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6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4-05-26조회 159추천 26
2024년 5월 26일 주일 오전
찬송: 79장, 114장
본문: 에스겔 40장 6절 ~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집회마치고 1절부터 4절까지 공부했고 지난 주에 5절을 공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힌지 세월이 25년 그렇게 말합니까. 100년의 반의 반, 25년 세월이 참 깁니다.
세상 이치적으로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돌아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 사람이 60이 넘어가면 살긴 사는데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모습이 되어집니다. 다윗이 은혜를 갚으려고 함께 돌아가자 하니까 어릴 때 도와줬던 노인이 말하자면 노종인데 내 나이가 80입니다. 음식의 좋고 나쁨을 알겠으며 그러겠습니까 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들 대신 보내서 고향 땅에서 죽겠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60이 넘어가면 인생은 60부터라, 별별 말을 다 해도 세월을 속일 수는 없는 겁니다. 믿음으로 잘 살았는가. 자유하는 사람으로 살았는가. 종으로 살았는가. 주인으로 살았는가.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은 배경에 하나님이 계시고 대속이 있어서 나만 바로 하고 노력을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내가 주님 보이지 않으니 뒤로하고 십자가 생활 힘드니까 실력있는 사람들 좋고 취미가 좋고 이런 게 좋으니 거기 붙들려서 종이 되어져버렸습니다. 지식의 종된 사람들도 처음에는 공부 하다하다 보니까 공부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음식도 그렇습니다. 자꾸 좋아서 먹다보면은 종이 됩니다. 습성의 종이 되는 사람 취미의 종이 되는 사람. 별별 것의 종이 되어서 그런데 나는 오늘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일반적으로 믿음을 잠시 두고 남자가 가장 좋으려면 가정의 종이 되면 됩니다. 남자가 아내의 종이 되면 됩니다. 잘난 남자는 온 세상에서 다 이겨도 아내에게 지는 남자가 좋은 남자입니다.
기도로 만들고 지혜로 만들고 그게 참된 믿음의 세계인데 이 세상에 바깥에 종이 되어버리면 30년 40년 50년 60년이 넘어가버렸습니다. 돌아갈 세월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 젊으면 남아있으니까 노력하면 되겠는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중에서 절망 속에 있는데 한 사람 에스겔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고 아버지가 하나님을 노엽게 해서 자손들이니까 그 죄를 짊어지고 절망 중이지만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소망을 주신 겁니다.
하늘과 가깝고 하나님과 가까운 그런 산, 높은 깨달음입니다. 성경을 바로 깨닫고 보면 성경에 이 세상이 다 들어있어서 보여집니다. 남으로 향하여 성읍형상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말하기를 보고 듣고 생각을 하고 민족에게 너희를 다 고해라고 합니다. 집이 있고 담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때 설명하던데 집은 우리 집입니다. 다른 사람은 들어오면 안되는 겁니다. 우리 집에 담이 있고 울타리도 담이 있습니다. 경계라 그런 뜻이지요. 우리집이니까 담을 넘어오면 도둑놈이 되는 겁니다.
담이라는 것은 이렇게 구분하는 겁니다.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구분하는 것.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와 교회가 아닌 곳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성도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주인인데 때에 따라서 내가 가고 싶은데 거기 가면 죄가될건데 하고 막으시는데 가버리면 성전 교회가 아닌 것이지요. 하나님의 주님께서 그 영역 그 부분 하나님의 집 성전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공회고 더 넓히면 기독교고 넓어지는 게 기독교가 아니고 그 속에 알맹이가 기독교입니다. 공회보다 더 넓어지는 게 기독교라 그러면 들어가면 말이 맞지 않고 기독교가 알맹이다. 교회가 교회 다울 때 되는 겁니다.
안 믿는 세상에서도 희소성의 가치라는 게 있습니다. 붙들고 있으면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에 포니 그거 요즘 차 비교 안되는데 희귀하니까 전부 엄청 줘야하는 겁니다. 희소성의 가치라 그런 겁니다. 200년 300년 전에 쓰던 동전, 요즘 비쌀걸요. 값이 엄청 많이 올라갈겁니다. 온 세상에 다 세상이고 그 세상 따라서 기어들어가버립니다. 그래서 예배라는 것은 우리처럼 예배 드리는 게 본 모습입니다. 일반 교단 예배 모습은 변질이 되어버렸습니다. 참 예배 다운 예배를 우리 공회를 찾습니다. 세상으로 말하면 희소성 가치인데 이게 본 모습이고 진짜인데. 세상으로 하나 되어버리니까 마구 해버린 거지요.
