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5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4-08-25조회 99추천 13
2024년 8월 25일 주일 오전
찬송: 136장, 154장
본문: 에스겔 40장 38절 - 43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전체적으로 에스겔 성전은 미리 그려본 신앙의 이상이라고 배웠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모신 하나님의 집인데 그 출발은 모세의 성막이고 절정이 솔로몬의 성전이고 에스겔 성전은 물질 성전이 아니고 우리 신앙의 이상의 모습을 에스겔에게 형상으로 보여주신겁니다. 실물이 있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솔로몬이 크고 귀한 돌과 금과 은과 동을 가지고 백향목을 가지고 많은 비용과 인력을 가지고 웅장하게 6년에 걸쳐 만들었고 모세 성막도 실 청실 자실 홍실 가는 베실 조각목 이런 것으로 만들었고, 모세 성막은 사람이 무겁기는 무겁지만 수만명이 같이 가니까 들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동식이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웅장한 성전이었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물질로 된 성전이 아닙니다. 형상으로 에스겔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스크린을 켜놓고 보이는데 실물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실물을 가지고 사진 찍지만 요즘은 없는 것도 그려내잖습니까. 그것처럼 우리들이 하나님을 모셔야하는 신앙의 모습을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려서 말하자면, 솔로몬에게 에스겔에게 보여주셨는데 그 방법이 실제 에스겔이 봤습니다. 실물을 보면서 척량도 했는데 실제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꿈과는 다른 겁니다. 꿈에 가면 여러 가지 작용이 생기는데 꿈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꿈에서는 뭐든 하기도하고 그리 되는 것처럼 그와 좀 다르지만 형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미리 그려본 신앙의 이상이란 하나님을 향해서 올라가는 걸 신앙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신앙이라. 우리들이 앞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그런 모습을 에스겔 성전으로 그려서 그렇게 되어야하는데 형상 속에서 말씀이라는 걸로 있었듯이 형상 속에 구조 속에 척추 속에 우리들의 신앙을 담아주신 겁니다. 그 구조들의 역할을 알고 척수의 의미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보여주신겁니다. 어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린 아이에서는 말로는 모르니까 그림을 그려 보여줍니다. 초등학교 될려면 줄어들고 글이 많아지지요. 대학교 가면 그림은 없고 깨알처럼 작아지면서 엄청나게 많아집니다. 그러면서 설명하도록 만듭니다. 구약 시대는 시대는 어릴 때고 신앙도 어릴 때라서 그들에겐 하나님께서 보이는 걸 가지고 가르쳤고 그걸 기록해서 그들에게는 실상인데 그들의 실상이 우리들에게는 이치를 찾아서 깨닫고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는 그런 것으로 기록해주셨기 때문에 그러해서 이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전체 제목을 다른 것으로 관통해보면 절망 중에 주신 소망이다. 바라볼 수 있는 모든 게 끊어져버렸다는 겁니다.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이 끊어져버린 걸 절망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절망을 많이 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모릅니다. 이 말씀들이 오전에 참석한 분들은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공부 안하고 책만 들여다보는 사람이 농사 지어보라고 하면 새로 배워야합니다. 그게 고급인데도 시골가서 땅파고 농사 짓는 것은 다른 세상입니다. 공부한 박사가 시골에 가면 무식하게 되는 겁니다. 농사 짓는 사람이 농사에는 박사인데 장사를 나오면 바보가 되는 겁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고기 잡으러 가면 또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사람이 시골에 가서 가꾸고 길러보고 실패해보고 해서 2 3년 지나고 나면 농사꾼이 됩니다. 농사 짓던 사람이 장사꾼이 되면 사기도 당하고 손해도 봅니다. 그러다가 몇 년 장사하면 장사꾼이 됩니다. 고기 잡는데에 가면 어부가 되는 겁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걸 환경에 적응한다, 적자생존이라고 합니다. 환경에 적응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법과 상관없이 세상의 문화 세상의 유행 방식 그리고 자기 중심, 가정 중심 인간 중심 사회와 국가민족 중심. 교회와 말씀 들으니까 세상과 동 떨어진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섞어서 교회지만 설교시작이지만 세상 소식을 전하고 세상 사람들이 듣기 좋도록 하는데 복음은 아닌데 듣기 좋습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곳은 여기 학생들 많지요. 초등학생들, 중학생들 손 들어볼까요. 학교 뭐하러 다녀요. 학교 뭐하러 갑니까. 공부하러 가지요. 학교는 뭐하러 간다고요, 공부하러 갑니다. 공부한다는 사람들은 공부할 곳 갑니다. 마트 시장에는 뭐하러 갑니까. 생필품 식료품, 그러러 가는 겁니다. 직장에 뭐하러 출근하십니까. 일하러 갑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만든 단체 기간들 전부 그 기관 그 단체에 본 목적이 있는 겁니다. 그곳을 잊어버리면 존재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게 변질이 되면 의미가 줄어들게 되는 거지요.
