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4일 수밤
김동민2024-08-14조회 123추천 17
2024년 8월 14일 수밤
찬송: 105장, 143장
본문: 에스겔 40장 2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는 요점을 기록했고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제목이 절망 중에 주신 소망입니다. 절망과 소망은 반대의 말입니다. 절망은 어둠에 속한 것이고 소망은 빛에 속한 것이다. 절망은 사망에 속한 것이고 소망은 생명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망에서 나아가면 떨어지고 사망으로 가게 되어져있습니다. 소망을 가지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끊어진 세상은 제한적이고 세상 자체가 어둠에 속했기 때문에 절망에 빠졌을 때 일어나야하니까 소망을 가지라고 말도 하고 희망적으로 말을 하지만 이 세상에서 깊은 절망 속에 빠지면 소망에 속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시고 예수님의 대속이 있기 때문에 큰 죄가 되어집니다. 죄 중에 가장 큰 마지막의 죄가 낙망의 죄입니다. 절망이 되게 됩니다. 절망적인 상황속에 소망을 가지게 되면 소망에 속하게 되고 절망 속에서 절망을 하면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주님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 양쪽으로 누가 가치가 있었습니까. 양쪽에 누가 같이 못박힙니까. 강도가 둘이 못에 박혀 있습니다. 살아생전 강도고 죽어서 강도니까 절망 희망 없는 상태입니다. 그대로 죽어버리면 지옥가고 택자라면 건설구원이 없게 됩니다. 죽는 그 순간에 큰 건설 구원을 이뤄지게 된겁니다. 주님을 구주로 인정한 건 굉장히 큰 겁니다. 성공 전체는 아니지만 소망을 가진 강도가 된 겁니다. 안 믿는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시고 있으시기 때문에 예외가 없습니다. 죽는날까지 죄를 짓고 회개하면 그 순간이라도 빛을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오늘밤 한 말씀 기억하십시다. 예수믿는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라도 낙망은 금물입니다. 그래서 절망은 죄라고 할 수 없는데 낙망은 죄가 됩니다. 낙망은 내가 하는 겁니다. 절망도 절망하게 되면 낙망이 되는거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낙망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게 믿는 사람의 복입니다.
이스라엘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함락되어 14년까지 지났습니다. 알고 봐도 35년이 남았습니다. 70년입니까. 아직까지 45년이 더 남았습니까 절망적일 수 밖에 없는거지요. 45년이 남았다는 게 없다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에스겔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고 양심으로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정월십일, 정월십일이 뭐라고 했습니까. 출애굽을 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정월십일에 준비해서 십사일 밤에 일어나고 십오일 밤에 출발하지요. 그게 유월절입니다. 소망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몸이 포로로 잡혔고 가족이 다 잡혀갔고 나라가 다 잡히고 망해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사로잡혔는가 믿는 사람은 어디에 무엇이 사로잡혔는가 중요하지요. 우리는 어디에 사로잡혔습니까. 세상에 사로잡혔습니다. 세상은 넓고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좋고 강합니다. 좋게 쓰면 선물이 되고 사로잡히면 음녀가 되고 간부가 되어서 나를 미혹해서 사로잡습니다. 삼손이 딤라 여인을 취했을 때는 블레셋을 쳤습니다. 그런데 들릴라를 사랑할 때는 사로 잡혀버렸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팔아먹으려고 죽이려고 애를 쓰는 그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그러고 있었고 계속 그러니까 죽을 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 사로잡혔다는 걸 알아야겠고 한 말로 세상인데 그 세상은 사람도 있고 사물도 있고 크게 몇 가지, 향락이 있다. 육신의 정욕이 있다. 향락이라는 것은 먹는 것도 락이고 즐기는 것도 락이고. 그런 것에 잡힐 수 있고 별별 취미가 다 있습니다. 이 세상 출세에 성공에 행복에 재미에 사람에 정에 걸려서 별별 것들에게 사로잡힐 수가 있는데 무엇에 사로잡혔나 생각을 하고 무엇에 사로잡혔나 했습니까. 무엇이 사로잡혔다고 했습니까. 우리의 무엇이 세상에 사로잡혔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신앙이란 생활로 나가보면 나의 주일이 뺏겨버렸습니다. 사로잡혀버렸습니다. 직장에 붙들려 주일을 어겼으면 사로잡힌겁니다. 주일이 예배시간이 예배를 뺏겨버렸습니다. 나의 예배가 잘 지키다가 오늘 하루 빠지면 이런 거 때문에 저런 거 때문에 내 예배를 사로잡혔구나. 우리 공회는 대예배를 네 번 봅니다. 주일 오전 오후 삼일 밤예배. 그런데 밤 예배를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로잡힌겁니다. 개념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으나 사로잡힌 것은 맞는 겁니다. 오늘 새벽은 잠 때문에 피로 때문에 사로잡힌겁니다. 이런 게 전부 한 말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신앙이 사로잡혔다. 향락에 취미에 이 세상 재미에 정에 욕심에 별별 안팍에 빼앗기면 사로잡힌게 된겁니다.
