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7일 금밤
김동민2024-09-27조회 95추천 13
2024년 9월 27일 금밤
찬송: 122장, 157장
본문: 창세기 45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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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제목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하자 인데 전체적으로는 중심 내용은 목적을 위한 예정의 진행과 주권이 내용이고 그 출발이 현실의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 순종하자는 겁니다. 여기 보니까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이 7절에 요셉의 말이 단순히 그때 상황만 가지고 알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요셉의 깨달음은 야곱의 아들이고 야곱은 이삭의 아들이고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번 주일 날 구약성경 연대를 공부할 건데 많은 조상들의 산 경우가 많이 겹칩니다. 아담을 본 자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때 아브라함은 보지못했겠고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았고 하니까 이삭이 60세에 쌍둥이 낳았습니까 요셉을 낳아서 아브라함이 보지못했을 건데 야곱을 통해서 할아버지 이삭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후원을 듣고 알았을 겁니다.
너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고 했는데 그 말씀의 약속을 변치않는 말씀인데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낳았고 그런데 에서는 넓은 길로 가버렸고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증조할아버지이죠. 믿음의 조상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는데 이삭 할아버지 만났고 떠나셨고 아버지가 열 두 아들 낳았으니까 아브라함에게 주신 번성이 우리부터 시작하겠구나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자기는 하나님의 뜻만 찾아서 전력했는데 오다 보니까 총리까지 인도를 하신 겁니다. 네비게이션을 찍어놓고 기계니까 안 맞지만은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달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그 인도만 따라가다 보니까 총리까지 왔고 총리가 된 다음에 하나님께서 증조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많은 자손들의 번식이 이삭 할아버지도 그냥 가셨고 아버지 때 열 두 아들 낳았으니까 비로소 번성하겠고 열 두 아들에서 아이 낳기 시작하면 아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는 거겠지요.
조례 목사님이 여덟을 낳았습니다. 5명씩 나으면 40명 됩니다. 그게 또 5명씩 낳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게 계산 상으로 나오는 거지요. 자기들 때부터 자손이 본격적으로 번성되는 겁니다. 터가 있어야하는데 터전을 하나님께서 애굽에다 마련해 놓으셨구나. 그리고 야곱에게는 내려가라 함께가겠다. 그리고 다시 불러오겠다. 이 때 애굽에 이스라엘이 200만명 가까운 숫자가 번성되었을 때 내다본 겁니다. 하나님께서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그게 모두 믿음의 자손들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앞서 보내셨나니, 개인적인 자손으로써는 고난이었고 역경이었지만 믿음으로 하고 순종하고 그리했을 때 그 결과를 보고 이거는 내가 잘나 된 것이 아니고 나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나 하나 출세 시키려고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번식시키려는 일이다. 그렇게 말해도 형들은 그 세계를 모르는 겁니다.
백 목사님이 설교하셔도 그 밑에 배웠지만 모르는 게 많았고 제가 뭐 그런 것이 아니고 말씀을 전해도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니까 알았고 사실을 말했고 형들은 몰랐고 그 형들에게 원한이라던지 복수심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고 교만이라는 게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종들이 들어갔을 때 하나같이 전부다 겸손하려고 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겁니다. 마음에 없는 것을 연극으로 하던지 억지로 하는 것은 밑천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사울은 겸손했습니다. 처음에, 나는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작은 지파, 무슨 지파요. 가장 작은 지파가 베냐민 지파, 왜 작습니까. 똑똑하고 머리 좋고 실력 있거든요. 아주 실력있고 그런데 실력있다보니까 고집이 세서 제멋대로 절단 날 뻔 했지요. 거의 다 죽어버리고 몇 명 남습니까 600명 빼고 다 죽었습니다. 그 집안은 가장 작은 집안입니다. 잘났는데 키도 모든 사람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는데 겸손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까지고 자기를 몰랐기 때문에 왕 되고 나니까 교만함이 나와버렸습니다.
