주님 고난에게서 2000년 오신 주님이 오늘의 주님은 말씀으로 계명으로 그 시대시대마다 옳은 신앙은 걸음이 전부다 마른 줄기 같아 다 떠나는 겁니다. 대체적으로 보면 그런 길에는 고난의 길이 된 것이고. 이런 주님 고난을 보고 가신 주님의 고난을 받으시고 남겨놓으신 게 있습니다. 남은 너희는 십자가였다.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어떤 고난 받아도 달게 받는 그게 우리의 걸음 우리의 길입니다. 성탄을 보내고 준비하면서 구원을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봤고 무한한 감사 기쁨을 생각해봤습니다. 우리의 길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