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7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10-27조회 100추천 9
2024년 10월 27일 주일 오후
찬송: 77장, 148장
본문: 레위기 24장 17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구약에 가르치는 필벌의 원칙과 신약의 이치로 가져와서 구원과 연결시켜서 보고 있습니다. 뭐든지 세상에 발견과 발명이라는 게 있습니다. 해석해보자면 찾아낸 것이고 발명은 만들어낸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사람이 만드는 것은 엄밀하게 따지면 넣어놓으신 것을 조립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과학이 대단하다고, 우주선을 쏘아서 올라갔다가 발사체가 다시 돌아와서 앉았다고 합니다.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보통 기술이 아니지요. 다시 돌아와서 쏜 자리에 장착이 되는 신비한거죠. 그런데 원리를 찾아보면 하나님께서 그리 되도록해오셨고 조립해서 만드니까 그리된 겁니다. 원리라 그러고 이치라 그러고 과학이라고 합니다. 모든 지식이라든지 발견과 발명이라는 것들이 기적이라는 거까지도 첫발견이고 대단한 것이 되는 것인데 퍼져서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면 첫 발견한 지식이 퍼져서 알게 되면 그때부터 상식이 되는 겁니다. 신비한 것도 신기한데 일반적으로 되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 아무도 몰랐을 때 누구나 다 하는 겁니다. 우리도 모르지만 휴대폰 만들고 프로그래밍하고 컴퓨터 언어로 조합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술자입니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수천명은 넘겠지요. 아무리 컴퓨터 언어를 아는 게 어려울지라도 지금은 일반적이 된 겁니다. 교리만 그런 게 아니고 세상 지식도 콜롬버스의 달걀이 되는 겁니다. 휴대폰이 처음 나올 때 그렇고 컴퓨터 과학의 기기들이 전부 그랬고 성경 깨달음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이 나올 때 우리나라 교계가 다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말을 안할 뿐이지 제대로 믿는 교회들은 건설 구원 말하는 교회가 거의 없을 겁니다. 자기 것인 것처럼 써먹는거지요. 건설 구원까지는 이해하는데 이론적으로 따져보고 성경을 찾아보면 건설 구원이 안 나오면 설교할 거리가 없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이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쨌든 연결시켜야 되는 겁니다. 상식이 되는 겁니다.
총공회 안에서 머리 되는 두 번째 세 번째 목사님께서 기능 구원은 이해가 안된다고 반대했습니다. 기능 구원이 나오지 않으면 건설 구원은 어떤 면에서 미완성 교리가 됩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일반화가 되지 않을까. 목소리 크게 할 거 없고 옳은 말은 되어있는거지요. 또 하나 상식이라는 것은 쉽기 때문에 심어주면서도 중요한 게 되는 겁니다. 불조심, 교통사고 조심 그런데 계속 말하면 식상해합니다. 예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무리 상식이고 알려진 것일찌라도 계속 말을 해야하는 것이고 본능처럼 되어야합니다.
나는 처음과 나중이다. 알파와 오메가다. 시작과 끝이다. 전부다라는 뜻이지요. 변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분의 모든 역사 작용이 변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느낌이 분해서 펄펄 뛰다가도 가라앉아버립니다. 그래서 감정이라는 것은 이성의 지도를 받고 감성에 따라가야하지 많은 문제가 생겨지게 됩니다. 이성과 감성 뭐가 앞에 가야한다고요. 이성. 좋은 걸 두고도 이성으로 따져봐야합니다. 왜 슬프냐 언제까지 슬픈 것이냐 따져봐야합니다. 화가 나도 나는 화가 낼 만한 것이냐. 아니면 안되는데 그냥 내는 것이냐. 이걸 뭐라고 한다고요. 이성이라고 합니다. 이치를 따지는 마음의 요소.
