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5일 금밤
김동민2024-10-25조회 103추천 11
2024년 10월 25일
찬송: 163장, 195장
본문: 시편 73편 12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기독교는 여러 가지 각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도다 진실의 도다 믿음의 도다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그 중에 믿음의 도라는 걸 생각해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가 어떤 믿는 대상을 두고 자기 마음 속으로 그렇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을 믿으면 그 사람에 대한 것을 아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믿음입니다. 믿으면 신뢰관계가 되고 그 안에서 관계가 되는 게 될 수 있습니다. 믿지 않으면 불신이기 때문에 상호관계가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일일이 따지지 않아도 몸이 아플 때 병원 가서 처방 받고 약국 가서 약을 받는 것은 믿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도 믿을만하니까 병원을 가고 약을 먹는 겁니다.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못 믿는 사람에게는 일도 못 맡기고 돈도 못 맡깁니다. 돈을 맡을만한 회계가 된다면 신뢰할 만한 사람입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힙니다. 견물생심이라서 돈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탕심이 생겨서 나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게 사람입니다. 사람은 별 사람 없습니다. 나는 안 그럴 것이다. 큰 착각입니다. 사람은 어떤 사람이 없다고요. 별 사람이 없습니다. 돈을 보고 탐심을 품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 줄 알고 조심을 하는 겁니다.
가롯 유다는 원래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열 두 제자 중에서 맡은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회계를 맡았습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회계를 맡습니다. 교회에 회계집사님이라고 하면 그러면 가장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개척부터 회계를 맡은 분들이 몇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회계 맡은 분들이 깨끗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제법 드문드문 한번씩 들리는게 회계 맡으신 분들이 주머니에 집어넣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큰일납니다. 가롯유다가 되는 겁니다. 다른 직분도 조심해야하지만 회계 맡으면 더 하는 겁니다.
성경 말씀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 직접 말씀도 있고 간접 말씀도 있는데 여러 사람과 여러 존재의 말이 있는데 그 전부가 하나님 말씀이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통계로 상식으로 과학의 이치로 아무리 따져봐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가득차있는데 날로 믿는 것은 누구나 믿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여서 창세기 1장부터 하나님 천지를 지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고 지으신 하나님께서 운영하시되 머리털까지도 세신다는 걸 믿는 게 믿음입니다. 종종 말씀드리지만 자기 머리털 숫자 아는 사람 있습니까. 인류역사에 현존하는 인구가 80억이라고 합니다. 80억 인구의 머리털을 다 계산하라고 하면 셀까요. 하나님은 세십니다. 그걸 믿는 것이 믿습니다. 그리고 나고 빠지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예정과 절대주권 역사가 현실에 닥쳤을 때 이리 빠져나가면 굉장히 복잡하고 많습니다. 사람이 공상 망상이 많지만은 해운대 백사장에 모래알이 얼마나 될까. 몇 천억개 될련가요. 이게 이해가 되는 말입니까. 사람의 세포가 몇 개라고요 대략 100조개랍니다. 그 100조 분의 일 눈에 보이는 세포 안에 뭐가 들었답니까. 쿼크라는 물질이 100조개가 또 들었답니다. 이런 게 믿어집니까. 그리고 그 세포와 물질 하나하나가 다 세고 계십니다. 그래야 전지자가 되겠지요. 이렇게 빠져 들어가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가 작은 물질 하나가 다 예정 주권 섭리로 예정디로 진행되고 능력으로 성취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그 쏟아지는 빗줄기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예정따라 쏟아진다. 한 방울도 예정한 곳에 떨어진다는 거지요.
