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6일 금밤
김동민2024-09-06조회 108추천 13
2024년 9월 6일 금밤
찬송: 106장, 144장
본문: 갈라디아서 4장 19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성경 전체적으로는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전체적으로 어린 때고 미개하다 그런 뜻입니다. 모든 게 다 밝혀지지 않았고 드러나지 않았고 지식적으로 발전적으로 전체적으로 초창기 지났다 하더라도 전체를 볼 때 어린 것들을 구약이라고 합니다. 구약 중에서도 창세 이후 타락 후 그때는 더 어렸을 것이고 여호수아 때보다는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때가 더 어렸을 겁니다. 사사기 때보다는 여호수아 때가 어렸을 것이고 사사 시대보다 왕정 시대가 나을 것이고 솔로몬 그런 이후로는 더 많이 자랄 것이고 바벨론 포로가 다녀오면 더 자랄 것이고, 점점 자라가는 것이고 점점 뒤로 어릴 때가 되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구약 시대는 신약에 비해서 어리다는 뜻입니다. 여러 면으로 할 수 있는데 기초다.
초등학교 6학년은 고학년입니다. 졸업생입니다. 초등학교 기준으로 말하면 6학년은 자란 것이고 1학년은 어린 것입니다. 길게 말하자면 아직 어립니다. 중고등학교면 더 자랐고, 지성인이라 그러면서 요즘 대학은 지성인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죠. 지성의 전당이라 그러던가요. 아무리 그래봐야 30대가 대학생 보면 철이 없습니다. 대학생 때 30대 때 마구 노동자 편에서 데모하고 소위 평등 부르짖던 그런 완전 빨갛게 되어있던 좌파 사람들이 나이가 철이 들고 그게 아니거든요. 정반대로 바뀐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젊었을 때 그리된 사람이 늙어서 그러면 답이 없습니다. 좌익 사상 평등 사상은 뭔가 문제가 있겠다. 그래서 참고하지만은 바로 알아야하는데 부르짖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거지요. 전체로 자라가는 겁니다. 구약시대는 어린 때입니다. 언제 비해서 어리냐, 신약에 비해서 어린 때입니다. 그 어린 시절에 주신 법이 율법입니다. 형식입니다. 보이는 것이라 그 말입니다. 외부로 나타나는 것 드러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구약의 어린 시절 형식의 시대의 모든 것은 앞으로 장성해야 신약시대를 미리 보여주시는 그런 표시라 그래서 미리 표시한다고 두 글자로 예표라고 합니다. 구약의 모든 것은 예표입니다. 대표적으로 구약의 모든 재산은 신약 시대의 예표입니다. 신약시대 주님을 표시하는 겁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 잡는 것을 하는 겁니다. 어린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짐승을 잡았습니다. 양 염소 잡아서 피를 흘려서 재단에 바쳤습니다. 신약은 당신을 잡아서 드렸으므로 한 번 제사로 끝났고 우리를 잡는데 우리의 생명을 잡는 게 아니고 습성을 잡는 겁니다. 이게 닮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구약이 어릴 때고 신약이 어릴 때를 보여드리는 겁니다.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을 관계를 구약 율법이란 어릴 때 주신 것이다. 그런데 왜 갈라디아 교회들이 미혹을 많이 받았느냐. 사람이 자기가 소속된 자기가 배우고 속했던 그런 곳을 알기 어렵습니다. 신학교를 전통으로 졸업한 사람들이 신학을 알기 어렵고 거기에 갖혀버립니다. 심지어 우리 백목사님 생전에 신앙의 사람들을 미국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백 목사님의 깨달음이 500년 칼빈 이후에 다시 주신 이어지는 그런 복음인데 이같은 복음이 세계에 또 있는지 잘못된 것이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보내셨는데 간 사람마다 전부 500년 동안에 자라지 않는 안에 빠져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갖다 온 사람마다 백 목사님 교육을 일반화 시키고 빠져죽었습니다. 한 분 빼고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한 사람이 10만명 먹여살린다. 그래서 최고의 인재를 구해라. 오래전부터 깨닫고 그렇게 한 거지요. 신앙도 같은 원리로 보냈는데 빠져죽었고 한 분만 가서 바로 구경하고 온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내에서도 그런 게 있습니다. 고신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고신대학을 포장할겁니다. 그런데 한 분은 보니까 이게 아닙니다. 자기가 거기 졸업했고 깊이 들어갔었는데 신학의 단점을 파악하고 현재까지 봐서는 아주 좋게 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구약의 복음이 섞인 시대입니다. 구약의 4000년 신약의 2000년인데 2000년 중에서 1900년은 완만하게 오다가 급속도로 빨라진 것처럼 말세로 갈수록 점점 더 모든 게 빨라지게 되는 겁니다. 그게 세월 속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4000년 세월은 큰 차이 없이 왔는데 2000년도 빠르게 왔지요. 그래서 삼분론과 건설구원 밝힐 때는 백 목사님 교훈을 이해못하고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4000년 율법 지키던 것을 예수님 말씀을 듣고 능력있는 교훈이다 논리정연하고 틀림이 없고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하고 옳은 것인데 안주해서 밥통 때문에 주님을 못박아 죽였습니다.
