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2일 수밤
김동민2024-05-22조회 138추천 22
2024월 5월 22일 수밤
찬송: 126장, 127장
본문: 에스겔 40장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내가 본 즉 에스겔이 봤습니다.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신령한 성전인데 우리 신앙세계를 보여주신 것인데 이때는 에스겔은 형상을 본겁니다. 봤지만은 실물로 물질로 만들어져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되어질 신앙의 이상의 모습을 에스겔을 통해서 말하자면 환상처럼 그림처럼 말한 것입니다. 있는 것을 보여주신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셔서 보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이 본 적은 실존하는 성읍이나 성전이 아닙니다. 보여주셔서 보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되어질 것을 알려주신 것이라 볼 수 있고 신령한 세계 하나님에게 속한 신령한 세계이기 때문에 사람이 볼 수 없는 건데 사람이 보여주셔서 그렇게 된 겁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려면 관계가 밀접해야하고 막힌 게 없이 밝아야하고 깨끗해야겠습니다. 내게 와서 볼려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게 없어야합니다. 맑고 밝고 깨끗한 관계가 되어져야하는 겁니다.
모든 하나님의 종들은 그렇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간 야곱이 계시를 받습니다.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봤습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꿈이었지만 실제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람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백목사님도 보셨고 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늘의 내용이라 그렇게 볼 수 있겠죠. 이 세상에 없는 것을 기록하는 게 성경입니다. 다는 아닌데 이 세상에 없는 거, 이 세상에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존재와 역사, 그런 소망을 과정을 기록한 게 성경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열어 보여주지 않으시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셔서 보게 된 것입니다. 이걸 공부하면서 에스겔은 봤구나 이렇게 지나가면 복음이 안 되는 겁니다. 에스겔은 봤으니까 우리도 봐야하는거지요. 우리 눈이 어두우니까 에스겔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보여주신 걸 성경에 기록해주셨고 한글로 번역해서 우리에게 주셨으니까 우리가 읽으면 우리가 봐야하는데 읽어도 안 보이고 집회 때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니까 안 보이게 되는 거지요. 성전이 말씀을 들어서 보이시던가요.
설문조사에 들으니까 알겠더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들어도 도무지 모르겠어서. 5절부터 16절까지 계속 쓰면서 하고 있는데 뭐가 뭔지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고 하나 둘 열린 게 있지만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 들었는데 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에스겔과 다르게 어렵다고 하지요. 강사 목사님도 100번 읽으니까 설명할 정도가 되더라. 에스겔은 100번 안 읽었는데 그만한 노력이 없었는데 특별하게 보여주셨는가.
발람은 원래 선지자입니다. 발락에게 갔던 선지자는 발람입니다. 이 선지자 말은 그대로 된다. 그리고 그대가 한 말은 그대로 된다고 들었다. 그대가 저주하면 저주받고 축복하면 축복한다고 했으니까 저주해라. 발람은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부귀영화에 눈이 어두워서 꼬임받고 그 다음에 내리막길을 걸어서 이름이 원래 선지자였는데 술사가 됐습니다. 점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부귀나 탐하고 그랬다가 그만 점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밝던 선지자도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게 아닙니다. 그만큼 회개하고 짊어지고 회개하고 회복을 소망하라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보여주시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이 봤으니까 저도 봐야겠습니다. 위에 2절에서 하나님 이상 중에 극히 높은 산에 내려놓으셨을 때 남으로 향하여 본 것은 성읍형상 같은 것을 봤습니다. 우리가 설교에 그런 말씀이 나오지요. 같다는 말은 같은 것이라는 것은 진짜란 말이냐 아니란 말입니까. 성읍형상 같은어니까 성읍 형상을 닮은 것이다. 진짜는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5절에는 보니까 다 측량했는데 실존하는 건 아닙니다. 내가 본 즉 위에 2절에서는 성읍 형상 봤습니다. 예루살렘 성이고 여기는 성읍에 있는 집을 봤습니다. 이 집이 누구 집이라 그랬습니까. 이 집이 누구의 집입니까. 하나님의 집. 그러면 하나님의 집은 무엇이 하나님의 집이냐 오늘로 땡기면 하나님의 집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집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게 인격체로 최소단위고 우리의 모든 내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이고 내 몸의 모든 활동이 성전이 되는 겁니다. 내 몸의 움직임이 되어야하는 것이고 나라는 하나님이 성전이 되고 이걸 좀 넓히면 가정 교회가 되는 거지요. 가정이 하나님의 집이다. 가정이란 부부로부터 출발합니다. 결혼 안한 사람은 성경적으로 가정이 없는 거지요. 가정 교회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사회 교회가 됩니다. 사회 교회를 지칭하지요. 이 교회가 더 넓어져서 많아져서 조직이 되면 일반적으로 교단이라고 그러고 교파라 그러고 우리는 공회라고합니다. 이게 바로 교회입니다. 전체적으로 우리 공회가 성전이고 각 가정의 성전이고 위에 올라가서 이름을 뭐라고 붙였습니까. 이름이 뭐였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가장 큰 집 이름이 기독교 예수교 이게 성전입니다.