이런 걸 믿는 걸 가르켜서 믿음이라고 합니다. 절대 예정이란 그런 겁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걸 경외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 믿음에 의해서 생겨지는 게 경외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높이지 않으면 믿음이 적은 사람이거나 없는 사람입니다. 말은 믿고 두려운데 실제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눈초리를 생각하면서 살고 계시는가요. 옆에서 세 살 짜리 아이가 봐도 못할 행동을 아무도 없으면 하는 게 사람입니다. 믿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마음을 붙들어 조심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예정하셨는데 예정의 목적이 우리 구원입니다. 예정의 목적이 우리 구원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운영하면서 다가올 때 이 현실이 무엇을 말하는지 나타내는 겁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손에 잡힌 것과 같이 굳게 믿고. 좋은 현실 형통이 오면 하나님의 예정이고 이건 예정일까 믿기 쉽지 않은데 목적과 연결해서 보면 하나님의 사랑 아닌 것이 없으니까 어떤 걸 만날찌라도 사랑, 감사와 기쁨과 충성으로 오는 겁니다. 믿기 때문에 사랑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도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받은 믿음을 감사하고 성장성이 있다고 했지요. 믿음은 선물인데 사람마다 달라집니다. 종자는 꼭 같은데 길러가는 때에 따라서 과정은 다 다릅니다. 농부의 열심과 실력에 따라서 다릅니다. 믿음이 자라가는 건 다릅니다. 믿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믿음이 다르지 않습니까. 밤예배까지 오는 믿음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 믿음은 다른 겁니다. 제 믿음과 손양원 목사님 믿음이 같겠습니까. 믿음은 성장에 있어서 길러가야한다. 믿음은 무엇으로 자라갑니까. 믿음은 믿음으로 자라갑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고 아는 대로 믿고 아는 그대로 실행할 때 믿음이 자라게되는 것이고 실제 경험체험의 생명의 믿음, 자기를 현실로 하는 믿음이 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걸 전제하고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보라 이걸 생각해봤습니다. 그 말씀하고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굽게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입니다. 인과응보 권선징약이 있습니다. 자연의 모든 역사는 인간의 죄가 직접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은 변동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정직하게 결과를 맺는 게 농사짓는 겁니다. 농사는 그래서 땅은 거짓말을 안 한다고 합니다. 농사는 심는대로 다 됩니다. 하나님의 자연 중에서 가장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이 세상 운영의 원리입니다.
선을 행하면 복 받고 악을 행하면 망하고 뿌린대로 거두고 심는대로 거두고 가꾼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여름철에 땅 흘려 양식 준비하면 걱정이 없는 개미가 되는 것이고 기타 치고 놀면 겨울에 배가 붙어서 얻어먹으러 가는 배짱이가 되는 것이고. 요즘 나오는 책들 노래들 이런 것들은 그런 게 없습니다. 잠깐 세상 이야기지만 한강이라는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답니다. 우리나라가 영광이라고 난리인데 한쪽에서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런데 눈 밝고 믿음있는 아는 사람이 보는 엄청나게 해로운 책이다 그렇다고 합니다. 무조건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런 책들은 함부로 보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노벨상 받은 책이라고 나도 읽어서 보면 아이들 그 속에 엉망이 되는 내용이 있답니다. 인생관이, 사상이 그렇답니다. 읽어본 분들이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온 세상이 전국이 다 영광이라 그러니까 거기 거스르면 맞아 죽습니다. 그래서 못하는 거지요.
세상의 흐름이라는 것을 그래서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는 것을 보라고 살펴보라고 합니다. 일일이 다 몰라도 들썩거리는 그런 때는 알아야하지 정치판에 이 말하면 따라가고 문화에서 이 말하면 따라가고 참 위험천만한 말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 정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곧은 분이고 곧은 게 바른 건데 굽게 하신 게 있습니다. 사람이 좁은 것으로 보니까 그런 겁니다. 그리고 멀리 있는 그런 게 보면 굽게하는 건데 전체를 보면 곱게 되는 겁니다. 물리적인 것이 아니고 원리적으로 이상향적으로 그러는 겁니다. 곧은 하나님의 정직한 역사로 인해서 필요하다는 거지요.
