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3일 금밤
김동민2024-09-13조회 130추천 15
2024년 9월 13일 금밤
찬송: 158장, 159장
본문: 히브리서 5장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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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과 말씀이 되겠습니다. 본문을 좀 생각해봅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 할 말이 많으나, 해석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 히브리서 성경 기자가 바울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바울이 이 말씀을 듣는 교인들에게 말해도 알아듣지를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이때로부터 세월이 2000년 가까이 지났다 치고 이때 교인들은 멜기세덱에 말해도 해석하기 어려운데 2000년이 지났으니까 우리는 멜기세덱을 알아봐야겠습니다. 멜기세덱.
성경에 이 세상에 딱 한번만 나타났습니다.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 전쟁에서 다 물리치고 올 때 소돔 쪽에 왕들도 영접했고 멜기세덱으로 표현되는데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맞이하고 얻은 것에서 십분지일은 멜기세덱에게 줬습니다. 수입의 10분의 1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의 뜻이 무엇인가요. 나와 하나님의 전부의 것입니다. 나도 나의 전부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정하는 표시로 드리는 게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표시입니다.
십일조의 출발은 에덴 동산 선악과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든 건 다 하나님의 것인데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생명과는 있었으나 먹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왜 먹지 말라고 했습니까. 독이 들어서 그런가요. 세상 사람들은 금단의 열매라고 하는데 선악과는 상징입니다. 표시, 이건 하나님의 것이다. 아담은 에덴동산의 주인입니다. 아담이 왕이고 주인입니다. 모든 존재 전부는 다스림받고 왕입니다. 전부 아담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것 아닌게 하나가 있습니다. 전부 아담에게 다 주셨는데 하나 딱 있습니다. 선악과입니다. 이건 건드리지 말아라. 왜 그걸 두셨느냐 아담이라는 에덴 동산의 주인이고 왕은 최종 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너 위의 왕 하나님이 계신다. 이게 선악과고 그 선악과가 내려온 것이 십일조입니다. 떼먹으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큰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전부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무시하는 죄가 됩니다. 그래서 십일조라는 것은 믿는 표시로 드린 게 십일조고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와서 십분지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사람입니다. 왕입니다. 누군지 모릅니다. 그런데 영접했는데 아브라함이 본능적으로 알았달까요. 십분지일을 드렸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나타나고 시편 110편에 기도가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히브리서 5장에 나오는 게 전부다입니다. 이게 멜기세덱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이 세상에 멜기세덱을 말씀하시기를 부모도 없고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출생날도 없고 끝도 없고 이렇게 설명이 되어있으니 하나님이라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신 유일한 경우가 멜기세덱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일하실 때는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천사는 대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날개 달린 그런 천사가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천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천사라 그랬고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천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신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으로 찾아보면 있을텐데 찾아보지못했습니다만은 나타보내셨을까 역사에 부모 없이 이 세상에 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담 하와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입니다. 왜 세상에 나왔느냐, 부모가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어야하니까 닭이 먼저입니까 달걀이 먼저입니까. 믿는 사람은 답이 쉽게 나와야합니다. 닭이 먼저입니다.
아담이 있고 아담의 자손이 나오는 겁니다. 호랑이 새끼가 자라서 호랑이가 된 게 아닙니다. 먼저 어미가 있고 알이 많은 겁니다. 알 낳는 모습 생물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은 났습니다. 300년 동안 에녹도 부모에서 났습니다. 아마 인류 역사에 주님 말고 일반적인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 중에서 최고 의인을 꼽으라면 에녹이 꼽힙니다.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 보통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입니다. 죄가 없고 의로워야합니다. 그래야 동행이 됩니다. 계속 300년 동맹이라는 말은 끊어졌다 이어졌다일지 300년 계속일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데려가셨다고 했습니다. 이건 노아도 아브라함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 누구도 에녹처럼 살지 못했습니다. 그 에녹도 무슨 죄가 있습니까. 주님과 동행 이후로 본죄는 없다고 할 수 있는데 원죄는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하와 말고는 부모가 전부 있는데 예수님은 부모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육신의 부모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요셉과 마리아, 요셉의 종자가 아닌 걸 우리가 다 알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이라는 말로 왜 나타나셨을까. 부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제사장으로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났고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구약성경 신약성경 대표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구약 전체에 하나님 전부를 말할 때 뭘 표현합니까. 구약에서 숫자를 12를 말합니다. 구약의 12는 열두지파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입니다. 야곱의 아버지는 이삭입니다. 이삭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입니다.
