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5일 수밤 신풍
김동민2024-12-25조회 121추천 8
2024년 12월 25일 수밤
찬송: 50장
본문: 고린도후서 8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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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입니다. 성경에는 성탄절은 없습니다. 신약은 주일만 날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그 안에 다 담아서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 위하여 죽으신 사활의 대속을 잊지 말라는 것으로 부활하신 주일을 신약의 안식일로 정해 신약은 생일이고 부활절이고 추수감사절이고 맥추절이고 할 수는 있지만 날 중에 귀한 날. 그건 주일입니다. 주일이 우리의 생일이요 전부입니다. 부활하신 주일날 모든 것을 다 담았는데 부활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부활한 주일이라는 것은 죽었습니다. 그래서 오일 금요일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죽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처음 오신 날, 하나님이 사람 되어서 이 땅 위에까지 낮아지셨다면 죄인이고 절망의 우리로써는 반가운 일인데 주님으로써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 땅 위에까지 오셨으니 주님은 한 없는 희생이 되어집니다. 나 때문에 주님이 고난 당하시는 시작이 성탄이니 그러니 믿는 사람은 늘 감사하면서 죄송해야합니다.
학생들의 생일마다 나의 생일 좋은 날 속에는 어머니가 죽을 고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께는 한 없이 죄송하고 감사한 겁니다. 주님 오셔서 십자가 완성을 못했더라면 우리는 그대로입니다. 죄없이 죽으면 지옥에 있는 우리를 끄집어 회개를 하는데 천국에 영원한 영광은 마련하지 못합니다. 죽어주신 거 절반 감사, 부활하신 거 감사. 양면으로 감사할 줄 알아야합니다. 주님의 탄생, 인간적으로 볼 때 생일이란 좋은 거냐. 우리야 생일이 좋은 거지만 구경거리가 되었으니 좋은 걸까요. 주님은 없는 가운데 천국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영원 창조의 하나님이 지옥의 영원한 고난을 날 대신 받아서 고난 받으시고 고난 받으시고 영원히 하하님 아버지와 영광의 자리까지 우리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했습니다. 사활의 대속, 죽을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여 하신 것이 탄생입니다. 감사하고 그 오셔서 당한 고난이 어떤 고난인가, 서 있는 제가 아이에게 몸을 굽히면 이렇게까지 숙이나 이렇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내려오신 거 보면 2m안되는 거 굽혔다고 대단할까.
하나님이 지옥 끝까지 내려갔는데 높여서 얼마나 차이난다고 자기 유리하다고 유리한 거 내놓기 싫어서 내 마음대로 내 자존심대로 나 스타일 하나 양보하기 싫어서 말도 함부로 해버렸고 요즘은 여성들 잘 산다고 하는데 남편에게 불편하다고 얼마나 잘났는데 부부인데 가족인데 1m 2m를 숙이지 못해서 세상 싸움이 다 그 정도를 하는 겁니다. 내가 내 남편, 내가 엎드려 절할 수 있지. 내 아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맡긴 아이 순종하는 것으로 똑같이 자녀를 위해서 희생을 해도 하나님의 자녀인데 주님이 좋은 목자다. 날 닮은 내 새끼 날 닮아 이쁜거 그러면 내 인생 다 바쳐도 주님은 너 중심이구나. 너 자녀 사랑에 하나님 사랑은 눈꼽만큼도 없구나 그렇게 됩니다.
이곳에 오셔서 추울 때 그 고생 하셨는데 그래서 손 목사님은 너무 출중하니까 신앙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지 배고프고 그러진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신앙 때문에 돌아가시고 나니까 남편 큰 아이들 없지 사모님 혼자지, 신앙의 길은 이 길로 걸어갈 때 사모님 모시고 전도사 하셨던 우열 목사님이라고 그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런 말씀을 해요, 추워서 고생했습니다. 결국 추워서 자기는 원장님이 빼줘서 땔감많은 곳으로 갔답니다. 옛날에는 그랬는데 대한민국은 산이 많아서 고생을 해도 나무는 있습니다. 신풍은 바닷가입니다. 바닷가에 나무가 없지요. 뒷산에 1978년도에 나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땔감으로 다 해서 없습니다. 결국 추워서 갔다고 류우열 목사님이라고 3대 목회자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오신 분들 1분 계셨는데 손양원 목사님 연보를 어떻게 해도 땔감이 없는 겁니다. 한겨울에 얼마나 추운지. 그래서 처음에 오신 분들 1년만에 가셨고 두 번째 1년 만에 오셨고 결국은 2년 계시다가 추워서 갔습니다. 애양원에 선교사 원장이 땔감 많은 교회 소개해줄게 그 말에 사모님을 버리고 갔답니다.
