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8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8-18조회 108추천 11
2024년 8월 18일 주일 오후
찬송: 120장, 129장
본문: 에스겔 40장 6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안 될 것을 된다고 하는 걸 희망 고문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소망 희망은 다 그리 되는겁니다. 참된 소망은 없다고 보는 겁니다. 세상이란 한 말로 하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 세상입니다. 사람이든지 활동이든지 개인이든지 단체든지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절망 뿐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절망 밖에 없는 세상이다. 사망에 속한겁니다. 지옥에 속한겁니다. 그리 가는 겁니다. 주님 대속의 사죄 칭의 화친 소망입니다.
지옥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지하 감옥이라고 하는데 말을 바꾸면요. 응용을 해보시지요. 인간의 욕심을 무저갱이라고 합니다. 무저갱입니다. 끝없이 떨어지는 게 지옥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면 위험합니다. 한없이 떨어져내려가는 겁니다. 영원토록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집니다. 물질 세계에서 상식을 초월합니다. 볼펜으로 꼭 찍는 점 안에 수십억개의 뭐가 들어간다고 하지요. 과학으로 밝혀낸 사실입니다. 그만큼 초소형이라고 합니다. 반도체 인공지능 모두 작게 찾아내서 하는 게 초소형 얼마나 작은 것을 찾아내느냐가 첨단의 것이 되어집니다. 백 목사님 설교록 음성파일 전부 들어가도 남지요. 초소형이라는 거지요.
물질적으로 그렇듯이 암흑이라는 건 얼마나 어둡냐. 점점 깊이 들어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어마어마한 어려움으로 상상을 초월하는만큼 빛이 되고 점점 떨어져 내려가는 겁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고 생명에서 멀어지고 영원토록 내려가는 것이 지옥이고 이 세상에서 당하는 절망은 제한적이나 지옥과 연결될 때 영원토록 절망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절망은 이것이 어렵다. 뭐가 어렵고 복잡하고 별별 어려움이 많이도 다 당하는 겁니다. 어느 가정 어느 사람 할 것 없이 들어가보면 이 세상에 그런 건 없습니다. 다른 사람 가정 행복해 보입니다만 과거에는 어려웠고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평생을 두고 꽃길만 걸어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인생은 고의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상황적인 환경적인 한참 어린 사람이고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 사람이 안 찾으니까 갈 수 없는거지요.
주일학생들이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교만하면 내려가고 겸손하면 올라간다. 이렇게 말을 정리해서 가르칠 줄 알아합니다. 겸손함을 버리면 하나님도 나를 버린다. 내가 하나님 잊어버리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끊어졌다는 말아지요. 그게 절망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된 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없는 상태로 절망에 빠진겁니다. 사로잡힌 그 속에 절망입니다. 거기서 에스겔은 소망을 가졌고 거기서 느헤미야 에스더 다 소망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에게는 보여주셨습니다. 재밌는 사람 이걸 기억하십시다. 에스겔 40장부터 읽으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림으로 절망입니다. 암흑입니다.
참된 종들의 기도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 그 능력을 모세를 통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모세 한 사람의 기도로 구원을 받은겁니다. 엘리아가 기도하니까 3년 6개월 비가 안왔다고 합니다. 상상해보십니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 비 안오면 다 말라 죽습니다. 별 것 아는데도 옥상에 몇 가지 식물을 심어놓으니까 매일 물을 줘야하는거지요. 그래서 중간에 비 한번 오면 괜찮은데. 올해는 다 말라죽겠다하고 오니까 부산에 비가 와 살아와있습니다. 며칠만 안오면 다 죽어버립니다. 한 여름에 말라 죽으면 동물은 뭐 먹고 삽니까. 동물은 식물먹고 삽니다. 식물은 물먹고 삽니다. 동물이 다 죽으면 사람이 다 죽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왔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니까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습니다. 의인의 기도의 능력입니다.
