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1일 수밤
김동민2024-08-21조회 131추천 15
2024년 8월 21일 수밤
찬송: 103장
본문: 에스겔 40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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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라는 것은 가사가 중심이고 곡은 말하자면 그냥 밋밋하게 시처럼 읊을 수 없으니 곡을 붙여놓은 건데 작곡가들이 곡을 알맞게 잘 붙여놨지만 안 맞는 것도 더러 있습니다. 찬송하는 피아노 치는 분들 인도자들이 기교를 부르면 백목사님께서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좀 뜻을 생각하면서 103장은 오늘 숨이 차서 못 따라갈만큼 힘든 거 같던데 그렇게 빠른 찬송은 아닙니다. 피아노 치는 분들 찬송 인도 하시는 분들은 예배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가사에 뜻을 생각하면서, 앞에 설교자나 찬송인도자나 전체를 다 생각을 하고 이끌어나가는 그런 눈을 가져야하고 살필 줄 알아야합니다.
공과 말씀이 되는데 제목이 성전의 일차 문입니다. 일차 문이니까 이차 문까지 있다고하지요. 세상을 다 떨쳐버리는 게 중요합니다. 일차문에 들어갈때는 담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거기 가기 전에 전체적으로 서론의 제목이면서 전체제목으로 생각해본 절망 중에 주신 소망을 생각해봤습니다. 세상에서 많이 쓰이는 말입니다. 절망이란 소망이 끊어져버렸다는 겁니다. 바라볼 것이 없다 그 말이지요. 이 세상에 절망적인 상황을 많이 닥치게 되고 절망 낙망을 많이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전부고 인간의 지능이 전부기 때문에 대책이 없습니다. 절멍할 수 밖에 없는거지요. 절망적인 상황 맞이했을 때 여러 가지 대처 방법이 있겠지만 제한적이다 그렇게 되어있는데 제한적이라기보다는 한계적이다. 이 세상에는 참된 소망이 없고 말하자면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는거지요. 말하자면은 사람의 지능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지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만나게 될 때 자포자기 하는거지요. 그리고 될대로 되라 하고 마는거지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리 되는 거겠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신앙이 아주 중요한게 우리 기독교 개혁교 칼빈주의의 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절대 예정 절대 주권을 말합니다.
절대라는 말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만 쓰는건데 예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먼지많은 것 하나도 일초도 0.0001초도 예외가 없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어있고 예정대로 진행이 되는데 예외가 없다. 그래서 아담이 선악과 따먹은 것도 예정이고 주권도 그렇습니다. 아담이 선악과 먹은 것도 주권 역사입니다. 거기서 빠져나오면 큰 심각한 일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이걸 빼먹으면 기독교는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절대 예정과 절대 주권이 성립되지 않으면 기독교 자체가 무너져 버립니다. 기독교는 일원론이지요. 일원론이란, 모든 존재와 원인이 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고 만물이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 여기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나는 것, 개미 한 마리의 수염이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이 원인입니다. 이것은 또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기독교 성립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일원론,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지 말지니라. 마찬가지로 예수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없는겁니다. 여기에 예외가 있으면 자기 주관입니다. 아무리 아무리 절망했다 그래도 이런 형편만큼은 절망적이지 않느냐, 그러면 일원론이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이런 것을 믿어드리는 겁니다. 근심 걱정 염려 불안 초조. 그 원인은 경제 때문에 전쟁 염려 때문에 전염병 때문에 시험 때문에 별의 별 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원인이 다 있는데 생길 수 있는 불안 염려 등 모든 것이라도 하나라도 하나님의 예정이 아니라도 그러면 일원론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주일 어기는 죄보다 더 큰 죄입니다. 절대 예정과 주권을 안 믿으면 큰 죄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어떤 것이라도 예외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님 대속으로 통해서 세상을 만드셨고 나를 만드셨고 사물을 다 만드셨고 전부 주권하시는 절대 주권자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과 나를 연결시키는 대속이 있으니 여기 힘입으면 절망은 없다.