제목은 앞에 잠깐 설명드린대로 전체 출발점을 말씀드린 것이다. 우리들에게서 출발점이라는 겁니다. 최종 목적입니다. 최종 종점이라는 표현이 애매하나, 역사 세계 이루어가는 구원 역사 관점에서 보면 종점, 종착점이 됩니다. 개인적인 종말은 되는 거고 영원하지만 그렇다는 거지요. 출발은 영원 전인데 현재로 말하면 각자 현실이 목적을 향한 출발점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최종의 뜻이고 그 뜻을 이루는 요소의 뜻, 분자의 뜻 그 뜻이 현실마다 담겨있다고 합니다. 이해가 되시는지요. 하나님의 목적은 최종의 뜻입니다. 전체 뜻이고 그 전체를 이루어가는 요소 요소, 분자 분자 그 분자 분자 요소 요소들이 우리 현실 속에 담겨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순종하는 것이 그렇게 제목으로 정한겁니다.
하나님 목적은 최종 목적입니다. 전체적인 뜻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목적지는 양성원을 위해서 신풍 교회입니다. 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두 시간 정도 세 시간 그 정도 걸립니다. 휴게소 있고 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걸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있고 최종, 이거는 무형의 세계를 두고 설명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목적의 세계가 있고 목적 세계를 향해 가는 진행되는 예정이고 실질적으로 이루어가는 게 성취라 그런 뜻입니다. 이런 면으로 연결시켜보면 하나님을 향한 예정의 진행되는 진행과 주권 성취의 현장, 우리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양성원 위해서 신풍교회를 가는 뭐가 됩니까. 현장은 주로 뭐가 됩니까. 고속도로가 되지 않겠습니까. 고속도로를 계속 가는 거지요. 하나님의 예정이 진행되고 예정대로 주권 능력이 성취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그 말입니다. 그 현실에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진행이 되고 있는 겁니다. 복잡하지 않은 그래서 이걸 기억하면서 목적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게 예정인데 예정대로 이루어지는 게 주권 성취인데 내가 살아가는 많은 것이 현장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목적 세계는 무형의 시공을 초월한 세계입니다. 무형의 신령한 세계를 유형의 형체가진 물질세계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리기 때문에 길러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린 사람에게 가르치면 어릴 때는 어려서, 어지간하게 머리가 좋아도 유치원 때는 세 살 때는 어린이 교재를 가지고 알아듣지 특별한 천재라고 할지라도 대학 교재를 가져다 놓으면 모르는 거지요. 그래서 하나씩 기초를 쌓아가면서 이게 생명이 자라가는 과정입니다. 모든 생명은 그러기 때문에 자라는 것이고 환경이 필요한 것이고, 신령한 나라인데 신령한 세계를 건설하는 게 물질 세계를 통해서 가르치고 있다는 걸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요셉의 여기 아는대로 하나님의 백성들, 열 두 지파의 자손들을 이 땅에 두시려고 번성시키시려고 요셉을 출발점에 세우신겁니다. 애굽의 총리로 세운 것이고 가기까지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몇 가지 생각해보면, 그래서 요셉의 여러 가지가 있는건데 그때 여러 가지 중에서 하나가 빠져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요셉이 종으로 팔려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랬으면 감옥에 안 갔겠지요. 누구를 못 만납니까 두 관원을 못만났고 꿈해몽도 없었고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할 수 없었겠지요. 이게 다 맞물려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앞에서 가면 두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주고 청탁을 하지요. 좋은 꿈이니까 당신이 복직하면 나를 좀 빼서 바로께 말씀드려서 돌려보내주십시오. 나는 히브리 사람이고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실제로 되었을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부탁을 쉽게 빼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잊을 수가 없는 건데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때 복직하고 요셉을 빼서 집에 보내버렸다면 총리는 없는거지요. 잊어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되어진 거지요.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지 않았다면 팔아먹었겠습니까. 시기해서 팔아먹었지요. 아버지의 편애가 있으니까 야곱의 편애라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는데 심한 만큼 하니까 시기하는 거지요. 왜 야곱이 요셉의 편에 듭니까. 사랑하는 아내 라헬 때문에. 라헬을 요셉이 야곱이 왜 만나게 됐습니까. 도망치는 바람에. 첫 눈에 가버렸지요. 왜 야곱이 도망쳐왔습니까. 형의 축복을 가로채버렸습니까. 왜 가로챘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고 싶어서, 야곱의 성향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성향이 있는데 야곱과 에서가 쌍둥이로 나지 않았다면. 야곱이 먼저 났다면 그럴 수가 없는 거지요. 리브가의 아들로 나지 않았다면 그러면 하나도 뗄 것이 없는 겁니다. 그런 큰 게 있는데 요셉의 생애 중에서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지만 변환점 그때가 그게 그것을 만드는 그런 과정이 또 있는 거지요.
