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5-12조회 166추천 25
2024년 5월 12일 주일 오후
찬송: 78장, 79장
본문: 에스겔 40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성전을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모세 성막 솔로몬 성전 에스겔 성전으로 이어집니다. 시대 따라서 세월의 흐름이 따라서 신앙 성장에 따라서 맞게 주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실과 조각목이고 하나님을 모시고 광야를 통과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모세의 의미가 되겠습니다.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 여정입니다. 성막도 이동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로 말하면 세상에서 천국을 향해가는 우리들이 주님 모시고 주와 동행하면서 천국을 향해 걸어가라고 합니다.
솔로몬 성전은 터를 잡고 금과 은과 동과 철 등으로 웅장하게 크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주님을 모시고 살아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둘은 내용도 다르고 재료도 다르고 의미도 차이가 있지만은 에스겔 성전은 이상 세계를 그려주신겁니다. 신앙의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문을 통과해서 마지막 들어가는 곳은 성전이니까 중심은 어디입니까. 지성소고 법궤가 있고 그 그룹에는 하나님이 계신 거니까 성전의 중심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수도 없이 재어서 성전이 되는 겁니다. 그게 우리 신앙 생활이고 구원인데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려주신 것이라 그렇게 해놨습니다. 사람이 만들려고 만들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고 성경대로 정확하게 그리기가 어렵지 않을까. 물질로 만들라고 하신 게 아니고 만들라고 한 게 아닙니다.
모세 성막, 솔로몬 성막은 만들었는데 에스겔 성전은 보여주신 겁니다. 성전이 있고 전체가 성이 되는데 성전이 있는 성이 무슨 성인가요. 성전이 있는 성. 예루살렘입니다. 성전으로 끝나지 않고 성이 되는데 그 성이 마지막에 이름이 48장 끝에 한 번 보실까요. 여호와 산나라고 나옵니다. 이게 21장 하늘에서 내려온 것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그래서 예루셀렘에 그럴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한 신앙의 최고 목표치 신앙 이걸 가르쳐주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5년은 사로잡혔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사로잡힌지 25년입니다. 솔로몬 성전이 황폐화 되고 요시아의 아들 때 포로로 잡혀가기 시작하고 바벨론 와서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온 목적은 없애버리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미국이 일본이 세계 강대국들이 약소국들 점령하면 없애버리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고대에 로마 카르타고 전쟁처럼 서로 이 나라 살려뒀다가 우리나라 없애버립니다 이런 건 없어집니다. 그런 건 드물고 세계 열강들이 속국을 만드는 겁니다. 내 말 잘 들어, 그리고 토산물을 빼먹는거죠. 일본이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만들고 없애버리지 않았습니다. 총독을 세워서 빼먹었죠. 똑똑한 사람 머리 좋은 사람 다 잡아가버립니다. 몇 차례 걸쳐서 잡혀갑니다. 언제부터인지는 70년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25년이라는 것은 100으로 기준하면 반의 반이고 만수로 계산하면 두 번 하고도 반이 지나가는 때입니다.
포로로 잡혀가는 생활이 결코 좋을 수가 없고 다시 돌아가야하고 마음을 가져야하고 돌아가도 노력을 해야하고 해야하는데 세월 속에 1년 가고 2년 가고 해서 10년이 꽉차버렸습니다. 10년 또 다시 10년이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갔으니 도무지 돌아갈 여지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간 사람들의 인식이 그런 것이고 이스라엘이 들어갔을 때 요셉 혼자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에 13년만입니까 70명이 들어갔습니다. 430년이 지나고 나올 때는 몇 백만명 디어서 나왔습니다. 일부러 들여보내신 겁니다. 구원도리 가르치고 번식시키기 위해서 애굽이라는 나라는 부정적이지만 환경 장소로 사용하셨기 때문에 애굽이라는 나라는 부정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애굽을 박대하지 말아라. 이게 성경입니다.