기독교가 성전이냐 기독교가 성전입니다. 그분이 성전입니다. 구약시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습니다. 구별된 하나님의 집입니다. 제일 처음에 성전은 성막이 있었고 자리잡은 솔로몬 성전이 있었고 솔로몬 성전이든 성전이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은 소유격입니다. 그 집의 주인은 하나님의 주인입니다. 내가 성전이면 나의 주인은 뭐가 되는 겁니까. 하나님이 내 주인이 되는데 하나님의 것이니까 내 몸 마음 이목구비수족 움직임 전부 귀로 듣는 거 입으로 먹는 거 눈으로 보는 거 활동하는 거. 이 전부다는 하나님의 집이니까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합니다. 가라면 하고 서라면 서고 하지 말라면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인이니까 내 마음대로 쓰셔야하는데 내 주인이 되셔서 내 심신을 마음대로 쓰시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고 내가 성전인데 하나님이 나를 쓰시는데 먹지마하시는데 먹고 싶으서 먹으면 성전이 아닌 겁니다. 가고 싶어서 가면 성전이 아닌 거지요. 오늘 하루 돌아볼 때 삶 생활은 어떤건지 내 마음대로 사는 게 어떤건지 돌아봐야합니다. 이 성전을 더럽히면 그 사람을 멸해버린다 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성전을 더럽히면 멸해버리겠다.
솔로몬 성전은 아주 웅장하게 잘 지었습니다. 위대한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이스라엘 백성이 만들어놓고 솔로몬 노년부터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집을 우상의 집으로 만들고 그래서 없애버리신거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인이 되지 못하면 성전은 아닌 겁니다. 나를 멸해버려서 내 심신의 기능 영원토록 다 절단이 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실제로 보여야 조심을 하지요. 안 보이니까 조심 못하는 거지요. 신앙이라는 것은 달려갈수록 힘있게 달려가고 계속되는 게 신앙입니다. 주저앉을수록 더 쳐지는 게 신앙입니다.
한 달란트 가졌으니까 다섯 달란트 가진 자를 열 달란트 뺏어서 나눠주라고 하는데 이 세상의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는 불쌍하지 않냐. 그런데 하나님은 한 달란트 사람에게 뺏어서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줘버려라. 그래서 기독교는 자본주의라고 하는 겁니다. 무조건 자본주의는 아니지만. 사람 인체가 그렇지요. 사람인체가 눈을 안 쓰면 퇴화가 됩니다. 머리 안쓰면 녹이습니다. 자꾸 읽어라 외워라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게 사람의 머리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고 더 써먹으면 넓어지고 좋아지게 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구약에 솔로몬 성전을 하나님께서 다 멸해버렸듯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다 멸해버립니다. 믿는 가정이 가정 성전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버려버립니다. 세상이 됩니다. 그러면 엉망이 되는 거지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예배가 있어야하고 말씀이 있어야합니다. 말씀 순종하는 생활이 있어야합니다. 한 말로 말하면 대속입니다. 주님 대속이고 주님 대속을 풀어놓으면 예배가 있고 말씀이 있고 생활이 있고 이런 것들이 있을 때 성전이라고 그럽니다.