추운 것도 고난입니다. 배고픈 것도 고난입니다. 배고프고 춥고 그러지 않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그렇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서러움. 우리 예배당 얼마나 편리한다. 이런 우리의 좋은 예배환경 위해 먼저 앞서 고생하셨던 분들 있고 싶었는데 추워서 떠났습니다. 조례교회 바로 밑에 있다가 가셨습니다. 추워서. 이번 성탄절에 처음으로 36년 아마도 해본 적은 없겠지요 야외로 데리고 온 것은 땀이 날 정도입니다. 바람 숭숭 그랬지 땔감도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위해서 버티고 버티며 지켜와서 좋지요 따뜻하니까 따뜻하게 해놓으니까 멋있지요. 멋있자고 나온 것이 아니라 예배당보다는 불편하잖습니까.
좀 저녁 기도 새벽기도 추워도 신풍의 예배당의 추위는 추위가 아니고 좋지 못하다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위해서 수고하신 바로 앞에 분들 생각하면 복이 터져서 감사해서 잘 믿어볼까 그리 되어야하고 그렇게 고생한 그분보다 하나님이 사람되오셔서 평생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으시고 그냥 처형 당한 것이 아니라 원망 한 마디만 하면 죄인이 됩니다. 그러면 주님도 지옥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주신 말씀의 길 걸어갈려면 당연하지. 주님도 이러고 싶고 저러고 싶은 내면이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하면 그게 불의가 됩니다. 죄없이 아버지의 뜻대로 했지만 마음 심장 속에 마음이 조금 됩니다. 아버지 100프로 하나 되어 화친이라고 합니다. 이 땅 위에 모든 고난은 영생을 하여 사셨습니다. 네 가지 헤아리는데 안 꼽았지요.
말씀을 알면서 말씀을 어긴 죄 뻔히 말씀인줄 알고 어긴 죄, 우리는 죄 없는 사람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셔서 우리가 지은 그 죄를 회개할려니 죄값을 다 내어놔야합니다. 간단하게 고통입니다. 아파서 억울해서 고통 힘들어서 고통 어떤 종류의 고통도 아픈 건 죄값입니다. 죄값의 뜻은 말씀 알면서 어긴 게 죄입니다. 찌르는 고통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알면서 말씀을 죄를 지으니. 하나님의 자녀 우리가 말씀을 어겨 죄를 지어 고통을 당하니 해결을 할려면 사망의 고통 지옥의 고통을 주님이 대신 다 당해야합니다. 그런데 죄를 당하면서 아이고 아파죽겠네 왜 이런 일을 했냐 억울해죽겠네 해야 원망도 죄가 됩니다. 우리가 지은 죄, 그 죄의 값으로 고통을 주님이 다 대신 당하시고 죄짓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죄 하나를 해결. 그러면 더 이상 고통이 없나요. 지옥가는 고통은 다시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갈 거고, 오늘 우리가 애 먹는 것은 우리가 친구하고 애써서 아픈 것은 천국 갈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하는 고통입니다.
공부해서 1등하면 좋지요. 그런데 그러려고 잠을 못잤지요. 시험에 떨어지면 그동안 고생한 거 헛고생입니다. 지옥 갈 죄의 값은 전부 다 해결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이 믿는 이후에 관한 고생은 주님이 대신하셨고 다리 부러졌는데 믿는 사람이 그러면 아프지,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그러지 말아라. 우리를 가르치며 길러가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말씀을 어기는 죄 죄값은 모든 종류의 고통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전부를 해결했습니다. 알고보면 평안입니다. 혹시 그렇게 사는 분 계십니까. 저도 이제 조금 밖에 모르겠는데 지금 즈음은 이런 어려움 집의 어려움 저한테 오는 일은 뭐 뇌경색 심장 어떤 종류의 고통이 와도 죄값인데 이걸 지옥갈 죄값을 해결하셨고 더욱 잘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니 감사하다. 대부분 다 뜨겁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주님의 고난으로 깨닫는 순간 죽는 순간까지 감사입니다. 믿는 사람이 이겁니다.
