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9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4-06-09조회 153추천 19
2024년 6월 9일 주일 오전
찬송: 99장, 74장
본문: 에스겔 40장 7절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고 성경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기록해주셨고 알아야하는 내용을 주신겁니다. 알아야하는데 모르면 구원을 이루어가지 못합니다. 알려주지 않으신 것은 알 필요가 없는데 알려주신 것은 알아야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읽고 또 읽고 읽고 또 읽으면, 세상에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도가 좀 늦게 나갑니다. 1절부터 4절까지는 어렵지 않은데 5절부터는 어렵고 갈수록 어려운데 오늘은 7절 중심으로 생각해봅니다. 다 연결이 되어져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말씀은 성전을 그리고 있습니다. 앞에서 공부한대로 물질로 된 성전이 아니라 신앙의 이상을 보여주십니다. 성전의 모습으로 가르쳐주신겁니다. 천국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크기가 굉장히 큽니다. 42장에 보면 담의 길이가 동서남북 각각 500척씩입니다. 500규빗이고 1규빗이 50cm면 몇 m정도 됩니까. 한 규빗이 50cm면 250m 맞습니까. 한 쪽이 동쪽이 250미터 남쪽에 사방이 250미터로 굉장히 큰 그런 건물입니다. 어지간한 그런 요즘은 워낙 대형이 많기 때문에 많은데 웬만한 그런 초등학교 운동장 2개 정도 합칠만큼 굉장히 큰 건물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문이 한 쪽 문이 공부하고 있는데 문도 그만큼 전체 50규빗이니까 25이터 정도 굉장히 크지요. 집회장소 예배당만한 120평 정도 될 만큼 큰 문입니다.
지나는 주간은 성전 공부 계속하다가 한 박자 좀 쉬어가자 해서 믿음을 살펴갔습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도고 믿음의 실제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백 목사님은 세우신 지도자셨는데 그분은 믿고난 다음에 믿기 시작할 때부터 종교성으로 많이 했는데 성경을 그렇게 많이 읽고 파고들었습니다. 몇날 며칠이고 앉아있다고보니까 엉덩이가 터집니다. 그만큼 성경을 연구하고 또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읽어서 깨달은 대로 아는 것은 알게 된 것입니다. 담배도 술도 안되는구나 끊어버리고 술은 3일만에 끊었다고 하지요. 술고래였는데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 쩔어살았는데 3일만에 끊어버리고 담배는 한 달 안 걸려서 끊어버리고 제사는 또 아니구나 해서 끊을 때 온 집안 어른들해서 공부해서 파고 들어가서 이렇게 이런 것이고 그래서 제사는 헛된 것이고 살아생전 효도하는 목적으로 예수믿는 효자가 되니까 논리적으로 어른들을 모셔놓고 유교가 강한 집안이었는데 그 유교는 기본이 제사 아니겠습니까. 또 보니까 주일 지키고 또 성경 지키니까 새벽기도 나오고 산기도하니까 산기도가고. 하나씩 실행해간 겁니다. 아는대로 살아가는 걸 믿음. 이런 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란 아는 대로 살아가는 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마다 다 차이가 있어서 못해도 알고 노력을 해야하고 하는대로 행해 나가야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믿음을 가져도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데 믿음 따로 행함 따로 이러니까 믿음이 아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말씀하셨고 행함 없는 믿음이란 희생이 없는 믿음입니다. 노력희생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과 내 자신을 희생을 하는거지요. 이게 희생이 들어가지 않으면 믿음이 아니다.
두 번째는 충성인데 마음과 몸 다 드려서 충성하지 않으면 믿음이 아니다. 세 번째는 전투신앙인데 싸우는 겁니다. 죄와 더불어 싸우고 불의의 세력과 싸우고 미혹의 모든 세력과 싸우는 게 신앙인데 승리없는 신앙은 믿음이 아니다. 이 생활을 계속하지 않고 다섯 번째는 과거는 후회하고 결심은 잘 하는데 현재 없는 믿음도 믿음은 아니다. 행동이 따락가지 않는 것도 믿음이 아니다. 마지막은 자기 만족하고 믿음없는 행함없는 믿음.