참된 종들의 기도가 주변의 가족들이 애먹으면 애절하게 기도를 해야합니다. 간절하게 기도를 해야합니다.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게 무슨 뜻인가요. 소망을 주셨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절망 속에 이스라엘이 빠진 것은 어떤 상황이 된 겁니까. 성전을 빼앗기고 무너진겁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누구를 버린 겁니까. 하나님을 버리니까 절망이 되는 겁니다. 다시 모실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솔로몬 성전도 모세 성막도 그런 겁니다. 그래서 1절로 4절에서 소망을 말씀하시고 이 소망이 실제 되어지는 과정과정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담이 있습니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게 담입니다. 거짓과 남의 집을 구분하는 겁니다. 담의 역할은 경계와 보호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여기부터는 이남이다 이북이다. 넘어오면 가만 안둔다. 공중도 경계가 있습니다. 구별과 보호가 담입니다. 사명으로 집 바깥 가장 외곽입니다. 바깥 사명으로 되어있더라. 담이 없으면 있으나 마나입니다. 담이 있으면 반드시 문이있어야합니다. 문이 없는 담은 감옥입니다.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다. 바깥은 세상이다. 그래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는 뭔가 달라야하는 겁니다. 학교 밖에서는 어찌할지라도 학교 안에 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그 안에서는 교실 안에 들어가면 더 학생다워야 하는 겁니다. 이 담이 무너지면 섞여서 엉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의 담이란 하나님을 구분하는 것이고 교회가 세상으로 섞이는 걸 막는 게 담입니다. 이때는 유형의 담이겠고 오늘날은 무형의 담인데 이게 무엇이냐 담이라는 것은 세상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거니까 뭐냐, 교회도 세상 안에 있는데. 우리 동천교회 예배당은 세상입니까.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오지 못하게, 세상은 하나님이 없는 곳.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 건데,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곳 그곳이 세상입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인데 교회는 교회라도 예배 안에 하나님이 계실 수 없는 예배가 되면 세상이 되는 겁니다.
세상이란 하나님이 없는 곳입니다. 계신지 안 계신지 어떻게 아시나요, 그 교회 예배 안에 말씀 안에 믿는 사람의 안에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볼 수 없은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신 분이 예수님이고 저 중동의 예수님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요. 그리 생겼는가가 아니고 구약에는 예표로 미리 알려주셨고 그 행동을 알려주셨으니까 그게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이란 소개서다. 이력서다. 성경이란 그런 겁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르다면 교회가 그 교회에 예배가 성경대로 되어졌느냐. 성경은 성경이라서 해석이 필요합니다. 예배라는 것은 말씀 기도 찬송이 있는게 예배입니다. 간구하는 기도 감사하는 찬송이 있어야 예배다. 찬송이란 하나님께 감사하는거다. 기도는 말씀대로 살아야하는데 그걸 구하는 게 기도다. 영어로 말씀을 메시지라고 하던가요. 하나님의 뜻 원하시는 바 지식 이걸 찾아서 말씀인데 찬송은 하나님 간 곳에 없고 박수치며 춤추고 괴성을 질러대면 그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찬송일까. 그게 기도가 될까. 세상 소식이나 정하고 그렇게 됩니다. 그 교회 모든 행정의 과정 모두다가 성경으로 되지 않으면 담이 없는게 되는 겁니다. 성경과 성경을 해석한 교리신조와 행적 이런 것들이 담인데 지키려고 하면 성경대로 교리 신조대로 지키려고 하면 뭐가 필요하다고요, 지식이 필요합니다. 미혹하려는 빼앗아 갈려는 도움이 필요하니까 인내가 필요하고 담이 되어가지고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뭡니까. 가족들끼리 모여서 해외 여행도 좀 가고 여름철이 되니까 피서로 갑니다. 우리도 해외여행 가보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다 가니까 우리도 가자. 세상입니다.
일본가자 싱가폴 베트남 유럽 아프리카 가자. 갈 수 있습니다만은 다 가니까 바람이 부니까 따라가자 그게 세상입니다. 우리는 제주도라도 가자. 그러면 죄라고 말을 못하는데 주변 사람 다 가니까 우리도 가면 그게 바로 세상 따라가는 겁니다. 그러면 별로 없는 겁니다. 욕심 속에 취미 속에 즐거움 속에 들어오면 갈 수 있는데 왜 가야하냐, 보니까 부모님이 효도해야겠고 그래서 신앙이 있는 가족이 그 중에서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단순히 즐기려고 따라가면 그 가정에 들어온 겁니다.
