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6일 금밤
김동민2024-08-18조회 120추천 14
2024년 8월 16일 금밤
찬송: 144장, 172장
본문: 에스겔 40장 3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1절부터 5절까지 요점을 살펴봅니다. 절망 중에 주신 말씀을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이라는 강한 나라에 나라가 다 함락되고 망했고 그 사람들 심신이 다 묶여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두 눈이 빼이고 쇠사슬에 묶여서 눈을 뽑았다. 눈을 뺐습니다. 두 눈을 어떻게 했다고요. 뽑아버렸습니다. 뭘로 뽑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끔찍하지 않습니까. 아들들을 보는데에서 다 죽여버립니다. 두 눈을 뽑아내고 비참하지요, 끔찍합니다. 이게 포로되는 겁니다. 지면은 그리 되는 겁니다. 쇠사슬에 묶여서 끌려갑니다. 예루살렘에서 바벨론까지 거리가 멀 겁니다. 말타고 그리가고 눈이 뽑힌채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질질 끌려가는거지요. 그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나라에 끌려갔습니다. 비참한 모습입니다. 육체적인 건 실감을 하는데 우리들의 신앙이 구원이 나의 천국이 이 세상에 사로잡혀서 빼앗겨버리는 건 감각이 별로 없는데 우리가 중요한 것은 각자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의 어떤 것이 이 세상 무엇의 뺏겼는지 사로잡혔는지를 생각해봐야합니다.
마귀는 강합니다. 666이고 똑똑합니다. 머리가 굉장히 좋습니다. 치밀합니다. 아주 우리들의 전부를 환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나를 가장 잘 아는 놈이 마귀입니다. 장단점을 환하게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넘어진다. 안된다 알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근처에 안옵니다. 맞아죽을까 싶어서.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사람을 다 알거든요. 한 2주 지나면 3주 지나면 가라앉을거다. 그래서 가라앉으면 가까이갑니다. 그리고 잡아먹어버립니다. 이렇게 삼키는 사람 저렇게 삼키는 사람 다 있지만 나를 알아야합니다. 나의 어떤 점이 나의 이 세상 어떤 것에게 붙들려 메이는가. 전체로 여러 가지로 칩니다. 향락이다 가정이다 뭐다뭐다 말하지만 학생들 같으면 휴대폰이 제일 많겠지요. 어른들도 어지간히 예배시간에 휴대폰 다 가지고 오셨을걸요. 필요가 없으니까 저는 안 가져옵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휴대폰 보고 있으면 예배 안 드리는 겁니다. 평소에도 휴대폰 빠져버리면 대책이 많습니다.
요즘 안 믿는 일반 사람도 텔레비전을 안 본다고 하지요. 쓸데없는 거만 하고 있으니까 뭐하는지 하고 싶고 사람마다 다른 겁니다. 오락, 재미, 놀이에 빠지는 사람 저급의 세상에 빠지고 중급의 세상에 빠지고 고고한 세상에 빠지고 자기 자신을 알아야합니다. 무엇이 빠지느냐, 무엇에 사로잡히느냐, 나의 무엇이 연결시키면 답이 나오는데 신앙, 구원 천국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루는 게 뭐냐 내 신앙, 내 구원 나의 천국 하나님의 형상에 뺏기는건데 어떻게 뺏냐 현장에 내 구원 내 신앙 구원 천국 하나님 형상 이걸 이루는 현실의 나의 요소가 뭐냐 그 말이지요. 그걸 뺏기는 게 직접적으로 뺏기는 겁니다. 신앙은 올라가고 더 올라가고 접점, 일선에서 투쟁하는 세상이라는 그놈과 마주치고 투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최일선에서 투쟁하는 그게 뭡니까. 믿는 사람들의 구원은 뭘로 다 이루어갑니까. 우리의 구원을 뭘로 이루어갑니까. 앎으로 몸으로 마음과 몸의 활동으로
내 생각 내 마음 내가 움직이는 나의 시간 이걸 빼앗아가는 겁니다. 내 시간을 빼앗아가는게 나를 사로잡아가는 세상입니다. 거기 나의 맘이 들어가고 시간 속에 나의 행동이 들어갑니다. 내 생애가 들어가는겁니다. 시간을 뺏기면 심신 활동을 빼앗기는 것이고 그리 되는 것입니다. 나의 시간을 무엇이 잡아먹느냐, 이걸 나를 사로잡는 세상이고 그게 바로 원수입니다. 그 시간에 기도할 수 있고 성경 읽을 수 있고 그 시간에 주의 뜻을 찾아서 심방을 할 수 있고 명상할 수 있고 많은 걸 할 수 있는데 이 세상에 빼앗겨버립니다. 휴대폰 본다고 취미생활한다고 뭐 한다고 뭐 한다고 내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면 바벨론입니다. 원수입니다. 예사로 생각하면 평생 그렇게 갑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을 보면 별 것도 아닌데 특별히 죄짓는 것도 없는데 하는 게 없습니다. 어영부영하다 시간 다 가버립니다.
