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사랑에 관하여 방법과 성향을 생각하며 고민
"사랑"의 방편과 성향을 생각하며, 두가지 질문을 올립니다
⑴ 교정의 사랑과 침묵의 사랑
믿는 사람의 미덕은,
세상의 교양인 차원에서도 미덕은 "침묵" 입니다
침묵하고 시간을 두고 살피는 것이 일단은 지혜가 맞고
그것이 연약하기에 무지하기에 부족하기에 지을 수 있는 죄와 허물을 줄일 수 있고,
신중한 인격의 사람이 되어가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또한 "오래 참고 온유한 것"을 우리는 사랑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도 그것이 배려이며, 부모의 사랑이고,
수고한만큼 첨언도 할 수 있다는 대인관계 기본원리 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사랑의 다른 측면에서는 틀린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교정하는 것을 사랑이라 말합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죄를 짓는 사람이 더이상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인격 자체를 고치기 위한 교정의 수고가 사랑이며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는 신체 자체를 분질러서라도 돌이키게 만들겠다는 수고의 사랑입니다
해명은, 세월속에나 가능한 것이며
애초에 상대가 그런 인식을 갖도록 자신의 이미지를 만든 것이 스스로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
즉각즉각 말하여서 풀 수 있는 오해를 두고는,
상황과 시점을 살펴서 오히려 진실을 밝혀 나가는 것이 또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이 오해함으로 생기는 문제 , 죄를 짓도록 방치해두는 침묵은,
인내의 미덕이 아니라
자기위안적 무책임 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오해한 상황에 대하여, 상대가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적극적 처신이 또한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되기도 하지 아니할까 생각을 하며,
과연 그 구분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며,
그 정도는 어느정도가 적당할지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⑵ 논리적 사랑과 감정적 사랑의 대비
모성애를 흔히 "본능적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되지 아니하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친자확인이나 출생신고서류를 통해 되는 사랑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자기자식임을 알기에 사랑하는 바로 그런 원초적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계 일반진영에서는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주로,
그러한 "본능적 사랑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어떠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며, 그저 사랑 그자체가 귀한 것이라고
"아빠 하나님", "친구 하나님"으로 상대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할아버지 수염 잡아댕기는 어리광의 사랑처럼 보여집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이종교인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비판평가도 없이 김일성을 따라다닐 분들이라고 생각을 하니
그 사랑이 진짜사랑, 건강한 사랑이 맞는가
아니면 외형만 기독교일 뿐이지, 실상은 세뇌에 가까운 무조건 맹종이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골 어르신들의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는 말씀을 두고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정말 순수하게도 받은 은혜와 주관의 감동을 생각해보니
감사하고 좋아서 따라가는 "순수한 사랑"이 일면 정말로 귀한 것이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일전에 손양원 목사님을 평가하던 세브란스 병원 인요한 박사님 평가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논리와 사랑을 둘 다 가진 사람이 없는데, 손양원 목사님은 그런 분이셨다"
논리가 있는 사람은 감정적 사랑이 부족하고,
감정이 있는 사람은 논리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말씀 같았습니다
신앙은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이성에 입각한 논리적 신앙만이 참신앙이라는 중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사랑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분들의 신앙을 보면서,
특히나 교리는 하나 없이 빈약하나 물질복 세상복 온갖복을 주시리라는
한 말씀만 믿고서 정력을 다 바쳐서 믿는 순복음 진영이나
아무리 몸이 아파도 부흥회 치료의 권능만 따라다니며 믿는 분들,
유달리 신비한 것이 많이 보인다고 하시는 신비주의 신앙의 분들을 보면서,
얼마나 간절하게 사랑하였으면 저런 것까지 보인다 하겠는가 하는 감탄과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저렇게 순수하게 매달릴 수 있는 저 마음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귀한 복음을 듣고서, 올바른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나가도
저정도로 생명을 걸고 믿는 분들 뒷꽁무니 따라가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우며
한면으로는
맹종적 열정적 믿음을 가지는 분들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어려운지라,
어떻게 하면 저렇게 "무식하지만 열정적인 사랑", 그러기에 정말
좋은 의미로서 "머리가 비었기에 순수한 사랑" 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세상 소설 중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감정이 어떤 비극까지 이어지게 되는가를 보여준 소설이지만
반면 많은 세상 사람들은 그 소설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하지만 뜨거운 사랑"을 주제처럼 찾아내고 합니다
그들의 사랑 외형 자체는 세상에서 보더라도 대단히 잘못된 것이지만
그 속에 담긴 열정만큼은 불신세상에서는 큰 영감이 되는 것처럼,
우리에겐 올바른 지식이 있고,
그 지식과 노선 위에 더하여
"올바른 지식 없어도 목숨 다바쳐 뜨겁게 믿을 사랑"까지 있다면은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좋은 동력원이 되지 아니할까 생각했습니다