우리는 최고로 6척입니다. 담 높이는 3미터 있을 수 있는데 성벽의 두께입니다. 3미터면 건축하는 길입니다. 어떻게 그런 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코로나라도 유행 흐름이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교회에서 오케스트라도 괴성을 지르는 찬송이라도 사상 철학이라도 종교라도 막는 겁니다. 그 다음 두 번째입니다. 크게 첫째는 절망에서 담 그리고 세 번째는 천계가 있습니다. 하나식 나눠서 합니다. 일곱 천계, 담을 안에 들어가니까 일곱천계지요 올라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올라가는데 이번주 공부 집회공부는 성전에 일차 문입니다. 일차 문은 이 세상을 떨쳐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담이 있고 그런 겁니다. 일차문은 이 세상 묻어있는 세상을 떨쳐버리는 과정을 일차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향해서 올라갈 때 세상을 전부다 재미나 취미나 향락이나 욕심이나 관점이나 자기 미신 체면 전부 하나하나 이 세상을 따라가는 활동 속에 있는 이 세상적인 것에 있는 것들을 떨쳐버리고 한 단계,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은 한 단계 올라가면 떨치고, 거기까지 올라가는 게 일곱 천계로 올라가는 겁니다. 점점 올라가는 일곱 천계, 그리고 넘어서서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에 가서 문통이 있는데 육척 길이의 문통입니다. 그런데 문틀이 여섯척이니까 모르기는 모르겠습니다만 문턱이 3m되는 문턱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울 남대문 서대문 동대문에는 문턱이 어찌되던가요.
뜰을 향해서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생활이 문턱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생활하고 말씀생활하고 기도생활하고 하나님을 향해가는 생활이라는 겁니다. 문통 생활, 그런데 주일을 지켰느냐 예배를 드렸느냐 말씀대로 하고 있는지 너로써는 최선을 다해서 살펴라. 믿는 사람의 생활은 전부다를 너 자신을 살펴봐라 측량하는 잣대 가지고 미리 삼줄과 장대로 보여주셨으니까 걸리지 않도록 모든 신앙생활 전부를 살피는 게 생활입니다. 여섯자, 한 장대 6척의 생활이라고 합니다.
천계 올라가서 하나님 향해 올라가서 앞으로 전진합니다. 하나님 향하여 나가는 거지요. 믿는 사람의 생활이 신앙생활이 안되면 문턱과 상관없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예수믿는 사람의 생활은 무슨 생활입니까. 꼬박꼬박 존다 모두. 우리 교회를 짊어지고 가야할 청년들이 졸고 있습니다. 두껍게 쌓아놓지 않으면 666입니다. 솔로몬이 젊을 때는 왕비가 1000명이었습니다. 갖고 놀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누가 왕비입니까. 세상입니다. 세상은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자존심을 돌이키고 시기 질투를 돌이키고 예수 믿는 사람의 생활은 전부 믿음으로 하나님 향하는 걸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그게 본문의 무슨 생활이라고요 문통생활입니다. 문통측량이고 6척 최선을 다해서 살피는 것입니다. 좌우로 세 개씩 문지기 방들이 나옵니다. 자기가 자기를 살핍니다. 자기가 자기를 살피는데 대개 안 믿는 세상 사람들도 위인들은 자기가 자기를 철저하게 살핍니다. 아무리 사람이 살펴도 내 모습은 못봅니다. 내가 나를 보는 방법이 뭘까요.