이런 게 없으면 성전이 아닌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많은데 기독교가 판을치고 있는데 참된 교회가 없다는 말은 속화된 것입니다. 바깥입니다. 집 바깥이란 요한계시록에 보면 측량을 하는데 성전 방마당은 버려둬라. 경비하는 자들을 하되 성전 방마당은 버려둬라. 그래서 큰 울타리가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마당이 있습니다. 마당이 굉장히 넓습니다. 그 마당에 들어가면 제단이 있고 그런거지요.
아파트 사시는 분들은 젊은 사람은 담을 모르겠지요. 그런데 이 동네 올라간 사람들은 전부 담을 두루고 있지요. 안에 마당도 있고 그렇지요. 담을 왜 쌓느냐 에스겔 42장에 보면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구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담입니다. 세상과 성전을 구분짓는 게 담입니다. 바깥에 쳐놨습니다. 적군이 올 때 막는 것은 되도록 멀리있을 때 막는 게 좋습니다. 미국은 세계전체를 보면서 도와주고 있고 유럽연합에서 우크라이나를 엄청 도와주지요. 러시아의 전쟁이 자기까지 못오게 막는 겁니다. 남의 집 마당에서 싸우고 우리집에서 싸우지마라. 우크라이나 뚫리면 어디로 들어갈지 모릅니다. 그러면 뚫리게 되는 거지요. 밖에서 막는 것처럼 바깥이라 그랬습니다. 밖에서부터 막는 것은 멀리서 막는 게 좋습니다. 병균도 그렇고 적군도 그렇고 뭐든지 그렇습니다. 최대한 멀리 있을 때 막는 게 좋은 것입니다.
성전 밖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바깥 담은 밖에 있습니다. 집 바깥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이고 악령이 되신 곳이고 구약은 형식이고 육체형식이기 때문에 담으로 해놨지만 신약의 담은 사면 아니고 8면 16면이 아니라 원으로 막고 그러면 높이 3미터하면 못 넘어오고 오늘도 같은 원리지만 강조해서 사람이 못 넘어오는건데 오늘날 당장 에스겔을 통해서 보이는 유형의 성전과 담을 보여주시고 무형의 담을 가르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보이는 걸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하는 겁니다. 아마도 지금 세상을 물리로 막을려면 어릴 때부터 모든 거 다 꺼내서 시청각 끊고 인터넷 끊고 독서 끊고 그렇게 길러나가면 좀 세상이 막힐겁니다. 그래도 자라고 나면 살아야하는데 막을 수가 없는거지요. 우리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겁니다. 초등학교 5~6학년이 되어도 스마트폰 안들고 다니면 대단한 겁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 교회된 우리 자신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면 무엇을 말합니까. 나라는 사람의 인격이 하나님의 성전이지요. 나의 인격, 여기에 세상이 못 들어오게 막아야하는데 여기 있는 세상이 이 세상 지식, 그 세상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종으로 써 먹으면 잘 쓰는데 종이 되어버리면 세상이 나에게 들어와버린겁니다. 지식이 만든 관이 있습니다. 가정관 자녀관 남자관 여자관 아들관 딸관 그 관이라는 게 지식으로 있는 것이지요. 지식들이 들어와서 관이 생겨버리고 흐름이 있습니다. 유행이라는 거 문화라는 거 이런 지식이나 그 지식에서 생겨지는 가치관이라는 거 유행이라는 거 문화라는 것은 어떻게 생겨먹었습니까. 지식은 어떻게 생겼고 가치는 어떻게 생겼고 유행은 색이 무슨 색이며 이 시대의 흐름 조류라는 것은 형상이 어떠합니까. 이놈들은 형체가 없는 것이고 고차원의 것이고.