며칠 전에 부산에 큰 불이 났죠. 큰일났네 그게 감정인데 불나는 거 보고도 왜 났을까. 자기를 돌아보고 생각하고 따지는 요소가 이성이라고 합니다. 그건 빼놓고 엄마가 큰 소리 치니까 울어버리고 그건 감성입니다. 기쁘고 화가나고 슬프고 좋은 걸 네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아무리 희로애락이 있어도 이성을 먼저하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야하고 쉽게 변하지 않아야합니다. 사람은 화가 났다가 좀 지나면 가라앉습니다. 한 번 화가 나면 그 화는 언제까지 화가 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입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갚아줍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그 기쁨은 영원히 갑니다.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 불변성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계속 생각해봐야합니다.
구약에서 가르친 필별의 원칙과 구원. 사람을 쳐 죽인자는 고의적인 살인입니다. 목적을 가지고 개인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을 쳐 죽인 사람은 받드시 죽을 것이다. 짐승을 잡아먹는 것은 죽여야합니다. 쳐 죽이는 것은 감정을 실어서 죽이는 겁니다. 그러면 짐승으로 반드시 갚아라. 때려서 주먹으로 때려서 이마가 깨졌던지 때려서 갚아라. 눈에 빠져서 눈을 빼고 팔도 부러뜨리고 무서운 말입니다. 그래야 미개한 사람들이 알게 되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을 죽였을 때 고의가 아니고 실수로, 이건 해당될지 모르겠지만 미필적 고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하면 직접 죽일 목적은 아니었지만 알면서 그짓하는 걸 미필적 고의라고 합니다. 25층 옥상에서 벽독을 길에 던졌습니다. 맞으면 죽습니다. 그건 실수가 아닙니다. 목적 가지고 계획이 아닐찌라도 그렇습니다. 전혀 그런 뜻이 없었는데 나무하러 갔다가 나무한다고 도끼질했는데 하다보니까 빠져나가서 죽게 만드는 그것 말합니다. 교통사고로 치여서 죽은 것도 술을 먹고 운전하다가 사람을 치어 죽으면 미필적 고의가 되는 겁니다.
접시 물에도 사람이 빠져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합니까. 그게 세상 일이고 세상 사고 어떠겠습니까. 현관문을 열었는데 사람이 죽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정리하면 좀 있는데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인다. 사람을 상하게 한 자는 반드시 상하게 한다. 실수는 예외다.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 구약 시대는 미개한 때 어린 때이기 때문에 성경만 어린 게 아니고 시대가 이때는 3000년 전 즈음 되지요. 온 세상이 전부 다 미개해서 미개하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잔인하고 모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미개하고 어리고 모르기 때문에 어린 사람들에게 알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느끼도록 만들어줘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겁니다. 이때 법을 오늘에 가져와서 이슬람쪽 사람들은 많은 문제가 생기는데 구약의 복을 이치를 가져와서 신령하게 해석을 해서 법을 가지고 그 속에서 가르친 원리가 뭐냐 이치가 뭐냐 그걸 적용시키는 겁니다.
