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8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4-08-18조회 123추천 15
2024년 8월 18일 주일 오전
본문: 에스겔 40장 5절
오류 발생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갔을 때 사사시대 때 참된 종들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는 굉장히 큽니다. 한 사람의 기도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숫자가 청장년 숫자가 60만명이었습니다. 여자 아이, 잡다한 민족 치면 200만명이 넘었는데 금송아지 만들었을 때 새로운 민족 만들어준다고 했을 때 혼자 대표해서 기도했습니다. 믿음의 기도고 참된 종들의 기도입니다.
절망이란 하나님과 끊어지는 게 절망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게 절망입니다. 소망은 하나님을 다시 모실 길을 주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모신 곳이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굉장히 질투가 많고 욕심이 많은 분입니다. 욕심이 많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가 눈을 돌리면 불꽃이 튀는 게 정상입니다. 아내도 마찬가지겠고. 하나님은 우리 남편입니다. 신부인데 주님을 뒤로두고 눈길을 돌리면 하나님의 표현이 죄송하지만 눈이 뒤집어집니다. 그래서 진노하신게 하나님의 교회가 어떤 세상이든지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더 사랑하고 다 깨버립니다. 성경 역사에 다 있으면 그거 때문이고 개인이든 가정이든 교회든 어떤 것이든 그 세상이 사업이면 사업을 깨고 직장이면 직장을 쫓아냅니다. 부모들이 자식이 사랑스러우면 자식 때문에 그 자식을 주님보다 더 가까이하면 하나님께서 그냥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뒤로하고 이 세상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업이나 성공이나 제물이나 이런 걸 말씀드렸지만 그거 말고 또 향락이니 취미니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런 것도 하나님께서 붙들려서 하나님과 사귀는 그러면 다 깨버리고 못하게 합니다. 눈을 침침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음악 자꾸 들으면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병이 생기면 발에 병이 생겼으면 안갈 곳을 다녔는가. 눈에 병이 생기면 안 볼 것을 봤는가. 귀에 병이 생기면 들으면 안될 것을 들었는가 돌아봐야합니다. 예배를 뒤로하고 주님을 뒤로하고 양심을 뒤로하고 말씀으로 사는 생활을 뒤로하고 앞서 있으면 그게 바벨론이고 사로잡힌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버려버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상 중에 성읍을 보여주셨으니까 그 이상이라는 것은 인간 세계를 초월한 겁니다. 초월. 초월이란 단계를 넘어서는 걸 초월이라고 합니다. 단계단계 밟아서 초월이라고 합니다. 인간 세계 위로 올라가서 이상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모든 욕망과 인간의 삐뚤어진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들어갈 때 이상세계가 보여집니다.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데 찬송가 143장에 이상 세계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의 생활은 올라가야합니다. 초등학교 공부는 쉽습니다. 중졸 검정고시 쉽나요 어렵나요. 14살인데 3학년 과정을 졸업해버렸습니다. 중학교 졸업 과정은 쉽습니다. 어렵습니다. 고졸 검정고시보다도 수능시험은 어렵지요. 수능시험은 더 어렵습니다. 대학 들어가서 강의 들어보면 알겠던가요. 그런데 듣고 듣고 또 들으니까 알겠지요. 어렵다고 안하면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들 힘든 거 싫어하는 사람들 제자리 걸음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는 예수믿는 사람이면 들어가봐야합니다. 요즘 젊은 신앙들에 아이를 많이 낳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자기와 하나님을 관계 속에 얼마나 들어가봤을까. 금식기도를 봤을까 기도생활 해봤을까. 그런 생활 하는만큼 하람이 볼 수 없는 세계를 보는 겁니다. 어느정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젊을 때 일을 해라 늙으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 몸이 말을 안 듣습니다. 아이를 넷 다섯 낳으니까 굉장히 많지만 그거는 그거고 또 따로 있습니다. 다른 차원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신부, 이런 신앙 세계는 주님과 자신의 관계입니다. 깊은 기도하고 이런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조만간 산에서 기도해야하는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상 세계를 봤기 때문에 암만 봐도 나오지 않는 겁니다. 성읍 형상을 말했는데 모양이 놋같이 빛난 주님, 이스라엘에게 소망을 주신 바로 그 주님이 절망 속에 하나님을 버림받음으로 건져내기 위해서 다바친 주님이 거기 계십니다.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들고 계십니다. 멀리보고 길게보며 현재를 살아라. 젊었으냐 늙음을 생각해라.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스무살이 되면 늙는다고 합니다. 저 새파란 청년한데 늙는다하면 욕을 먹습니다. 20때부터는 퇴화하는 겁니다. 20이면 창창한건거고 60이 되고 70, 80이 되었으면 그때라도 가장 젊을 때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 가지고 현실에 오늘 서있습니다. 바로 내 옆에 지금도 주님이 문들 두드리고 계십니다. 봐라, 들어라, 생각해라. 에스겔을 데려가셔서 직접 데려가셨으나 형상인데 마치 있는 것처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전부를 말씀에 담아서 보여주셨습니다. 여기 소망이 있다 그 말이지요. 절망에게 빠졌는데 소망입니다.