에스겔 성전에 기록된 담이 무엇인지 설명드렸습니다. 이게 담이 맞습니까. 세상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맞습니까. 교회 안에 들어온 거 신천지는 교회 안에 들어오면 안되느냐 신천지는 들어오면 안됩니까. 중은 오면 안됩니까. 들어와서 목탁을 두드리면 안되는거지요. 예배당 앞에서 염불 외우고 목탁 두드리는 거 안된다. 신천지가 와서 예배당 듣는 거 괜찮습니다. 신천지 교리를 전하려고 하면 그게 안되는거고. 그 정신 그 욕심 그 욕망 인간의 인본주의. 이 시대를 움직이는 모든 유행들 그런 걸 따라가 버리니까 우리 공회 교회는 백목사님 생전에 주일예배 밤예배 새벽기도 반사생활 직장생활 충실하고 이거하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하자면 찬송가라고 부르는 게 그저께도 나가서도 보는 게 드럼을 치고 괴성을 지르면서 그런 것들이 세상 유행가라고 하는 거지요. 성부 성자 성령에 아리랑 타령을 하면 세상이 교회로 들어온겁니다.
세상 중심, 조류들 흐름들 유행들 문화들 안에 들어오면 막아야한다는 거지요. 내 인격이 내가 이거 막는 건 말씀을 순종해야합니다. 기도하고 그리고 나로써는 인내하고 절제하고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고 아는대로 실행하는 그런 노력들 이런 것이 있을 때 세상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게 담이고 세상인 것을 구분하는 겁니다.
장대로 측량하니까 뒤에 보면 그 사람이 합니다.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가 주님이 다 측량합니다. 살핀다 따진다 그 말이고 육척이라는 말은 살핀다 그 말입니다.
5절 말씀을 기억을 하고 공과에 다 들어가 있는 거니까 내가 본 즉 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그런 집입니다. 밖에서 막아야합니다. 담이 있더라. 담이 있고 그 세상으로 들어오진 못하게 막았더라. 나 하나 튼튼하면 교회가 튼튼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26장, 127장
본문: 에스겔 40장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내가 본 즉 에스겔이 봤습니다.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신령한 성전인데 우리 신앙세계를 보여주신 것인데 이때는 에스겔은 형상을 본겁니다. 봤지만은 실물로 물질로 만들어져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되어질 신앙의 이상의 모습을 에스겔을 통해서 말하자면 환상처럼 그림처럼 말한 것입니다. 있는 것을 보여주신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셔서 보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이 본 적은 실존하는 성읍이나 성전이 아닙니다. 보여주셔서 보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되어질 것을 알려주신 것이라 볼 수 있고 신령한 세계 하나님에게 속한 신령한 세계이기 때문에 사람이 볼 수 없는 건데 사람이 보여주셔서 그렇게 된 겁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려면 관계가 밀접해야하고 막힌 게 없이 밝아야하고 깨끗해야겠습니다. 내게 와서 볼려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게 없어야합니다. 맑고 밝고 깨끗한 관계가 되어져야하는 겁니다.
모든 하나님의 종들은 그렇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간 야곱이 계시를 받습니다.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봤습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꿈이었지만 실제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람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백목사님도 보셨고 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늘의 내용이라 그렇게 볼 수 있겠죠. 이 세상에 없는 것을 기록하는 게 성경입니다. 다는 아닌데 이 세상에 없는 거, 이 세상에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존재와 역사, 그런 소망을 과정을 기록한 게 성경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열어 보여주지 않으시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셔서 보게 된 것입니다. 이걸 공부하면서 에스겔은 봤구나 이렇게 지나가면 복음이 안 되는 겁니다. 에스겔은 봤으니까 우리도 봐야하는거지요. 우리 눈이 어두우니까 에스겔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보여주신 걸 성경에 기록해주셨고 한글로 번역해서 우리에게 주셨으니까 우리가 읽으면 우리가 봐야하는데 읽어도 안 보이고 집회 때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니까 안 보이게 되는 거지요. 성전이 말씀을 들어서 보이시던가요.