열두지파의 출발이 아브라함입니다. 멜기세덱 만나 십일조를 드린겁니다. 그리고 신약은 열두 사도로 이어지게 되는거지요. 그런데 그 열두지파로 가고 율법을 통해 율법을 받았고 그 자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전부다가 범죄함으로 구원에 다 실패하게 됩니다. 다 실패되는 그런 쪽이 있습니다. 그런 역사를 위해서 구주 메시야를 보내실 때 형식은 아브라함의 자손 대제사장 지파가 이름이 몇째아들이지요. 야곱의 몇째아들 지파가 대제사장 지파가 됩니까. 르우벤, 시몬, 레위 지파입니다. 누구요, 손자입니까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이어집니다. 그 아론은 위로 올라가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 아브라함의 자손 아론의 대제사장 계통 그게 전부 실패하고 구약시대가 끝이 나고 구주 메시야로 오셨는데 그 오신 주님이 형식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나타나셨으나 아브라함의 종자가 아니었고 둘째 사람이라고 그랬고 계통이 역사가 히브리에 보면 시편에 나와있고 멜기세덱으로 대제사장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멜기세덱으로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은 앞으로 장차오실 계통을 미리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그게 아브라함의 계통이 아니고 멜기세덱이라는 하나님의 직접 계통이라는 뜻이지요. 이런 구원 역사를 위해서 창세기에 아브라함, 레위 지파의 출발점이 되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떡과 포도주를 주시고 십일조를 받은 겁니다. 떡과 포도주라는 것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그 주님이 하나님께서 직접 오신다는 것으로 하는데 사람으로 나타나셔서 떡과 포도주를 주시고 십일조를 받음으로 정체를 밝히셨다고 합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때가 오래므로 세월이 지났다. 모태신앙으로 10살이 됐으면은 10년이 지났습니다. 나무를 심어서 30년 지나고 나면 굉장히 큰 나무가 됩니다. 3년 5년 이리 되면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나이가 서른 되면 다윗이 왕이 될 때 몇 살입니까. 믿은지 30년 되면 다윗처럼 되고 요셉처럼 된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될 수는 없으나 주신 분량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믿은 세월이 많은데 얼마만큼 자랐는가. 직장에 10년 다녀서 월급받고 작은 아파트 하나 마련했습니다. 많이 자란 겁니다. 따뜻한 가정을 이뤘습니다.
사업을 10년 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나이가 20되고 25되고 20에 결혼했습니다. 30에 아이를 다섯 낳고 여섯 낳았습니다. 참 잘 자란겁니다. 저게 좀 더 자라면 말이 통할 때가 있을겁니다. 아직 덜 자라서, 이영아는 3학년이지요 자라서 그렇게 됐습니다. 때가 오래이므로 자라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뭐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에 속한 것은 다 자라가는 겁니다. 식물도 동물도 곤충도 사람도 육신도 생명이라는 것은 자라가는 것이 생명의 기본 속성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이기 때문에 신앙에 속한 겁니다. 신앙의 성장 자람이라는 것은 지식으로 자란 것입니다. 성경을 알아야합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12년 대학 4학년 그러면 16년 제법 유식하다고 합니다. 박사 학위 받으면 유식합니다. 