두 번째는 말씀을 어겼냐 그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내 성질대로 나 좋은대로 하고 싶은대로, 다 그러시지요. 연세많은 우리 집사님들 팔십 구십을 살았는데 내 멋대로 살았습니다. 확 내 마음대로지 뭐. 그게 내 마음대로 산 불의의 죄라고 그럽니다. 자기 중심. 1계명 어긴 것도 아니고 우상도 아닌데 나는 멋대로 산다 나 좋은대로 산다 불의의 죄, 자기 중심의 죄가 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면 하나님이 더 해주는 것은 중단입니다. 수도 파이프는 멀쩡한데 아무 때나 꼽아버립니다. 그런데 그러면 더 이상의 물은 못 옵니다. 나 중심으로 사는 것은 내 마음이나 하나님이 해주는 하늘의 은혜는 중단, 하늘의 은혜가 중단이 되면 가난해집니다. 불의. 나 중심 내 마음대로 사는 거 다 좋지요. 그 대신에 하나님 중심 잊어버리고 추가로 된 은혜가 없습니다. 모든 종류의 통점 고점은 죄값, 모든 종류의 가난은 내 마음대로 산 죄.
세 번째는 말씀으로 살고 주님 뜻을 따라서 살아도, 내 마음 속에 하나님과 나 사이가 얼마나 가까우냐 그게 문제입니다. 엄마아빠가 아이들을 위해서 돈도 벌고 열심히 같이하는데 엄마 아빠 사이가 냉랭합니다. 남이 볼 때 뭐라고 할까봐 흉내는 내는데 멀어져있으면 표가 납니다. 죄는 안 지었겠지. 자기 할 일은 다 하겠지. 여자가 남자에게 마음을 안 주고 있구나. 주님 열심히 지키고 목회를 하고 설교도 하는데 이게 사죄며 칭의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감사한지 이 거리가 생명이고 살짝 떨어지면 원수 사이다. 친하지 않다. 불목이다 그럽니다. 욕을 하고 싸워야 싸움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이 슬글슬금 멀어지면 불목입니다. 우리를 위해 대신 고통 받으시고 지옥의 고난을 다 해결해주시고 이제는 천국을 마련하는 선물의 훈련이요.
가난해지고 가난해져버렸습니다. 다 부자같지요. 집은 잘 지었고 다 아파트는 다 지었고 차도 다 좋은데 부부 둘의 사랑이 냉랭합니다. 부모자녀가 가까운 거 보니까 부모 따로 아이들 따로입니다. 여당따로 야당따로입니다. 교인따로 목사 따로입니다. 심지어 50대 후반의 남자들이 자녀들 직장은 다 짤라버렸죠. 직장이 좋았거든요. 50대 후반 아버지들의 직장을 좋게 하기 위해서 생 난리를 다했습니다. 자기 선배들은 퇴직 때까지 하지도 않는데 20대 30대 아이들 직장 다 짤라놨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직장 놀고 먹기 위해서 다 하는 겁니다. 이 나라에 결혼이 없고 출산이 없다는 말이 가난해졌다는 말입니다. 돈 많고 새생명 새출발이 없는데 그게 가난이 아닌가. 말씀 없으면 찌르는 고통이 있습니다. 더해지는 은혜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얼마나 마음이 가까운가. 주여 동행해주셔야하지. 하루에 암세포가 많이 생기는데 계속 없어진답니다. 그런데 하나 놓지면 그 꼴 됩니다. 몸 속에 일어나는 암세포라는 원수.
이 나라의 안보를 지켜주시고 우리 식구들의 운전, 우리 아이들의 몸, 걸음 걸음 지켜주옵소서. 이걸 화친이라고 그럽니다. 우리가 세상 좋다고 주님 마음 속에서 덜렁덜렁 살았습니다. 바빠서 하나님 생각 못한건데, 그게 하나님과 불목 원수라 그 뜻이지요. 다른 남자 봤냐, 내 남자 밖에 없는데. 내 마음 속에 부부의 사랑에 뜨거움이 없으면 그걸 냉정하다고 합니다. 그걸 둘 사이에 원수가 시작이 된다고 합니다. 나중에 반드시 원수 됩니다. 날 위해서 대신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 속에 주님 모시고 살 수 있습니다. 주님 모시면 어떻게 됩니까. 영광과 존귀가 됩니다. 우리 목사님 설교하시냐고 고생하신다고 시장님이 벌벌떨면 오 대단하구나 그러겠지요.