거울은 나를 비추는 객관입니다. 부모가 자신을 볼려면 자식을 보면 보아야합니다. 내 자식인데 부모님은 참 신앙이 있는데 시대의 구원은 부모님 모습이 있습니다. 아담의 허리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아벨도 있었고 가인도 있었습니다. 아담 속에 가인 요소도 있습니다. 노아의 안에는 함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아내의 모습 속에 남편의 요소가 있고 교인들을 목사일을 꾸립니다. 거울입니다. 이게 문지기 방입니다. 객관을 통해서 알고 나를 알아라, 객관을 보고 살피고 정진해서 자라가며 살펴라. 좌우 양쪽입니다.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살펴라, 모든 사람들은 지나쳐서 실패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균형이라는 것은 역할이라는 게 있습니다. 보기가 안 좋은 게 아니고 부부가 균형에 안 맞으면 아버지가 어머니가 못하면 그러기 때문에 좌우에 점진적으로 살피면서 그런데 좌우에 있는데 바깥에 외부에 두께 몇 척입니까. 매 방 사이가 5척인데 높이인지 두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벽이 5척이며 두께가 5척인지는 계산하면 알 수 있을텐데 벽이 집 밖에 나오면 뭐가되나요. 담이되지요. 담과 벽이라는 것은 같은 역할입니다. 사이 사이를 구분하는 겁니다. 방과 방 상의 거리가 5척입니다. 말하자면 타협은 불가다 라는 거지요. 서로 말하자면은 갑이라는 사람과 을이라는 사람이 봐주자 열의 반입니다. 그래서 객관에서 나를 점검하는 거까지도 구별하는 것이고 나를 봐주는 타협은 불가하다. 따로따로 살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살피는 것도 받아들여야 힘이 되고 그러는 것이다. 그리고 현관과 안 문이 있습니다. 6척이고 다시 재보니까 8척입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다시 재보니까 8척입니다. 다시 출발이지요. 13척이 되고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고 다른 각도로 초월해서 하나님께 맡겨라. 그런 뜻이라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닫힌 창이 있습니다. 이 방들이 전부 측량하고 살피는 건데 빛만 통과하고 신앙 양심 개입이 되면은 자기가 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자기가 바로 안 보이게 되는 겁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종려나무, 성장과 번성의 상징이다. 바깥 뜰이 나옵니다. 안에 들어가면 바깥 뜰입니다. 이건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라 이 세상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을 향해 올라갔다가 거쳐거쳐 은혜세계인데 얇은 돌, 이 세상을 살지만은 초월해라 은혜의 세계는 이런 것이다. 동남북에 있습니다. 안에서 먹고 힘을 얻어서 북쪽에 어려운데도 최선을 다해서 나아가라. 이게 서른 개 방들입니다.
과정을 좀 생각해봤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20장, 129장
본문: 에스겔 40장 6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안 될 것을 된다고 하는 걸 희망 고문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소망 희망은 다 그리 되는겁니다. 참된 소망은 없다고 보는 겁니다. 세상이란 한 말로 하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 세상입니다. 사람이든지 활동이든지 개인이든지 단체든지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절망 뿐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절망 밖에 없는 세상이다. 사망에 속한겁니다. 지옥에 속한겁니다. 그리 가는 겁니다. 주님 대속의 사죄 칭의 화친 소망입니다.
지옥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지하 감옥이라고 하는데 말을 바꾸면요. 응용을 해보시지요. 인간의 욕심을 무저갱이라고 합니다. 무저갱입니다. 끝없이 떨어지는 게 지옥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면 위험합니다. 한없이 떨어져내려가는 겁니다. 영원토록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집니다. 물질 세계에서 상식을 초월합니다. 볼펜으로 꼭 찍는 점 안에 수십억개의 뭐가 들어간다고 하지요. 과학으로 밝혀낸 사실입니다. 그만큼 초소형이라고 합니다. 반도체 인공지능 모두 작게 찾아내서 하는 게 초소형 얼마나 작은 것을 찾아내느냐가 첨단의 것이 되어집니다. 백 목사님 설교록 음성파일 전부 들어가도 남지요. 초소형이라는 거지요.
물질적으로 그렇듯이 암흑이라는 건 얼마나 어둡냐. 점점 깊이 들어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어마어마한 어려움으로 상상을 초월하는만큼 빛이 되고 점점 떨어져 내려가는 겁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고 생명에서 멀어지고 영원토록 내려가는 것이 지옥이고 이 세상에서 당하는 절망은 제한적이나 지옥과 연결될 때 영원토록 절망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절망은 이것이 어렵다. 뭐가 어렵고 복잡하고 별별 어려움이 많이도 다 당하는 겁니다. 어느 가정 어느 사람 할 것 없이 들어가보면 이 세상에 그런 건 없습니다. 다른 사람 가정 행복해 보입니다만 과거에는 어려웠고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평생을 두고 꽃길만 걸어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인생은 고의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상황적인 환경적인 한참 어린 사람이고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 사람이 안 찾으니까 갈 수 없는거지요.