전체적으로 앞에 1절부터 4절까지는 배경입니다. 5절부터 들어가는데 담입니다. 담이 있고 그리고 담이 있으니까 문이 있겠지요. 이 성전에 사방으로 담이 있습니다. 문이 몇 개 있습니까. 동서남북 사방에 큰 문이 몇 개 있습니까. 한양성에 문이 사대문이 몇 개입니까.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북대문인데 여기는 세 개입니다. 세 개인데 서쪽이 문이 없습니다. 서쪽에는 문이 없습니다. 이 문이란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동쪽만 공부하고 있습니다. 동향한 문인데 동향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이고 문을 통해서 문을 통하고 문지기방도 통과하고 뜰을 통과하고 마당을 통과하고 성소 지나서 지성소가 있고 거기 하나님이 계시는 겁니다. 여기 문은 하나님을 향해 가는 문입니다. 지성소로 가는 문이고 동문은 바깥문입니다. 문이 계속 나오는데 문을 들어갈 때 첫째문 들어갈 때 동문 앞에 뭐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지성소향해 들어가는 뭐가 있었습니까. 천계가 7가 있습니다. 하나 둘 올라가서 시작되고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살피는 하나님의 관점 시각 이게 동문이고 문이란 성 전체가 성전이고 문이 나온다고 했는데 예수님을 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문을 실질적으로 현실 생활에 연결시키면 이게 문이고 문통, 문턱 우리가 걸어가는 걸음입니다. 건물이 크다보니까 이 문통 하나가 우리 예배당 세 배가 될 만큰 큰 문입니다. 그래서 문이 단순히 작은 문 그런 가정문으로 생각지말고 큰 문으로 생각하면 될지 모르겠습니다.
6절에 보니까 6절부터 문을 척량했습니다. 그 문간에 문지기의 방들이 있습니다. 문간이라는 말은 문과 문 사이를 말합니다. 이 동문에 바깥 문이 있고 안 문이 있는데 그 사이를 문간이라고 합니다.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습니다. 문간. 이 사이간자니까 문과 문 사이다. 해석한 대로 말하면 문은 주님 대속인데 우리가 말하면 무엇이 문이라고 말했습니까. 현실이 문이다. 현실이란 지금입니다. 문과 문 사이에서 현실과 현실 사이라. 현실을 계속 이어지는건데 장소적으로 현실은 이어지면서 예배당과 집 사이 집과 학교 사이 집과 회사 사이 방과 부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이런 사이사이를 말할 수 있겠지요. 여기와 여기 사이입니다. 집에서 예배당에서 오셨습니다. 그 사이에 걸음걸음이 있었고 생각을 하셨고 대화하셨겠고 있었습니다. 예배당에서 집에 오는 사이, 보는 거 듣는 거 말하는거. 현실이 지나가는 모든 사이라는 것입니다. 문간 사이. 간단하겠지만 포함이 되는 겁니다.
성경에 문지기 방들이 있습니다. 문지기 방들이 있습니다. 문을 지키는 사람을 문지기라고 하지요. 가정에는 문지기가 없지요. 학교에 가면 수위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회사에 가면 경비가 있습니다. 군대가면 보초가 있겠지요. 큰 단체, 큰 건물에는 문지기 경비라든지 있습니다. 문지기는 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사람이지요. 살펴보고 들어와서 안될 사람을 못 들어오게 막고 들어가는데 가지고 들어가면 안되는 건 못 들어가게 막겠고. 이게 문지기입니다. 문지기는 구약의 다윗 문지기는 4000명까지 있었습니다. 매일 몇 백 명씩 있었습니다. 앞에 요한복음 10장에서 문지기는 그를 위해서 문을 연다는 거고 성령으로 해석합니다. 성령이란 하나님의 영을 말합니다. 영감이라 말을 하고 감화감동이라고 말을 합니다. 성령의 역사 성령의 감화 감동.