어제까지 어떤 죄 가운데 빠졌더라도 오늘 이 자리 일어서는 게 우리 할 일입니다. 나같은 죄인이 무슨, 그게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됩니다. 살아있는 이상 무조건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이런 소망을 가질 때 근심 걱정 염려 불안 초조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건데 그 믿는 표가 뭔가요. 믿음이라는 것은 온유하게 만듭니다. 평화롭게 만듭니다. 죄를 지었으면 이 죄 때문에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주님 대속 붙들고 회개합니다. 지나간 죄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 때문에 지옥은 안갑니다. 살리지는 못합니다. 사망에 이르지 못하는 죄라는 걸 보고 많은 논란이 있는데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이냐, 현재를 기점으로 앞으로 나아가라는 겁니다. 지금부터. 지금부터 죄를 짓지 않으면 사망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런 소망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이걸 가져야합니다.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어떠하더라도 낙망은 금물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겁니다. 나도 그렇고 내 생활도 그렇고 뭐든지 다 그렇습니다.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그들에게서 다시 참된 종들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지는 게 절망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게 절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다시 찾는 겁니다. 하나님을 버림으로 버림받고 에스겔 성전의 과정과정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아 들어가는 첫단계는 이 세상과 달라야한다. 그걸 뭐라고 합니까. 다르기 때문에 구별하는 겁니다. 이게 거룩입니다. 다를 때 하는 겁니다. 구별은. 남녀는 유별하다. 요즘은 안 통하는가요. 남자 여자는 다릅니다. 그래서 옷도 구분하고 활동도 구분하고 앉는자리도 구분하고 남녀가 동등이라는 것은 정상이 아닌겁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교회란 곳은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과 다르다. 하나님이 없는 곳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지식을 세상 지식이라고 합니다. 사고방식, 인식 관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없는 그런 성공 출세를 세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없는 욕망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이 취미 생활, 낙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부자될 수 있습니다. 그 취미나 낙이나 부유가 하나님과 끊어져버리면 세상입니다. 어떤 것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전이란 교회랑 하나님이 없는 세상과 달라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한다. 그게 성전인데 담이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그게 구분이고 구별이고 동시에 보호막입니다. 이 세상과 하나님의 집을 구별하는 그래서 교회라는 곳은 이름부터가 다르지않습니까. 여기는 교회입니다. 이 세상은 여기는 시청입니다. 회사입니다. 학교입니다. 전부 회사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여기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름이 달라야하고 달라야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중심으로 건물을 지어야겠지요. 많은 교회들이 공회 백목사님 교회들은 시골에 많습니다.
사람 없는 곳이 적은 곳에, 새로 총공회장 되었다는 분이 말하기를 앞으로 말하자면 세상 말로 말하면 수익성 없는 교회들 사람은 없고 돈만 들어오는 교회는 없애야합니다. 참 교회를 모르는 사람들이지요. 인간들 사람들 전부 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맞추는 게 교회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왜 따라갑니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하나님을 배우고 그분 뜻을 찾아서 순종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예배도 성경도 찬송도 기도도 앉는 자리도,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나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옷을 어떻게 입을지라도 예수믿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같이 해야합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의 인생 목표가 무엇일찌라도 신앙이라야합니다. 말과 행동도 달라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야 가야하고 안가도 되는거지. 친구들이 중학교 일학년인데 벌써 졸업했습니다. 내년이면 고등학교 졸업할겁니다. 15살에 고등학교 졸업하는 겁니다. 5년을 땡겨버립니다. 온갖 쓰잘데기 없는 것을 얼마나 배우는지. 옛날에는 다 배운다고 했는데 다 엉망을 만들어버리는데 그런 인식들을 하는 겁니다.