백성들을 잘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게 정치인데 사람들이 정치에 신물을 내버립니다. 그것에 목적이 있는 겁니다. 학교는 공부하러 가기 위해서 설립했는데 무용이나 가르치고 영화나 보여주고 싸움이나 시키고 그러면 없애버려야합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그런 곳이 있을 겁니다. 외국에는 그런 학교가 있습니다. 그런 학교는 공부를 제대로 시킵니다. 저희들 어릴 때처럼. 그래서 생각 있는 사람은 돈을 들여서라도 거기 보냅니다. 굉장히 어려운데 졸업하고 나면 한국 학생보다 몇 배는 뛰어나버립니다. 그러니까 인기가 있는 겁니다. 요즘 왜 학교를 가야할까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학교는 목적이 있습니다. 마트는 시장 직장에는 곳곳에 가는 원인이 있는데 교회는 뭐하는 곳이냐 이 말이지요. 교회라는 곳은 하나님을 찾는 곳입니다. 천국을 아는데도 전하고 하나님을 아는대도 전하는 게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알기 쉽도록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게 예수님이니까 예수를 전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걸 공부하고 배우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1주일 내도록 직장만 다니다가 직장생활하는데 성령을 봅니까 기도를 합니까 직장 다니면서도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참석을 하고 새벽시도를 하고 노력을 하는 분들은 거리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직장에 바빠서 공부에 재미없어가지고 성경도 못읽지요. 하나님 말씀 양식입니다. 기도도 못하지요. 예배 참석도 못하지요. 일주일 내도록 일에만 관심쓰고 사람 만나 하고 거기다가 주일날 예배당 앉으면 저게 무슨 말인지.
잡초하고 잔디하고 구별하실 줄 아십니까. 저는 모덕교회 목사님한테 그 질문 받고 몰랐는데 보고 알았습니다. 잡초와 잔디를 구분할 줄 아냐고 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다보니까 알게 되었습니다. 농사 짓는 것은 알지 모르겠습니다. 잡초 잔디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한 겁니다. 믿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힘들지요. 어렵지만 계속 들어서 알아야합니다. 이것처럼 말씀 위주로 해야하는데 그리 필요하지 않는 것인데 시골에 농사짓는 농토는 땅입니다. 배는 고기 잡는 데 쓰는 것이고. 교회라는 곳은 이 세상과 다른 곳입니다. 이걸 기본적으로 깔아놔야합니다. 직장 학교와 다른 곳입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천국을 대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어려워도 들으셔야합니다. 대개 아셔야 하지만 절망 중에 주신 소망. 절망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돈이 없으면 절망이죠. 병이 들었는데 치료할 가망이 없으면 절망이지요. 절망은 사망에 속한 것이라. 그래서 이 세상은 끊어지면 나이가 늙어서 살 날이 끊어지면 절망하게 되는데 예수믿는 사람은 그런 것으로 절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의사들이 당신 1년밖에 못합니다 하는데 1년 20년 사는 사람들 가득 찼습니다.