그 신앙으로 이뤄나가는게 뭐냐, 구원으로 사로잡힌겁니다. 구원은 무엇인가요. 나의 구원은 다시 말하면 나의 천국을 베낀겁니다. 기가 막히는거지요. 돈 백만원을 사기당하고 뺏기면 잠을 못 잘겁니다. 1억원 정도 사기당하면 병이 날 겁니다. 그런데 1억원 정도 빼앗기고 사로잡히고 그래도 병이 되는데 천국이야 까짓거, 천국과 비교하면 비교가 될까. 당장 닥치는 것만 하면 천국을 베낀다고 하면 감각이 없지요. 육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주일을 뺏기고 예배를 뺏기고 성경을 뺏기고 기도를 뺏기고 신앙생활을 뺏기면 신앙은 절단나는겁니다.
사람이 땅 한 평을 가지고 싸웁니다. 그거 때문에 사이 좋은 이웃이 원수가 됩니다. 그건 목숨거는데 하늘나라에 내 영원한 활동 무대가 없어지는 겁니다. 활동하는 공간이 없어지고 그러면 뭐라고 합니까. 활동하는 공간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감옥이라고 합니다. 활동할 공간이 없습니다. 구원을 다 빼앗겨버렸습니다. 신앙을 다 빼앗겨버렸을니까. 에서가 장자 명분을 빼앗겨버렸습니다. 뭐 뺏겼죠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뺏겼습니까. 몇 억 받았습니까. 밴츠 자동차를 받았습니까. 그 당시로 말하면 농장을 받았습니까. 양떼를 받았습니까. 소를 받았습니까. 장자의 명분은 얼마나 받고 팔아먹었던가요. 요즘으로 말하면 될란가 팥 죽 한 그릇 얼마합니까. 만 원 합니까. 그런 걸 망령이라고 합니다. 썩어진 육신의 향락의 재미에 그 순간을 못 이겨서 팔아먹습니다. 미쳤다고 하지요. 사람들이 모두 미쳤어 백 목사님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미쳤지요 돌아보면은. 사로잡힌거지요. 나의 무엇이 나의 신앙이 사로 잡혔는가 알아야합니다. 나를 사로잡힌 세상이 뭐냐 이 세상 중에서 내 밖에 있는거냐 내 안에 있는거냐 내 안에 있는 놈이 하나입니다.
이번에 보니까 우리나라에 해외에서 정보를 입수하는 첩보원들이 내부에서 누가 팔아먹은 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신상이 들통나서 피했답니다. 그 사람들 해외 각국에서 변장을 하고 그 나라 사람처럼 살면서 간접으로 정보를 가져와서 도움이 되는데 내부에서 어느 인간이 그랬는지 다 팔아먹어버리니까 탄로났으니 죽는거지요. 수 많은 사람들이 피했답니다. 그놈에게 나를 다 팔아먹는거지요. 그래서 나에게 나의 신앙을 나의 구원을 나이 신앙생활과 구원과 천국을 세상에 팔아먹는 그런 강한 세상이 내게는 무엇이냐, 어떤 사람은 돈, 어떤 사람은 사람, 어떤 사람은 향락, 어떤 사람은 정, 어떤 사람은 취미, 어떤 사람은 욕심, 자존심. 그런 것들이 우리의 신앙 사로잡히면 끝장이 나는거지요.