사람을 죽였다는 말은 미워했다는 말이다. 나는 살인자가 됩니다. 그런데 마음 속으로 미워하는 게 한순간 그런 게 아니고 미워하는 그게 있는 동안은 살인하는 요소가 되는 겁니다. 구약에는 사람을 쳐 죽이면 그 사람 목숨을 빼앗아버립니다. 다른 사람이 죽이지 못하고 처벌을 못하니까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했으니까 살인자가 된다는 뜻이구나. 미워하는 그 요소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고 구원을 절단내는 걸 말하는 겁니다. 상하게 하는 것도 구원을 손해시키는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과 행동과 언행과 생각과 손해보게 다른 사람을 멀어지게 만드는 나의 말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고 다만 살아가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사함을 받는 허물의 죄가 되는 것이고. 외국인과 본토인이 하게 되는 것이고 동일하게 하라고 했는데 이걸 가지고 하면 불택자들도 처벌에 대한 것이 있을 것이고 불택자도 하나님께서 통치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가지로 정리하면서 구원에 기능구원과 같이 되는 겁니다. 기본구원을 오전에 의미와 자격과 은혜라는 걸로 생각해봤습니다. 기본구원이란 이런 것으로 사람을 천국가게 만드는 게 기본구원입니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거기 보면 영 죽을 나를이라고 되어있는데 영 죽은 나를 로 바꿨습니다. 에베소서 2장 찾아보실까요. 에베소서 2장. 1절입니다. 죽을 너희들이었씁니까 죽은 우리들입니까. 영 죽은 우리를 살린 겁니다. 기본 구원의 의미입니다. 지옥에서 건짐받은 겁니다. 택함과 대속입니다. 같이 가지만은 반드시 대속이 있고 그러는 겁니다. 전적 은혜고 믿음으로 받습니다. 정리해봤고 건설구원은 뭐냐 천국 간 사람이 영원히 자기 할 일을 만드는 게 건설 구원입니다. 그래서 건설 구원은 자체 성화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닮은 사람으로 영화되는 거 중요한 것이고 성화되는 것이다. 나의 심신은 기능이 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능으로 화하는 것, 하나님의 형상대로 기능을 가지고 영원히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활동하는 겁니다.
어떤 유명한 공을 잘 차는 사람도 좋고 실력있는 축구선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축구선수를 아무도 안 뽑아줍니다. 그러면 못 하는거지요. 아무리 사람이 좋고 실력이 있어도 무대가 없으면 못하는 겁니다. 회사에서 사람 뽑을 때는 실력있고 그러면 펼쳐봐라, 충추맨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은 저기 충청도 충주에 있는 말단 공무원인데 인터넷을 뽑아서 충주시를 전국에 홍보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사람을 그렇게 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 충주시작이랍니다. 마음껏 네 실력을 펼쳐봐라. 영원토록 천국에 가서 무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무대에는 뭐가 포함이 되느냐 말하자면 소유도 지휘도 영광도 상급도 이걸 세 번째 건설구원입니다.
이게 절대적인 건 아니고 이렇게 딱 파악해볼 수 있습니다. 기능 구원이라는 것은 건설구원에 속한 것인데 자체라는 것은 됨됨 인격입니다. 많은 것이 있어서 사람은 가치관이 있으나 인격과 기능의 실력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몹쓸 놈인데 실력은 뛰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공부하는 건 기능입니다. 기능이란 뭐냐. 재주 기 자입니다. 내 몸이 연습으로 익혀진 걸 말합니다. 연습하지 않으면 타고나도 연습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다. 연습으로 되는 것을 재주라고 합니다. 사람의 몸이 있습니다. 마음이 있습니다.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마음은 물질입니까 아닙니까. 마음은 그런데 신비한 물질입니다. 왜 신비한 물질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공을 초월하니까 연습은 익힐 습자라서 마음에도 익숙해집니다.