보여주셨으니까 봐라 들어라 생각을 해라. 우리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경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합니다.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그리고 뭐해야합니까. 말씀 읽고 듣고 뭐해야합니까. 생각을 해야합니다. 무슨 뜻인가 무슨 말씀인데 생각을 해야합니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뭘 생각해야합니까. 말씀을 생각하는 겁니다. 마귀 귀신은 자꾸 엉뚱한 걸 집어넣습니다. 엉뚱한 걸 안 보기 위해서 집어넣는건데 온갖걸 다 집어넣습니다. 주님 말씀 붙들고 이상 중에 올라가야겠다 이렇게 말씀을 생각하는데 그만 근심 걱정 복잡한 일 들어오고 망상이 되고 그런 겁니다. 생각은 말씀을 생각하는 겁니다. 근심 걱정이 아니고 암만 생각해봐야 즐거운 것도 세상이고 좋은 것도 세상인데 나쁜 것도 세상입니다. 근심 걱정에 붙들리나 꼭 같습니다. 거기에 사로잡힌 건 사람 보기에는 나쁜 거 같은데 근심걱정에 사로잡히면 괴롭습니다.
사람이 하는데까지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게 한계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의 숫자 6이 많고 10이 많습니다. 인간의 한계 그 이상은 하나님께 맡겨라. 전지전능자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약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는데까지하고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쓰러집니다. 그러면 거기까지가 할 일입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엉망이 되었을 때 다 말아먹고 엉망이 되어졌을 때 가득찼을 때 목숨걸고 투쟁해서 이세벌이 죽이라하니까 피했는데 가다하니까 쓰러집니다. 천사를 보내서 음식을 주십니다.
사람이 하는데까지 하는겁니다. 그게 요점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생각해봅니다. 내가 본 즉 오늘 말씀의 제목이라 그럴까요 전체 방향은 지난 주까지는 절망에 빠진 절망 중에서 소망을 주신 거고 소망의 실제가 이뤄지는 과정인데 하나님을 향해 가는 하나님을 향해 들어가는 이 세상을 떨쳐버려라. 신앙으로 들어가라. 이게 일차문입니다. 이 세상을 다 떨쳐버린 걸 1차문입니다. 2차문 통과해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겁니다. 바깥에 출발이 담입니다. 담이라는 것은 구분하는거지요. 안과 밖을 구별하는 겁니다. 담이 없으면 누구 집인지 모릅니다. 온갖 사람이 다 들어옵니다. 이건 우리집이다. 줄도 없고 큰 문제가 없을걸요. 담은 안과 밖, 성경의 담은 구별하는 게 담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입니다. 교회는 담을 쌓아놔야합니다. 교회 담이 뭐냐, 교회가 담을 쌓는 것은 성경대로 하는 겁니다. 교회 모든 예배를 성경대로 행하는 게 담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게 성경말씀대로 예배드리는 겁니다. 인간 중심으로 하는 게 담인데 교회의 담은 성경대로, 찬송도 교회 찬송가가 왜 세계를 따라갑니까. 예배가 왜 세상을 따라갑니까. 교회가 세상을 구분을 해야하는데, 왜 예배시간에 찬송이 왜 따라갑니까. 담이 다 무너져내리는 겁니다.
설교가 왜 인간 중심이 됩니까. 세상 소식 전하고 공자는 남녀칠세부동석이었습니다. 우리는 공자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시대가 타락하니까 선을 지키려고 남녀 좌석을 구분합니다. 아마 세계 모든 교회에서 남녀로 구분하는 곳은 없을겁니다. 성경, 교리, 신앙 노선. 이런 걸 지키려면 사람이 지식이 있어야하고 알아야하고 고집이 세야합니다. 고집은 고집을 좋게 말하면 견집이라고 합니다. 굳게 잡는 걸 견집이라고 합니다.