에서가 사냥을 하지 않았으면 안 팔아먹었겠지요. 큰 것을 짚어서 이랬다만 뗄 것이 없는데 그 중에 다시 들어가서 이루는 중간에 가면 뗄 것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여기서 신풍 가려면 자동차 타고 가야합니다. 교회에서 출발합니다. 주차장에 출발하는데 삼일약국 앞에서 우회전하고 터널로 가서 고속도로 진입을 합니다. 만약 여기서 주차장에서 삼일약국 가는 거 빼버리고 수정터널 바로 갈 수 있습니까. 안되는 거지요. 가는 과정에 한 토막이라도 빠지면 안 이루어진다는 거지요.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되어있는 겁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나게 된 계기는 아버지 심부름을 봤기 때문에, 마침 그날 골리앗이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이 심부름 갔다가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거죠. 이게 어긋났다면 다윗이 심부름 가기 전이라던지 난 다음에 골리앗이 나와서 욕을 했다면 안 맞은건데, 그때 나타나서 소리 지르고 이스라엘을 흉보고 그 때에 들었다는 거지요.
이게 하나님의 예정이고 그렇게 맞춘겁니다. 그리고 그 말 듣고 분이나서 빠져들었고 그 말을 듣고 만약에 다른 사람들처럼 겁이 들었다면 몰랐겠지요. 다 도망치는데 말 듣고 도망가버렸다면 이루어지지 않는 거지요. 골리앗을 잡았습니다. 잡았는데 그리고 나서 사울의 장군이 되어서 가는 곳마다 승리하고 돌아오는데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없었다면 있어도 못 들었다면 무슨 일이 생깁니까. 다윗에 대한 시기도 없었겠지요. 그러면 도망다니는 생활을 안했다는겁니다. 그러면 그냥 있었다면 나라가 누구한테 넘어갑니까. 요나단한테 넘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도망다녔습니다. 왕이 되고 난 다음에 계속 올라갑니다. 왕이 되고 난 다음에 다윗이 밧세바를 만나지 않았다면 엄청나게 큰 죄지요. 다윗의 가장 큰 하나의 죄입니다. 그런데 안 만났다면 뺏지 않았겠지요. 그랬다면 누가 안 나옵니까. 그 죄를 안 지으면 솔로몬이 안 나오는거지요. 솔로몬이 안 나오면 다윗의 아들로 이어지는 대가 없을 것이고 솔로몬이 나지 않았다면 성전이 없는 거지요. 밧세바를 만남으로 큰 죄를 지었고 그 죄를 지음으로 집안이 엉망이 된 겁니다. 그랬는데 솔로몬이 났고 성전 건축이 됐고 다윗이라는 사람은 차원이 다른 사람이 된 겁니다.
이게 성경을 이렇게 보고 안 좋게 보면 엉망이 되는 건데 하나님의 예정이고 주권 섭리가 기묘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들이 세상도 하나님의 목적을 예정에 주권과 성취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때 과정에서 예정이지만은 요셉이 쓰임받는 것과 달랐고 다윗의 쓰임과 사울의 쓰임은 다른 거겠지요.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나갔고 사울은 교만하니까 탈선해버린겁니다. 그러니까 전체 목적을 두고 진행하시는대로 하시는데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겁니다. 요셉이 아버지 사랑 듬뿍 받다가 형들에게 팔지 말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 과정은 어려웠을 것이고 누명쓰고 갈 때 완전히 매장당하는 게 되는 겁니다.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청탁이 없는데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과정 과정에 원망할만하고 낙심할만하고 별의 별 그런 난관 역경들이 많았지만은 흔들리지를 않았다는 거지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뜻을 찾아 순종하는 게 전부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크게 설교를 위해서 설교해서 예를 들지만은 요셉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에정이 그 속에는 요셉만 들었습니까. 아버지도 들었고 에서도 들었고 이삭도 들었고 그 속에 우리도 들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생애가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어가서 요셉과 다윗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의 것이 6000년 세월의 이 세상 역사가 예정의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정 속에 들지 않은 게 될 수 없는 것이고 그 주권이 없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큰 예정 속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같이 진행이 되고 있는 겁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내리는 게 내려와서 많아지고 더 많아지고 더 많아져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거지요. 물방울은 더 작은 요소 입자가 되는 겁니다. 물질도 보면 그런 겁니다. 세포가 없으면 사람의 손가락도 없고 발가락도 없는 겁니다. 세포들에게 해서 손톱 발톱 이목구비 전부 다 있는데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거지요. 그러면서 전부 다가 유기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몸을 이루고 있는거지요. 이 손목 시계는 기계식입니다. 전자식 기계식이라서 안에 보이는데 부속이 몇 개인지는 모르겠는데 맞물려 돌아갑니다. 그런데 수 많은 부속들이 안 돌아가면 안되는거지요. 그 많은 게 전부 맞물려 돌아가는 거지요. 기계식 자동차, 2만개인데 엔진 안에 다 이빨을 물고 맞물려서 가는 거기 때문에 하나가 서버리면 안 돌아가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예정이고 주권 섭리입니다.