내가 하나님을 내 마음 속에 생각하는 순간 그 생각이 뜨거운 순간 하나님과 나의 동행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만 모시고 대신 살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완전자 절대자 하나님을 내 마음 내 생활 내 생각 속에 하나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이걸 화친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존귀해집니다. 화장실에 불은 5와트짜리 켰습니다. 문이 어딘지 이 정도 방에 켜는 등 하가 숯불 하나 정도입니다. 지금은 200볼트 들어오니까 한 밤이 대낮 같습니다. 얼마나 뜨거우냐 값이 올라가고 존경과 영광이 되는 겁니다. 10대들은 요즘 말로 말하면 k-pop스타가 되는 겁니다. 세계가 난리나고 나도 저거 되고 싶어서 난리가 되는데 몇 년 가겠습니까. 내 마음 속에 내 생활 속에 사죄 칭의 화친입니다. 참 주님 감사하다. 어떻게 고생하려 오셨을까. 참 그렇다.
오늘 그렇게 보다 여수 시내에 우리 연세 많은 집사님들 채소 몇 개 가져와서 채소 팔려면 여기보다 몇 배 추울걸요. 학비 주고 용돈주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감사를 해야하고 조심을 해야합니다. 주님 나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하시다니 고맙다. 손 목사님 돌아가시고 여자 분 혼자서 굶어죽었다 할만하시고 하게 되었으니 신풍교회 목회자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 기도해가지고 모닥불로 하니까 우리가 따뜻하게 쬐는 거지요. 참 고생하고 가신 분들에게 감사하다. 그 사모님 고생보다 주님의 고생은 몇 배. 비교도 못하지요.
오늘 예배를 위해서 나무 캔 분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뜨거워지는데 두 개 놓지 세 개 놓지 평생에 요 짓을 하면 여기서 거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걸 꿈도 못 꿉니다. 예배당까지 오는데 운전한다고 감사한다. 내 집부터 안해주고 빙 둘러서 그래. 그 마음씨 천국 못 가죠. 그 마음은 천국 못 갑니다. 남의 자식이 운전해주면 고맙지 운전이 서투니까 그렇겠지 그러면 걸어가시지 감사를 연습하고 그러면 하나님 사이에 가까워집니다. 아이들도 어른도 연세많은 분들도.
말씀을 어기면 뭐가 온다고요. 그걸 주님이 대신 고통 다 당했습니다. 평안을 가지고 사는 게 정상입니다. 가난해집니다. 애먹습니다. 대신 가난해 지심으로 마음껏 무한한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주님 아니면 안되고 주님께 대한 감사로 가까워질수록 화친입니다. 그 바람에 오늘 우리도 하나되어 신인양성일행이 되어 어떤 환경이라도 들어보셨습니까. 우리 교회인가요 다른 교회인가요. 어느 가정에서 받았나요. 대동에서 이름을 가져가셨나요. 80년 그 추울 때 그 추울 때 일제 때 교도소 안이니까 3년을 지냈는데 편지를 쓰며 편지에 나오는 시입니다.
감옥 지나간 3년 희락이다. 감옥에도 주님은 오시니 이렇게 좋을 수가. 이게 죄 불의를 넘어서 하나님과의 화친이 그렇다는 겁니다. 손에 뜨거운 감격을 적은 겁니다. 굉장한거죠. 죽을 때까지 그러셨고 부활이 되었을 때 죽은 몸을 다시 살리고 영원히 부활로 사는 것은 오늘 우리가 이 땅 위에 살며 모든 행위가 그냥 그치지 않고 주님의 몸이 되도록 영원히 영생의 소망을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뭐 그냥 먹고 사는 세상입니다. 더 먹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올때부터 갈때까지 그랬고 희생이었습니다. 나 때문에 부모님이 추운데 배고픈데 고생을 했다면 쳐 죽일 놈들입니다. 주님을 두고는 다하셨는데 술 한잔 걸치지 때려죽일 놈들이죠. 아무리 사죄 칭의 화친으로 살아도 하나되어 양생의 그냥 그냥 그냥 지나가는 것은 네 번째 영생의 소망을 버리는 겁니다. 부모가 애 낳아놓고 있는 힘을 다 바치는 것은 뭐라도 될 거 같아서 그러는 겁니다. 이걸 소망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영생의 소망으로 받아 우리 세계 우리 마음 다 쏟아 부으면 100배 60배 30배 그건 손해없고 후회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모두 그렇게 해 봅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찬송: 50장
본문: 고린도후서 8장 9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성탄입니다. 성경에는 성탄절은 없습니다. 신약은 주일만 날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그 안에 다 담아서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 위하여 죽으신 사활의 대속을 잊지 말라는 것으로 부활하신 주일을 신약의 안식일로 정해 신약은 생일이고 부활절이고 추수감사절이고 맥추절이고 할 수는 있지만 날 중에 귀한 날. 그건 주일입니다. 주일이 우리의 생일이요 전부입니다. 부활하신 주일날 모든 것을 다 담았는데 부활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부활한 주일이라는 것은 죽었습니다. 그래서 오일 금요일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죽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처음 오신 날, 하나님이 사람 되어서 이 땅 위에까지 낮아지셨다면 죄인이고 절망의 우리로써는 반가운 일인데 주님으로써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 땅 위에까지 오셨으니 주님은 한 없는 희생이 되어집니다. 나 때문에 주님이 고난 당하시는 시작이 성탄이니 그러니 믿는 사람은 늘 감사하면서 죄송해야합니다.