유익하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안하는 것이고. 안 믿는 사람이 생각 사고방식 가치관이 달라야합니다. 세상 사람은 목표가 세상입니다. 돈 좀 많아서 잘 먹고 잘 살아보자. 이름도 내보자. 안 믿는 세상 사람목표고 예수믿는 사람들은 예수 잘 믿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천국의 구원을 잘 이뤄보자. 지향하는 바가 다른 거지요. 이렇게 우리들이 가는 길이 다르면 믿는 사람이고 아니면 속이면 안 믿는 사람처럼 해봐야겠고 낙을 누려봐야겠고 그게 살아가다가 그럴 수가 있으나 목표가 되면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 다음, 일차문으로 들어갑니다. 첫 단계가 천계를 올라갑니다. 일곱 천계입니다. 지금 일차문은 세상을 떨치고 신앙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첫 단계가 사고방식부터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게 신앙입니다. 그래서 인식이 사고방식이 욕망이 언행심사가 사리판단이 모든 활동이 처리가 하나님을 관점으로 그분에게 맞추는 겁니다. 그리 올라가는 겁니다.
나 좋게, 나 기쁘게 행복하게 다 떨쳐버리고 하나님이 뭐라 그러시느냐 하나님을 맞추시는 것입니다. 굉장히 많은 거지요. 세상이란 하나님이 없는 지식에서 발현된 인식, 인식이 뭔지 아시지요. 어떻게 보느냐 생각하느냐 관점이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식. 하나님이 없는 그 사람의 박사는 전부 세상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다 무식한겁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때부터 비로소 출발이 됩니다. 예수믿는 사람 신앙이란 세상과 달라야한다, 일곱천계로 올라가야한다.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이다. 주일을 왜 지킵니까. 예수 잘 믿어서 복받으려고 신앙아닙니다. 예수 잘 믿어서 사업 성공하려고, 그거 신앙 아닙니다. 그렇게 잘 살아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고 좋게 보이려고 인격자로 보이려고 그거 신앙 아닙니다. 그건 안 믿는 사람입니다. 신앙이란 어찌되든 하나님께 맞추는 게 신앙입니다. 이게 일곱 천계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나서 문통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이 세상을 하나씩 떨쳐버리고 점검하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 주관을 살피는 겁니다. 자기에게 세상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야하는데 들어가면서 세상적인 지식이 없느냐, 내 세상 속에 하나님 끊어진 취미생활이 없느냐, 최선을 다해서 문지기 방이 있습니다. 문통은 자기가 자기를 점검하는 겁니다. 객관으로 자기를 점검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 말을 들으면서 자라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균형있게 가는 겁니다. 객관으로 나를 살핍니다. 점진적으로 자라가며 살핍니다. 균형있게 살핍니다. 이게 문지기 방입니다. 그리고 매 방 사이 5척이라고 했습니다. 방과 방 사이를 막으면 벽이 되고 밖으로 가면 담이되는 겁니다. 점직적으로 나아가는 객관적으로 살피는데 적당히 봐주는 그런 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5척입니다. 그래서 타협도 한 몸의 여러지체가 있는데 교회가 목사하고 장로하고 이렇게 나갑시다. 적당히 나갑시다. 안되는 겁니다. 한 몸의 지체라는 것은 위치도 다르고 역할도 다른데 한 몸을 위하는 것처럼.