625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속에 들어가면 거슬러 올라가면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했는데 위로 올라가면 스탈린 나올 것이고 그 위로 가면 레닌, 마르크스가 나올 것이고 전부 다 짜여가지고 한 사건을 벌어지게 되고 시대가 움직이게 되는 것이고 우주 전부다가 맞물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한 요소를 있는 것이고 그 요소 중에서 중심이 되어있는 것이고 그 중심에서 우리 하나님 근처에서 움직이는 게 될 수 있다라는 겁니다. 어렵습니까. 그래서 출발이 없으면 뭐가 없습니까. 목적지 도착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출발해도 목적지 도착할려면 뭐 가야합니까. 과정과정이 가는 거지요. 자동차타고 신풍가는데 펑크나버리면 못가는 거지요. 한 순간이라도 문제 생기면 못가는거지요. 완전한 겁니다. 그렇기에 빈틈없는 예정과 주권섭리의 현장이 되는 것이지요. 광대한 하나님의 목적의 요소적인 뜻이 담겨있다는 거지요. 이걸 생각해보면 현실을 허비하고 죄짓고 하는 것은 미친 짓이지요. 정상적을 깨달으면 그리 살 수가 없는 것이고 마귀에게 미혹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 선택을 하는 것인데 예정하는 것이고 이루시는 것이고 그렇게 되게 되는 거지요. 하나님을 찾아서 순종하면 절대 예정의 지능과 주권 성취의 과정이다. 이걸 잡아서 제목을 한 겁니다. 현실에 대한 주의 뜻을 찾는 생활에 전력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22장, 157장
본문: 창세기 45장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제목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하자 인데 전체적으로는 중심 내용은 목적을 위한 예정의 진행과 주권이 내용이고 그 출발이 현실의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 순종하자는 겁니다. 여기 보니까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이 7절에 요셉의 말이 단순히 그때 상황만 가지고 알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요셉의 깨달음은 야곱의 아들이고 야곱은 이삭의 아들이고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번 주일 날 구약성경 연대를 공부할 건데 많은 조상들의 산 경우가 많이 겹칩니다. 아담을 본 자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때 아브라함은 보지못했겠고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았고 하니까 이삭이 60세에 쌍둥이 낳았습니까 요셉을 낳아서 아브라함이 보지못했을 건데 야곱을 통해서 할아버지 이삭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후원을 듣고 알았을 겁니다.
너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고 했는데 그 말씀의 약속을 변치않는 말씀인데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낳았고 그런데 에서는 넓은 길로 가버렸고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증조할아버지이죠. 믿음의 조상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는데 이삭 할아버지 만났고 떠나셨고 아버지가 열 두 아들 낳았으니까 아브라함에게 주신 번성이 우리부터 시작하겠구나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자기는 하나님의 뜻만 찾아서 전력했는데 오다 보니까 총리까지 인도를 하신 겁니다. 네비게이션을 찍어놓고 기계니까 안 맞지만은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달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그 인도만 따라가다 보니까 총리까지 왔고 총리가 된 다음에 하나님께서 증조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많은 자손들의 번식이 이삭 할아버지도 그냥 가셨고 아버지 때 열 두 아들 낳았으니까 비로소 번성하겠고 열 두 아들에서 아이 낳기 시작하면 아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는 거겠지요.