성경 읽고 일한다고 뭐라하는 게 아니고 놀러다니고 게임하고 시험치니까 100점이 나오는 겁니다. 컨닝했겠지 뭔가 이유가 있겠지요. 아무것도 안했는데 빈둥빈둥 놀고 돈만 쓰고 다니는데 죄인인데 복권 하나 샀는데 당첨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운영하시는데 왜 죄짓고 그러는 사람은 잘 먹고 잘 살고 죽을 때도 평안하게 죽고 왜 나는 하나님 말씀 순종한다고 벌벌떠는데 그게 굽은 겁니다. 하나님 역사를 보니까 굽게 보는데 이걸 보니까 시험에 들어버렸습니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이렇게 말하리라. 나도 저자처럼 저렇게 살아버리라 그런다면 믿는 사람의 시대에 그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무슨 연고냐, 심히 곤란합니다. 답이 안 나오는 겁니다. 이해가 안되는 거지요. 뭔가 수학 공식대로 하면 답이 안 나오는 거지요. 원리대로 하면 되는데 안되는 거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고 답이 안나오니까 심히 곤란합니다. 내가 심히 곤란하더니, 이게 중요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어떠합니까.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생각이라는 것은 뭔가 방향을 가지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지 않은 멍 때리는 것입니다. 생각의 방향이 없고 내용이 없으면 멍때리게 됩니다. 그게 맨 마지막에 불교가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의 마지막은 돌이 되는 겁니다. 자기 속에 자기를 다 뽑아버리고 죽여버리는, 이게 생각을 내용을 가지고 생각하는 겁니다. 현재 당면한 자기 곤고를 가지고 왜 이럴까 원인이 뭘까 생각해보는 겁니다.
이 시편 기자가 악인들의 악행과 결과를 보고 이해가 안돼서 생각했는데 이해가 안됐습니다. 그런데 해결이 될 때까지 생각을 했습니다. 이걸 뭐라고 합니다. 그러는 것을 가르켜서 구별이라고 합니다. 그게 거룩이고. 마지막에는 끝이 나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하고 하고 하다보니까 하나님의 성소에 까지 들어갔습니다. 에스겔 성전 밖에서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통과하면서 통과하고 이차문 들어가서 통과 통과해서 선수까지 했습니다. 생각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스테반의 마지막 죄를 보고 이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율법에 철저한 사울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죽인 원수를 향해서 기도하는 것을 생각을 못해봤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겨서 고민을 하는 거고 사울이 성소까지 들어갔습니다. 주님이 의문이 생기면 문제가 생기면 이해가 안되면 생각을 중요한겁니다. 생각을 중요하되 자기 주관가지고 생각하지 말고 불건전한 신비성이 있는 그런 사람들은 생각을 조심해야합니다. 기도는 생각인데 기도를 잘못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됩니다. 자기 주관속으로 들어가고 나중에는 더 악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생각합니다. 성소에 들어가니까 마음이 깨닫게 되는 겁니다. 18절에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해 던지시니 어찌 졸지에 황폐가 되었는가. 브레이크를 하나님께서 빼버린겁니다. 내리막길이니까 그냥 시속 100키로 200키로 달리는 건데 달리는 겁니다. 결과는 파멸인 거지요. 그걸 이 사람이 깨달은 겁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은 것이다. 이런 결과인데 저걸 보고 이해못하고 저렇게 될 뻔 했으니 짐승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했습니다. 이해 못할 그 사람은 이걸 보고 생각을 했고 탈선을 하지 않은 겁니다. 이게 중요한겁니다.
하늘은 어떤 사람을 돕는다고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겁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스스로 도왔습니다. 두 달란트는 노력했습니다. 자포자기한 겁니다. 아무것도 안한겁니다. 그래서 있는 것도 빼앗겨버렸고 다다익선이라고 합니다. 많을수록 좋다는 겁니다. 그게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 가깝지. 다 초월한 것이지만.
자기로써 해결해보려고 발버둥을 친 겁니다. 심히 곤란하더니 많이 생각하고 따져보고 생각도 해 보고 하니까 차마 믿음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셨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해주신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오늘 새벽인가요. 이 세상에 죄 안 짓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곤고함을 당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별의 별 곤고를 다 당합니다. 우리 교회만해도 보기에는 멀쩡하고 행복한 가정이 있는데 들어가면 고민이 있습니다. 그때 사람이 죄를 안 짓는 사람이 없는데 죄를 지었을 때 곤고함을 하는데 일어서는 게 문제고 넘어지면 일어서는 게 문제입니다. 그때 일어서야하고 곤고할 때 노력을 해야하지 주저앉아 있으면 한 달란트 받은자고 낙망죄입니다. 이런 방법이 있는 겁니다.