조상들이 죽인 선지자들의 순교자들의 무덤을 꽂고 비석을 세우면서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안 죽였을건데 이 귀한 종들을 다 죽였다 이렇게 꾸미면서 그러면서 그렇게 말하면서 저거 시대에 온 가장 큰 대제사장 예수님은 못받아 죽인겁니다. 바울 시대는 주님이 가신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섞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대속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데 이것이 인식이 되니까 인정이 되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니까 이해가 안되는거지요. 못 믿는거지요.
그 속에도 사도행전을 읽어보면은 유대인들 말하자면 율법주의자 중에서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바리새인들 중에서 믿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랬는데 하다보니까 옛날로 돌아온거지요. 서론이고 나의 자녀들아 나의 자녀라고 했으니까 입장이 어떤 입장입니까 부모 중에서도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어머니쪽입니다. 믿음으로 함께 해서 갈라디아 교회를 부르는 말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근심어린 것입니다. 나의 자녀에 대해서 근심어린 심정으로 부른 것입니다. 목회자에 교인들에 대해서 나의 자녀들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음과 같이 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닮은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를 닮은 바울이 있고 그 바울이 나를 닮으라, 내가 그리스도를 닮았으니까 나를 닮으라.
목회자가 교인들에 대해서 자격은 안될지라도 실력은 안될지라도 나의 자녀들아, 열달 배아파서 낳고 목회자라면 이런 심정이 되어야하고 목회자만 이러면 됩니까. 구역장이면 이런 심정이 되는 거고 반사면 이런 심정이 된 것이고 세상을 잘났던 못났던 탈선이 되었든 애가 타서 죽어야합니다.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하고 밤낮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하는 겁니다. 우리 아들 우리 딸 살려달라고. 반듯하고 돈 잘 벌고 믿음에서 탈선되었으면 죽었는 겁니다.
저도 교인들에 대해서 그런 마음 가져야하고 구역장 집사님도 가져야하고 반사 선생님들 학생에 대해서 이런 애타는 마음으로 가져야합니다. 그리하고 계시겠지요 모두, 반대로 교인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은 좋은 분이라 말씀드렸지요. 목회자를 천사처럼 받들었습니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우리는 근심을 끼쳐드리고 있지 않은지 교인 입장에서 근심걱정 끼쳐드린 거 아닌가. 나는 구역장님에게 우리 가정 위해서 밤낮 기도할건데 그러지 않으시겠습니까. 학생들은 철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생각이 있으면 나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건가. 돌아봐야겠습니다.
양떼입장. 바울같은 이런 입장을 있고 장점을 가지되 근심을 끼져드리는 그런 것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너희 속에 이게 문제입니다. 속이 문제입니다. 뭐든지 다 원리로 그런거지요. 아무리 겉이 튼튼해도 겉이 이상한 건 시간문제입니다. 심장, 폐, 장이 문제가 생겼습니다. 음식이던지 과일이던지 사람이던지 활동이던지 속이 문제입니다. 세상적으로도 사람의 껍데기를 보는 시대랄찌라도 지나고 나면 다 떨어집니다. 지식이 사람의 속을 만드는거지요. 지식이 사람의 관을 만드는거지요. 지식이라는 것은 보는 것이 되기 때문에 관이라는 건 지식과 같이 가는 겁니다. 이런 지식을 보면 그렇게 보는 겁니다.