먼저 잠깐 앞에 설명 드리면 제일 처음에 솔로몬 성전입니다. 솔로몬 전에 성전 이름을 성막이라고 했죠. 모세 성막입니다. 그 중심이 뭐냐 주된게 뭐냐면 재료가 중심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실 조각목 이런 게 주였습니다. 그럴 때는 재료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청색실 홍색실 가늘게 꼰 베실 이런 개 중요했고 솔로몬 성전은 재료는 차고 넘쳤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구조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복잡했습니다. 세수통 세수대, 솔로몬 성전은 구조가 중심이었고 모세 때는 재료가, 에스겔 성전은 뭐가 중심이었겠습니까. 측량이 중심입니다. 자가 자꾸 나옵니다. 왜 이게 중심이 되느냐 모세 성막은 출발이니까, 솔로몬은 자리 잡았으니까, 에스겔 성전은 회개 결산입니다. 말하자면 심판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겁니다.
인도에서 도마가 왕에게 성전 만들어준다고 많은 돈을 받았는데 그게 요한계시록 21장에 있는 성이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보여지는데 이게 전부 이 땅에 보면 금처러 은처럼 보석처럼 사람의 인격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도마가 재물로 전도하고 사람 가르쳐 믿는 사람 만들어 놓으니까 돈 받아서 선교를 했구나 해서 죽일려고 했는데 꿈에서 보여주시니까 왕이 도마 불러서 하나 더 만들어주라고 하니까 시간 다 지나가버렸다고 했지요.
마지막 결산적인 회개적인 심판적인 주기 때문에 측량을 많이하는 것이고 주님 대속을 도성인신하시고 사활의 대속공로 하신 주님이 마지막에 심판하시겠다고 하고 미리 이 세상에 각자 자기 스스로를 측량해라. 이게 에스겔 성전입니다. 같은 고향 사람을 동향이라고 하지요. 동쪽 동 자의 방향 향자입니다. 서울에 동문교회가 있습니다. 동대문 근처겠다 그럴 겁니다. 동문교회는 저는 한 번 가봤던가 동대문 근처겠다 동문 교회입니다. 사방을 가르켜서 동서남북이 사방이지요. 동쪽 서쪽 남쪽 북쪽이지요. 동쪽에서는 해가 뜨는 곳입니다.
서쪽은 해가 지는 곳입니다. 해가 지면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서쪽은 어두운 곳을 의미합니다. 남쪽은 따뜻하고 좋은 곳이고 북쪽은 추운 곳입니다. 우리나라도 좁은 땅덩어리지만 이북에 올라가면 춥다고 하지요. 서쪽은 어떤 곳이라고요 어두운 곳, 해가 뜨는 곳. 동향은 하나님을 향해 들어가는 그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찾아 들어가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겁니다. 문이 뭡니까. 앞에 내가 보니 집 바깥으로 사면이 있더라 담이 있으면 뭐가 있어야합니까. 문이 있어야합니다. 문이 없는 담은 감옥입니다. 감옥도 문이 있습니다. 담은 반드시 문이 있습니다.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 문입니다. 그가 나를 동향을 문에 이르러 문이 뭔지 생각해보셔야합니다. 문은 들어가는 곳이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양의 무리의 문이다.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다. 주님의 문입니다. 구원의 터다 구원의 기초다. 대속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없는 겁니다. 20절인가 보면 볼찌어다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고 합니다. 그때 무엇을 하는가. 요한계시록 3장,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찬송가 11장. 주예수 대문 밖에. 그 문이 바로 마음의 문입니다. 주님이 영에 계시면서 마음을 두드립니다.