그런데 바쁘게 일하는 분은 또 그렇게 빼앗기는 것이고, 나의시간 속에 심신의 활동 작용, 그 작용으로 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천국이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승화가 되는데 이 세상에 포로되는 겁니다. 종이되고 마는 겁니다. 히스기야가 끌려가는 거 못지않게 비참하게 되는건데 육의 사람이다보니까 영적인 것에 감각이 없는거지요. 그래서 1절에서는 기억하십시다. 바벨론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처럼 좋은 세상 강한 세상에 어느 경우는 근심걱정에 시간 뺏기는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걱정하다가 근심걱정에 시간 많이 빼앗겨버립니다. 얽메인 날 부르사, 어떤 것이든 주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천국 건설할 시간을 빼앗아가는 게 나를 사로잡는 바벨론입니다. 고요하게 각자 자신을 돌아보셔야합니다. 그래서 찍어놓고 이게 내 원수구나 어영부영하면 그게 원수입니다. 시간 허비하지 않으면 원수입니다.
어떤 사람이 책을 사러왔는데 이 책값이 얼마입니까. 만원입니다. 깎아주세요 만 천원입니다. 왜 올립니까. 내 금같은 시간 빼앗았으니 그런 거지요. 시간은 구원입니다. 시간은 천국입니다. 시간에 구원에 있습니까. 내게 주어진 신앙은 허비하면 구원을 다 허비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세상에 사로잡혔는가, 두 번째 2절에 하나님 이상 중에 사람 볼 때 정상이 아니다. 탈선되어서 정신이 잘못된 게 아니고 사람의 세계를 초월하니까 지식이 사람의 지식을 초월하고 시각이 초월하는거지요. 사람들이 보는 각도를 하는 겁니다. 사랑을 초월해버리는 겁니다. 이게 이상 중입니다. 인간에 하나님의 이상 중에 붙들리려면 자기로써 인간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넘어가야합니다. 자기 아는 지식 별별 지식이 있습니다. 토끼꼬리만한 지식 가지고 좀 안다고, 고등학교를 올라갔는데 졸업했는데 고등 교육을 받았는데 대학교를 명문대를 유학을 박사인데 그쪽 박사라도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천배만배 억만배 더 많습니다. 그래서 박사학위 10개를 가져도 겸손하지 자랑하지 않습니다.
천하없는 박사라도 천 배 만배 더 많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 조금 배웠다는 사람이 단 줄 압니다. 지식을 넘어서고 파생된 주관과 자율과 인식과 넘어서고 초월하고 별별 거 위신도 체면도 인간적인 모든 요소 초월 했을 때 양심을 쓰고 주님에게 붙들려야하니까 들어갈 때 이상 중에 세계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데려가셨고 우리는 그 세계를 보는 우리가 되어야하는데 다 다르겠지요. 우리는 이상세계를 보는 겁니다. 명상 세계 속에서 인간을 초월해서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극히 높은 산 하나님과 가깝다는 겁니다.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다른 게 섞여 있으면 안되는 겁니다. 말씀을 가지고 악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기 전부를 다 배제하고 자기 뜻만 생각하는 겁니다. 이상 중에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천국, 인자야 내가 네가 보이는 것을 뭘 보이느냐 성전 성읍형상을 보였습니다.
