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밤
김동민2024-05-10조회 171추천 21
2024년 5월 10일 금밤
찬송: 192장, 196장
본문: 누가복음 10장 41절
신앙 다음으로 중요한 게 건강이다. 안전하고 집결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은 집회를 앞두고 지난주일에 공부한 말씀이고 공과공부를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자고 형체가 없는 분입니다. 형체가 없는 무형의 하나님 완전자께서 육을 상대하시려니까 사람 차원이 맞춰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상대는 전부 말씀으로 상대하시는 겁니다. 말씀으로 상대하십니다. 하나님을 알리시는 것도 뜻을 가르쳐주신 것도 간섭도 이것도 마지막에 심판도 말씀으로 다 하시는 분이 사람을 상대하는 하나님의 상대 방법입니다.
말씀으로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은 겁니다. 말씀으로 하는 겁니다. 기도로 시작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되기 쉽습니다.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되기 쉬워서 바로 믿으려고 굴에 가고 그런 분들 많이 있는데 지금은 덜합니다. 세계적으로 무신론이 대세입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무신론이 무슨 뜻인가요. 신은 없다. 그 핵심은 하나님은 없다는 뜻입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유럽 쪽에 전부 이름 뿐이고 무신론이 세계적인 시대인데 그래서 무신론이 되다 보니까 기도니 이런 건 없어집니다. 예전에 산에 가면 기도 찬송소리 많이 들렸는데 기도보다 찬송보다 반드시 말씀으로 출발하는 게 건전하고 좋은 겁니다.
말씀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면으로 말씀을 이루시게 하는 건데 성경 읽기로 시작한다 그 말입니다. 백 목사님도 애를 쓰시다가 기독교를 접한 다음에 기도보다 찬송보다 성경을 엄청나게 읽었습니다. 얼마나 읽었던지 엉덩이가 터져서 피가 날만큼 앉아서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읽었습니다. 새벽기도라든지 배워서 한 게 아니고 성경에 나오니까 실행을 나가면서 한 겁니다. 신앙생활은 반드시 말씀으로 다시 말하면 성경이니까 연경공부로 암송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건전해집니다. 과정은요. 과정은 전부 말씀이 길이고 말씀이 답이고 그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말씀 떠난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교회는 찬송이 많아지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고 설교 30 40분한다고 해도 세상 이야기 하고 이게 전부 거리가 먼겁니다. 사람의 귀를 즐겁게하지 못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찾아서 거기에 집중하는 게 에배고 그게 말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과정이 다 나가게 되어있는 겁니다. 말씀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말씀으로 다 하는 겁니다. 마지막에 결산도 말씀으로 결산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심판하지 않고 너를 심판하는 것은 말씀이 너를 심판한다. 기준도 말씀으로 심판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으로 역사하신다. 천국이 들었고 뜻이 들었고 하나님과 천국을 배우고 닮아가고 그런 것은 다 그렇고 인생과 지혜가 다 들어있습니다. 통해서 역사하시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인간의 보편적인 것으로 기록한 것이 성경 기록이다. 평소에 많이 배웠습니다.