설문조사에 들으니까 알겠더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들어도 도무지 모르겠어서. 5절부터 16절까지 계속 쓰면서 하고 있는데 뭐가 뭔지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고 하나 둘 열린 게 있지만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 들었는데 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에스겔과 다르게 어렵다고 하지요. 강사 목사님도 100번 읽으니까 설명할 정도가 되더라. 에스겔은 100번 안 읽었는데 그만한 노력이 없었는데 특별하게 보여주셨는가.
발람은 원래 선지자입니다. 발락에게 갔던 선지자는 발람입니다. 이 선지자 말은 그대로 된다. 그리고 그대가 한 말은 그대로 된다고 들었다. 그대가 저주하면 저주받고 축복하면 축복한다고 했으니까 저주해라. 발람은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부귀영화에 눈이 어두워서 꼬임받고 그 다음에 내리막길을 걸어서 이름이 원래 선지자였는데 술사가 됐습니다. 점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부귀나 탐하고 그랬다가 그만 점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밝던 선지자도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게 아닙니다. 그만큼 회개하고 짊어지고 회개하고 회복을 소망하라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보여주시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이 봤으니까 저도 봐야겠습니다. 위에 2절에서 하나님 이상 중에 극히 높은 산에 내려놓으셨을 때 남으로 향하여 본 것은 성읍형상 같은 것을 봤습니다. 우리가 설교에 그런 말씀이 나오지요. 같다는 말은 같은 것이라는 것은 진짜란 말이냐 아니란 말입니까. 성읍형상 같은어니까 성읍 형상을 닮은 것이다. 진짜는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5절에는 보니까 다 측량했는데 실존하는 건 아닙니다. 내가 본 즉 위에 2절에서는 성읍 형상 봤습니다. 예루살렘 성이고 여기는 성읍에 있는 집을 봤습니다. 이 집이 누구 집이라 그랬습니까. 이 집이 누구의 집입니까. 하나님의 집. 그러면 하나님의 집은 무엇이 하나님의 집이냐 오늘로 땡기면 하나님의 집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집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게 인격체로 최소단위고 우리의 모든 내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이고 내 몸의 모든 활동이 성전이 되는 겁니다. 내 몸의 움직임이 되어야하는 것이고 나라는 하나님이 성전이 되고 이걸 좀 넓히면 가정 교회가 되는 거지요. 가정이 하나님의 집이다. 가정이란 부부로부터 출발합니다. 결혼 안한 사람은 성경적으로 가정이 없는 거지요. 가정 교회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사회 교회가 됩니다. 사회 교회를 지칭하지요. 이 교회가 더 넓어져서 많아져서 조직이 되면 일반적으로 교단이라고 그러고 교파라 그러고 우리는 공회라고합니다. 이게 바로 교회입니다. 전체적으로 우리 공회가 성전이고 각 가정의 성전이고 위에 올라가서 이름을 뭐라고 붙였습니까. 이름이 뭐였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가장 큰 집 이름이 기독교 예수교 이게 성전입니다.
기독교가 성전이냐 기독교가 성전입니다. 그분이 성전입니다. 구약시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습니다. 구별된 하나님의 집입니다. 제일 처음에 성전은 성막이 있었고 자리잡은 솔로몬 성전이 있었고 솔로몬 성전이든 성전이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은 소유격입니다. 그 집의 주인은 하나님의 주인입니다. 내가 성전이면 나의 주인은 뭐가 되는 겁니까. 하나님이 내 주인이 되는데 하나님의 것이니까 내 몸 마음 이목구비수족 움직임 전부 귀로 듣는 거 입으로 먹는 거 눈으로 보는 거 활동하는 거. 이 전부다는 하나님의 집이니까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합니다. 가라면 하고 서라면 서고 하지 말라면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인이니까 내 마음대로 쓰셔야하는데 내 주인이 되셔서 내 심신을 마음대로 쓰시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고 내가 성전인데 하나님이 나를 쓰시는데 먹지마하시는데 먹고 싶으서 먹으면 성전이 아닌 겁니다. 가고 싶어서 가면 성전이 아닌 거지요. 오늘 하루 돌아볼 때 삶 생활은 어떤건지 내 마음대로 사는 게 어떤건지 돌아봐야합니다. 이 성전을 더럽히면 그 사람을 멸해버린다 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성전을 더럽히면 멸해버리겠다.
