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칼빈을 두고 살핀 교역자의 사명과 건강문제
칼빈은 말년 , 7년이 넘는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냈었습니다
당시 기록과 칼빈이 호소한 통증의 정도를 살펴보면은,
관절염, 천식, 중한 폐병 등의 크고 작은 수백개의 질병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있었다 하며
그 정도가, 한밤중에는 극심한 두통으로 말미암아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는 생활을
말년 7년의 세월을 보냈었다 합니다
칼빈의 고통은 천주교와 전투하고, 기독교를 세워나가던 당시, 영광의 훈장과도 같습니다
칼빈 본인도 투병생활을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며, 사도 바울의 눈에 있던 가시와 같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기회를 허락하셨다며 참 영광과 은혜로 받으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전반의 총공회장 역할과
천주교 와 대항하던 현실지도자 역할과
제네바를 직접 통치하던 정치지도자 역할과
한 교회의 목회자 역할과 신학교 책임, 교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며
동시에 본인의 원래 사명이었던 "학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칼빈은 원래 학자 성향의 인물이었던지라
여러 문제로 신경이 날카롭게 되어지면은 자연스럽게 중병이 찾아오는 사람입니다
특히나 그 과정은 칼빈과 앞전 선배들이 걸었던 그 길과 마찬가지로,
잔병치례가 잦아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 됩니다
죽도록 열심히 일을 하여도
루터처럼 건강한 사람이 있고
죽도록 열심히 일을 하니까
칼빈처럼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루터와 칼빈의 신앙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의 성향문제로 읽혀지는 내용입니다
기록을 살펴보면은, 7년 기간의 중병문제도
처음에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잔병치례 정도로 시작을 하였다고 생각이 드니
아마도 칼빈은 자신의 고생길을 알면서도
해야될 일이 쌓여있었기에 그 길을 감수하고서 걸어갔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학자 성향"의 칼빈의 경우에는
현장에 나서면 나설수록, 신경을 쓰면 쓸수록
수명과 건강이 줄어드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칼빈의 사례를 살피며, 정말로 죽도록 충성하신 분들의 충성의 길을 생각하고
또한 그 충성의 길의 결과로서 오늘날 우리 노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가 발전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니
감사의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면으로 살펴보자면은,
칼빈의 사명을 꼭 칼빈 홀로서만 지고 갔어야 하였는가는 아쉬움이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칼빈의 동역자들이 많았고,
칼빈의 사무처리를 대행해줄 제자들도 후진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을 터인데,
정녕 "많은 사람들 중 일을 시킬 사람 하나 없다"는 말씀처럼,
칼빈 홀로서 그 십자가를 감당하셔야 되었던 것인가를 생각하며
(질문)
⑴교인으로서 생각해야 되는 교역자의 과로로 인한 건강문제, 이와 관련되는 업무분담 문제
⑵칼빈으로서 건강과 사명 중에서, 그 중간에서 최선을 다해야 했던 부분을 질문
⑶죽도록 충성한 분들은 순교의 영광이 되나, 감당하시던 사명의 공백의 아쉬움을 두고서 고민
충성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았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으며
또한 어떻게 분담하여 나누는 것이 옳을까를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죽도록 충성하신 분들께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도 부러운 길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분들께서 조금 더 건강히 오래 감당해 주셨더라면은,
다른 방향이 아니라 오직 한 방향으로만 잘 감당해 주셨더라면은
하는 아쉬움이 들어
오늘 우리시대에 맞이한 선지자와 사명을 앞에 두고서 고민을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
당시 기록과 칼빈이 호소한 통증의 정도를 살펴보면은,
관절염, 천식, 중한 폐병 등의 크고 작은 수백개의 질병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있었다 하며
그 정도가, 한밤중에는 극심한 두통으로 말미암아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는 생활을
말년 7년의 세월을 보냈었다 합니다
칼빈의 고통은 천주교와 전투하고, 기독교를 세워나가던 당시, 영광의 훈장과도 같습니다
칼빈 본인도 투병생활을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며, 사도 바울의 눈에 있던 가시와 같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기회를 허락하셨다며 참 영광과 은혜로 받으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전반의 총공회장 역할과
천주교 와 대항하던 현실지도자 역할과
제네바를 직접 통치하던 정치지도자 역할과
한 교회의 목회자 역할과 신학교 책임, 교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며
동시에 본인의 원래 사명이었던 "학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칼빈은 원래 학자 성향의 인물이었던지라
여러 문제로 신경이 날카롭게 되어지면은 자연스럽게 중병이 찾아오는 사람입니다
특히나 그 과정은 칼빈과 앞전 선배들이 걸었던 그 길과 마찬가지로,
잔병치례가 잦아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 됩니다
죽도록 열심히 일을 하여도
루터처럼 건강한 사람이 있고
죽도록 열심히 일을 하니까
칼빈처럼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루터와 칼빈의 신앙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의 성향문제로 읽혀지는 내용입니다
기록을 살펴보면은, 7년 기간의 중병문제도
처음에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잔병치례 정도로 시작을 하였다고 생각이 드니
아마도 칼빈은 자신의 고생길을 알면서도
해야될 일이 쌓여있었기에 그 길을 감수하고서 걸어갔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학자 성향"의 칼빈의 경우에는
현장에 나서면 나설수록, 신경을 쓰면 쓸수록
수명과 건강이 줄어드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칼빈의 사례를 살피며, 정말로 죽도록 충성하신 분들의 충성의 길을 생각하고
또한 그 충성의 길의 결과로서 오늘날 우리 노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가 발전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니
감사의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면으로 살펴보자면은,
칼빈의 사명을 꼭 칼빈 홀로서만 지고 갔어야 하였는가는 아쉬움이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칼빈의 동역자들이 많았고,
칼빈의 사무처리를 대행해줄 제자들도 후진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을 터인데,
정녕 "많은 사람들 중 일을 시킬 사람 하나 없다"는 말씀처럼,
칼빈 홀로서 그 십자가를 감당하셔야 되었던 것인가를 생각하며
(질문)
⑴교인으로서 생각해야 되는 교역자의 과로로 인한 건강문제, 이와 관련되는 업무분담 문제
⑵칼빈으로서 건강과 사명 중에서, 그 중간에서 최선을 다해야 했던 부분을 질문
⑶죽도록 충성한 분들은 순교의 영광이 되나, 감당하시던 사명의 공백의 아쉬움을 두고서 고민
충성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았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으며
또한 어떻게 분담하여 나누는 것이 옳을까를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죽도록 충성하신 분들께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도 부러운 길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분들께서 조금 더 건강히 오래 감당해 주셨더라면은,
다른 방향이 아니라 오직 한 방향으로만 잘 감당해 주셨더라면은
하는 아쉬움이 들어
오늘 우리시대에 맞이한 선지자와 사명을 앞에 두고서 고민을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