주일학생들이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교만하면 내려가고 겸손하면 올라간다. 이렇게 말을 정리해서 가르칠 줄 알아합니다. 겸손함을 버리면 하나님도 나를 버린다. 내가 하나님 잊어버리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끊어졌다는 말아지요. 그게 절망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된 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없는 상태로 절망에 빠진겁니다. 사로잡힌 그 속에 절망입니다. 거기서 에스겔은 소망을 가졌고 거기서 느헤미야 에스더 다 소망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에게는 보여주셨습니다. 재밌는 사람 이걸 기억하십시다. 에스겔 40장부터 읽으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림으로 절망입니다. 암흑입니다.
참된 종들의 기도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 그 능력을 모세를 통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모세 한 사람의 기도로 구원을 받은겁니다. 엘리아가 기도하니까 3년 6개월 비가 안왔다고 합니다. 상상해보십니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 비 안오면 다 말라 죽습니다. 별 것 아는데도 옥상에 몇 가지 식물을 심어놓으니까 매일 물을 줘야하는거지요. 그래서 중간에 비 한번 오면 괜찮은데. 올해는 다 말라죽겠다하고 오니까 부산에 비가 와 살아와있습니다. 며칠만 안오면 다 죽어버립니다. 한 여름에 말라 죽으면 동물은 뭐 먹고 삽니까. 동물은 식물먹고 삽니다. 식물은 물먹고 삽니다. 동물이 다 죽으면 사람이 다 죽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왔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니까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습니다. 의인의 기도의 능력입니다.
참된 종들의 기도가 주변의 가족들이 애먹으면 애절하게 기도를 해야합니다. 간절하게 기도를 해야합니다.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게 무슨 뜻인가요. 소망을 주셨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절망 속에 이스라엘이 빠진 것은 어떤 상황이 된 겁니까. 성전을 빼앗기고 무너진겁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누구를 버린 겁니까. 하나님을 버리니까 절망이 되는 겁니다. 다시 모실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솔로몬 성전도 모세 성막도 그런 겁니다. 그래서 1절로 4절에서 소망을 말씀하시고 이 소망이 실제 되어지는 과정과정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담이 있습니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게 담입니다. 거짓과 남의 집을 구분하는 겁니다. 담의 역할은 경계와 보호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여기부터는 이남이다 이북이다. 넘어오면 가만 안둔다. 공중도 경계가 있습니다. 구별과 보호가 담입니다. 사명으로 집 바깥 가장 외곽입니다. 바깥 사명으로 되어있더라. 담이 없으면 있으나 마나입니다. 담이 있으면 반드시 문이있어야합니다. 문이 없는 담은 감옥입니다.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다. 바깥은 세상이다. 그래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는 뭔가 달라야하는 겁니다. 학교 밖에서는 어찌할지라도 학교 안에 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그 안에서는 교실 안에 들어가면 더 학생다워야 하는 겁니다. 이 담이 무너지면 섞여서 엉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의 담이란 하나님을 구분하는 것이고 교회가 세상으로 섞이는 걸 막는 게 담입니다. 이때는 유형의 담이겠고 오늘날은 무형의 담인데 이게 무엇이냐 담이라는 것은 세상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거니까 뭐냐, 교회도 세상 안에 있는데. 우리 동천교회 예배당은 세상입니까.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오지 못하게, 세상은 하나님이 없는 곳.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 건데,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곳 그곳이 세상입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인데 교회는 교회라도 예배 안에 하나님이 계실 수 없는 예배가 되면 세상이 되는 겁니다.