조례 목사님이 여덟을 낳았습니다. 5명씩 나으면 40명 됩니다. 그게 또 5명씩 낳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게 계산 상으로 나오는 거지요. 자기들 때부터 자손이 본격적으로 번성되는 겁니다. 터가 있어야하는데 터전을 하나님께서 애굽에다 마련해 놓으셨구나. 그리고 야곱에게는 내려가라 함께가겠다. 그리고 다시 불러오겠다. 이 때 애굽에 이스라엘이 200만명 가까운 숫자가 번성되었을 때 내다본 겁니다. 하나님께서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그게 모두 믿음의 자손들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앞서 보내셨나니, 개인적인 자손으로써는 고난이었고 역경이었지만 믿음으로 하고 순종하고 그리했을 때 그 결과를 보고 이거는 내가 잘나 된 것이 아니고 나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나 하나 출세 시키려고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번식시키려는 일이다. 그렇게 말해도 형들은 그 세계를 모르는 겁니다.
백 목사님이 설교하셔도 그 밑에 배웠지만 모르는 게 많았고 제가 뭐 그런 것이 아니고 말씀을 전해도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니까 알았고 사실을 말했고 형들은 몰랐고 그 형들에게 원한이라던지 복수심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고 교만이라는 게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종들이 들어갔을 때 하나같이 전부다 겸손하려고 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겁니다. 마음에 없는 것을 연극으로 하던지 억지로 하는 것은 밑천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사울은 겸손했습니다. 처음에, 나는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작은 지파, 무슨 지파요. 가장 작은 지파가 베냐민 지파, 왜 작습니까. 똑똑하고 머리 좋고 실력 있거든요. 아주 실력있고 그런데 실력있다보니까 고집이 세서 제멋대로 절단 날 뻔 했지요. 거의 다 죽어버리고 몇 명 남습니까 600명 빼고 다 죽었습니다. 그 집안은 가장 작은 집안입니다. 잘났는데 키도 모든 사람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는데 겸손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까지고 자기를 몰랐기 때문에 왕 되고 나니까 교만함이 나와버렸습니다.
제목은 앞에 잠깐 설명드린대로 전체 출발점을 말씀드린 것이다. 우리들에게서 출발점이라는 겁니다. 최종 목적입니다. 최종 종점이라는 표현이 애매하나, 역사 세계 이루어가는 구원 역사 관점에서 보면 종점, 종착점이 됩니다. 개인적인 종말은 되는 거고 영원하지만 그렇다는 거지요. 출발은 영원 전인데 현재로 말하면 각자 현실이 목적을 향한 출발점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최종의 뜻이고 그 뜻을 이루는 요소의 뜻, 분자의 뜻 그 뜻이 현실마다 담겨있다고 합니다. 이해가 되시는지요. 하나님의 목적은 최종의 뜻입니다. 전체 뜻이고 그 전체를 이루어가는 요소 요소, 분자 분자 그 분자 분자 요소 요소들이 우리 현실 속에 담겨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순종하는 것이 그렇게 제목으로 정한겁니다.
하나님 목적은 최종 목적입니다. 전체적인 뜻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목적지는 양성원을 위해서 신풍 교회입니다. 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두 시간 정도 세 시간 그 정도 걸립니다. 휴게소 있고 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걸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있고 최종, 이거는 무형의 세계를 두고 설명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목적의 세계가 있고 목적 세계를 향해 가는 진행되는 예정이고 실질적으로 이루어가는 게 성취라 그런 뜻입니다. 이런 면으로 연결시켜보면 하나님을 향한 예정의 진행되는 진행과 주권 성취의 현장, 우리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양성원 위해서 신풍교회를 가는 뭐가 됩니까. 현장은 주로 뭐가 됩니까. 고속도로가 되지 않겠습니까. 고속도로를 계속 가는 거지요. 하나님의 예정이 진행되고 예정대로 주권 능력이 성취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그 말입니다. 그 현실에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진행이 되고 있는 겁니다. 복잡하지 않은 그래서 이걸 기억하면서 목적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게 예정인데 예정대로 이루어지는 게 주권 성취인데 내가 살아가는 많은 것이 현장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목적 세계는 무형의 시공을 초월한 세계입니다. 무형의 신령한 세계를 유형의 형체가진 물질세계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리기 때문에 길러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린 사람에게 가르치면 어릴 때는 어려서, 어지간하게 머리가 좋아도 유치원 때는 세 살 때는 어린이 교재를 가지고 알아듣지 특별한 천재라고 할지라도 대학 교재를 가져다 놓으면 모르는 거지요. 