요한복음 10장에는 내가 문이다. 요한계시록 3장에는 문을 두드린다. 여기서는 뭘 말할까 하나님을 향해 들어가는 곳인데 문. 문이 뭡니까. 문이란 들어가는 거다 아는 겁니다. 방에 들어가는 겁니다. 다 아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열고 들어간다. 그런 거지요. 사람이 열고 들어가는 게 무엇일까. 새로운 세계로 열고 들어가는 게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는 거 같으나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는 언제까지는 해왔습니다. 그런데 미래는 우리에게 알지 못하는 게 미래입니다. 새로운 세계.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는 문입니다. 시점으로 말하면 현재가 되는 겁니다. 현재 현장 현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향을 문에 이르러 들어가는 현실. 그가 동향 문에 이르러 천계에 올라갔습니다. 이 천계가 20절부터 하는데 22절에 보면 일곱천계입니다. 대개 구조가 동문과 비슷합니다. 이 천계는 올라가는 곳입니다. 동향 문에 이르러서 바로 하지 않고 올라갔습니다. 그게 몇 개라고요. 일곱 개입니다.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올라가는 겁니다.
이 사람이, 주님이 우리 대속하신 것을 주님이 앞으로 우리를 다 측량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 관점이 뭐냐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게 일곱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관점에서 도성인신하신 그 주님이 죄로 인해서 죽은 우리를 당신히 피흘려 값주고 사셨으니까 주의 것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측량심판을 주님이 직접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점이란 어떤 관점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졸 수 있도록 하신 게 말씀입니다. 그걸 다른 말씀으로 생각하면 구원의 유익 여부를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전부다가 심판하실 때 마지막 결론은 자타 구원에 대해서 뭘하냐 천계에 올라가는 겁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서 만들어나가고 맞춰나가고 발전히켜 나가는 게 노력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습니다. 표현이 죄송합니다. 자기 뭐는 냄새가 안 나지요. 팔은 안으로 굽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식은 누구나 다 예쁜게 정상이지요. 그래서 결코 정상이 아니지요. 그런데 자꾸 설명을 드리는 게 애완동물을 기르는 게 나쁜 게 아닌겁니다. 그런데 도가 넘어가니까 그런 겁니다. 앞으로 애완동물 대신에 다른 게 나올겁니다. 인공지능 입혀서 사람처럼 대화할겁니다. 사람처럼 만들어서 대화하면 한국이 로봇을 잘 만든다고 하는데 사람이 필요가 없습니다. 영의 세계를 깨닫지 못하고 함께하는 사람을 깨닫지 못하면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 건드리지 못합니다. 이렇게 될 것을 백 목사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은 인간의 영역으로 얼마든지 발달할 것이다. 영의 세계는 못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가 동향을 눈에 이르러 천계에 올라갔습니다. 관점을 인식은 내가 나를 보는 것 남이 나를 보는 것과 내가 나를 보는 것. 나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나를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진실한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부부가 가장 잘하는 겁니다. 자식은 부모님 자식을 잘 모릅니다. 사람 깊이는 몰라도. 그래서 다 초월해서 내가 나를 보는가 내가 내 아내를 보는가. 내 관점으로 감정적인 관점으로 그런 관점으로 보지말고 하나님의 관심으로 신앙 양심으로 자타 구원의 유익의 관점으로 나를 보고 다른 사람을 보고 모든 걸 보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보니까 손에 장대를 듯고 문통을 찬양합니다. 문통이 뭘까 문을 말씀드렸습니다. 현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곳입니다. 사람의 활동으로 행위로 움직임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마음의 생각과 별의 별 생각과 욕심과 기쁨과 슬픔과 배움과 사랑과 예배시간에 설교 길다 어렵다 마음입니다. 좀 들을만하다도 마음입니다. 온갖 오만 것 다 봅니다. 접촉을 하고 이런 것을 활동 작용이라고 합니다. 먹고 마시고 쉬고 전부 심신의 활동 작용인데 이 전부는 다 현실에서 하는 겁니다. 이게 문통이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현실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 이 손에 측량하는 장대를 잡고 뭘 잰다고요 하나님의 시각으로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문통을 찾는 겁니다. 그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언행심사를 측량한다는 겁니다. 동향 문이니까 믿는 사람들의 모든 주일을 지켰느냐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의 모든 신앙생활은 중심과 준비와 자세와 주님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러시겠다. 기도도 측량합니다. 경제 생활도 측량합니다. 가정생활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든 언행심사 전부를 재 보겠다 따져보겠다.