성령의 역사는 진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양심으로 역사합니다. 내 양심으로 역사합니다. 동시에 내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켜 그런 걸 통해 역사하시는게 문지기 역사입니다. 그러면 다시 연결시켜봅니다. 바깥에 동문에서 담인데 문이 있습니다. 천계의 계단이 막고 있습니다. 문간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문지기가 거하는 방이 있습니다. 문지기가 방들에 거주하면서 낱낱이 다 조사를 한다 그 말입니다. 좌우로 각 3개씩 있습니다. 왼편에 3개 오른편에 3개. 그 말은 문지기가 왼쪽에도 있고 오른쪽에도 있다는 거지요.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걸음걸음 하나님께서 문지기를 보내서 양심을 통해 내 모든 생활 전부를 심사하는 겁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도록 살펴보는 겁니다. 왼쪽으로 글 잘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왼손으로 밥을 먹으면 옛날에 혼을 냅니다. 그래서 왼손을 기능을 못하는 어른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안 쓰는 안타까운이 있는거지요. 오른손만 쓰는 것보다 같이 쓰면 배가 되는 겁니다. 왼손만 쓰는 것보다 오른손까지 같이 쓰는 게 좋습니다.
남편은 아내 말을 들어야합니다. 부부란 균형맞추는겁니다. 남편과 여자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교역자와 교인 나와 다른 사람, 이런 것을 가르켜서 신앙으로 살아갈 때 내가 말을 할 때는 상대방 말을 들어봐야합니다. 내 말만하고 상대방말 듣지 않으면 이번 양성원 때 공부했는데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을 농이라그랬습니까. 귀가 안 들리는 사람들은 말을 못하거든요. 말을 못하는 장애인들은 못 듣기 때문에 말을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못 듣는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요. 들리는데 안 듣는거지요.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는 겁니다. 굉장히 필요하게 만들고 자기 말만 하는 겁니다. 남편이 남의 말을 안 듣고 반대쪽에 아내 말 안 듣고 보통 문제가 아닌 거지요. 장애 수준이 되는 겁니다. 늘 대화라는 말은 양쪽이 주고 받는 걸 대화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라고 성전에 문지기 방을 어떻게 두셨다고요. 양쪽에 두신 겁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판단할 때 판사가 올바른 사람같으면 감옥가면, 죄인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감옥에는 전부 다 억울하다고 합니다. 판시는 양쪽 말 다 들어보고 판단하지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피고가 옳은 거 같으나 균형이고 양쪽입니다. 신앙생활 있어서 이 말이라는 것은 양쪽 말 다 들어야하고 듣고 해야하지 내 말만 쏟아내면 나쁜 사람이 됩니다. 큰 죄가 됩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좌우에 방을 두신 겁니다. 그러나 일단 귀에다가 여과귀를 달아놓고 듣기는 들어야합니다. 이게 문지기 방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 신앙 걸음 문지기 방을 좌우로 두신 것은 이런 말입니다. 이 방들이 좌우에 세 개씩 있습니다. 세 개라는 것은 세 개로 지나가라는 게 아닙니다. 정수기 필터를 갈아보셨습니까. 저는 제가 바꿉니다. 필터가 4개가 있습니다. 3개월, 6개월, 9개월, 1년에 한번 바꿉니다. 그렇게 단계적으로 되어있습니다. 단계 단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를 졸업하는데 달라지겠지요. 점점 자라면서 3단계입니다. 점점 점진적으로 발전, 향상, 어제보다 오늘에 나아야한다. 더 깨끗해야한다. 더 알아져가야한다. 전진하는 죄인은 의인이고 후퇴하는 의인은 죄인이라고 했지요. 네가 의인이냐, 의를 믿고 죄를 행하면 죽는다 오늘까지 죽을 죄인인데 회개하면 살아난다. 죄는 죄고 의는 의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성전 동문 문간에 그런 문간입니다. 문지기 방을 좌우로 두시고 맞추는 겁니다. 점진적으로 발전적으로 나아가도록 그렇게 두시는 게 세 개라는 뜻입니다.