어떤 죄인도 하나님께서 용서하라고 회개를 하라고 합니다. 가롯유다의 죄가 예수님 팔아먹은 죄로 크지만 더 큰 죄는 회개하지 않은 죄입니다. 낙망한 죄. 예수님 대속을 져버린 죄입니다. 오늘 밤 말씀에서 23절을 기억하십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를 안 지으면 좋은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올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대하는 자세가 문제입니다.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다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
찬송: 163장, 195장
본문: 시편 73편 12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기독교는 여러 가지 각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도다 진실의 도다 믿음의 도다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그 중에 믿음의 도라는 걸 생각해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가 어떤 믿는 대상을 두고 자기 마음 속으로 그렇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을 믿으면 그 사람에 대한 것을 아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믿음입니다. 믿으면 신뢰관계가 되고 그 안에서 관계가 되는 게 될 수 있습니다. 믿지 않으면 불신이기 때문에 상호관계가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일일이 따지지 않아도 몸이 아플 때 병원 가서 처방 받고 약국 가서 약을 받는 것은 믿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도 믿을만하니까 병원을 가고 약을 먹는 겁니다.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못 믿는 사람에게는 일도 못 맡기고 돈도 못 맡깁니다. 돈을 맡을만한 회계가 된다면 신뢰할 만한 사람입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힙니다. 견물생심이라서 돈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탕심이 생겨서 나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게 사람입니다. 사람은 별 사람 없습니다. 나는 안 그럴 것이다. 큰 착각입니다. 사람은 어떤 사람이 없다고요. 별 사람이 없습니다. 돈을 보고 탐심을 품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 줄 알고 조심을 하는 겁니다.
가롯 유다는 원래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열 두 제자 중에서 맡은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회계를 맡았습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회계를 맡습니다. 교회에 회계집사님이라고 하면 그러면 가장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개척부터 회계를 맡은 분들이 몇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회계 맡은 분들이 깨끗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제법 드문드문 한번씩 들리는게 회계 맡으신 분들이 주머니에 집어넣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큰일납니다. 가롯유다가 되는 겁니다. 다른 직분도 조심해야하지만 회계 맡으면 더 하는 겁니다.
성경 말씀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 직접 말씀도 있고 간접 말씀도 있는데 여러 사람과 여러 존재의 말이 있는데 그 전부가 하나님 말씀이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통계로 상식으로 과학의 이치로 아무리 따져봐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가득차있는데 날로 믿는 것은 누구나 믿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여서 창세기 1장부터 하나님 천지를 지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고 지으신 하나님께서 운영하시되 머리털까지도 세신다는 걸 믿는 게 믿음입니다. 종종 말씀드리지만 자기 머리털 숫자 아는 사람 있습니까. 인류역사에 현존하는 인구가 80억이라고 합니다. 80억 인구의 머리털을 다 계산하라고 하면 셀까요. 하나님은 세십니다. 그걸 믿는 것이 믿습니다. 그리고 나고 빠지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예정과 절대주권 역사가 현실에 닥쳤을 때 이리 빠져나가면 굉장히 복잡하고 많습니다. 사람이 공상 망상이 많지만은 해운대 백사장에 모래알이 얼마나 될까. 몇 천억개 될련가요. 이게 이해가 되는 말입니까. 사람의 세포가 몇 개라고요 대략 100조개랍니다. 그 100조 분의 일 눈에 보이는 세포 안에 뭐가 들었답니까. 쿼크라는 물질이 100조개가 또 들었답니다. 이런 게 믿어집니까. 그리고 그 세포와 물질 하나하나가 다 세고 계십니다. 그래야 전지자가 되겠지요. 이렇게 빠져 들어가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가 작은 물질 하나가 다 예정 주권 섭리로 예정디로 진행되고 능력으로 성취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그 쏟아지는 빗줄기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예정따라 쏟아진다. 한 방울도 예정한 곳에 떨어진다는 거지요.