이스라엘에 바벨론에 사로잡혔습니다. 지난 날의 많은 죄 때문에 사로 잡힌 게 많습니다. 사람을 가르치고 연단시키려고 현실의 어려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이라 낙망할 수 밖에 없지만 소망을 가지려고 하는 겁니다. 어느 정도로 사로잡혀서 애굽 나라의 종노릇 하면서 애굽사람 앞잡이해서 동족을 부려먹는 그런 사람입니다. 바벨론 사람에게 붙어가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었을겁니다. 그런 사람들 한국에서도 많았습니다. 한 편으로 보면은 이 세상에 붙어 그 나라 붙어서 하는거 가지고 그러는 거니까 일제 시대 때 사람들이 일본사람에게 붙으면 출세를 하는거지요. 제대로 부자로 사는 사람은 전부 매국노들이지요. 친일파들 그런데 그 당시로는 그게 출세한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식층 중에서도 비판하고 독립을 외치다가 하다 하다 안되니까 못 버텨서 친일로 돌아간 사람들 숫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성공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랬던 것처럼 천국팔고 성공하면 그게 성공인 줄 아는데 자기 구원 팔아먹는 것이고 사로잡히는거다. 기억하십시다. 첫째, 나는 이 세상 어떤 세상에게 내 신앙에 사로잡혔나를 알아야하고 손해를 느껴야하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야하고 애절하게 기도하는 것이고 권능으로 붙들어주셨습니다. 이상 중이라는 말은 초월한 상태라는 겁니다. 사람과 자기와 세상을 초월했다. 넘어섰다는 거지요. 하나님께 붙들린 겁니다. 이게 이해가 되시고 해야하는데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 붙들린다. 말씀에 붙들린다는거지요. 말씀으로 생각하는거지요, 파고 들어가고 따지는 것이고 인간의 지식, 경험 체험적인 지식과 실감 감정과 욕심 근심과 걱정 정 이런 인적인 모든 게 다 배제하고 말씀으로 파고 들어가려고 지배를 하는 겁니다.
내가 나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아는대로 생각을 하는 겁니다. 말씀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내 속에 있는 기존 지식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든 지식 처음의 지식 동시에 거기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욕심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별별 것들이 내가 당면한 것들이 별별 것이 있는데 이걸 전부 떨어버린느 겁니다. 부인하고 넘어서서 다 버리고 말씀만 받아들이는 겁니다. 말씀으로 삼는 겁니다. 자기의 생각으로 논리로 이론으로 명상으로 파고들어가는 거지요. 들어갈 때 어느정도 되면 밝은 심령을 주실 겁니다. 인간을 다 초월한 상태, 성령에 붙들린 상태 그걸 극히 높은 산이라고 합니다. 산이란 이 세상과 떨어지고 멀어지는 곳입니다. 밝은 것이 되는 거지요. 높다는 것을 다른 말로하면 뭔가요. 말씀으로 따지고 생각하고 들어가니까 이 세상에 높은 세계로 올라갑니다. 그 높은 것을 말하면 깊은 겁니다. 깊은 신앙, 깊은 겁니다. 그러니까 찬송가 143장 가사 보시겠습니까.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 안에 은혜 받음으로 마음 속의 풍파가 잔잔합니다. 몸과 세상이 간 곳이 없습니다. 이게 이상 중입니다. 다 떠나버리는 겁니다. 말씀만 생각을 하니까 인적인 게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만 보인다고요, 주님만 보이는 겁니다. 이게 간증입니다. 이걸 경험한 겁니다. 에스겔의 상태가 말씀으로 생각하고 이상 중에 인간의 모든 것을 초월한 상태입니다. 높은 산에, 그러니까 깊이 들어가는 겁니다. 깊이 들어갔고 높이 들어갔습니다. 그리 되니까 인식이 사고가 시각이 관점이 인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관점이 된 겁니다. 하나님의 시각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관점에서 보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 아니고.