믿어갈수록 나아갈수록 나아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재어보니까 그 방들 장이 한 장대라는 건 여섯규빗 한 장대입니다. 6이라는 것은 자기 전부를 가르켜서 최선을 다해서 6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걸어가는 걸음, 6척입니다. 옆으로 광, 한 장대 내가 걷는 나의 신앙 걸음이 내 전부를 다해서 나의 마음과 덕과 노력을 다해서 내게 맡긴 사람을 품고가는 게 그 전부를 안고가는 겁니다. 이걸 조사한다 이 말입니다. 인간의 만 수의 절반이 오척입니다. 육척보다 하나 작은 게 오척이 됩니다. 걸어가고 품고가지만은 사람이기 때문에 모자람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계단계 조사하게 되는 것이다.
첫째 조사하고 둘째 또 조사해서 나로써는 최선을 다했는데 또 조사할 게 있는거지요. 내가 깨달을 게 없지만은 장담하지 못하겠다. 현대까지는 다 고쳤는데 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전지자가 아니니까 완전자가 아니니까. 그러나 사람이기 때문에 더 알고보니까 부족함이 있는거지요. 갈수록 점점 온전해지지만은 계속해서 부족할 수 밖에 없는겁니다.
문지기들은 내가 아니고 다른 객관입니다. 성령께서 내 양심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계속 살펴서 깨달아 알게 하시는 겁니다. 앞으로 가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내 주변 사람들 사물들 보면서 끊임없이 돌아보고 고쳐나가는 우리가 되어야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일곱가지를 생각해봤는데 이번에도 일곱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성령을 살피고 내가 주변을 보면서 살피는 그런 일곱가지로 생각하면 이상하다 싶으면 지적해주시고 언행심사입니다. 앞에 모세 성막도 솔로몬 성전도 에스겔 성전도 주일학교 찬양할 때 우리들을 성전이라 하셨다고 하는데 우리를 말하는 겁니다.
첫 번째 언행심사 두 번째 언행심사로 나오는 관계를 살피는 겁니다. 관계는 하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하나님과 나 관계를 신아관계라고 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인아관계라고 하고 조심하는 겁니다. 세 번째는 생활을 살피는 겁니다. 네 번째는 심신의 언행심사로 살피는 동시 깨끗하냐 성경을 살피는겁니다. 어느정도로 나를 들였느냐 어느정도로 희생했냐 충성했냐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그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했느냐 인내를 살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인격이 되어지는 일곱가지를 살피는 게 문지기가 나를 살피는 것이다.
첫째 내 언행심사를 살핍니다. 둘째 관계를 살핍니다. 그리고 내 모든 생활을 심사합니다. 성결을 심사합니다. 충성을 살피고 인내에 살피고 최종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졌냐가 됩니다. 이렇게 살펴가지고 통과 시킬 건 통과 시키는데 통과 못할 게 있습니다. 군부대 안에 민간인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못가는겁니다. 불신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인데 그에게 인본적이고 세상적인 요소가 있으면 통과 못합니다.