학생들의 생일마다 나의 생일 좋은 날 속에는 어머니가 죽을 고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께는 한 없이 죄송하고 감사한 겁니다. 주님 오셔서 십자가 완성을 못했더라면 우리는 그대로입니다. 죄없이 죽으면 지옥에 있는 우리를 끄집어 회개를 하는데 천국에 영원한 영광은 마련하지 못합니다. 죽어주신 거 절반 감사, 부활하신 거 감사. 양면으로 감사할 줄 알아야합니다. 주님의 탄생, 인간적으로 볼 때 생일이란 좋은 거냐. 우리야 생일이 좋은 거지만 구경거리가 되었으니 좋은 걸까요. 주님은 없는 가운데 천국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영원 창조의 하나님이 지옥의 영원한 고난을 날 대신 받아서 고난 받으시고 고난 받으시고 영원히 하하님 아버지와 영광의 자리까지 우리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했습니다. 사활의 대속, 죽을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여 하신 것이 탄생입니다. 감사하고 그 오셔서 당한 고난이 어떤 고난인가, 서 있는 제가 아이에게 몸을 굽히면 이렇게까지 숙이나 이렇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내려오신 거 보면 2m안되는 거 굽혔다고 대단할까.
하나님이 지옥 끝까지 내려갔는데 높여서 얼마나 차이난다고 자기 유리하다고 유리한 거 내놓기 싫어서 내 마음대로 내 자존심대로 나 스타일 하나 양보하기 싫어서 말도 함부로 해버렸고 요즘은 여성들 잘 산다고 하는데 남편에게 불편하다고 얼마나 잘났는데 부부인데 가족인데 1m 2m를 숙이지 못해서 세상 싸움이 다 그 정도를 하는 겁니다. 내가 내 남편, 내가 엎드려 절할 수 있지. 내 아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맡긴 아이 순종하는 것으로 똑같이 자녀를 위해서 희생을 해도 하나님의 자녀인데 주님이 좋은 목자다. 날 닮은 내 새끼 날 닮아 이쁜거 그러면 내 인생 다 바쳐도 주님은 너 중심이구나. 너 자녀 사랑에 하나님 사랑은 눈꼽만큼도 없구나 그렇게 됩니다.
이곳에 오셔서 추울 때 그 고생 하셨는데 그래서 손 목사님은 너무 출중하니까 신앙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지 배고프고 그러진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신앙 때문에 돌아가시고 나니까 남편 큰 아이들 없지 사모님 혼자지, 신앙의 길은 이 길로 걸어갈 때 사모님 모시고 전도사 하셨던 우열 목사님이라고 그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런 말씀을 해요, 추워서 고생했습니다. 결국 추워서 자기는 원장님이 빼줘서 땔감많은 곳으로 갔답니다. 옛날에는 그랬는데 대한민국은 산이 많아서 고생을 해도 나무는 있습니다. 신풍은 바닷가입니다. 바닷가에 나무가 없지요. 뒷산에 1978년도에 나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땔감으로 다 해서 없습니다. 결국 추워서 갔다고 류우열 목사님이라고 3대 목회자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오신 분들 1분 계셨는데 손양원 목사님 연보를 어떻게 해도 땔감이 없는 겁니다. 한겨울에 얼마나 추운지. 그래서 처음에 오신 분들 1년만에 가셨고 두 번째 1년 만에 오셨고 결국은 2년 계시다가 추워서 갔습니다. 애양원에 선교사 원장이 땔감 많은 교회 소개해줄게 그 말에 사모님을 버리고 갔답니다.