요즘 주남선 목사님 전기를 읽고 있는데 참 그런 분들의 신앙 걸음을 읽어보니까 세상 말로 우리는 애들 장난입니다. 얼마나 그렇게 진실하게 믿으셨는지. 참 성자입니다. 그분은 주를 위해서 죽고 싶어서 순교하는 게 소원이라서 거창에서 나셨고 거창에서 자라고 거창에서 돌아가셨습니다. 625때 미국 폭격기가 총알 쏘아대는데 총알이 비켜가덥니다. 일제 강점기에 감옥에 갇히면서 죽는 게 소원인데 하나님이 안 데려가시니까 안 죽는 겁니다. 일제 강점기에 가시고 625에 손양원 목사님 돌아가는데 그냥 가시고 있는대로 충성하시는데 누구 누구 다 하나님이 순교로 데려가셨는데 나는 죄가 많아서 하나님이 안 데려가신다고 했습니다. 죽지 못한 순교자입니다. 이런 분들이 해와같이 빛나겠구나. 주남선 목사님 쓰시던 성경이 백영희 조사님께 전해주십니다. 목회하시다가 막히면 주목사님 생각하셨다고 하셨답니다. 성자처럼 그렇게 사셨답니다.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달린 겁니다. 믿는 사람에게 절망이란, 이 세상 형편 무엇에 따라 믿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돈 때문에 절망한다, 한참 멀은 거지요. 건강 때문에 절망할 수 없습니다. 나 혼자만 남았다. 외톨이다. 혼자다. 아브라함도 그랬고 이삭도 요셉도 다 그랬습니다. 믿음의 종들은, 주님이 계시니 절망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시 세상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나그네의 세월이기 때문에 하늘나라 영생을 바라보기 때문에 하나님을 나의 원동으로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믿는 사람의 예수 믿는 사람은 마음이 별로 괴롭지 않는데 하나님과 자기 관계가 되면 밥을 못먹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이 말 때문에 손해볼란가. 밥 먹다가도 걸리고 하나님 생각이 나니까 조심이 되어가지고 자기에게 고칠 습성이 있는데 하나님과 자기 관계 끊어질까 이게 가장 절망적인 것이지 없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 붙들려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림으로 포로되었습니다. 포로된지 25년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참된 종들의 기도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 과정을 전부 기록해 놓은 게 에스겔 성전입니다. 그러면서 출발하는 겁니다. 성전, 실제 하나님을 모시는 그 출발은 당장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들어가서 들어가니까 당장에 가니까 제일 처음에 있는 게 뭔가요. 어렵고 어렵지만 복습해서 은혜라 그랬습니다. 가장 막고있는게 일곱 천계가 있습니다. 그 다음 뭐라고 합니까 그 문 안에 들어가니까 문지기들이 문지기 방들이 6개씩 있습니다. 그리고 방과 방 사이에 5척씩 있고 안뜰로 들어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넓은 뜰이 나옵니다. 여기까지 그래서 저는 잘 모르는데 대략 그림을 그리면 담이 있고 담에 문이 3개 있지요. 동쪽 북쪽 남쪽에 문이 있습니다. 1차문입니다. 그런데 1차문과 2차문 사이에 바깥 뜰이라고 합니다. 바깥 마당이라고 합니다.
바깥 뜰에 들어가니까 다 있습니다. 깔아놓고 그 위에 방을 서른개를 만들어 놨습니다. 이 의미가 뭐냐, 바깥 뜰은 하나님의 세계라 그랬지요. 하나님의 은혜 세계라. 하나님의 은혜라. 구약의 에스겔 성전은 실물은 아니나 바깥 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는 어떤 것을 말하까. 공간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겠지요. 은혜 주신 신앙의 성장이라 그럴까요. 이런 걸 바깥 뜰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은 이 세상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이 없는 세상,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상 열고 들어와서 문통을 열고 과정 과정 걸쳐가지고 단계 단계 세상 재미, 안 믿는 세상 사람들 재미 그들의 욕망 그들의 소원 그들의 취미 그들의 관심사. 그들의 성공의 이런 저런 것들. 자기 생각 속에 생활 속에 떨쳐버리고 단계적으로 오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겁니다.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 많았다.