솔로몬 성전은 아주 웅장하게 잘 지었습니다. 위대한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이스라엘 백성이 만들어놓고 솔로몬 노년부터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집을 우상의 집으로 만들고 그래서 없애버리신거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인이 되지 못하면 성전은 아닌 겁니다. 나를 멸해버려서 내 심신의 기능 영원토록 다 절단이 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실제로 보여야 조심을 하지요. 안 보이니까 조심 못하는 거지요. 신앙이라는 것은 달려갈수록 힘있게 달려가고 계속되는 게 신앙입니다. 주저앉을수록 더 쳐지는 게 신앙입니다.
한 달란트 가졌으니까 다섯 달란트 가진 자를 열 달란트 뺏어서 나눠주라고 하는데 이 세상의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는 불쌍하지 않냐. 그런데 하나님은 한 달란트 사람에게 뺏어서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줘버려라. 그래서 기독교는 자본주의라고 하는 겁니다. 무조건 자본주의는 아니지만. 사람 인체가 그렇지요. 사람인체가 눈을 안 쓰면 퇴화가 됩니다. 머리 안쓰면 녹이습니다. 자꾸 읽어라 외워라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게 사람의 머리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고 더 써먹으면 넓어지고 좋아지게 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구약에 솔로몬 성전을 하나님께서 다 멸해버렸듯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다 멸해버립니다. 믿는 가정이 가정 성전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버려버립니다. 세상이 됩니다. 그러면 엉망이 되는 거지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예배가 있어야하고 말씀이 있어야합니다. 말씀 순종하는 생활이 있어야합니다. 한 말로 말하면 대속입니다. 주님 대속이고 주님 대속을 풀어놓으면 예배가 있고 말씀이 있고 생활이 있고 이런 것들이 있을 때 성전이라고 그럽니다.
이런 게 없으면 성전이 아닌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많은데 기독교가 판을치고 있는데 참된 교회가 없다는 말은 속화된 것입니다. 바깥입니다. 집 바깥이란 요한계시록에 보면 측량을 하는데 성전 방마당은 버려둬라. 경비하는 자들을 하되 성전 방마당은 버려둬라. 그래서 큰 울타리가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마당이 있습니다. 마당이 굉장히 넓습니다. 그 마당에 들어가면 제단이 있고 그런거지요.
아파트 사시는 분들은 젊은 사람은 담을 모르겠지요. 그런데 이 동네 올라간 사람들은 전부 담을 두루고 있지요. 안에 마당도 있고 그렇지요. 담을 왜 쌓느냐 에스겔 42장에 보면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구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담입니다. 세상과 성전을 구분짓는 게 담입니다. 바깥에 쳐놨습니다. 적군이 올 때 막는 것은 되도록 멀리있을 때 막는 게 좋습니다. 미국은 세계전체를 보면서 도와주고 있고 유럽연합에서 우크라이나를 엄청 도와주지요. 러시아의 전쟁이 자기까지 못오게 막는 겁니다. 남의 집 마당에서 싸우고 우리집에서 싸우지마라. 우크라이나 뚫리면 어디로 들어갈지 모릅니다. 그러면 뚫리게 되는 거지요. 밖에서 막는 것처럼 바깥이라 그랬습니다. 밖에서부터 막는 것은 멀리서 막는 게 좋습니다. 병균도 그렇고 적군도 그렇고 뭐든지 그렇습니다. 최대한 멀리 있을 때 막는 게 좋은 것입니다.