430년 살았지만 애굽 나라의 주인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가라앉음에 따라서 점점 종이 되어갔는데 그러다보니까 이스라엘도 오래 살다보니까 애굽화 되었습니다. 요셉도 그랬고 그러지만 이곳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돌아갈 본향이 있습니다. 요즘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고향이 없지요. 돌아갈 고향이 없지요. 어른들은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다. 짐승들도 죽을 때 되면 자기 고향 쪽으로 틀고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세 많은 분들 시골에서 오신 분들 자기 본향을 그리워하는 옛날 노래도 많고 타향살이 하니까 늘 가지고 있는 겁니다. 애굽에서 요셉이 살면서 고국 그러면 이해가 가는데 도시 살면서 살다보니까 고향이 뭔데, 고향이 뭔가요. 고향이 뭔지 잊어버린 거 같습니다. 고향이라는 단어가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고향으로 돌아가야된다. 이게 늘 있었는데 430년 지나다보니까 전부 태어난 곳이 애굽인데 나서 자라서 결혼해서 몇 대를 살아서 여기가 우리 나라인데 이러지 않겠습니다. 일제에서 1910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고국이 일본입니다. 욕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많은데 나서 보니까 대한민국 그런 나라 없습니다. 일본이지. 일본이 자기 나라입니다. 한국 살지만 일본은 속국인데. 애굽은 430년이니 더했겠지요. 애굽의 말 쓰고 애굽 교육 받고 애굽 사람이 되니까 이들을 뽑아내야겠는데 그러려니까 여기가 내 나라인데 여기서 교육받았는데
이스라엘은 이민족과 결혼은 금지되어 있고 그래서 보면 중단 잡족처럼 나왔습니다. 혼혈 이런게 굉장히 많았겠죠. 그게 가나안으로 가야하는 사람들이 없는겁니다. 모세를 보내서 애굽 나라에 열 번이나 재앙을 때린겁니다. 우리 공회 출발이 고신에서 지낸다는 건데 백목사님 스스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쫓겨나왔지. 그런데 고신 입장에서는 백 목사님을 쫓아내지 않고서는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백목사님 외침이 옳으니 그렇게 하면 되는데 안되는 다른 목사님들이 자기보다 선배들인데 후배가 옳은 말 하니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쫓아내신 것이지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기로 한 것이 언제부터입니까. 마태 마가 누가에 나오는데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했습니다. 식민지였고 한쪽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고 들어보니까 종자가 다른 겁니다. 적어도 뒀다가는 로마사람들이 잡아먹겠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말하길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지 않냐고 합니다. 그때부터 유대인들이 예수님 죽일 작정을 합니다. 내면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그렇게 되어서 빼내기 위해서 열 가지 재앙으로 하셨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출애굽 할 때는 좋아서 나온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몇 사람은 좋아서 나왔고 억지로 나왔습니다. 열 가지 재앙 내려서 왕부터 가축까지 다 죽여놨는데 유대인 남겨두면 그대로 두겠습니까. 그들이 뭐했습니까. 대군을 쫓아왔습니다. 그러다가 홍해에 잠겨버렸죠. 억지로 끝났기
찬송: 78장, 79장
본문: 에스겔 40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성전을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모세 성막 솔로몬 성전 에스겔 성전으로 이어집니다. 시대 따라서 세월의 흐름이 따라서 신앙 성장에 따라서 맞게 주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실과 조각목이고 하나님을 모시고 광야를 통과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모세의 의미가 되겠습니다.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 여정입니다. 성막도 이동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로 말하면 세상에서 천국을 향해가는 우리들이 주님 모시고 주와 동행하면서 천국을 향해 걸어가라고 합니다.
솔로몬 성전은 터를 잡고 금과 은과 동과 철 등으로 웅장하게 크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주님을 모시고 살아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둘은 내용도 다르고 재료도 다르고 의미도 차이가 있지만은 에스겔 성전은 이상 세계를 그려주신겁니다. 신앙의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문을 통과해서 마지막 들어가는 곳은 성전이니까 중심은 어디입니까. 지성소고 법궤가 있고 그 그룹에는 하나님이 계신 거니까 성전의 중심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수도 없이 재어서 성전이 되는 겁니다. 그게 우리 신앙 생활이고 구원인데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려주신 것이라 그렇게 해놨습니다. 사람이 만들려고 만들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고 성경대로 정확하게 그리기가 어렵지 않을까. 물질로 만들라고 하신 게 아니고 만들라고 한 게 아닙니다.
모세 성막, 솔로몬 성막은 만들었는데 에스겔 성전은 보여주신 겁니다. 성전이 있고 전체가 성이 되는데 성전이 있는 성이 무슨 성인가요. 성전이 있는 성. 예루살렘입니다. 성전으로 끝나지 않고 성이 되는데 그 성이 마지막에 이름이 48장 끝에 한 번 보실까요. 여호와 산나라고 나옵니다. 이게 21장 하늘에서 내려온 것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그래서 예루셀렘에 그럴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한 신앙의 최고 목표치 신앙 이걸 가르쳐주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5년은 사로잡혔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사로잡힌지 25년입니다. 솔로몬 성전이 황폐화 되고 요시아의 아들 때 포로로 잡혀가기 시작하고 바벨론 와서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온 목적은 없애버리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미국이 일본이 세계 강대국들이 약소국들 점령하면 없애버리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고대에 로마 카르타고 전쟁처럼 서로 이 나라 살려뒀다가 우리나라 없애버립니다 이런 건 없어집니다. 그런 건 드물고 세계 열강들이 속국을 만드는 겁니다. 내 말 잘 들어, 그리고 토산물을 빼먹는거죠. 일본이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만들고 없애버리지 않았습니다. 총독을 세워서 빼먹었죠. 똑똑한 사람 머리 좋은 사람 다 잡아가버립니다. 몇 차례 걸쳐서 잡혀갑니다. 언제부터인지는 70년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25년이라는 것은 100으로 기준하면 반의 반이고 만수로 계산하면 두 번 하고도 반이 지나가는 때입니다.