추운 것도 고난입니다. 배고픈 것도 고난입니다. 배고프고 춥고 그러지 않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그렇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서러움. 우리 예배당 얼마나 편리한다. 이런 우리의 좋은 예배환경 위해 먼저 앞서 고생하셨던 분들 있고 싶었는데 추워서 떠났습니다. 조례교회 바로 밑에 있다가 가셨습니다. 추워서. 이번 성탄절에 처음으로 36년 아마도 해본 적은 없겠지요 야외로 데리고 온 것은 땀이 날 정도입니다. 바람 숭숭 그랬지 땔감도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위해서 버티고 버티며 지켜와서 좋지요 따뜻하니까 따뜻하게 해놓으니까 멋있지요. 멋있자고 나온 것이 아니라 예배당보다는 불편하잖습니까.
좀 저녁 기도 새벽기도 추워도 신풍의 예배당의 추위는 추위가 아니고 좋지 못하다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위해서 수고하신 바로 앞에 분들 생각하면 복이 터져서 감사해서 잘 믿어볼까 그리 되어야하고 그렇게 고생한 그분보다 하나님이 사람되오셔서 평생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으시고 그냥 처형 당한 것이 아니라 원망 한 마디만 하면 죄인이 됩니다. 그러면 주님도 지옥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주신 말씀의 길 걸어갈려면 당연하지. 주님도 이러고 싶고 저러고 싶은 내면이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하면 그게 불의가 됩니다. 죄없이 아버지의 뜻대로 했지만 마음 심장 속에 마음이 조금 됩니다. 아버지 100프로 하나 되어 화친이라고 합니다. 이 땅 위에 모든 고난은 영생을 하여 사셨습니다. 네 가지 헤아리는데 안 꼽았지요.
말씀을 알면서 말씀을 어긴 죄 뻔히 말씀인줄 알고 어긴 죄, 우리는 죄 없는 사람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셔서 우리가 지은 그 죄를 회개할려니 죄값을 다 내어놔야합니다. 간단하게 고통입니다. 아파서 억울해서 고통 힘들어서 고통 어떤 종류의 고통도 아픈 건 죄값입니다. 죄값의 뜻은 말씀 알면서 어긴 게 죄입니다. 찌르는 고통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알면서 말씀을 죄를 지으니. 하나님의 자녀 우리가 말씀을 어겨 죄를 지어 고통을 당하니 해결을 할려면 사망의 고통 지옥의 고통을 주님이 대신 다 당해야합니다. 그런데 죄를 당하면서 아이고 아파죽겠네 왜 이런 일을 했냐 억울해죽겠네 해야 원망도 죄가 됩니다. 우리가 지은 죄, 그 죄의 값으로 고통을 주님이 다 대신 당하시고 죄짓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죄 하나를 해결. 그러면 더 이상 고통이 없나요. 지옥가는 고통은 다시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갈 거고, 오늘 우리가 애 먹는 것은 우리가 친구하고 애써서 아픈 것은 천국 갈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하는 고통입니다.
공부해서 1등하면 좋지요. 그런데 그러려고 잠을 못잤지요. 시험에 떨어지면 그동안 고생한 거 헛고생입니다. 지옥 갈 죄의 값은 전부 다 해결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이 믿는 이후에 관한 고생은 주님이 대신하셨고 다리 부러졌는데 믿는 사람이 그러면 아프지,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그러지 말아라. 우리를 가르치며 길러가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말씀을 어기는 죄 죄값은 모든 종류의 고통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전부를 해결했습니다. 알고보면 평안입니다. 혹시 그렇게 사는 분 계십니까. 저도 이제 조금 밖에 모르겠는데 지금 즈음은 이런 어려움 집의 어려움 저한테 오는 일은 뭐 뇌경색 심장 어떤 종류의 고통이 와도 죄값인데 이걸 지옥갈 죄값을 해결하셨고 더욱 잘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니 감사하다. 대부분 다 뜨겁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주님의 고난으로 깨닫는 순간 죽는 순간까지 감사입니다. 믿는 사람이 이겁니다.