6절까지만 생각해봤는데 7절도 오후에 생각해보겠습니다. 전부 다가 우리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모세 성막은 뭐가 중심이라고요 재료가, 솔로몬 성막은 구조가 중심입니다. 미리 재면서 하면 실패가 적을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허무하게 될 수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79장, 114장
본문: 에스겔 40장 6절 ~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집회마치고 1절부터 4절까지 공부했고 지난 주에 5절을 공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힌지 세월이 25년 그렇게 말합니까. 100년의 반의 반, 25년 세월이 참 깁니다.
세상 이치적으로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돌아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 사람이 60이 넘어가면 살긴 사는데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모습이 되어집니다. 다윗이 은혜를 갚으려고 함께 돌아가자 하니까 어릴 때 도와줬던 노인이 말하자면 노종인데 내 나이가 80입니다. 음식의 좋고 나쁨을 알겠으며 그러겠습니까 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들 대신 보내서 고향 땅에서 죽겠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60이 넘어가면 인생은 60부터라, 별별 말을 다 해도 세월을 속일 수는 없는 겁니다. 믿음으로 잘 살았는가. 자유하는 사람으로 살았는가. 종으로 살았는가. 주인으로 살았는가.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은 배경에 하나님이 계시고 대속이 있어서 나만 바로 하고 노력을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내가 주님 보이지 않으니 뒤로하고 십자가 생활 힘드니까 실력있는 사람들 좋고 취미가 좋고 이런 게 좋으니 거기 붙들려서 종이 되어져버렸습니다. 지식의 종된 사람들도 처음에는 공부 하다하다 보니까 공부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음식도 그렇습니다. 자꾸 좋아서 먹다보면은 종이 됩니다. 습성의 종이 되는 사람 취미의 종이 되는 사람. 별별 것의 종이 되어서 그런데 나는 오늘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일반적으로 믿음을 잠시 두고 남자가 가장 좋으려면 가정의 종이 되면 됩니다. 남자가 아내의 종이 되면 됩니다. 잘난 남자는 온 세상에서 다 이겨도 아내에게 지는 남자가 좋은 남자입니다.
기도로 만들고 지혜로 만들고 그게 참된 믿음의 세계인데 이 세상에 바깥에 종이 되어버리면 30년 40년 50년 60년이 넘어가버렸습니다. 돌아갈 세월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 젊으면 남아있으니까 노력하면 되겠는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중에서 절망 속에 있는데 한 사람 에스겔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고 아버지가 하나님을 노엽게 해서 자손들이니까 그 죄를 짊어지고 절망 중이지만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소망을 주신 겁니다.
하늘과 가깝고 하나님과 가까운 그런 산, 높은 깨달음입니다. 성경을 바로 깨닫고 보면 성경에 이 세상이 다 들어있어서 보여집니다. 남으로 향하여 성읍형상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말하기를 보고 듣고 생각을 하고 민족에게 너희를 다 고해라고 합니다. 집이 있고 담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때 설명하던데 집은 우리 집입니다. 다른 사람은 들어오면 안되는 겁니다. 우리 집에 담이 있고 울타리도 담이 있습니다. 경계라 그런 뜻이지요. 우리집이니까 담을 넘어오면 도둑놈이 되는 겁니다.
담이라는 것은 이렇게 구분하는 겁니다.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구분하는 것.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와 교회가 아닌 곳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성도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주인인데 때에 따라서 내가 가고 싶은데 거기 가면 죄가될건데 하고 막으시는데 가버리면 성전 교회가 아닌 것이지요. 하나님의 주님께서 그 영역 그 부분 하나님의 집 성전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공회고 더 넓히면 기독교고 넓어지는 게 기독교가 아니고 그 속에 알맹이가 기독교입니다. 공회보다 더 넓어지는 게 기독교라 그러면 들어가면 말이 맞지 않고 기독교가 알맹이다. 교회가 교회 다울 때 되는 겁니다.
안 믿는 세상에서도 희소성의 가치라는 게 있습니다. 붙들고 있으면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에 포니 그거 요즘 차 비교 안되는데 희귀하니까 전부 엄청 줘야하는 겁니다. 희소성의 가치라 그런 겁니다. 200년 300년 전에 쓰던 동전, 요즘 비쌀걸요. 값이 엄청 많이 올라갈겁니다. 온 세상에 다 세상이고 그 세상 따라서 기어들어가버립니다. 그래서 예배라는 것은 우리처럼 예배 드리는 게 본 모습입니다. 일반 교단 예배 모습은 변질이 되어버렸습니다. 참 예배 다운 예배를 우리 공회를 찾습니다. 세상으로 말하면 희소성 가치인데 이게 본 모습이고 진짜인데. 세상으로 하나 되어버리니까 마구 해버린 거지요.