포로로 잡혀가는 생활이 결코 좋을 수가 없고 다시 돌아가야하고 마음을 가져야하고 돌아가도 노력을 해야하고 해야하는데 세월 속에 1년 가고 2년 가고 해서 10년이 꽉차버렸습니다. 10년 또 다시 10년이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갔으니 도무지 돌아갈 여지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간 사람들의 인식이 그런 것이고 이스라엘이 들어갔을 때 요셉 혼자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에 13년만입니까 70명이 들어갔습니다. 430년이 지나고 나올 때는 몇 백만명 디어서 나왔습니다. 일부러 들여보내신 겁니다. 구원도리 가르치고 번식시키기 위해서 애굽이라는 나라는 부정적이지만 환경 장소로 사용하셨기 때문에 애굽이라는 나라는 부정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애굽을 박대하지 말아라. 이게 성경입니다.
430년 살았지만 애굽 나라의 주인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가라앉음에 따라서 점점 종이 되어갔는데 그러다보니까 이스라엘도 오래 살다보니까 애굽화 되었습니다. 요셉도 그랬고 그러지만 이곳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돌아갈 본향이 있습니다. 요즘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고향이 없지요. 돌아갈 고향이 없지요. 어른들은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다. 짐승들도 죽을 때 되면 자기 고향 쪽으로 틀고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세 많은 분들 시골에서 오신 분들 자기 본향을 그리워하는 옛날 노래도 많고 타향살이 하니까 늘 가지고 있는 겁니다. 애굽에서 요셉이 살면서 고국 그러면 이해가 가는데 도시 살면서 살다보니까 고향이 뭔데, 고향이 뭔가요. 고향이 뭔지 잊어버린 거 같습니다. 고향이라는 단어가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고향으로 돌아가야된다. 이게 늘 있었는데 430년 지나다보니까 전부 태어난 곳이 애굽인데 나서 자라서 결혼해서 몇 대를 살아서 여기가 우리 나라인데 이러지 않겠습니다. 일제에서 1910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고국이 일본입니다. 욕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많은데 나서 보니까 대한민국 그런 나라 없습니다. 일본이지. 일본이 자기 나라입니다. 한국 살지만 일본은 속국인데. 애굽은 430년이니 더했겠지요. 애굽의 말 쓰고 애굽 교육 받고 애굽 사람이 되니까 이들을 뽑아내야겠는데 그러려니까 여기가 내 나라인데 여기서 교육받았는데
이스라엘은 이민족과 결혼은 금지되어 있고 그래서 보면 중단 잡족처럼 나왔습니다. 혼혈 이런게 굉장히 많았겠죠. 그게 가나안으로 가야하는 사람들이 없는겁니다. 모세를 보내서 애굽 나라에 열 번이나 재앙을 때린겁니다. 우리 공회 출발이 고신에서 지낸다는 건데 백목사님 스스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쫓겨나왔지. 그런데 고신 입장에서는 백 목사님을 쫓아내지 않고서는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백목사님 외침이 옳으니 그렇게 하면 되는데 안되는 다른 목사님들이 자기보다 선배들인데 후배가 옳은 말 하니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쫓아내신 것이지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기로 한 것이 언제부터입니까. 마태 마가 누가에 나오는데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했습니다. 식민지였고 한쪽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고 들어보니까 종자가 다른 겁니다. 적어도 뒀다가는 로마사람들이 잡아먹겠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말하길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지 않냐고 합니다. 그때부터 유대인들이 예수님 죽일 작정을 합니다. 내면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그렇게 되어서 빼내기 위해서 열 가지 재앙으로 하셨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출애굽 할 때는 좋아서 나온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몇 사람은 좋아서 나왔고 억지로 나왔습니다. 열 가지 재앙 내려서 왕부터 가축까지 다 죽여놨는데 유대인 남겨두면 그대로 두겠습니까. 그들이 뭐했습니까. 대군을 쫓아왔습니다. 그러다가 홍해에 잠겨버렸죠. 억지로 끝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