어떤 사건과 상황을 두고 볼 때 볼 때마다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앞에서 보면 평면도 단면도 위에서 보는 거 앞에서보는 거 뒤에서 부는 거 대각선에서 보는 것, 그걸 각도라고 합니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은 주일학교 학생으로 다 보일 수 있습니다. 양심으로 파고들어가고 다 들어가니까 관점이 되는겁니다. 이 세상을 보는, 그런 상태가 되니까 천국이 보이는 겁니다. 성읍 현상, 그때, 다른 사람 눈에 안 보이는 천국, 천국 현상같은 것이라, 에스겔 눈에만 보인 겁니다. 봤는데 그 자리에 있는게 아닙니다. 보인겁니다. 없는데 에스겔 눈에 보인겁니다. 주님 오신 천국이 에스겔 눈에 보일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뤄가는 거라고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게 에스겔 성전의 과정입니다.
사도 바울은 삼층천에 올라갔습니다. 백 목사님은 이상을 봤습니다. 지금도 곳곳에 그런 것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을겁니다. 진짜 신앙인지 한 번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이상 중에 이론적으로 따지면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걸 다 벗어나고 오로지 말씀으로만 다 받아서 말씀으로만 생각하는 거 다 하는 겁니다. 사리사욕하고 감정 버리고 자존심 다 버리고 근심걱정 다 버리고 오로지 말씀이 뭐라 그러냐 말씀은 내 마음 속에 파고 들어가는거지요. 그렇게 들어갈 때 밝혀주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모든 난제의 해결은 길입니다. 그러면 답이 다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극히 높은 산에 오르는데 성읍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놋같이 빛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속의 주님은 어찌 좋은 친구냐, 내 짐 다 지신 그 주님입니다. 그 분이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들었습니다. 죽음의 날을 보고 오늘을 살아라, 무궁 세계를 보고 현실을 살아라 이게 삼줄과 장대라. 내가 네게 보이는 것을 보고 듣고 동족들에게 다 전해라 그리고 너에게 맏긴 사명을 다해라. 구별하는 담장. 첫째시간 둘째시간 가면 다섯가지 정도가 나와야하는데
절망 중에 주신 소망이 제목입니다. 이상 중에 보여주신 것. 놋과 같이 빛나는 주님, 사명, 담장. 하나씩 파고들어거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실제 생활에 적용해야하고 소망도 가지고 기도도 하고 이런 것들이 되지 않아야하는 겁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05장, 143장
본문: 에스겔 40장 2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는 요점을 기록했고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제목이 절망 중에 주신 소망입니다. 절망과 소망은 반대의 말입니다. 절망은 어둠에 속한 것이고 소망은 빛에 속한 것이다. 절망은 사망에 속한 것이고 소망은 생명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망에서 나아가면 떨어지고 사망으로 가게 되어져있습니다. 소망을 가지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끊어진 세상은 제한적이고 세상 자체가 어둠에 속했기 때문에 절망에 빠졌을 때 일어나야하니까 소망을 가지라고 말도 하고 희망적으로 말을 하지만 이 세상에서 깊은 절망 속에 빠지면 소망에 속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시고 예수님의 대속이 있기 때문에 큰 죄가 되어집니다. 죄 중에 가장 큰 마지막의 죄가 낙망의 죄입니다. 절망이 되게 됩니다. 절망적인 상황속에 소망을 가지게 되면 소망에 속하게 되고 절망 속에서 절망을 하면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주님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 양쪽으로 누가 가치가 있었습니까. 양쪽에 누가 같이 못박힙니까. 강도가 둘이 못에 박혀 있습니다. 살아생전 강도고 죽어서 강도니까 절망 희망 없는 상태입니다. 그대로 죽어버리면 지옥가고 택자라면 건설구원이 없게 됩니다. 죽는 그 순간에 큰 건설 구원을 이뤄지게 된겁니다. 주님을 구주로 인정한 건 굉장히 큰 겁니다. 성공 전체는 아니지만 소망을 가진 강도가 된 겁니다. 안 믿는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시고 있으시기 때문에 예외가 없습니다. 죽는날까지 죄를 짓고 회개하면 그 순간이라도 빛을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오늘밤 한 말씀 기억하십시다. 예수믿는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라도 낙망은 금물입니다. 그래서 절망은 죄라고 할 수 없는데 낙망은 죄가 됩니다. 낙망은 내가 하는 겁니다. 절망도 절망하게 되면 낙망이 되는거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낙망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게 믿는 사람의 복입니다.