이런 걸 믿는 걸 가르켜서 믿음이라고 합니다. 절대 예정이란 그런 겁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걸 경외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 믿음에 의해서 생겨지는 게 경외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높이지 않으면 믿음이 적은 사람이거나 없는 사람입니다. 말은 믿고 두려운데 실제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눈초리를 생각하면서 살고 계시는가요. 옆에서 세 살 짜리 아이가 봐도 못할 행동을 아무도 없으면 하는 게 사람입니다. 믿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마음을 붙들어 조심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예정하셨는데 예정의 목적이 우리 구원입니다. 예정의 목적이 우리 구원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운영하면서 다가올 때 이 현실이 무엇을 말하는지 나타내는 겁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손에 잡힌 것과 같이 굳게 믿고. 좋은 현실 형통이 오면 하나님의 예정이고 이건 예정일까 믿기 쉽지 않은데 목적과 연결해서 보면 하나님의 사랑 아닌 것이 없으니까 어떤 걸 만날찌라도 사랑, 감사와 기쁨과 충성으로 오는 겁니다. 믿기 때문에 사랑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도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받은 믿음을 감사하고 성장성이 있다고 했지요. 믿음은 선물인데 사람마다 달라집니다. 종자는 꼭 같은데 길러가는 때에 따라서 과정은 다 다릅니다. 농부의 열심과 실력에 따라서 다릅니다. 믿음이 자라가는 건 다릅니다. 믿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믿음이 다르지 않습니까. 밤예배까지 오는 믿음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 믿음은 다른 겁니다. 제 믿음과 손양원 목사님 믿음이 같겠습니까. 믿음은 성장에 있어서 길러가야한다. 믿음은 무엇으로 자라갑니까. 믿음은 믿음으로 자라갑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고 아는 대로 믿고 아는 그대로 실행할 때 믿음이 자라게되는 것이고 실제 경험체험의 생명의 믿음, 자기를 현실로 하는 믿음이 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걸 전제하고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보라 이걸 생각해봤습니다. 그 말씀하고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굽게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입니다. 인과응보 권선징약이 있습니다. 자연의 모든 역사는 인간의 죄가 직접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은 변동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정직하게 결과를 맺는 게 농사짓는 겁니다. 농사는 그래서 땅은 거짓말을 안 한다고 합니다. 농사는 심는대로 다 됩니다. 하나님의 자연 중에서 가장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이 세상 운영의 원리입니다.
선을 행하면 복 받고 악을 행하면 망하고 뿌린대로 거두고 심는대로 거두고 가꾼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여름철에 땅 흘려 양식 준비하면 걱정이 없는 개미가 되는 것이고 기타 치고 놀면 겨울에 배가 붙어서 얻어먹으러 가는 배짱이가 되는 것이고. 요즘 나오는 책들 노래들 이런 것들은 그런 게 없습니다. 잠깐 세상 이야기지만 한강이라는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답니다. 우리나라가 영광이라고 난리인데 한쪽에서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런데 눈 밝고 믿음있는 아는 사람이 보는 엄청나게 해로운 책이다 그렇다고 합니다. 무조건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런 책들은 함부로 보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노벨상 받은 책이라고 나도 읽어서 보면 아이들 그 속에 엉망이 되는 내용이 있답니다. 인생관이, 사상이 그렇답니다. 읽어본 분들이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온 세상이 전국이 다 영광이라 그러니까 거기 거스르면 맞아 죽습니다. 그래서 못하는 거지요.
세상의 흐름이라는 것을 그래서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는 것을 보라고 살펴보라고 합니다. 일일이 다 몰라도 들썩거리는 그런 때는 알아야하지 정치판에 이 말하면 따라가고 문화에서 이 말하면 따라가고 참 위험천만한 말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 정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곧은 분이고 곧은 게 바른 건데 굽게 하신 게 있습니다. 사람이 좁은 것으로 보니까 그런 겁니다. 그리고 멀리 있는 그런 게 보면 굽게하는 건데 전체를 보면 곱게 되는 겁니다. 물리적인 것이 아니고 원리적으로 이상향적으로 그러는 겁니다. 곧은 하나님의 정직한 역사로 인해서 필요하다는 거지요.
성경 읽고 일한다고 뭐라하는 게 아니고 놀러다니고 게임하고 시험치니까 100점이 나오는 겁니다. 컨닝했겠지 뭔가 이유가 있겠지요. 아무것도 안했는데 빈둥빈둥 놀고 돈만 쓰고 다니는데 죄인인데 복권 하나 샀는데 당첨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운영하시는데 왜 죄짓고 그러는 사람은 잘 먹고 잘 살고 죽을 때도 평안하게 죽고 왜 나는 하나님 말씀 순종한다고 벌벌떠는데 그게 굽은 겁니다. 하나님 역사를 보니까 굽게 보는데 이걸 보니까 시험에 들어버렸습니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이렇게 말하리라. 나도 저자처럼 저렇게 살아버리라 그런다면 믿는 사람의 시대에 그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무슨 연고냐, 심히 곤란합니다. 답이 안 나오는 겁니다. 이해가 안되는 거지요. 뭔가 수학 공식대로 하면 답이 안 나오는 거지요. 원리대로 하면 되는데 안되는 거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고 답이 안나오니까 심히 곤란합니다. 내가 심히 곤란하더니, 이게 중요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어떠합니까.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생각이라는 것은 뭔가 방향을 가지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지 않은 멍 때리는 것입니다. 생각의 방향이 없고 내용이 없으면 멍때리게 됩니다. 그게 맨 마지막에 불교가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의 마지막은 돌이 되는 겁니다. 자기 속에 자기를 다 뽑아버리고 죽여버리는, 이게 생각을 내용을 가지고 생각하는 겁니다. 현재 당면한 자기 곤고를 가지고 왜 이럴까 원인이 뭘까 생각해보는 겁니다.