세 번째 회사 사원인데 이상한 물건을 듣고 들어갑니다. 폭탄입니다. 들어가게 하겠습니까. 위험물 해칠 것입니다. 예배당 안에 예배드리러 올 때 천국을 해칠 것 천국에 위험한거 신앙생활에 위험한 거 그게 죄입니다. 절망입니다. 이거는 통과 못합니다. 네 번째 위험한것만 통과를 못하는 것이 아니고 오염시키는 걸 통과 못하는 겁니다. 오염시키는 그게 인간병입니다. 악성 악습입니다. 다섯 번째는 안타깝지만 천국은 어떤 사람만 모이냐 승리자만 가는 게 천국입니다. 패잔병들은 통과하지못합니다. 여섯 번째 이게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완전한 것은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일곱 번째는 가장 중요한데 역적을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 경외가 없는,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 의지하고 순종하고 바라
찬송: 99장, 74장
본문: 에스겔 40장 7절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고 성경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기록해주셨고 알아야하는 내용을 주신겁니다. 알아야하는데 모르면 구원을 이루어가지 못합니다. 알려주지 않으신 것은 알 필요가 없는데 알려주신 것은 알아야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읽고 또 읽고 읽고 또 읽으면, 세상에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도가 좀 늦게 나갑니다. 1절부터 4절까지는 어렵지 않은데 5절부터는 어렵고 갈수록 어려운데 오늘은 7절 중심으로 생각해봅니다. 다 연결이 되어져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말씀은 성전을 그리고 있습니다. 앞에서 공부한대로 물질로 된 성전이 아니라 신앙의 이상을 보여주십니다. 성전의 모습으로 가르쳐주신겁니다. 천국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크기가 굉장히 큽니다. 42장에 보면 담의 길이가 동서남북 각각 500척씩입니다. 500규빗이고 1규빗이 50cm면 몇 m정도 됩니까. 한 규빗이 50cm면 250m 맞습니까. 한 쪽이 동쪽이 250미터 남쪽에 사방이 250미터로 굉장히 큰 그런 건물입니다. 어지간한 그런 요즘은 워낙 대형이 많기 때문에 많은데 웬만한 그런 초등학교 운동장 2개 정도 합칠만큼 굉장히 큰 건물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문이 한 쪽 문이 공부하고 있는데 문도 그만큼 전체 50규빗이니까 25이터 정도 굉장히 크지요. 집회장소 예배당만한 120평 정도 될 만큼 큰 문입니다.
지나는 주간은 성전 공부 계속하다가 한 박자 좀 쉬어가자 해서 믿음을 살펴갔습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도고 믿음의 실제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백 목사님은 세우신 지도자셨는데 그분은 믿고난 다음에 믿기 시작할 때부터 종교성으로 많이 했는데 성경을 그렇게 많이 읽고 파고들었습니다. 몇날 며칠이고 앉아있다고보니까 엉덩이가 터집니다. 그만큼 성경을 연구하고 또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읽어서 깨달은 대로 아는 것은 알게 된 것입니다. 담배도 술도 안되는구나 끊어버리고 술은 3일만에 끊었다고 하지요. 술고래였는데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 쩔어살았는데 3일만에 끊어버리고 담배는 한 달 안 걸려서 끊어버리고 제사는 또 아니구나 해서 끊을 때 온 집안 어른들해서 공부해서 파고 들어가서 이렇게 이런 것이고 그래서 제사는 헛된 것이고 살아생전 효도하는 목적으로 예수믿는 효자가 되니까 논리적으로 어른들을 모셔놓고 유교가 강한 집안이었는데 그 유교는 기본이 제사 아니겠습니까. 또 보니까 주일 지키고 또 성경 지키니까 새벽기도 나오고 산기도하니까 산기도가고. 하나씩 실행해간 겁니다. 아는대로 살아가는 걸 믿음. 이런 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란 아는 대로 살아가는 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마다 다 차이가 있어서 못해도 알고 노력을 해야하고 하는대로 행해 나가야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믿음을 가져도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데 믿음 따로 행함 따로 이러니까 믿음이 아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말씀하셨고 행함 없는 믿음이란 희생이 없는 믿음입니다. 노력희생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과 내 자신을 희생을 하는거지요. 이게 희생이 들어가지 않으면 믿음이 아니다.
두 번째는 충성인데 마음과 몸 다 드려서 충성하지 않으면 믿음이 아니다. 세 번째는 전투신앙인데 싸우는 겁니다. 죄와 더불어 싸우고 불의의 세력과 싸우고 미혹의 모든 세력과 싸우는 게 신앙인데 승리없는 신앙은 믿음이 아니다. 이 생활을 계속하지 않고 다섯 번째는 과거는 후회하고 결심은 잘 하는데 현재 없는 믿음도 믿음은 아니다. 행동이 따락가지 않는 것도 믿음이 아니다. 마지막은 자기 만족하고 믿음없는 행함없는 믿음.