일제 시대 때 국적이 그때는 일본이지요. 야당이 뒤집어지는거지요. 그때 호적 한 번 때어봐라 어떤 것으로 되어있는지. 사람에 따라 이런 말 저란 말하지만 이런 지식에서 그런 속에서 그런 지식으로 가지게 되는 거지요. 안 믿는 사람도 그런 겁니다. 그래서 배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습니까. 그게 꼭 나옵니다. 그래서 그가 존경한다고 그러면, 김일성 주의를 존경하면 맞는거지요. 그렇게 존경한다는데 틀린 말 아닌거지요. 지식은 사람의 속을 만듭니다. 말씀을 가지고 어떤 말씀을 하시느냐. 그 다음 바른 깨달음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느냐. 알멩이입니다. 지식은 안 보이나 드러나게 되는거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무리 잘생겨도 속에 말씀이 들어가지 않고 인식이 성경적이지 않고 세상적이면 우리는 그런 사람은 신앙인격장애라고 합니다. 육체적인 장애는 불편할 정도입니다. 인격신앙장애는 영혼과 직결되어 있어서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인격장애에 이렇게 애절하게 기도를 해야한다. 눈물의 기도는 없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에 기도는 헛기도가 없습니다. 바로만 하면. 주님이 바로 잡아서 들어주십니다. 너희 속에 우리 속에 한 번 돌아봐야겠습니다. 내 속은 어떤지 주일은 지키는데 그 속을 봐야합니다.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예배를 드리는데 그 속은, 심방전도출석하는데 그 속은 목회자인데 속은 그 속에 잘못되어있기 때문에 탈선되고 마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너희 속에 갈라디아 속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속에 보니까 미혹받는 어린 상태로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 이루기까지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고 목회자들의 충성이 목적이고 반사 선생님들의 목적이고 현상입니다. 그리스도의 현상 안 믿는 사람을 믿도록 하고 믿는 사람을 가까이하게 하고 가까이 가는 사람을 더 가까이해서 친밀하게 하는 겁니다. 사람이 친밀하면 어떻게 됩니까. 가고 가면 하나가 됩니다. 사람 하나 하나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무엇인가요. 부부입니다. 그래서 세월 속에 닮아가는 겁니다. 닮아가야 정상입니다.
제사장이란 사람을 한 명에게 붙여서 하나님과 한 몸 되게 하는 겁니다. 생각이 하나 되고 뜻이 하나되고 사람이 생각인데 하나님의 생각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이 욕심인데 하나님이 욕심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 말은 내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이다. 내 일은 하나님의 일이다. 주님과 하나님은 하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을 점점 닮아가도록 그리고 하나님을 원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먼저 제사장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맡기는 사람을 하나님과 친밀해져서 자기를 제물로 받쳐서 드리는 겁니다. 개인과 과정과 하나님의 뜻, 어떤 일에 대한 뜻, 사건에 대한 뜻, 현실에 대한 뜻, 그때 그때 원하는 뜻이 있으니 그 뜻을 밝은 심령으로 찾고 현실로 찾고 신앙 양심으로 찾아서 그 뜻을 아는대로 전달해주는 겁니다. 그게 선지자입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보고 한 사람 한 사람 일이 있을 때 그 개인개인 과정에서 전해줍니다. 그럴 때는 그 전함이 대개 보면 좋을 때보다 어려운 때가 많은데 신앙이 있는 분들은 많은 분들이 이해를 못합니다. 듣기 좋은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받기가 어렵고 거북하고 마음에 쏙 안 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장 뭐 해결될 것도 아닙니다. 아는대로는 찾고 양심으로 찾고 그의 개인과 가정에 찾는 겁니다. 이게 뜻이겠습니다. 전해주는 거지요.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는 것을 전하다가 자기를 바치는 게 선지자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그 뜻대로 순종하도록 기도하고 때는 가르치고 타이르고 설득시키고 이해 시키고 그런 관계에서는 엄하게도 말하고 그의 뜻대로 순종하게 하는 그게 왕직입니다. 순종하게 하도록. 그런 자기를 다 바치는 것이 그리스도 형상입니다. 그게 바울의 목적이었고 갈라디아 교회가 되길 원했고 그리 되는 줄 알았는데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습니다. 해산이라 그 말은 해산하는 수고다. 해산하고 난 다음에 길러나가는 거지요. 그래서 목회자와 엄마와 구역장과 엄마와 같이 가는 겁니다. 갓난아이를 데린 엄마들 아이를 잉태한 엄마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맞춥니까.