많이 안다고 박사인데 20년 예수를 믿었으면 성경에 대해서 제법 좀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서부교회 집사님 중에서 양성원에 입학한 사람이면 아주 오래 믿은 사람인데 모세가 어느시대 사람입니다. 신약시대 사람이라 그럽니다. 모세가 어느시대 사람인줄을 모릅니다. 이게 장점이면서 약점입니다. 설교만 듣다 보니까 성경으로 안내하는데 주관으로 사로잡히니까 그 분이 뒤로 가셔서 말하기를 논쟁이 있었습니다. 비디오파입니다. 비디오 재독을 왜 합니까. 제가 말하기를 교리와 행정 지키는 게 목적 아닙니까 이러니까 아닙니다. 재독하기 위해서 교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분들의 목적은 비디오 재독입니다. 그래서 교리를 지켜야합니다 그럽니다. 그렇게 거꾸로 들어서 그쪽이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거창 집회를 갈 때 양성원에 간 조사님하고 같이 그분 지금 목회 잘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삼분론입니다 하니까 이분론입니다 그렇게 주장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안될겁니다. 같이 듣고 배워도 듣는 귀가 다 다르지요.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첫째 바로 자라야 자란다는 겁니다. 지식만 자라면 귀만 크고 코만 커서 교만하게 되니까 아는대로 실행이 됩니다. 생활의 변화가 사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따라갑니다. 지식이 체계적으로 자라고 아는 그대로 시작하면 변화가 되는 겁니다. 자라가는 모습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신풍목사님께서 자주 말하는 말씀 늦게 출발해서 보니까 일등 청년이 수십명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3년 지나서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자라가는데 혼자 자란거지요. 저도 동시대 사람입니다. 같이 자랐습니다. 사람마다 자란 게 다 다른겁니다. 어떻게 자라는 게 정상일까. 겨자씨는 심어놓으면 나물이라고 합니다. 나물인데 자라면 나물인데 나물을 초월해서 나무가 되니까 공중의 새들이 가지에 깃들인다고 합니다.
사람은 피조물이지요. 피조물인데 피조물인 사람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식으로 자라고 말씀 실행으로 자라고 나가면 겨자씨가 나무가 되는 것처럼 사람이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해서 사람 피조물인데 피조물의 차원을 넘어서서 창조주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 같은 사람으로 자라가는 겁니다. 그렇게 구원이 있는 사람으로 자라가야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거기서 보니까 예배 마치고 나면 복습을 하지요. 영윤 선생님도 하지요. 가르치는 선생이 되는 거지요. 3학년이 1학년 가르치면 선생이 된겁니다. 전부 다 선생님입니까. 여기 설교는 제가 하지만 저보다 나은 분들 많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자라가는 겁니다.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도의 초보가 누구인지 그래서 안 자라고 있으니까 나이가 들어서 젖이나 먹는 젖먹이 신앙이 되어버렸습니다. 젖먹이 아기는 뭘 먹는다고요. 젖먹이가 먹는 젖은 엄마의 피와 살입니다. 엄마에게 갈 영양분을 빠지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친정 어머니 손자는 외손자가 되는 건데 그놈의 자식, 엄마의 영양분 다 빨아먹네 그럽니다. 엄마를 빨아먹는 게 아기의 젖입니다. 신앙의 어머니, 앞선 사람의 신앙을 보면서 자기를 앞선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심판 받고 나쁜 말 중 하나가 나 시험 들 거 같은데요. 그거 아주 나쁜 말입니다. 나 교회 안 나올래요. 그게 피를 빨아먹는 겁니다.