성경은 가장 쉬운 언어로 되어있습니다. 어려운 단어가 있는데 이건 옛날 단어라서 어려울 뿐이지 흔하게 쓰던 말들입니다. 이 성경을 요즘 말로 바꾸면 나중에 한도 없이 타락해지기 쉽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한 번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단어들을 성경에 안 나오겠는데 지게 아는 학생 손 들어봅니다. 바지게는 모르거든요. 젊은 분들 중에서 아시는 분. 40세 밑으로 아시는 거죠. 짐을 많이 심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 단어가 바뀌니까 100년 전에는 컴퓨터 휴대폰 AI 몰랐습니다. 성경도 다시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어두워지기 때문에 지금 시대는 이 성경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에 고집하고 쓰고 있는 겁니다. 성경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일반적인 언어로 기록해주신 게 성경이다. 성경을 믿는 사람에게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이 길이고 진리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성경을 천국가는 안내도라고 합니다. 또 진리입니다. 절대 불변성을 말합니다. 필연성 절대성 불변성입니다.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연결될 수 없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말씀을 떠나서 신앙생활은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대속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대속의 길을 걸어가셨고 인생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신 겁니다. 길 갈 때 우리 전부다 인생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길이라 그 말은 가는 과정이란 말입니다. 목적지 향해 가는 과정입니다. 길은 과정이기 때문에 마련할 수도 있고 도착해버리면 끝나버립니다. 마태복음 보면 얼른 화목하고 제물드리라고 하면서 길에 있을 때 깊이 사모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회가 있을 때 말합니다. 전부 다 기회입니다. 뭐든지 마련할 수 있고 연습할 수 있고 고칠 수도 있고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되 사람 사는 마을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입니다. 이 세상 주인공은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뭐든지 있는 겁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 계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입니다. 사람되신 하나님이 찾아간 것도 사람입니다.
애완동물은 구원이 없습니다. 사람만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셨다 그 말이고 주님의 대속이든 택자를 말합니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영접했습니다. 길을 가셨고 길 가시다가 사람 사는 마음에 들어가니까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르다가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이 이어집니다. 길을 가시다가 사람 사는 마을에 들어갔고 그 마을이 마르다가 사는 마을이었고 이런 것이 우연이 어쩌다보니까 이런 것이 아니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되어지도록 예정하신 일이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주님이 이 길을 가시도록 예정되어있었고 주님이 가는 그 시점에 마르다가 주님을 영접하도록 했고 마르다가 주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는데 마르다는 선생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복잡합니다. 분주합니다. 바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을 모셔다놓고 언니 마르다는 접대한다고 식사준비 국준비 수저준비 정신없이 바빠 죽겠는데 마리아는 뭘 하고 있다고요. 예수님 발 밑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볼 때 밉상스럽게 보였을 겁니다. 집 주인이니까 존경하는 선생님을 모셔다가 왔는데 식사 대접을 하러 왔는데 자기는 바쁜데 동생이 선생님 말씀만 듣고 있으니까 밉상스럽게 보이는거지요. 불만이 있는 겁니다. 마르다 삼남매하고 예수님은 가까운 사이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가 이 마리아인데 죽은 나사로 살리는 그건 시점이 잘 모르겠는데 삼남매가 아주 친밀한 관계인데 보니까 밉상스럽게 보였고 불만이 가득차서 말투가 그렇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십니까. 불만이 많다 그 말이지요. 저를 명하사 나를 도우라 하소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하나만 해도 괜찮다. 그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집회 전의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마르다는 주님 대접을 음식으로 대접합니다. 정성스러운 음식으로 대접하려고 준비하는 일이 많아 분주한지라. 뭘 준비하겠습니까. 바쁘게 준비하는 겁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주님 말씀을 듣고 앉아있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말씀만 듣고 앉아 있으니까 예수님께서 몇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 해도 된다.
무엇이 주님 대접이냐. 여기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실 때 음식대접하려고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은 들어가실 때 대접을 받으려고 가셨는데 가르쳐줄려고 들어가신 겁니다. 주님의 방향과 마리아 주님의 방향은 같았고 마르다는 방향이 달랐고 껍데기 음식 대접이었고 마리아는 주님 대접이 듣는 게 주님 대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걸 택했고 마르다는 몰라서 알려주셨고.
집회 때 이 말씀을 가지고 식구를 데려가야하고 청소해야하고 식사당번해야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집회를 마쳤는데 집회에만 해당되는 것인가. 평소 예배시간에도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구역 식구 챙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학생들 데려오는 것은 중요합니다. 안내도 중요하고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거 다 주님이 알고 계시는데 그 중에서 하나를 꼭 잡으려면 무엇을 잡을 것인가. 몇 가지만 하든지 하나만 해도 된다. 뭘 할 것이다. 그 말이지요.