신천지 출입금지. 우리는 그런 거 안합니다. 와서 들으면 됩니다. 방해만 안하면 됩니다. 교리에 굳게 서있고 교회다우면 중이 와도 신천지 여호와의 증인이 와도 괜찮고 와서 들으면 되는겁니다.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아도 우리는 문을 안 닫았습니다. 그래도 한번도 예배 안 빠졌습니다. 교회적으로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 뭐냐 하나님이 없는 곳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그런 지식, 하나님이 없는 즐거움, 향락이지요. 저 좋은 낙원 이르니 낙이 없습니까. 근심걱정도 없으나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불신자들의 모든 생활, 그들의 풍요로운 그 생활, 나쁜 게 아닌데 하나님을 빼놓고 느끼기위해서 그러면 그게 세상이 되는거지요.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즐기려고 거기에 마음을 두고 찾아가고 세상이 되는 겁니다. 그런 모습이들이 세상인데 나의 마음 속에 욕심 속에 취미 속에 침범해서 가볼까, 그러는게 세상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라는 것이 담입니다. 천국 백성이다. 내 생할이 있다. 이게 담입니다. 담이 있더라 담을 두께를 한 장 떼고 높이도 한 장 뗐습니다. 팔꿈치에서 손끝까지. 각 사람의 자기 분량입니다.
나는 성경도 모르는데 못 끊었는데 나는 제사도 지내는데 아는대로 하면 됩니다. 집안 형편이 그러냐 거기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남녀노소 신분 귀천 상관없이 갈 수있고 교만할 수 없는 게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별 볼일 없는 사람들도 큰소리치고 할겁니다. 헛된 것인데 실제면 해야하는 겁니다. 대통령됐다 하는 것이 지금도 조사받는다고 지금 대통령은 또 어찌될지 모릅니다. 이 세상 전부다 그런 겁니다. 이분은 영원합니다. 이거 믿고 큰소리 치는겁니다.
그래서 말하자면은 이 담까지 출발인데 문통에 들어간느 겁니다. 하나님을 향한 걸음이니까 그리 보면 되겠지요. 이걸 점검하는 게 측량입니다. 문통이 있고 문지기 있고 과정과정 이걸 점검하는 게 일차문입니다. 오늘 오전은 지난주 말씀 복습, 절망 중에 주신 소망 어떻게 소망을 가질 수 있느냐, 담장, 교회는 교회다워야합니다. 교회 다운게 담이고 신자가 신자 다운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면 담이 무너지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오후에 이어가겠습니다.
본문: 에스겔 40장 5절
오류 발생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갔을 때 사사시대 때 참된 종들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는 굉장히 큽니다. 한 사람의 기도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숫자가 청장년 숫자가 60만명이었습니다. 여자 아이, 잡다한 민족 치면 200만명이 넘었는데 금송아지 만들었을 때 새로운 민족 만들어준다고 했을 때 혼자 대표해서 기도했습니다. 믿음의 기도고 참된 종들의 기도입니다.
절망이란 하나님과 끊어지는 게 절망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게 절망입니다. 소망은 하나님을 다시 모실 길을 주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모신 곳이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굉장히 질투가 많고 욕심이 많은 분입니다. 욕심이 많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가 눈을 돌리면 불꽃이 튀는 게 정상입니다. 아내도 마찬가지겠고. 하나님은 우리 남편입니다. 신부인데 주님을 뒤로두고 눈길을 돌리면 하나님의 표현이 죄송하지만 눈이 뒤집어집니다. 그래서 진노하신게 하나님의 교회가 어떤 세상이든지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더 사랑하고 다 깨버립니다. 성경 역사에 다 있으면 그거 때문이고 개인이든 가정이든 교회든 어떤 것이든 그 세상이 사업이면 사업을 깨고 직장이면 직장을 쫓아냅니다. 부모들이 자식이 사랑스러우면 자식 때문에 그 자식을 주님보다 더 가까이하면 하나님께서 그냥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뒤로하고 이 세상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업이나 성공이나 제물이나 이런 걸 말씀드렸지만 그거 말고 또 향락이니 취미니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런 것도 하나님께서 붙들려서 하나님과 사귀는 그러면 다 깨버리고 못하게 합니다. 눈을 침침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음악 자꾸 들으면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병이 생기면 발에 병이 생겼으면 안갈 곳을 다녔는가. 눈에 병이 생기면 안 볼 것을 봤는가. 귀에 병이 생기면 들으면 안될 것을 들었는가 돌아봐야합니다. 예배를 뒤로하고 주님을 뒤로하고 양심을 뒤로하고 말씀으로 사는 생활을 뒤로하고 앞서 있으면 그게 바벨론이고 사로잡힌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버려버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상 중에 성읍을 보여주셨으니까 그 이상이라는 것은 인간 세계를 초월한 겁니다. 