그리고 서른 개의 방, 거기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향해 나아가는 것이 역할입니다. 일차문, 전체 흐름을 기억하십니다. 절망 중에 주신 소망이다. 하나님과 끊어지는게 절망이다. 하나님을 다시 찾는 게 소망이다. 성전이니까 소망이다. 이 과정을 설명하신 게 에스겔 성전이고 일차문은 이 세상을 떨쳐버리고 하나님 향해서 신앙으로 들어가는 일차 목표입니다. 그리고 이차 문이 되는 것이 자기를 잡아서 드리는 그게 이차문이 되는 것이고. 일곱 천계 문통 문지기 방들 전부 우리들이 가져야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자신을 살피는 겁니다. 이것이 일차문입니다. 생각해보고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찬송: 103장
본문: 에스겔 40장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찬송가라는 것은 가사가 중심이고 곡은 말하자면 그냥 밋밋하게 시처럼 읊을 수 없으니 곡을 붙여놓은 건데 작곡가들이 곡을 알맞게 잘 붙여놨지만 안 맞는 것도 더러 있습니다. 찬송하는 피아노 치는 분들 인도자들이 기교를 부르면 백목사님께서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좀 뜻을 생각하면서 103장은 오늘 숨이 차서 못 따라갈만큼 힘든 거 같던데 그렇게 빠른 찬송은 아닙니다. 피아노 치는 분들 찬송 인도 하시는 분들은 예배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가사에 뜻을 생각하면서, 앞에 설교자나 찬송인도자나 전체를 다 생각을 하고 이끌어나가는 그런 눈을 가져야하고 살필 줄 알아야합니다.
공과 말씀이 되는데 제목이 성전의 일차 문입니다. 일차 문이니까 이차 문까지 있다고하지요. 세상을 다 떨쳐버리는 게 중요합니다. 일차문에 들어갈때는 담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거기 가기 전에 전체적으로 서론의 제목이면서 전체제목으로 생각해본 절망 중에 주신 소망을 생각해봤습니다. 세상에서 많이 쓰이는 말입니다. 절망이란 소망이 끊어져버렸다는 겁니다. 바라볼 것이 없다 그 말이지요. 이 세상에 절망적인 상황을 많이 닥치게 되고 절망 낙망을 많이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전부고 인간의 지능이 전부기 때문에 대책이 없습니다. 절멍할 수 밖에 없는거지요. 절망적인 상황 맞이했을 때 여러 가지 대처 방법이 있겠지만 제한적이다 그렇게 되어있는데 제한적이라기보다는 한계적이다. 이 세상에는 참된 소망이 없고 말하자면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는거지요. 말하자면은 사람의 지능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지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만나게 될 때 자포자기 하는거지요. 그리고 될대로 되라 하고 마는거지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리 되는 거겠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신앙이 아주 중요한게 우리 기독교 개혁교 칼빈주의의 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절대 예정 절대 주권을 말합니다.
절대라는 말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만 쓰는건데 예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먼지많은 것 하나도 일초도 0.0001초도 예외가 없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어있고 예정대로 진행이 되는데 예외가 없다. 그래서 아담이 선악과 따먹은 것도 예정이고 주권도 그렇습니다. 아담이 선악과 먹은 것도 주권 역사입니다. 거기서 빠져나오면 큰 심각한 일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이걸 빼먹으면 기독교는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절대 예정과 절대 주권이 성립되지 않으면 기독교 자체가 무너져 버립니다. 기독교는 일원론이지요. 일원론이란, 모든 존재와 원인이 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고 만물이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 여기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나는 것, 개미 한 마리의 수염이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이 원인입니다. 이것은 또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기독교 성립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일원론,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지 말지니라. 마찬가지로 예수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없는겁니다. 여기에 예외가 있으면 자기 주관입니다. 아무리 아무리 절망했다 그래도 이런 형편만큼은 절망적이지 않느냐, 그러면 일원론이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이런 것을 믿어드리는 겁니다. 근심 걱정 염려 불안 초조. 그 원인은 경제 때문에 전쟁 염려 때문에 전염병 때문에 시험 때문에 별의 별 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원인이 다 있는데 생길 수 있는 불안 염려 등 모든 것이라도 하나라도 하나님의 예정이 아니라도 그러면 일원론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주일 어기는 죄보다 더 큰 죄입니다. 절대 예정과 주권을 안 믿으면 큰 죄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어떤 것이라도 예외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님 대속으로 통해서 세상을 만드셨고 나를 만드셨고 사물을 다 만드셨고 전부 주권하시는 절대 주권자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과 나를 연결시키는 대속이 있으니 여기 힘입으면 절망은 없다.