목자는 양을 따라다니는 겁니다. 인도. 양이 먹는 것을 찾아가는 거지요. 양이 마실 물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고. 양떼는 굶어죽는 것이고. 목회자는 원래 교인들에게 다 맞추는 거지요. 그래서 목회자의 육의 자녀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믿음의 자녀는 한 면입니다. 육의 자녀는 양면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따지면 육의 자녀에게 배로 힘을 써야하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99프로 시험에 들어가버립니다.
자기 가족들 교인들 때문에 이해를 못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앞으로 가서. 성경이 나와있는데 교인들은 그래야하고 목회자들은 교인들 때문에 그렇게 백 목사님도 그렇게 좋은 남편 그렇게 인자하신 아버지가 서부교회와서 완전히 바뀌어서 오래된 교인들 교회를 가져다가 이들을 가르칠려니까 가정을 뒤로 던져놓는거지요. 그래서 엉망이라고 하는데 서부교회 책임이 굉장히 클겁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 속이 아니라 그리스도 형상이 되어야하는데 이게 아니면 그것을 위하여 안됐기 때문에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합니다.
첫째, 나의 자녀들아 양면을 돌아보십시다. 부모입장에서 자기 맡은 사람들을 돌아봐야합니다. 이런 자세가 되어야겠고 자녀 양떼 입장에서는 근심시켜서 안되겠고 두 번째 너희 속을 돌아봐야합니다. 신앙 생활 내 속은 어떠냐. 나의 가진 교리 신조는 나의 생활은 주일은 지키면서 예배드리면서 충성하면서 알멩이 속이 어떠냐. 중심이 뭐냐. 나의 자녀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 제사자 선지자인 말입니다. 내가 되어야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하나님의 뜻에 찾고 전해주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게 그리스도 형상입니다.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 아이 낳아서 하는 그런 수고, 이런 것들을 기억해서 수고하고 돌아보십시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십시다.
찬송: 106장, 144장
본문: 갈라디아서 4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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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성경 전체적으로는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전체적으로 어린 때고 미개하다 그런 뜻입니다. 모든 게 다 밝혀지지 않았고 드러나지 않았고 지식적으로 발전적으로 전체적으로 초창기 지났다 하더라도 전체를 볼 때 어린 것들을 구약이라고 합니다. 구약 중에서도 창세 이후 타락 후 그때는 더 어렸을 것이고 여호수아 때보다는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때가 더 어렸을 겁니다. 사사기 때보다는 여호수아 때가 어렸을 것이고 사사 시대보다 왕정 시대가 나을 것이고 솔로몬 그런 이후로는 더 많이 자랄 것이고 바벨론 포로가 다녀오면 더 자랄 것이고, 점점 자라가는 것이고 점점 뒤로 어릴 때가 되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구약 시대는 신약에 비해서 어리다는 뜻입니다. 여러 면으로 할 수 있는데 기초다.