이스라엘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함락되어 14년까지 지났습니다. 알고 봐도 35년이 남았습니다. 70년입니까. 아직까지 45년이 더 남았습니까 절망적일 수 밖에 없는거지요. 45년이 남았다는 게 없다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에스겔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고 양심으로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정월십일, 정월십일이 뭐라고 했습니까. 출애굽을 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정월십일에 준비해서 십사일 밤에 일어나고 십오일 밤에 출발하지요. 그게 유월절입니다. 소망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몸이 포로로 잡혔고 가족이 다 잡혀갔고 나라가 다 잡히고 망해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사로잡혔는가 믿는 사람은 어디에 무엇이 사로잡혔는가 중요하지요. 우리는 어디에 사로잡혔습니까. 세상에 사로잡혔습니다. 세상은 넓고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좋고 강합니다. 좋게 쓰면 선물이 되고 사로잡히면 음녀가 되고 간부가 되어서 나를 미혹해서 사로잡습니다. 삼손이 딤라 여인을 취했을 때는 블레셋을 쳤습니다. 그런데 들릴라를 사랑할 때는 사로 잡혀버렸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팔아먹으려고 죽이려고 애를 쓰는 그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그러고 있었고 계속 그러니까 죽을 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 사로잡혔다는 걸 알아야겠고 한 말로 세상인데 그 세상은 사람도 있고 사물도 있고 크게 몇 가지, 향락이 있다. 육신의 정욕이 있다. 향락이라는 것은 먹는 것도 락이고 즐기는 것도 락이고. 그런 것에 잡힐 수 있고 별별 취미가 다 있습니다. 이 세상 출세에 성공에 행복에 재미에 사람에 정에 걸려서 별별 것들에게 사로잡힐 수가 있는데 무엇에 사로잡혔나 생각을 하고 무엇에 사로잡혔나 했습니까. 무엇이 사로잡혔다고 했습니까. 우리의 무엇이 세상에 사로잡혔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신앙이란 생활로 나가보면 나의 주일이 뺏겨버렸습니다. 사로잡혀버렸습니다. 직장에 붙들려 주일을 어겼으면 사로잡힌겁니다. 주일이 예배시간이 예배를 뺏겨버렸습니다. 나의 예배가 잘 지키다가 오늘 하루 빠지면 이런 거 때문에 저런 거 때문에 내 예배를 사로잡혔구나. 우리 공회는 대예배를 네 번 봅니다. 주일 오전 오후 삼일 밤예배. 그런데 밤 예배를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로잡힌겁니다. 개념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으나 사로잡힌 것은 맞는 겁니다. 오늘 새벽은 잠 때문에 피로 때문에 사로잡힌겁니다. 이런 게 전부 한 말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신앙이 사로잡혔다. 향락에 취미에 이 세상 재미에 정에 욕심에 별별 안팍에 빼앗기면 사로잡힌게 된겁니다.
그 신앙으로 이뤄나가는게 뭐냐, 구원으로 사로잡힌겁니다. 구원은 무엇인가요. 나의 구원은 다시 말하면 나의 천국을 베낀겁니다. 기가 막히는거지요. 돈 백만원을 사기당하고 뺏기면 잠을 못 잘겁니다. 1억원 정도 사기당하면 병이 날 겁니다. 그런데 1억원 정도 빼앗기고 사로잡히고 그래도 병이 되는데 천국이야 까짓거, 천국과 비교하면 비교가 될까. 당장 닥치는 것만 하면 천국을 베낀다고 하면 감각이 없지요. 육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주일을 뺏기고 예배를 뺏기고 성경을 뺏기고 기도를 뺏기고 신앙생활을 뺏기면 신앙은 절단나는겁니다.