서부교회 시절에 반사 선생님이 심바 전도 바쁩니다. 온 몸에 땅이 흠뻑 젖습니다 .10시 되면 앉습니다. 정신없이 뛰다가 피곤하면 축 쳐지는데 그때 설교를 들으면 자장가가 되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잠이 옵니다. 그러면 목사님께서 뭐라는지 아십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 버립니다. 그러면 목사님께서 보시고 다른 사람들은 구원하고 제가 죽어 그럽니다. 그걸 제가 기억합니다. 남 구원하고 제가 죽어? 심방 전도 안내 다 중요합니다. 다 중요한데 내가 듣는 게 가장 중요한 겁니다.
목자가 어미 양이 새끼를 먹이려면 어미가 먼저 잘 먹어야 그럽니다. 새끼양을 잘 먹는 건 없습니다. 영양실조가 엄마가 걸리면 젖이 안 나옵니다. 내가 먹어야 사는 겁니다. 그래서 부탁을 하는데 학생들 심방 챙길 때 예배드리다가 중간에 나가지 마십시오. 어쩌다가 한 두 번 몰라도 결국 자기 손해입니다. 권찰회도 중요합니다. 권찰회하는 중에 앉아 있어야할 분은 참석해야합니다. 좋은 거 아닙니다. 예배시간에 드리다가 나가서 챙기는 학생은 챙기면 안됩니다. 미리 약속 챙겨서 나가야하지 예사로 학생들 부르면 예배드리다가 나가고 그럴 수있겠네. 그렇게 되는 겁니다.
다쳤다던지 비상상황은 안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안 좋고 본인도 안 좋은 겁니다. 예배 시간보다 더 중요한 시간이 없는데 왜 나가는 겁니다. 심방보다 중요한게 예배입니다. 유익이 별로 없습니다. 최대한 노력해서 발전적으로 나가서 충성하는 분들은 충성하니까 그리 되는 겁니다. 좀 조심스러운데 이번 집회 마지막 연보 광고를 밤 예배 때 하셨습니까. 연보 할려는 분들은 말려야합니다. 안하는 분들이 안해서 강조하는데 그러면 하는 분들은 더 합니다. 그러니까 강조를 쉽게 못하고 그러는데 심방 전도 하다보니까 지각도 하고 그러는 겁니다. 안할 수도 없는 건데. 그게 예배보다 중요한 게 없으니 나가지 말라고 하면 안하시는 분들은 편한거죠. 안하는 분들은 그런 게 있죠. 예배시간에 나가서라도 해라. 지나친 분은 조절해야하는 것이고. 예배 시간에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주님이 가르친 그 말씀입니다. 주님 대접인데 당번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청소는 누가 합니까. 그걸 다 뒤로 제치고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예배다입니다.
300명이 집회 참석하는데 식사 당번이 전부 다 한번씩 30명씩 한다 그런데 30명이 전부 예배 빠지곤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린 신앙들은 알아서 챙기고 각자 해결하고 가자 그렇게 되는 겁니다. 만약에 마르다가 식사 준비 안하고 앉아 들었다면 어땠겠습니까. 설교 끝나면 같이 준비해서 먹으면 되는 거지요. 일의 경중이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는 것이지요.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구원이 먼저다 그런 것입니다. 내가 살지 않고 다른 사람 살릴 수는 없는 겁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하지요.
자기가 먼저 말씀듣고 살아야 살리는 것이기에 말씀으로 집중하는 사람은 언젠가 사람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출애굽기 20세 이상의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 이용만 된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은 전주다 그 말이지요. 자칫 잘못하면 다른 일에 집중하면 껍데기 되고 일꾼되기 쉽습니다. 일꾼 되는 것은 돈만 주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게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집회 때 말할 거 없고 양성원 해당되고 다 해당됩니다.