어제까지 어떤 죄 가운데 빠졌더라도 오늘 이 자리 일어서는 게 우리 할 일입니다. 나같은 죄인이 무슨, 그게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됩니다. 살아있는 이상 무조건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이런 소망을 가질 때 근심 걱정 염려 불안 초조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건데 그 믿는 표가 뭔가요. 믿음이라는 것은 온유하게 만듭니다. 평화롭게 만듭니다. 죄를 지었으면 이 죄 때문에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주님 대속 붙들고 회개합니다. 지나간 죄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 때문에 지옥은 안갑니다. 살리지는 못합니다. 사망에 이르지 못하는 죄라는 걸 보고 많은 논란이 있는데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이냐, 현재를 기점으로 앞으로 나아가라는 겁니다. 지금부터. 지금부터 죄를 짓지 않으면 사망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런 소망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이걸 가져야합니다.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어떠하더라도 낙망은 금물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겁니다. 나도 그렇고 내 생활도 그렇고 뭐든지 다 그렇습니다.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그들에게서 다시 참된 종들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지는 게 절망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게 절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다시 찾는 겁니다. 하나님을 버림으로 버림받고 에스겔 성전의 과정과정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아 들어가는 첫단계는 이 세상과 달라야한다. 그걸 뭐라고 합니까. 다르기 때문에 구별하는 겁니다. 이게 거룩입니다. 다를 때 하는 겁니다. 구별은. 남녀는 유별하다. 요즘은 안 통하는가요. 남자 여자는 다릅니다. 그래서 옷도 구분하고 활동도 구분하고 앉는자리도 구분하고 남녀가 동등이라는 것은 정상이 아닌겁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교회란 곳은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과 다르다. 하나님이 없는 곳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지식을 세상 지식이라고 합니다. 사고방식, 인식 관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없는 그런 성공 출세를 세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없는 욕망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이 취미 생활, 낙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부자될 수 있습니다. 그 취미나 낙이나 부유가 하나님과 끊어져버리면 세상입니다. 어떤 것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전이란 교회랑 하나님이 없는 세상과 달라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한다. 그게 성전인데 담이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그게 구분이고 구별이고 동시에 보호막입니다. 이 세상과 하나님의 집을 구별하는 그래서 교회라는 곳은 이름부터가 다르지않습니까. 여기는 교회입니다. 이 세상은 여기는 시청입니다. 회사입니다. 학교입니다. 전부 회사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여기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름이 달라야하고 달라야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중심으로 건물을 지어야겠지요. 많은 교회들이 공회 백목사님 교회들은 시골에 많습니다.
사람 없는 곳이 적은 곳에, 새로 총공회장 되었다는 분이 말하기를 앞으로 말하자면 세상 말로 말하면 수익성 없는 교회들 사람은 없고 돈만 들어오는 교회는 없애야합니다. 참 교회를 모르는 사람들이지요. 인간들 사람들 전부 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맞추는 게 교회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왜 따라갑니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하나님을 배우고 그분 뜻을 찾아서 순종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예배도 성경도 찬송도 기도도 앉는 자리도,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나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옷을 어떻게 입을지라도 예수믿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같이 해야합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의 인생 목표가 무엇일찌라도 신앙이라야합니다. 말과 행동도 달라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야 가야하고 안가도 되는거지. 친구들이 중학교 일학년인데 벌써 졸업했습니다. 내년이면 고등학교 졸업할겁니다. 15살에 고등학교 졸업하는 겁니다. 5년을 땡겨버립니다. 온갖 쓰잘데기 없는 것을 얼마나 배우는지. 옛날에는 다 배운다고 했는데 다 엉망을 만들어버리는데 그런 인식들을 하는 겁니다.