사람이 땅 한 평을 가지고 싸웁니다. 그거 때문에 사이 좋은 이웃이 원수가 됩니다. 그건 목숨거는데 하늘나라에 내 영원한 활동 무대가 없어지는 겁니다. 활동하는 공간이 없어지고 그러면 뭐라고 합니까. 활동하는 공간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감옥이라고 합니다. 활동할 공간이 없습니다. 구원을 다 빼앗겨버렸습니다. 신앙을 다 빼앗겨버렸을니까. 에서가 장자 명분을 빼앗겨버렸습니다. 뭐 뺏겼죠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뺏겼습니까. 몇 억 받았습니까. 밴츠 자동차를 받았습니까. 그 당시로 말하면 농장을 받았습니까. 양떼를 받았습니까. 소를 받았습니까. 장자의 명분은 얼마나 받고 팔아먹었던가요. 요즘으로 말하면 될란가 팥 죽 한 그릇 얼마합니까. 만 원 합니까. 그런 걸 망령이라고 합니다. 썩어진 육신의 향락의 재미에 그 순간을 못 이겨서 팔아먹습니다. 미쳤다고 하지요. 사람들이 모두 미쳤어 백 목사님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미쳤지요 돌아보면은. 사로잡힌거지요. 나의 무엇이 나의 신앙이 사로 잡혔는가 알아야합니다. 나를 사로잡힌 세상이 뭐냐 이 세상 중에서 내 밖에 있는거냐 내 안에 있는거냐 내 안에 있는 놈이 하나입니다.
이번에 보니까 우리나라에 해외에서 정보를 입수하는 첩보원들이 내부에서 누가 팔아먹은 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신상이 들통나서 피했답니다. 그 사람들 해외 각국에서 변장을 하고 그 나라 사람처럼 살면서 간접으로 정보를 가져와서 도움이 되는데 내부에서 어느 인간이 그랬는지 다 팔아먹어버리니까 탄로났으니 죽는거지요. 수 많은 사람들이 피했답니다. 그놈에게 나를 다 팔아먹는거지요. 그래서 나에게 나의 신앙을 나의 구원을 나이 신앙생활과 구원과 천국을 세상에 팔아먹는 그런 강한 세상이 내게는 무엇이냐, 어떤 사람은 돈, 어떤 사람은 사람, 어떤 사람은 향락, 어떤 사람은 정, 어떤 사람은 취미, 어떤 사람은 욕심, 자존심. 그런 것들이 우리의 신앙 사로잡히면 끝장이 나는거지요.
이스라엘에 바벨론에 사로잡혔습니다. 지난 날의 많은 죄 때문에 사로 잡힌 게 많습니다. 사람을 가르치고 연단시키려고 현실의 어려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이라 낙망할 수 밖에 없지만 소망을 가지려고 하는 겁니다. 어느 정도로 사로잡혀서 애굽 나라의 종노릇 하면서 애굽사람 앞잡이해서 동족을 부려먹는 그런 사람입니다. 바벨론 사람에게 붙어가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었을겁니다. 그런 사람들 한국에서도 많았습니다. 한 편으로 보면은 이 세상에 붙어 그 나라 붙어서 하는거 가지고 그러는 거니까 일제 시대 때 사람들이 일본사람에게 붙으면 출세를 하는거지요. 제대로 부자로 사는 사람은 전부 매국노들이지요. 친일파들 그런데 그 당시로는 그게 출세한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식층 중에서도 비판하고 독립을 외치다가 하다 하다 안되니까 못 버텨서 친일로 돌아간 사람들 숫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성공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랬던 것처럼 천국팔고 성공하면 그게 성공인 줄 아는데 자기 구원 팔아먹는 것이고 사로잡히는거다. 기억하십시다. 첫째, 나는 이 세상 어떤 세상에게 내 신앙에 사로잡혔나를 알아야하고 손해를 느껴야하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야하고 애절하게 기도하는 것이고 권능으로 붙들어주셨습니다. 이상 중이라는 말은 초월한 상태라는 겁니다. 사람과 자기와 세상을 초월했다. 넘어섰다는 거지요. 하나님께 붙들린 겁니다. 이게 이해가 되시고 해야하는데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 붙들린다. 말씀에 붙들린다는거지요. 말씀으로 생각하는거지요, 파고 들어가고 따지는 것이고 인간의 지식, 경험 체험적인 지식과 실감 감정과 욕심 근심과 걱정 정 이런 인적인 모든 게 다 배제하고 말씀으로 파고 들어가려고 지배를 하는 겁니다.