암기는 몸에 합니까 마음에 합니까. 암산은 몸입니까 마음입니까. 마음 요소지요. 지식은 마음이라는 겁니다. 마음도 연습으로 되는 겁니다. 사람의 영은 다른 존재고 심신을 통치하는 실력이 마음과 몸이라는 것이 태어나서 세상 떠나는 날까지 함께 가는 게 시간, 세월과 함께 갑니다. 이걸 같이가는 겁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루 하루 살아갑니다. 같이 소모가 되고 쓰여집니다. 활동한다는 뜻이고 움직인다는 뜻이지요. 태어나서 100년을 살았습니다. 100년 동안 살았는데 그 사람이 무엇을 했던지 많이 먹었을 것이고 많이 잤을 것이고 공부했을 것이고 일했을 것이고 그 평생을 100년을 살아간 활동이라는 것을 만든 에너지 동력이 뭐냐 그걸 정력이라고 합니다. 힘입니다. 심신의 마음과 활동에 마음과 몸을 움직이게 만들고 정력에 의해서 움직이면 손해되어서 없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뭔가를 만들어내느 겁니다. 이루어내고. 표가 안 날 뿐입니다. 그러면 심신이 정력이라는 에너지로 인해서 움직여지면 지금은 도시가스인데 가스집안에 가스통을 가져다놨습니다. 가스레인지에 불이 활활 타올라옵니다. 가스레인지 불을 켜니까 음식을 다 해먹는데 두어달 쓰고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힘 에너지 정력이 있고 힘이 다 떨어지면 사람은 축 쳐져버립니다. 기운이 다 떨어지면 세상을 떠나는 겁니다. 사람은 꼼지락거리는 것은 그만큼이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그러면 그 힘을 가지고 활동하는데 활동을 하면은 글을 쓰든지 글을 읽던지 그림을 그리던지 달리기를 하던지 공부하던지 기술 배우던지 하면 하는 만큼 그것에 대해서 익숙해지게 되는 겁니다. 그림을 자꾸 그리면 아무리 못 그리는 사람도 그리게 되는 겁니다. 붓 글씨를 쓰다보면 아무리 못 써도 나중에는 잘 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세 살짜리 그림그리는데 낙서입니다. 네 살 되니까 틀이 잡힙니다. 다섯 되니까 잡힙니다. 나중에는 제법 그림 같습니다. 그렇게 세월 자꾸하다보니까 점점하게 되는 걸 가르켜 뭐라고 한다고요. 기능이라고 합니다.
나쁜 것을 자꾸 보고 듣고 접하면 익어집니다. 기능이라는 것은 버릇과 같은 것이라서 세상 버릇이 여든까지 갑니다. 한 번 나쁜 기능을 익혀놓으면 평생 못 배웁니다. 그래서 본문과 연결시켜보면 사람을 쳐 죽인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사람을 미워하면 살인자기 때문에 죽는다. 사람을 미워하는 우리 요소를 죽는 겁니다. 다른 사람 구원을 소외시키는 그것은 죽는 겁니다. 한 번 죽는 기능은 회복이 안되는 겁니다. 다시 세상 말이지만 사람 몸에 세포가 100조개, 그 안에 쿼크라는 요소가 100조개가 들었습니다. 과학자가 말한 겁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얼마나 미세한 요소로 완전히 남게 되는 거지요. 일평생 사람이 살아가며 전부 뽑아냅니다. 죽은 사람은 다 부활합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불에 태워서 장례치르는 걸 화장이라고 합니다. 수장이라는 건 물 속에 넣는 겁니다. 부활할 때 어떻게 부활하냐. 사람의 몸이 죽으면 기독교는 매장을 했습니다. 토장하면 흙으로 갑니다. 부활하면 죽을 때 그 모습 그대로 부활합니다. 그 죽어서 고기밥이 되고 없어졌다면 어떻게 모아서 부활시킵니까.
그래서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인다 뭐가 죽고 뭐가 상하느냐, 내 눈이 너를 범죄케하면 빼버리라. 말하자면 천국 지옥가는게 부분적으로 죄 지은 것은 빼버려야합니까. 빼고 자르고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능 요소를 말하는 겁니다.