전체적으로 앞에 1절부터 4절까지는 배경입니다. 5절부터 들어가는데 담입니다. 담이 있고 그리고 담이 있으니까 문이 있겠지요. 이 성전에 사방으로 담이 있습니다. 문이 몇 개 있습니까. 동서남북 사방에 큰 문이 몇 개 있습니까. 한양성에 문이 사대문이 몇 개입니까.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북대문인데 여기는 세 개입니다. 세 개인데 서쪽이 문이 없습니다. 서쪽에는 문이 없습니다. 이 문이란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동쪽만 공부하고 있습니다. 동향한 문인데 동향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이고 문을 통해서 문을 통하고 문지기방도 통과하고 뜰을 통과하고 마당을 통과하고 성소 지나서 지성소가 있고 거기 하나님이 계시는 겁니다. 여기 문은 하나님을 향해 가는 문입니다. 지성소로 가는 문이고 동문은 바깥문입니다. 문이 계속 나오는데 문을 들어갈 때 첫째문 들어갈 때 동문 앞에 뭐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지성소향해 들어가는 뭐가 있었습니까. 천계가 7가 있습니다. 하나 둘 올라가서 시작되고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살피는 하나님의 관점 시각 이게 동문이고 문이란 성 전체가 성전이고 문이 나온다고 했는데 예수님을 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문을 실질적으로 현실 생활에 연결시키면 이게 문이고 문통, 문턱 우리가 걸어가는 걸음입니다. 건물이 크다보니까 이 문통 하나가 우리 예배당 세 배가 될 만큰 큰 문입니다. 그래서 문이 단순히 작은 문 그런 가정문으로 생각지말고 큰 문으로 생각하면 될지 모르겠습니다.
6절에 보니까 6절부터 문을 척량했습니다. 그 문간에 문지기의 방들이 있습니다. 문간이라는 말은 문과 문 사이를 말합니다. 이 동문에 바깥 문이 있고 안 문이 있는데 그 사이를 문간이라고 합니다.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습니다. 문간. 이 사이간자니까 문과 문 사이다. 해석한 대로 말하면 문은 주님 대속인데 우리가 말하면 무엇이 문이라고 말했습니까. 현실이 문이다. 현실이란 지금입니다. 문과 문 사이에서 현실과 현실 사이라. 현실을 계속 이어지는건데 장소적으로 현실은 이어지면서 예배당과 집 사이 집과 학교 사이 집과 회사 사이 방과 부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이런 사이사이를 말할 수 있겠지요. 여기와 여기 사이입니다. 집에서 예배당에서 오셨습니다. 그 사이에 걸음걸음이 있었고 생각을 하셨고 대화하셨겠고 있었습니다. 예배당에서 집에 오는 사이, 보는 거 듣는 거 말하는거. 현실이 지나가는 모든 사이라는 것입니다. 문간 사이. 간단하겠지만 포함이 되는 겁니다.
성경에 문지기 방들이 있습니다. 문지기 방들이 있습니다. 문을 지키는 사람을 문지기라고 하지요. 가정에는 문지기가 없지요. 학교에 가면 수위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회사에 가면 경비가 있습니다. 군대가면 보초가 있겠지요. 큰 단체, 큰 건물에는 문지기 경비라든지 있습니다. 문지기는 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사람이지요. 살펴보고 들어와서 안될 사람을 못 들어오게 막고 들어가는데 가지고 들어가면 안되는 건 못 들어가게 막겠고. 이게 문지기입니다. 문지기는 구약의 다윗 문지기는 4000명까지 있었습니다. 매일 몇 백 명씩 있었습니다. 앞에 요한복음 10장에서 문지기는 그를 위해서 문을 연다는 거고 성령으로 해석합니다. 성령이란 하나님의 영을 말합니다. 영감이라 말을 하고 감화감동이라고 말을 합니다. 성령의 역사 성령의 감화 감동.