세상이란 하나님이 없는 곳입니다. 계신지 안 계신지 어떻게 아시나요, 그 교회 예배 안에 말씀 안에 믿는 사람의 안에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볼 수 없은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신 분이 예수님이고 저 중동의 예수님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요. 그리 생겼는가가 아니고 구약에는 예표로 미리 알려주셨고 그 행동을 알려주셨으니까 그게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이란 소개서다. 이력서다. 성경이란 그런 겁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르다면 교회가 그 교회에 예배가 성경대로 되어졌느냐. 성경은 성경이라서 해석이 필요합니다. 예배라는 것은 말씀 기도 찬송이 있는게 예배입니다. 간구하는 기도 감사하는 찬송이 있어야 예배다. 찬송이란 하나님께 감사하는거다. 기도는 말씀대로 살아야하는데 그걸 구하는 게 기도다. 영어로 말씀을 메시지라고 하던가요. 하나님의 뜻 원하시는 바 지식 이걸 찾아서 말씀인데 찬송은 하나님 간 곳에 없고 박수치며 춤추고 괴성을 질러대면 그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찬송일까. 그게 기도가 될까. 세상 소식이나 정하고 그렇게 됩니다. 그 교회 모든 행정의 과정 모두다가 성경으로 되지 않으면 담이 없는게 되는 겁니다. 성경과 성경을 해석한 교리신조와 행적 이런 것들이 담인데 지키려고 하면 성경대로 교리 신조대로 지키려고 하면 뭐가 필요하다고요, 지식이 필요합니다. 미혹하려는 빼앗아 갈려는 도움이 필요하니까 인내가 필요하고 담이 되어가지고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뭡니까. 가족들끼리 모여서 해외 여행도 좀 가고 여름철이 되니까 피서로 갑니다. 우리도 해외여행 가보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다 가니까 우리도 가자. 세상입니다.
일본가자 싱가폴 베트남 유럽 아프리카 가자. 갈 수 있습니다만은 다 가니까 바람이 부니까 따라가자 그게 세상입니다. 우리는 제주도라도 가자. 그러면 죄라고 말을 못하는데 주변 사람 다 가니까 우리도 가면 그게 바로 세상 따라가는 겁니다. 그러면 별로 없는 겁니다. 욕심 속에 취미 속에 즐거움 속에 들어오면 갈 수 있는데 왜 가야하냐, 보니까 부모님이 효도해야겠고 그래서 신앙이 있는 가족이 그 중에서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단순히 즐기려고 따라가면 그 가정에 들어온 겁니다.
우리는 최고로 6척입니다. 담 높이는 3미터 있을 수 있는데 성벽의 두께입니다. 3미터면 건축하는 길입니다. 어떻게 그런 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코로나라도 유행 흐름이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교회에서 오케스트라도 괴성을 지르는 찬송이라도 사상 철학이라도 종교라도 막는 겁니다. 그 다음 두 번째입니다. 크게 첫째는 절망에서 담 그리고 세 번째는 천계가 있습니다. 하나식 나눠서 합니다. 일곱 천계, 담을 안에 들어가니까 일곱천계지요 올라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올라가는데 이번주 공부 집회공부는 성전에 일차 문입니다. 일차 문은 이 세상을 떨쳐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담이 있고 그런 겁니다. 일차문은 이 세상 묻어있는 세상을 떨쳐버리는 과정을 일차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향해서 올라갈 때 세상을 전부다 재미나 취미나 향락이나 욕심이나 관점이나 자기 미신 체면 전부 하나하나 이 세상을 따라가는 활동 속에 있는 이 세상적인 것에 있는 것들을 떨쳐버리고 한 단계,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은 한 단계 올라가면 떨치고, 거기까지 올라가는 게 일곱 천계로 올라가는 겁니다. 점점 올라가는 일곱 천계, 그리고 넘어서서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에 가서 문통이 있는데 육척 길이의 문통입니다. 그런데 문틀이 여섯척이니까 모르기는 모르겠습니다만 문턱이 3m되는 문턱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울 남대문 서대문 동대문에는 문턱이 어찌되던가요.
뜰을 향해서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생활이 문턱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생활하고 말씀생활하고 기도생활하고 하나님을 향해가는 생활이라는 겁니다. 문통 생활, 그런데 주일을 지켰느냐 예배를 드렸느냐 말씀대로 하고 있는지 너로써는 최선을 다해서 살펴라. 믿는 사람의 생활은 전부다를 너 자신을 살펴봐라 측량하는 잣대 가지고 미리 삼줄과 장대로 보여주셨으니까 걸리지 않도록 모든 신앙생활 전부를 살피는 게 생활입니다. 여섯자, 한 장대 6척의 생활이라고 합니다.