정리합니다. 사람을 죽인자는 자기도 죽고 상한다. 필멸의 원칙입니다. 이걸 강조하는 겁니다. 사람의 심신은 정으로 활동하고 기능을 만들어내는데 한 순간도 빠짐이 없고 예외가 없습니다. 심신의 기능이고 건설구원의 종착점이 되는 것입니다. 건설 구원이 되는 것이고 심신의 기능이 죽어버리면 천국 때문에 멸시천대 조롱은 없습니다. 그런데 영원토록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 고치기 위해서 필요한 말이지 좋은 말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얻어먹어야합니다. 이런 미래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의 생각하나 기능구원과 연결시켜서 조심스럽게 살아야하겠는데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게 귀신입니다. 그게 우리의 진짜 원수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77장, 148장
본문: 레위기 24장 17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구약에 가르치는 필벌의 원칙과 신약의 이치로 가져와서 구원과 연결시켜서 보고 있습니다. 뭐든지 세상에 발견과 발명이라는 게 있습니다. 해석해보자면 찾아낸 것이고 발명은 만들어낸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사람이 만드는 것은 엄밀하게 따지면 넣어놓으신 것을 조립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과학이 대단하다고, 우주선을 쏘아서 올라갔다가 발사체가 다시 돌아와서 앉았다고 합니다.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보통 기술이 아니지요. 다시 돌아와서 쏜 자리에 장착이 되는 신비한거죠. 그런데 원리를 찾아보면 하나님께서 그리 되도록해오셨고 조립해서 만드니까 그리된 겁니다. 원리라 그러고 이치라 그러고 과학이라고 합니다. 모든 지식이라든지 발견과 발명이라는 것들이 기적이라는 거까지도 첫발견이고 대단한 것이 되는 것인데 퍼져서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면 첫 발견한 지식이 퍼져서 알게 되면 그때부터 상식이 되는 겁니다. 신비한 것도 신기한데 일반적으로 되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 아무도 몰랐을 때 누구나 다 하는 겁니다. 우리도 모르지만 휴대폰 만들고 프로그래밍하고 컴퓨터 언어로 조합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술자입니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수천명은 넘겠지요. 아무리 컴퓨터 언어를 아는 게 어려울지라도 지금은 일반적이 된 겁니다. 교리만 그런 게 아니고 세상 지식도 콜롬버스의 달걀이 되는 겁니다. 휴대폰이 처음 나올 때 그렇고 컴퓨터 과학의 기기들이 전부 그랬고 성경 깨달음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이 나올 때 우리나라 교계가 다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말을 안할 뿐이지 제대로 믿는 교회들은 건설 구원 말하는 교회가 거의 없을 겁니다. 자기 것인 것처럼 써먹는거지요. 건설 구원까지는 이해하는데 이론적으로 따져보고 성경을 찾아보면 건설 구원이 안 나오면 설교할 거리가 없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이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쨌든 연결시켜야 되는 겁니다. 상식이 되는 겁니다.
총공회 안에서 머리 되는 두 번째 세 번째 목사님께서 기능 구원은 이해가 안된다고 반대했습니다. 기능 구원이 나오지 않으면 건설 구원은 어떤 면에서 미완성 교리가 됩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일반화가 되지 않을까. 목소리 크게 할 거 없고 옳은 말은 되어있는거지요. 또 하나 상식이라는 것은 쉽기 때문에 심어주면서도 중요한 게 되는 겁니다. 불조심, 교통사고 조심 그런데 계속 말하면 식상해합니다. 예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무리 상식이고 알려진 것일찌라도 계속 말을 해야하는 것이고 본능처럼 되어야합니다.
나는 처음과 나중이다. 알파와 오메가다. 시작과 끝이다. 전부다라는 뜻이지요. 변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분의 모든 역사 작용이 변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느낌이 분해서 펄펄 뛰다가도 가라앉아버립니다. 그래서 감정이라는 것은 이성의 지도를 받고 감성에 따라가야하지 많은 문제가 생겨지게 됩니다. 이성과 감성 뭐가 앞에 가야한다고요. 이성. 좋은 걸 두고도 이성으로 따져봐야합니다. 왜 슬프냐 언제까지 슬픈 것이냐 따져봐야합니다. 화가 나도 나는 화가 낼 만한 것이냐. 아니면 안되는데 그냥 내는 것이냐. 이걸 뭐라고 한다고요. 이성이라고 합니다. 이치를 따지는 마음의 요소.