중간에 노트북이 오류로 인해 꺼져버렸기 때문에 잘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찬송: 136장, 154장
본문: 에스겔 40장 38절 - 43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전체적으로 에스겔 성전은 미리 그려본 신앙의 이상이라고 배웠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모신 하나님의 집인데 그 출발은 모세의 성막이고 절정이 솔로몬의 성전이고 에스겔 성전은 물질 성전이 아니고 우리 신앙의 이상의 모습을 에스겔에게 형상으로 보여주신겁니다. 실물이 있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솔로몬이 크고 귀한 돌과 금과 은과 동을 가지고 백향목을 가지고 많은 비용과 인력을 가지고 웅장하게 6년에 걸쳐 만들었고 모세 성막도 실 청실 자실 홍실 가는 베실 조각목 이런 것으로 만들었고, 모세 성막은 사람이 무겁기는 무겁지만 수만명이 같이 가니까 들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동식이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웅장한 성전이었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물질로 된 성전이 아닙니다. 형상으로 에스겔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스크린을 켜놓고 보이는데 실물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실물을 가지고 사진 찍지만 요즘은 없는 것도 그려내잖습니까. 그것처럼 우리들이 하나님을 모셔야하는 신앙의 모습을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려서 말하자면, 솔로몬에게 에스겔에게 보여주셨는데 그 방법이 실제 에스겔이 봤습니다. 실물을 보면서 척량도 했는데 실제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꿈과는 다른 겁니다. 꿈에 가면 여러 가지 작용이 생기는데 꿈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꿈에서는 뭐든 하기도하고 그리 되는 것처럼 그와 좀 다르지만 형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미리 그려본 신앙의 이상이란 하나님을 향해서 올라가는 걸 신앙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신앙이라. 우리들이 앞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그런 모습을 에스겔 성전으로 그려서 그렇게 되어야하는데 형상 속에서 말씀이라는 걸로 있었듯이 형상 속에 구조 속에 척추 속에 우리들의 신앙을 담아주신 겁니다. 그 구조들의 역할을 알고 척수의 의미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보여주신겁니다. 어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린 아이에서는 말로는 모르니까 그림을 그려 보여줍니다. 초등학교 될려면 줄어들고 글이 많아지지요. 대학교 가면 그림은 없고 깨알처럼 작아지면서 엄청나게 많아집니다. 그러면서 설명하도록 만듭니다. 구약 시대는 시대는 어릴 때고 신앙도 어릴 때라서 그들에겐 하나님께서 보이는 걸 가지고 가르쳤고 그걸 기록해서 그들에게는 실상인데 그들의 실상이 우리들에게는 이치를 찾아서 깨닫고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는 그런 것으로 기록해주셨기 때문에 그러해서 이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전체 제목을 다른 것으로 관통해보면 절망 중에 주신 소망이다. 바라볼 수 있는 모든 게 끊어져버렸다는 겁니다.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이 끊어져버린 걸 절망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절망을 많이 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모릅니다. 이 말씀들이 오전에 참석한 분들은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공부 안하고 책만 들여다보는 사람이 농사 지어보라고 하면 새로 배워야합니다. 그게 고급인데도 시골가서 땅파고 농사 짓는 것은 다른 세상입니다. 공부한 박사가 시골에 가면 무식하게 되는 겁니다. 농사 짓는 사람이 농사에는 박사인데 장사를 나오면 바보가 되는 겁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고기 잡으러 가면 또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사람이 시골에 가서 가꾸고 길러보고 실패해보고 해서 2 3년 지나고 나면 농사꾼이 됩니다. 농사 짓던 사람이 장사꾼이 되면 사기도 당하고 손해도 봅니다. 그러다가 몇 년 장사하면 장사꾼이 됩니다. 고기 잡는데에 가면 어부가 되는 겁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걸 환경에 적응한다, 적자생존이라고 합니다. 환경에 적응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법과 상관없이 세상의 문화 세상의 유행 방식 그리고 자기 중심, 가정 중심 인간 중심 사회와 국가민족 중심. 교회와 말씀 들으니까 세상과 동 떨어진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섞어서 교회지만 설교시작이지만 세상 소식을 전하고 세상 사람들이 듣기 좋도록 하는데 복음은 아닌데 듣기 좋습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곳은 여기 학생들 많지요. 초등학생들, 중학생들 손 들어볼까요. 학교 뭐하러 다녀요. 학교 뭐하러 갑니까. 공부하러 가지요. 학교는 뭐하러 간다고요, 공부하러 갑니다. 공부한다는 사람들은 공부할 곳 갑니다. 마트 시장에는 뭐하러 갑니까. 생필품 식료품, 그러러 가는 겁니다. 직장에 뭐하러 출근하십니까. 일하러 갑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만든 단체 기간들 전부 그 기관 그 단체에 본 목적이 있는 겁니다. 그곳을 잊어버리면 존재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게 변질이 되면 의미가 줄어들게 되는 거지요.