유익하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안하는 것이고. 안 믿는 사람이 생각 사고방식 가치관이 달라야합니다. 세상 사람은 목표가 세상입니다. 돈 좀 많아서 잘 먹고 잘 살아보자. 이름도 내보자. 안 믿는 세상 사람목표고 예수믿는 사람들은 예수 잘 믿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천국의 구원을 잘 이뤄보자. 지향하는 바가 다른 거지요. 이렇게 우리들이 가는 길이 다르면 믿는 사람이고 아니면 속이면 안 믿는 사람처럼 해봐야겠고 낙을 누려봐야겠고 그게 살아가다가 그럴 수가 있으나 목표가 되면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 다음, 일차문으로 들어갑니다. 첫 단계가 천계를 올라갑니다. 일곱 천계입니다. 지금 일차문은 세상을 떨치고 신앙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첫 단계가 사고방식부터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게 신앙입니다. 그래서 인식이 사고방식이 욕망이 언행심사가 사리판단이 모든 활동이 처리가 하나님을 관점으로 그분에게 맞추는 겁니다. 그리 올라가는 겁니다.
나 좋게, 나 기쁘게 행복하게 다 떨쳐버리고 하나님이 뭐라 그러시느냐 하나님을 맞추시는 것입니다. 굉장히 많은 거지요. 세상이란 하나님이 없는 지식에서 발현된 인식, 인식이 뭔지 아시지요. 어떻게 보느냐 생각하느냐 관점이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식. 하나님이 없는 그 사람의 박사는 전부 세상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다 무식한겁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때부터 비로소 출발이 됩니다. 예수믿는 사람 신앙이란 세상과 달라야한다, 일곱천계로 올라가야한다.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이다. 주일을 왜 지킵니까. 예수 잘 믿어서 복받으려고 신앙아닙니다. 예수 잘 믿어서 사업 성공하려고, 그거 신앙 아닙니다. 그렇게 잘 살아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고 좋게 보이려고 인격자로 보이려고 그거 신앙 아닙니다. 그건 안 믿는 사람입니다. 신앙이란 어찌되든 하나님께 맞추는 게 신앙입니다. 이게 일곱 천계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나서 문통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이 세상을 하나씩 떨쳐버리고 점검하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 주관을 살피는 겁니다. 자기에게 세상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야하는데 들어가면서 세상적인 지식이 없느냐, 내 세상 속에 하나님 끊어진 취미생활이 없느냐, 최선을 다해서 문지기 방이 있습니다. 문통은 자기가 자기를 점검하는 겁니다. 객관으로 자기를 점검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 말을 들으면서 자라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균형있게 가는 겁니다. 객관으로 나를 살핍니다. 점진적으로 자라가며 살핍니다. 균형있게 살핍니다. 이게 문지기 방입니다. 그리고 매 방 사이 5척이라고 했습니다. 방과 방 사이를 막으면 벽이 되고 밖으로 가면 담이되는 겁니다. 점직적으로 나아가는 객관적으로 살피는데 적당히 봐주는 그런 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5척입니다. 그래서 타협도 한 몸의 여러지체가 있는데 교회가 목사하고 장로하고 이렇게 나갑시다. 적당히 나갑시다. 안되는 겁니다. 한 몸의 지체라는 것은 위치도 다르고 역할도 다른데 한 몸을 위하는 것처럼.
그리고 서른 개의 방, 거기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향해 나아가는 것이 역할입니다. 일차문, 전체 흐름을 기억하십니다. 절망 중에 주신 소망이다. 하나님과 끊어지는게 절망이다. 하나님을 다시 찾는 게 소망이다. 성전이니까 소망이다. 이 과정을 설명하신 게 에스겔 성전이고 일차문은 이 세상을 떨쳐버리고 하나님 향해서 신앙으로 들어가는 일차 목표입니다. 그리고 이차 문이 되는 것이 자기를 잡아서 드리는 그게 이차문이 되는 것이고. 일곱 천계 문통 문지기 방들 전부 우리들이 가져야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자신을 살피는 겁니다. 이것이 일차문입니다. 생각해보고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