며칠 전에 부산에 큰 불이 났죠. 큰일났네 그게 감정인데 불나는 거 보고도 왜 났을까. 자기를 돌아보고 생각하고 따지는 요소가 이성이라고 합니다. 그건 빼놓고 엄마가 큰 소리 치니까 울어버리고 그건 감성입니다. 기쁘고 화가나고 슬프고 좋은 걸 네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아무리 희로애락이 있어도 이성을 먼저하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야하고 쉽게 변하지 않아야합니다. 사람은 화가 났다가 좀 지나면 가라앉습니다. 한 번 화가 나면 그 화는 언제까지 화가 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입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갚아줍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그 기쁨은 영원히 갑니다.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 불변성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계속 생각해봐야합니다.
구약에서 가르친 필별의 원칙과 구원. 사람을 쳐 죽인자는 고의적인 살인입니다. 목적을 가지고 개인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을 쳐 죽인 사람은 받드시 죽을 것이다. 짐승을 잡아먹는 것은 죽여야합니다. 쳐 죽이는 것은 감정을 실어서 죽이는 겁니다. 그러면 짐승으로 반드시 갚아라. 때려서 주먹으로 때려서 이마가 깨졌던지 때려서 갚아라. 눈에 빠져서 눈을 빼고 팔도 부러뜨리고 무서운 말입니다. 그래야 미개한 사람들이 알게 되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을 죽였을 때 고의가 아니고 실수로, 이건 해당될지 모르겠지만 미필적 고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하면 직접 죽일 목적은 아니었지만 알면서 그짓하는 걸 미필적 고의라고 합니다. 25층 옥상에서 벽독을 길에 던졌습니다. 맞으면 죽습니다. 그건 실수가 아닙니다. 목적 가지고 계획이 아닐찌라도 그렇습니다. 전혀 그런 뜻이 없었는데 나무하러 갔다가 나무한다고 도끼질했는데 하다보니까 빠져나가서 죽게 만드는 그것 말합니다. 교통사고로 치여서 죽은 것도 술을 먹고 운전하다가 사람을 치어 죽으면 미필적 고의가 되는 겁니다.
접시 물에도 사람이 빠져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합니까. 그게 세상 일이고 세상 사고 어떠겠습니까. 현관문을 열었는데 사람이 죽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정리하면 좀 있는데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인다. 사람을 상하게 한 자는 반드시 상하게 한다. 실수는 예외다.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 구약 시대는 미개한 때 어린 때이기 때문에 성경만 어린 게 아니고 시대가 이때는 3000년 전 즈음 되지요. 온 세상이 전부 다 미개해서 미개하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잔인하고 모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미개하고 어리고 모르기 때문에 어린 사람들에게 알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느끼도록 만들어줘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겁니다. 이때 법을 오늘에 가져와서 이슬람쪽 사람들은 많은 문제가 생기는데 구약의 복을 이치를 가져와서 신령하게 해석을 해서 법을 가지고 그 속에서 가르친 원리가 뭐냐 이치가 뭐냐 그걸 적용시키는 겁니다.