백성들을 잘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게 정치인데 사람들이 정치에 신물을 내버립니다. 그것에 목적이 있는 겁니다. 학교는 공부하러 가기 위해서 설립했는데 무용이나 가르치고 영화나 보여주고 싸움이나 시키고 그러면 없애버려야합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그런 곳이 있을 겁니다. 외국에는 그런 학교가 있습니다. 그런 학교는 공부를 제대로 시킵니다. 저희들 어릴 때처럼. 그래서 생각 있는 사람은 돈을 들여서라도 거기 보냅니다. 굉장히 어려운데 졸업하고 나면 한국 학생보다 몇 배는 뛰어나버립니다. 그러니까 인기가 있는 겁니다. 요즘 왜 학교를 가야할까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학교는 목적이 있습니다. 마트는 시장 직장에는 곳곳에 가는 원인이 있는데 교회는 뭐하는 곳이냐 이 말이지요. 교회라는 곳은 하나님을 찾는 곳입니다. 천국을 아는데도 전하고 하나님을 아는대도 전하는 게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알기 쉽도록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게 예수님이니까 예수를 전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걸 공부하고 배우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1주일 내도록 직장만 다니다가 직장생활하는데 성령을 봅니까 기도를 합니까 직장 다니면서도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참석을 하고 새벽시도를 하고 노력을 하는 분들은 거리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직장에 바빠서 공부에 재미없어가지고 성경도 못읽지요. 하나님 말씀 양식입니다. 기도도 못하지요. 예배 참석도 못하지요. 일주일 내도록 일에만 관심쓰고 사람 만나 하고 거기다가 주일날 예배당 앉으면 저게 무슨 말인지.
잡초하고 잔디하고 구별하실 줄 아십니까. 저는 모덕교회 목사님한테 그 질문 받고 몰랐는데 보고 알았습니다. 잡초와 잔디를 구분할 줄 아냐고 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다보니까 알게 되었습니다. 농사 짓는 것은 알지 모르겠습니다. 잡초 잔디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한 겁니다. 믿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힘들지요. 어렵지만 계속 들어서 알아야합니다. 이것처럼 말씀 위주로 해야하는데 그리 필요하지 않는 것인데 시골에 농사짓는 농토는 땅입니다. 배는 고기 잡는 데 쓰는 것이고. 교회라는 곳은 이 세상과 다른 곳입니다. 이걸 기본적으로 깔아놔야합니다. 직장 학교와 다른 곳입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천국을 대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어려워도 들으셔야합니다. 대개 아셔야 하지만 절망 중에 주신 소망. 절망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돈이 없으면 절망이죠. 병이 들었는데 치료할 가망이 없으면 절망이지요. 절망은 사망에 속한 것이라. 그래서 이 세상은 끊어지면 나이가 늙어서 살 날이 끊어지면 절망하게 되는데 예수믿는 사람은 그런 것으로 절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의사들이 당신 1년밖에 못합니다 하는데 1년 20년 사는 사람들 가득 찼습니다.