나를 데리시고 이르시니까 모양이 놋과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드러난 겁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신데 김선인, 하나님 누구라고요. 암만 똑똑해봐야 예배시간에 안 들으면 소요없습니다. 순간에 다 바보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어떤 분이라고요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안 보입니다. 안 보이는데 안 보이는 하나님이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모양이 놋같이 빛난 고난을 받으신 연단을 받으신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납니다 둘이 아니고 손에 손이란 활동입니다. 처리하는 거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주다. 하나님이 처리하신다. 외 가졌느냐 이걸로 잰다. 이걸로 측량한다. 이렇게 측량하고 심판한다. 시험 문제를 꼭 집어주지는 않아도 시험 공부는 뭐 하는 겁니까. 답을 찾아 공부하는 거지요. 선생님이 답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미리 답을 가르쳐놓고 그 다음에 시험을 치는 겁니다. 모든 시험은 답을 가르쳐주고 그 다음 치는 겁니다. 그런데 답을 안 배우고 있다가 그러면 모르는 거지요.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진 주님이 답을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앞으로 이렇게 심판할거다. 심판의 잣대를 가르쳐주는 겁니다.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 삼줄도 자입니다. 장대도 잡니다. 자는 무엇이 자인가요. 무엇이 측량하는 잣대입니까. 도덕입니까. 윤리입니까 양심입니까. 말씀이 잣대입니다. 말씀이 잣대인데 삼줄도 잣대입니다. 말씀 속에 다 있다고 합니다. 길게 재는 게 뭘까 멀리봐라는 겁니다. 삼줄은 계산하는 겁니다. 소망하는 겁니다. 계획하는 겁니다. 현재를 살면서 종말을 생각해라 인간의 늙을 때까지를 계산하는 게 삼줄입니다. 늙을 때까지 계산하는 게 삼줄입니다. 오래 살아보면 몇 가지 거짓말이 없다고 하지요.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말, 장사가 밑지고 판다는 말, 노인이 일찍죽고 싶다는 마라. 늙어보십시오. 오래 사는 게 복일까. 늙어가는 중간에서 오래사는 분들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80이 넘어도 건강한 거 보면 대단합니다.
100세도 건강하면 좋은데 80 90됐는데 그러 있으면 오래 사는 게 복일까. 아닌가요, 늙는 것은 죄값입니다. 안 늙을 수가 없잖습니까. 그러나 늙어가는 가운데에서도 사그라진다는 말입니다. 속이 날로 새로우면 그러면 늙어도 괜찮은데 겉도 늙고 속도 늙어버리면, 내가 늙어서 백수가 될 때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그런 말이 있는데 실감이 됩니다. 젊을 때 늙음을 생각하는 게 삼줄입니다. 살아있을 때 죽음까지 생각하는 게 삼줄입니다. 무궁세계까지 계산하는 게 삼줄입니다. 현실은 현재는 다 따지는 겁니다. 따지고 따지고 정확하게 구별해서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처리하나 이게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입니다. 모양이 놋같이 하신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문이 어디라고 했습니까. 모든 출발입니다. 현실이란 현재란 과거의 종착점이고 미래의 출발적입니다. 과거 미래 사이가 현재입니다.
오늘 이후를 새롭게 출발하는게 최고의 귀한 복입니다. 가장 귀한 보배가 현재입니다. 그게 시간입니다. 현재를 살 수 있다는 말은 현재를 살아갈 복이 있다는 말이고 지난 세월 어떤 것이라도 회개할 수 있습니다. 새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새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게 문입니다. 이렇게 심판한다. 지금 젊었냐 늙음을 생각해라. 죽음을 기억하라. 전쟁 이기고 돌아오는 장군 환영하는데 계속 말한다고 하지요. 죽음 생각하라, 말이 있습니다. 현재를 사느냐 죽음을 생각해라 젊으냐 죽음을 생각해라. 심판을 생각하고 무궁세계를 생각해라. 나에게 가르치고 계신겁니다. 현실에서 말씀대로 살아라. 장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에 서있습니다. 항상 옆에 주님이 계시는 겁니다. 우리 눈이 어두워서 안 보일 뿐입니다. 현실을 살아갈 때마다 계시는데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거지요.