그래서 하나씩 기초를 쌓아가면서 이게 생명이 자라가는 과정입니다. 모든 생명은 그러기 때문에 자라는 것이고 환경이 필요한 것이고, 신령한 나라인데 신령한 세계를 건설하는 게 물질 세계를 통해서 가르치고 있다는 걸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요셉의 여기 아는대로 하나님의 백성들, 열 두 지파의 자손들을 이 땅에 두시려고 번성시키시려고 요셉을 출발점에 세우신겁니다. 애굽의 총리로 세운 것이고 가기까지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몇 가지 생각해보면, 그래서 요셉의 여러 가지가 있는건데 그때 여러 가지 중에서 하나가 빠져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요셉이 종으로 팔려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랬으면 감옥에 안 갔겠지요. 누구를 못 만납니까 두 관원을 못만났고 꿈해몽도 없었고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할 수 없었겠지요. 이게 다 맞물려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앞에서 가면 두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주고 청탁을 하지요. 좋은 꿈이니까 당신이 복직하면 나를 좀 빼서 바로께 말씀드려서 돌려보내주십시오. 나는 히브리 사람이고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실제로 되었을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부탁을 쉽게 빼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잊을 수가 없는 건데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때 복직하고 요셉을 빼서 집에 보내버렸다면 총리는 없는거지요. 잊어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되어진 거지요.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지 않았다면 팔아먹었겠습니까. 시기해서 팔아먹었지요. 아버지의 편애가 있으니까 야곱의 편애라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는데 심한 만큼 하니까 시기하는 거지요. 왜 야곱이 요셉의 편에 듭니까. 사랑하는 아내 라헬 때문에. 라헬을 요셉이 야곱이 왜 만나게 됐습니까. 도망치는 바람에. 첫 눈에 가버렸지요. 왜 야곱이 도망쳐왔습니까. 형의 축복을 가로채버렸습니까. 왜 가로챘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고 싶어서, 야곱의 성향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성향이 있는데 야곱과 에서가 쌍둥이로 나지 않았다면. 야곱이 먼저 났다면 그럴 수가 없는 거지요. 리브가의 아들로 나지 않았다면 그러면 하나도 뗄 것이 없는 겁니다. 그런 큰 게 있는데 요셉의 생애 중에서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지만 변환점 그때가 그게 그것을 만드는 그런 과정이 또 있는 거지요.
에서가 사냥을 하지 않았으면 안 팔아먹었겠지요. 큰 것을 짚어서 이랬다만 뗄 것이 없는데 그 중에 다시 들어가서 이루는 중간에 가면 뗄 것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여기서 신풍 가려면 자동차 타고 가야합니다. 교회에서 출발합니다. 주차장에 출발하는데 삼일약국 앞에서 우회전하고 터널로 가서 고속도로 진입을 합니다. 만약 여기서 주차장에서 삼일약국 가는 거 빼버리고 수정터널 바로 갈 수 있습니까. 안되는 거지요. 가는 과정에 한 토막이라도 빠지면 안 이루어진다는 거지요.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되어있는 겁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나게 된 계기는 아버지 심부름을 봤기 때문에, 마침 그날 골리앗이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이 심부름 갔다가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거죠. 이게 어긋났다면 다윗이 심부름 가기 전이라던지 난 다음에 골리앗이 나와서 욕을 했다면 안 맞은건데, 그때 나타나서 소리 지르고 이스라엘을 흉보고 그 때에 들었다는 거지요.
이게 하나님의 예정이고 그렇게 맞춘겁니다. 그리고 그 말 듣고 분이나서 빠져들었고 그 말을 듣고 만약에 다른 사람들처럼 겁이 들었다면 몰랐겠지요. 다 도망치는데 말 듣고 도망가버렸다면 이루어지지 않는 거지요. 골리앗을 잡았습니다. 잡았는데 그리고 나서 사울의 장군이 되어서 가는 곳마다 승리하고 돌아오는데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없었다면 있어도 못 들었다면 무슨 일이 생깁니까. 다윗에 대한 시기도 없었겠지요. 그러면 도망다니는 생활을 안했다는겁니다. 그러면 그냥 있었다면 나라가 누구한테 넘어갑니까. 요나단한테 넘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도망다녔습니다. 왕이 되고 난 다음에 계속 올라갑니다. 왕이 되고 난 다음에 다윗이 밧세바를 만나지 않았다면 엄청나게 큰 죄지요. 다윗의 가장 큰 하나의 죄입니다. 그런데 안 만났다면 뺏지 않았겠지요. 그랬다면 누가 안 나옵니까. 그 죄를 안 지으면 솔로몬이 안 나오는거지요. 솔로몬이 안 나오면 다윗의 아들로 이어지는 대가 없을 것이고 솔로몬이 나지 않았다면 성전이 없는 거지요. 밧세바를 만남으로 큰 죄를 지었고 그 죄를 지음으로 집안이 엉망이 된 겁니다. 그랬는데 솔로몬이 났고 성전 건축이 됐고 다윗이라는 사람은 차원이 다른 사람이 된 겁니다.