먼저 잠깐 앞에 설명 드리면 제일 처음에 솔로몬 성전입니다. 솔로몬 전에 성전 이름을 성막이라고 했죠. 모세 성막입니다. 그 중심이 뭐냐 주된게 뭐냐면 재료가 중심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실 조각목 이런 게 주였습니다. 그럴 때는 재료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청색실 홍색실 가늘게 꼰 베실 이런 개 중요했고 솔로몬 성전은 재료는 차고 넘쳤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구조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복잡했습니다. 세수통 세수대, 솔로몬 성전은 구조가 중심이었고 모세 때는 재료가, 에스겔 성전은 뭐가 중심이었겠습니까. 측량이 중심입니다. 자가 자꾸 나옵니다. 왜 이게 중심이 되느냐 모세 성막은 출발이니까, 솔로몬은 자리 잡았으니까, 에스겔 성전은 회개 결산입니다. 말하자면 심판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겁니다.
인도에서 도마가 왕에게 성전 만들어준다고 많은 돈을 받았는데 그게 요한계시록 21장에 있는 성이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보여지는데 이게 전부 이 땅에 보면 금처러 은처럼 보석처럼 사람의 인격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도마가 재물로 전도하고 사람 가르쳐 믿는 사람 만들어 놓으니까 돈 받아서 선교를 했구나 해서 죽일려고 했는데 꿈에서 보여주시니까 왕이 도마 불러서 하나 더 만들어주라고 하니까 시간 다 지나가버렸다고 했지요.
마지막 결산적인 회개적인 심판적인 주기 때문에 측량을 많이하는 것이고 주님 대속을 도성인신하시고 사활의 대속공로 하신 주님이 마지막에 심판하시겠다고 하고 미리 이 세상에 각자 자기 스스로를 측량해라. 이게 에스겔 성전입니다. 같은 고향 사람을 동향이라고 하지요. 동쪽 동 자의 방향 향자입니다. 서울에 동문교회가 있습니다. 동대문 근처겠다 그럴 겁니다. 동문교회는 저는 한 번 가봤던가 동대문 근처겠다 동문 교회입니다. 사방을 가르켜서 동서남북이 사방이지요. 동쪽 서쪽 남쪽 북쪽이지요. 동쪽에서는 해가 뜨는 곳입니다.
서쪽은 해가 지는 곳입니다. 해가 지면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서쪽은 어두운 곳을 의미합니다. 남쪽은 따뜻하고 좋은 곳이고 북쪽은 추운 곳입니다. 우리나라도 좁은 땅덩어리지만 이북에 올라가면 춥다고 하지요. 서쪽은 어떤 곳이라고요 어두운 곳, 해가 뜨는 곳. 동향은 하나님을 향해 들어가는 그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찾아 들어가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겁니다. 문이 뭡니까. 앞에 내가 보니 집 바깥으로 사면이 있더라 담이 있으면 뭐가 있어야합니까. 문이 있어야합니다. 문이 없는 담은 감옥입니다. 감옥도 문이 있습니다. 담은 반드시 문이 있습니다.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 문입니다. 그가 나를 동향을 문에 이르러 문이 뭔지 생각해보셔야합니다. 문은 들어가는 곳이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양의 무리의 문이다.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다. 주님의 문입니다. 구원의 터다 구원의 기초다. 대속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없는 겁니다. 20절인가 보면 볼찌어다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고 합니다. 그때 무엇을 하는가. 요한계시록 3장,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찬송가 11장. 주예수 대문 밖에. 그 문이 바로 마음의 문입니다. 주님이 영에 계시면서 마음을 두드립니다.