사람을 죽였다는 말은 미워했다는 말이다. 나는 살인자가 됩니다. 그런데 마음 속으로 미워하는 게 한순간 그런 게 아니고 미워하는 그게 있는 동안은 살인하는 요소가 되는 겁니다. 구약에는 사람을 쳐 죽이면 그 사람 목숨을 빼앗아버립니다. 다른 사람이 죽이지 못하고 처벌을 못하니까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했으니까 살인자가 된다는 뜻이구나. 미워하는 그 요소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고 구원을 절단내는 걸 말하는 겁니다. 상하게 하는 것도 구원을 손해시키는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과 행동과 언행과 생각과 손해보게 다른 사람을 멀어지게 만드는 나의 말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고 다만 살아가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사함을 받는 허물의 죄가 되는 것이고. 외국인과 본토인이 하게 되는 것이고 동일하게 하라고 했는데 이걸 가지고 하면 불택자들도 처벌에 대한 것이 있을 것이고 불택자도 하나님께서 통치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가지로 정리하면서 구원에 기능구원과 같이 되는 겁니다. 기본구원을 오전에 의미와 자격과 은혜라는 걸로 생각해봤습니다. 기본구원이란 이런 것으로 사람을 천국가게 만드는 게 기본구원입니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거기 보면 영 죽을 나를이라고 되어있는데 영 죽은 나를 로 바꿨습니다. 에베소서 2장 찾아보실까요. 에베소서 2장. 1절입니다. 죽을 너희들이었씁니까 죽은 우리들입니까. 영 죽은 우리를 살린 겁니다. 기본 구원의 의미입니다. 지옥에서 건짐받은 겁니다. 택함과 대속입니다. 같이 가지만은 반드시 대속이 있고 그러는 겁니다. 전적 은혜고 믿음으로 받습니다. 정리해봤고 건설구원은 뭐냐 천국 간 사람이 영원히 자기 할 일을 만드는 게 건설 구원입니다. 그래서 건설 구원은 자체 성화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닮은 사람으로 영화되는 거 중요한 것이고 성화되는 것이다. 나의 심신은 기능이 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능으로 화하는 것, 하나님의 형상대로 기능을 가지고 영원히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활동하는 겁니다.
어떤 유명한 공을 잘 차는 사람도 좋고 실력있는 축구선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축구선수를 아무도 안 뽑아줍니다. 그러면 못 하는거지요. 아무리 사람이 좋고 실력이 있어도 무대가 없으면 못하는 겁니다. 회사에서 사람 뽑을 때는 실력있고 그러면 펼쳐봐라, 충추맨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은 저기 충청도 충주에 있는 말단 공무원인데 인터넷을 뽑아서 충주시를 전국에 홍보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사람을 그렇게 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 충주시작이랍니다. 마음껏 네 실력을 펼쳐봐라. 영원토록 천국에 가서 무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무대에는 뭐가 포함이 되느냐 말하자면 소유도 지휘도 영광도 상급도 이걸 세 번째 건설구원입니다.
이게 절대적인 건 아니고 이렇게 딱 파악해볼 수 있습니다. 기능 구원이라는 것은 건설구원에 속한 것인데 자체라는 것은 됨됨 인격입니다. 많은 것이 있어서 사람은 가치관이 있으나 인격과 기능의 실력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몹쓸 놈인데 실력은 뛰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공부하는 건 기능입니다. 기능이란 뭐냐. 재주 기 자입니다. 내 몸이 연습으로 익혀진 걸 말합니다. 연습하지 않으면 타고나도 연습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다. 연습으로 되는 것을 재주라고 합니다. 사람의 몸이 있습니다. 마음이 있습니다.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마음은 물질입니까 아닙니까. 마음은 그런데 신비한 물질입니다. 왜 신비한 물질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공을 초월하니까 연습은 익힐 습자라서 마음에도 익숙해집니다.