⑴ 교정의 사랑과 침묵의 사랑
믿는 사람의 미덕은,
세상의 교양인 차원에서도 미덕은 "침묵" 입니다
침묵하고 시간을 두고 살피는 것이 일단은 지혜가 맞고
그것이 연약하기에 무지하기에 부족하기에 지을 수 있는 죄와 허물을 줄일 수 있고,
신중한 인격의 사람이 되어가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또한 "오래 참고 온유한 것"을 우리는 사랑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도 그것이 배려이며, 부모의 사랑이고,
수고한만큼 첨언도 할 수 있다는 대인관계 기본원리 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사랑의 다른 측면에서는 틀린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교정하는 것을 사랑이라 말합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죄를 짓는 사람이 더이상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인격 자체를 고치기 위한 교정의 수고가 사랑이며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는 신체 자체를 분질러서라도 돌이키게 만들겠다는 수고의 사랑입니다
해명은, 세월속에나 가능한 것이며
애초에 상대가 그런 인식을 갖도록 자신의 이미지를 만든 것이 스스로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
즉각즉각 말하여서 풀 수 있는 오해를 두고는,
상황과 시점을 살펴서 오히려 진실을 밝혀 나가는 것이 또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이 오해함으로 생기는 문제 , 죄를 짓도록 방치해두는 침묵은,
인내의 미덕이 아니라
자기위안적 무책임 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오해한 상황에 대하여, 상대가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적극적 처신이 또한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되기도 하지 아니할까 생각을 하며,
과연 그 구분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며,
그 정도는 어느정도가 적당할지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⑵ 논리적 사랑과 감정적 사랑의 대비
모성애를 흔히 "본능적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되지 아니하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친자확인이나 출생신고서류를 통해 되는 사랑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자기자식임을 알기에 사랑하는 바로 그런 원초적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계 일반진영에서는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주로,
그러한 "본능적 사랑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어떠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며, 그저 사랑 그자체가 귀한 것이라고
"아빠 하나님", "친구 하나님"으로 상대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할아버지 수염 잡아댕기는 어리광의 사랑처럼 보여집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이종교인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비판평가도 없이 김일성을 따라다닐 분들이라고 생각을 하니
그 사랑이 진짜사랑, 건강한 사랑이 맞는가
아니면 외형만 기독교일 뿐이지, 실상은 세뇌에 가까운 무조건 맹종이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골 어르신들의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는 말씀을 두고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정말 순수하게도 받은 은혜와 주관의 감동을 생각해보니
감사하고 좋아서 따라가는 "순수한 사랑"이 일면 정말로 귀한 것이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일전에 손양원 목사님을 평가하던 세브란스 병원 인요한 박사님 평가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논리와 사랑을 둘 다 가진 사람이 없는데, 손양원 목사님은 그런 분이셨다"
논리가 있는 사람은 감정적 사랑이 부족하고,
감정이 있는 사람은 논리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말씀 같았습니다
신앙은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이성에 입각한 논리적 신앙만이 참신앙이라는 중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사랑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분들의 신앙을 보면서,
특히나 교리는 하나 없이 빈약하나 물질복 세상복 온갖복을 주시리라는
한 말씀만 믿고서 정력을 다 바쳐서 믿는 순복음 진영이나
아무리 몸이 아파도 부흥회 치료의 권능만 따라다니며 믿는 분들,
유달리 신비한 것이 많이 보인다고 하시는 신비주의 신앙의 분들을 보면서,
얼마나 간절하게 사랑하였으면 저런 것까지 보인다 하겠는가 하는 감탄과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저렇게 순수하게 매달릴 수 있는 저 마음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귀한 복음을 듣고서, 올바른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나가도
저정도로 생명을 걸고 믿는 분들 뒷꽁무니 따라가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우며
한면으로는
맹종적 열정적 믿음을 가지는 분들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어려운지라,
어떻게 하면 저렇게 "무식하지만 열정적인 사랑", 그러기에 정말
좋은 의미로서 "머리가 비었기에 순수한 사랑" 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세상 소설 중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감정이 어떤 비극까지 이어지게 되는가를 보여준 소설이지만
반면 많은 세상 사람들은 그 소설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하지만 뜨거운 사랑"을 주제처럼 찾아내고 합니다
그들의 사랑 외형 자체는 세상에서 보더라도 대단히 잘못된 것이지만
그 속에 담긴 열정만큼은 불신세상에서는 큰 영감이 되는 것처럼,
우리에겐 올바른 지식이 있고,
그 지식과 노선 위에 더하여
"올바른 지식 없어도 목숨 다바쳐 뜨겁게 믿을 사랑"까지 있다면은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좋은 동력원이 되지 아니할까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