요한복음 10장에는 내가 문이다. 요한계시록 3장에는 문을 두드린다. 여기서는 뭘 말할까 하나님을 향해 들어가는 곳인데 문. 문이 뭡니까. 문이란 들어가는 거다 아는 겁니다. 방에 들어가는 겁니다. 다 아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열고 들어간다. 그런 거지요. 사람이 열고 들어가는 게 무엇일까. 새로운 세계로 열고 들어가는 게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는 거 같으나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는 언제까지는 해왔습니다. 그런데 미래는 우리에게 알지 못하는 게 미래입니다. 새로운 세계.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는 문입니다. 시점으로 말하면 현재가 되는 겁니다. 현재 현장 현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향을 문에 이르러 들어가는 현실. 그가 동향 문에 이르러 천계에 올라갔습니다. 이 천계가 20절부터 하는데 22절에 보면 일곱천계입니다. 대개 구조가 동문과 비슷합니다. 이 천계는 올라가는 곳입니다. 동향 문에 이르러서 바로 하지 않고 올라갔습니다. 그게 몇 개라고요. 일곱 개입니다.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올라가는 겁니다.
이 사람이, 주님이 우리 대속하신 것을 주님이 앞으로 우리를 다 측량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 관점이 뭐냐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게 일곱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관점에서 도성인신하신 그 주님이 죄로 인해서 죽은 우리를 당신히 피흘려 값주고 사셨으니까 주의 것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측량심판을 주님이 직접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점이란 어떤 관점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졸 수 있도록 하신 게 말씀입니다. 그걸 다른 말씀으로 생각하면 구원의 유익 여부를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전부다가 심판하실 때 마지막 결론은 자타 구원에 대해서 뭘하냐 천계에 올라가는 겁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서 만들어나가고 맞춰나가고 발전히켜 나가는 게 노력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습니다. 표현이 죄송합니다. 자기 뭐는 냄새가 안 나지요. 팔은 안으로 굽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식은 누구나 다 예쁜게 정상이지요. 그래서 결코 정상이 아니지요. 그런데 자꾸 설명을 드리는 게 애완동물을 기르는 게 나쁜 게 아닌겁니다. 그런데 도가 넘어가니까 그런 겁니다. 앞으로 애완동물 대신에 다른 게 나올겁니다. 인공지능 입혀서 사람처럼 대화할겁니다. 사람처럼 만들어서 대화하면 한국이 로봇을 잘 만든다고 하는데 사람이 필요가 없습니다. 영의 세계를 깨닫지 못하고 함께하는 사람을 깨닫지 못하면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 건드리지 못합니다. 이렇게 될 것을 백 목사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은 인간의 영역으로 얼마든지 발달할 것이다. 영의 세계는 못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가 동향을 눈에 이르러 천계에 올라갔습니다. 관점을 인식은 내가 나를 보는 것 남이 나를 보는 것과 내가 나를 보는 것. 나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나를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진실한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부부가 가장 잘하는 겁니다. 자식은 부모님 자식을 잘 모릅니다. 사람 깊이는 몰라도. 그래서 다 초월해서 내가 나를 보는가 내가 내 아내를 보는가. 내 관점으로 감정적인 관점으로 그런 관점으로 보지말고 하나님의 관심으로 신앙 양심으로 자타 구원의 유익의 관점으로 나를 보고 다른 사람을 보고 모든 걸 보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보니까 손에 장대를 듯고 문통을 찬양합니다. 문통이 뭘까 문을 말씀드렸습니다. 현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곳입니다. 사람의 활동으로 행위로 움직임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마음의 생각과 별의 별 생각과 욕심과 기쁨과 슬픔과 배움과 사랑과 예배시간에 설교 길다 어렵다 마음입니다. 좀 들을만하다도 마음입니다. 온갖 오만 것 다 봅니다. 접촉을 하고 이런 것을 활동 작용이라고 합니다. 먹고 마시고 쉬고 전부 심신의 활동 작용인데 이 전부는 다 현실에서 하는 겁니다. 이게 문통이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현실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 이 손에 측량하는 장대를 잡고 뭘 잰다고요 하나님의 시각으로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문통을 찾는 겁니다. 그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언행심사를 측량한다는 겁니다. 동향 문이니까 믿는 사람들의 모든 주일을 지켰느냐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의 모든 신앙생활은 중심과 준비와 자세와 주님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러시겠다. 기도도 측량합니다. 경제 생활도 측량합니다. 가정생활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든 언행심사 전부를 재 보겠다 따져보겠다.
6절까지만 생각해봤는데 7절도 오후에 생각해보겠습니다. 전부 다가 우리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모세 성막은 뭐가 중심이라고요 재료가, 솔로몬 성막은 구조가 중심입니다. 미리 재면서 하면 실패가 적을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허무하게 될 수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