초등학교 6학년은 고학년입니다. 졸업생입니다. 초등학교 기준으로 말하면 6학년은 자란 것이고 1학년은 어린 것입니다. 길게 말하자면 아직 어립니다. 중고등학교면 더 자랐고, 지성인이라 그러면서 요즘 대학은 지성인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죠. 지성의 전당이라 그러던가요. 아무리 그래봐야 30대가 대학생 보면 철이 없습니다. 대학생 때 30대 때 마구 노동자 편에서 데모하고 소위 평등 부르짖던 그런 완전 빨갛게 되어있던 좌파 사람들이 나이가 철이 들고 그게 아니거든요. 정반대로 바뀐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젊었을 때 그리된 사람이 늙어서 그러면 답이 없습니다. 좌익 사상 평등 사상은 뭔가 문제가 있겠다. 그래서 참고하지만은 바로 알아야하는데 부르짖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거지요. 전체로 자라가는 겁니다. 구약시대는 어린 때입니다. 언제 비해서 어리냐, 신약에 비해서 어린 때입니다. 그 어린 시절에 주신 법이 율법입니다. 형식입니다. 보이는 것이라 그 말입니다. 외부로 나타나는 것 드러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구약의 어린 시절 형식의 시대의 모든 것은 앞으로 장성해야 신약시대를 미리 보여주시는 그런 표시라 그래서 미리 표시한다고 두 글자로 예표라고 합니다. 구약의 모든 것은 예표입니다. 대표적으로 구약의 모든 재산은 신약 시대의 예표입니다. 신약시대 주님을 표시하는 겁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 잡는 것을 하는 겁니다. 어린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짐승을 잡았습니다. 양 염소 잡아서 피를 흘려서 재단에 바쳤습니다. 신약은 당신을 잡아서 드렸으므로 한 번 제사로 끝났고 우리를 잡는데 우리의 생명을 잡는 게 아니고 습성을 잡는 겁니다. 이게 닮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구약이 어릴 때고 신약이 어릴 때를 보여드리는 겁니다.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을 관계를 구약 율법이란 어릴 때 주신 것이다. 그런데 왜 갈라디아 교회들이 미혹을 많이 받았느냐. 사람이 자기가 소속된 자기가 배우고 속했던 그런 곳을 알기 어렵습니다. 신학교를 전통으로 졸업한 사람들이 신학을 알기 어렵고 거기에 갖혀버립니다. 심지어 우리 백목사님 생전에 신앙의 사람들을 미국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백 목사님의 깨달음이 500년 칼빈 이후에 다시 주신 이어지는 그런 복음인데 이같은 복음이 세계에 또 있는지 잘못된 것이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보내셨는데 간 사람마다 전부 500년 동안에 자라지 않는 안에 빠져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갖다 온 사람마다 백 목사님 교육을 일반화 시키고 빠져죽었습니다. 한 분 빼고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한 사람이 10만명 먹여살린다. 그래서 최고의 인재를 구해라. 오래전부터 깨닫고 그렇게 한 거지요. 신앙도 같은 원리로 보냈는데 빠져죽었고 한 분만 가서 바로 구경하고 온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내에서도 그런 게 있습니다. 고신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고신대학을 포장할겁니다. 그런데 한 분은 보니까 이게 아닙니다. 자기가 거기 졸업했고 깊이 들어갔었는데 신학의 단점을 파악하고 현재까지 봐서는 아주 좋게 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구약의 복음이 섞인 시대입니다. 구약의 4000년 신약의 2000년인데 2000년 중에서 1900년은 완만하게 오다가 급속도로 빨라진 것처럼 말세로 갈수록 점점 더 모든 게 빨라지게 되는 겁니다. 그게 세월 속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4000년 세월은 큰 차이 없이 왔는데 2000년도 빠르게 왔지요. 그래서 삼분론과 건설구원 밝힐 때는 백 목사님 교훈을 이해못하고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4000년 율법 지키던 것을 예수님 말씀을 듣고 능력있는 교훈이다 논리정연하고 틀림이 없고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하고 옳은 것인데 안주해서 밥통 때문에 주님을 못박아 죽였습니다.
조상들이 죽인 선지자들의 순교자들의 무덤을 꽂고 비석을 세우면서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안 죽였을건데 이 귀한 종들을 다 죽였다 이렇게 꾸미면서 그러면서 그렇게 말하면서 저거 시대에 온 가장 큰 대제사장 예수님은 못받아 죽인겁니다. 바울 시대는 주님이 가신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섞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대속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데 이것이 인식이 되니까 인정이 되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니까 이해가 안되는거지요. 못 믿는거지요.
그 속에도 사도행전을 읽어보면은 유대인들 말하자면 율법주의자 중에서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바리새인들 중에서 믿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랬는데 하다보니까 옛날로 돌아온거지요. 서론이고 나의 자녀들아 나의 자녀라고 했으니까 입장이 어떤 입장입니까 부모 중에서도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어머니쪽입니다. 믿음으로 함께 해서 갈라디아 교회를 부르는 말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근심어린 것입니다. 나의 자녀에 대해서 근심어린 심정으로 부른 것입니다. 목회자에 교인들에 대해서 나의 자녀들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음과 같이 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닮은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를 닮은 바울이 있고 그 바울이 나를 닮으라, 내가 그리스도를 닮았으니까 나를 닮으라.