초월. 초월이란 단계를 넘어서는 걸 초월이라고 합니다. 단계단계 밟아서 초월이라고 합니다. 인간 세계 위로 올라가서 이상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모든 욕망과 인간의 삐뚤어진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들어갈 때 이상세계가 보여집니다.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데 찬송가 143장에 이상 세계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의 생활은 올라가야합니다. 초등학교 공부는 쉽습니다. 중졸 검정고시 쉽나요 어렵나요. 14살인데 3학년 과정을 졸업해버렸습니다. 중학교 졸업 과정은 쉽습니다. 어렵습니다. 고졸 검정고시보다도 수능시험은 어렵지요. 수능시험은 더 어렵습니다. 대학 들어가서 강의 들어보면 알겠던가요. 그런데 듣고 듣고 또 들으니까 알겠지요. 어렵다고 안하면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들 힘든 거 싫어하는 사람들 제자리 걸음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는 예수믿는 사람이면 들어가봐야합니다. 요즘 젊은 신앙들에 아이를 많이 낳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자기와 하나님을 관계 속에 얼마나 들어가봤을까. 금식기도를 봤을까 기도생활 해봤을까. 그런 생활 하는만큼 하람이 볼 수 없는 세계를 보는 겁니다. 어느정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젊을 때 일을 해라 늙으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 몸이 말을 안 듣습니다. 아이를 넷 다섯 낳으니까 굉장히 많지만 그거는 그거고 또 따로 있습니다. 다른 차원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신부, 이런 신앙 세계는 주님과 자신의 관계입니다. 깊은 기도하고 이런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조만간 산에서 기도해야하는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상 세계를 봤기 때문에 암만 봐도 나오지 않는 겁니다. 성읍 형상을 말했는데 모양이 놋같이 빛난 주님, 이스라엘에게 소망을 주신 바로 그 주님이 절망 속에 하나님을 버림받음으로 건져내기 위해서 다바친 주님이 거기 계십니다.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들고 계십니다. 멀리보고 길게보며 현재를 살아라. 젊었으냐 늙음을 생각해라.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스무살이 되면 늙는다고 합니다. 저 새파란 청년한데 늙는다하면 욕을 먹습니다. 20때부터는 퇴화하는 겁니다. 20이면 창창한건거고 60이 되고 70, 80이 되었으면 그때라도 가장 젊을 때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 가지고 현실에 오늘 서있습니다. 바로 내 옆에 지금도 주님이 문들 두드리고 계십니다. 봐라, 들어라, 생각해라. 에스겔을 데려가셔서 직접 데려가셨으나 형상인데 마치 있는 것처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전부를 말씀에 담아서 보여주셨습니다. 여기 소망이 있다 그 말이지요. 절망에게 빠졌는데 소망입니다.
보여주셨으니까 봐라 들어라 생각을 해라. 우리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경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합니다.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그리고 뭐해야합니까. 말씀 읽고 듣고 뭐해야합니까. 생각을 해야합니다. 무슨 뜻인가 무슨 말씀인데 생각을 해야합니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뭘 생각해야합니까. 말씀을 생각하는 겁니다. 마귀 귀신은 자꾸 엉뚱한 걸 집어넣습니다. 엉뚱한 걸 안 보기 위해서 집어넣는건데 온갖걸 다 집어넣습니다. 주님 말씀 붙들고 이상 중에 올라가야겠다 이렇게 말씀을 생각하는데 그만 근심 걱정 복잡한 일 들어오고 망상이 되고 그런 겁니다. 생각은 말씀을 생각하는 겁니다. 근심 걱정이 아니고 암만 생각해봐야 즐거운 것도 세상이고 좋은 것도 세상인데 나쁜 것도 세상입니다. 근심 걱정에 붙들리나 꼭 같습니다. 거기에 사로잡힌 건 사람 보기에는 나쁜 거 같은데 근심걱정에 사로잡히면 괴롭습니다.
사람이 하는데까지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게 한계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의 숫자 6이 많고 10이 많습니다. 인간의 한계 그 이상은 하나님께 맡겨라. 전지전능자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약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는데까지하고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쓰러집니다. 그러면 거기까지가 할 일입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엉망이 되었을 때 다 말아먹고 엉망이 되어졌을 때 가득찼을 때 목숨걸고 투쟁해서 이세벌이 죽이라하니까 피했는데 가다하니까 쓰러집니다. 천사를 보내서 음식을 주십니다.