성읍형상같은 거 보여주셨고 측량하는 과정을 보여주십니다. 천국을 보여주신거지요. 이렇게 건설하는거다. 남으로 향하여. 천국을 보여주시고 그 천국 건설하는 과정을 보여주신 겁니다. 에스겔에게 보여주시면서 내가 네게 보여준 것을 귀로 들어라. 보고 들으라고 하면요 견물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해라 뭘 생각해야겠습니까.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이 본 것을 우리도 봐야합니다. 에스겔은 성읍같은 형상을 남으로 향하여 보여주셨는데 우리에게는 어떻게 보여주십니까. 내가 내게 보여주는 것을 봐라 들어라. 어떻게 하십니까.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 속에 있지요. 성경 봐라, 어제 하루종일 새벽부터 아침 일곱시까지 성경을 읽는데 쓰는 것도 참 좋은데 읽는 거 좋은 겁니다.
하나님 오신 천국에 좋은 겁니다. 그리고 생각해라. 에스겔에게는 구약이니까 가르치기 위해서 데려가셔서 보여주셨는데 이걸 성읍현상 같은 것이기 때문에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상으로 보여주신 것이지 실제 있는 게 아닙니다. 에스겔에게는 그림과 실물로, 우리에게는 말씀으로 기록해놨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해라. 뭘 생각합니까. 이게 뭐지 에스겔이 저게 뭐지 성읍인데 무엇일까. 예루살렘 성읍같은데 성전인데. 우리에게 성경으로 기록해주시고 하셨으니까 천국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기록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들으라. 그리고 생각을 해라. 뭘 생각합니까. 들은 말씀 생각합니다. 들은 만큼 생각하고 그리고 실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만들어라. 사명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섯 번째 담이 나오죠. 이 담이 무슨 담이냐 구별의 담입니다.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는 담. 말씀의 담입니다. 신앙 노선의 담입니다. 우리 교회 찬송가, 간판, 예배모습은 담입니다. 남녀구분하는 것은 담입니다. 말씀이 답이고 이게 충성이 담이고 인내가 담입니다. 하나 둘로 정의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고 이 세상과 달리사는 그런 게 담이기 때문에 많은 걸 응용할 수 있는 겁니다. 다섯가지로 정리합니다. 무엇이 나를 빼앗는가 바벨론입니다. 이상 중에 올라갑니다. 인간과 세상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놋같이 빛난 주님 내 옆에 내가 사람 현실에 항상 계십니다. 보이는 것을 보라고 했습니다. 말씀 속에 전부다 하는 겁니다. 오절까지 다섯가지 기억하고 지식적으로 알고 실제로 하는대로 할려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44장, 172장
본문: 에스겔 40장 3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1절부터 5절까지 요점을 살펴봅니다. 절망 중에 주신 말씀을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이라는 강한 나라에 나라가 다 함락되고 망했고 그 사람들 심신이 다 묶여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두 눈이 빼이고 쇠사슬에 묶여서 눈을 뽑았다. 눈을 뺐습니다. 두 눈을 어떻게 했다고요. 뽑아버렸습니다. 뭘로 뽑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끔찍하지 않습니까. 아들들을 보는데에서 다 죽여버립니다. 두 눈을 뽑아내고 비참하지요, 끔찍합니다. 이게 포로되는 겁니다. 지면은 그리 되는 겁니다. 쇠사슬에 묶여서 끌려갑니다. 예루살렘에서 바벨론까지 거리가 멀 겁니다. 말타고 그리가고 눈이 뽑힌채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질질 끌려가는거지요. 그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나라에 끌려갔습니다. 비참한 모습입니다. 육체적인 건 실감을 하는데 우리들의 신앙이 구원이 나의 천국이 이 세상에 사로잡혀서 빼앗겨버리는 건 감각이 별로 없는데 우리가 중요한 것은 각자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의 어떤 것이 이 세상 무엇의 뺏겼는지 사로잡혔는지를 생각해봐야합니다.
마귀는 강합니다. 666이고 똑똑합니다. 머리가 굉장히 좋습니다. 치밀합니다. 아주 우리들의 전부를 환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나를 가장 잘 아는 놈이 마귀입니다. 장단점을 환하게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넘어진다. 안된다 알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근처에 안옵니다. 맞아죽을까 싶어서.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사람을 다 알거든요. 한 2주 지나면 3주 지나면 가라앉을거다. 그래서 가라앉으면 가까이갑니다. 그리고 잡아먹어버립니다. 이렇게 삼키는 사람 저렇게 삼키는 사람 다 있지만 나를 알아야합니다. 나의 어떤 점이 나의 이 세상 어떤 것에게 붙들려 메이는가. 전체로 여러 가지로 칩니다. 향락이다 가정이다 뭐다뭐다 말하지만 학생들 같으면 휴대폰이 제일 많겠지요. 어른들도 어지간히 예배시간에 휴대폰 다 가지고 오셨을걸요. 필요가 없으니까 저는 안 가져옵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휴대폰 보고 있으면 예배 안 드리는 겁니다. 평소에도 휴대폰 빠져버리면 대책이 많습니다.