성령의 역사는 진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양심으로 역사합니다. 내 양심으로 역사합니다. 동시에 내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켜 그런 걸 통해 역사하시는게 문지기 역사입니다. 그러면 다시 연결시켜봅니다. 바깥에 동문에서 담인데 문이 있습니다. 천계의 계단이 막고 있습니다. 문간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문지기가 거하는 방이 있습니다. 문지기가 방들에 거주하면서 낱낱이 다 조사를 한다 그 말입니다. 좌우로 각 3개씩 있습니다. 왼편에 3개 오른편에 3개. 그 말은 문지기가 왼쪽에도 있고 오른쪽에도 있다는 거지요.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걸음걸음 하나님께서 문지기를 보내서 양심을 통해 내 모든 생활 전부를 심사하는 겁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도록 살펴보는 겁니다. 왼쪽으로 글 잘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왼손으로 밥을 먹으면 옛날에 혼을 냅니다. 그래서 왼손을 기능을 못하는 어른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안 쓰는 안타까운이 있는거지요. 오른손만 쓰는 것보다 같이 쓰면 배가 되는 겁니다. 왼손만 쓰는 것보다 오른손까지 같이 쓰는 게 좋습니다.
남편은 아내 말을 들어야합니다. 부부란 균형맞추는겁니다. 남편과 여자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교역자와 교인 나와 다른 사람, 이런 것을 가르켜서 신앙으로 살아갈 때 내가 말을 할 때는 상대방 말을 들어봐야합니다. 내 말만하고 상대방말 듣지 않으면 이번 양성원 때 공부했는데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을 농이라그랬습니까. 귀가 안 들리는 사람들은 말을 못하거든요. 말을 못하는 장애인들은 못 듣기 때문에 말을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못 듣는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요. 들리는데 안 듣는거지요.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는 겁니다. 굉장히 필요하게 만들고 자기 말만 하는 겁니다. 남편이 남의 말을 안 듣고 반대쪽에 아내 말 안 듣고 보통 문제가 아닌 거지요. 장애 수준이 되는 겁니다. 늘 대화라는 말은 양쪽이 주고 받는 걸 대화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라고 성전에 문지기 방을 어떻게 두셨다고요. 양쪽에 두신 겁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판단할 때 판사가 올바른 사람같으면 감옥가면, 죄인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감옥에는 전부 다 억울하다고 합니다. 판시는 양쪽 말 다 들어보고 판단하지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피고가 옳은 거 같으나 균형이고 양쪽입니다. 신앙생활 있어서 이 말이라는 것은 양쪽 말 다 들어야하고 듣고 해야하지 내 말만 쏟아내면 나쁜 사람이 됩니다. 큰 죄가 됩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좌우에 방을 두신 겁니다. 그러나 일단 귀에다가 여과귀를 달아놓고 듣기는 들어야합니다. 이게 문지기 방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 신앙 걸음 문지기 방을 좌우로 두신 것은 이런 말입니다. 이 방들이 좌우에 세 개씩 있습니다. 세 개라는 것은 세 개로 지나가라는 게 아닙니다. 정수기 필터를 갈아보셨습니까. 저는 제가 바꿉니다. 필터가 4개가 있습니다. 3개월, 6개월, 9개월, 1년에 한번 바꿉니다. 그렇게 단계적으로 되어있습니다. 단계 단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를 졸업하는데 달라지겠지요. 점점 자라면서 3단계입니다. 점점 점진적으로 발전, 향상, 어제보다 오늘에 나아야한다. 더 깨끗해야한다. 더 알아져가야한다. 전진하는 죄인은 의인이고 후퇴하는 의인은 죄인이라고 했지요. 네가 의인이냐, 의를 믿고 죄를 행하면 죽는다 오늘까지 죽을 죄인인데 회개하면 살아난다. 죄는 죄고 의는 의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성전 동문 문간에 그런 문간입니다. 문지기 방을 좌우로 두시고 맞추는 겁니다. 점진적으로 발전적으로 나아가도록 그렇게 두시는 게 세 개라는 뜻입니다.