두 번째는 말씀을 어겼냐 그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내 성질대로 나 좋은대로 하고 싶은대로, 다 그러시지요. 연세많은 우리 집사님들 팔십 구십을 살았는데 내 멋대로 살았습니다. 확 내 마음대로지 뭐. 그게 내 마음대로 산 불의의 죄라고 그럽니다. 자기 중심. 1계명 어긴 것도 아니고 우상도 아닌데 나는 멋대로 산다 나 좋은대로 산다 불의의 죄, 자기 중심의 죄가 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면 하나님이 더 해주는 것은 중단입니다. 수도 파이프는 멀쩡한데 아무 때나 꼽아버립니다. 그런데 그러면 더 이상의 물은 못 옵니다. 나 중심으로 사는 것은 내 마음이나 하나님이 해주는 하늘의 은혜는 중단, 하늘의 은혜가 중단이 되면 가난해집니다. 불의. 나 중심 내 마음대로 사는 거 다 좋지요. 그 대신에 하나님 중심 잊어버리고 추가로 된 은혜가 없습니다. 모든 종류의 통점 고점은 죄값, 모든 종류의 가난은 내 마음대로 산 죄.
세 번째는 말씀으로 살고 주님 뜻을 따라서 살아도, 내 마음 속에 하나님과 나 사이가 얼마나 가까우냐 그게 문제입니다. 엄마아빠가 아이들을 위해서 돈도 벌고 열심히 같이하는데 엄마 아빠 사이가 냉랭합니다. 남이 볼 때 뭐라고 할까봐 흉내는 내는데 멀어져있으면 표가 납니다. 죄는 안 지었겠지. 자기 할 일은 다 하겠지. 여자가 남자에게 마음을 안 주고 있구나. 주님 열심히 지키고 목회를 하고 설교도 하는데 이게 사죄며 칭의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감사한지 이 거리가 생명이고 살짝 떨어지면 원수 사이다. 친하지 않다. 불목이다 그럽니다. 욕을 하고 싸워야 싸움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이 슬글슬금 멀어지면 불목입니다. 우리를 위해 대신 고통 받으시고 지옥의 고난을 다 해결해주시고 이제는 천국을 마련하는 선물의 훈련이요.
가난해지고 가난해져버렸습니다. 다 부자같지요. 집은 잘 지었고 다 아파트는 다 지었고 차도 다 좋은데 부부 둘의 사랑이 냉랭합니다. 부모자녀가 가까운 거 보니까 부모 따로 아이들 따로입니다. 여당따로 야당따로입니다. 교인따로 목사 따로입니다. 심지어 50대 후반의 남자들이 자녀들 직장은 다 짤라버렸죠. 직장이 좋았거든요. 50대 후반 아버지들의 직장을 좋게 하기 위해서 생 난리를 다했습니다. 자기 선배들은 퇴직 때까지 하지도 않는데 20대 30대 아이들 직장 다 짤라놨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직장 놀고 먹기 위해서 다 하는 겁니다. 이 나라에 결혼이 없고 출산이 없다는 말이 가난해졌다는 말입니다. 돈 많고 새생명 새출발이 없는데 그게 가난이 아닌가. 말씀 없으면 찌르는 고통이 있습니다. 더해지는 은혜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얼마나 마음이 가까운가. 주여 동행해주셔야하지. 하루에 암세포가 많이 생기는데 계속 없어진답니다. 그런데 하나 놓지면 그 꼴 됩니다. 몸 속에 일어나는 암세포라는 원수.
이 나라의 안보를 지켜주시고 우리 식구들의 운전, 우리 아이들의 몸, 걸음 걸음 지켜주옵소서. 이걸 화친이라고 그럽니다. 우리가 세상 좋다고 주님 마음 속에서 덜렁덜렁 살았습니다. 바빠서 하나님 생각 못한건데, 그게 하나님과 불목 원수라 그 뜻이지요. 다른 남자 봤냐, 내 남자 밖에 없는데. 내 마음 속에 부부의 사랑에 뜨거움이 없으면 그걸 냉정하다고 합니다. 그걸 둘 사이에 원수가 시작이 된다고 합니다. 나중에 반드시 원수 됩니다. 날 위해서 대신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 속에 주님 모시고 살 수 있습니다. 주님 모시면 어떻게 됩니까. 영광과 존귀가 됩니다. 우리 목사님 설교하시냐고 고생하신다고 시장님이 벌벌떨면 오 대단하구나 그러겠지요.