요즘 안 믿는 일반 사람도 텔레비전을 안 본다고 하지요. 쓸데없는 거만 하고 있으니까 뭐하는지 하고 싶고 사람마다 다른 겁니다. 오락, 재미, 놀이에 빠지는 사람 저급의 세상에 빠지고 중급의 세상에 빠지고 고고한 세상에 빠지고 자기 자신을 알아야합니다. 무엇이 빠지느냐, 무엇에 사로잡히느냐, 나의 무엇이 연결시키면 답이 나오는데 신앙, 구원 천국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루는 게 뭐냐 내 신앙, 내 구원 나의 천국 하나님의 형상에 뺏기는건데 어떻게 뺏냐 현장에 내 구원 내 신앙 구원 천국 하나님 형상 이걸 이루는 현실의 나의 요소가 뭐냐 그 말이지요. 그걸 뺏기는 게 직접적으로 뺏기는 겁니다. 신앙은 올라가고 더 올라가고 접점, 일선에서 투쟁하는 세상이라는 그놈과 마주치고 투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최일선에서 투쟁하는 그게 뭡니까. 믿는 사람들의 구원은 뭘로 다 이루어갑니까. 우리의 구원을 뭘로 이루어갑니까. 앎으로 몸으로 마음과 몸의 활동으로
내 생각 내 마음 내가 움직이는 나의 시간 이걸 빼앗아가는 겁니다. 내 시간을 빼앗아가는게 나를 사로잡아가는 세상입니다. 거기 나의 맘이 들어가고 시간 속에 나의 행동이 들어갑니다. 내 생애가 들어가는겁니다. 시간을 뺏기면 심신 활동을 빼앗기는 것이고 그리 되는 것입니다. 나의 시간을 무엇이 잡아먹느냐, 이걸 나를 사로잡는 세상이고 그게 바로 원수입니다. 그 시간에 기도할 수 있고 성경 읽을 수 있고 그 시간에 주의 뜻을 찾아서 심방을 할 수 있고 명상할 수 있고 많은 걸 할 수 있는데 이 세상에 빼앗겨버립니다. 휴대폰 본다고 취미생활한다고 뭐 한다고 뭐 한다고 내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면 바벨론입니다. 원수입니다. 예사로 생각하면 평생 그렇게 갑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을 보면 별 것도 아닌데 특별히 죄짓는 것도 없는데 하는 게 없습니다. 어영부영하다 시간 다 가버립니다.
그런데 바쁘게 일하는 분은 또 그렇게 빼앗기는 것이고, 나의시간 속에 심신의 활동 작용, 그 작용으로 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천국이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승화가 되는데 이 세상에 포로되는 겁니다. 종이되고 마는 겁니다. 히스기야가 끌려가는 거 못지않게 비참하게 되는건데 육의 사람이다보니까 영적인 것에 감각이 없는거지요. 그래서 1절에서는 기억하십시다. 바벨론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처럼 좋은 세상 강한 세상에 어느 경우는 근심걱정에 시간 뺏기는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걱정하다가 근심걱정에 시간 많이 빼앗겨버립니다. 얽메인 날 부르사, 어떤 것이든 주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천국 건설할 시간을 빼앗아가는 게 나를 사로잡는 바벨론입니다. 고요하게 각자 자신을 돌아보셔야합니다. 그래서 찍어놓고 이게 내 원수구나 어영부영하면 그게 원수입니다. 시간 허비하지 않으면 원수입니다.