기도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92장, 196장
본문: 누가복음 10장 41절
신앙 다음으로 중요한 게 건강이다. 안전하고 집결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은 집회를 앞두고 지난주일에 공부한 말씀이고 공과공부를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자고 형체가 없는 분입니다. 형체가 없는 무형의 하나님 완전자께서 육을 상대하시려니까 사람 차원이 맞춰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상대는 전부 말씀으로 상대하시는 겁니다. 말씀으로 상대하십니다. 하나님을 알리시는 것도 뜻을 가르쳐주신 것도 간섭도 이것도 마지막에 심판도 말씀으로 다 하시는 분이 사람을 상대하는 하나님의 상대 방법입니다.
말씀으로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은 겁니다. 말씀으로 하는 겁니다. 기도로 시작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되기 쉽습니다.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되기 쉬워서 바로 믿으려고 굴에 가고 그런 분들 많이 있는데 지금은 덜합니다. 세계적으로 무신론이 대세입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무신론이 무슨 뜻인가요. 신은 없다. 그 핵심은 하나님은 없다는 뜻입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유럽 쪽에 전부 이름 뿐이고 무신론이 세계적인 시대인데 그래서 무신론이 되다 보니까 기도니 이런 건 없어집니다. 예전에 산에 가면 기도 찬송소리 많이 들렸는데 기도보다 찬송보다 반드시 말씀으로 출발하는 게 건전하고 좋은 겁니다.
말씀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면으로 말씀을 이루시게 하는 건데 성경 읽기로 시작한다 그 말입니다. 백 목사님도 애를 쓰시다가 기독교를 접한 다음에 기도보다 찬송보다 성경을 엄청나게 읽었습니다. 얼마나 읽었던지 엉덩이가 터져서 피가 날만큼 앉아서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읽었습니다. 새벽기도라든지 배워서 한 게 아니고 성경에 나오니까 실행을 나가면서 한 겁니다. 신앙생활은 반드시 말씀으로 다시 말하면 성경이니까 연경공부로 암송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건전해집니다. 과정은요. 과정은 전부 말씀이 길이고 말씀이 답이고 그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말씀 떠난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교회는 찬송이 많아지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고 설교 30 40분한다고 해도 세상 이야기 하고 이게 전부 거리가 먼겁니다. 사람의 귀를 즐겁게하지 못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찾아서 거기에 집중하는 게 에배고 그게 말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과정이 다 나가게 되어있는 겁니다. 말씀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말씀으로 다 하는 겁니다. 마지막에 결산도 말씀으로 결산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심판하지 않고 너를 심판하는 것은 말씀이 너를 심판한다. 기준도 말씀으로 심판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으로 역사하신다. 천국이 들었고 뜻이 들었고 하나님과 천국을 배우고 닮아가고 그런 것은 다 그렇고 인생과 지혜가 다 들어있습니다. 통해서 역사하시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인간의 보편적인 것으로 기록한 것이 성경 기록이다. 평소에 많이 배웠습니다.