내가 하나님을 내 마음 속에 생각하는 순간 그 생각이 뜨거운 순간 하나님과 나의 동행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만 모시고 대신 살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완전자 절대자 하나님을 내 마음 내 생활 내 생각 속에 하나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이걸 화친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존귀해집니다. 화장실에 불은 5와트짜리 켰습니다. 문이 어딘지 이 정도 방에 켜는 등 하가 숯불 하나 정도입니다. 지금은 200볼트 들어오니까 한 밤이 대낮 같습니다. 얼마나 뜨거우냐 값이 올라가고 존경과 영광이 되는 겁니다. 10대들은 요즘 말로 말하면 k-pop스타가 되는 겁니다. 세계가 난리나고 나도 저거 되고 싶어서 난리가 되는데 몇 년 가겠습니까. 내 마음 속에 내 생활 속에 사죄 칭의 화친입니다. 참 주님 감사하다. 어떻게 고생하려 오셨을까. 참 그렇다.
오늘 그렇게 보다 여수 시내에 우리 연세 많은 집사님들 채소 몇 개 가져와서 채소 팔려면 여기보다 몇 배 추울걸요. 학비 주고 용돈주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감사를 해야하고 조심을 해야합니다. 주님 나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하시다니 고맙다. 손 목사님 돌아가시고 여자 분 혼자서 굶어죽었다 할만하시고 하게 되었으니 신풍교회 목회자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 기도해가지고 모닥불로 하니까 우리가 따뜻하게 쬐는 거지요. 참 고생하고 가신 분들에게 감사하다. 그 사모님 고생보다 주님의 고생은 몇 배. 비교도 못하지요.
오늘 예배를 위해서 나무 캔 분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뜨거워지는데 두 개 놓지 세 개 놓지 평생에 요 짓을 하면 여기서 거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걸 꿈도 못 꿉니다. 예배당까지 오는데 운전한다고 감사한다. 내 집부터 안해주고 빙 둘러서 그래. 그 마음씨 천국 못 가죠. 그 마음은 천국 못 갑니다. 남의 자식이 운전해주면 고맙지 운전이 서투니까 그렇겠지 그러면 걸어가시지 감사를 연습하고 그러면 하나님 사이에 가까워집니다. 아이들도 어른도 연세많은 분들도.
말씀을 어기면 뭐가 온다고요. 그걸 주님이 대신 고통 다 당했습니다. 평안을 가지고 사는 게 정상입니다. 가난해집니다. 애먹습니다. 대신 가난해 지심으로 마음껏 무한한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주님 아니면 안되고 주님께 대한 감사로 가까워질수록 화친입니다. 그 바람에 오늘 우리도 하나되어 신인양성일행이 되어 어떤 환경이라도 들어보셨습니까. 우리 교회인가요 다른 교회인가요. 어느 가정에서 받았나요. 대동에서 이름을 가져가셨나요. 80년 그 추울 때 그 추울 때 일제 때 교도소 안이니까 3년을 지냈는데 편지를 쓰며 편지에 나오는 시입니다.
감옥 지나간 3년 희락이다. 감옥에도 주님은 오시니 이렇게 좋을 수가. 이게 죄 불의를 넘어서 하나님과의 화친이 그렇다는 겁니다. 손에 뜨거운 감격을 적은 겁니다. 굉장한거죠. 죽을 때까지 그러셨고 부활이 되었을 때 죽은 몸을 다시 살리고 영원히 부활로 사는 것은 오늘 우리가 이 땅 위에 살며 모든 행위가 그냥 그치지 않고 주님의 몸이 되도록 영원히 영생의 소망을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뭐 그냥 먹고 사는 세상입니다. 더 먹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올때부터 갈때까지 그랬고 희생이었습니다. 나 때문에 부모님이 추운데 배고픈데 고생을 했다면 쳐 죽일 놈들입니다. 주님을 두고는 다하셨는데 술 한잔 걸치지 때려죽일 놈들이죠. 아무리 사죄 칭의 화친으로 살아도 하나되어 양생의 그냥 그냥 그냥 지나가는 것은 네 번째 영생의 소망을 버리는 겁니다. 부모가 애 낳아놓고 있는 힘을 다 바치는 것은 뭐라도 될 거 같아서 그러는 겁니다. 이걸 소망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영생의 소망으로 받아 우리 세계 우리 마음 다 쏟아 부으면 100배 60배 30배 그건 손해없고 후회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모두 그렇게 해 봅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