이게 성경을 이렇게 보고 안 좋게 보면 엉망이 되는 건데 하나님의 예정이고 주권 섭리가 기묘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들이 세상도 하나님의 목적을 예정에 주권과 성취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때 과정에서 예정이지만은 요셉이 쓰임받는 것과 달랐고 다윗의 쓰임과 사울의 쓰임은 다른 거겠지요.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나갔고 사울은 교만하니까 탈선해버린겁니다. 그러니까 전체 목적을 두고 진행하시는대로 하시는데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겁니다. 요셉이 아버지 사랑 듬뿍 받다가 형들에게 팔지 말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 과정은 어려웠을 것이고 누명쓰고 갈 때 완전히 매장당하는 게 되는 겁니다.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청탁이 없는데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과정 과정에 원망할만하고 낙심할만하고 별의 별 그런 난관 역경들이 많았지만은 흔들리지를 않았다는 거지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뜻을 찾아 순종하는 게 전부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크게 설교를 위해서 설교해서 예를 들지만은 요셉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에정이 그 속에는 요셉만 들었습니까. 아버지도 들었고 에서도 들었고 이삭도 들었고 그 속에 우리도 들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생애가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어가서 요셉과 다윗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의 것이 6000년 세월의 이 세상 역사가 예정의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정 속에 들지 않은 게 될 수 없는 것이고 그 주권이 없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큰 예정 속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같이 진행이 되고 있는 겁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내리는 게 내려와서 많아지고 더 많아지고 더 많아져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거지요. 물방울은 더 작은 요소 입자가 되는 겁니다. 물질도 보면 그런 겁니다. 세포가 없으면 사람의 손가락도 없고 발가락도 없는 겁니다. 세포들에게 해서 손톱 발톱 이목구비 전부 다 있는데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거지요. 그러면서 전부 다가 유기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몸을 이루고 있는거지요. 이 손목 시계는 기계식입니다. 전자식 기계식이라서 안에 보이는데 부속이 몇 개인지는 모르겠는데 맞물려 돌아갑니다. 그런데 수 많은 부속들이 안 돌아가면 안되는거지요. 그 많은 게 전부 맞물려 돌아가는 거지요. 기계식 자동차, 2만개인데 엔진 안에 다 이빨을 물고 맞물려서 가는 거기 때문에 하나가 서버리면 안 돌아가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예정이고 주권 섭리입니다.
625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속에 들어가면 거슬러 올라가면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했는데 위로 올라가면 스탈린 나올 것이고 그 위로 가면 레닌, 마르크스가 나올 것이고 전부 다 짜여가지고 한 사건을 벌어지게 되고 시대가 움직이게 되는 것이고 우주 전부다가 맞물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한 요소를 있는 것이고 그 요소 중에서 중심이 되어있는 것이고 그 중심에서 우리 하나님 근처에서 움직이는 게 될 수 있다라는 겁니다. 어렵습니까. 그래서 출발이 없으면 뭐가 없습니까. 목적지 도착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출발해도 목적지 도착할려면 뭐 가야합니까. 과정과정이 가는 거지요. 자동차타고 신풍가는데 펑크나버리면 못가는 거지요. 한 순간이라도 문제 생기면 못가는거지요. 완전한 겁니다. 그렇기에 빈틈없는 예정과 주권섭리의 현장이 되는 것이지요. 광대한 하나님의 목적의 요소적인 뜻이 담겨있다는 거지요. 이걸 생각해보면 현실을 허비하고 죄짓고 하는 것은 미친 짓이지요. 정상적을 깨달으면 그리 살 수가 없는 것이고 마귀에게 미혹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 선택을 하는 것인데 예정하는 것이고 이루시는 것이고 그렇게 되게 되는 거지요. 하나님을 찾아서 순종하면 절대 예정의 지능과 주권 성취의 과정이다. 이걸 잡아서 제목을 한 겁니다. 현실에 대한 주의 뜻을 찾는 생활에 전력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