어떤 사람이 책을 사러왔는데 이 책값이 얼마입니까. 만원입니다. 깎아주세요 만 천원입니다. 왜 올립니까. 내 금같은 시간 빼앗았으니 그런 거지요. 시간은 구원입니다. 시간은 천국입니다. 시간에 구원에 있습니까. 내게 주어진 신앙은 허비하면 구원을 다 허비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세상에 사로잡혔는가, 두 번째 2절에 하나님 이상 중에 사람 볼 때 정상이 아니다. 탈선되어서 정신이 잘못된 게 아니고 사람의 세계를 초월하니까 지식이 사람의 지식을 초월하고 시각이 초월하는거지요. 사람들이 보는 각도를 하는 겁니다. 사랑을 초월해버리는 겁니다. 이게 이상 중입니다. 인간에 하나님의 이상 중에 붙들리려면 자기로써 인간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넘어가야합니다. 자기 아는 지식 별별 지식이 있습니다. 토끼꼬리만한 지식 가지고 좀 안다고, 고등학교를 올라갔는데 졸업했는데 고등 교육을 받았는데 대학교를 명문대를 유학을 박사인데 그쪽 박사라도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천배만배 억만배 더 많습니다. 그래서 박사학위 10개를 가져도 겸손하지 자랑하지 않습니다.
천하없는 박사라도 천 배 만배 더 많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 조금 배웠다는 사람이 단 줄 압니다. 지식을 넘어서고 파생된 주관과 자율과 인식과 넘어서고 초월하고 별별 거 위신도 체면도 인간적인 모든 요소 초월 했을 때 양심을 쓰고 주님에게 붙들려야하니까 들어갈 때 이상 중에 세계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데려가셨고 우리는 그 세계를 보는 우리가 되어야하는데 다 다르겠지요. 우리는 이상세계를 보는 겁니다. 명상 세계 속에서 인간을 초월해서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극히 높은 산 하나님과 가깝다는 겁니다.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다른 게 섞여 있으면 안되는 겁니다. 말씀을 가지고 악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기 전부를 다 배제하고 자기 뜻만 생각하는 겁니다. 이상 중에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천국, 인자야 내가 네가 보이는 것을 뭘 보이느냐 성전 성읍형상을 보였습니다.
나를 데리시고 이르시니까 모양이 놋과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드러난 겁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신데 김선인, 하나님 누구라고요. 암만 똑똑해봐야 예배시간에 안 들으면 소요없습니다. 순간에 다 바보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어떤 분이라고요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안 보입니다. 안 보이는데 안 보이는 하나님이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모양이 놋같이 빛난 고난을 받으신 연단을 받으신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납니다 둘이 아니고 손에 손이란 활동입니다. 처리하는 거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주다. 하나님이 처리하신다. 외 가졌느냐 이걸로 잰다. 이걸로 측량한다. 이렇게 측량하고 심판한다. 시험 문제를 꼭 집어주지는 않아도 시험 공부는 뭐 하는 겁니까. 답을 찾아 공부하는 거지요. 선생님이 답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미리 답을 가르쳐놓고 그 다음에 시험을 치는 겁니다. 모든 시험은 답을 가르쳐주고 그 다음 치는 겁니다. 그런데 답을 안 배우고 있다가 그러면 모르는 거지요.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진 주님이 답을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앞으로 이렇게 심판할거다. 심판의 잣대를 가르쳐주는 겁니다.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 삼줄도 자입니다. 장대도 잡니다. 자는 무엇이 자인가요. 무엇이 측량하는 잣대입니까. 도덕입니까. 윤리입니까 양심입니까. 말씀이 잣대입니다. 말씀이 잣대인데 삼줄도 잣대입니다. 말씀 속에 다 있다고 합니다. 길게 재는 게 뭘까 멀리봐라는 겁니다. 삼줄은 계산하는 겁니다. 소망하는 겁니다. 계획하는 겁니다. 현재를 살면서 종말을 생각해라 인간의 늙을 때까지를 계산하는 게 삼줄입니다. 늙을 때까지 계산하는 게 삼줄입니다. 오래 살아보면 몇 가지 거짓말이 없다고 하지요.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말, 장사가 밑지고 판다는 말, 노인이 일찍죽고 싶다는 마라. 늙어보십시오. 오래 사는 게 복일까. 늙어가는 중간에서 오래사는 분들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80이 넘어도 건강한 거 보면 대단합니다.