성경은 가장 쉬운 언어로 되어있습니다. 어려운 단어가 있는데 이건 옛날 단어라서 어려울 뿐이지 흔하게 쓰던 말들입니다. 이 성경을 요즘 말로 바꾸면 나중에 한도 없이 타락해지기 쉽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한 번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단어들을 성경에 안 나오겠는데 지게 아는 학생 손 들어봅니다. 바지게는 모르거든요. 젊은 분들 중에서 아시는 분. 40세 밑으로 아시는 거죠. 짐을 많이 심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 단어가 바뀌니까 100년 전에는 컴퓨터 휴대폰 AI 몰랐습니다. 성경도 다시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어두워지기 때문에 지금 시대는 이 성경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에 고집하고 쓰고 있는 겁니다. 성경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일반적인 언어로 기록해주신 게 성경이다. 성경을 믿는 사람에게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이 길이고 진리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성경을 천국가는 안내도라고 합니다. 또 진리입니다. 절대 불변성을 말합니다. 필연성 절대성 불변성입니다.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연결될 수 없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말씀을 떠나서 신앙생활은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대속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대속의 길을 걸어가셨고 인생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신 겁니다. 길 갈 때 우리 전부다 인생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길이라 그 말은 가는 과정이란 말입니다. 목적지 향해 가는 과정입니다. 길은 과정이기 때문에 마련할 수도 있고 도착해버리면 끝나버립니다. 마태복음 보면 얼른 화목하고 제물드리라고 하면서 길에 있을 때 깊이 사모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회가 있을 때 말합니다. 전부 다 기회입니다. 뭐든지 마련할 수 있고 연습할 수 있고 고칠 수도 있고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되 사람 사는 마을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입니다. 이 세상 주인공은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뭐든지 있는 겁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 계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입니다. 사람되신 하나님이 찾아간 것도 사람입니다.
애완동물은 구원이 없습니다. 사람만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셨다 그 말이고 주님의 대속이든 택자를 말합니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영접했습니다. 길을 가셨고 길 가시다가 사람 사는 마음에 들어가니까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르다가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이 이어집니다. 길을 가시다가 사람 사는 마을에 들어갔고 그 마을이 마르다가 사는 마을이었고 이런 것이 우연이 어쩌다보니까 이런 것이 아니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되어지도록 예정하신 일이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주님이 이 길을 가시도록 예정되어있었고 주님이 가는 그 시점에 마르다가 주님을 영접하도록 했고 마르다가 주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는데 마르다는 선생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복잡합니다. 분주합니다. 바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을 모셔다놓고 언니 마르다는 접대한다고 식사준비 국준비 수저준비 정신없이 바빠 죽겠는데 마리아는 뭘 하고 있다고요. 예수님 발 밑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볼 때 밉상스럽게 보였을 겁니다. 집 주인이니까 존경하는 선생님을 모셔다가 왔는데 식사 대접을 하러 왔는데 자기는 바쁜데 동생이 선생님 말씀만 듣고 있으니까 밉상스럽게 보이는거지요. 불만이 있는 겁니다. 마르다 삼남매하고 예수님은 가까운 사이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가 이 마리아인데 죽은 나사로 살리는 그건 시점이 잘 모르겠는데 삼남매가 아주 친밀한 관계인데 보니까 밉상스럽게 보였고 불만이 가득차서 말투가 그렇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십니까. 불만이 많다 그 말이지요. 저를 명하사 나를 도우라 하소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하나만 해도 괜찮다. 그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집회 전의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마르다는 주님 대접을 음식으로 대접합니다. 정성스러운 음식으로 대접하려고 준비하는 일이 많아 분주한지라. 뭘 준비하겠습니까. 바쁘게 준비하는 겁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주님 말씀을 듣고 앉아있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말씀만 듣고 앉아 있으니까 예수님께서 몇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 해도 된다.
무엇이 주님 대접이냐. 여기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실 때 음식대접하려고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은 들어가실 때 대접을 받으려고 가셨는데 가르쳐줄려고 들어가신 겁니다. 주님의 방향과 마리아 주님의 방향은 같았고 마르다는 방향이 달랐고 껍데기 음식 대접이었고 마리아는 주님 대접이 듣는 게 주님 대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걸 택했고 마르다는 몰라서 알려주셨고.
집회 때 이 말씀을 가지고 식구를 데려가야하고 청소해야하고 식사당번해야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집회를 마쳤는데 집회에만 해당되는 것인가. 평소 예배시간에도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구역 식구 챙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학생들 데려오는 것은 중요합니다. 안내도 중요하고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거 다 주님이 알고 계시는데 그 중에서 하나를 꼭 잡으려면 무엇을 잡을 것인가. 몇 가지만 하든지 하나만 해도 된다. 뭘 할 것이다. 그 말이지요.
