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5-주후 (안쪽 북문)
이아림2024-08-25조회 121추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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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8. 25. 주후
본문: 에스겔 40장 38절 – 43절 말씀
38. 그 문벽 곁에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그것은 번제물을 씻는 방이며
39. 그 문의 현관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그 위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을 잡게 한 것이며
40. 그 북문 바깥 곧 입구로 올라가는 곳 이편에
상 둘이 있고 문의 현관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41. 문 곁 이편에 상이 넷이 있고 저편에 상이 넷이 있어
합이 여덟 상이라 그 위에서 희생을 잡는 소용이며
42. 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 번제에 쓰는 상 넷이 있는데
각 장이 일척 반이요 광이 일척 반이요 고가 일척이라
번제의 희생을 잡을 때에 쓰는 기구가 그 위에 놓였으며
43. 현관 안에는 길이가 손바닥 넓이만한 갈고리가
사면에 박혔으며 상들에는 희생의 고기가 있더라
1차 문의 1차 목적은 바깥뜰입니다.
바깥세상에서 성전 담을 경계로 7층계입니다.
하나님 세계로 올라오고 문통을 통해
문지기 방을 통과하고 바깥뜰을 갔습니다.
바깥뜰은 하나님 은혜의 세계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은혜의 세계란 신앙으로 전력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시는 고요한 형편입니다.
하나님 은혜의 세계는 장소적, 공간적 개념이 아닙니다.
외부로 보면 상황, 환경, 형편입니다.
이런 것들이 고요하고 잠잠하다면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이며 복입니다.
2차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내 신앙이 되어지는 것,
하나님이 열어주시고 내가 자라가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라 합니다.
믿는 사람은 말씀이 바탕이 되어
말씀대로 살아봐야 합니다.
1차 문은 바깥세상과 안, 성전을 구분하는 것이고
2차 문은 더 깊고 높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더 충성하고 더 깨끗하게,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8층계입니다.
서쪽은 해가 지는 곳, 어두운 곳입니다.
하나님을 모시지 않은 곳은
생명, 빛, 소망도 없는 곳입니다.
■ 안쪽 북문
동 : 하나님 향한 빛의 세계, 진리의 밝은 곳
남 : 하나님 은혜가 있는 따뜻한 곳
북 : 추운 곳, 환난의 곳
번제 드리는 모든 제단들이 북쪽 문 옆에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자기를 잡는 것입니다.
잡을 자기를 보기 쉬운 때가 고난의 때입니다.
그 자기를 잡는 길이 고난의 길입니다.
북쪽 문에 모든 시설이 되어 있습니다.
‘그 문벽 곁에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그것은 번제물을 씻는 방이며’
‘그 문’은 북문은 말씀합니다.
문과 벽은 늘 같이 갑니다.
벽이 바깥으로 나가면 담이 됩니다.
경계, 출발하는 것입니다.
벽 곁에 문 있는 방이 있다.
벽이 있고, 그 벽 곁에 방이 있다 했으니
별개의 것, 구분의 은혜입니다.
주님을 만나러 가는 것은 따로 준비가 필요하다.
무조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기를 잡기 전, 제단에 바치기 전
자기를 먼저 돌아보는 것입니다.
바쳐 드리며 한 번 더 자기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잡는다’는 것은 잡아 죽이는 걸 말합니다.
우리 제사는 산제사입니다.
산제사로 바치는 제물이 되는 것이 자기를 드리는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자기를 잡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죽여 없앤다, 고친다는 의미입니다.
번제물을 씻는 방입니다.
나를 버리는 것은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고
말씀으로 자기를 깨끗하게 씻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구원은 내 구원이 1차입니다.
자기가 된 만큼 다른 것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되어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현관’이란 본 건물 들어가기 전 준비 단계입니다.
나오면서 한 번 더 돌아보는 것으로,
성전 생활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계속하는 것입니다.
2차 문의 현관은 바ᄁᆞᇀ을 향합니다.
‘상’은 위에서 번제, 속죄제, 속건제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희생’은 피를 흘려 죽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 바쳐 들어갈 때 희생이라 합니다.
제물 희생을 잡기 위해 있는 상입니다.
현관 기준으로 8개의 상이 있고,
제단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드나들며 준비하고 살피는 생활이 현관입니다.
양쪽에서 잡으니 자기를 잡는 것도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를 잡아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로서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것을 다 끊어 내버리는 것,
자기 범위를 벗어나지 않게,
자기를 잡아야 반드시 성공이 있습니다.
잡는 만큼 새로운 게 나오게 됩니다.
잡아야 전진입니다.
‘8’은 새로운 출발입니다.
‘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 번제에 쓰는 상 넷이 있는데
각 장이 일척 반이요 광이 일척 반이요 고가 일척이라
번제의 희생을 잡을 때에 쓰는 기구가 그 위에 놓였으며’
주님은 오로지 순종만 하셨고
순종으로 만들어진 것을 다듬어진 돌이라 합니다.
일척, 일척 반.
자기로서 할 수 있는 정도를 하되
지나쳐서도 안 됩니다.
‘희생을 잡을 때 쓰는 기구’
나를 잡을 기구가 제단, 현실,
내가 사는 그곳에 있다.
대속으로 나를 잡고,
대속을 적용시키는 것도 다 현실에 있다.
‘현관 안에는 길이가 손바닥 넓이만한 갈고리가
사면에 박혔으며 상들에는 희생의 고기가 있더라’
주님 만나는 생활,
길이가 손바닥 넓이만한 갈고리,
할 수 있는 정도.
각자 자기에게 맞도록 자기를 잡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다 현관에 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잡을 수 있습니다.
사면에 박혔으며 상들에는 희생의 고기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잡으면 그 잡은 자기의 모양, 효력이
현실에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를 잡은 사람은 자기 잡은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살아있는 생활이 됩니다.
잡을 자기를 잡기 전에 먼저 돌아봐야 하고
자기를 잡기 전에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