내가 나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아는대로 생각을 하는 겁니다. 말씀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내 속에 있는 기존 지식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든 지식 처음의 지식 동시에 거기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욕심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별별 것들이 내가 당면한 것들이 별별 것이 있는데 이걸 전부 떨어버린느 겁니다. 부인하고 넘어서서 다 버리고 말씀만 받아들이는 겁니다. 말씀으로 삼는 겁니다. 자기의 생각으로 논리로 이론으로 명상으로 파고들어가는 거지요. 들어갈 때 어느정도 되면 밝은 심령을 주실 겁니다. 인간을 다 초월한 상태, 성령에 붙들린 상태 그걸 극히 높은 산이라고 합니다. 산이란 이 세상과 떨어지고 멀어지는 곳입니다. 밝은 것이 되는 거지요. 높다는 것을 다른 말로하면 뭔가요. 말씀으로 따지고 생각하고 들어가니까 이 세상에 높은 세계로 올라갑니다. 그 높은 것을 말하면 깊은 겁니다. 깊은 신앙, 깊은 겁니다. 그러니까 찬송가 143장 가사 보시겠습니까.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 안에 은혜 받음으로 마음 속의 풍파가 잔잔합니다. 몸과 세상이 간 곳이 없습니다. 이게 이상 중입니다. 다 떠나버리는 겁니다. 말씀만 생각을 하니까 인적인 게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만 보인다고요, 주님만 보이는 겁니다. 이게 간증입니다. 이걸 경험한 겁니다. 에스겔의 상태가 말씀으로 생각하고 이상 중에 인간의 모든 것을 초월한 상태입니다. 높은 산에, 그러니까 깊이 들어가는 겁니다. 깊이 들어갔고 높이 들어갔습니다. 그리 되니까 인식이 사고가 시각이 관점이 인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관점이 된 겁니다. 하나님의 시각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관점에서 보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 아니고.
어떤 사건과 상황을 두고 볼 때 볼 때마다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앞에서 보면 평면도 단면도 위에서 보는 거 앞에서보는 거 뒤에서 부는 거 대각선에서 보는 것, 그걸 각도라고 합니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은 주일학교 학생으로 다 보일 수 있습니다. 양심으로 파고들어가고 다 들어가니까 관점이 되는겁니다. 이 세상을 보는, 그런 상태가 되니까 천국이 보이는 겁니다. 성읍 현상, 그때, 다른 사람 눈에 안 보이는 천국, 천국 현상같은 것이라, 에스겔 눈에만 보인 겁니다. 봤는데 그 자리에 있는게 아닙니다. 보인겁니다. 없는데 에스겔 눈에 보인겁니다. 주님 오신 천국이 에스겔 눈에 보일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뤄가는 거라고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게 에스겔 성전의 과정입니다.
사도 바울은 삼층천에 올라갔습니다. 백 목사님은 이상을 봤습니다. 지금도 곳곳에 그런 것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을겁니다. 진짜 신앙인지 한 번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이상 중에 이론적으로 따지면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걸 다 벗어나고 오로지 말씀으로만 다 받아서 말씀으로만 생각하는 거 다 하는 겁니다. 사리사욕하고 감정 버리고 자존심 다 버리고 근심걱정 다 버리고 오로지 말씀이 뭐라 그러냐 말씀은 내 마음 속에 파고 들어가는거지요. 그렇게 들어갈 때 밝혀주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모든 난제의 해결은 길입니다. 그러면 답이 다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극히 높은 산에 오르는데 성읍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놋같이 빛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속의 주님은 어찌 좋은 친구냐, 내 짐 다 지신 그 주님입니다. 그 분이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들었습니다. 죽음의 날을 보고 오늘을 살아라, 무궁 세계를 보고 현실을 살아라 이게 삼줄과 장대라. 내가 네게 보이는 것을 보고 듣고 동족들에게 다 전해라 그리고 너에게 맏긴 사명을 다해라. 구별하는 담장. 첫째시간 둘째시간 가면 다섯가지 정도가 나와야하는데
절망 중에 주신 소망이 제목입니다. 이상 중에 보여주신 것. 놋과 같이 빛나는 주님, 사명, 담장. 하나씩 파고들어거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실제 생활에 적용해야하고 소망도 가지고 기도도 하고 이런 것들이 되지 않아야하는 겁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