집사님 구역 식구들이 교회 못갑니다 하면 덜컥합니다. 그 말이 참 무서운 말인데 그런 말을 할 정도이기 때문에 젖먹이 신앙입니다. 자라가야할 세월에 안 자랐기 때문에 왜 안자라갔느냐,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의 말씀은 시간이 가지면 설명을 드립니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그릇에 담겨있습니까. 그 그릇 이름을 뭐라고 합니까. 그걸 말씀이라고 합니다. 말씀이 담긴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이 담긴 것의 이름은 성경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생활 속에는 그 말씀을 모르면 들어가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게 생활입니다. 현실마다 사건마다 관계마다 활동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뜻이 있는데 그 뜻을 찾아서 뜻대로 행동하는 게 의의 말씀을 행동하는 겁니다. 세상 현실 살아갈 때 현실되는 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괴로우면 괴로운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이게 되는대로 사는 겁니다. 그리 살지 않고 짜증이 나도 덕이 안 되는데, 좀 짜증내도 웃어봐야겠다. 슬퍼도 이 슬픔이 진짜인가 기쁨이 있는가. 백목사님 부친 돌아가셨을 때 모두 우는 소리 내는데 백목사님 장례식 때는 감사 감사 감사하면서 한다고 했습니다. 에스겔 성전 방이 있습니다. 어느쪽이 있습니까. 북쪽을 향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생각하라, 생각하면서 여기서 이런 괴로운 베베 꼬이는 현실을 주시는 주의 뜻이 뭐냐, 찾고 그래서 그 뜻 대로 살아갈려고 하니까 힘든겁니다. 그걸 해보지 않았으니까 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이 되는 겁니다. 교회나 왔다갔다하고 예배는 드리는데 자라지 않는 겁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이든지 희생하지 않으면 신앙은 자라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나 신앙 자라지 않는 사람이 원인이 거기 있습니다. 반대로 14절, 자기가 먹는 겁니다. 자기 입으로 자기 입에 넣어서 깨물어서 씹어서 삼켜서 먹는 게 단단한 식물입니다. 장성한 자의 것인데 왜 장성한 신앙이 되어졌느냐 지각을 사용합니다.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뜻이 나옵니다. 그 생각에서 찾은 주의 뜻대로 합니다. 안팎에서 생깁니다. 부딪히다 보니까 연단해서 하나님 중심이냐까지 자라가는 신앙이 되는 겁니다.
멜기세덱을 생각해봤습니다. 멜기세덱으로 하셨을까. 우리를 알았기 때문에, 자라가는 겁니다. 자라가지 않으면 젖먹이 신앙입니다. 결국 도태되고 마는 겁니다. 젖먹이 신앙, 이유가 뭐냐 원인이 뭡니까. 의의 말씀으로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면 주저앉아버리고 어쨌든 물결 흘러가는대로 살고 믿음으로 살지 않으니까 늘 젖먹이 신앙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참 많습니다. 생각을 합니다. 살펴봅니다. 어려워도 손해봐도 합니다. 자라게 되는 겁니다. 장성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58장, 159장
본문: 히브리서 5장 11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전체 공과 말씀이 되겠습니다. 본문을 좀 생각해봅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 할 말이 많으나, 해석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 히브리서 성경 기자가 바울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바울이 이 말씀을 듣는 교인들에게 말해도 알아듣지를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이때로부터 세월이 2000년 가까이 지났다 치고 이때 교인들은 멜기세덱에 말해도 해석하기 어려운데 2000년이 지났으니까 우리는 멜기세덱을 알아봐야겠습니다. 멜기세덱.
성경에 이 세상에 딱 한번만 나타났습니다.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 전쟁에서 다 물리치고 올 때 소돔 쪽에 왕들도 영접했고 멜기세덱으로 표현되는데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맞이하고 얻은 것에서 십분지일은 멜기세덱에게 줬습니다. 수입의 10분의 1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의 뜻이 무엇인가요. 나와 하나님의 전부의 것입니다. 나도 나의 전부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정하는 표시로 드리는 게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표시입니다.