100세도 건강하면 좋은데 80 90됐는데 그러 있으면 오래 사는 게 복일까. 아닌가요, 늙는 것은 죄값입니다. 안 늙을 수가 없잖습니까. 그러나 늙어가는 가운데에서도 사그라진다는 말입니다. 속이 날로 새로우면 그러면 늙어도 괜찮은데 겉도 늙고 속도 늙어버리면, 내가 늙어서 백수가 될 때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그런 말이 있는데 실감이 됩니다. 젊을 때 늙음을 생각하는 게 삼줄입니다. 살아있을 때 죽음까지 생각하는 게 삼줄입니다. 무궁세계까지 계산하는 게 삼줄입니다. 현실은 현재는 다 따지는 겁니다. 따지고 따지고 정확하게 구별해서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처리하나 이게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입니다. 모양이 놋같이 하신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문이 어디라고 했습니까. 모든 출발입니다. 현실이란 현재란 과거의 종착점이고 미래의 출발적입니다. 과거 미래 사이가 현재입니다.
오늘 이후를 새롭게 출발하는게 최고의 귀한 복입니다. 가장 귀한 보배가 현재입니다. 그게 시간입니다. 현재를 살 수 있다는 말은 현재를 살아갈 복이 있다는 말이고 지난 세월 어떤 것이라도 회개할 수 있습니다. 새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새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게 문입니다. 이렇게 심판한다. 지금 젊었냐 늙음을 생각해라. 죽음을 기억하라. 전쟁 이기고 돌아오는 장군 환영하는데 계속 말한다고 하지요. 죽음 생각하라, 말이 있습니다. 현재를 사느냐 죽음을 생각해라 젊으냐 죽음을 생각해라. 심판을 생각하고 무궁세계를 생각해라. 나에게 가르치고 계신겁니다. 현실에서 말씀대로 살아라. 장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에 서있습니다. 항상 옆에 주님이 계시는 겁니다. 우리 눈이 어두워서 안 보일 뿐입니다. 현실을 살아갈 때마다 계시는데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거지요.
성읍형상같은 거 보여주셨고 측량하는 과정을 보여주십니다. 천국을 보여주신거지요. 이렇게 건설하는거다. 남으로 향하여. 천국을 보여주시고 그 천국 건설하는 과정을 보여주신 겁니다. 에스겔에게 보여주시면서 내가 네게 보여준 것을 귀로 들어라. 보고 들으라고 하면요 견물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해라 뭘 생각해야겠습니까.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이 본 것을 우리도 봐야합니다. 에스겔은 성읍같은 형상을 남으로 향하여 보여주셨는데 우리에게는 어떻게 보여주십니까. 내가 내게 보여주는 것을 봐라 들어라. 어떻게 하십니까.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 속에 있지요. 성경 봐라, 어제 하루종일 새벽부터 아침 일곱시까지 성경을 읽는데 쓰는 것도 참 좋은데 읽는 거 좋은 겁니다.
하나님 오신 천국에 좋은 겁니다. 그리고 생각해라. 에스겔에게는 구약이니까 가르치기 위해서 데려가셔서 보여주셨는데 이걸 성읍현상 같은 것이기 때문에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상으로 보여주신 것이지 실제 있는 게 아닙니다. 에스겔에게는 그림과 실물로, 우리에게는 말씀으로 기록해놨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해라. 뭘 생각합니까. 이게 뭐지 에스겔이 저게 뭐지 성읍인데 무엇일까. 예루살렘 성읍같은데 성전인데. 우리에게 성경으로 기록해주시고 하셨으니까 천국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기록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들으라. 그리고 생각을 해라. 뭘 생각합니까. 들은 말씀 생각합니다. 들은 만큼 생각하고 그리고 실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만들어라. 사명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섯 번째 담이 나오죠. 이 담이 무슨 담이냐 구별의 담입니다.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는 담. 말씀의 담입니다. 신앙 노선의 담입니다. 우리 교회 찬송가, 간판, 예배모습은 담입니다. 남녀구분하는 것은 담입니다. 말씀이 답이고 이게 충성이 담이고 인내가 담입니다. 하나 둘로 정의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고 이 세상과 달리사는 그런 게 담이기 때문에 많은 걸 응용할 수 있는 겁니다. 다섯가지로 정리합니다. 무엇이 나를 빼앗는가 바벨론입니다. 이상 중에 올라갑니다. 인간과 세상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놋같이 빛난 주님 내 옆에 내가 사람 현실에 항상 계십니다. 보이는 것을 보라고 했습니다. 말씀 속에 전부다 하는 겁니다. 오절까지 다섯가지 기억하고 지식적으로 알고 실제로 하는대로 할려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