성전 밖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바깥 담은 밖에 있습니다. 집 바깥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이고 악령이 되신 곳이고 구약은 형식이고 육체형식이기 때문에 담으로 해놨지만 신약의 담은 사면 아니고 8면 16면이 아니라 원으로 막고 그러면 높이 3미터하면 못 넘어오고 오늘도 같은 원리지만 강조해서 사람이 못 넘어오는건데 오늘날 당장 에스겔을 통해서 보이는 유형의 성전과 담을 보여주시고 무형의 담을 가르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보이는 걸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하는 겁니다. 아마도 지금 세상을 물리로 막을려면 어릴 때부터 모든 거 다 꺼내서 시청각 끊고 인터넷 끊고 독서 끊고 그렇게 길러나가면 좀 세상이 막힐겁니다. 그래도 자라고 나면 살아야하는데 막을 수가 없는거지요. 우리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겁니다. 초등학교 5~6학년이 되어도 스마트폰 안들고 다니면 대단한 겁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 교회된 우리 자신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면 무엇을 말합니까. 나라는 사람의 인격이 하나님의 성전이지요. 나의 인격, 여기에 세상이 못 들어오게 막아야하는데 여기 있는 세상이 이 세상 지식, 그 세상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종으로 써 먹으면 잘 쓰는데 종이 되어버리면 세상이 나에게 들어와버린겁니다. 지식이 만든 관이 있습니다. 가정관 자녀관 남자관 여자관 아들관 딸관 그 관이라는 게 지식으로 있는 것이지요. 지식들이 들어와서 관이 생겨버리고 흐름이 있습니다. 유행이라는 거 문화라는 거 이런 지식이나 그 지식에서 생겨지는 가치관이라는 거 유행이라는 거 문화라는 것은 어떻게 생겨먹었습니까. 지식은 어떻게 생겼고 가치는 어떻게 생겼고 유행은 색이 무슨 색이며 이 시대의 흐름 조류라는 것은 형상이 어떠합니까. 이놈들은 형체가 없는 것이고 고차원의 것이고.
에스겔 성전에 기록된 담이 무엇인지 설명드렸습니다. 이게 담이 맞습니까. 세상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맞습니까. 교회 안에 들어온 거 신천지는 교회 안에 들어오면 안되느냐 신천지는 들어오면 안됩니까. 중은 오면 안됩니까. 들어와서 목탁을 두드리면 안되는거지요. 예배당 앞에서 염불 외우고 목탁 두드리는 거 안된다. 신천지가 와서 예배당 듣는 거 괜찮습니다. 신천지 교리를 전하려고 하면 그게 안되는거고. 그 정신 그 욕심 그 욕망 인간의 인본주의. 이 시대를 움직이는 모든 유행들 그런 걸 따라가 버리니까 우리 공회 교회는 백목사님 생전에 주일예배 밤예배 새벽기도 반사생활 직장생활 충실하고 이거하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하자면 찬송가라고 부르는 게 그저께도 나가서도 보는 게 드럼을 치고 괴성을 지르면서 그런 것들이 세상 유행가라고 하는 거지요. 성부 성자 성령에 아리랑 타령을 하면 세상이 교회로 들어온겁니다.
세상 중심, 조류들 흐름들 유행들 문화들 안에 들어오면 막아야한다는 거지요. 내 인격이 내가 이거 막는 건 말씀을 순종해야합니다. 기도하고 그리고 나로써는 인내하고 절제하고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고 아는대로 실행하는 그런 노력들 이런 것이 있을 때 세상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게 담이고 세상인 것을 구분하는 겁니다.
장대로 측량하니까 뒤에 보면 그 사람이 합니다.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가 주님이 다 측량합니다. 살핀다 따진다 그 말이고 육척이라는 말은 살핀다 그 말입니다.
5절 말씀을 기억을 하고 공과에 다 들어가 있는 거니까 내가 본 즉 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그런 집입니다. 밖에서 막아야합니다. 담이 있더라. 담이 있고 그 세상으로 들어오진 못하게 막았더라. 나 하나 튼튼하면 교회가 튼튼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