서부교회 시절에 반사 선생님이 심바 전도 바쁩니다. 온 몸에 땅이 흠뻑 젖습니다 .10시 되면 앉습니다. 정신없이 뛰다가 피곤하면 축 쳐지는데 그때 설교를 들으면 자장가가 되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잠이 옵니다. 그러면 목사님께서 뭐라는지 아십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 버립니다. 그러면 목사님께서 보시고 다른 사람들은 구원하고 제가 죽어 그럽니다. 그걸 제가 기억합니다. 남 구원하고 제가 죽어? 심방 전도 안내 다 중요합니다. 다 중요한데 내가 듣는 게 가장 중요한 겁니다.
목자가 어미 양이 새끼를 먹이려면 어미가 먼저 잘 먹어야 그럽니다. 새끼양을 잘 먹는 건 없습니다. 영양실조가 엄마가 걸리면 젖이 안 나옵니다. 내가 먹어야 사는 겁니다. 그래서 부탁을 하는데 학생들 심방 챙길 때 예배드리다가 중간에 나가지 마십시오. 어쩌다가 한 두 번 몰라도 결국 자기 손해입니다. 권찰회도 중요합니다. 권찰회하는 중에 앉아 있어야할 분은 참석해야합니다. 좋은 거 아닙니다. 예배시간에 드리다가 나가서 챙기는 학생은 챙기면 안됩니다. 미리 약속 챙겨서 나가야하지 예사로 학생들 부르면 예배드리다가 나가고 그럴 수있겠네. 그렇게 되는 겁니다.
다쳤다던지 비상상황은 안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안 좋고 본인도 안 좋은 겁니다. 예배 시간보다 더 중요한 시간이 없는데 왜 나가는 겁니다. 심방보다 중요한게 예배입니다. 유익이 별로 없습니다. 최대한 노력해서 발전적으로 나가서 충성하는 분들은 충성하니까 그리 되는 겁니다. 좀 조심스러운데 이번 집회 마지막 연보 광고를 밤 예배 때 하셨습니까. 연보 할려는 분들은 말려야합니다. 안하는 분들이 안해서 강조하는데 그러면 하는 분들은 더 합니다. 그러니까 강조를 쉽게 못하고 그러는데 심방 전도 하다보니까 지각도 하고 그러는 겁니다. 안할 수도 없는 건데. 그게 예배보다 중요한 게 없으니 나가지 말라고 하면 안하시는 분들은 편한거죠. 안하는 분들은 그런 게 있죠. 예배시간에 나가서라도 해라. 지나친 분은 조절해야하는 것이고. 예배 시간에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주님이 가르친 그 말씀입니다. 주님 대접인데 당번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청소는 누가 합니까. 그걸 다 뒤로 제치고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예배다입니다.
300명이 집회 참석하는데 식사 당번이 전부 다 한번씩 30명씩 한다 그런데 30명이 전부 예배 빠지곤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린 신앙들은 알아서 챙기고 각자 해결하고 가자 그렇게 되는 겁니다. 만약에 마르다가 식사 준비 안하고 앉아 들었다면 어땠겠습니까. 설교 끝나면 같이 준비해서 먹으면 되는 거지요. 일의 경중이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는 것이지요.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구원이 먼저다 그런 것입니다. 내가 살지 않고 다른 사람 살릴 수는 없는 겁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하지요.
자기가 먼저 말씀듣고 살아야 살리는 것이기에 말씀으로 집중하는 사람은 언젠가 사람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출애굽기 20세 이상의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 이용만 된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은 전주다 그 말이지요. 자칫 잘못하면 다른 일에 집중하면 껍데기 되고 일꾼되기 쉽습니다. 일꾼 되는 것은 돈만 주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게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집회 때 말할 거 없고 양성원 해당되고 다 해당됩니다.
기도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