암기는 몸에 합니까 마음에 합니까. 암산은 몸입니까 마음입니까. 마음 요소지요. 지식은 마음이라는 겁니다. 마음도 연습으로 되는 겁니다. 사람의 영은 다른 존재고 심신을 통치하는 실력이 마음과 몸이라는 것이 태어나서 세상 떠나는 날까지 함께 가는 게 시간, 세월과 함께 갑니다. 이걸 같이가는 겁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루 하루 살아갑니다. 같이 소모가 되고 쓰여집니다. 활동한다는 뜻이고 움직인다는 뜻이지요. 태어나서 100년을 살았습니다. 100년 동안 살았는데 그 사람이 무엇을 했던지 많이 먹었을 것이고 많이 잤을 것이고 공부했을 것이고 일했을 것이고 그 평생을 100년을 살아간 활동이라는 것을 만든 에너지 동력이 뭐냐 그걸 정력이라고 합니다. 힘입니다. 심신의 마음과 활동에 마음과 몸을 움직이게 만들고 정력에 의해서 움직이면 손해되어서 없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뭔가를 만들어내느 겁니다. 이루어내고. 표가 안 날 뿐입니다. 그러면 심신이 정력이라는 에너지로 인해서 움직여지면 지금은 도시가스인데 가스집안에 가스통을 가져다놨습니다. 가스레인지에 불이 활활 타올라옵니다. 가스레인지 불을 켜니까 음식을 다 해먹는데 두어달 쓰고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힘 에너지 정력이 있고 힘이 다 떨어지면 사람은 축 쳐져버립니다. 기운이 다 떨어지면 세상을 떠나는 겁니다. 사람은 꼼지락거리는 것은 그만큼이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그러면 그 힘을 가지고 활동하는데 활동을 하면은 글을 쓰든지 글을 읽던지 그림을 그리던지 달리기를 하던지 공부하던지 기술 배우던지 하면 하는 만큼 그것에 대해서 익숙해지게 되는 겁니다. 그림을 자꾸 그리면 아무리 못 그리는 사람도 그리게 되는 겁니다. 붓 글씨를 쓰다보면 아무리 못 써도 나중에는 잘 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세 살짜리 그림그리는데 낙서입니다. 네 살 되니까 틀이 잡힙니다. 다섯 되니까 잡힙니다. 나중에는 제법 그림 같습니다. 그렇게 세월 자꾸하다보니까 점점하게 되는 걸 가르켜 뭐라고 한다고요. 기능이라고 합니다.
나쁜 것을 자꾸 보고 듣고 접하면 익어집니다. 기능이라는 것은 버릇과 같은 것이라서 세상 버릇이 여든까지 갑니다. 한 번 나쁜 기능을 익혀놓으면 평생 못 배웁니다. 그래서 본문과 연결시켜보면 사람을 쳐 죽인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사람을 미워하면 살인자기 때문에 죽는다. 사람을 미워하는 우리 요소를 죽는 겁니다. 다른 사람 구원을 소외시키는 그것은 죽는 겁니다. 한 번 죽는 기능은 회복이 안되는 겁니다. 다시 세상 말이지만 사람 몸에 세포가 100조개, 그 안에 쿼크라는 요소가 100조개가 들었습니다. 과학자가 말한 겁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얼마나 미세한 요소로 완전히 남게 되는 거지요. 일평생 사람이 살아가며 전부 뽑아냅니다. 죽은 사람은 다 부활합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불에 태워서 장례치르는 걸 화장이라고 합니다. 수장이라는 건 물 속에 넣는 겁니다. 부활할 때 어떻게 부활하냐. 사람의 몸이 죽으면 기독교는 매장을 했습니다. 토장하면 흙으로 갑니다. 부활하면 죽을 때 그 모습 그대로 부활합니다. 그 죽어서 고기밥이 되고 없어졌다면 어떻게 모아서 부활시킵니까.
그래서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인다 뭐가 죽고 뭐가 상하느냐, 내 눈이 너를 범죄케하면 빼버리라. 말하자면 천국 지옥가는게 부분적으로 죄 지은 것은 빼버려야합니까. 빼고 자르고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능 요소를 말하는 겁니다.
정리합니다. 사람을 죽인자는 자기도 죽고 상한다. 필멸의 원칙입니다. 이걸 강조하는 겁니다. 사람의 심신은 정으로 활동하고 기능을 만들어내는데 한 순간도 빠짐이 없고 예외가 없습니다. 심신의 기능이고 건설구원의 종착점이 되는 것입니다. 건설 구원이 되는 것이고 심신의 기능이 죽어버리면 천국 때문에 멸시천대 조롱은 없습니다. 그런데 영원토록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 고치기 위해서 필요한 말이지 좋은 말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얻어먹어야합니다. 이런 미래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의 생각하나 기능구원과 연결시켜서 조심스럽게 살아야하겠는데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게 귀신입니다. 그게 우리의 진짜 원수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