십일조의 출발은 에덴 동산 선악과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든 건 다 하나님의 것인데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생명과는 있었으나 먹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왜 먹지 말라고 했습니까. 독이 들어서 그런가요. 세상 사람들은 금단의 열매라고 하는데 선악과는 상징입니다. 표시, 이건 하나님의 것이다. 아담은 에덴동산의 주인입니다. 아담이 왕이고 주인입니다. 모든 존재 전부는 다스림받고 왕입니다. 전부 아담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것 아닌게 하나가 있습니다. 전부 아담에게 다 주셨는데 하나 딱 있습니다. 선악과입니다. 이건 건드리지 말아라. 왜 그걸 두셨느냐 아담이라는 에덴 동산의 주인이고 왕은 최종 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너 위의 왕 하나님이 계신다. 이게 선악과고 그 선악과가 내려온 것이 십일조입니다. 떼먹으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큰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전부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무시하는 죄가 됩니다. 그래서 십일조라는 것은 믿는 표시로 드린 게 십일조고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와서 십분지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사람입니다. 왕입니다. 누군지 모릅니다. 그런데 영접했는데 아브라함이 본능적으로 알았달까요. 십분지일을 드렸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나타나고 시편 110편에 기도가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히브리서 5장에 나오는 게 전부다입니다. 이게 멜기세덱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이 세상에 멜기세덱을 말씀하시기를 부모도 없고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출생날도 없고 끝도 없고 이렇게 설명이 되어있으니 하나님이라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신 유일한 경우가 멜기세덱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일하실 때는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천사는 대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날개 달린 그런 천사가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천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천사라 그랬고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천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신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으로 찾아보면 있을텐데 찾아보지못했습니다만은 나타보내셨을까 역사에 부모 없이 이 세상에 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담 하와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입니다. 왜 세상에 나왔느냐, 부모가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어야하니까 닭이 먼저입니까 달걀이 먼저입니까. 믿는 사람은 답이 쉽게 나와야합니다. 닭이 먼저입니다.
아담이 있고 아담의 자손이 나오는 겁니다. 호랑이 새끼가 자라서 호랑이가 된 게 아닙니다. 먼저 어미가 있고 알이 많은 겁니다. 알 낳는 모습 생물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은 났습니다. 300년 동안 에녹도 부모에서 났습니다. 아마 인류 역사에 주님 말고 일반적인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 중에서 최고 의인을 꼽으라면 에녹이 꼽힙니다.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 보통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입니다. 죄가 없고 의로워야합니다. 그래야 동행이 됩니다. 계속 300년 동맹이라는 말은 끊어졌다 이어졌다일지 300년 계속일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데려가셨다고 했습니다. 이건 노아도 아브라함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 누구도 에녹처럼 살지 못했습니다. 그 에녹도 무슨 죄가 있습니까. 주님과 동행 이후로 본죄는 없다고 할 수 있는데 원죄는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하와 말고는 부모가 전부 있는데 예수님은 부모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육신의 부모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요셉과 마리아, 요셉의 종자가 아닌 걸 우리가 다 알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이라는 말로 왜 나타나셨을까. 부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제사장으로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났고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구약성경 신약성경 대표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구약 전체에 하나님 전부를 말할 때 뭘 표현합니까. 구약에서 숫자를 12를 말합니다. 구약의 12는 열두지파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입니다. 야곱의 아버지는 이삭입니다. 이삭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입니다.
열두지파의 출발이 아브라함입니다. 멜기세덱 만나 십일조를 드린겁니다. 그리고 신약은 열두 사도로 이어지게 되는거지요. 그런데 그 열두지파로 가고 율법을 통해 율법을 받았고 그 자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전부다가 범죄함으로 구원에 다 실패하게 됩니다. 다 실패되는 그런 쪽이 있습니다. 그런 역사를 위해서 구주 메시야를 보내실 때 형식은 아브라함의 자손 대제사장 지파가 이름이 몇째아들이지요. 야곱의 몇째아들 지파가 대제사장 지파가 됩니까. 르우벤, 시몬, 레위 지파입니다. 누구요, 손자입니까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이어집니다. 그 아론은 위로 올라가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 아브라함의 자손 아론의 대제사장 계통 그게 전부 실패하고 구약시대가 끝이 나고 구주 메시야로 오셨는데 그 오신 주님이 형식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나타나셨으나 아브라함의 종자가 아니었고 둘째 사람이라고 그랬고 계통이 역사가 히브리에 보면 시편에 나와있고 멜기세덱으로 대제사장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멜기세덱으로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은 앞으로 장차오실 계통을 미리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그게 아브라함의 계통이 아니고 멜기세덱이라는 하나님의 직접 계통이라는 뜻이지요. 이런 구원 역사를 위해서 창세기에 아브라함, 레위 지파의 출발점이 되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떡과 포도주를 주시고 십일조를 받은 겁니다. 떡과 포도주라는 것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그 주님이 하나님께서 직접 오신다는 것으로 하는데 사람으로 나타나셔서 떡과 포도주를 주시고 십일조를 받음으로 정체를 밝히셨다고 합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때가 오래므로 세월이 지났다. 모태신앙으로 10살이 됐으면은 10년이 지났습니다. 나무를 심어서 30년 지나고 나면 굉장히 큰 나무가 됩니다. 3년 5년 이리 되면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나이가 서른 되면 다윗이 왕이 될 때 몇 살입니까. 믿은지 30년 되면 다윗처럼 되고 요셉처럼 된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될 수는 없으나 주신 분량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믿은 세월이 많은데 얼마만큼 자랐는가. 직장에 10년 다녀서 월급받고 작은 아파트 하나 마련했습니다. 많이 자란 겁니다. 따뜻한 가정을 이뤘습니다.