천계 올라가서 하나님 향해 올라가서 앞으로 전진합니다. 하나님 향하여 나가는 거지요. 믿는 사람의 생활이 신앙생활이 안되면 문턱과 상관없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예수믿는 사람의 생활은 무슨 생활입니까. 꼬박꼬박 존다 모두. 우리 교회를 짊어지고 가야할 청년들이 졸고 있습니다. 두껍게 쌓아놓지 않으면 666입니다. 솔로몬이 젊을 때는 왕비가 1000명이었습니다. 갖고 놀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누가 왕비입니까. 세상입니다. 세상은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자존심을 돌이키고 시기 질투를 돌이키고 예수 믿는 사람의 생활은 전부 믿음으로 하나님 향하는 걸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그게 본문의 무슨 생활이라고요 문통생활입니다. 문통측량이고 6척 최선을 다해서 살피는 것입니다. 좌우로 세 개씩 문지기 방들이 나옵니다. 자기가 자기를 살핍니다. 자기가 자기를 살피는데 대개 안 믿는 세상 사람들도 위인들은 자기가 자기를 철저하게 살핍니다. 아무리 사람이 살펴도 내 모습은 못봅니다. 내가 나를 보는 방법이 뭘까요.
거울은 나를 비추는 객관입니다. 부모가 자신을 볼려면 자식을 보면 보아야합니다. 내 자식인데 부모님은 참 신앙이 있는데 시대의 구원은 부모님 모습이 있습니다. 아담의 허리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아벨도 있었고 가인도 있었습니다. 아담 속에 가인 요소도 있습니다. 노아의 안에는 함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아내의 모습 속에 남편의 요소가 있고 교인들을 목사일을 꾸립니다. 거울입니다. 이게 문지기 방입니다. 객관을 통해서 알고 나를 알아라, 객관을 보고 살피고 정진해서 자라가며 살펴라. 좌우 양쪽입니다.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살펴라, 모든 사람들은 지나쳐서 실패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균형이라는 것은 역할이라는 게 있습니다. 보기가 안 좋은 게 아니고 부부가 균형에 안 맞으면 아버지가 어머니가 못하면 그러기 때문에 좌우에 점진적으로 살피면서 그런데 좌우에 있는데 바깥에 외부에 두께 몇 척입니까. 매 방 사이가 5척인데 높이인지 두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벽이 5척이며 두께가 5척인지는 계산하면 알 수 있을텐데 벽이 집 밖에 나오면 뭐가되나요. 담이되지요. 담과 벽이라는 것은 같은 역할입니다. 사이 사이를 구분하는 겁니다. 방과 방 상의 거리가 5척입니다. 말하자면 타협은 불가다 라는 거지요. 서로 말하자면은 갑이라는 사람과 을이라는 사람이 봐주자 열의 반입니다. 그래서 객관에서 나를 점검하는 거까지도 구별하는 것이고 나를 봐주는 타협은 불가하다. 따로따로 살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살피는 것도 받아들여야 힘이 되고 그러는 것이다. 그리고 현관과 안 문이 있습니다. 6척이고 다시 재보니까 8척입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다시 재보니까 8척입니다. 다시 출발이지요. 13척이 되고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고 다른 각도로 초월해서 하나님께 맡겨라. 그런 뜻이라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닫힌 창이 있습니다. 이 방들이 전부 측량하고 살피는 건데 빛만 통과하고 신앙 양심 개입이 되면은 자기가 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자기가 바로 안 보이게 되는 겁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종려나무, 성장과 번성의 상징이다. 바깥 뜰이 나옵니다. 안에 들어가면 바깥 뜰입니다. 이건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라 이 세상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을 향해 올라갔다가 거쳐거쳐 은혜세계인데 얇은 돌, 이 세상을 살지만은 초월해라 은혜의 세계는 이런 것이다. 동남북에 있습니다. 안에서 먹고 힘을 얻어서 북쪽에 어려운데도 최선을 다해서 나아가라. 이게 서른 개 방들입니다.
과정을 좀 생각해봤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