목회자가 교인들에 대해서 자격은 안될지라도 실력은 안될지라도 나의 자녀들아, 열달 배아파서 낳고 목회자라면 이런 심정이 되어야하고 목회자만 이러면 됩니까. 구역장이면 이런 심정이 되는 거고 반사면 이런 심정이 된 것이고 세상을 잘났던 못났던 탈선이 되었든 애가 타서 죽어야합니다.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하고 밤낮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하는 겁니다. 우리 아들 우리 딸 살려달라고. 반듯하고 돈 잘 벌고 믿음에서 탈선되었으면 죽었는 겁니다.
저도 교인들에 대해서 그런 마음 가져야하고 구역장 집사님도 가져야하고 반사 선생님들 학생에 대해서 이런 애타는 마음으로 가져야합니다. 그리하고 계시겠지요 모두, 반대로 교인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은 좋은 분이라 말씀드렸지요. 목회자를 천사처럼 받들었습니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우리는 근심을 끼쳐드리고 있지 않은지 교인 입장에서 근심걱정 끼쳐드린 거 아닌가. 나는 구역장님에게 우리 가정 위해서 밤낮 기도할건데 그러지 않으시겠습니까. 학생들은 철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생각이 있으면 나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건가. 돌아봐야겠습니다.
양떼입장. 바울같은 이런 입장을 있고 장점을 가지되 근심을 끼져드리는 그런 것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너희 속에 이게 문제입니다. 속이 문제입니다. 뭐든지 다 원리로 그런거지요. 아무리 겉이 튼튼해도 겉이 이상한 건 시간문제입니다. 심장, 폐, 장이 문제가 생겼습니다. 음식이던지 과일이던지 사람이던지 활동이던지 속이 문제입니다. 세상적으로도 사람의 껍데기를 보는 시대랄찌라도 지나고 나면 다 떨어집니다. 지식이 사람의 속을 만드는거지요. 지식이 사람의 관을 만드는거지요. 지식이라는 것은 보는 것이 되기 때문에 관이라는 건 지식과 같이 가는 겁니다. 이런 지식을 보면 그렇게 보는 겁니다.
일제 시대 때 국적이 그때는 일본이지요. 야당이 뒤집어지는거지요. 그때 호적 한 번 때어봐라 어떤 것으로 되어있는지. 사람에 따라 이런 말 저란 말하지만 이런 지식에서 그런 속에서 그런 지식으로 가지게 되는 거지요. 안 믿는 사람도 그런 겁니다. 그래서 배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습니까. 그게 꼭 나옵니다. 그래서 그가 존경한다고 그러면, 김일성 주의를 존경하면 맞는거지요. 그렇게 존경한다는데 틀린 말 아닌거지요. 지식은 사람의 속을 만듭니다. 말씀을 가지고 어떤 말씀을 하시느냐. 그 다음 바른 깨달음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느냐. 알멩이입니다. 지식은 안 보이나 드러나게 되는거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무리 잘생겨도 속에 말씀이 들어가지 않고 인식이 성경적이지 않고 세상적이면 우리는 그런 사람은 신앙인격장애라고 합니다. 육체적인 장애는 불편할 정도입니다. 인격신앙장애는 영혼과 직결되어 있어서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인격장애에 이렇게 애절하게 기도를 해야한다. 눈물의 기도는 없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에 기도는 헛기도가 없습니다. 바로만 하면. 주님이 바로 잡아서 들어주십니다. 너희 속에 우리 속에 한 번 돌아봐야겠습니다. 내 속은 어떤지 주일은 지키는데 그 속을 봐야합니다.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예배를 드리는데 그 속은, 심방전도출석하는데 그 속은 목회자인데 속은 그 속에 잘못되어있기 때문에 탈선되고 마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너희 속에 갈라디아 속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속에 보니까 미혹받는 어린 상태로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 이루기까지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고 목회자들의 충성이 목적이고 반사 선생님들의 목적이고 현상입니다. 그리스도의 현상 안 믿는 사람을 믿도록 하고 믿는 사람을 가까이하게 하고 가까이 가는 사람을 더 가까이해서 친밀하게 하는 겁니다. 사람이 친밀하면 어떻게 됩니까. 가고 가면 하나가 됩니다. 사람 하나 하나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무엇인가요. 부부입니다. 그래서 세월 속에 닮아가는 겁니다. 닮아가야 정상입니다.