사업을 10년 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나이가 20되고 25되고 20에 결혼했습니다. 30에 아이를 다섯 낳고 여섯 낳았습니다. 참 잘 자란겁니다. 저게 좀 더 자라면 말이 통할 때가 있을겁니다. 아직 덜 자라서, 이영아는 3학년이지요 자라서 그렇게 됐습니다. 때가 오래이므로 자라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뭐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에 속한 것은 다 자라가는 겁니다. 식물도 동물도 곤충도 사람도 육신도 생명이라는 것은 자라가는 것이 생명의 기본 속성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이기 때문에 신앙에 속한 겁니다. 신앙의 성장 자람이라는 것은 지식으로 자란 것입니다. 성경을 알아야합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12년 대학 4학년 그러면 16년 제법 유식하다고 합니다. 박사 학위 받으면 유식합니다. 많이 안다고 박사인데 20년 예수를 믿었으면 성경에 대해서 제법 좀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서부교회 집사님 중에서 양성원에 입학한 사람이면 아주 오래 믿은 사람인데 모세가 어느시대 사람입니다. 신약시대 사람이라 그럽니다. 모세가 어느시대 사람인줄을 모릅니다. 이게 장점이면서 약점입니다. 설교만 듣다 보니까 성경으로 안내하는데 주관으로 사로잡히니까 그 분이 뒤로 가셔서 말하기를 논쟁이 있었습니다. 비디오파입니다. 비디오 재독을 왜 합니까. 제가 말하기를 교리와 행정 지키는 게 목적 아닙니까 이러니까 아닙니다. 재독하기 위해서 교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분들의 목적은 비디오 재독입니다. 그래서 교리를 지켜야합니다 그럽니다. 그렇게 거꾸로 들어서 그쪽이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거창 집회를 갈 때 양성원에 간 조사님하고 같이 그분 지금 목회 잘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삼분론입니다 하니까 이분론입니다 그렇게 주장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안될겁니다. 같이 듣고 배워도 듣는 귀가 다 다르지요.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첫째 바로 자라야 자란다는 겁니다. 지식만 자라면 귀만 크고 코만 커서 교만하게 되니까 아는대로 실행이 됩니다. 생활의 변화가 사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따라갑니다. 지식이 체계적으로 자라고 아는 그대로 시작하면 변화가 되는 겁니다. 자라가는 모습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신풍목사님께서 자주 말하는 말씀 늦게 출발해서 보니까 일등 청년이 수십명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3년 지나서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자라가는데 혼자 자란거지요. 저도 동시대 사람입니다. 같이 자랐습니다. 사람마다 자란 게 다 다른겁니다. 어떻게 자라는 게 정상일까. 겨자씨는 심어놓으면 나물이라고 합니다. 나물인데 자라면 나물인데 나물을 초월해서 나무가 되니까 공중의 새들이 가지에 깃들인다고 합니다.