사람이 하는데까지 하는겁니다. 그게 요점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생각해봅니다. 내가 본 즉 오늘 말씀의 제목이라 그럴까요 전체 방향은 지난 주까지는 절망에 빠진 절망 중에서 소망을 주신 거고 소망의 실제가 이뤄지는 과정인데 하나님을 향해 가는 하나님을 향해 들어가는 이 세상을 떨쳐버려라. 신앙으로 들어가라. 이게 일차문입니다. 이 세상을 다 떨쳐버린 걸 1차문입니다. 2차문 통과해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겁니다. 바깥에 출발이 담입니다. 담이라는 것은 구분하는거지요. 안과 밖을 구별하는 겁니다. 담이 없으면 누구 집인지 모릅니다. 온갖 사람이 다 들어옵니다. 이건 우리집이다. 줄도 없고 큰 문제가 없을걸요. 담은 안과 밖, 성경의 담은 구별하는 게 담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입니다. 교회는 담을 쌓아놔야합니다. 교회 담이 뭐냐, 교회가 담을 쌓는 것은 성경대로 하는 겁니다. 교회 모든 예배를 성경대로 행하는 게 담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게 성경말씀대로 예배드리는 겁니다. 인간 중심으로 하는 게 담인데 교회의 담은 성경대로, 찬송도 교회 찬송가가 왜 세계를 따라갑니까. 예배가 왜 세상을 따라갑니까. 교회가 세상을 구분을 해야하는데, 왜 예배시간에 찬송이 왜 따라갑니까. 담이 다 무너져내리는 겁니다.
설교가 왜 인간 중심이 됩니까. 세상 소식 전하고 공자는 남녀칠세부동석이었습니다. 우리는 공자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시대가 타락하니까 선을 지키려고 남녀 좌석을 구분합니다. 아마 세계 모든 교회에서 남녀로 구분하는 곳은 없을겁니다. 성경, 교리, 신앙 노선. 이런 걸 지키려면 사람이 지식이 있어야하고 알아야하고 고집이 세야합니다. 고집은 고집을 좋게 말하면 견집이라고 합니다. 굳게 잡는 걸 견집이라고 합니다.
신천지 출입금지. 우리는 그런 거 안합니다. 와서 들으면 됩니다. 방해만 안하면 됩니다. 교리에 굳게 서있고 교회다우면 중이 와도 신천지 여호와의 증인이 와도 괜찮고 와서 들으면 되는겁니다.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아도 우리는 문을 안 닫았습니다. 그래도 한번도 예배 안 빠졌습니다. 교회적으로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 뭐냐 하나님이 없는 곳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그런 지식, 하나님이 없는 즐거움, 향락이지요. 저 좋은 낙원 이르니 낙이 없습니까. 근심걱정도 없으나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불신자들의 모든 생활, 그들의 풍요로운 그 생활, 나쁜 게 아닌데 하나님을 빼놓고 느끼기위해서 그러면 그게 세상이 되는거지요.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즐기려고 거기에 마음을 두고 찾아가고 세상이 되는 겁니다. 그런 모습이들이 세상인데 나의 마음 속에 욕심 속에 취미 속에 침범해서 가볼까, 그러는게 세상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라는 것이 담입니다. 천국 백성이다. 내 생할이 있다. 이게 담입니다. 담이 있더라 담을 두께를 한 장 떼고 높이도 한 장 뗐습니다. 팔꿈치에서 손끝까지. 각 사람의 자기 분량입니다.
나는 성경도 모르는데 못 끊었는데 나는 제사도 지내는데 아는대로 하면 됩니다. 집안 형편이 그러냐 거기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남녀노소 신분 귀천 상관없이 갈 수있고 교만할 수 없는 게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별 볼일 없는 사람들도 큰소리치고 할겁니다. 헛된 것인데 실제면 해야하는 겁니다. 대통령됐다 하는 것이 지금도 조사받는다고 지금 대통령은 또 어찌될지 모릅니다. 이 세상 전부다 그런 겁니다. 이분은 영원합니다. 이거 믿고 큰소리 치는겁니다.
그래서 말하자면은 이 담까지 출발인데 문통에 들어간느 겁니다. 하나님을 향한 걸음이니까 그리 보면 되겠지요. 이걸 점검하는 게 측량입니다. 문통이 있고 문지기 있고 과정과정 이걸 점검하는 게 일차문입니다. 오늘 오전은 지난주 말씀 복습, 절망 중에 주신 소망 어떻게 소망을 가질 수 있느냐, 담장, 교회는 교회다워야합니다. 교회 다운게 담이고 신자가 신자 다운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면 담이 무너지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오후에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