제사장이란 사람을 한 명에게 붙여서 하나님과 한 몸 되게 하는 겁니다. 생각이 하나 되고 뜻이 하나되고 사람이 생각인데 하나님의 생각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이 욕심인데 하나님이 욕심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 말은 내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이다. 내 일은 하나님의 일이다. 주님과 하나님은 하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을 점점 닮아가도록 그리고 하나님을 원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먼저 제사장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맡기는 사람을 하나님과 친밀해져서 자기를 제물로 받쳐서 드리는 겁니다. 개인과 과정과 하나님의 뜻, 어떤 일에 대한 뜻, 사건에 대한 뜻, 현실에 대한 뜻, 그때 그때 원하는 뜻이 있으니 그 뜻을 밝은 심령으로 찾고 현실로 찾고 신앙 양심으로 찾아서 그 뜻을 아는대로 전달해주는 겁니다. 그게 선지자입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보고 한 사람 한 사람 일이 있을 때 그 개인개인 과정에서 전해줍니다. 그럴 때는 그 전함이 대개 보면 좋을 때보다 어려운 때가 많은데 신앙이 있는 분들은 많은 분들이 이해를 못합니다. 듣기 좋은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받기가 어렵고 거북하고 마음에 쏙 안 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장 뭐 해결될 것도 아닙니다. 아는대로는 찾고 양심으로 찾고 그의 개인과 가정에 찾는 겁니다. 이게 뜻이겠습니다. 전해주는 거지요.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는 것을 전하다가 자기를 바치는 게 선지자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그 뜻대로 순종하도록 기도하고 때는 가르치고 타이르고 설득시키고 이해 시키고 그런 관계에서는 엄하게도 말하고 그의 뜻대로 순종하게 하는 그게 왕직입니다. 순종하게 하도록. 그런 자기를 다 바치는 것이 그리스도 형상입니다. 그게 바울의 목적이었고 갈라디아 교회가 되길 원했고 그리 되는 줄 알았는데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습니다. 해산이라 그 말은 해산하는 수고다. 해산하고 난 다음에 길러나가는 거지요. 그래서 목회자와 엄마와 구역장과 엄마와 같이 가는 겁니다. 갓난아이를 데린 엄마들 아이를 잉태한 엄마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맞춥니까.
목자는 양을 따라다니는 겁니다. 인도. 양이 먹는 것을 찾아가는 거지요. 양이 마실 물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고. 양떼는 굶어죽는 것이고. 목회자는 원래 교인들에게 다 맞추는 거지요. 그래서 목회자의 육의 자녀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믿음의 자녀는 한 면입니다. 육의 자녀는 양면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따지면 육의 자녀에게 배로 힘을 써야하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99프로 시험에 들어가버립니다.
자기 가족들 교인들 때문에 이해를 못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앞으로 가서. 성경이 나와있는데 교인들은 그래야하고 목회자들은 교인들 때문에 그렇게 백 목사님도 그렇게 좋은 남편 그렇게 인자하신 아버지가 서부교회와서 완전히 바뀌어서 오래된 교인들 교회를 가져다가 이들을 가르칠려니까 가정을 뒤로 던져놓는거지요. 그래서 엉망이라고 하는데 서부교회 책임이 굉장히 클겁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 속이 아니라 그리스도 형상이 되어야하는데 이게 아니면 그것을 위하여 안됐기 때문에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합니다.
첫째, 나의 자녀들아 양면을 돌아보십시다. 부모입장에서 자기 맡은 사람들을 돌아봐야합니다. 이런 자세가 되어야겠고 자녀 양떼 입장에서는 근심시켜서 안되겠고 두 번째 너희 속을 돌아봐야합니다. 신앙 생활 내 속은 어떠냐. 나의 가진 교리 신조는 나의 생활은 주일은 지키면서 예배드리면서 충성하면서 알멩이 속이 어떠냐. 중심이 뭐냐. 나의 자녀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 제사자 선지자인 말입니다. 내가 되어야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하나님의 뜻에 찾고 전해주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게 그리스도 형상입니다.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 아이 낳아서 하는 그런 수고, 이런 것들을 기억해서 수고하고 돌아보십시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