사람은 피조물이지요. 피조물인데 피조물인 사람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식으로 자라고 말씀 실행으로 자라고 나가면 겨자씨가 나무가 되는 것처럼 사람이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해서 사람 피조물인데 피조물의 차원을 넘어서서 창조주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 같은 사람으로 자라가는 겁니다. 그렇게 구원이 있는 사람으로 자라가야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거기서 보니까 예배 마치고 나면 복습을 하지요. 영윤 선생님도 하지요. 가르치는 선생이 되는 거지요. 3학년이 1학년 가르치면 선생이 된겁니다. 전부 다 선생님입니까. 여기 설교는 제가 하지만 저보다 나은 분들 많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자라가는 겁니다.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도의 초보가 누구인지 그래서 안 자라고 있으니까 나이가 들어서 젖이나 먹는 젖먹이 신앙이 되어버렸습니다. 젖먹이 아기는 뭘 먹는다고요. 젖먹이가 먹는 젖은 엄마의 피와 살입니다. 엄마에게 갈 영양분을 빠지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친정 어머니 손자는 외손자가 되는 건데 그놈의 자식, 엄마의 영양분 다 빨아먹네 그럽니다. 엄마를 빨아먹는 게 아기의 젖입니다. 신앙의 어머니, 앞선 사람의 신앙을 보면서 자기를 앞선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심판 받고 나쁜 말 중 하나가 나 시험 들 거 같은데요. 그거 아주 나쁜 말입니다. 나 교회 안 나올래요. 그게 피를 빨아먹는 겁니다.
집사님 구역 식구들이 교회 못갑니다 하면 덜컥합니다. 그 말이 참 무서운 말인데 그런 말을 할 정도이기 때문에 젖먹이 신앙입니다. 자라가야할 세월에 안 자랐기 때문에 왜 안자라갔느냐,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의 말씀은 시간이 가지면 설명을 드립니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그릇에 담겨있습니까. 그 그릇 이름을 뭐라고 합니까. 그걸 말씀이라고 합니다. 말씀이 담긴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이 담긴 것의 이름은 성경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생활 속에는 그 말씀을 모르면 들어가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게 생활입니다. 현실마다 사건마다 관계마다 활동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뜻이 있는데 그 뜻을 찾아서 뜻대로 행동하는 게 의의 말씀을 행동하는 겁니다. 세상 현실 살아갈 때 현실되는 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괴로우면 괴로운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이게 되는대로 사는 겁니다. 그리 살지 않고 짜증이 나도 덕이 안 되는데, 좀 짜증내도 웃어봐야겠다. 슬퍼도 이 슬픔이 진짜인가 기쁨이 있는가. 백목사님 부친 돌아가셨을 때 모두 우는 소리 내는데 백목사님 장례식 때는 감사 감사 감사하면서 한다고 했습니다. 에스겔 성전 방이 있습니다. 어느쪽이 있습니까. 북쪽을 향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생각하라, 생각하면서 여기서 이런 괴로운 베베 꼬이는 현실을 주시는 주의 뜻이 뭐냐, 찾고 그래서 그 뜻 대로 살아갈려고 하니까 힘든겁니다. 그걸 해보지 않았으니까 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이 되는 겁니다. 교회나 왔다갔다하고 예배는 드리는데 자라지 않는 겁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이든지 희생하지 않으면 신앙은 자라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나 신앙 자라지 않는 사람이 원인이 거기 있습니다. 반대로 14절, 자기가 먹는 겁니다. 자기 입으로 자기 입에 넣어서 깨물어서 씹어서 삼켜서 먹는 게 단단한 식물입니다. 장성한 자의 것인데 왜 장성한 신앙이 되어졌느냐 지각을 사용합니다.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뜻이 나옵니다. 그 생각에서 찾은 주의 뜻대로 합니다. 안팎에서 생깁니다. 부딪히다 보니까 연단해서 하나님 중심이냐까지 자라가는 신앙이 되는 겁니다.
멜기세덱을 생각해봤습니다. 멜기세덱으로 하셨을까. 우리를 알았기 때문에, 자라가는 겁니다. 자라가지 않으면 젖먹이 신앙입니다. 결국 도태되고 마는 겁니다. 젖먹이 신앙, 이유가 뭐냐 원인이 뭡니까. 의의 말씀으로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면 주저앉아버리고 어쨌든 물결 흘러가는대로 살고 믿음으로 살지 않으니까 늘 젖먹이 신앙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참 많습니다. 생각을 합니다. 살펴봅니다. 어려워도 손해봐도 합니다. 자라게 되는 겁니다. 장성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