믿어갈수록 나아갈수록 나아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재어보니까 그 방들 장이 한 장대라는 건 여섯규빗 한 장대입니다. 6이라는 것은 자기 전부를 가르켜서 최선을 다해서 6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걸어가는 걸음, 6척입니다. 옆으로 광, 한 장대 내가 걷는 나의 신앙 걸음이 내 전부를 다해서 나의 마음과 덕과 노력을 다해서 내게 맡긴 사람을 품고가는 게 그 전부를 안고가는 겁니다. 이걸 조사한다 이 말입니다. 인간의 만 수의 절반이 오척입니다. 육척보다 하나 작은 게 오척이 됩니다. 걸어가고 품고가지만은 사람이기 때문에 모자람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계단계 조사하게 되는 것이다.
첫째 조사하고 둘째 또 조사해서 나로써는 최선을 다했는데 또 조사할 게 있는거지요. 내가 깨달을 게 없지만은 장담하지 못하겠다. 현대까지는 다 고쳤는데 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전지자가 아니니까 완전자가 아니니까. 그러나 사람이기 때문에 더 알고보니까 부족함이 있는거지요. 갈수록 점점 온전해지지만은 계속해서 부족할 수 밖에 없는겁니다.
문지기들은 내가 아니고 다른 객관입니다. 성령께서 내 양심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계속 살펴서 깨달아 알게 하시는 겁니다. 앞으로 가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내 주변 사람들 사물들 보면서 끊임없이 돌아보고 고쳐나가는 우리가 되어야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일곱가지를 생각해봤는데 이번에도 일곱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성령을 살피고 내가 주변을 보면서 살피는 그런 일곱가지로 생각하면 이상하다 싶으면 지적해주시고 언행심사입니다. 앞에 모세 성막도 솔로몬 성전도 에스겔 성전도 주일학교 찬양할 때 우리들을 성전이라 하셨다고 하는데 우리를 말하는 겁니다.
첫 번째 언행심사 두 번째 언행심사로 나오는 관계를 살피는 겁니다. 관계는 하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하나님과 나 관계를 신아관계라고 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인아관계라고 하고 조심하는 겁니다. 세 번째는 생활을 살피는 겁니다. 네 번째는 심신의 언행심사로 살피는 동시 깨끗하냐 성경을 살피는겁니다. 어느정도로 나를 들였느냐 어느정도로 희생했냐 충성했냐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그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했느냐 인내를 살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인격이 되어지는 일곱가지를 살피는 게 문지기가 나를 살피는 것이다.
첫째 내 언행심사를 살핍니다. 둘째 관계를 살핍니다. 그리고 내 모든 생활을 심사합니다. 성결을 심사합니다. 충성을 살피고 인내에 살피고 최종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졌냐가 됩니다. 이렇게 살펴가지고 통과 시킬 건 통과 시키는데 통과 못할 게 있습니다. 군부대 안에 민간인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못가는겁니다. 불신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인데 그에게 인본적이고 세상적인 요소가 있으면 통과 못합니다.
세 번째 회사 사원인데 이상한 물건을 듣고 들어갑니다. 폭탄입니다. 들어가게 하겠습니까. 위험물 해칠 것입니다. 예배당 안에 예배드리러 올 때 천국을 해칠 것 천국에 위험한거 신앙생활에 위험한 거 그게 죄입니다. 절망입니다. 이거는 통과 못합니다. 네 번째 위험한것만 통과를 못하는 것이 아니고 오염시키는 걸 통과 못하는 겁니다. 오염시키는 그게 인간병입니다. 악성 악습입니다. 다섯 번째는 안타깝지만 천국은 어떤 사람만 모이냐 승리자만 가는 게 천국입니다. 패잔병들은 통과하지못합니다. 여섯 번째 이게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완전한 것은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일곱 번째는 가장 중요한데 역적을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 경외가 없는,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 의지하고 순종하고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