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1-주후 (갈라디아교회 - 신앙은 자라가는 것)
이아림2024-09-01조회 111추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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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01. 주후
본문: 갈라디아서 4장 8절 – 11절 말씀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님 구원 역사는
하나님 목적이며 하나님 뜻입니다.
하나님 목적은 하나님께 유일무이한 목적이고
이것이 전부입니다.
영원 전 하나님이 계시고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출발입니다.
곧 하나님 목적이 우리 구원이며
우리 구원은 영원 전 출발,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이 하나님 아닌 존재를
하나님처럼 만드는 것이며
즉, 하나님 몸을 만드는 것, 교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목적, 우리의 구원은
크고 복잡하고 세밀합니다.
몸은 여러 지체가 모여 하나가 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혼자 나서게 되면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교회, 구원역사에서도
뭐 하나 뛰어난 사람이 나서면 문제가 생깁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첫째로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 쓸모없게 됩니다.
옛사람 자기를 꺾고 참사람 자기를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아닌 존재를
하나님처럼 만드는 것이 하나님 목적이며
이것은 곧 하나님의 몸입니다.
이 하나님 몸을 만든 세월이 6천년 지났습니다.
그 세월 속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라가야 정상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지방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도리입니다.
갈라디아서 전체적으로 보면
율법과 복음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율법은 구약, 복음은 신약입니다.
율법에서 복음으로 자라가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구약과 신약은 이어집니다.
구약성도와 신약성도는 이어집니다.
구약 율법은 어린 시대 사람들에게 주신 어린 법입니다.
어릴 때는 형식으로 가르칩니다.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 형식입니다.
갈라디아교회 교인의 장점은
자기 목회자를 천사처럼,
그리스도 예수처럼 여겼습니다.
이것은 복입니다.
한편으로 좋은 목회자를 모셨으니
잘 배우고 잘 자라가야 하는데
이 교회 교인들은
신앙이 바로 자라지 않은 게 문제입니다.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의 약점입니다.
어리다는 것은 순진하고 깨끗합니다.
그런데 무능하고 힘이 없고,
위협을 잘 받아 끌고 가면 끌려갑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뱀처럼 지혜가 없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기만 하면,
어린 아이처럼 맑고 깨끗하기만 하면
마귀에게 잡아먹히게 됩니다.
이 문제를 두고 바울이 계속 말씀합니다.
유업을 이을 자가 주인인데
그 유업을 이을 자가 아직 어립니다.
그래서 청지기와 후견인 아래 있습니다.
거기서 종노릇하며 있었습니다.
그 밑에서 자라가게 해주신 것입니다.
세월이 4천년 지나 장성했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여자 몸으로 율법으로 구원하시기 위해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
구약의 어린 성도들이 자라 신약의 우리가 되어
주님이 오셔서 율법 아래 나서 율법을 다 이루시면서
율법 아래 매여 있는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대속의 은혜 법으로 자라가게 해주신 것이 신약시대이고
그런 우리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아바 아버지’는 하나님을 친근하게, 가깝게 부르는 말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장성해서 하나님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는데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은
아직까지 중생되지 못했거나 부르심을 받지 못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우상섬기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데
‘어찌하여’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은 ‘율법’을 말합니다.
어린 시대 주신 어린 법입니다.
이 율법은 보이는 것으로
지키면 구원이 되고,
어기면 즉결 처분이 됩니다.
신약으로 이어지니 율법의 행위로서는
구원 얻을 육체가 없다.
어린 시대 사람들에게 어린 법으로 주셨으나
장차 오실 장성한 시대에 율법을 완성시키고
율법의 실체가 되어질, 그 율법을 온전케 만드실
구주 메시야의 예표로 주신 것입니다.
실상이 아닌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주님 대속과 대속으로 이어지는 신약의 성도들의
구원이 온전해지지 않으면
구약시대 성도들의 수많은 순교의 피가 전부 허사가 됩니다.
최종을 이루지 못하면 모두 헛일이 됩니다.
구약의 4천년 역사가
신약 성도들, 주님 대속이 완성됐기 때문에 완성이 됐는데
전체적으로 신약 성도들의 구원이 완성되지 않으면
둘은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전부 다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 율법의 마지막 결론은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그 법으로 다시 돌아가니
사도 바울이 기가 막힌 겁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한 수고는
해산하는 수고를 했습니다.
이 수고가 헛일이 될까 두려워하노라.
신앙은 자라가야 합니다.
자라가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자라가야 할 때 자라가지 못하면
그 사람의 심신의 기능은 죽습니다.
자라가는 것은 원형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라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고
자라가는 것의 결과입니다.
믿는 사람의 자람에는 끝이 없습니다.
자라갈수록 부족함이 많아지는 게
믿는 사람의 자람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