요즘 주남선 목사님 전기를 읽고 있는데 참 그런 분들의 신앙 걸음을 읽어보니까 세상 말로 우리는 애들 장난입니다. 얼마나 그렇게 진실하게 믿으셨는지. 참 성자입니다. 그분은 주를 위해서 죽고 싶어서 순교하는 게 소원이라서 거창에서 나셨고 거창에서 자라고 거창에서 돌아가셨습니다. 625때 미국 폭격기가 총알 쏘아대는데 총알이 비켜가덥니다. 일제 강점기에 감옥에 갇히면서 죽는 게 소원인데 하나님이 안 데려가시니까 안 죽는 겁니다. 일제 강점기에 가시고 625에 손양원 목사님 돌아가는데 그냥 가시고 있는대로 충성하시는데 누구 누구 다 하나님이 순교로 데려가셨는데 나는 죄가 많아서 하나님이 안 데려가신다고 했습니다. 죽지 못한 순교자입니다. 이런 분들이 해와같이 빛나겠구나. 주남선 목사님 쓰시던 성경이 백영희 조사님께 전해주십니다. 목회하시다가 막히면 주목사님 생각하셨다고 하셨답니다. 성자처럼 그렇게 사셨답니다.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달린 겁니다. 믿는 사람에게 절망이란, 이 세상 형편 무엇에 따라 믿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돈 때문에 절망한다, 한참 멀은 거지요. 건강 때문에 절망할 수 없습니다. 나 혼자만 남았다. 외톨이다. 혼자다. 아브라함도 그랬고 이삭도 요셉도 다 그랬습니다. 믿음의 종들은, 주님이 계시니 절망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시 세상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나그네의 세월이기 때문에 하늘나라 영생을 바라보기 때문에 하나님을 나의 원동으로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믿는 사람의 예수 믿는 사람은 마음이 별로 괴롭지 않는데 하나님과 자기 관계가 되면 밥을 못먹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이 말 때문에 손해볼란가. 밥 먹다가도 걸리고 하나님 생각이 나니까 조심이 되어가지고 자기에게 고칠 습성이 있는데 하나님과 자기 관계 끊어질까 이게 가장 절망적인 것이지 없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 붙들려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림으로 포로되었습니다. 포로된지 25년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참된 종들의 기도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 과정을 전부 기록해 놓은 게 에스겔 성전입니다. 그러면서 출발하는 겁니다. 성전, 실제 하나님을 모시는 그 출발은 당장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들어가서 들어가니까 당장에 가니까 제일 처음에 있는 게 뭔가요. 어렵고 어렵지만 복습해서 은혜라 그랬습니다. 가장 막고있는게 일곱 천계가 있습니다. 그 다음 뭐라고 합니까 그 문 안에 들어가니까 문지기들이 문지기 방들이 6개씩 있습니다. 그리고 방과 방 사이에 5척씩 있고 안뜰로 들어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넓은 뜰이 나옵니다. 여기까지 그래서 저는 잘 모르는데 대략 그림을 그리면 담이 있고 담에 문이 3개 있지요. 동쪽 북쪽 남쪽에 문이 있습니다. 1차문입니다. 그런데 1차문과 2차문 사이에 바깥 뜰이라고 합니다. 바깥 마당이라고 합니다.
바깥 뜰에 들어가니까 다 있습니다. 깔아놓고 그 위에 방을 서른개를 만들어 놨습니다. 이 의미가 뭐냐, 바깥 뜰은 하나님의 세계라 그랬지요. 하나님의 은혜 세계라. 하나님의 은혜라. 구약의 에스겔 성전은 실물은 아니나 바깥 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는 어떤 것을 말하까. 공간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겠지요. 은혜 주신 신앙의 성장이라 그럴까요. 이런 걸 바깥 뜰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은 이 세상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이 없는 세상,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상 열고 들어와서 문통을 열고 과정 과정 걸쳐가지고 단계 단계 세상 재미, 안 믿는 세상 사람들 재미 그들의 욕망 그들의 소원 그들의 취미 그들의 관심사. 그들의 성공의 이런 저런 것들. 자기 생각 속에 생활 속에 떨쳐버리고 단계적으로 오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겁니다.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 많았다.
중간에 노트북이 오류로 인해 꺼져버렸기 때문에 잘렸습니다. 죄송합니다.