이 시편 기자가 악인들의 악행과 결과를 보고 이해가 안돼서 생각했는데 이해가 안됐습니다. 그런데 해결이 될 때까지 생각을 했습니다. 이걸 뭐라고 합니다. 그러는 것을 가르켜서 구별이라고 합니다. 그게 거룩이고. 마지막에는 끝이 나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하고 하고 하다보니까 하나님의 성소에 까지 들어갔습니다. 에스겔 성전 밖에서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통과하면서 통과하고 이차문 들어가서 통과 통과해서 선수까지 했습니다. 생각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스테반의 마지막 죄를 보고 이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율법에 철저한 사울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죽인 원수를 향해서 기도하는 것을 생각을 못해봤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겨서 고민을 하는 거고 사울이 성소까지 들어갔습니다. 주님이 의문이 생기면 문제가 생기면 이해가 안되면 생각을 중요한겁니다. 생각을 중요하되 자기 주관가지고 생각하지 말고 불건전한 신비성이 있는 그런 사람들은 생각을 조심해야합니다. 기도는 생각인데 기도를 잘못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됩니다. 자기 주관속으로 들어가고 나중에는 더 악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생각합니다. 성소에 들어가니까 마음이 깨닫게 되는 겁니다. 18절에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해 던지시니 어찌 졸지에 황폐가 되었는가. 브레이크를 하나님께서 빼버린겁니다. 내리막길이니까 그냥 시속 100키로 200키로 달리는 건데 달리는 겁니다. 결과는 파멸인 거지요. 그걸 이 사람이 깨달은 겁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은 것이다. 이런 결과인데 저걸 보고 이해못하고 저렇게 될 뻔 했으니 짐승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했습니다. 이해 못할 그 사람은 이걸 보고 생각을 했고 탈선을 하지 않은 겁니다. 이게 중요한겁니다.
하늘은 어떤 사람을 돕는다고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겁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스스로 도왔습니다. 두 달란트는 노력했습니다. 자포자기한 겁니다. 아무것도 안한겁니다. 그래서 있는 것도 빼앗겨버렸고 다다익선이라고 합니다. 많을수록 좋다는 겁니다. 그게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 가깝지. 다 초월한 것이지만.
자기로써 해결해보려고 발버둥을 친 겁니다. 심히 곤란하더니 많이 생각하고 따져보고 생각도 해 보고 하니까 차마 믿음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셨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해주신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오늘 새벽인가요. 이 세상에 죄 안 짓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곤고함을 당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별의 별 곤고를 다 당합니다. 우리 교회만해도 보기에는 멀쩡하고 행복한 가정이 있는데 들어가면 고민이 있습니다. 그때 사람이 죄를 안 짓는 사람이 없는데 죄를 지었을 때 곤고함을 하는데 일어서는 게 문제고 넘어지면 일어서는 게 문제입니다. 그때 일어서야하고 곤고할 때 노력을 해야하지 주저앉아 있으면 한 달란트 받은자고 낙망죄입니다. 이런 방법이 있는 겁니다.
어떤 죄인도 하나님께서 용서하라고 회개를 하라고 합니다. 가롯유다의 죄가 예수님 팔아먹은 죄로 크지만 더 큰 죄는 회개하지 않은 죄입니다. 낙망한 죄. 예수님 대속을 져버린 죄입니다. 오늘 밤 말씀에서 23절을 기억하십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를 안 지으면 좋은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올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대하는 자세가 문제입니다.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다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